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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편견없이 세상 바로보기

Los Angeles

2010.04.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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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오늘은 시야를 좀 넓혀 세계사의 한 자락을 더듬어 보자.

지금으로부터 200~300년 전 쯤부터 지금까지의 세계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서세동점의 시대였다. 서양의 큰 물결이 동양을 덮쳐 많은 지역이 그 그늘에 들어갔다. 그렇게 된 잘못은 동양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있었다. 어쨌든 동양은 숱한 굴욕과 회한 속에서 배울 건 배우고 참을 건 참았으며 견딜 건 견딜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사이 많은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 와서 눌러 살거나 얼마간 머물다 돌아갔다. 그런데 서세동점이 마무리가 되어 가는 요즘 거꾸로 동양 사람들도 서양에 많이 오고 간다. 우리가 어찌어찌하여 미국이란 나라로 이민을 와서 이러고 있는 것도 그 끝마무리 물결 한 자락을 탄 것이다.

그런데 근세에 동양을 다녀갔던 이런 서양 사람들이 남긴 글들을 지금 읽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 때 우리도 몰랐던 것들을 제대로 파헤친 것이 많아 무릎을 치게 만든다. 한국도 동양의 한 귀퉁이였으니 예외가 아니다.

그 당시 한국은 여러 면에서 많이 피폐해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에 삼천리 금수강산은 듣기 좋자고 한 소리였고 실상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속된 말로 형편 무인지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러한 사바의 고해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 기껏해야 자기 피붙이나 한 고장 사람들만 챙기는 좁은 윤리의 울타리에 갇힌 채 고단한 삶을 근근이 엮어 가고 있었다.

이 때 서양에서 건너온 많은 성직자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이러한 불쌍한 중생들에게 큰 도움을 준 게 사실이다. 그들을 좁은 윤리 도덕의 울타리 너머로 이끌었으며 자신의 희생도 감수했다. 이러한 숭고한 마음이 행간에서 읽혀질 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해동포가 따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남긴 전기랄까 여행기의 어떤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고 너무나 잘못 알고 터무니없는 설을 풀고 있어서 쓴웃음이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 제법 배웠고 교양도 갖춘 상류의 식자층이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윗길에서 놀던 이들이 이 정도였으니 좀 아랫길의 서양 일반인들은 어땠을까? 동양에 대한 오해나 편견은 못 말릴 정도가 아니었겠나 싶다.

식자우환이라는 말도 있으니 혹시 그 반대일까? 뭘 좀 안다는 이들이 오히려 눈꺼풀에 무엇이 씐 듯 착각이 심할 때도 없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기야 내가 읽어 봐도 그렇다. 특히 오해와 편견이 극심한 부분이 이러한 지식인들이나 상류층 인사들이 기술해 놓은 동양의 정신문화 내지 종교에 관한 사항들이다.

그 가운데 불교나 스님 사찰에 대해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너무나 까막눈이고 한심해서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을 때도 있다.

이는 거꾸로 뒤집어도 마찬가지다. 서양을 처음 보았던 동양 사람들이 남긴 글들에도 상대를 터무니없이 오해하여 낮추보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치게 반해서 시쳇말로 뿅 가 버린 것이 많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래 보인다.

참으로 세상을 편견 없이 바로 본다는 것 부처님이 말씀하신 여덟 가지의 바른 길 가운데 첫 번째인 그 '바로 봄'이 얼마나 만만찮은 일인 지가 새삼 일깨워진다.

그리고 이렇게 뭘 바로 보려면 우선 몸과 마음이 중심부터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중심 하나 잡는 것이 그리하여 심지 굳고 눈 밝은 참된 선비 참된 수행자 되는 길이 이리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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