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면 4.29 폭동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4.29폭동은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한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백인 경관들의 집단구타로 촉발된 사건이었다. 흑.백간의 인종갈등이 가져온 비극이었지만 흑인 폭도들의 약탈 대상이 한인 업소에 집중되면서 한.흑 갈등으로 잘못 비쳐지기도 했다.
폭동당시 흑인들은 사우스센트럴을 시작으로 한인타운까지 몰려와 무차별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6일간 지속된 무법 소요사태로 53명이 사망했고 2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집계된 재산 피해액도 7억달러에 이른다. 그중 절반 정도가 한인들이 당한 피해로 추산됐다.
4.29폭동은 한인 이민사의 뼈아픈 시련이었지만 의미있는 교훈을 남겼다. 폭동 과정에서 커뮤니티를 대변할 정치력이 없었던 한인들은 희생양이 됐고 이는 정치력 신장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4.29를 기점으로 주류정치에 한인들의 진출이 많아졌고 현재는 연방고위직에서 지역 시의원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에서 130여명의 한인 정치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이제까지 1세가 중심이었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노력이 최근 들어 1.5세와 2세로까지 확산되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번 한인타운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비록 단일 선거구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1.5세와 2세들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참여는 한인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1세들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후세대들의 정치참여를 지원해 한인커뮤니티와 미국 사회에 공헌할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력 신장 못지 않게 폭동의 역사를 바르게 자리매김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폭동의 원인을 한.흑간 갈등으로 몰아갔다. 비즈니스 특성상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왔던 한인들이 폭동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이 같은 잘못된 시각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폭동의 원인을 한인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주말 폭동 2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 상영 학술대회 행진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일회성의 행사로 그쳐서는 안되고 체계적인 역사로 남겨야 한다.
폭동이 끝난 후 2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인종간 화합은 숙제로 남아있다. 비록 한.흑간의 갈등이 폭동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많은 한인들에게 공감과 반성의 기회가 됐다. 폭동 이후 지금까지 한인 커뮤니티가 한.흑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종화합과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던 것도 그 같은 반성의 결과였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한인들만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다. 우리가 폭동의 애매한 피해자가 된 것도 한편으론 타인종과 교류없이 살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에 사는 이상 여러 민족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폭동 이후 많은 타민족과의 교류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주류 뿐만 아니라 여러 소수계들과도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폭동의 아픈 상처는 아물어 가고 폐허의 잿더미에 주저 앉아 삭혀야 했던 울분도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인 이민사의 최대 비극이면서 한인커뮤니티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4.29폭동은 한인이민 역사가 계속되는 한 여전히 진행형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