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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폭동 20주년] USC 언론 패널 세미나…끔찍한 한인사회 악몽 외면한 채 "모두가 피해자?"

20년 전 4월 29일. LA 한인들은 끔찍한 악몽을 겪었고 이를 LA폭동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폭동의 시발점이 된 주류 커뮤니티는 모두가 피해자였다며 '폭동'이 아닌 다른 표현이기를 원하는 분위기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피해를 일부분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USC 언론대학이 전현직 기자들을 초청해 주최한 패널 세미나는 이러한 커뮤니티의 기류가 반영됐다. 주제부터 '4.29는 폭동(Riot) 시민소요(Civil Unrest) 반란(Rebellion) 중 무엇인가 그리고 미디어의 역할은'이었다. 세미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4.29'는 무엇인가 패널들은 LA폭동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LA타임스 커크 맥코이 사진기자는 "그때껏 억누르고 있던 사회적 불만들이 표출됐으며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동참 불길처럼 번졌다"고 표현했다. 패서디나 위클리 케빈 우리히 에디터는 "평등 정치적 문제들이 로드니 킹 재판으로 표출됐다"며 "한 단어로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한 패널들도 있었다. 아우어위클리 신시아 그리핀 부에디터는 "사전적으로 보면 폭동 반란 소요는 이날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며 오히려 '항거(Protest)'에 가깝다"고 이견을 제시했다. 그는 "4.29는 힘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선 것으로 자발적으로 만든 대혼란이었다"고 주장했다. 원로 언론인 이경원씨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는 "4.29는 정부에 대한 반감 실직 사회적 불평등 모든 것이 하나로 촉발된 것"이라며 "인간이 만든 카트리나 재앙(Man made Katrina)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4.29'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패널들은 한 목소리로 'TV가 약탈 등 현상에만 초점을 맞춰 방영한 게 폭동으로 번지게 한 주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히 에디터는 TV화면에 불타는 상점의 모습이 반복됐고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월간지 LA센티널 유세프 시몬즈 부에디터도 "각 커뮤니티마다 폭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현상만을 전달하는데 미디어의 역할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특히 맥코이 기자는 "당시 LA타임스 30일자에는 폭동에 대한 사진이 안 실렸고 기사도 비중이 크지 않았다"며 "그러나 폭동 이틀째부터 자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경원씨는 "폭동 이전 신문의 논조는 흑인과 백인뿐이었다. 이는 폭동이 터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같은 소수계 배제논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남가주에 큰 커뮤니티를 형성한 라티노 패널이 한 명도 참가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폭동 재발 가능성은 대다수 패널들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반론도 있었다. 우리히 에디터는 "최근 패서디나서 17세 흑인학생이 절도 중 경찰의 총에 사망했다. 그는 비무장상태였다. 최근에는 10대 남성이 90발의 총격을 맞아 사망했다. 92년과 비슷한 상황이다"며 "아직 이에 대한 커뮤니티의 반응은 없으나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시몬즈 부에디터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페이스북 방송 등으로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만큼 폭발력이 있어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에 맞서 냉정한 여론도 전달될 수 있으므로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경원씨는 "커뮤니티가 상호 동질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여전히 커뮤니티간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호 교류가 늘어나 소통이 원활해지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커진다면 폭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정환 기자

2012.05.07. 10:03

폭동 20년, 지금 우리는…

2012.04.29. 20:20

"한인 주류 언론인 많아져야 합니다" 카니 강 전 LAT 기자

UC리버사이드 산하 김영옥센터(소장 장태한 박사) 주최로 28일 가든스위트호텔에서 진행된 '4.29 LA폭동 기념 컨퍼런스'의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카니 강 (사진)전 LA타임스 기자는 "지금도 폭동 기사에서 한인타운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는 것은 그만큼 당시 역사를 제대로 아는 기자들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이를 알려줄 수 있는 한인 언론인도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한인 커뮤니티가 성장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인 2세들이 많아야 한다"며 "특히 주류언론에 진출하는 후배들이 많아져 한인 커뮤니티의 시각을 제대로 전달해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폭동이 발생한 92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그재미너에서 LA타임스로 옮긴 그녀는 한인 폭동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 주류 언론인 1세대로 꼽힌다. "내 기사건 남의 기사건 한인 관련 기사 스케줄이 잡혀있으면 한인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이 보도될까봐 밤을 새서라도 기사의 쉼표 하나까지 체크하고 도왔다"는 그는 "지금은 LA타임스에 근무하는 한인 기자들이 많지 않아 한인 관련 기사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것 같다.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65세를 맞은 지난 2008년 3월 44년 간의 기자생활을 은퇴로 마감한 강씨는 지금 패서디나에 있는 풀러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소설을 집필하는 등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험이 내일이라 걱정이지만 공부하는 게 너무 즐겁다"는 그녀는 "당시 폭동 취재를 하면서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거나 마약이나 가정폭력을 겪는 한인 가정들을 많이 목격했고 또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이 있다. 한인 커뮤니티가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장연화 기자

2012.04.29. 20:18

폭동 20년, 지금 우리는…"갈등·피해 벗어나 서로 손잡고 함께 걸어갑시다"

'We Are One(우리는 하나다)' 갈등과 피해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연과 더불어 서로 손잡고 함께 걸어가자는 마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4.29 폭동 20주년 기념 평화대행진을 겸한 파바월드(PAVA World) 주최 제3회 거북이 마라톤 대회가 28일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그리피스 파크 내 피크닉 에리어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오전 8시부터 약 2시간동안 주변 공원을 청소한 후 골프장 코스를 따라 약 3마일 거리를 평화롭게 행진했다. 행사에 참석한 신연성 LA총영사는 "평화대행진은 가슴을 열고 자연 속에서 여러 민족이 함께 참여하는 의미있는 행사"라고 규정하고 "특히 자라나는 2세들이 이런 행사를 통해 4.29 폭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주류사회에서 타인종과 조화롭게 성장해가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바월드 강태흥 회장은 "오늘 행사는 봄이 주는 생명력과 함께 화합과 나눔의 한마당 잔치"라면서 "가혹했던 당시의 악몽을 되새기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며 여러 인종들이 함께 산행하고 대화하면서 평화를 다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산악회 일원으로 행사에 참석한 이윤희(65.LA)씨는 "4.29 폭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풀러턴 서니힐스 고교 11학년에 재학중인 조나단 조(17) 군은 "태어나기 전 일이라 잘 모르지만 4.29 폭동 당시 한인과 흑인들이 총을 들고 싸우고 한인업소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타인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인들이 이런 사건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허브 웨슨(10지구) LA시의장을 비롯한 탐 라본지(4지구) 시의원과 에밀 맥 LA소방국 부국장 웬디 그루웰 LA시 감사관 등 주요 시 관계자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주류사회 단체로는 메이크어위시 (희망만들기 재단.Make A Wish Foundation)이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한인사회에서는 수요자연산악회 3.1 여성동지회 한미연합회 한인민주당협회 LA한인상공회의소 아시아나항공 윌셔은행 등이 동참했다. 김병일 기자

2012.04.29. 20:14

메이크어위시 재단 캠 데이비스 이사장

"20년 전의 아픔이 오늘의 자랑스런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이번 4.29 폭동 20주년 기념 평화대행진에 참여한 메이크어위시 재단LA지회 캠 데이비스 이사장(사진)은 "파바월드와 함께 뜻 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며 "오늘 행사를 계기로 메이크어위시가 한인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세계적 자선단체 메이크어위시 재단 LA지회는 지난 3월 파바월드와 MOU를 맺고 그 첫 협업 프로젝트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데이비스 이사장은 "오늘 모인 청소년 대부분이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겐 20년 전의 충격과 아픔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한인 커뮤니티는 그 어느 곳보다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운 곳"이라며 "한인들의 힘이야말로 과거의 아픔을 더 나은 미래의 자양분으로 승화시킨 마법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비 브라이언트 리즈 위더스푼 등 메이크어위시 재단과 뜻을 모으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열거한 데이비스 이사장은 "병으로 고통받는 중에도 꼭 이루고픈 소원을 품고 있는 어린이라면 누구나 메이크어위시를 찾아와 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이경민 기자

2012.04.29. 20:13

행사 이모저모…산악회 회원도 한의사도 뜻모아 함께 봉사

▶이날 행사장에는 백인 흑인 라틴계 등 타인종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공원 청소와 걷기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 학생들은 가주 네바다 하와이 학생들의 연합 봉사단체인 KIWINS 소속 청소년들로 '한 가족 하나의 세상' 이라는 단체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이번 행사와 뜻을 같이 하기 위해 휴일을 반납하고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15살 조나단 테드 군은 "LA와 같은 문명도시에서 20년 전의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기 힘들다"며 "모두가 하나 돼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보니 아픔을 딛고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17살 캔드릭 앨 군도 "오늘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이날의 정신을 널리 전파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주한의사협회(회장 유도열)도 '제 3회 거북이 마라톤'에 힘을 보탰다. 협회 소속 한의사 8명은 이날 일찌감치 행사장에 간이 진료소를 마련해 몰려드는 다인종 환자들에게 진맥 시침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간이 진료소에는 공원 청소와 걷기 대회에 참여하다 부상을 입은 참가자들은 물론 주변에 피크닉을 나왔다가 들른 방문객들의 발걸음까지 이어져 장사진을 이뤘다. 유도열 회장은 "4.29 폭동 당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환자들을 치료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커뮤니티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에너지 드링크 '박카스'도 커뮤니티와 하나가 됐다. 이번 행사에 동참한 동아 아메리카와 왕글로벌넷 측은 박카스 1500병을 무료로 제공해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고온건조한 날씨 속에 이른 아침부터 행사가 이어져 많은 참가자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기업 측에서 제공하는 시원한 음료 한 병에 다시 힘을 얻어 끝까지 일정을 마무리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왕글로벌넷의 이유민 이사는 "한인 1세들에게는 '박카스'에 대한 향수가 각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음료 한 병으로나마 이 자리에 함께 한 한인들에게 에너지를 드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전했다. ▶수요자연산악회(회장 김중식) 회원들의 봉사정신도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대부분 시니어 회원들로 구성된 산악회 회원들은 이날 거북이 마라톤 참가자들이 걷는 코스 곳곳에 자리해 물을 나눠주고 큰 목소리로 학생들을 응원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선보였다. ▶한인 보이스카우트 대원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LA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된 777대대 대원 30여 명은 멋진 단복을 차려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행사에 동참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이들은 타단체 소속 참가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친분을 나누는 한편 걷기 대회 중에도 내내 힘찬 발걸음으로 행사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경민 기자

2012.04.29. 20:12

4·29 폭동 20주년 타운 곳곳서 행사

4.29 LA폭동 20주년을 맞아 폭동의 아픔을 치유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28일과 29일 이틀동안 한인타운 곳곳에서 진행됐다. 각 행사에는 한인과 흑인.라틴계 커뮤니티 단체들과 LAPD 학계에서도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UC리버사이드 산하 김영옥센터(소장 장태한 박사)는 28일 가든스위트호텔에서 남가주 주요 대학교 산하 아시아 학과 연구센터들과 비영리기관이 함께 한 대규모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또 LA한미연합회(KAC-LA)는 29일 로버트 케네디 스쿨에서 중상반대연맹(리저널 대표 아만다 수스킨)등 주류 및 흑인과 라틴계 인권단체 12곳과 LAPD(국장 찰리 벡)와 함께 '4.29 연합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서 LAPD 마이클 모어 부국장은 "LA폭동은 한인 커뮤니티에 아픔을 주었고 LAPD에도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과거로 남아있다"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커뮤니티와 함께 힘을 합쳐 일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한인기독교커뮤니티개발협회(KCCD.회장 임혜빈)가 주최하고 흑인.히스패닉.백인.유대인.아시아계 다인종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사이구(SAIGU) 다민족 기념 예배'도 이날 오후 3시30분 주님의 영광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연방 주택도시개발국 존 트라스비나 차관보 에디 이 백악관 국민참여위원 존 페레즈 가주 하원의장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시장이 참석했다. 이밖에 중앙일보 후원으로 지난 25일부터 CGV극장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컬러들의 충돌(Clash of Colors)'도 높은 호응을 받았다. 특별취재팀=장연화.김병일.이경민. 백정환 기자 / 사진=김상진 기자

2012.04.29. 20:08

"폭동 20년만에 한인타운 LA 중심 발전"

LA폭동 20주년을 맞아 '아태 문화 유산의 달' 선포식이 27일 LA시의회실에서 열렸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시장은 "20년 전 LA폭동 때 피해 업소의 50%가 한인 소유주였다"며 "한인들은 당시 시정부와 경찰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지만 20년 만에 이곳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심지역으로 발전시켰다"고 치하했다. 그는 또 김봉환 LA시 주민국 국장 존 최 공공사업국 커미셔너 등을 소개하고 "아시안들이 없는 LA시는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선포식에서는 한인 언론인 이경원(84)씨가 '스프릿오브로스앤젤레스' 공로패를 받았다.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미셸 콴씨와 데이비드 엡스테인 UCLA 법대 교수가 각각 '희망'과 '드림' 상을 받았다. 이경원씨는 "이번 수상은 4.29를 지켜본 우리의 자녀들 덕분"이라며 "한인들이 사이구를 잊지 않고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연화 기자

2012.04.27. 21:22

[한인사회의 시각] 한흑보단 흑백갈등…실상·교훈 후세에 알려줘야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딱히 승자가 없는 역사도 있다. 내일(29일)로 20주년을 맞는 4.29 또한 그러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는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 피해자는 물론 방관자에게도 '불편한 역사'인 탓이다. LA통합교육구 학생들은 학교에서 LA 폭동을 배우지 않는다. 가주 교육부도 교과 과정에 LA 폭동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20년 전 폭동의 최대 피해자인 한인들마저 망각의 길을 걷는다면 4.29는 머지 않아 '잊혀진 폭동'이 되고 말 것이다. 실체가 불분명하면 기억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한인사회가 4.29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4.29 20주년을 맞아 한인사회에선 당시 역사를 재조명하고 올바르게 규정하자는 시도와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흑갈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4.29 20주년을 맞는 올해는 '한인과 흑인의 갈등'을 폭동의 주 원인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이 당시 한흑갈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시선은 오랜 기간 미국사회에 내재된 흑백갈등과 그에 따른 흑인사회의 불만이 폭동의 근본원인이며 주류언론의 왜곡된 보도가 한흑갈등을 부추겼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폭동 당시 타인종 매체 기자로서 현장을 누빈 원로 언론인 이경원씨는 "흑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 구타한 백인 경관들에 대한 무죄평결로 인해 폭발한 흑인들의 분노야 말로 4.29의 근본 원인임을 한인들이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씨를 비롯한 많은 한인들은 흑인 소녀와 말다툼 끝에 얻어맞고 총을 쏴 소녀를 숨지게 한 한인 두순자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던 것이 폭동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던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사안을 다루는 주류 언론매체들의 방식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유사한 사건에선 굳이 인종을 밝히지 않으면서 유독 두씨 관련 보도에선 '코리안'이란 표현을 빼놓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한흑갈등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주류 언론매체들은 4.29의 근본 원인을 오랜 흑백갈등의 역사에서 찾는데 인색하다. 이같은 보도 행태는 폭동의 최대 피해자인 한인사회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지대에 밀어넣는다. 또한 한인들이 4.29를 기억하고 커뮤니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LA폭동을 소수계간의 갈등으로 좁혀 보는 프레임(frame)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경과 의미를 되새기자는 한인들의 노력은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줄기차게 이어질 전망이다. 의미와 교훈을 후세에 물려주자 LA폭동 직후 한인들은 흑인 커뮤니티와 함께 잿더미가 된 한인타운에서 평화대행진을 벌이며 용서와 화해를 다짐했다. 4.29 이전부터 존재해온 한흑갈등의 상당 부분은 한인들의 책임이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한인은 흑인을 "무식하고 게으르다"며 무시하고 흑인은 한인을 "우리 동네에서 돈을 벌면서 우리를 무시한다"며 질시했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화합을 통해 상흔을 치료하자는 뜻이었다. 4.29 관련 보도를 보고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했다는 강석희 어바인 시장은 "평화대행진은 한인사회의 성숙한 면을 보여준 이벤트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공권력이 폭동 직후 한인타운 치안유지를 포기해 한인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했던 점 일방적으로 당하다 참다 못해 총을 들고 자구에 나선 한인들의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과격한 한인' 이미지로 비쳐진 점은 우리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며 아쉬워 했다. 강 시장은 "지금에 와서 책임론을 제기할 수야 없지만 4.29의 실상과 의미 교훈을 후세에게 정확히 물려주려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LA폭동 다큐멘터리 '컬러의 충돌'(Clash of Colors)을 제작한 데이비드 김 변호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부터 역사의식을 가져야 미국사회도 변한다." 임상환 기자

2012.04.27. 21:20

그대 기억하는가? 4·29폭동…내일 20주년

1965년 8월 11~16일 LA 사우스 센트럴의 와츠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도화선은 흑인 운전자와 백인 경찰의 충돌이었다. 6일 동안 34명(추정)이 숨지고 4000만~1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약 27년 뒤… 1992년 4월 29일~5월 4일 LA 사우스 센트럴과 한인타운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도화선은 흑인 운전자와 백인 경찰의 충돌이었다. 6일 동안 63명(추정)이 숨지고 1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 날을 기억한다. 털린 진열대와 가게를 삼키는 불길 깨진 유리창 거리를 휩쓰는 총소리. 억장이 무너졌다. 열심히 일한 것 뿐인데…. 폐허에서 일어났을 때 우린 각성한 이들이었다. 타인종과 만나고 악수했다. 소통의 힘을 얻었다. 시민권자가 되고 투표했다. 정치의 힘을 쌓았다. 20년 동안 우린 잊지 않았다. 1965년 12월 2일 존 A. 맥콘 전 CIA국장이 이끄는 '맥콘 위원회'는 101페이지 분량의 와츠폭동 보고서를 낸다. 제목은 '도시 폭력 끝인가 시작인가?'였다. LA폭동 20년에 그 때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도시 폭력 끝인가 시작인가? 그 대답은 기억에 있다. 기억하는 자에게 재앙은 한 번 뿐이지만 기억 않는 자에게 재앙은 늘 시작이다. 폭동도 한 세대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 그 날의 기억을 2세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각성의 유산'으로. 또 다른 20년이 시작되는 날의 숙제다. 안유회 기자

2012.04.27. 21:13

[발언대] 폭동 20주년의 교훈

29일은 LA 폭동이 발생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한인사회에서는 그날을 4·29로 기억하고 있다. 한인들은 엄청난 재산 피해, 정신적 충격, 그리고 미국 주류 언론들의 무법자 취급이라는 삼중고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재기에 성공해 미국 주류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4·29는 미주 한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는 결정적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안고 미국으로 이민했던 한인들은 당시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4·29 폭동은 그들에게 이제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인사회는 엄청난 재산 피해를 봤으나 미국 정치인들은 누구도 한인사회에 관심과 배려를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인들은 정치적인 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인들은 정치력 신장이 미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20여 년간 한인사회는 정치력 신장을 위한 노력을 해 왔으나 아직 미미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주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바로 올바른 한·미 관계 정립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친(親)이스라엘이 되도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주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크게 신장한다면 한·미 관계 정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4·29 폭동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일민족의 허구성에서 깨어나 다인종·다민족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인들은 코리아타운에서 거주하면서 한인교회에 다니고 한국어 방송을 시청하는 ‘미국 속의 한국인’이 아니라 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종 화합과 공존을 위한 능동적인 대처를 모색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다문화 사회로 바뀐 대한민국도 4·29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인종과 민족에 대한 개념적 이해 측면에서 아직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는 21세기로 변했지만 우리의 인종·민족 개념 이해는 아직도 19세기 수준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포용할 정책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그들이 집단적 따돌림과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대한민국에서도 인종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다인종·다민족 사회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하고 설계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과제다. 다문화 시대에 다문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는 현 정부 정책은 ‘다문화 정책’이 아닌 ‘동화 정책’이다.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신부들을 한국인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의 정부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미국에서도 인디언·멕시칸·흑인, 그리고 아시안 등을 대상으로 동화 정책을 실시했다가 실패했다. 다인종·다민족 사회의 표본인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하고 풍부한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다. 역사를 망각하면 비극이 되풀이된다. LA 폭동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차세대를 위한 교육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2012.04.27. 20:50

4.29 20주년 기념식

4.29 LA기념재단(회장 허종)과 한미교육연구원(원장 차종환) 한인역사박물관(관장 민병용)이 공동 주최한 '4.29 LA폭동 20주년 기념식 및 세미나'가 80여명의 각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25일 옥스포드팔레스호텔에서 열렸다. 세미나에서 박계영 UCLA 인류학과 교수는 "앞으로 한-흑 관계 갈등은 물론 한-히스페닉 문제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양현승 목사는 "폭동기금 유용문제에 대한 원인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4.29 기념재단 제공]

2012.04.26. 20:23

[글과 생각] 형제애로 풀어야할 인종 갈등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어둡고 외진 인종 차별의 계곡에서 벗어나 햇살 환히 비치는 인종간의 정의의 길로 들어설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자손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인종간의 불의라는 모래 위에서 형제애라는 단단한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할 때입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연설문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중에서

2012.04.26. 18:16

[4·29 폭동 20주년] 액티브USA 이 돈 회장 '나는 이렇게 4·29 딛고 일어섰다'

1992년 4월29일 오전. LA다운타운에서 의류공장 '액티브USA'를 운영하던 이 돈(58.영어명 단 리) 회장은 한인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심상찮은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로드니 킹 사건 재판이 있는 날이고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오전에 일찍 업소를 비우고 귀가하는 게 좋겠다'는 멘트가 수시로 반복되고 있었어요. '뭐 큰 일이야 있겠어'라는 생각이었지만 혹시나 싶어 오후 2시께 공장 문을 닫고 퇴근했지요." 하지만 그것이 미국 이민 후 5년 만에 힘겹게 장만한 의류공장과의 마지막이었다. 당시 공장은 메인과 31가에 위치해 있었다. 폭동이 시작된 곳과 불과 수 마일 거리였다. "집으로 간 지 2시간도 안돼 경비업체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폭도들이 침입했나 본데 불을 지르고 아주 난장판이다. 아무래도 공장엔 안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오후 5시쯤 지나 TV를 보니까 우리 공장이 화염에 휩싸인 게 나왔어요. 공장이랄 것도 없는 비좁은 곳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 100만 달러짜리 건물을 마련한 지 6개월도 채 안됐었는데…." '4.29 LA 폭동' 당시를 설명하던 이 회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들은 지우기 힘든 모양이었다. "왜 안 그렇겠어요. 그게 어떻게 마련한 공장인데 아내와 가족처럼 지낸 직원들과 함께 새벽 별을 보고 나와 퇴근시간도 따로 없이 몇 년을 고생하며 장만했는데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미국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폭동으로 기록된 'LA 폭동'은 6일간 무려 54명이 사망하고 10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냈다. 흑인 로드니 킹과 백인 경관의 문제가 한-흑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한인 사업자들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폭동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화염에 휩싸였던 이 회장의 의류공장은 한인의류업체가 입은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규모의 피해 사례였다. ◆술로 지낸 일주일 "당시 심정이요?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할 수 있겠어요. 너무 억울해 말도 안 나오고 가슴만 놀란 듯 뛰는데…." 불에 타버린 이 회장의 1만5000스퀘어피트 공장 안에는 수십 대의 재봉틀과 원단 완성된 옷들이 있었지만 한순간에 사라졌다. 피해액만도 250만 달러는 넘었을 것이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외상거래는 거의 안했어요. 원단 값도 물건을 받으면 즉시 치르는 식이었죠. 결국 불에 타 버린 그 많은 원단과 옷들이 모두 내 피해로 돌아왔던 거죠." 불의의 사고에 망연자실한 이 회장은 이후 일주일 동안 술에 취해 살았다. 아무 곳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억울함을 술로 밖에는 풀 수 없었다고 했다. 폭동이 진정된 후에도 이 회장은 한동안 공장에 가지 않았다. "검게 변한 현장을 볼 용기가 안 났어요. 아내는 '술 그만 먹고 다시 하자. 다시 하면 된다'며 용기를 줬지만 도저히 폐허가 된 공장을 내 눈으로 볼 수는 없었어요." ◆세금보고와 보험의 위력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술에 쩔어 지내면서 회생방법을 찾던 이 회장은 마침 폭동이 발생하기 한 달여 전 사업확장을 위해 인근에 리스계약을 해 둔 매장을 떠올렸다. "쇼룸으로 운영할 생각으로 2000스퀘어피트짜리 가게를 월과 11가 사이에 얻어 둔 게 있었어요. 공장에 있던 물건들은 다 탔지만 봉제공장에 하청을 준 옷들이 있으니 이를 모으면 작게라도 다시 한 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정부에서도 재난을 당한 사업주들을 위해 장기 저리 융자 제도를 시행한다는 발표가 있어 이 회장에겐 큰 힘이 됐다.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가 정말 고마웠죠. 4% 이자로 30년간 최대 50만 달러를 FEMA(연방재난관리청)를 통해 빌려 준다니 큰 희망이 생긴 거였죠. 당시 은행 이자가 7~8%대 였어요." FEMA의 도움을 아무나 받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세금보고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FEMA 혜택을 볼 수 없었다. 당시 피해를 본 한인의류업자들의 경우 대부분 영세 사업자라 세금보고를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FEMA의 혜택을 본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당시 세금보고 기록이 있었고 피해 규모도 컸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또 대형 보험사에 가입해 있어 이 역시 재기에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폭동으로 영세 보험사들이 파산을 해 보험금을 받지 못한 한인 업주들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지금 생각해도 그 폐허 더미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 싶어요. 불 탄 공장 앞에서 눈물 흘리며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던 직원들 격려를 아끼지 않던 친척들과 주변의 지인들…." 그 중에서도 이 회장은 포에버 21의 미세스 장(장도원 회장 부인 장진숙씨)과 원단회사 CKM의 마이클 김 사장 윌셔은행 다운타운 김학진 전 지점장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미세스 장은 포에버 21이 더 큰 건물로 옮기면서 먼저 있던 사무실을 쓰도록 배려했고 CKM 김 사장은 외상으로 원단을 대주고 윌셔은행 김 지점장도 당장 급한 소액 대출의 편의를 봐주기도 해 사업을 금방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 회장은 "FEMA의 지원이나 보험사의 보험금은 신청 후 6~12개월 후에나 나오니까 당장 도움이 안됐어요. 그런데 평소 신용있게 사업을 한 탓인지 외상매출(AR)을 준 업체들로부터 '외상값이라도 먼저 주겠다'고 해 가슴이 뭉클했었다"고 말했다. ◆아픔 딛고 새로운 꿈을 향해 "폭동은 여전히 아픈 기억이지만 내겐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 회장은 폭동을 계기로 봉제공장을 접고 의류 매뉴팩처에만 전념하게 됐다. 화재로 재봉틀이 다 망가지기도 했고 임시로 마련한 매장도 규모가 작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이 회장에겐 사업을 슬림화 집중화함으로써 빨리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 회장은 폭동이 일어난 후 3년 만에 한인의류업자들이 공동 설립한 샌피드로 홀세일마트에 여러 개 매장을 매입할 만큼 사업체를 정상화시켰다. 타고 난 근면과 탁월한 사업감각으로 사업도 예전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이 의류 및 제조업의 생산기지로 부각하자 이 회장은 로컬 생산을 접고 수입상으로 변신했다. "다른 업체들보다 의류사업의 흐름에 한 발짝 앞선 선택을 했던 게 지금의 '액티브USA'를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회장은 1998년 새한은행 이사로 참여 이사장까지 오르는 등 왕성한 사업활동을 펼쳐왔다. 5년 전엔 지금의 알라메다와 48가에 7만5000스퀘어피트짜리 건물로 이사했고 내년엔 추가로 공장건물을 지어 회사 규모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이 회장이 바라보는 4·29 "우리도 한번쯤 반성…배려가 적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4.29 폭동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 중엔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정말 죽도록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돈을 번 게 나쁜가. 그런데 왜 하필 한인들에게 이렇게 큰 시련이 생겼는가’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우리도 한 번쯤 반성할 일도 있지 않은가 싶다. 당시 폭동의 진원지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사우스 센트럴 지역이었다. 한인들은 그 곳에서 대부분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휴가도 반납하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지만 반대급부로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근면과 성실, 지혜로움은 한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배려가 적었다. 내가 번 돈이라고 가난한 동네에서 벤츠, BMW를 타고 일부 거들먹 거리는 부류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1992년 당시 사우스 센트럴 지역의 흑인들은 경기 불황 탓에 실업자들도 많았다. 그들에겐 분출구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로드니 킹 사건은 분명 흑인과 백인의 대결이었지만 정치력이 부족했던 한인은 억울하게 흑인들의 타깃이 됐다. 우리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과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미주 이민 100년을 훨씬 넘기면서 이제 한인들도 2세들의 성장과 함께 주류사회 진출이 크게 늘었다. 연방하원부터 주, 시의원 진출도 눈에 띄게 늘어,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게 됐다. 하지만 좀 더 많은 한인들이 한국 정치에만 관심을 갖기보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정치와 투표에 적극 참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타 커뮤니티도 배려하고 우리 나름대로는 힘을 키울 수 있을 때 제2의 LA폭동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문호 기자 [email protected]

2012.04.25. 19:56

[사설] 4·29폭동 20주년을 맞으며

사흘 뒤면 4.29 폭동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4.29폭동은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한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백인 경관들의 집단구타로 촉발된 사건이었다. 흑.백간의 인종갈등이 가져온 비극이었지만 흑인 폭도들의 약탈 대상이 한인 업소에 집중되면서 한.흑 갈등으로 잘못 비쳐지기도 했다. 폭동당시 흑인들은 사우스센트럴을 시작으로 한인타운까지 몰려와 무차별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6일간 지속된 무법 소요사태로 53명이 사망했고 2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집계된 재산 피해액도 7억달러에 이른다. 그중 절반 정도가 한인들이 당한 피해로 추산됐다. 4.29폭동은 한인 이민사의 뼈아픈 시련이었지만 의미있는 교훈을 남겼다. 폭동 과정에서 커뮤니티를 대변할 정치력이 없었던 한인들은 희생양이 됐고 이는 정치력 신장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4.29를 기점으로 주류정치에 한인들의 진출이 많아졌고 현재는 연방고위직에서 지역 시의원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에서 130여명의 한인 정치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이제까지 1세가 중심이었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노력이 최근 들어 1.5세와 2세로까지 확산되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번 한인타운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비록 단일 선거구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1.5세와 2세들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참여는 한인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1세들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후세대들의 정치참여를 지원해 한인커뮤니티와 미국 사회에 공헌할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력 신장 못지 않게 폭동의 역사를 바르게 자리매김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폭동의 원인을 한.흑간 갈등으로 몰아갔다. 비즈니스 특성상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왔던 한인들이 폭동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이 같은 잘못된 시각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폭동의 원인을 한인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주말 폭동 2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 상영 학술대회 행진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일회성의 행사로 그쳐서는 안되고 체계적인 역사로 남겨야 한다. 폭동이 끝난 후 2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인종간 화합은 숙제로 남아있다. 비록 한.흑간의 갈등이 폭동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많은 한인들에게 공감과 반성의 기회가 됐다. 폭동 이후 지금까지 한인 커뮤니티가 한.흑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종화합과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던 것도 그 같은 반성의 결과였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한인들만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다. 우리가 폭동의 애매한 피해자가 된 것도 한편으론 타인종과 교류없이 살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에 사는 이상 여러 민족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폭동 이후 많은 타민족과의 교류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주류 뿐만 아니라 여러 소수계들과도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폭동의 아픈 상처는 아물어 가고 폐허의 잿더미에 주저 앉아 삭혀야 했던 울분도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인 이민사의 최대 비극이면서 한인커뮤니티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4.29폭동은 한인이민 역사가 계속되는 한 여전히 진행형의 사건이다. 폭동 20주년을 맞아 극한의 시련을 통해 얻은 교훈을 되새기면서 미주 한인사회의 희망찬 미래를 기약해 본다.

2012.04.25. 18:32

LA폭동, 역사 기록으로 남긴다

4.29 LA폭동의 역사를 남기는 박물관 건립이 추진된다. 오늘(25일) 오후 6시 LA한인타운 내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폭동 20주년 기념식 및 세미나'를 개최하는 4.29 LA기념재단(이하 4.29재단 회장 허종)은 앞으로 역사자료를 보관하고 남기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허종 회장은 "LA폭동이 발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당시 한인 커뮤니티가 입은 피해 등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없다"며 "후손들에게 당시 자료를 제대로 물려주려면 기록 보관이 우선이다. 박물관을 세워 제대로 된 역사를 남기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열리는 기념식 역시 "폭동 피해자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선 모습을 커뮤니티에 알리고자 마련했다"며 "많은 한인이 참석해 격려하고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기념식 후 세미나에서는 박계영 UCLA 인류학과 교수와 적십자 자원봉사자 양현승 목사 허 회장이 발표자로 나와 4.29 폭동의 의미와 한인 커뮤니티의 변화를 설명한다. 특히 당시 폭동 피해자였던 허 회장은 폭동의 현장과 피해를 당한 후 20년 동안 살아온 삶을 들려준다. 한편 4.29재단은 한미교육연구원(원장 차종환 박사)과 한인역사박물관(관장 민병용)과 함께 폭동 20주년 자료집 '잊을 수 없는 그날 1992년 4월 29일 화합 단결 그리고 미래로'를 발행했다. 자료집에는 폭동 원인과 피해 규모 한인 언론 보도 기록 등을 담았다. 또한 20주년을 맞아 한인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 내용도 수록했다. 차종환 박사와 민병용 관장은 "2세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커뮤니티 역사에 대한 의식은 다소 낮다"며 "2세들에게 폭동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자료집을 만들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자료집은 기념식 참석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문의: (213)385-4279 장연화 기자

2012.04.24. 18:56

4·29 LA폭동 20주년 기념 포럼

재외한인사회연구소와 한인유권자센터가 23일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커뮤니티센터에서 4·29 LA폭동 20주년 기념 포럼을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날 연구소 민병갑 소장과 유권자센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LA폭동 이후 한인 사회에 미친 영향,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민 소장이 강연하고 있다. 양영웅 기자

2012.04.23. 20:34

[4·29 폭동 20주년…줄잇는 행사] 워커톤(Walk-A-Thon)

4.29 LA폭동 20주년을 맞아 오는 28일 오전 그리피스 공원에서 열리는 파바월드(PAVA.회장 강태흥)의 '워커톤(Walk-A-Thon) 및 공원 청소' 행사에 참여하는 한인 기업들이 늘면서 참가 인원도 커지고 있다. 파바월드에 따르면 아시아나동우회와 윌셔스테이트은행이 워커톤 행사에 참가한다. 아시아나는 전 직원 참여의 뜻을 나타냈고 윌셔스테이트은행도 2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동아제약은 바카스 1500병 지원을 약속했고 LA한인상공회의소는 병물을 준비한다. 파바월드 산하의 커뮤니티 긴급재난구조단(CERT) 소속의 자원봉사자 40명은 주차와 마라톤 행사 안내를 담당한다. 파바월드 강태흥 회장은 "폭동의 아픔을 도약과 화합으로 승화시키고 한인사회의 온정을 불우 아동들에게 전달하는 의미있는 잔치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파바월드.메이크어위시(Make-A-Wish) 등이 공동 주최하고 중앙일보.라디오 코리아 등이 미디어 후원하는 이날 행사는 크게 2가지로 나눠 진행된다. 첫번 째는 공원 청소로 오전 8시 '크리스탈 스프링 피크닉' 구간을 2시간 동안 청소할 예정이다. 폭동의 아픔도 깨끗이 치유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라톤은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윌슨과 하딩 골프 코스에 있는 하이킹 트레일 3마일 거리다. 이날 마라톤은 뛰는 대신 이웃과 함께 걷는 시간으로 준비됐다. 파바월드의 팀 송 사무국장은 "행사 당일 날씨가 상쾌해 걷기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바월드는 행사 수익금을 어린이 환자를 돕는 비영리재단인 메이크어위시 재단에 전달한다. 특별 후원 단체는 LA시 4.10.13지구 시의회 사무실 LA평통 밝은미래재단 수요산악회 등이며 상품 후원은 남가주한인레스토랑협의회와 남가주한인치과협회 한국상사지사협의회(KITA) 등이 맡는다. 가주한의사협회는 의료지원에 나선다. ▶참가 문의: (213)252-8246 장연화 기자

2012.04.23. 19:47

[LA폭동 20주년 행사 봇물] 잊지말자 4·29…함께하자 4·29

1992년 4월 29일. LA일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백인 경찰 4명이 무죄판결을 받자 흑인들은 거리로 나와 폭력 방화 약탈 등을 자행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분노 표출의 주 대상은 한인이었다. 사우스LA를 중심으로 LA일대에서 피해를 입은 한인 업소는 2800여개에 달했다. 2012년 4월 29일. 4.29 LA폭동이 일어난지 20년이 흘렀다. 20년을 맞은 4.29는 단순히 이를 기리는 행사에서 나아가 인종화합을 위한 방법과 방향을 짚어보는 의미를 더한 행사들로 풍성하다. ◆학술대회 4.29를 계기로 한인 커뮤니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보는 컨퍼런스가 열린다. 컨퍼런스에서는 4.29를 대면하다(Confronting 4.29)라는 주제를 놓고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 제리 강 UCLA 법대 교수 박계영 인류학 교수 등 학계와 이경원 원로 언론인 카니 강 전 LA타임스 기자 강형원 전 LA타임스 사진기자 등 언론 한인타운 상황을 주류 언론에 알린 앤젤라 오 변호사 당시 소방대원으로 한인타운에 출동한 에밀 맥 LA소방국 부국장 당시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관장으로 한인 피해자를 도왔던 김봉환 LA주민국 국장 알렉산더 서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소장 등 커뮤니티 멤버가 20년 전 4.29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앞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한다. 컨퍼런스는 UC리버사이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주최로 28일 오전 9시부터 LA한인타운 가든스위트호텔에서 열린다. 4.29기념재단(회장 허종)은 한미교육연구원(원장 차종환) 한인역사박물관(관장 민병용)과 공동으로 25일 오후 6시 옥스포드팔래스호텔에서 4.29 기념식 및 세미나를 개최한다. 기념식에서는 폭동 피해 당사자들이 나와 20년 전 상황을 되새기고 세미나에서는 박계영 UCLA 인류학 교수 미적십자 양현승 목사 등이 나와 4.29폭동이 남긴 사회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한인 커뮤니티 뿐 아니다. USC 주최로 28일 오전 9시~오후 4시30분 데이비슨 컨퍼런스 센터에서도 4.29 컨퍼런스가 열린다. 민족학교가 패널로 참여한다. 이에 앞서 25일에는 캘스테이트 노스리지(CSUN) 언론학과가 주최하는 컨퍼런스가 있다. 치유의 소리(Sounds of Heal)라는 주제로 오후 4시부터 CSUN 퍼포밍 아트센터에서 폭동 당시 보도된 라디오 뉴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27일에는 한인기독교커뮤니티개발협회(KCCD.회장 임혜빈)가 참여하는 리더십 대담 20년 후 대화의 날(20 Years Later: A Day of Dialogue)이 오전 9시~11시30분 페임 르네상스(1968 W. Adams Blvd)에서 진행된다. 한인 교계도 4.29로 뭉쳤다. 기독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한인 교계는 5월부터 4.29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10월 5일 4.29를 역사 인종 종교적으로 재해석 재조명하는 4.29 종교포럼을 개최한다. ◆문화행사 4.29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며 토론하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25~28일 CGV에서는 오후 7시부터 데이비드 이 변호사가 폭동 당시 정황과 폭동 전후 한인 커뮤니티의 모습을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컬러의 충돌(Clash of Color) 시사회가 열린다. 최근 전개된 LA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캠페인 과정과 의미를 담은 다큐멘터리 20년 후 코리아타운(Koreatown 20 Years Later)도 상영된다. 25일에는 시사회 후 정치인과 폭동 당시 현장을 취재한 언론인을 초청해 한인 커뮤니티에 비전을 제시하는 토론회가 진행된다. 이외 28일 오전 9시부터 샤토 레크리에이션센터(3191 W. 4th St)에서는 재미대한권투협회(회장 정왕기) 주최 제 19회 4.29 폭동 메모리얼 인종화합 권투대회가 같은 날 오전 28일 오전 11시~오후 2시 댄스 스포츠 아카데미 홀(1421 S. Western Ave)에서는 김동실 라인댄스클럽 주최 한흑 친선 라인댄스 모임이 있다. 지난해 말부터 4.29 20주년 캠페인을 펼쳐온 KCCD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30일부터 아트 추모 전시회 'Civil Space: A Transformative Memory of the 1992 LA Riots'를 개최한다. 30일 오후 5시 관용박물관(Museum of Tolerance)에서 리셉션이 있다. ◆각종행사 파바월드(회장 강태흥)는 한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화합과 사랑을 다지는 걷기대회(워커톤)와 공원청소를 메이크어위시와 함께 개최한다. 폭동의 아픔을 치유하자는 의미로 28일 오전 8시부터 그리피스 파크를 청소하고 오전 11시~오후 2시 그리피스 파크 일대 5마일을 걷게 된다. 특히 걷기대회 참가비로 걷힌 수익금 일부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에 기부돼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행사에는 LA시 4.10.13지구 사무실을 포함해 LA민주평통 LA한인상공회의소 윌셔센터/코리아타운주민의회 밝은미래재단 수요자연산악회 등이 참여한다. KCCD는 29일 오후 3시30분 LA다운타운 주님의 영광교회(1801 S. Grand Ave)에서 한인과 흑인은 물론 다양한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개최한다. 존 트라스비냐 연방 주택도시개발국 차관 존 페레즈 가주 하원의장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시장이 연설자로 나서는 기념행사에서는 LA커뮤니티 희망의 영웅 시상식이 함께 열리며 러브인뮤직과 크렌쇼 엘리트 콰이어의 합동 공연도 있다. 이후 모두가 하나가 돼 다운타운과 한인타운 일대를 걷는 평화 대행진을 펼친다. LA시장실은 5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겸해 27일 시청에서 4.29를 기리는 리셉션을 갖는다. 매년 한인 1.5~2세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4.29 LA폭동 에세이 콘테스트 시상식을 29일 오후 1시~4시 LA한인타운 내 로버트 케네디 커뮤니티 스쿨에서 진행한다. 이재희 기자 [email protected]

2012.04.23. 19:37

울타리선교회 4·29 폭동 기도회

울타리선교회(담임목사 나주옥)는 21일 오후 '한인 및 흑인 커뮤니티 지도자 초청 만찬 기도회'를 개최했다. 4·29 LA폭동 20주년을 맞아 당시 폭동이 일어났던 사우스웨스트LA지역의 서던선교침례교회에서 진행된 이날 기도회에는 한흑 커뮤니티 교계 대표 및 커뮤니티 관계자들이 참석해 화합을 기원했다. 백종춘 기자

2012.04.2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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