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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경상도 사나이

New York

2025.07.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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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im lee, unknow town 9, 2025, monoprint, 8 x 10 inches

sooim lee, unknow town 9, 2025, monoprint, 8 x 10 inches

고추 조림, 김치와 배추 된장국을 떠 놓고 남편 맞은편에 앉았다. 밥상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남편 눈치를 살폈다. 국에 밥을 말아 먹던 그가 한마디 한다.
 
“배추 된장국이 진국이야. 최고의 건강식이지.”  
 
시래깃국을 먹고 자란 남편은 매일 된장국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의 ‘진국’이라는 말에 옛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살만한 옷이 있나 보려고 종로 지하상가 옷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머, 너 수임이 아니야.”
 
“어머머, 미정아 웬일이니?”
 
“나 여기서 일해.”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진국이 생각나니?”
 
“그 아이 잘생기고 남자다워 무척 인기 있었잖아.”  
 
“너 학교 졸업하고 그 애 만난 적 있니? 진국이를 내가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혹시나 너는 그 애 근황을 알고 있나 해서. 나야 이미 결혼해서 끝난 일이지만.”
 
“어머머 언제? 누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남쪽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만난 경상도 남자하고.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예전에 너희 집에 가서 밥통에 있는 밥 다 먹고 삼립빵을 또 먹어도 네 엄마가 한창 클 때라며 더 먹으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미정이는 내 초등학교 착한 단짝이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 따라갔다. 어찌어찌해서 그녀가 사는 곳에 갔는지는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산다는 집 구조를 한국 드라마에서 서너 번 본 적 있다. 옥탑방으로 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있고 방 한 칸이 훤하게 보이는 구조였다. 우리가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의 남편이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상냥하게 인사했다. 그는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저씨 인상이다.
 
“수임아, 방에 들어가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들어가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친구 남편이 몹시 화가 난듯해 무서웠다.  
 
“나 그냥 여기 있을게.”
 
친구도 남편 눈치가 보이는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문가에 서 있었다. 친구가 저녁상을 차려 들고 남편 앞에 가져다 놓으려는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밥상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를 쏘다니다 온 거야.”
 
에구머니나! 난 너무 놀라서 냅다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났다. 경상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나이 하면 밥상을 걷어차는 남자로 기억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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