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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서 부는 바람 서에서 부는 바람] 박정희 대통령 동상의 의미

Washington DC

2011.03.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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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한동대 교수
지난 3월 23일자 한국 중앙지 C일보 칼럼 ‘아침논단’에 실린 ‘용기 있는 변절과 비겁한 지조’라는 제목의 글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박지향 교수의 글이다. 1970년대 국내에서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박 교수는 군사독재로 인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혐오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차라리 암살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가 외국유학을 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해보자. “국내에서 듣던 바와는 달리 모든 객관적 지표는 대한민국이 부(富)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성공 케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박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비겁한 지조’보다는 ‘용기 있는 변절’을 택하게 된 자신의 입장을 박대통령이 주도한 한국의 경제성장 업적을 통해 설명했다. 박 교수의 ‘용기있는 변절’은 나의 입장을 잘 반영했다고 본다.

1965년 봄 나는 내가 근무했던 일간지에 2달간의 기획연제기사를 쓰다 도중하차한 경험이 있다. 기사의 제목은 ‘보릿고개’였으며 경남 전남 농촌지역을 두루 다니며 춘궁기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비참한 현상을 현장 취재하는 임무였다. 연재가 3주쯤 진행되었을 때 사회부장으로부터 취재를 취소하고 귀사 하라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내용인 즉 ‘남산’(중앙정보부)에서 호출이 왔다는 것이었다. 사회부장과 함께 남산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우리는 수사관의 호출설명에 기절초풍을 했다.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참상을 신문에 연재하면 북한에게 좋은 ‘선전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이적죄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연재는 당장 취소돼야 한다는 것. 나는 그때 박지향 교수가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똑같은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 뒤 1960년대 후반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주도 경제발전계획과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쓰기로 결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내가 박대통령에 대해 가졌던 혐오감을 다른 방향으로 점점 바꾸기 시작했다.

금년으로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2년이 되었다. 이제 그에 대한 형평성 있는 역사적 평가를 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의 군사독재로 민주주의는 퇴보됐으며 많은 독재항거민주투사들이 고난을 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경제발전계획이 가져다 준 보릿고개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더 나가 세계 8번째 경제 강국으로의 밑거름을 그가 이룬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용기 있는 변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2000년 한국으로 돌아가 11년째 살고 있으면서 방학에는 미국 집에서 지낸다. 미국으로 유학올 때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은 다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만일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지금 한국의 경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경북 구미에 있는 그의 생가 앞뜰에 세워진다. 새마을 운동 중앙회 구미시 지회 등 구미지역 25개 사회단체들이 마련하는 동상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부부는 2년 전 이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나서 대구사범을 다닐 때까지 살던 집이다. 그가 얼마나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는지를 잘 알려주는 생가다. 입구도로며 주차장이며 너무 부실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그가 이룩한 한국의 경제발전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지금쯤은 박대통령의 동상뿐 아니라 그의 기념관이나 도서관이 세워질 만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김대중 대통령 재직시 국고와 국민헌금으로 세우기로 했던 박정희기념관은 그 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전남 무안 전남도청앞 김대중광장에 군사독재항거 민주주의 회복투쟁의 전사인 김대중 대통령 동상이 지난해에 세워졌다. 박정희의 동상과 김대중의 동상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주는 역사적인 의미가 각각 다를 줄 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경제발전의 터전을 이룩한 상징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회복투쟁의 상징으로 표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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