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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학(鶴) 다리' 신경식

Washington DC

2010.09.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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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키가 커서 득(得)을 보는 경기는 농구이다. 그 외 다른 스포츠에서는 적당히 큰 선수가 대개 유리하게 마련이다. 야구는 키가 크다고 좋은 운동만은 아니다. 키가 커서 좋은 포지션은 투수와 외야수들이다. 반면에 내야수들은 적당한 키만 갖고 있으면 수비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내야수 가운데 키가 크면 유리한 포지션이 1루수이다. 왜냐하면 내야수들의 송구가 나쁠 경우 공을 잡아낼 수 있는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내야수가 볼을 원 바운드로 던지거나 높게 던질 경우 1루수가 키가 크면 쉽게 잡아낼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을 가장 잘 살린 1루수가 바로 OB 베어스에서 활약하던 신경식 선수이다.

그는 롯데 자이언트 3루수였던 김용희보다 2㎝가 작은 188㎝였지만 유난히 다리가 길었다. 그 긴 다리를 여자 체조 선수처럼 그라운드에 닿을 정도로 벌려 공을 잡아내기 때문에 학(鶴)다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 긴 다리 때문에 내야수들이 덕을 많이 보았다. 다리를 길게 뻗쳐서 공을 잡기 때문에 다른 1루수가 수비를 할 경우 주자(走者)가 세이프가 될 상황인데 간발의 차이로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리 찢기 수비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하면 우연한 기회에 다리가 미끌어지면서 공을 받았는데 아프지 않아서 그 뒤부터 계속해서 그런 자세로 공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방망이가 잘 안 맞는 날이면 일부로 더 그랬다. 그 덕분에 수비 에러가 가장 많은 유격수 유지훤이 제일 덕을 본 선수이다.

그 당시 신경식과 라이벌이었던 1루수는 롯데 자이언트에 김용철 선수가 있었는데 아이들끼리 모이면 누가 더 잘하네 하면서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게 어린이들의 즐거움이었다. OB 베어스를 좋아하는 아이는 신경식의 학다리 수비가 더 멋있다고 자랑을 하면 다른 아이는 김용철이 타격이 더 좋기 때문에 김용철이 더 잘한다고 서로 우기던 기억이 난다.

신경식은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올림픽 국가대표팀 김경문 감독의 후배가 된다. 이 두 사람은 1982년 같은 해 OB 베어스에 입단해 프로야구 원년 우승의 기쁨을 같이하는 선후배 사이다. 지금은 감독과 코치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처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면 순진한 소년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주자를 아웃시킨 다음에 투수에게 공을 건네 줄 때는 공을 꼭 유니폼에 닦거나 아니면 두 손으로 정성껏 닦아 주는 투수에 대한 배려(配慮)를 잊지 않는 선수였다. 아마 팀이 승리하자면 투수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끝까지 게임을 잘 이끌어 나가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정성껏 닦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진솔한 모습이 그가 83년 올스타 투표에서 89.9역대 최고 득표율로 베스트 10에 뽑히는 영광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선수는 운동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 생활이 끝나고 은퇴 후에도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기억 속에 두고두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 못지않게 스포츠맨십과 인성(人性)이 좋아야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시대에 신경식이 투수에게 나타냈던 따뜻한 행동은 우리의 마음도 따뜻하게 하는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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