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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불교의 네 군데 '거룩한 장소'

Los Angeles

2010.04.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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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연전에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인도 성지 순례를 주선한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악의 없이 되묻기를 인도에도 성지가 있느냐면서 더군다나 순례라니까 좀 낯설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자기 것에만 익숙하다 보면 이웃이나 남들에게도 자기들과 비슷한 게 있는 줄을 놓치기가 쉽다.

사실 세상의 웬만한 종교라면 창시자나 중요한 인물들의 발자취로 알려져 신도들에게 기림을 받는 거룩한 장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장소들은 어렵사리 찾아온 후세의 추종자들에게 특별한 종교적 영감을 주거나 적어도 순례의 이행이라는 필생의 짐 하나를 내려놓게 한다.

당연히 불교에도 세계 곳곳에 많은 성지가 있다. 오늘은 일단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 고비가 되었던 네 군데의 거룩한 장소들을 우선 찾아보자.

훗날 부처님이 되신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예수님보다 544년 전 쯤 지금은 네팔 땅인 옛 인도의 카필라 성 출신이다. 사실은 어머니 마야 부인이 그 때의 풍습대로 친정으로 아기를 낳으러 가다가 진통이 와서 한데서 몸을 풀었다. 불교의 첫 번째 거룩한 땅인 룸비니 동산이 그곳이다.

산후조리에 문제가 있었음인지 마야 부인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나고 친동생인 마하 프라자파티가 계모가 되어 어린 싯다르타를 길렀다. 이복동생들도 태어났다. 이모가 새 어머니가 되어 정성을 다해 길렀겠지만 아무래도 친어미만큼은 했으랴 싶은 것이 한낱 속인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일평생 볕과 그늘에서 자리를 채우고 안살림을 꾸린 이 여인의 숨은 행적 마음고생은 또한 어땠으랴 하는 생각도 곁가지를 친다. 이 어머니도 뒷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어쨌든 장가들고 아들까지 낳은 싯다르타 태자는 스물아홉에 출가를 단행한다. 이는 카필라 왕실의 변고를 넘어 결국 세계사를 크게 매듭지은 사건이다. 그야말로 버리고 떠나기의 원조요 혁혁한 성공사례요 인류사의 영원한 이정표가 된 사건이다.

이후 태자는 여러 스승을 찾아 헤매었고 사문들과 함께 고행했다. 그러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 네란자라 강가 수자타 여인한테서 우유죽을 얻어 마시고 기운을 차린 다음 다시금 깊은 정진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출가한지 여섯 해 새벽하늘에 샛별이 반짝인 순간 위없는 큰 깨달음을 얻고 성불하시니 이곳이 곧 두 번째의 거룩한 땅으로 마가다 나라의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다.

크나큰 기쁨에 휩싸여 앉아 계시던 부처님은 마침내 괴로움에 싸인 중생들을 건지기로 결심하셨다. 이리하여 맨 먼저 찾아가신 곳이 바라나시다. 그 당시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며 철학자들 종교가들이 모여 겨루는 정신계의 시장터요 결전장이었다. 부처님은 그곳 사슴동산에서 이전의 동료 사문들을 찾아내어 진리를 설하셨다. 그 가운데 카운디냐가 처음으로 말귀를 알아듣고는 귀의의 눈빛을 번쩍였다. 카운디냐는 깨달았다! 카운디냐는 깨달았다! 부처님은 두 팔을 들어 기뻐하시니 이곳이 불교를 처음으로 세상에 전한 거룩한 땅 초전법륜의 성지다.

부처님은 나날이 늘어나는 제자들을 이끌고 온 북인도를 맨발로 걸으셨다. 그렇게 법의 바퀴를 굴리신지 마흔다섯 해 이제 여든이 된 몸은 오래 된 수레처럼 허물어져 갔다. 마침내 대장장이 춘다가 준 음식으로 배탈이 나시니 힘겹게 쿠시나가라에 이르시도록 낫지를 않으셨다. 이윽고 두 그루 사라 나무 사이에 누우신 채 마지막 설법을 하시고 눈을 감으시니 이곳이 열반의 성지 네 번째 거룩한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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