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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엄격한 50대 '수녀 담임 선생', 햄달새는 '천의 얼굴' 로 맞대응

햄달새가 5학년이 되면서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선생님은 수녀였다. 나이를 물어볼 기회도 물어 볼 수도 없었지만 50대 후반쯤으로 짐작됐다. 수녀 선생님은 내가 햄달새를 데리러 갈 때마다 햄달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말을 너무 잘 듣고 스마트하다"는 류의 얘기였다. "야 너 선생님을 완전히 속이고 있구나. 너에 대한 진실을 다 까발리면 선생님이 아마도 까무라치시겠다." 나는 햄달새의 잘못된 버릇이나 습관을 고쳐볼 겸 은근히 겁주기를 시작했다. 방은 귀신이 다녀간 것처럼 언제나 지저분하게 쓰고 틈만 나면 방귀를 날리고 제 맘에 안들면 삼촌을 발로 걷어차고…. "삼촌 그럼 정말 내 손에 죽는다." 햄달새는 속으로 뜨금했는지 제법 격렬하게 반응했다. "헤헤 우리 선생님은 내가 집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전혀 몰라. 반에서는 애들이 선생님 말을 너무 잘 안들어. 그렇지만 선생님도 수녀님이라 그런지 지나치게 엄격하셔." 햄달새는 자기가 순진한 척 하는데 선생님은 잘도 속으신다고 설명했다. 한껏 '내숭'을 떠는데 전혀 그런 짐작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 말마따나 햄달새는 '천의 얼굴'을 자랑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들 앞에서는 그만한 요조숙녀도 없다. 고분고분하고 차분하고 눈치빠르게 행동하는 게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친구들과 놀 때 특히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낼 땐 천하의 말괄량이로 변신했다. "너에 대한 비밀을 삼촌이 다 알고 있지. 너 나중에 결혼할 때 삼촌이 진실을 다 얘기하면 너 시집 못갈 수도 있다." "흥~ 어디 그러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두나." 세상사 머리 돌아가는 게 거의 여대생 수준인 햄달새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면서도 그냥 맞장구도 쳐줄 겸 나에게 이런 식으로 응대했다. 학교에서 더 없는 모범생으로 취급받는 햄달새는 5학년이 되면서 미국 생활에 가속도가 붙는듯 했다. 집에서도 영어로 말하려는 때가 많아졌고 "삼촌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면서 그런 것도 몰라"하는 식으로 나를 힐난하며 제 나름 미국 사회에도 눈을 떠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긴장이 풀어지는지 서울에서 습관이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거의 새벽녘까지 깨어있는 게 대표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가 주말도 아닌 평일에 새벽 2~3시에 잔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차례 혼도 내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밤 늦게까지 과외에 시달려 늦게 잤다지만 미국에서는 그럴 일도 없는데 야행성 동물로 변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 집 쪽 그러니까 햄달새의 외가에 야행성 내력이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제멋대로인 나쁜 습관을 지적해도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한층 얄미운 것은 삼촌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속된말로 "배째라"식으로 나오는 점이었다. 미국 법이 금하지 않는다고 해도 4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여자 외조카를 삼촌이 체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빠 걔는 주기적으로 군기를 잡아줘야 해." 햄달새 엄마 말이 실감나는 경우가 5학년 들어 부쩍 잦아졌다. *김창엽 객원기자는 미국에서 아내없이 홀로 두 자녀와 외조카딸 등을 8년 여에 걸쳐 키웠다. 삼신할머니의 착오로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엄빠'는 아빠에 더해 엄마 노릇까지 겸한다는 의미에서 주변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2011.09.27. 17:16

[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한국 친구한테 전화해서 뭐 해?"

햄달새는 미국에 와 한 학기를 거의 다 보내고 여름방학이 코 앞인데도 일체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서울과 수시로 시내 전화처럼 통화할 수 있는 한국 전화기를 집에 두고 있었지만 좀체 전화기를 붙드는 일이 없었다. "친구한테 전화 좀 해라. 친구들 보고 싶지 않니." "아니 안 보고 싶어. 전화해서 뭐 해?" 햄달새는 자기가 언제 서울에 친구가 있었냐는듯 내가 강권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제 엄마 아빠와 통화 또한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야 엄마 전화 받아 얼른 엄마 바쁜 사람이잖아." "됐다니까 삼촌 숙제하느라고 바빠서 못 받는다고 해." 미국 땅을 밟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환경에 남다른 적응력을 과시했던 햄달새는 한 학기를 거의 보낼 즈음에는 적어도 90%쯤은 미국 문화에 동화된 것 같았다. 어릴수록 이질적인 문화에 잘 적응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햄달새의 적응 속도는 유난히 빠른 것 같았다. "네 딸 완전히 '달삼쓰뱉'이구나. 그렇게 매몰차게 서울 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냐." "오빠 걔가 좀 자기중심적이야. 자기 편한대로 하는 경향이 있지." 햄달새가 서울의 집 생각 친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자 동생은 햄달새가 원래 그런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매제 즉 햄달새 아빠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뛰어난 편"이라고 거들었다. 햄달새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질이 농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달삼쓰뱉'은 무릇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더구나 어린 나이에 외삼촌하고 타국 살이를 하다보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라도 자기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거꾸로 햄달새의 서울 생활이 어린 아이로서 감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서울에 비해 미국에서 생활이 훨씬 덜 힘이 들 수 있다는 얘기이다. 햄달새는 서울에서 과외와 숙제에 치여 밤 12시 이전에 자본 적이 드물다고 말했다. 아침에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사립학교까지 가느라 7시에는 잠에서 깨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미국에 오기 직전인 3학년을 거의 마칠 때까지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서울 생활을 설명하면서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하는 햄달새한테서 나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봤다. 서울에서 어린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상에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동생의 의견은 좀 달랐다. "오빠 걔가 좀 게으르고 딴짓하고 그런 데가 있잖아. 학교 다녀와서 부지런히 제 할 일 끝내면 훨씬 일찍 잘 수 있었다고." 이론적으로 따지면 동생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2년 3년을 그렇게 빡빡한 일정에 맞춰 살기는 어른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이 충분히 쉬어야 활력이 생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다. 학교 다녀와서 가방 던져 놓기 무섭게 과외 학원으로 뛰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끝내자 마자 과외 선생님을 받아야 하는 일이 어디 정상이겠는가. 햄달새가 극구 서울의 친구나 식구들과 전화 통화를 피하려 했던 것은 서울과 통화가 아물어가는 마음의 상처를 덫내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해석했다. 하지만 세상사는 항상 작용과 반작용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법이다. 서울 생활을 넌더리를 내는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반작용으로 햄달새가 미국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11.06.02. 16:29

[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자녀 성공 스펙 쌓기와 성형하기

서울에서 살 때 직장 동료며 학교 친구들이 아이들 과외에 엄청난 돈을 지출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이니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대에 입학하지 않으면 자식 농사 망친 것처럼 얘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만은 꼭 적어도 한번씩 이런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오로지 명문대 진학만을 위해 쌍심지 켜고 하는 과외는 탐욕이다. 고향친구인 A와 B 두 사람이 있다. 같이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고 비슷한 나이에 결혼도 해서 잦은 내왕을 하고 A와 B의 가족들까지도 서로 친구가 됐다. 한데 A는 직장이 시원찮아 돈을 제대로 못 벌고 B는 일이 잘 풀려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살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A의 자녀들이 B의 자녀들보다 대체로 인성도 머리도 좋은데 부모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B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B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흐흐흐 A야 네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 보다 여러모로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과외로 우리 애들을 잡아 명문대학만 보내면 우리 사회에서 네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따라 잡기는 쉽지 않을 거야 영영.'" 나한테 이런 면박성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체로 B같은 인물이거나 혹은 B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한데 이런 나의 주장을 접한 사람들 가운데 몇쯤은 화를 낼 법도 한데 한번도 반박다운 반박이나 대꾸를 듣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B같은 부류들은 한결같이 영리하고 자신이 왜 아이들을 과외로 내모는지를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아는 부류들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서울 공화국 같은 과외 풍토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몇몇 아시아 국가 출신들에겐 얘기가 좀 다르다. 최근 미국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중국계 여성 에이미 추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일대 교수인 추아씨는 '호랑이 엄마' 교육 방식으로 자녀들을 '스스로 생각하기에' 성공적으로 키워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추아씨는 최근 발간된 저서에서 자녀를 쥐어 패서라도 일류 명문대에 진학시키려는 의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자녀들이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숨막힐 듯 빡빡한 과외 일정으로 내몰았다. 추아씨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그렇게 교육시켰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끝 간데 없는 탐욕의 다른 표현방식일 뿐이다. 최소 두 가지 점에서 그녀는 옳지 못했다. 하나는 잔인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정한 경쟁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돈과 명예로 상징되는 사회적 출세를 위해 설령 그것이 내 자식이라도 과도하게 육체와 정신을 지배했다면 잔악한 것이다. 또 상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아니라 남보다 월등히 많은 자원을 투입해 예를 들어 경쟁 상대인 다른 학생들을 제쳤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거창하게 본다면 적성대로 능력대로 풀어야 할 사회적 인적 자원 배분 문제를 왜곡하는 행위이다. 자녀의 성공 스펙 쌓기는 자칫하면 성형 미인 만들기가 될 수 있다. 성형을 하면 얼굴이나 몸이 예뻐질 수 있지만 고유한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사라질 수 있다. 더구나 성형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다 제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이 있기 마련이다. 원래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불편한 마음을 유발할 수 있다. 햄달새가 미국에서 하는 과외가 서울에 비해 양적으로 훨씬 적다는 동생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동생의 속마음이 성형 미인을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떨쳐낼 수가 없었다.

2011.04.28. 15:02

[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과외 안하면 나쁜 일이라도 생기나

"아버지 여기 생활은 절간 같아요." 약 10년 전 LA 교외에 살 때 아들은 어쩌다 한번씩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들은 당시 현재 조카 햄달새보다 한 살 많은 6학년이었다. 어렸던 아들이 당시 미국 생활을 절간에 비유했던 것은 하루하루가 무척 따분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미국 생활 초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잠시 출국 경기도의 한 절에서 정신 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정신 수련의 일환으로 아들은 그때 1만 배를 해서 잠시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힘들었던 1만 배를 빼고는 절간 생활은 심심 그 자체였다고 아들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루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아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반면 학교 반 과외 반으로 하루 해가 저무는 햄달새의 미국 생활은 서울을 LA에 옮겨다 놓은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햄달새 엄마는 서울에 비하면 LA 생활이 식은 죽 먹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허덕이지 않으면 일정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10여 년 전 우리 딸과 아들이 생 홀아비였던 내 밑에서 자랄 때 기상 시간은 오전 7시쯤이었다. 잠드는 시간은 대체로 밤 11시 전후였다. 기상과 취침 시간은 지금의 햄달새와 비슷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 생활은 천지차이로 달랐다. 당시 딸과 아들은 집에서 100야드쯤 떨어진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했다. 점심은 가끔은 내가 싸주기도 했지만 보통 학교에서 사먹었다. 그리고선 오후 2시 30분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퇴근하는 오후 8시경까지 제멋대로 노는 거였다. 대략 6시간 가까이 되는 자유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우리 애들이 뭘 하면서 보내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숙제도 하고 심심하면 동네 공원으로 놀러도 가고 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아이들과 나의 거주지는 전형적인 중산층 베드타운이었다. 반듯한 집과 깨끗한 거리 널찍널찍하고 정돈된 공원 말고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자주 보기도 어려운 동네였다. 아들 말로는 음료수라도 한 병 사서 마시려면 자전거를 타고 왕복 30분은 달려야 한다는 거였다. 더구나 나중에 학교에서 수 차례 선생님들로부터 전화가 와서 파악한 사실이었지만 아들은 일체 숙제를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나한테 크게 여러 차례 혼나고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숙제를 하지 않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오후에서 저녁까지 시간이 얼마나 무료했겠는가. 아들보다 2살 위인 딸은 그나마 친구가 많은 편이어서 덜 심심했던 것 같다. 가끔씩 친구 부모들의 차를 얻어 타고 친구 집에도 놀러 갔다 오겠노라고 회사로 전화 연락이 오곤 했다. 아들이 심심해 죽겠다고 하지만 학과목 과외 같은 걸 시켜줄 생각은 아예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대신 운동을 미치게 좋아하는 아이라 농구와 테니스를 시키려 애를 써봤는데 태워다 주고 태워 올 사람을 찾지 못해 그도 쉽지 않았다. 요행히 1주일에 한번은 집 앞의 테니스 코트에서 또 한번은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레슨은 부정기적으로 아들을 태워주곤 했던 동네 형쯤 되는 미국 아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쉬어야 했다. 과거에 이랬던 내가 조카를 데리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과외 장소로 실어다 주고 오는 일을 반복하게 됐으니 참 사람팔자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과외를 하지 않으면 아이의 장래에 무슨 큰 나쁜 일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왜 이렇게 죽자고 과외를 시켜야 하는지 매일 한달 두 달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은근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2011.04.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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