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붉은 열기가 사방을 뒤덮고 있지만 서선덕 할아버지(87)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을 수 없다.
'고향에 곧 갈 수 있겠지'하고 기다린 세월이 60년째다.
함경북도 청진을 고향으로 둔 서 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그 후 대학(서울대 물리과) 공부를 위해 서울에서 유학하다 한국전을 맞은 탓에 실제로 고향에 가지 못한 세월은 더 오래됐다.
청진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일본인 동창들이 가끔 청진을 방문해 고향 사진을 보내주지만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서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아픔이다.
서 할아버지는 "매년 6월25일이 다가올 때마다 당시의 비참함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답답함을 가눌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25일) 한국전의 포성이 한반도를 뒤덮은 지 60주년이 됐다.
서 할아버지처럼 한국전의 포화 속에 고향을 등졌던 미주 실향민들의 아픔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현재 LA내 실향민은 6000여 명에 달한다.
올해 실향민들의 한숨은 더 크다.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차원의 대북 접근도 최근 완전히 중단됐다.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이하 상봉위)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오바마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상당히 희망적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올스톱된 상태"라고 말했다.
상당수 실향민들은 이제 '이산가족 상봉' 희망의 끈을 놓으려 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미주 실향민들은 노환으로 거동이 쉽지 않다"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은 1분 1초 조차 아까워한다"고 말했다.
일부 실향민은 '방북 길'이 막힌 게 아니라 긴장 국면을 만든 '북한'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국적을 보유한 경우 친북단체 등 '찾아'보면 방북 길은 있지만 '북한'을 안 믿는다. 한 실향민은 "가족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불확실하고 북한에 좋을 일만 할 수 없다"고 북한에 반감을 드러냈다.
실향민들에게 '지난 60년'은 앞으로도 '기약없는 기다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식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