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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원조 '잠수함 투수' 한희민 (2)

Washington DC

2010.06.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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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민 그는 자신의 특이한 투구 폼처럼 기이한 삶을 살아 왔다.

대만 프로야구 쥔꿔 베어스의 생활을 접고 귀국한 후에 동료 선수들 같이 후배를 지도하는 일이 아니라 대전시 외곽에다 평소에 좋아했던 난초(蘭草)를 기르면서 세월을 보냈다.

계룡산(鷄龍山) 자락을 시작으로 전국 명산에서 난초를 심을 괴목(槐木)을 찾아다니고 자기가 지은 온실에서 생활하며 한국 자생란(自生蘭)을 재배하는데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찾아오면 술잔을 주고받으며 선수시절 이야기로 하루해를 보내곤 했다.

외모도 기인 같이 수염을 기른 데다 꽁지머리를 해서 마치 산에서 도를 닦는 도사 같이 하고 다녔다.

그가 만든 온실 겸 살림집이 되어 버린 화원 한 구석에는 선수시절 자신이 받은 트로피만이 그가 한 때 마운드를 주름잡던 핵잠수함(潛水艦)이었음을 말해줄 뿐이다.

한희민의 기행(奇行)은 빙그레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승용차에 확성장치를 해놓고 위험 운전이나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을 보게 되면 교통경찰(警察) 흉내를 내면서 자칭 시민 경찰 노릇을 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겨하는 그는 몇 년 전부터 광주 근처에 살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가정을 꾸려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의 한국프로 경력은 80승 51패로 엄청난 기록은 아니지만 언더 핸드 투수의 짧은 선수 수명으로 볼 때 결코 실패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막강 타선의 해태나 다른 팀에서 뛰었다면 훨씬 더 훌륭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얼마 전 김성한 감독이 기아 타이거즈를 이끌 당시 잠시 투수코치로 스카우트 되어 잠시 동안 이나마 후배 양성의 길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를 사랑하던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희민 같은 잠수함 투수가 많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야구경기의 묘미는 폭발적인 타격에도 있지만 경기의 전반적인 역할을 하는 좋은 투수들의 투구가 팬들의 관심을 갖게 한다. 희귀성이 있는 잠수함 투수들의 출현은 야구팬들을 눈을 더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집도 스스로 지어보겠다는 소박한 꿈도 가지고 있다.

항상 구시대는 가고 새 시대가 오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과거를 회상하게 마련이다.

아마 프로야구 올드 팬들은 지금도 지난 날 초창기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들의 화려한 경기장면들을 추억해보리라 생각된다.

한희민도 그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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