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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분노의 포도’를 다시 읽는 이유

Los Angeles

2022.10.2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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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차대전 당시 미국 농업은 기계화, 대형화되면서 농산물의 유럽 수출로 호황을 누렸다. 전쟁이 끝나 유럽에서 농업이 재개되자 수출길이 막혀 농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항 시기 중부지역에서 몇 년 연이은 자연재해가 발생해 농장이 황폐해졌다. 많은 농민이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소문만 믿고 캘리포니아로.
 
작가 존 스타인벡은 오클라호마까지 가 이주민들의 힘든 여정에 동행하면서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를 구상하고 썼다. 그는 이 소설에서 당시 소작 농민들과 이주 노동자들의 실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 그것을 불편하게 여긴 기득권층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퓰리처상과 노벨상까지 받은 작품이지만 그의 고향 캘리포니아와 소설 속 주인공 톰 조드가 살았던 오클라호마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었고 일부 주에서는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조드는 가족과 케이시 목사와 함께 낡은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여행이 얼마나 험난했던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행 중 숨지고 형과 여동생의 남편은 일행을 떠나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지만 일거리가 충분한 희망의 땅은 아니었다. 판로가 막힌 채 과잉 생산된 농작물, 넘쳐나는 일꾼들로 임금을 깎고 또 깎는 불공정한 현실, 가격 유지를 위해 농작물을 강에 버리는 농장주들, 그것을 비호하는 세력가들, 굶주린 노동자들은 분노의 눈동자가 포도알처럼 커간다.  
 
케이시 목사는 이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케이시 목사가 피살되자 조드도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위해 집을 떠난다. 가족들은 일거리를 찾아 옮겨 다니다 여동생 로즈가 사산하는 아픔을 겪는다. 어머니와 로즈가 그 지역에 닥친  홍수를 피해 언덕에 있는 헛간으로 들어갔다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노동자와 아이를 만났다. 로즈가 누워있는 노동자의  머리를 않고 자신의 젖을 꺼내 물린다. “ 드세요. 드셔야 살아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실시한 비상 경제정책의 후유증,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회가 세계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유럽은  경험한 바 없는 혹독한 겨울을 예상하고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상화 되어 있다.
 
한국도 이 격랑을 피해가기 힘든 모양이다. 노인 복지 예산을 삭감해 하루 11시간 일한 노인 일당이 겨우 만원 남짓이고,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다행히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 보조비를 상향 조정하는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 경제가 비교적 탄탄한 두 나라의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 차이는, 지향하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정부의 입장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스타인벡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서로 더 이해하고 더 아픈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세계인과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일 것이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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