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실생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고 상상이나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영화는 특별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컴퓨터그래픽이라는 기술 이전의 영화 화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어 영화 감상에 몰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지금은 이 기술로 만들어내지 못할 상상과 환상의 세계가 없다. 금방 밀림에서 잡아 온 것 같은 공룡이 커다란 이빨을 드러낸다.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500년 전 한양 거리는 우리 짐작을 넘어 처마 밑을 지나는 백성들의 땀방울까지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다. 1000년 후 미래의 세계는 화려한 장치들의 전시장이 되어 눈길을 돌릴 수 없게 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 영상에 몰입하여 가슴 설레며 빨려들게 하고 있다.
특별한 식당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음식이 나온다. 먹기 아까운데 하면서도 그저 눈에만 잘 간직하고 맛있고 특별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너도나도 가지고 다니는 성능 좋은 전화기 카메라로 먼저 잘 찍어서 저장한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특별한 음식의 영상을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고 또 특별한 사람들에게 보내어 소개한다. 받아보는 사람들 또한 그 멋진 음식 영상을 아주 즐거워한다. 음식을 씹을 때 전해지는 씹는 맛과 향기와 감촉이 식도락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 된다. 그래서 어느 영화에서 자기가 실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계가 설치한 프로그램에 의한 가짜 삶이라는 것을 알고도 진짜 삶을 찾으려는 동지를 배반하는 배반자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음식 씹는 모든 느낌이 정말 좋아.” 그 느낌이 단지 허상으로 꾸며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가짜 느낌조차 포기하지 못한다는 무서운 장면이었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동해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의 장대한 풍경이나 서해에서 해가 지는 장엄한 풍광을 사진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작은 네모 칸 안에 일출과 일몰의 모습이 그 장대하고 장엄한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그때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네모 칸 밖의 공간에서 그 장면을 만들어내던 전방위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여러 가지 풍광이 작은 사진에는 빠져있는 까닭이다.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무한정한 상품의 목록으로 거대한 사업 규모를 이룬 회사들이 유통업을 장악한 지 오래다. 오프라인 가게는 멸종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온라인 유통 거대 기업들이 지금 하나둘 오프라인 가게를 열고 있다. 온라인 영상으로 보는 상품들을 손으로 만져 보듯 느낄 수 없어 아쉬워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 여는 오프라인 가게들이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상점에 들어와 직접 사고자 하는 상품을 만져보고 확인하고 분위기를 느껴보고 매매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네모 칸 밖에서 확대되어 다가오는 풍광의 맛이고, 직접 씹어 보고 맛을 느끼고 향기를 맡으며 즐기는 풍미 있는 식사의 맛이다. 맵고 시큼한 맛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고 정말 사실 같은 음식 영상이어도 한 수저 떠먹어 볼 수는 없다. 네모 칸 안에 사진이 아무리 정밀하고 사실적이어도 그 전체의 웅대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 그림의 떡은 그저 그림일 뿐이야. 실제로 맛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림의 떡은 괜찮지 않아”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뛰어난 영상의 세계를 제공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있어 우리가 만나는 그림들이 마치 그 그림 속에서 우리가 움직이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뛰어다니는 듯한 지경을 느끼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거의 진짜 대면하고 느끼고 만나는 듯한 이 영상 세계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림의 떡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이미 그림의 떡 세계에 들어서 있는 지금 이것이 괜찮은 것인지, 괜찮지 않은 것인지 길 끄트머리에 물음표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