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타향 미국의 남가주에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Paul Cho라는 학생입니다. 현재 저는 남가주에 소재한 얼바인 가주 주립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세상에 선생님처럼 의술을 넘어선 인술을 펼침으로써 창조주의 자비를 전하기 위한 의사가 되기 위한 대망을 품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기거하시는 하늘 나라에는 선생님처럼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써 교민 사회를 지도하셨던 여러 독립 투사 선생님들이 계신 줄로 압니다. 애석하게도, 지구촌은 21세기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도 하늘에는 교신할 방법이 없지만 이렇게 펜을 들고 선생님께 마음을 전합니다.
남가주에서 3년 전 여름 의사들의 독립 투쟁기라는 독립 투쟁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고명하신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학교 인문학 도서관 동아시아학 전시관에서 선생님의 생애를 조명한 전기를 읽으며, 조국과 사해동포를 위해 의사로써 의미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삶을 통해 귀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한민족으로써,국제 무대에서 당당할 수 있는 있도록 자유와 평화가 숨쉬는 독립국, 대한민국을 건설의 밑거름이 되셨던 선생님의 희생에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의 전기에서 선생님의 기도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동포들과 함께 황무지 간도를 개간하시며 하나님께 독립될 조국 대한민국이 우수한 과학 기술에 근거한 탁월한 의학 실력을 발휘하여 조국의 동포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여러 이웃들을 섬기는 의학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리신 것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 기도를 올리신 지 100여년이 되어가는 오늘날 그 기도는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몯두 하늘에 상달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자국민 뿐만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여러 외국인들의 질병을 치유하며, 한국 국제 협력단을 통해 제 3 세계 개발 도상국에 의료 봉사단을 파견하여, 빈곤 가운데, 의료 시설이 열악하여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지인들을 치유하며 국위를 신장할 정도로 의학 기술이 발달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흐름 가운데, 여러 의료 선교사님들이 북국에서부터 남미의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빈곤한 환자들을 돌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며, 현지인들에게 아름다운 나라, 위대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모교인 Sevrance의과대학은 세계 최정상급 의료 교육 기관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이 되어, 미국 최고의 명문 의과 대학 Johns Hopkins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여러 의학 연구를 공동 실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며 우러러 보는 정보통신 기술의 최강국으로 성장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100여년 전 X-ray를 사용하여 힘겹게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시던 시절과 달리, 첨단 의학 장비로 환자의 병을 1세기 전에 비해 더욱더 단축된 시간에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현실이 선생님께서 꿈꾸고 기도하셨던 소원의 성취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영광스러운 오늘날의 과거에는 우리민족의 피와 눈물의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순국하신 지 17년 후인, 1938년부터 중일전쟁을 통해 본격적으로 간도를 침탈하기 시작한 일제는 하얼빈에 일본의 의학자 이시이 박사를 비롯한 여러 생화학계와 화학계, 생물학계의 거두들이 군정과 함께 731 방역 급수 부대라는 명칭 하에 생체 실험 수용소를 세우고 그 곳에서 조선의 독립 투사와 양민들을 악랄한 생체 실험을 통해 가혹하게 학살했습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 가운데, 선생님의 독립 정신을 승계하기 위한 여러 후진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국력이 약하여 우리는 다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의료계의 현실은 정말 참담했습니다. 일본 관료인들은 해방 후 본국으로 철수하며 의약품과 의료 장비, 병원 기자재들을 모두 본국으로 가지고 갔고, 소련이 점거한 북한에서는 의약품 공장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의 90%정도를 소련군들이 탈취했습니다. 그나마 나았던 것은 대한민국 실정인데요.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미군 군의관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우리의 의료보건 체계를 수립하는 데, 협조하며 여러 의약품을 지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우리 의료 보건 체계를 건립하기에는 상당히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도발로 인해 발발한 6.25 동란은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시켰고, 화마가 할퀴고 지나 간 한반도의 의료복지 체계는 실로 말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그 이후, 1960년대 경제가 점진적으로 성장하며, 의료 보건 분야를 담당하시는 여러 분들께서 의료보건 체계의 발전을 도모했지만 애석하게도우리 의료 보건 체계의 건립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의약품과 의료 기자재를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우리 힘으로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생산하기 위한 체계 구축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 가운데 무수히 많은 역경을 극복한 우리 민족은 신앙과 근면 성실한 삶을 통해 부단히 노력하여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동시에 미국과 구주 등지에서 선진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익히셨던 여러 의사 선생님들과 과학자들의 수고에 힘입어 우리는 1970년대부터 자체 의료 생산 체계를 건립하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의 우수한 의약품과 의료 기자재 뿐만 아니라 의술을 전수할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고, 이제는 지구촌의 어려운 국가들을 찾아다니며 빈곤과 질병에 지친 그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갗추게 된 것입니다. 다만 아직도 우리 의료계에 아직도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모순적인 면모가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여러 빈곤층의 환자가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동남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가난한 국가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우리 나라에 온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고된 노동으로 인해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경제 상황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매우 서러운 타향 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인권의 개념이 전무한 북한에서는 무수히 많은 동포가 빈곤 가운데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인해 하나님 곁으로 가고 있고, 일부 몰상식한 의사들과 생화학자, 화학자들은 반체제 인사를 상대로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될 잔악한 생체 실험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압력이 생존을 위협하니 북한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의사로써 지켜야 할 윤리와 의학과 과학의 발달 목적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망각한 채, 악마의 하수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김 필 순 선생님,
이런 비참한 오늘날의 상황을 내려다 봐주시며, 기도를 많이 부탁드립니다.
저는 비록 이런 비참한 상황이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 존재할지라도 희망을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간도의 동포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류의 역사 가운데 불변하는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저는 신앙과 노력, 피의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오늘날의 강대국 대한민국을 건설한 한민족이 우리 의료계가 직면한 그런 문제들을 인식하며, 해결점 찾기를 시도할 때, 반드시 그런 문제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해결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의료계의 의료인들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펼쳐 돕겠습니다. 아울러 지독한 가난 가운데 극한 굶주림과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찾아가 그들의 신음 소리가 나의 울음 소리가 되는 심정으로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 일련의 노력을 통해, 만일 통일이 앞당겨 진다면 저희 대한의 의료인들은 북한의 의료인들과 과학자들에게 의학과 과학은 사회와 대중의 복지 증진을 위해 존재한다는 목적을 따뜻한 사랑으로 가르쳐 주겠습니다.
저는 학생으로써,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술을 익히기 위해, 의학의 세계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실력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현재 이수하고 있는 물리화학과 분석화학의 실력을 쌓아, 훗날 의학을 공부하는 데, 단단한 바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의료계에 들어서서 수련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는 매일 매일 나에게 찾아오는 환자를 예수님으로 생각하며 성심 성의 껏 진료하겠습니다.
전문의가 된 이후에는 제 인생 가운데 계획한 목표인 서부 아프리카 가나 의대 설립과 평양에 예루살렘 의대 설립을 실현하고, 현지의 천재적인 의학도들을 교수함으로써 선생님께서 의학자로써 조국과 사해동포를 위해 수고하셨던 것처럼 후진양성에 앞장서겠습니다. 그런 모든 노력을 통해 의학자로써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하고 우리 조국 대한을 비롯한 모든 인류가 평화와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귀한 희생이 더욱더 각광 받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 저의 장문의 편지를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하늘나라에서 삼위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선생님과 여러 애국지사님들께 하나님의 큰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미국 남가주에서 Paul Cho 올림
김 필 순 (1880 ~ 1922) 개화기 한국 최초의 서양 의술을 익힌 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만주로 망명한 독립군의 주치의, 독립군의 군의관
1911년 신민회 사건을 계기로 만주로 망명하여, 김 경 당, 김 만 호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독립 투쟁과 조선 재건을 위해 투쟁하였다. 간도의 조선인들 뿐만 아니라 한족들과 만주족 몽골족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1922년 일제가 파견한 일본인 의사가 건넨 우유를 마시고 독살되심으로써 순국했다.
# 미주한인역사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