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세상을 떠난다는 말

조현용 교수
그래서 표현을 바꿉니다. 완곡하게, 둘러서 표현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런 표현을 완곡 표현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뜨다, 세상을 떠나다’라고 표현하는 게 간단한 방법입니다. 죽었다는 말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뜨다’나 ‘떠나다’는 여전히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왠지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 간 곳을 분명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쓰는 표현이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갔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저승은 저 생(生)을 의미합니다. 이쪽을 마감하고 저쪽에서 다시 사는 셈입니다. 저승을 저세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저세상에도 종류가 있겠지요. 저승에는 지옥이 있을 수 있으니, 구체적으로 천국에 갔다거나 천당에 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희망 사항이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애매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천(召天)하셨다는 쓰기도 합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죠.
언어권이나 문화권마다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숨이 끊어졌다는 표현이나 눈을 감았다는 표현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숟가락을 놓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숟가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언어권에 따른 죽음에 대한 표현만 비교해 보아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종교에 따라서도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납니다. 어쩌면 종교야말로 죽음과 가장 관계가 깊을 겁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승려라면 열반(涅槃)에 들었다는 표현을 합니다. 모든 번뇌를 벗어난 경지가 열반이니 어쩌면 최종 목표가 열반일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소천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소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善終)이라고 표현합니다. 선종은 좋게 마무리했다는 의미입니다. 큰 죄 없이 세상을 떠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종은 특별한 죽음은 아닌 셈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씁니다. 주로 죽었다는 말을 높일 때 씁니다. 어린 죽음 앞에서는 돌아갔다는 표현을 잘 안 합니다. 돌아가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온 곳이 있다는 겁니다. 온 곳이 있기에 돌아갈 곳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살면서 늘 온 곳을 생각하고,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철학이고, 종교네요.
우리는 누구나 온 날에서는 멀어지고, 돌아갈 날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모든 번뇌를 벗어나고, 좋은 저세상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곳이 하늘이라면 하늘나라로, 그곳이 서방정토라면 서방정토로 가면 좋겠습니다. 선종을 꿈꿉니다.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칩니다. 교황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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