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돈께서 석류 6개를 박스에 넣어 보내 주셨다. 한국 배만한 크기에 껍질이 반질반질하고 방금 나무에서 딴 것 같이 물방울을 떨어뜨렸더니 조르르 흐른다.
동그란 공안에 검붉은 알갱이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연약한 생명의 아름다운 힘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가 생각났다.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하데스 왕에게 영문도 모른 체 납치돼 죽음의 땅으로 끌려간 그녀는 자신의 고고한 영혼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식음을 전폐했다.
산해진미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페르세포네를 꺾은 것은 한 알의 석류였다. 톡톡 터지는 빨간 알갱이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입에 넣은 그녀는 결국 지하세계의 음식에 조금이라도 입을 댄 사람은 그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신들의 법칙에 의해 하데스 왕의 아내가 되었다.
이토록 유혹적인 석류를 무자비하게 칼로 두 동강 내어 알맹이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알맹이가 터지면서 피처럼 붉은 과즙이 여기저기 얼룩을 남기는 것을 감상하면서 반쪽을 먹었다.
몇 년 전 친구가 선물로 준 네모진 레녹스 접시가 아래층 책상 밑 상자 속에 있는 상태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꺼내어 놓고 석류 2개와 오렌지 푸른 사과를 놓았더니 마티스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 시켰다.
내가 화가였다면 당장 스케치를 했을 것이다. 접시에 놓여 있는 석류와 사과를 보고 누군가 애써 씨를 뿌리고 키워 정성껏 거두어들인 열매들이 시들어서 쪼글쪼글 해져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것은 농사 지어 상품으로 내놓은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석류를 혼자 아득아득 씹어 먹을 수도 있었지만 석류를 가지고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풋배추도 있고 길다란 한국 고추도 있어 꺼내 놓고 무와 풋배추는 씻어서 소금에 절여 놓았다. 마늘과 생강을 다지고 파를 씻어 듬성듬성 썰었다. 석류를 반으로 잘라 알알이 해체 시켰다.
벌집 같은 얇은 하얀 줄기에 촘촘히 박혀 있는 석류 알을 떼는 재미도 솔솔 했다. 한쪽 손으로 석류를 잡고 돈을 세듯이 한 알 한 알 떼어내다 두 알을 한꺼번에 떼어 내려면 한 알이 터져 빨간 석류물이 얼굴로 튀긴다.
그것도 입가에 묻으면 날름 혀로 빨아 먹는 맛도 재미였다. 절여 놓은 풋배추와 무, 오이, 당근, 사과, 배를 썩어 병에 담고 물을 부어 간을 맞추고 석류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조그마한 병에 있는 요구르트 3개를 넣었다.
하룻밤 지나고 보니 국물 색깔이 핑크색 자몽 같았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니 시원한 동치미 맛보다 담백했다. 톡 쏘는 달큼한 맛을 화채 그릇에 담으니 색의 조화도 환상이었다. 그릇에 나누어 담아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하나씩 주면서 한국 특유의 석류 물김치라고 했다.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로 만든 건강식이고 다이어트 식품이며 유산균이 들어있어 소화도 잘되고 배변에도 효과가 있는 만능 식품이다. 우리는 매일 먹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떠들었다. 샌드위치 먹으면서 드링크 대신으로 이것과 같이 먹어보고 어떤 맛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요즈음 한국 음식 알리기에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을 하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부터 한국 음식의 맛과 종류를 알리면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삶의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