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에서 승리의 소식을 계속 전해 주고 있다. 이미 한국 대표팀은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낙점(落點)된 상태이다. 오늘은 대표팀 투수 코치를 맡고 있는 김시진 투수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이야기는 기아 투수인 양현종에게 빠른 슬라이더 던지는 법을 전수해주었고 대표팀 막내 김명성에게도 특별 과외를 해 준 사실이다. 모두가 팀으로 돌아가면 적으로 만나 배운 것을 써 먹을 수 있는데 아낌없이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존경스럽다.
김시진 감독은 현재 팀 살림이 어려운 만년 하위 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을 맡아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다른 감독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만약 김 감독이 아니었더라면 넥센 히어로즈는 벌써 공중분해가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많은 야구인이나 팬들도 이러한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 히어로즈가 지금까지 버텨온 배경에는 모든 선수들이 김시진 감독의 리더십과 이러한 인품에 감동되어, 연봉이 반 이상 삭감을 당하는 프로 선수로서는 굴욕적이고 열악한 조건에서도 히어로즈에 남아서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김 감독을 덕장(德將)이라고 말하며 그의 겸손함이 그의 ‘치명적 매력’이라고 그를 평한다.
김시진 감독은 야구 명문 대구상고에서 이만수와 배터리를 이루면서 화려하게 중앙 무대에 등장했다. 당시 최동원, 김용남과 함께 고교투수 트로이카로 활약하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또한 국가대표 에이스로 최동원과 함께 한국야구가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서는데 한몫을 하게 됐다.
김시진은 83년 경리단에서 제대하고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 당시 김시진의 제구력은 빙그레의 이상군이 나오기 전까지 타의 추종을 마다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선동렬이 나오기 전까지 ‘슬라이더의 달인’으로 통했었다. 고교, 대학, 프로에서 12년 넘게 함께 배터리를 이루었던 이만수 SK 수석 코치의 말이다. 그러면서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국야구 처음으로 100승 투수가 되는 영광을 맛보게 됐다. 아울러 지금도 깨지지 않는 20승 투수로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 최고의 투수 3인방으로 꼽히는 선수였다.
상종가를 달리던 그가 무리한 등판으로 어깨를 혹사하는 바람에 전성기를 오래 끌고 가지는 못했다. 그 당시 마구잡이식 등판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최동원과는 동갑내기로 두 사람간의 우정도 남다르다. 한때 서로가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는 굴욕적인 사건이 터지는데 바로 ‘선수회 설립’을 최동원과 앞장서다가 두 사람 모두 구단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유니폼을 맞바꿔 입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사건이 이후 롯데에서 3년간 선수 생활을 더 한 후에 태평양에서 지도자의 길을 건기 시작해서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팀을 4번 한국시리즈 우승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가 지도자로서 얼마나 훌륭한 길을 걸어 왔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제자들이었던 정민태, 정명원, 조웅천, 최창호 선수들이 찾아와 통곡을 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김시진 감독의 ‘치명적 매력’이다.
# 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