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달새는 미국에 와 한 학기를 거의 다 보내고 여름방학이 코 앞인데도 일체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서울과 수시로 시내 전화처럼 통화할 수 있는 한국 전화기를 집에 두고 있었지만 좀체 전화기를 붙드는 일이 없었다.
"친구한테 전화 좀 해라. 친구들 보고 싶지 않니." "아니 안 보고 싶어. 전화해서 뭐 해?"
햄달새는 자기가 언제 서울에 친구가 있었냐는듯 내가 강권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제 엄마 아빠와 통화 또한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야 엄마 전화 받아 얼른 엄마 바쁜 사람이잖아." "됐다니까 삼촌 숙제하느라고 바빠서 못 받는다고 해."
미국 땅을 밟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환경에 남다른 적응력을 과시했던 햄달새는 한 학기를 거의 보낼 즈음에는 적어도 90%쯤은 미국 문화에 동화된 것 같았다. 어릴수록 이질적인 문화에 잘 적응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햄달새의 적응 속도는 유난히 빠른 것 같았다.
"네 딸 완전히 '달삼쓰뱉'이구나. 그렇게 매몰차게 서울 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냐." "오빠 걔가 좀 자기중심적이야. 자기 편한대로 하는 경향이 있지."
햄달새가 서울의 집 생각 친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자 동생은 햄달새가 원래 그런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매제 즉 햄달새 아빠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뛰어난 편"이라고 거들었다.
햄달새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질이 농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달삼쓰뱉'은 무릇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더구나 어린 나이에 외삼촌하고 타국 살이를 하다보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라도 자기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거꾸로 햄달새의 서울 생활이 어린 아이로서 감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서울에 비해 미국에서 생활이 훨씬 덜 힘이 들 수 있다는 얘기이다. 햄달새는 서울에서 과외와 숙제에 치여 밤 12시 이전에 자본 적이 드물다고 말했다. 아침에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사립학교까지 가느라 7시에는 잠에서 깨어야 했다. 이런 생활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미국에 오기 직전인 3학년을 거의 마칠 때까지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서울 생활을 설명하면서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하는 햄달새한테서 나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봤다. 서울에서 어린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상에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동생의 의견은 좀 달랐다. "오빠 걔가 좀 게으르고 딴짓하고 그런 데가 있잖아. 학교 다녀와서 부지런히 제 할 일 끝내면 훨씬 일찍 잘 수 있었다고." 이론적으로 따지면 동생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2년 3년을 그렇게 빡빡한 일정에 맞춰 살기는 어른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이 충분히 쉬어야 활력이 생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다. 학교 다녀와서 가방 던져 놓기 무섭게 과외 학원으로 뛰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끝내자 마자 과외 선생님을 받아야 하는 일이 어디 정상이겠는가.
햄달새가 극구 서울의 친구나 식구들과 전화 통화를 피하려 했던 것은 서울과 통화가 아물어가는 마음의 상처를 덫내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해석했다. 하지만 세상사는 항상 작용과 반작용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법이다. 서울 생활을 넌더리를 내는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반작용으로 햄달새가 미국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