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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살아 있으니 아프기도 하지

New York

2022.12.02 17:59 2022.12.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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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코끼리가
 
콧물도 흘리지 않고 마른 재채기를 한다
 
넓죽한 발바닥은 흙먼지를 긁어대고
 
오랏줄을 찾는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시로 밟아대는
 
말도 아닌 힘도 아닌 무시의 발밑에서
 
젖은 꽃잎과 젖은 낙엽들이 끔쩍이나 하던가
 
 
 
살아 있으니까 아프기도 하고
 
살아 있으니까 기다릴 수도 있지
 
쓴 물로 참아내던 생가지 꺾인 쓴 뿌리들
 
거꾸로 솟는 피 가라앉힌 분노의 함성이다
 
 
 
밖으로 나온 심장은 거리마다 터져 피를 쏟는다
 
혼을 달래며 죽음의 춤을 추는
 
바싹 마른 낙엽들의 바스락거리는소리들이
 
회오리의 나그네가 되었다
 
 
 
귀 없는 그대 곁에 흡혈기로 다가선다
 
눌리는 마지막의 순간을 뜬눈으로 호흡하며
 
기를 짜내던 젊은 영혼의 거리에서
 
그대 부르는 소리 귀 막고도 들리던 그 소리를
 
그대는 어찌 못 들었는가
 
 
 
패인 가슴을 찢고 울부짖는 넋들은
 
바람도 미친 거리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땅에서 올라올 물도 없는데
 
바싹 마른 잎맥의 호흡까지도 쓰레기로 묶이는구나
 
아무리 돌아보아도 잡풀도 자랄 수 없는
 
가시덩굴에 찢긴 길
 
그래도 견디며 살아 있으니
 
외치는 숨결이다 촛불을 끄지 말라고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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