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 제국의 제왕’, ‘메이저리그의 큰손’으로 군림하면서 숫한 일화를 남겼던 스타인 브레너가 얼마 전 죽었다.
그는 선박산업으로 번 돈을 적자와 성적부진으로 빛을 잃어가던 뉴욕 양키즈(New York Yankees)를 CBS 방송국으로부터 사들인 후 저돌적인 비즈니스로 양키즈 신화를 다시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는 양키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나 손가락질을 받는 한이 있어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는 선수라면 거액의 연봉을 지불하면서까지 데려왔다.
그 좋은 예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메이저리그 최고의 연봉을 주면서 끌어왔다. 그리고 ‘사이 영’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로저 클레멘스도 팀의 우승을 위해 거금을 주고 데려 왔다.
그는 35년간 양키즈를 소유하면서 양키즈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여러 번 오르게 했다. 주위의 말 그대로 돈의 힘으로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끌어 안았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박건배 사장이 구단주였고 가장 가난한 구단이라고 불리었던 해태 타이거즈는 적은 돈을 들이면서도 한국 시리즈 우승을 무려 9번이나 차지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선동렬, 한대화,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김종모, 이순철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활약한 결과도 있겠지만 이들을 뒤에서 조정한 배후인 ‘코끼리’ 김응룡 감독의 탁월한 통솔력(統率力)이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구단의 형편상 다른 팀들 보다 적은 연봉을 감수하면서 우승을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김 감독의 불도저 같은 지휘 능력이라고 본다.
해태 타이거즈는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는 만년 하위에서 맴도는 팀이었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인 김동엽 감독이 팀을 맡았을 때 성적이었다.
둘 다 불같은 성격이지만 김응룡 감독은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대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개성이 강하고 기질이 강한 해태 선수들이라 해도 감히 그 앞에서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김 감독의 리더십 때문에 해태가 비록 동료 선수들에 비할 때 금전적인 대우나 구단의 지원이 부족하였지만 모두 하나가 되어 아홉 차례나 한국프로야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팀의 성적이 그 나마 모기업인 해태제과가 라이벌 회사인 롯데제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던 것이다.
능력 면으로 보면 해태는 개인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팀이다. 자기가 제일 잘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워크에 문제가 많아서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야구는 팀 운동이기 때문에 어느 한 선수가 잘해서 되는 운동이 아니다.
이들의 개인 플레이를 다잡은 사람이 바로 김응룡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가 화가 나면 주변에 있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선수가 실수를 하거나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덕 아웃에 있는 의자를 부수는 습관이 있어 잘못하면 애꿎은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판정이 마음에 안 들면 심판을 배로 밀어붙여 관중들을 즐겁게 하는 유머(Humor)도 아는 감독이었다.
팀에는 우승을 안겨서 즐겁게 해주고 가끔씩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어 즐겁게 하는 감독, 그가 바로 김응룡 감독이다.
# 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