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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존재하는 선교'의 의미

Los Angeles

2010.04.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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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근 신부/성프란치스코 성당
수도원 창문을 열며 봄 내음이 가득한 대지를 바라본다. 어느덧 이곳 프란치스코 한인성당에 부임해 온 지 1년이 되어간다. 처음 교포사목 소임을 받았을 때는 왠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한국 사람들이지만 외국땅에서 서로 다른 정서와 문화 속에서 부딪치게 돼 낯선 상황들이 예상되면서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 이번에도 새로운 도전과 함께 당신 구원의 뜻을 펼쳐 나갈 것이기에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에 나는 '예'하고 응답드리며 이곳에 왔다.

나는 성당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성모님께 나 자신과 본당공동체를 봉헌하면서 부활을 향한 하루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이곳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기도하는 것'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삶의 지향을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에 두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실에 충실하고 만나는 모든 분들을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수도사제로서 인생의 중반기를 살고 있는 요즈음 나는 '무엇을 하는 것 doing'에서 부터 '존재하는 것 being'으로 변화해가는 것이야말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성숙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복음선포(선교)야말로 교회의 기본사명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오 2819) 예수님께서 남기신 지상명령과도 같은 이 말씀은 2000년 교회역사를 통해 전 세계 교회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고 오늘의 나 역시 예수님의 뜻을 이곳 지역공동체에서 실현해 가기 위해 신자분들 한사람 한사람을 봉헌하며 기도하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있다.

한국에서 본당 사목을 할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도자들이 이러저러한 일을 하기보다는 기도하는 수도자 우리와 함께하는 수도자로 존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고 그들과 함께하는 수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아마도 그 속뜻은 수도자가 교회의 지도자 가르치는 사람 위에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리라.

짧은 경험이지만 교포사목은 어떤 능력을 펼치거나 일의 성공과 성취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부서지고 상처입은 사람들 곁에 머물며 마음을 나누는 'being'의 사목이 꼭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국을 떠나 낯선 이국 땅에서 겪어야 했던 교포들의 외로움 인종차별로 인한 상처와 아픔 생각과 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언어 문제 등등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맘껏 피어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슬프고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처럼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부딪히는 체험들은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수 있다.

교포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아픔에 공감하는 넓고 큰마음 사랑이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넉넉한 사랑의 품으로 안아 등을 두드려 줄 때 그들은 조금 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 길에 하느님께서 함께 해 오셨다는 믿음과 위안을 얻고 평화를 느낄 것이다.

이 마음으로 나는 현재 이곳 사도직 현장에서 만나는 신자분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교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섬기며 사랑하는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고 낮추시며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being 하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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