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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원조 '잠수함 투수' 한희민 (1)

Washington DC

2010.05.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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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Submarine)은 모두가 알다시피 일반 배와는 다르게 대부분 물 밑으로 다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언더 핸드 투수를 부를 때 ‘옆구리 투수’ 혹은 ‘잠수함 투수’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한희민 선수는 청주에 있는 세광고와 성균관대를 나온 잠수함 투수였고, 현역시절 등 번호는 13번을 달고 뛰었다. 그의 별명은 외모 때문에 ET라고 불렸다. 싱커와 슬라이더가 주 무기였던 투수이다.

빙그레 이글스 창단시절부터 이상군 선수와 함께 빙그레 마운드의 쌍두마차였다. 해태에서 활약했던 장채근 포수와는 성대시절 배터리였다.

그래서 한희민의 구질이나 좋아하는 코스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의 공을 잘 쳤었다.

삐쩍 마른 체구 아래쪽에서 큰 반원을 그리며 솟구치던 그의 공은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 발톱과도 같이 타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매우 보기 드문 투구 폼으로 싱커를 주무기로 승수를 쌓아가면서 빙그레 창단멤버인 동료 이상군과 함께 무적의 원투 펀치를 형성했다.

창단 첫해 꼴찌였던 빙그레는 그가 활약한 일곱 시즌 동안 무려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단시간에 강팀의 반열에 올랐었다.

아마 그 때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었다면 김병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곡예에 가까운 그의 투구 폼은 많은 팬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한희민은 비운의 투수였다. 팀 멤버였던 장종훈, 송진우, 이정훈, 이강돈, 유승안, 한용덕, 강석천 등이 함께한 빙그레는 해태와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경기에서 매번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서도 쓰디 쓴 잔을 들이켜야만 하는 아픔이 있었다.

결국 그는 단 한 번도 우승 샴페인을 터뜨려보지 못하고 삼성과 대만 프로야구를 전전하다가 변변한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늦은 출발이었지만 세광고에 진학하면서 김승성 감독을 만나 그의 야구 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게 됐다. 김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한 언더 핸드 피칭에 힘입어 2학년 때 대구에서 열리는 대붕기 대회에서 우승하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다른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고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때만 해도 체력이 딸려서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 공이 못 온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체격 조건이 좋아지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예와 함께 83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병역 혜택 까지 받게 된다.

그때부터 승승장구하면서 야구판에 한희민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졸업 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한희민이라는 잠수함에 같이 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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