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영에서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는 두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윤이상추모국제음악제와 윤이상 음악당 건립이며 다른 하나는 ‘통영의 딸’ 구출운동이다. 국제음악제와 음악당은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인 윤이상의 업적으로 기리는 행사다. 윤이상은 김일성 정권에 충성하면서 독일 유학생들을 북한으로 보내 친북활동을 권유·강요했던 장본인이기도 한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은 윤이상의 권유로 북한으로 건너간 독일유학생 오길남(69)박사의 가족 가운데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오 박사의 부인 신숙자(69)씨와 두 딸 혜원(35)·규원(33)양을 북한으로부터 구출하자는 사회적인 캠페인이다. 그런데 왜 통영에서인가? 윤이상과 신숙자 모두 고향을 통영에 두고 있는 ‘통영의 아들과 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인연은 독일에서 북한으로 이주했던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독 간호사였던 신씨는 유학생 오씨를 만나 결혼, 두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이 때 북한을 드나들면서 김일성 정권과 가까이 지냈던 윤이상이 오씨에게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제안, 신씨는 남편을 따라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북한에서 오씨는 대학교수가 아니고 독일유학생 포섭을 위한 간첩교육을 받았다. 오씨가 임무 수행을 위해 독일로 돌아가게 될 무렵, 신씨는 남편에게 망명할 것을 권유했다. 오씨는 덴마크 공항에서 탈출하여 한국으로 왔다.
남편의 북한지령 ‘배반’으로 신씨와 딸들은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지난 25년간 강제노동을 하다가 풀려나 몇 년 전 평양 모처의 통제구역으로 강제 이감된 사실이 탈북자들로부터 알려지면서 통영 시민들이 중심이 돼 구명운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돼 지난 9월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수백 명이 신씨 모녀 석방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 종교단체, 인권단체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급기야 한국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지구촌으로 번져 국제적인 캠페인이 됐다.
지난 14일 남편 오길남씨는 미국 의회를 찾았다. 의회에서 개막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8차 총회에서 증언을 했다. 미국·일본·캐나다·카메룬·폴란드 등 6개국에서 참석했던 10여명의 의원들은 오씨의 증언을 듣고 ‘통영의 딸’ 석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씨는 국무부 인권담당자들과 뉴욕 유엔본부 반기문 사무총장 등을 방문해 16만여 명이 참여한 온·오프라인 서명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통영의 아들’로 ‘통영의 딸’ 신씨와 딸들을 북한에 억류하도록 했던 장본인으로 김일성에게 충성한 윤이상과 그의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윤이상은 1995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명성, 그리고 부인(84)과 딸(61)은 북한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남한에서 조차 독립유공자 이상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북한은 평양시내 한복판에 ‘윤이상 박물관’을 지었고 그 앞에 윤씨의 흉상을 동상을 세웠다. 또한 음악제를 매년 열어 그의 업적을 찬양할뿐 아니라 독일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부인과 딸은 평양에는 있는 ‘김일성 주석님이 내주신 집’을 안방 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있다.
그러면 남한에서의 대우는 어떠한가? 윤씨 가족은 통영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고급별장식 주택을 짓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드나들고 있다. 최근에는 통영시 주최로 윤씨의 추모음악제가 열렸다. 매년 13억 원의 통영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다. 이 뿐인가?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는 예산 480억 원을 들여 ‘윤이상 음악당’을 건립 중이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과 윤이상이 저지른 죄가를 비교해 볼 때 한국에는 인권·평화·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보수세력은 물론 보수정권도 없다는 확신이 드니 마음이 슬프다.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정치를 넘어선 인도적 문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통영의 딸’이 곧 자유의 품 안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빠를 재회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통영의 딸 신숙자씨 북한 억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