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창궐한 올해 한인사회의 큰 어른으로 불린 ‘기부왕’ 홍명기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장이 타계했다. 단돈 300달러로 미국에 와 밑바닥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쌓아올린 한인 최대 부동산그룹 ‘뉴스타부동산그룹’ 남문기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한인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족적을 남긴 고인들을 뒤돌아본다. 장병희 기자
▶홍명기 총회장
홍명기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총회장이 8월18일 타계했다.
누구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그것이 성공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성공한 다음엔 뭘 할 것이냐는 질문엔 마땅한 답을 하지 못한다.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한 사람이 고 홍명기 총회장이다. 그는 한인들의 훌륭한 롤모델, 성공의 의미있는 기준이었다. 고인은 자신을 낮춰 기부와 봉사가 필요한 곳에서 리더십을 세웠지만 공로는 남에게 넘겼다.
고인은 5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해 피땀으로 키운 듀라코트사를 매각한 뒤 차세대와 커뮤니티를 위해 거액을 기부했다. “열심히 벌어 뜻있는 곳에 쓴다”는 신념 그대로였다.
고인은 정치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을 위해 2세의 정계 진출이 필요하다는 믿음대로 차세대 리더를 키웠다.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 미셸 박 스틸.영 김 연방하원의원, 데이비드 류 LA시의원 등 당적에 상관없이 한인 정치인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관여했던 미주도산안창호 기념사업회와 고인이 출연해 만든 M&L홍 재단은 계속 유지를 받들 예정이다. 지난 가을 기념사업회는 총회장을 공석으로 남긴 채 리버사이드 안창호 기념관 등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남문기 명예회장
4월 20일(한국시간) 남문기 뉴스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그가 40대부터 간경화로 투병했고 여러 번 간암 수술을 받았지만 간이식을 받아 완쾌를 예상했던 한인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고인이 앞으로 걸어갈 여정에 여전히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고생담과 전국 지사 30개의 거대한 부동산 비즈니스를 일군 성공담, 1000명이 넘는 에이전트들이 부자로 만든 것은 한인사회의 신화였다.
고인은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 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선 연합회장, LA 한인회장, 미주동포후원재단 이사장, 재미해병대전우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재외국민 참정권 등 해외동포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1998년 고인은 뉴스타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에 다녔던 경험으로 장학금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장학금 수여식 때마다 고인은 장학생들에게서 한 가지 서약을 받는다. “장학금은 그냥 받는 것이 아니고 빌려주는 것으로 나중에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되돌려주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고인은 서약대로 장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광일 씨름협회장
1월 13일 김광일 재미한국민속씨름협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한인사회 비영리단체, 특히 시니어 및 체육단체에서 그의 역할은 숨은 진주 같았다. 고인은 한인사회에서 빛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곳에 늘 있었다.
사우스베이 지역 한인단체, 미주 대구경북향우회 연합회, 재미대한체육회, 재미한국민속씨름협회, 재미한국노인회, LA노숙자돕기협의회 등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노숙자 재활치료 셸터 건립추진위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