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꼴이라도 좋고 뼈만 앙상한 채로 남아 있어도 좋으니 꼭 살아 있어주기 바란다.” 지난 1985년 독일 거주 중 북한 공작원의 꾐에 빠져 북한에 들어갔다가 25년째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것으로 알려진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69)씨는 신씨와 혜원·규원 두 딸이 그저 무사히 생존해 있기만을 염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딸들을 본 것이 9살·6살 때였으니까, 지금 살아있다면 35세와 32세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부터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오씨와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 대표단은 18일 유엔본부에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 이반 스모노비치 사무부총장을 만나 유엔 차원의 도움을 촉구하고, 한국 내에서 전개된 ‘백만 엽서 캠페인’의 현 성과물인 16만여 명의 서명청원서를 전달했다. 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사무총장실에서 나온 직원 2명에게 전달했다. 일행은 이어서 북한대표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씨 모녀의 송환을 촉구하는 동시에 동포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오씨는 이 자리에서 “25년 동안이나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에 감금돼 있는 세 모녀의 운명에 뉴욕의 동포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그것만으로도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신선호 북한대표부 대사는 퇴근을 하려다 건물 앞에서 진행되던 기자회견 때문에 10여 분 이상 건물을 나오지 못했다. 뒤늦게 건물 앞에 주차한 승용차로 급하게 나서던 신 대사는 막아 서는 대표단과 취재진을 사납게 밀쳐내고 급히 탑승했다. 오씨와 대표단의 이번 미국행은 그 동안 한국 내에 머물렀던 구명운동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일본의 후지TV 뉴욕지사에서도 이들을 취재했으며, 유엔 OHCHR에서도 정식으로 청원서를 접수해 공식 절차를 시작한다고 답했다. 박기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1.11.18. 19:08
북한에 억류돼 있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의 남편 오길남씨(가운데)가 18일 뉴욕을 방문해 맨해튼 주유엔북한대표부 앞에서 가족들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른쪽은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왼쪽은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 박기수 기자
2011.11.18. 17:01
한국 통영에서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는 두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윤이상추모국제음악제와 윤이상 음악당 건립이며 다른 하나는 ‘통영의 딸’ 구출운동이다. 국제음악제와 음악당은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인 윤이상의 업적으로 기리는 행사다. 윤이상은 김일성 정권에 충성하면서 독일 유학생들을 북한으로 보내 친북활동을 권유·강요했던 장본인이기도 한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은 윤이상의 권유로 북한으로 건너간 독일유학생 오길남(69)박사의 가족 가운데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오 박사의 부인 신숙자(69)씨와 두 딸 혜원(35)·규원(33)양을 북한으로부터 구출하자는 사회적인 캠페인이다. 그런데 왜 통영에서인가? 윤이상과 신숙자 모두 고향을 통영에 두고 있는 ‘통영의 아들과 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인연은 독일에서 북한으로 이주했던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독 간호사였던 신씨는 유학생 오씨를 만나 결혼, 두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이 때 북한을 드나들면서 김일성 정권과 가까이 지냈던 윤이상이 오씨에게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제안, 신씨는 남편을 따라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북한에서 오씨는 대학교수가 아니고 독일유학생 포섭을 위한 간첩교육을 받았다. 오씨가 임무 수행을 위해 독일로 돌아가게 될 무렵, 신씨는 남편에게 망명할 것을 권유했다. 오씨는 덴마크 공항에서 탈출하여 한국으로 왔다. 남편의 북한지령 ‘배반’으로 신씨와 딸들은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지난 25년간 강제노동을 하다가 풀려나 몇 년 전 평양 모처의 통제구역으로 강제 이감된 사실이 탈북자들로부터 알려지면서 통영 시민들이 중심이 돼 구명운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돼 지난 9월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수백 명이 신씨 모녀 석방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 종교단체, 인권단체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급기야 한국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지구촌으로 번져 국제적인 캠페인이 됐다. 지난 14일 남편 오길남씨는 미국 의회를 찾았다. 의회에서 개막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8차 총회에서 증언을 했다. 미국·일본·캐나다·카메룬·폴란드 등 6개국에서 참석했던 10여명의 의원들은 오씨의 증언을 듣고 ‘통영의 딸’ 석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씨는 국무부 인권담당자들과 뉴욕 유엔본부 반기문 사무총장 등을 방문해 16만여 명이 참여한 온·오프라인 서명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통영의 아들’로 ‘통영의 딸’ 신씨와 딸들을 북한에 억류하도록 했던 장본인으로 김일성에게 충성한 윤이상과 그의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윤이상은 1995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명성, 그리고 부인(84)과 딸(61)은 북한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남한에서 조차 독립유공자 이상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북한은 평양시내 한복판에 ‘윤이상 박물관’을 지었고 그 앞에 윤씨의 흉상을 동상을 세웠다. 또한 음악제를 매년 열어 그의 업적을 찬양할뿐 아니라 독일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부인과 딸은 평양에는 있는 ‘김일성 주석님이 내주신 집’을 안방 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있다. 그러면 남한에서의 대우는 어떠한가? 윤씨 가족은 통영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고급별장식 주택을 짓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드나들고 있다. 최근에는 통영시 주최로 윤씨의 추모음악제가 열렸다. 매년 13억 원의 통영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다. 이 뿐인가?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는 예산 480억 원을 들여 ‘윤이상 음악당’을 건립 중이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과 윤이상이 저지른 죄가를 비교해 볼 때 한국에는 인권·평화·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보수세력은 물론 보수정권도 없다는 확신이 드니 마음이 슬프다.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전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정치를 넘어선 인도적 문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통영의 딸’이 곧 자유의 품 안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빠를 재회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1.11.17. 18:57
지난 12일 국군포로송환위원회(회장 정용봉) 주관으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한국에서 가져온 물망초 배지달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이미 한국에서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많은 장관들과 정치인들이 가슴에 달고 있다고 한다. 물망초 배지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의 의미를 새기며 지난해 현충일에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가 국군포로 납북인사 등 모든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아직도 북한에는 많은 납북 생존자가 있다. 이 중에는 '통영의 딸'로 널리 알려진 신숙자씨와 두 딸이 있다. 이들은 물망초의 꽃말처럼 '나를 잊지 마세요'를 부르짖고 있다. 신숙자씨는 1960년대 독일로 간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유학생이었던 오길남씨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행복하게 살던 중 북한 공작원에게 속아 남편과 함께 어린 두 딸(7세와 10세)을 데리고 입북했다. 북한에 간 오길남씨는 독일에서 듣던 말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 좌절에 빠졌는데 마침 해외 유학생을 포섭해 데려오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게 된다. 남편이 떠나기 전 신숙자씨는 "당신이라도 탈출해서 성공하면 우리 가족을 구하라"고 당부하고 헤어졌는데 25년이 지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신숙자씨 모녀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갇힌 뒤에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이 이렇게 커지기까지 한국의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정부는 1977년 13세의 나이로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의 송환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일본에서는 푸른 하늘을 보며 재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뜻으로 '푸른 리본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4년 5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이 리본을 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햇볕정책을 펴면서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한꺼번에 북한으로 돌려보내고도 단 한 명의 납북자도 구해내지 못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메구미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길남씨는 지금도 아내와 두 딸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세계를 다니며 호소하고 있다. 미국 의회를 찾은 오길남씨는 "죽지 않고 정말 짐승의 꼴이라도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라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줘서 내 아내와 두 딸과 제가 부둥켜안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습니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100만명 서명운동이 시작됐다고 한다. 재외동포들도 서명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웹사이트를 통해 신숙자씨와 두 딸의 구명을 촉구할 수도 있다. 'www.change.org'를 방문해 검색창에서 신숙자의 영문 표기인 'SHIN SOOK JA'를 입력하고 검색버튼을 누르면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기 위한 서명운동 제목이 나온다. 이 제목을 다시 누르고 들어가 서명에 동참하면 된다. 우리 모두 가슴에 물망초 배지를 달고 그들의 송환을 염원하자. '통영의 딸'은 분단조국이 만든 비극이다. 이 비극을 더 이상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서는 안 된다.
2011.11.17. 18:43
‘통영의 딸’ 신숙자(69)씨의 남편 오길남씨가 북한에 억류 중인 부인과 두 딸을 구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미주 동포사회에 직접 호소했다. 오씨는 15일 버지니아한인회(회장 홍일송) 주선으로 애난데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1985년 민족을 위한 일을 해보자란 권유를 받고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북한으로 월북했으나 다음해인 1986년 독일 유학생 포섭 지령을 받고 가던 중 탈북했다”며 “이후 여러 대북 통로를 통해 가족을 북한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오씨의 가족 재회를 위한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고 1991년 국제앰네스티(International Amnesty) 사무총장이 해결 모색을 위해 북한을 직접 방문했으나, ‘가족이 만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북한 당국의 답변이 공식적인 마지막이 됐다. 이후 탈북자 등으로부터 오씨의 가족이 요덕정치범수용소에서 살고 있다는 증언을 여러 차례 듣는 등 생사는 확인했으나 가족의 재회나 재결합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4일 워싱턴 DC 의회에서 열린 ‘북한 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제8차 총회에 초청되어 증언한 오씨는 이번주 18일 뉴욕의 유엔을 찾아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홍일송 회장은 “모든 정치적인 판단은 뒤로 하고 가족애와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미주 동포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의회 결의안 채택 등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지난 1997년 탈북해 2001년 한국에 정착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김태진 (사)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와 권은경 열린북한방송 권은경 팀장 등이 함께 참석했다. 송훈정 기자
2011.11.15. 17:50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14일 미국 의회를 찾은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사진)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죽지 않고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정말 짐승의 꼴이라도 뼈만 앙상한 모습이라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줘서…내 아내와 두 딸과 제가 얼싸안고 부둥켜 안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통영의 딸'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에 간호사로 갔다가 북한 대남공작부서의 유인작전에 포섭된 남편 오길남씨 때문에 1985년 12월 입북한 후 구금돼 있는 통영 출생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규원 양을 가리킨다. 오길남씨는 유학생 포섭 지령을 받고 나와 덴마크에서 탈출했고 가족들은 억류돼 생사가 불명하다. 오씨는 이날 북한에 억류돼 있는 부인 신씨와 두 딸 혜원규원 '구출 운동'을 위해 미 의회를 찾았다. 미 의회에서 개막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8차 총회에서의 증언을 위해서였다. 이날 오씨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어린 두 딸과 부인을 두고 홀로 북한을 탈출한 회한이 가득해 보였다.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카메룬 폴란드 등 6개국에서 참석한 10여명의 의원들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오씨는 16일에는 국무부 인권담당자들과 만나고 18일에는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위해 16만여명이 참여한 온오프라인 서명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김병일 기자
2011.11.14. 20:04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씨가 아내와 두 딸(혜원·규원)의 구명운동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다. 13일부터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 등으로 구성된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 대표단과 함께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오씨는 18일 뉴욕에서 구명운동을 펼치게 된다. ICNK는 "대표단의 이번 방미 목적은 그간 한국 내에서 벌어졌던 '통영의 딸' 구출 캠페인을 국제사회에 소개하고, 이를 국제적인 캠페인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미국 정부 및 유엔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ICNK는 지난 9월 휴먼라이츠워치(HRW)·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와 한국의 북한민주화네트워크·사단법인 열린북한·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등 15개국 40개 이상 단체들이 도쿄의 메이지 대학교에 모여 결성한 국제단체간 연대다. 대표단은 14일 미 의회에서 열린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제8차 총회에서 북한의 자의적 구금 및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증언했으며 국무부 관계자도 만나 신숙자씨 모녀 송환을 위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18일에는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 이반 스모노비치 뉴욕사무소장과의 간담회를 통해 유엔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그 동안 국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통영의 딸 구출을 위한 백만 엽서 캠페인의 결과물도 전달할 계획이다. 대표단은 18일 오후 2시에는 ICNK 회원 단체인 미국북한인권위원회(사무국장 그렉 스칼라튜) 회원들과 함께 맨해튼 북한대표부 앞에서 시위도 벌일 예정이다. 박기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1.11.14.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