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문제는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쟁점화될 조짐이다. 불법이민을 둘러싼 논란과 선거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 애리조나 주 단속법이 발단
불법이민을 둘러싼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제정된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이다.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법은 주와 로컬 경찰에게 불법이민을 단속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주 정부가 불법이민 단속에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은 기존 단속법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까지 주 정부 차원의 불법이민단속은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체류신분을 조사하는 형태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제정된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은 범죄혐의가 없이 불법체류자로 의심만 돼도 경찰이 체류신분을 심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이 특정 인종에 대한 표적단속은 물론 합법적인 이민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때문에 이 법은 제정과 동시에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반대론자들은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반면에 지지자들은 불법이민단속을 위한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며 반기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하며 논란에 가세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애리조나 주 의회는 문제의 법의 조항을 일부 개정했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표적단속을 금하고 경찰의 체류신분 심문조건도 정지 구금 체포됐을 경우로 제한한 것. 하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인권자유연맹(ACLU)과 전국이민법센터(NILC) 등 단체들은 이 법의 시행을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대규모 항의시위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반면 불법이민에 대한 반감도 고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절대 다수가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인들 사이에 불법이민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풀이했다.
# 더딘 이민개혁 원인 제공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은 여러 법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주 정부가 연방 정부의 고유 권한인 이민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아 법무부에 대응책의 검토를 지시한 상태다.
그럼에도 주 정부의 이민문제 개입은 더욱 늘어날 조짐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애리조나 주가 불법이민단속법을 제정한 뒤 10개 주에서 유사한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연방 차원의 이민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민개혁은 지난 2007년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 초당적인 합의안이 도출되는 등 상당 부분 진전을 봤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 정부가 불법이민단속에 독자적으로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포괄적인 이민개혁이 무산되면서 주 차원의 불법이민단속법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상황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첫해 이민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취임 후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취임초기만 해도 의욕을 보였지만 금융대란 의료보험 개혁 등에 가려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의회는 의회대로 이민개혁은 뒷전이었다. 법안 발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 불법이민 찬반논쟁 촉발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은 불법이민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 특히 이런 논란은 선거시즌과 맞물려 미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약 11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내 불법체류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민옹호단체들은 이미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은 절차를 거쳐 구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들이 일정 부분 미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 추방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인도적인 측면 등을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이민단체들은 지난 1일 미 전역 80개 도시에서 이런 입장을 담은 이민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일제히 가졌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구제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불법체류자는 법을 어긴 만큼 마땅히 추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이민을 둘러싼 논란은 의회의 이민개혁 노력에 활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논의의 방향은 어느 정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이 제정된 지 약 1주일 뒤 독자적인 이민개혁안을 내놓았다.
논쟁 핵심은 미국내 1100만명 불체자 처리 불법이민 강경입장인 공화당에 유리 관측
그러나 이 안은 불법이민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민단체들의 당초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보면 국경수비를 우선적으로 강화한 후에 불법체류자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국경수비 강화를 위해 단속인력을 증원해 서류사기나 밀입국단속을 강화하도록 했다. 뉴욕타임스는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 제정 이후 민주당이 불법이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놓고 워싱턴포스트는 불법이민단속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불법체류자를 구제하자는 여론에 비해 우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장은 이마저도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중간선거 쟁점화 조짐
이민문제는 올 중간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갤럽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민문제를 선거의 주요 이슈로 여기는 응답자가 지난달 2%에서 5월 들어 10%로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문제는 특히 보수층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단체들은 올 중간선거에서 불법이민문제를 최대한 쟁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선거현장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이민문제에 중도적인 입장을 보여온 후보들이 속속 입장을 바꾸고 있는 것. 대표적인 예가 올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존 매케인 의원.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 불법체류자를 구제하는 내용의 이민개혁안을 지지한 바 있는 그는 최근 애리조나 주의 단속법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아직은 신중한 편이다. 불법이민을 둘러싼 논란이 어떤 정치적 여파를 가져올지를 계산하며 채 상황을 지켜보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중간선거 때까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를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민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장은 불법이민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공화당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도 이민문제로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현역 의원들이 불리할 것으로 전망돼 상하 양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에게는 부담이다.
■이민개혁 추진 과정 오바마 행정부 의욕 보였지만 '의보개혁' 등 정치상황에 밀려
이민개혁은 미국 내 불법체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필요성이 대두됐다. 현재 미국 내 불법체류자 수는 1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역대 행정부들이 불법체류자를 합법적인 이민자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민개혁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반대여론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민개혁은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 가시적인 성과를 봤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이민개혁안의 골자는 불법체류자에게 임시 노동허가증을 발급, 일정한 절차를 거쳐 영주권을 취득하도록 하는 것. 부시 행정부의 이민개혁 추진은 2007년 초당적인 합의안이 도출되면서 속도를 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구제를 문제 삼은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민개혁 노력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대선 당시 취임 첫 해 이민개혁을 추진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초기만 해도 이민개혁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의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여기에는 양당이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의회 내 정치상황도 한몫을 했다. 민주당 찰스 슈머 상원의원과 공화당 린지 그래함 상원의원이 초당적인 개혁안을 추진했지만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양당간 갈등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민주당 개혁안은… 불법이민 단속조항 강화하되 불체자 합법신분 기회는 부여
민주당은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 제정 이후 독자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 슈머 의원이 주도한 개혁안은 앞서 슈머 의원과 그래함 의원이 추진한 안을 밑그림으로 작성됐다.
슈머 의원과 그래함 의원이 추진한 개혁안의 골자는 현재 불법체류자가 합법적인 신분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불법이민은 최대한 막겠다는 것. 불법체류자가 합법적인 신분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법을 위반한 사실을 우선 인정한 뒤 벌금과 세금을 내고 사회봉사활동을 해야 합법 체류 신분으로 전환된다.
민주당의 새 안이 기존 안과 다른 점은 불법이민 단속조항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 현재 2만 명에 달하는 국경수비대 인력을 늘리는 한편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업주에 대한 벌금도 대폭 늘리도록 돼 있다. 지문정보를 담은 최첨단 소셜시큐리티카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어 최종 채택여부는 불투명하다.
■애리조나주 강력 단속법 사소한 위반에도 체류신분 심문 가능 특정 인종·민족 대상 표적 단속 우려
로컬 경찰에게 불법이민단속권을 부여한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은 발의단계부터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범죄혐의가 없이도 경찰이 체류신분을 심문할 수 있도록 한 것. 나중에 경찰의 체류신분 심문조건이 정지 구금 체포됐을 경우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사소한 교통위반으로 정지당했을 경우에도 경찰은 운전자의 체류신분을 심문할 수 있다. 때문에 반대론자들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대상으로 표적단속이 이뤄질 수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지자들은 불법이민단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들은 이 법의 조항들 대부분이 이미 연방 이민당국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연방 정부가 할 일을 주 정부가 대신 할 뿐이라는 말이다.
■뉴멕시코주 포용 정책 전체 절반 가량 히스패닉계 정치파워 불체자 운전면허 발급 등 관대한 정책
애리조나 주의 불법이민단속법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인접 뉴멕시코 주가 이민단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리적인 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은 애리조나 주와 유사하면서도 불법체류자에게 훨씬 관대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
우선 두 주 모두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한때 멕시코 영토였다는 점도 똑같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에 대한 처우에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애리조나 주가 전례 없는 단속법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반면에 뉴멕시코 주는 불법체류자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인종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뉴멕시코 주는 인구 전체의 45%가 히스패닉계인 반면에 애리조나 주의 경우 히스패닉계 인구의 비중이 30%로 상대적으로 낮다.
정치적 파워에서도 차이가 있다. 뉴멕시코 주는 주 의원의 44%가 히스패닉계인데 반해 애리조나 주는 16%에 불과하다. 뉴멕시코 주는 5명의 히스패닉계 출신 주지사를 배출한 반면에 애리조나 주는 한 명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