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남아공 프리토리아 FH 오덴달 고등학교에서 열린 공개 심판훈련 현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남아공 월드컵 유일의 한국인 심판 정해상(40.사진) 부심이다. 남아공 월드컵이 '오심 월드컵'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가운데 그의 표정도 그늘이 져 있었다.
정 부심은 "심판끼리 판정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건 불문율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안다. 심판 숙소 분위기가 꽤 무겁다"고 전했다. 그는 "몇몇 오심은 누가 봐도 다 알 정도였다. 경기장에는 32대의 카메라가 돌아간다. 요즘 축구팬들의 수준은 아주 높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남은 월드컵 경기의 심판 명단을 지난 29일 발표했다. 여기에는 오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들이 모두 제외됐다. 16강전에서 잉글랜드 프랭크 램퍼드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으로 떨어졌는데도 골을 인정하지 않았던 호르헤 라리온다(우루과이) 주심의 이름은 빠졌다.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테베스가 멕시코와의 16강전 도중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골을 넣은 것을 보지 못했던 로베르토 로세티(이탈리아) 주심도 제외됐다. 정해상 심판은 8강전 심판진에 포함됐다.
한국 경기를 맡았던 심판 중에는 그리스전에서 주심을 봤던 마이클 헤스터(뉴질랜드)가 이후 경기에서 배정을 받지 못했다. 정 부심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청용이 그리스 선수를 민 파울성 플레이를 잡아내지 못하는 등 득점과 이어질 수 있는 대목에서 실수가 많았다"고 전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 나서 좋은 평점을 받은 그는 "실수 없이 잘해 온 지금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도 든다. 오심 분위기에 묻혀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걱정"이라며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오심이 자주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다. 부부젤라 소음도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주심과 의사소통을 위해 쓰는 무선마이크도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 부심은 제도 개선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골라인에 제4 5부심을 세우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유로파리그에서 시험해 성공을 거뒀다. K-리그도 지난해 플레이오프 때 도입해 효과를 봤다. 주심이 못 보는 사각지역을 대부분 커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에는 다소 유보적이었다. "경기의 흐름을 깰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