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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노후엔 위드(대마초)를 피며

전시회를 함께 하는 인도에서 온 나이 어린 통통한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반가워서 포옹했다. 그녀 코트에서 대마초 냄새가 났다. 내가 물었다.   “너 위드 피냐?” “응. 너는?”     “오래전 친구들과 핀 적 있어. 더 나이 들고 몸 상태가 시원찮고 고통이 오면 피우려고. 이제 합법화됐잖아.” 내가 대답하자 그녀가 말했다. “너 피고 싶으면 내 스튜디오에 와. 함께 피자.”   그녀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초대했다.   결혼하고 바로 어느 해 연말, 맨해튼 그랜드 스트릿, 커다란 스튜디오에 많은 친구가 모였다. 그중 한 친구가 워싱턴 스퀘어에서 사 온 대마초를 우리는 돌아가며 폈다. 그 당시는 불법이어서 숨어서 피는 중이었다. 갑자기 내 옆에서 피던 여자가 “불이야. 불났어. 너무 뜨거워.”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그녀를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했다. 그녀는 또다시 “물이야. 홍수 났어. 나 떠내려가. 살려줘. 나 좀 잡아줘~”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왕좌왕했다. 난 대마초를 피우니까 평면적으로 들리던 음악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여 음정 하나하나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듯 들렸다. 음악에 빠져 4차원 세계에서 헤매는데 갑자기 여자가 불이야. 물이야.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욕이 왕성해진 나는 먹을 것을 찾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늘어지게 하는 대마초를 계속 피던 친구들은 참 게을렀다. 정오가 지나야 일어들 나서 꼼지락거리다 어둑해지면 다시 피곤했다. 나는 돈도 없고, 살기 바빠서 자연적으로 그만두었다.     두 아들 모두 Climbing Gym에서 바위를 탄다. 그러다 큰 아이가 떨어졌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들락거려도 낫지 않다가 3개월가량 대마초로 효험을 보고 회복됐다.     “너 자주는 피지말아. 게을러진다.”   “냄새가 싫어서 필요할 때만 해요. 엄마도 몸이 아프면 펴요. 사다 줄까?”   “지금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몸이 나빠지면 필 거야. 그때는 네가 사다 줘.”   “친구 아버지가 위드 라이선스가 있어서 가게가 여러 개 있어요. 라이선스 없는 가게들은 문을 닫았잖아요.”   “어쩐지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져서 궁금했는데. 네 친구 아버지 돈을 긁고 있겠다.”   나는 대마초가 합법화된 후, 노후 대책으로 우선순위에 올려놨다. 고통이 심해지면 피면서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여유롭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서. 이수임 / 화가·맨하탄글마당 대마초 노후 3개월가량 대마초로 대마초 냄새 위드 라이선스

2025-05-01

[글마당] 애착의 실타래

30년 전, 1994년 일인데도 선명하게 어떤 애착의 끈으로 당기는 풍경 속에 나는 있었다. 마드리드를 방문하기 좋은 달인 10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청한 날이었다. 나는 지인들과 함께 전시하러 마드리드에 갔다. 그 당시 그곳에 사는 화가 윤경렬 씨가 운전하는 노란색 폭스바겐 타입 2 밴을 탔다. 밴의 창문에 노랑 꽃무늬 커튼이 쳐져 있었다. 유치원 가는 기분으로 들떴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봤다. 덤불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는 들판을 보며 나는 막연한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느긋하게 햇볕 아래 끝 간데없는 들판이 누워 잠든 듯 뭉게구름 아래서 조는 듯했다. 덤불들은 서로 기대어 속삭이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렸다. 저항이나 부딪힘이 없는 아득한 평온만이 숨 쉬는 풍경 속을 차는 계속 달렸다.     드넓은 들판 한 귀퉁이에 있는 윤 작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단색화 초기, 색채가 실종된 무채색 환경에 물들여진 나로서는 그의 주황과 노랑 그리고 보라색의 강렬한 색감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따사로운 스페인 날씨와 자연을 옮겨 놓은 듯한 소박함과 순수함, 솔직 담백한 그의 화풍이 나를 순수한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단색만을 고집하면서 억지로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니다. 뉴욕 작가와 LA 작가가 사용하는 색감이 다르듯이 그만의 독특한 스페인 색감 작업에 매료되었다.   윤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풍경과는 또 다른 마드리드 도심 속 윤 작가 부인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들은 마드리드에서 아이 여럿을 키우며 작업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뉴욕에서 온 우리를 반겼다. 우리를 폭스바겐 밴에 태워 마드리드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저녁 식사에도 초대했다. 부부의 배려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어둑해지는 마드리드 번화가였다.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윤 작가 부인이 어둠에 묻혀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피곤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자 가슴이 뭉클, 몹시 아렸다. 얼마나 힘들까? 마드리드에서 유학 생활하며 화가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여럿을 키우는 중에 전시한다고 몰려와 들떠 있는 우리를 대접하느라. 고개 숙인 그녀의 모습이 잊히지 않고 내 뇌리에 박혀있다. 윤 작가는 같은 해인 1994년 스페인을 떠나 뉴저지에 정착했다.     윤경렬 작가의 개인전이 4월 10일~6월 7일까지 맨해튼 Po Kim Gallery, (417 Lafayette Street)에서 전시 중이다. 나는 오프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일찍 갤러리에 들어섰다. 그의 작품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긴 했지만, 스페인 색감의 끈을 놓지 않은 그의 작품의 성실함과 진실함이 나를 애착의 끈으로 또 끌어당겼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실타래 애착 마드리드 도심 스페인 색감 마드리드 곳곳

2025-04-17

[글마당] 자랑스러운 한인 후세들

한인 이민 역사도 오래되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고국을 떠난 1세들은 먼 미국까지 와서 몸이 부서져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 결과 1.5세와 2세들이 어느 민족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았다. 1세와는 달리 그들은 전문직을 가졌고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친구의 자식이 잘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들과 같은 힘든 이민 생활을 거쳤기에 내 자식 일인 양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인이라는 생각에 마구 자랑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데 그 부모야 오죽하겠는가! 커다란 징이라도 두드리면서 큰소리 내어 자랑해도 된다.     아주 오래전, 내가 퀸즈 어느 성당에서 라인 댄스를 춘다는 중앙일보에 난 내 글을 읽고 독자가 찾아와 함께 춤을 춘 적이 있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했다.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했다. 나는 그녀의 외모에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소탈한 그녀 성격으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북클럽에 조인했고 지금까지도 좋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딸 아그네스 김(Agnes Kim)이 애니메이션 시리즈 그렘린: 모그와이의 비밀(Gremlins: Secrets of the Mogwai)로 제3회 어린이 및 가족 창작 예술 에미상에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부문 최우수 캐스팅상을 받았다. 이 시상식은 2025년 3월 15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텔레비전 시티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이 작품은 인기 있는 그렘린 프랜차이즈의 프리퀄로, 많은 팬에게 사랑받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캐스팅상은 목소리 연기자들을 잘 선정하고 조합한 공로를 인정받는 상이므로, 기여가 높이 평가된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온 동기 중 회화 전공자는 월트 디즈니에서 만화를 그렸고 조각 전공자는 치공 쪽 일하며 이민 생활 기반을 다졌다. 독창성이 요구되는 예술 분야인 애니메이션으로 에미상을 받은 친구 딸이라서 무척 자랑스럽다.     나는 이민 생활 어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잘됐다고 부모들이 소식을 전할 때마다 만성 체증이 확 뚫리는 쾌감을 느낀다. 이민자 부모들은 누구나 똑같은 어려움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먼 타국에서 언어에 늘 주눅이 들어 힘겹게 살면서 자식을 그만큼 키웠다는 것은 물론 아이들도 노력했지만, 부모의 뼈 깎는 노력 없이는 힘들다. 우리는 누구의 자식이든 잘 되면 한국인으로 함께 아주 큰 소리로 자랑하고 또 자랑합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한인 후세 한인 후세들 한인 이민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2025-04-03

[글마당]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예찬론 우리 친정아버지 아버지 얼굴 이름 영어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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