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별명은 ‘악바리’이다. 나는 이 별명에 대해 좋은 면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면도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긍정적인 면은 운동선수라면 시합할 때는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지만 부상을 무릅쓰면서까지 경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Amateur)와의 차이인 것이다.
프로는 운동이 직업인 사람이다. 쉽게 말해 운동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하나의 분리된 개인 회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볼 때 선수 개인의 부상은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어려워지거나 부도로 인해 파산하는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 순간 멋진 플레이를 팬들에게 보여 주려 하다가 혹은 자신의 기록이나 승부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한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 그라운드에 다시 서서 좋은 플레이를 팬들에게 보여 주지 못한다면 요즈음 소위 말하는 반짝 뜨고 사라지는 스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정훈도 비슷한 실수로 인해 자신의 선수 생명을 단축시킨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1989년 방위소집을 마치고 스프링 캠프에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급하게 몸을 만들려고 개인연습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가 탈이 났다. 직선 타구를 받다가 허리가 삐끗했다. 그러면 일단 연습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고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는 것이 순서인데 오히려 오기를 부려 타격 연습을 무리할 정도로 더한 결과 그 이튿날 응급실로 실려 가는 신세가 되 버렸다. 척추인대가 손상되었던 것이다.
운동은커녕 누워서 안정을 취하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배팅 연습에 지압까지 받았으니 척추가 온전했겠는가 말이다. 한 달간 입원해서 용변을 받아내는 치명적인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면서 자신의 몸을 혹사 시켰다. 그 뒤로도 그는 계속 허슬(Hustle)플레이를 시도하다가 어깨를 다치면서 시즌을 접으면서 타율왕의 자리도 함께 팀 동료인 고원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고 연습 도중 후배 정민철에게 달리기 시범을 보이다가 발목 인대가 끊어지고, 깁스를 한 채로 스윙 연습을 하루에 수천 번씩 하다가 오른쪽 손목 인대마저 끊어지는 불행을 겪게 되면서 장효조를 뛰어 넘을 ‘미래의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악바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손에 다 쥐었다가 놓치게 된다.
물론 그 당시 한국프로야구 실정이나 한국 의료 수준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아까운 선수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선수생활을 일찌감치 마감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선수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프로선수 자신의 몸이 기업체나 마찬가지인데 기업 경영에 무리수를 둔 결과 회사 문을 일찍 닫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것이 선진야구와 고급 야구를 하는 미국과 일본에 비교되는 한국야구의 과거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를 교훈 삼아 제 2, 제 3의 이정훈이 안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