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이 멀다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아내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가서 나오지 않으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텔레비전을 보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 일어나서 주차장으로 나가려는데, 아내가 밖에서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와 곧바로 주차장으로 갔다고 했다.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아내가 나가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아내를 떼어놓고 혼자 다니는 ‘전과’가 있다. 오래전 일이다. 그랜드캐년에 갔었다. 그곳은 몇 번 갔어도 항상 그 웅대함에 압도당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흙탕물이다. 누군가가 “음료수로 마시기는 너무 걸쭉하고 농사짓기는 너무 묽다”라고 했다. 나는 군중과 같이 움직였지만, 아내는 풀 한 포기, 돌 하나를 세심히 관찰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내를 놓쳤다. 한 참 돌아다니다가 쉼터서 만났다. 아내는 뿔이 났다. 혼자 다니다가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어찌 혼자 구경 왔느냐 묻더란다. 아내는 “당신은 날 생과부로 만들었어”라고 툴툴거렸다.
단체 여행을 가도 아내를 깜빡 잊어버리고 혼자 다닌다. 몇 년 전 동유럽에 갔었다. 안내자는 나와 아내가 따로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해, 아내의 손을 끌어다 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같이 다녀요”라고 주의를 줘 모두 웃었던 일도 있다.
성경에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인천에서 경기도 향남의 시골 초등학교로 전근 발령이 났다. 미군 부대 박봉으로 시동생을 도와주며 살아가는 남편을 보다 못해 교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매주 토요일이면 한 시간씩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인천에 왔다. 그리고는 하룻밤 자고 다시 향남의 학교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냉면도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아들이 8개월 조산아로 태어나서 2파운드가 되지 않았다. 아기의 포동포동한 모습은 없고 작고 약하기만 했다. 마침, 인천 기독 병원에서 인큐베이터를 최초로 도입한 혜택으로 아들을 살렸다. 아내는 교사를 포기하고 아기를 키우는 데 전념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지금 청년 장로 그리고 심장전문의로, 매년 필리핀으로 단기 의료선교를 다녀온다. 모두 천우신조(天佑神助)다.
아내가 3년 전 뇌졸중을 일으켜 심신이 쇠약해졌다. 나도 구순을 넘겨 걸음걸이가 시원하지 않은 몸으로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다. 아내에게 빨리 보상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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