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러브 이야기를 계속해 보고자 한다. 지난 회에서 60년대 야구 글러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에 야구 글러브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곳이 없었다. 만들어 졌다 해도 품질이 나빠서 선수들이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다. 가죽 처리도 그렇고 제작 기술적인 문제도 부족해서 자연히 선수들에게 외면을 당했었다. 그래서 미군부대를 통해 나오는 미제 글러브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미제 글러브는 고가품에 속했기 때문에 새 것 보다는 미군들이 사용하던 글러브를 바셀린과 양초(Canddle)로 길들여서 써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새 글러브를 사는 날에는 선배들의 손에 의해 청계천 중고 스포츠용품점으로 다시 흘러 나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독자이거나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무슨 뜻인지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면 그 이튿날 잃어버린 글러브를 찾으러 청계천을 온통 뒤지고 다녀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어떻게 찾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모르게 눈에 안 뜨이는 곳에 이름이나 표시를 해둔다. 그러면 얼마 후에 글러브 이름과 모양을 말하면 찾을 수가 있게 된다. 이유는 장물이기 때문에 주인도 어쩔 수 없이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러브가 귀하던 시절 운동을 하던 필자가 칼 립켄 월드시리즈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글러브의 가격을 물어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지닌 글러브 가격이 하나에 사오십 만원 씩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글러브가 대개의 경우 한 개 이상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용하는 글러브가 제일 비싼 것이 350달러에서 최고 500달러 정도인 것에 비한다면 어린 선수들이 얼마나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인솔자의 말을 들어 보니 요즈음 한국의 사회적 풍토가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80년대 프로 야구 선수들도 엄두를 못 내던 장비들을 초중학교 선수들이 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프로선수들도 국내 기술로 만들어 지는 외국 브랜드의 제품 보다는 직접 원정 경기나 외국 전지훈련에 나가서나 구입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 선수들이 선호하는 제품은 미즈노, 사사키, 제트 등 대부분 일본 제품이다. 체격이나 사이즈가 한국 선수들에게 잘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을 잘 아는 약삭빠른 일본 야구 선수들이 광고 협찬으로 받은 장비나 글로브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전지훈련을 같이 치르는 한국 선수들에게 시중 가격보다 싸게 파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이러한 것들을 구입하는 이유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들은 대개가 최상품으로 꼽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한국 글러브들도 몇 십 만원을 호가 하는 제품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맞춤형 글러브가 바로 그것이다. 명필이 붓이 나빠 글을 못 쓰랴 라는 속담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붓은 좋은데 글을 잘 못쓰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선수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대목일 것이다.
# 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