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과 진실한 사랑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랑은 겉보기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진지하게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 가보면 사랑의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필요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진실한 사랑은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은 언뜻 보기에 사랑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앞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그 속에는 상대를 향한 절실한 사랑이 숨어있습니다. 그가 상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비극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어떤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저변에는 기능주의가 깔려있습니다. 사람을 인격이 아니라 기능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요즈음 이혼이 급속도로 느는 이유도 그 배경에는 기능주의적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갑자기 명성이나 부를 얻은 성공한 남편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롭게 장가드는 이유는 자신의 부인이 그가 기대하는 아내로서의 기능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노년 여성들이 황혼 이혼을 시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년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면에는 남편의 사회적 경제적 기능이 끝나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무서운 생각이 숨어있을 때도 있습니다.
기능주의 사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정신과 정면 배치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실 때 그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훈련시킨 것도 그들을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을 쏟아주고 싶어서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선교하면 교회가 성장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 속에는 선교를 단지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기능주의적 사고가 숨어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가 선교하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교회로 남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선교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선교의 원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선교를 단지 교회의 세력을 키우는 수단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능주의는 죄악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수단화하려는 기능주의에 대항하여 철저히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선교의 원형'은 사람을 단지 기능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 100323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