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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과외 안하면 나쁜 일이라도 생기나

Los Angeles

2011.04.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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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여기 생활은 절간 같아요." 약 10년 전 LA 교외에 살 때 아들은 어쩌다 한번씩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들은 당시 현재 조카 햄달새보다 한 살 많은 6학년이었다. 어렸던 아들이 당시 미국 생활을 절간에 비유했던 것은 하루하루가 무척 따분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미국 생활 초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잠시 출국 경기도의 한 절에서 정신 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정신 수련의 일환으로 아들은 그때 1만 배를 해서 잠시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힘들었던 1만 배를 빼고는 절간 생활은 심심 그 자체였다고 아들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루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아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반면 학교 반 과외 반으로 하루 해가 저무는 햄달새의 미국 생활은 서울을 LA에 옮겨다 놓은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햄달새 엄마는 서울에 비하면 LA 생활이 식은 죽 먹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허덕이지 않으면 일정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10여 년 전 우리 딸과 아들이 생 홀아비였던 내 밑에서 자랄 때 기상 시간은 오전 7시쯤이었다. 잠드는 시간은 대체로 밤 11시 전후였다. 기상과 취침 시간은 지금의 햄달새와 비슷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 생활은 천지차이로 달랐다. 당시 딸과 아들은 집에서 100야드쯤 떨어진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했다. 점심은 가끔은 내가 싸주기도 했지만 보통 학교에서 사먹었다. 그리고선 오후 2시 30분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퇴근하는 오후 8시경까지 제멋대로 노는 거였다.

대략 6시간 가까이 되는 자유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우리 애들이 뭘 하면서 보내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숙제도 하고 심심하면 동네 공원으로 놀러도 가고 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아이들과 나의 거주지는 전형적인 중산층 베드타운이었다. 반듯한 집과 깨끗한 거리 널찍널찍하고 정돈된 공원 말고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자주 보기도 어려운 동네였다.

아들 말로는 음료수라도 한 병 사서 마시려면 자전거를 타고 왕복 30분은 달려야 한다는 거였다. 더구나 나중에 학교에서 수 차례 선생님들로부터 전화가 와서 파악한 사실이었지만 아들은 일체 숙제를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나한테 크게 여러 차례 혼나고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숙제를 하지 않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오후에서 저녁까지 시간이 얼마나 무료했겠는가.

아들보다 2살 위인 딸은 그나마 친구가 많은 편이어서 덜 심심했던 것 같다. 가끔씩 친구 부모들의 차를 얻어 타고 친구 집에도 놀러 갔다 오겠노라고 회사로 전화 연락이 오곤 했다.

아들이 심심해 죽겠다고 하지만 학과목 과외 같은 걸 시켜줄 생각은 아예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대신 운동을 미치게 좋아하는 아이라 농구와 테니스를 시키려 애를 써봤는데 태워다 주고 태워 올 사람을 찾지 못해 그도 쉽지 않았다. 요행히 1주일에 한번은 집 앞의 테니스 코트에서 또 한번은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레슨은 부정기적으로 아들을 태워주곤 했던 동네 형쯤 되는 미국 아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쉬어야 했다.

과거에 이랬던 내가 조카를 데리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과외 장소로 실어다 주고 오는 일을 반복하게 됐으니 참 사람팔자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과외를 하지 않으면 아이의 장래에 무슨 큰 나쁜 일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왜 이렇게 죽자고 과외를 시켜야 하는지 매일 한달 두 달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은근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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