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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통행금지

New York

2025.06.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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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im lee, silent 1, 2025, monoprint, 9 x 6 inches

sooim lee, silent 1, 2025, monoprint, 9 x 6 inches

결혼 전엔 친정아버지가 결혼 후엔 남편이 나의 외출 통행 시간을 정해놓고 시간을 관리했다.
 
아버지에게는 용돈을 받으려고 지켰지만, 남편의 통행금지 시간은 억울하다. 아이들 잘못될까 봐 모범을 보이며 항상 아이 곁에 있느라고 금지 시간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다 커서 집 떠났는데도 나의 금지 시간은 이어졌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참았다.
 
“우리 젊은 아이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가자.”  
 
“아버지, 우리가 그런 곳에 가면 아이들이 불편해해요. 그냥 적당한 데 가요.”
 
“나이 들수록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틈틈이 기웃거려야 해. 그래야 젊은 기를 받아.”
 
다행히도 나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젊은 화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밤늦게 논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간다고 절대 먼저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만, 그날의 만남은 과거가 되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날 하루 그 만남에 올인하다 늦을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반기지 않는 남편은 친정아버지보다 더 꼰대다. 남편은 저녁밥 먹고 나면 졸다가 8~9시경에는 잔다. 자다가도 내 통행 시간은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전화해서 소리 지른다.
 
“어디야? 지금 몇 신데 아직 놀고 있어.”
 
아이들과 남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나는 남편에게 통행금지 해제를 요청했다.  
 
“나는 어릴 때 아프면 엄마가 자매 많은 집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어. 그러면 앓던 병도 사라지고 밥도 잘 먹었거든. 난 놀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내가 집에 처박혀 아프다고 징징거리다가 우울증이라도 생기면      좋겠어. 내 친구 남편은 12시까지 집에 돌아오면 된다고 했데. 나도 통행금지 시간을 연장해 주든지 아니면 해제해 주든지. 난 자유인이라고.”
 
“어 그래. 그러면 자정까지 연장해 줄게.”
 
“알았으니까. 조금 늦는다고 전화질하지 말고, 그냥 푹 주무세요.”
 
결혼 40년 만에 나의 통행금지 시간이 밤 10시에서 12시로 두 시간 연장됐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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