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차 US OPEN이 열리는 펜실베이니아의 Oakmont Country Club 3번 홀, 4번 홀 중간에 전설적인 기도석 벙커가 있다 (Iconic Church Pew Bunkers) 공을 기도석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 깊은 벙커에서 허우적대야 하고 벙커 사이의 러프에 빠지면 몸의 평형을 유지하기 힘들다 선수들은 제발 기도석에 앉게 하지 말아주십사고 빈다 기도는 게임 전에 벙커에 앉아 올려야 한다 이 골프장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허허벌판에 길고 험한 코스를 만들었다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내와 지혜가 요구된다 Par는 좋은 스코어, 보기도 나쁘지 않다 애초 설계자인 Henry Fownes는 1903년 왜 코스 한가운데에 교회를 설립했을까 골프 애호가들을 벌주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늘을 무서워하고 자연을 존중하라고 했을 것이다 오만하면 지옥의 벙커에 빠지기 쉬우니 자신을 낮추고 항상 기도하라고 했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글마당 골프 기도석 기도석 벙커 벙커 사이 country club
2025.06.12. 18:00
누군가 비석 앞에 놓고 간 시든 꽃 한 송이 잿빛 하늘에 보낸 눈길 쇠락한 시간은 멈추어 있고 되돌아올 세월은 없어 바람이 그들 곁을 떠나면 적막 속에 묻어둔 빛바랜 사연들 잊혀진 발길이 남긴 적멸의 공허함만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어쩌다 찾아온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에 온몸을 기대어 보지만 흐려져 가는 남겨진 이름 시든 꽃송이로 지워지고 있다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비석 잿빛 하늘
2025.06.12. 17:59
요즘 부쩍 악몽을 꿉니다 검정입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많은 나는 분명 검정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도 없이 속으로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검정입니다 평생 고운 색만 찾아 열렬하게 나선 순례길 보이지 않는 그윽한 색을 찾아 나선 고고한 길 낮과 밤을 수천 번 수만 번 겪는 사이 하양이 검정으로 퇴색되어가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악몽을 멈출 수 있을까요 색은 섞을수록 탁해지니 날마다 빛만 가득 먹어볼까요 맑은 하늘만 마셔볼까요 빛으로 가득 채워진 내 몸이 투명해질 때까지 검정이 얇아질 때까지 악몽이 희석될 때까지 네가 좋아 네가 참 좋아 반복하며 나는 정화 중입니다 정명숙 / 시인글마당 정화
2025.06.12. 17:58
오랜 세월 크루즈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밴드가 연주하는 밤에 춤추러 가지 않았다. 남편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춤추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릴 때마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춤을 추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 한이 되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 배 안에 있어야 하니까 밤무대에서 춤을 꼭 춰야겠어. 나 춤추러 가는 것 말리지 말고 케빈에서 자고 있어.” “알았어. 마누라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도 나의 춤 사랑에 지쳤는지 흔쾌히 허락해 줬다. 나흘째 되는 날 큰맘 먹고 추러 갔다. 모두가 부부들이 왔다. 나만 혼자다. 연주가 시작된 지 15분쯤 후, 한 여자가 그녀보다 마른 남편을 끌어내어 추기 시작했다. 배 둘레가 키보다 더 굵었지만, 통통한 몸매로 잘도 흔들었다. 흥이 많은 와이프를 위해 마지못해 끌려나가 쑥스럽다는 듯 흔들며 그만 추었으면 하는 표정이다. 여자는 흥에 겨워 벌어진 입으로 남편에게 뭐라고 지껄이며 잘도 흔들었다. 갑자기 춤추는 여자만큼이나 통통한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나를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쳐다보는 눈초리가 예사 눈빛이 아니다. ‘혹시 레즈비언은 아니겠지?’ 비슷한 경험이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밴드가 연주하는 리버사이드 공원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브라운 피부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여자가 자꾸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나도 웃음으로 인사했다. “이 동네 살아요?” “네 당신은?”으로 시작한 대화가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레즈비언 파트너를 찾는다는 직감에 먼저 가겠다고 일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크루즈 춤으로 돌아가서 내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브라운 여자와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눈빛이 같다는 느낌이 들어 몸을 움츠렸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추워요?” “약간” 그녀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자 “그럼 우리 나가서 춤출래요?” 춤추고 싶어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와 함께 무대로 나가 추기 시작했다. 다른 키 큰 여자도 합세했다. 그리고 이어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나와 흔들었다. 밴드도 신나는 춤곡을 마구 연주하고 가수는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도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췄다. “우리 그만 자리에 들어갈까?” 그녀가 헐떡이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더 출래요.” 대답했더니 “그럼 한 곡만 더 추고 들어가지요.” 처음엔 신나서 추더니 힘든가 보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내가 물었다. “혼자 배 탔어요?” “아니. 남편은 피곤하다고 자요.” “내 남편도 지금 자고 있어요. 밥 먹을 때만 나와요. 나는 싱글처럼 혼자 돌아다녀요. 우리 내일 또 함께 출까요?” “글쎄 내일은 잘 모르겠는데.” 예상을 뒤엎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했지만, 내일은 나 혼자 서러도 흔들어야겠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영혼 브라운 여자 레즈비언 파트너 세월 크루즈
2025.06.12. 17:57
어린아이는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엄마랑 말을 탄 기억 옛날에 물놀이하던 기억 옛날에 놀이공원에 간 기억 아주 옛날에 갔었다고 했습니다 아주 옛날이란 말에 힘주어 발음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지금 아이는 7살 그러니깐 그 아이의 옛날은 5살 그러니깐 두 해 전의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것도 그 아이 에게는 엄연한 먼 과거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옛날이야기를 하고 살까요 옛날에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그 아이는 일주일 전도한 달 전도 일 년 전도 옛날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생생하게 기억나는 아이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온 옛날이야기가 전부 생각난다면 얼마나 먹먹한 삶을 살까요 박도준 / 플러싱글마당 옛날
2025.05.29. 17:36
긴 여행을 시작한다. 멜로디를 따라 우주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꿈을 꾼다. 노래의 손가락들 지나간 세월 속에 깊이 잠들어있던 추억들을 흔들어 깨워 창문을 두들긴다. 줄의 소리는 어머님이 고이 숨겨 두셨던 사랑의 눈물방울들 떠나간 사람, 잃어버린 사랑 어두움에 젖게하지만 신이 부여한 빛도 있지 않은가? 노래는 날개를 달고 신비한 언어와 곡조로 화합하여 푸른 들녘으로 비와 설경 속으로 잔잔한 바람과 함께 날아다니며 오늘도 동면에서 깨어난 비발디의 〈사계절- ‘봄’〉이 귓전을 맴돈다. 김복연 / 시인·웨스트체스터글마당 숨소리 음악
2025.05.29. 17:35
꿈속에서 꿈을 꾼다 XX 씨 X 시에 사망하셨습니다 가족이 ㄱㄴㄷㄹ으로 구겨진다 서로서로 접힌다 간혹 히스테리가 터진다 방금 몸에서 빠져나온 혼이 천장에 붙어 내 침대를 둘러싸고 늘어져 있는 가족을 내려다본다 나는 이토록 가뿐한데 무겁게 늘어진 가족을 어떻게 위로하지! 미안한데 나 방금 죽었거든 고통을 느끼는 몸을 작게 둥글게 말아 꼭꼭 접어서 심장박동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야 했거든 너무 슬퍼 말아요 너무 아파하지도 말아요 심장이 멈추면 가슴이 멈추면 혀가 멈추면 고통이 없어져요 몸이 없어져요 정명숙 / 시인글마당 꿈속 심장박동 틈새
2025.05.29. 17:34
굶주린 호랑이 달려가서 사슴을 잡는다 사슴은 말한다 호랑이야 왜 나를 죽이려고 하니? 너 자신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내가 잔인하다고? 호랑이는 혼자 되새겨본다 사람들도 배가 고프면 소 돼지를 잡아먹는데 사슴아, 너도 배가 고프면 풀을 뜯어 먹는데 그게 다 그렇게 돼 있는데 나도 배가 고파 너를 잡아먹는데··· 내가 잔인하다고? 왜 내가 잔인하다고 너는 생각하니? 조성내 / 시인·의사글마당
2025.05.29. 17:32
밤새도록 비가 왔다. 아침에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우비를 입고 리버사이드 공원에 갔다. 84가까지 내려가서 강가 진입도로 들어갔다. 다리 밑에 혼자서 웅크리고 자는 사람이 있었다. 자는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놨다. 강가를 따라 콜롬비아 대학 쪽으로 올라갔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가 안개에 묻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많이 사는 강 건너 뉴저지는 안개 속에 둥실 떠 있는 섬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루트 9A를 따라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차가 움푹 파인 도로를 지날 때 튀기는 물살을 피해 강가 쪽에 바짝 붙어 걸었다. 12마리 오리들이 조지 워싱턴 다리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가고 있다. 오리들도 나처럼 안개로 덮여 없어진 다리를 찾으려고 부지런히 가는 듯하다. 춥던 날에는 볼 수 없었던 오리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간다. 저 멀리 앞쪽에 또 한 무리의 동료들이 다리를 향해 가고 있다. 나도 강물을 보며 그들을 따랐다. 그중 한 마리가 짝없이 혼자 강 한가운데서 헤맨다. 짝을 잃었나? 아니면 고독을 즐기는 건가? 예전에 우리 부부는 아침에 함께 공원을 산책했다. 남편은 나이 들수록 더 바빠져서 나와 함께 걸을 일이 없어졌다. 그는 새벽에 7 전철을 타고 Vernon Blvd-Jackson Av에서 내린다. 퀸즈와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Pulaski bridge를 걸어 그린포인트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모를까 우리는 각자 걷는다. 혼자 떠도는 오리처럼 나 홀로 걸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짝 잃은 오리를 보면서 ‘외롭겠구나!’ 생각하다가 아마 오리도 질서 정연하게 함께 물 위를 떠도는 것보다는 자유를 즐기고 싶어서 혼자 있기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으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잊기가 어렵다. 멀리 있으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어 잊힌다.’ 언젠가 헤어질 우리 부부 사이 헤어지는 연습이라도 하는 양 걷는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외톨 오리 오리도 질서 조지 워싱턴 강가 진입도로
2025.05.29. 17:31
오월은 청춘이 입은 초록빛 드레스 햇살은 그 위에 수놓은 금실 자수 바람은 감춰둔 연인의 편지 꽃잎마다 숨은 이름을 읽고 시간은 고백처럼 느릿느릿 번진다 오월은 창 너머의 빛나는 장면 사람들의 하루를 반짝이게 하는 작은 기적의 연속 오월은 말 없는 시인 마음속 가장 깊은 은유를 침묵 속에서 읊조린다 최영배/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부총재글마당 초록빛 드레스 금실 자수
2025.05.15. 17:56
세월에 긁히고 아픔에 찔리고 슬픔에 털리고 기쁨에 말렸다 젖은 가슴 쥐어짜며 머리카락 쥐어뜯고 못 본 척 모른 척 그렇게 살았다네 지나보니 그렇더군 인생살이 별거 아녀 그냥 그러고 살어 이강민 / 시인글마당 친구
2025.05.15. 17:55
해가 지는데 울적한 밤을 새우진 말라 하네 밝은 아침이 올 것이므로 혼자 가는 길은 외로움이 아니라 하네 누군가 옆에 있어도 혼자서 가는 길이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므로 옛것이라고 포기하지 말라 하네 묵은해 자리에도 빛이 드는 것이니 새로운 물길을 트라 하네 흐르는 물은 함께 가는 길이니 원망은 말라 하네 앙금의 꽃이 떨어진 후에야 사랑의 꽃이 보이므로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묵은해 자리
2025.05.15. 17:54
700년 된 거대한 성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 트라카이 궁전,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 성은 여러 깊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다 성 주변에는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집단촌이 있었다 폴란드가 이 요새를 여러 번 공략하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2년 전 10월 하순 발틱의 겨울은 뉴욕보다 빨리 왔다 트라카이 궁전에는 찬비가 내렸다 시즌 마지막 관광객들은 비바람에 벌벌 떨었다 강가의 작은 유람선은 갈매기 승객 몇 명을 태우고 술에 취해 온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춥고, 외로워 독주를 마신 것 같다 비에 쫓겨 기념품 가게에서 모자를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점원은 말했다 이 오래된 성을 싸게 드립니다 머리에 지고 다니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리투아니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발틱 소국이지만 가을 하늘이 무척 아름답고, 좋은 천연 버섯과 블루베리가 흔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사는 나라라고 최복림 / 시인글마당 궁전 궁전 리투아니아 기념품 가게 갈매기 승객
2025.05.15. 17:53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다. 날씨가 풀리는 듯하다가 다시 추워져 움츠리기를 반복했다. 옷을 얇게 입고 나가서 감기에 걸렸다. 다른 해 같았다면 남쪽 나라 바닷가에서 일광욕했지만, 4월에 떠날 여행 일정이 잡혀서 참고 긴 겨울을 뉴욕에서 버텼다.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수영복 두 벌을 장만해 놓고 마음은 이미 바닷가에 가 있다. 팬데믹 기간, 여행하지 못할 때, 나는 브루클린 브라이턴 비치에서 일광욕했다. 아침 9시경 원피스 안에 수영복을 입고 42가에서 Q 트레인을 타고 한 시간가량 앉아 있으면 마지막 정류장인 브라이턴 비치에 도착한다. 나는 깔개만 가져갔다.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타슈켄트(Tashkent: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슈퍼마켓이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조지아 등 중앙아시아 음식과 식료품 그리고 200 여종의 따뜻한 뷔페를 판매한다. 그곳에서 점심 요기할 음식을 사서 비치로 향했다. 물에 들락거리다 배고프면 먹고 누워 한잠 잤다. 3시경, 집에 오는 지하철을 타기 전, 다시 마켓에 들러 장을 봤다. 서너 날은 끼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지냈다. 한식치고는 약간 퓨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거의 한식 같다. 당근 김치, 오이지, 만두, 돼지 수육도 있고 온갖 한식 비슷한 것이 많다. 브라이턴 비치에 갈 적마다 골고루 사다가 맛보았지만 실망한 적이 없다. 팬데믹이 끝나고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되자 더는 가지 않았다. 이따금 타슈켄트 슈퍼마켓 안에 진열된 수많은 음식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요즈음 조지아 음식이 뜬다더니 타슈켄트 슈퍼마켓이 지난 3월 6일 뉴욕대학 인근 (378 6th Ave. & Waverly Place)에 오픈했다. 브라이턴 비치만큼 뷔페 음식이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비집고 골고루 집어 왔다. 팬데믹 기간에 먹은 맛만은 못하지만, 옛 기억을 살리며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타슈켄트 슈퍼마켓 타슈켄트 슈퍼마켓 브라이턴 비치 브루클린 브라이턴
2025.05.15. 17:52
화장을 해도 다시 젊어지지 않을 얼굴 그래도 화장을 해야지 곱게 늙어야 마음 또한 고와지겠지 아무리 운동을 해도 다시 젊어지지 않을 몸 그래도 운동을 해야지 근육이 튼튼해져야 마음 또한 단단해지겠지 아직도 머리가 말짱하니 얼마나 좋아 시를 쓰면서 살아있음을 즐겨야 하지 않겠나! 중도 / 시인·의사글마당
2025.05.01. 17:44
어제는 겨울 오늘은 여름 뉴욕의 봄은 갈팡질팡 무섭게 달려오던 봄 머뭇대다 턱에 걸렸다 봄 마중 나온 아지랑이 안절부절못하더니 짱짱한 햇살 요 며칠 대지를 콕콕 찌른다 무섭게 번지는 연두 세상은 온통 연두 가루 언 땅속 깡마른 대지 속 누가 이 뿌리를 꼭 움켜쥐고 있었는가 봄비로 보드라워진 흙을 열고 갓 태어난 숨 가쁜 생명들의 속삭임 연두 뒤로 노랑 분홍 자주 지고 이제 진달래가 세상을 뒤덮을 차례 지천에 흐드러진 꽃들의 합창 소리 친구야 이 환장할 봄기운 몸에 두르고 우리 꽃에 취해보자 봄에 취해보자 정명숙 / 시인글마당 기적 연두 가루 합창 소리
2025.05.01. 17:43
동트는 새벽 은빛으로 일렁이는 모래사장 바다 갈매기 외 다리로 서 있거나 동그마니 앉아 분홍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석상처럼 고요합니다. 우주의 무한한 평화 하얗게 하얗게 내려앉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날개 치는 소리 홀로 빛나는…. 잠시 잠깐 새가 되고 싶었던 그 이른 새벽의 겨울 바다 이춘희 / 시인글마당 갈매기 겨울 바다
2025.05.01. 17:42
파아랗게 피어난 잎새들 봄을 간지른다 기다림의 꿈 하나둘씩 돌아온 활짝 핀 꽃 날개 봄의 건반을 두들기고 먼 길 고향을 보며 지금쯤 강남 간 제비 다시 오고 있겠지 차고에 텅 빈 둥지 42살 그리움의 모습들 4월 15일 차고 앞 행여 하늘을 보았다 눈에 익은 삼각형 검은 날개 그들의 모습이다 지난해 고향 집 떠났던 제비! 집 떠난 자식 돌아온 듯 심장의 박동은 아내를 불렀다 두 마리는 지붕을 선회하고차고 속 둥 지로 빨려들었다 아…안도의 귀향! 수천 마일의 긴 여정 오늘 밤은 평안의 자리에 쉬리라 오랜만의 둥지에 포개진 두 마리 따스한 꿈을 꾸고 있다 *제비 평균 수명 4~5년, 대를 이어서 오고 있음 오광운 / 시인글마당 제비 평균 지난해 고향
2025.05.01. 17:42
전시회를 함께 하는 인도에서 온 나이 어린 통통한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반가워서 포옹했다. 그녀 코트에서 대마초 냄새가 났다. 내가 물었다. “너 위드 피냐?” “응. 너는?” “오래전 친구들과 핀 적 있어. 더 나이 들고 몸 상태가 시원찮고 고통이 오면 피우려고. 이제 합법화됐잖아.” 내가 대답하자 그녀가 말했다. “너 피고 싶으면 내 스튜디오에 와. 함께 피자.” 그녀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초대했다. 결혼하고 바로 어느 해 연말, 맨해튼 그랜드 스트릿, 커다란 스튜디오에 많은 친구가 모였다. 그중 한 친구가 워싱턴 스퀘어에서 사 온 대마초를 우리는 돌아가며 폈다. 그 당시는 불법이어서 숨어서 피는 중이었다. 갑자기 내 옆에서 피던 여자가 “불이야. 불났어. 너무 뜨거워.”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그녀를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했다. 그녀는 또다시 “물이야. 홍수 났어. 나 떠내려가. 살려줘. 나 좀 잡아줘~”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왕좌왕했다. 난 대마초를 피우니까 평면적으로 들리던 음악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여 음정 하나하나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듯 들렸다. 음악에 빠져 4차원 세계에서 헤매는데 갑자기 여자가 불이야. 물이야.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욕이 왕성해진 나는 먹을 것을 찾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늘어지게 하는 대마초를 계속 피던 친구들은 참 게을렀다. 정오가 지나야 일어들 나서 꼼지락거리다 어둑해지면 다시 피곤했다. 나는 돈도 없고, 살기 바빠서 자연적으로 그만두었다. 두 아들 모두 Climbing Gym에서 바위를 탄다. 그러다 큰 아이가 떨어졌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들락거려도 낫지 않다가 3개월가량 대마초로 효험을 보고 회복됐다. “너 자주는 피지말아. 게을러진다.” “냄새가 싫어서 필요할 때만 해요. 엄마도 몸이 아프면 펴요. 사다 줄까?” “지금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몸이 나빠지면 필 거야. 그때는 네가 사다 줘.” “친구 아버지가 위드 라이선스가 있어서 가게가 여러 개 있어요. 라이선스 없는 가게들은 문을 닫았잖아요.” “어쩐지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져서 궁금했는데. 네 친구 아버지 돈을 긁고 있겠다.” 나는 대마초가 합법화된 후, 노후 대책으로 우선순위에 올려놨다. 고통이 심해지면 피면서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여유롭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서. 이수임 / 화가·맨하탄글마당 대마초 노후 3개월가량 대마초로 대마초 냄새 위드 라이선스
2025.05.01. 17:41
봄 눈 오는 날에는 지붕에 올라라 가늘고 가파른 사다리 타고 발가벗은 나무에 눈꽃이 피면 내 마음에 그리움 꽃 피어나겠지 봄 눈 나리는 날에는 곰산에 올라라 가늘고 꼬부랑 사다리 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되면 우리 어머니 찾아오시겠지 봄 눈 날리는 날에는 남산에 올라라 가늘고 아련한 사다리 타고 실 폭포에 물오르면 듣고 싶은 고향 소식 들려 오겠지 이강민 / 뉴저지글마당 꼬부랑 사다리 고향 소식 우리 어머니
2025.04.17.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