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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발칙한 '깜짝쇼'

알리고 싶지 않다. 뭔가 확실한 결과가 나온 후에 쿨하게 공표하면 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게 관심이 없다. 내가 수필을 쓴다는 수필가라면 뭐? 그래서? 내가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해도 마찬가지다. 역시 내가 시를 쓰는 시인이 된들 누구하나 한쪽 눈 깜빡이며 그래? 대단하네! 그래 줄 사람 없다.
 
글을 써서 나 아닌 누군가에게 잠깐의 감동, 아주 흔한 한 조각 위로가 되어 주는데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램이 있다. 이루기 어려운 바램이지만 언젠가는 이루어 지겠지라고 믿으며 쓴다. 역시 돌아옴이 없다. 세월이 쌓여 갈수록 흐려지는 바램에 힘이 빠진다. 그만 절필할까.
 
짧게 표현을 줄여보면 에너지 소모가 견딜만 해지리라는 착각에 휘말렸다. 그래 그렇다면 시를 쓰자. 될까? 어렵다. 줄줄줄줄 감정을 모두 나열하던 긴 글을 줄이고 빼고 숨기면서 핵심만 표현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도전장을 냈다. 안되면 말고.  
 
아무개하면 미주문단에서 모르쇠 할 수 없는 이름을 감추고, 세상에 힘차게 소리치며 태어나 받았던 최초의 내 이름을 꺼내 걸었다. 시 세 편 응모하면서 킥킥대며 많이 웃었다. 아무도 내 발칙한 계획을 눈치채지 못할 것에 신이 났다. 나를 감추었으니 심사는 공정할 것이라 안심이다. 실력이 안되면 가차없이 탈락 시킬 수 있으니 그들에게 자유롭게 심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에 또 신난다.
 
원래 나란 인간은 어느 것에도 욕심내지 않는다. 갖고자 했다가 갖지 못해서 당하는 아픔이 싫다. 오르고자 희망했다가 오르지 못한 처절함을 견디기 싫어서다. 비겁하다 해도 난 그렇게 산다. 기대하지 않고 살다 기적 같이 내게 허락된다면 그 기쁨이 더 좋으니까. 역시 수 십년 가슴속에서만 키워온 나만의 시들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자니 떨린다. 한 번쯤은 인정을 받고 시인이란 문패를 걸어야 한다.
 
오랜 세월 숨어서 갈고 닦으며 쌓아온 실력들이 발휘해주길 소망하며 시를 지어 본다. 써도 모르겠고 가슴에 묻어도 모르겠다. 남의 시들을 읽고 또 읽어도 모르겠는 건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 이렇게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이다. 정말 모르겠다. 표현이 잘 맞게 튀어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어렵긴 왜 또 이리 어려운건가?
 
내가 쓰고 내가 읽어서 내가 뭔가 기쁨을 맛보아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을 못 받으면 시쓰기는 실패다. 자족하지 못한 채 짓고 허물고 다시 짓고 반복하면서 자신 없이 내어 밀었다. 시의 갖춤이 대강 맞춰진 상태라면 인정을 받을 것이다. 나를 숨기고 공정한 심사를 받고 드디어 시인으로 태어났다. 시인 박기순. 후련하다. 이젠 긴글 쓰다 힘들어 좌절 할 때면, 재빨리 짧게 쓰는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자격증 하나 더 따서 재산이 늘어났다. 시인 박기순. 시상식에서 깜짝 놀라며 입을 벌리던 문우들에게 시원하게 웃었다. 선생님이 박기순?? 이제부터 새 삶을 꾸려보자.

박기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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