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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가혹했고 그녀는 아름다워서 불행했다

Los Angeles

2022.12.23 18:43 2022.12.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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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사주(Corsage)
황후의 삶을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의 말년을 그린 시대극 ‘코르사주’. 오스트리아의 2023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 출품작. [IFC Films]

황후의 삶을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의 말년을 그린 시대극 ‘코르사주’. 오스트리아의 2023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 출품작. [IFC Films]

헝가리 출신으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면서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된 엘리자베스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족 여성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황후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황후의 비극적 삶을 토대로 한 시대극 ‘코르사주’는 오스트리아의 2022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 출품작이다.  
 
근래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마리 크루거 감독의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시대극 ‘코르사주’는 엘리자베스 황후의 말년에 집중한다. ‘As Tears Go By’와 같은 현대의 발라드가 삽입되고, 영화가 처음 발명됐던 19세기 말 초기의 필름 클립이 재연된다. 영화는 미녀 왕비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엘리자베스 황후의 삶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그리고 생존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1877년 빈. 유럽의 트렌드를 좌우하던 엘리자베스 황후(비키크리엡스)가 마흔에 접어든다. 황후가 돼서도 오스트리아의 엄격한 황실 예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녀는 사회적 노년으로 인식되는 마흔이 되면서 아름다운 용모를 유지하기 위해 코르셋을 조이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 그러나 한때의 젊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황후의 외모에 대한 강박증은 거식증에 가까운 병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한다.  
 
황후가 되기 전 바이에른에서부터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던 엘리자베스는 신혼 초기부터 요제프왕의 어머니와 자주 마찰을 해왔다. 엄청나게 보수적인 궁정을 피해 잦은 외유에 나서는 그녀는 가는 곳마다 옛 애인들과 화려한 유희를 즐긴다. 남편 요제프왕은 마마보이의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랏일에만 몰두,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처럼 남편,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엘리자베스의 삶은 점점 더 외로워져만 가고 대중들로부터 나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한다. 남편에게 정부를 소개해주고 그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늙어가는 여인의 고독이 읽힌다.  
 
‘코르사주’는 근대의 문턱에서 길을 잃고 영혼에 상처를 받은 한 여성의 기록이다. 장엄하게 흐르는 엔딩의 숨 막히는 레퀴엠! 그녀에게 던져진 그 시대의 가혹한 시선은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의 마음과 가슴에 그대로 전해진다. 참으로 기념비적인 여성 영화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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