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입맛 당기는 것이 무엇일까. 녹두전을 하려고 사둔 녹두가 몇 달이 지났다. 며칠을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일이라 몹시 번거로워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녹두전이 생각날 때는 미리 껍질을 벗긴 것으로 대신 하기로 하였다. 통 녹두를 사용할 길을 궁리하다가 녹두 나물을 길러보기로 했다.
껍질째 녹두를 물에 담그고 이틀쯤 지나면 조그만 씨눈이 튼다. 따로 콩나물시루가 없으니 구멍이 난 화분으로 대신하고 그 곳에다 눈이 난 녹두를 넣고 생각이 날 때마다 자주 물을 준다.
어릴 적 나의 할머님은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도 일어나시기만 하면 ‘주르륵 주르륵’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곤 하셨는데, 나는 일단 잠자리에 들면 아침이 돼야 다시 시작할 뿐이다. 쉬엄쉬엄 물을 주면서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첫 수확을 할 수 있다. 연하고 싱싱해서 시장에서 산 숙주나물과는 비교가 안 된다.
화분에 담겨 있으니 미리 많이 뽑아서 냉장고에 넣을 필요도 없이 필요하면 그 때 그 때 뽑아서 쓰면 된다. 매밀 국수와 숙주나물을 각각 삶아서 찬물에 헹구고 식초와 간장을 넣어서 간을 하면 짧은 시간에 훌륭한 요리가 된다. 오이가 있으면 채로 썰어서 조금 넣는다. 메밀에는 단백질이 많아서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다이어트 식단이 된다.
서양 사람들은 삶지 않고 주로 생나물로 샐러드 소스를 부어 먹는데 그 맛 또한 상큼하고 비타민 손실이 적어서 아주 훌륭한 건강식이다. 숙주나물 화분에 물을 준 후에는 물이 거의 다 빠질 때까지 싱크대 안에다 두곤 한다. 간혹 설거지를 도와주는 남편이 “영양가도 별로 없는 나물을 이렇게 귀찮게 키울 필요가 있는가?” 라며 화분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에 지청구를 한다.
실제로 이 나물을 기르고부터는 내가 훨씬 더 즐기고 맛이 있어 두 달을 연속으로 했지만 남편은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영양가를 운운하는 바람에 계속 이 나물을 키우려면 확실한 동기가 필요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정보를 접하는 순간 '와∼놀랍다'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나도 채소이니깐 섬유질 정도는 함유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은 했으나 비타민이 이렇게 풍부하며 또 엄청난 해독작용을 하는 식품일 줄은 몰랐다. 상상 밖이었다.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숙주나물에 함유된 B6 비타민은 가지의 10배, 우유의 24배라고 한다. B6 비타민은 외부로부터의 오염물질과 감염을 차단하면서 해독하는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함유량이 높을수록 독소배출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
요즈음처럼 식품에 포함된 중금속 우려가 더해가는 때에 독성을 제거해 주는 음식이야말로 보약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녹두로 먹을 때보다 나물로 길러서 먹으면 비타민 비타민 A가 2배, B는 30배 그리고 C는 40배 이상이 된다. 때문에 나물로 먹는 것이 영양적으로는 훨씬 더 좋다고 한다.
콩을 키우면 콩나물이 되는데 녹두를 발아시키면 숙주나물이라 불렀는데 그 유래가 또한 흥미롭다. 속설에 의하면 숙주나물의 '숙주'는 신숙주에서 온 것인데, 그는 사육신을 등지고 세조의 공신이 되었다 죄 없는 남이 장군을 죽이고 공신의 호를 받은 사람인즉,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서 이른바 성을 제거 당한 것이라 한다. 숙주나물을 무쳐 놓고 조금만 지나면 곧 쉬어 버리는데 이를 신숙주의 변절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문헌에는 좌의정 신숙주가 기근이 들어 배고파 하는 백성에게 빨리 자라고 쉽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녹두열매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콩나물처럼 키워서 먹도록 권장 하였기에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였다.
그 이름의 유래를 좋은 쪽으로 믿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것으로 택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나한테 영양가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후 남편은 숙주나물 화분을 들어 올리는 일에 불평이 사라졌다. 이젠 씨눈을 틔우며 자주 물을 주는 일이 귀찮아 질 때까지 숙주나물은 계속 잘 자랄 것이다.
# 삶의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