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강산을 빼앗기고 서러움에 쓰린 가슴안고 36년 동안 한 맺힌 세월을 보냈는데, 주권과 자유를 다시 얻어 국권을 세워갈 수 있었으니 그 감격과 기쁨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절기를 한시간, 또는 두시간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안타깝다.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을 바쳐가며 몸으로 뛰었던 독립지사들을 기리는 그런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젊음을 아낌없이 바친 그런 투사들이 많이 있음에도 그들의 정신을 배우려 하거나 민족사관에 이식하고자 하는 그런 자세가 없다.
일제 강점 역사의 변혁기에 선비적 기질로 사회나 정치적 가치관을 일관되게 지켜가며 산 인물들이 많다. 그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또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험란한 역사적 과업을 묵묵히 수종들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탐욕 때문에 전쟁이나 싸움을 일으켰던 침략자들, 또는 독재자들이 배설한 사상적 오물들을 정화하는 일에 불같은 신념과 지조를 바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대인의 길을 걸었던 두 인물이 있다. 첫째는 장준하다. 장준하는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서 일본신학교 유학시 결혼하자마자 학도병으로 끌려가 만주에서 일본군소속으로 훈련받게 되면서, 역사의 부름에 수종드는 고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일본군 탈출이 중심내용인 '돌베개' 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일본군 강제 입대 전부터 일본군에서 탈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돌베개라는 말은 일종의 암호로서, 편지에 '돌베개' 라는 말이 쓰여져 있으면 탈출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뜻에서 그 말을 쓴 것이다. 그것을 나중에 책 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결국, 몇몇 동지들과 탈출에 성공하여 다른 일본군 부대에서 먼저 탈출 한 고 김준엽(전 고려대학교 총장) 학도병과 합류하여 중국 대륙 6천리를 걸어서 중경의 임시정부 요원들에 합류한 후 독립을 위한 광복군 장교로 활동하였다. 조국을 빼앗겨 갈 곳이 없어 광활한 이국 땅 중경에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있던 정치지도자들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되어있는 '돌베개' 는 순수하고 무고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했는가를 잘 서술한 역사적 책이라 할 수 있다.
해방후 김구 주석의 비서로 있다가, 사상계를 발행하여 정치, 역사, 민족주의, 윤리사상을 발전시켰고, 사상계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길' 이라는 소책자를 써서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유신독재 시대 때는 강력한 민주화 투쟁의 불을 붙여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으로 등산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던
강골기질의 선비, 또는 지사의 모습을 한 인물이다. 젊은 청년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웠고, 해방 후 사상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각 분야의 인재들을 배출하였으며, 장년이 되어서는 일제에 충성하였던 독재자와 싸워 민주투사로서의 삶을 마치게 되었다.
그의 삶은 한국의 정치와 역사가 바른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기여한 면이 있다 말할수 있다. 부정이나 부패는 말 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화에는 조금의 타협도 없을 만큼 정직하고, 순수하며, 진실하되, 강도 높은 선비기질로 그 뜻을 세워갔다는 일에서 참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기념 의식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선비들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알리는 광복절이 되었으면 한다.
# 장준하 선생 _유신 시대 타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