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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5·16과 잊혀진 한강다리 전투

한국에서 발행된 5월 달력을 보면 많은 기념일이 있다.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동학농민혁명기념일(11일), 스승의 날(15일), 18일: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부부의 날(21일), 석가탄신일(24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5월 16일에는 아무 표시가 없다. 하지만 65년 전의 5월16일은 대한민국의 ‘역사 수레바퀴’가 초 스피드로 돌아갔던 날이다.     1961년 5월 15일 밤, 한강 하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제1여단 예하의 증강된 제1대대 병력 1300명은 완전무장을 한 채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밤 12시쯤, 여단장과 대대장의 지휘 아래 트럭에 탑승, 서울로 향했다. 5·16 군사 정변의 시작이었다.     부대는 새벽 2시쯤, 한강 인도교 앞에 도착했다.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와 철교, 2개의 다리만 있었다) 한데 인도교 입구에는 육군 헌병대 소속 지프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막아섰고  현병들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해병대 차량 행렬 선두에 있던 2중대장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육군 헌병대 대위가 소리쳤다. “참모총장 명령으로 한강 다리는 폐쇄되었소. 즉시 돌아가시오.” 그러자 해병대 중대장은 “우리는 수도 서울 방어 훈련 중이오. 육군 참모총장이 해병대 훈련에 명령을 내릴 수는없소. 다리를 통과해야겠소!”라고 소리치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때 지프 한 대가 달려 나왔다. 해병대 대대장이 탄 차였다. 그는 차에서 뛰어내리며 “즉시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그 헌병대 대대의 헬멧 위쪽을 향해 권총을 쐈다.     어둠을 뚫고 새벽공기를 가른 그 한방의 총소리,  그것은 5·16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신호탄이었다. 그러자 육군 헌병들은 급히 다리 쪽으로 되돌아 달려갔다. 그 직후 다리 쪽에 포진해있던 헌병부대가 해병부대를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헌병부대는 이미  노량진 방향, 중지도 방향, 그리고 다리 끝 서울 진입로 등에 3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던 해병부대는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약 2시간여에 걸쳐  총격전이 벌어졌다. 헌병대의 피해는 알려진 바 없으나 해병대에서는 1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나의 소대원 중에서도 하사 한 명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추후 정부 당국은 5·16을 ‘무혈’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치열했던 한강 전투와 해병들이 흘린 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재까지도 5·16 군사 정변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5·16,  그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지금의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만년 동안 지독한 가난에 쪼들리고, 외신 기자들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필 수 없다'며 희망이 없는 나라로 무시당하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날 한강 다리 전투에서 흘렸던 해병들의 피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택규 / 트루스 역사문제연구회 대표열린광장 한강다리 전투 해병대 중대장 해병대 대대장 해병대 훈련

2026.05.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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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민초들 마음

강물과 절벽에 둘러싸여 있던 소년 왕의 눈빛은 외롭고도 선했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문종의 유언으로 어린 왕을 보위하던 원로대신들을 제거하고, 이들과 뜻을 같이한 안평대군을 역모로 모함한다. 그는 또 거짓 어명으로 살생부에 적힌 반대파들을 죽이며 실권을 잡는다. 수양대군이 왕이 되자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은 신체를 찢는 거열형 등의 극형을 당했는데, 그들의 통한의 심정은 글로 남아있다.     이개는 ‘저 촛불 날과 같아서 내 속도 타는 줄 모르네/ 뼈마디가 녹아내려 재가 되어 흩어져도/ 임 향한 이 내 마음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네’ 라고 비분강개를 토했고, 성삼문은 낙랑장송으로, 박팽년은 야광명월로 굳은 절의를 보였다. 유응부는 ‘하물며 못다 핀 꽃’으로 단종의 처지를 슬펴하였다.     또한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불후의 작품은 시어마다 애절함을 품고 있다. 이 글은 당시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지만 영월 사람들이 전하고 외우고 있는 것을  중종 때 김지남이 한문으로 된 단가로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연려실기술, 제4권〉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아무튼 왕방연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 때 사림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은 훗날 세조의 공신들이 중심인 훈구파에 의해 피바람을 몰고 온다.  세조의 불의를 중국 초나라 항우에 빗댄 글이라 하여 사림파 선비들은 대거 죽임을 당한다. 세조는 14년 재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공적을 쌓았지만 두 동생에게 사약을 내리고, 조카를 죽였기에 그의 패륜은 심판받아야 했고, 도덕성을 중시하던 사림파는 영월의 노산군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왔다.      단종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보면, 〈세조실록 1457,10,21〉에는 세조 3년 양녕대군과 정인지가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과오를 지적하고 처형을 상소했을 때 세조는 처음엔 ‘불가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를 윤허했다고 되어 있다. 이어 ‘노산군은 이를 듣고 스스로 목메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 라고  기록됐다.   또 〈중종 실록 1516,12,10〉에는  ‘…고을 사람들이 군왕의 묘라 부르므로 비록 어린이들이라도 식별할 수 있었고,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스럽게 여긴다’다고 신상이 눈물 흘리며 중종께 아뢨다는 내용이 나온다.   단종 사후 60년이 지나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단종의 죽음이 밝혀지면서 엄흥도의 존재가 드러났다. 영조와 정조는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높이 예우했으며, 고종은 시호를 내려서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했다.     앞에서 보듯 선비들의 비분강개는 글로 뚜렷하게 남아있지만 글줄과 인연이 먼 민초들의 행적은 허공에 떠돌아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의 이야기는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행적이 어떠했던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단지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픽션으로 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토사학자들의 관점이 궁금할 뿐이다. 권정순 / 전직교사열린광장 남자 민초 민초들 마음 고을 아전 훗날 세조

2026.05.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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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개스값·물가 올리는 ‘전쟁 인플레이션’

지난 2일 새벽 댈러스 포트워스행 스피릿 항공 비행기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스피릿 항공은 오늘 새벽 3시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 이 비행편은 우리의 마지막 비행입니다. 40년 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항공사 하나가 하룻밤에 문을 닫았다. 승객들은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표를 쥐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수백대의 비행기가 내려앉았고, 1만5000여명의 직원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이 항공사 변호사는 법원에 “최근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지속되며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석유는 연료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혈액이다. 핏줄이 마르면 몸 전체가 앓는다.     개스값 상승의 여파는 주유소에서 먼저 느껴진다. 각 가정마다 자동차 1대 당 수십달러에서 수백달러의 추가 개스비를 지출하고 있다. 주유소 가격표가 바뀌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트럭이 멈추면 마트 진열대가 비고, 비료값이 오르면 농부는 씨앗을 덜 뿌린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라이언 넌 소장은 이 현상을 ‘전쟁 인플레이션(warflation)’이라 부른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한 달 사이 1% 가까이 뛰었다. 그는 “숫자는 작아 보여도 그 무게는 가계마다 다르다. 전쟁이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긴장만으로도 경제는 먼저 무너진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물건 가격이 오를 때와 내릴 때의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유가가 하락해도 마트 가격표는 한참 뒤에야 바뀐다. 넌 소장은 이를 ‘비대칭적 움직임’이라 표현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고통은 유가 그래프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이 지속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소득에서 연료와 난방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전기차로 갈아탈 여유도, 유기농 대신 다른 식품을 고를 여지도 없다. 경기 둔화로 일자리마저 줄면 그 압박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이 충격은 미국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긴장으로 출렁이면, 한국 자동차 운행이 중단되고, 인도 농촌의 부엌불이 꺼진다. 한국 정부는 이미 기름 부족에 대비해 자동차 10부제를 시작했다. 인도는 요리용 LPG의 상당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UC리버사이드의 아닐 디올랄리카 박사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식량 위기 한가운데 있다”며 “비료값이 오르면 올해 심은 씨앗이 줄고, 그 결과는 연말 식탁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란 전쟁의 근원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미네소타대의 윌리엄 비먼 교수는 “이란을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이란의 주권 의식은 혁명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상대의 역사와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강압만 반복하면, 협상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유가는 계속 오른다.   결국 지금 전세계가 치르고 있는 비용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 실패의 청구서다. 그 청구서는 전투기 조종사나 핵 협상가에게 날아오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 티켓을 들고 당황하는 미국 승객, 10부제로 운전을 못하는 한국 운전자, 비싼 개스값을 고민하는 텍사스의 트럭 운전사, 수확하지 못하는 뭄바이의 노점상, 나이로비의 어머니에게 먼저 도착한다.  전쟁은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굶긴다.  이종원 변호사열린광장 인플레이션 개스값 전쟁 인플레이션 개스값 상승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2026.05.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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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참 아름다운 5월에

 5월이 찾아오니 온갖 꽃들이 울긋불긋 피어나고 예쁜 새들이 즐겁게 노래 부른다.     이런 5월에 꽃과 새들만 찾아오는 것일까?  철없는 어린이들이 뛰놀고 샘 많은 여인들은 아름답게 꾸민다.   ‘인생의 봄’이란 뜻을 지닌 영어 ‘메이’에 걸맞는다.     한국의 ‘어린이날’은 아동 문학가 방정환이 1922년에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지키자고 부르짖은 데서 비롯됐다. 이후 1957년 5월 5일 ‘어린이 헌장’이 선포됐고 이날이   ‘어린이날’로 지정됐다 그래서 ‘어린이날’엔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란 노래를 부른다. 노래처럼 5월은 푸르다.  하늘도 푸르고, 땅도 푸르고 바다도 온통 푸르다.   아울러 어머니의 마음을 기리는 달도 5월이고 보면 5월은 아름답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지킨다.  영국에선 ‘귀향 일요일 (Mothering Sunday)’을 4순절의 넷째 일요일에 ‘어머니 날’로 지키기도 했으며,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어머니 날’을 기리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872년에 줄리아 워드 하우란 여성이 6월 2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1907년 애너 잘비스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하자면서 전국적으로 카네이션 달아주기 운동을 펼친 것이 현재 ‘어머니 날’의 시작이었다.  1914년 5월 9일 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문서에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서명하고 그 이듬 해에 정식 선포됐다.      ‘어머니 날’이 있기 전 옛 로마에선 예쁜 옷을 입은 여성들이 여신 ‘훌로라’에게 5월의 꽃을 따다 제사를 지냈으며, 영국에선 잘생긴 남성들이 5월의 꽃으로 축제 기둥인 ‘메이 포울’을 꾸미면, 아름다운 아가씨들 가운데서 뽑힌 ‘메이 퀸’이 이 기둥을 붙잡고 춤을 추기도 했다.   5월은 어린이와 어머니만을 위한 달이 아니란 학설도 있다. 5월의 영어 이름 ‘메이’는 ‘나이 든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마조레스’에서 비롯되었기에 5월은 나이 든 사람의 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 든 사람을 뜻하는 단어를 5월의 이름으로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도 5월의 파릇파릇한 나무와 예쁜 꽃처럼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이여,  5월처럼  푸르고 아름답게 살아가라! 이것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 주는 5월의 선물이리라.    1620년 영국의 ‘필그림 파더스’들이 신앙의 자유와 희망을 찾아 신대륙으로 떠날 때 탄 배 이름도 ‘메이플라워’다.  5월은 어린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계절의 여왕이다. 우리 모두 웃음과 젊음, 그리고 따뜻함으로 감싸인 5월의 품으로 들어가 보자.     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귀향 일요일 어린이 헌장 축제 기둥인

2026.05.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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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한미동맹과 안보의 현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자주국방 발언에 우려를 나타내는 한인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외국 군대 없이는 자체 방위가 안 된다는 생각은 굴종적 사고”라며, 대한민국이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갖춘 만큼 이제는 미군 없이도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의 자주성과 자강 능력을 강화하자는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어느 나라든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키우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그러나 안보는 이상이나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자주국방론은 국가 안보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실전 배치했고 미사일 능력 또한 지속해서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만으로 안보를 낙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이 북한보다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더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핵무기 앞에서 재래식 전력 우위는 제한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외교 협력 관계가 아니라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안전장치다. 미국의 확장 억제 체제는 한반도 평화를 지탱해 온 핵심 기반이며, 이를 약화하는 듯한 발언은 국내외에 불필요한 불안 신호를 줄 수 있다.   주한미군 역시 단순한 병력 지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한반도 안보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적 축이다. 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는 강력한 경고로 작용해 왔다. 이를 단순히 외세 의존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해석이다.   미주 한인들이 이러한 문제를 민감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미동맹이 단순한 군사 협력을 넘어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탱해 온 핵심 기반임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안보 안정은 곧 국가 신뢰와 직결되고, 이는 해외 동포사회의 자긍심과 안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한미동맹이 약화한다면 그 여파는 안보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 신인도 하락과 외국 자본 이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경제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유지해 온 데에는 안정된 안보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안보 불안은 곧 경제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과 해외 동포사회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미국 내 고립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지도자의 자주국방 발언은 미국 내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동맹은 신뢰 위에 세워진다. 신뢰가 흔들리면 안보 구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자주국방 역량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맹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맹을 기반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과제다. 동맹 없는 자주국방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안보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자체적인 노력과 함께 굳건한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보는 정치적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동맹국에 메시지를 주고 시장에 신호를 보낸다. 그렇기에 안보에 관한 발언일수록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자주라는 이름의 구호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책임 있는 전략이다. 미주 한인 사회가 바라는 것도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정과 한미동맹의 지속이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안보만큼은 결코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한미동맹 안보 국가 안보 한반도 안보 안보 안정

2026.05.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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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전작권,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둘러싼 정부의 조급한 행보가 불안하다. 국가 안보는 선언이나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한미동맹이라는 안보의 축을 마치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굴레처럼 여기는 인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정부 당국자의 무심한 한마디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국가 간 정보 공유 체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군 통수권자마저 한발 더 나아간 듯한 발언을 내놓으니 우려는 더욱 커진다.  동맹은 신뢰로 유지되는데, 그 신뢰를 흔드는 언사는 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키겠다”는 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은 의지가 아니라 능력이다. 핵으로 위협하는 상대 앞에서 비핵 전력만으로 전쟁 수행이 가능한가. 세계 5위 군사력을 자부하는 것과 국가를 지켜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위적 낙관은 전략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전쟁 수행을 위한 편의적 협약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생존의 약속이며, 우리는 이미 6·25전쟁에서 그 의미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동맹은 외세 의존이 아니라 상호 협력이다. 우방 간에 주고받는 국가적 이익은 지극히 당연하며, 그것이 국제 질서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동맹을 ‘간섭’으로, 협력을 ‘굴종’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감정적 민족주의는 잠시 속을 시원하게 할 수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안보는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전작권 전환은 부정할 사안이 아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일 수 있다. 그러나 기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다. 준비와 능력, 그리고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판단 위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언제까지’가 아니라 ‘준비가 되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시계를 정해놓고 서두르는 모습은 불안함만 키울 뿐이다.   정부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현재의 정책 방향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가. 안보 정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며,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신중함은 약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알고 있다. 전쟁은 구호로 막을 수 없으며 자유는 혼자 지켜낸 적이 없다. 우리는 피로, 그리고 동맹으로 이 나라를 지켜냈다. 그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안보는 구호로 지켜지지 않으며,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던 적도 없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절박한 외침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려는 길은 과연 자유를 더 굳건히 지키는 길인가.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작권 자존심 전작권 자존심 민족적 자존심 전작권 전환

2026.05.0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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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토스’의 경고, 인간 없는 해킹 시대의 서막

1960년대 MIT 재학생들이 기차 모형을 개조하며 ‘해킹’이란 용어를 처음 썼을 때, 그것은 창의적 개선을 의미했다. 그러나 1971년 존 드레이퍼가 시리얼 상자 속 판촉용 호루라기로 AT&T 전화망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1988년 코넬 대학생 로버트 모리스가 ‘모리스 웜’으로 인터넷을 마비시켜 사이버 범죄자 1호가 되면서 해킹은 범죄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빈이 아파트에 앉아 시티뱅크에서 1000만 달러를 빼돌렸고, 작년 9월에는 중국이 클로드를 이용해 30개국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벌이던 스파이 활동이 발각됐다.     해킹은 언제나 인간이 저질렀다는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해킹의 역사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달 앤트로픽이 공개한 ‘클로드 미토스(Mythos) 프리뷰’는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취약점을 탐지하고 침투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자율형 AI(인공지능) 에이전트다. 인류 최고 난도 시험(HLE)에서 사상 최초로 정답률 50%를 돌파하며 AI 발전의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공개된 AI 중 가장 강력한 미토스가 인간 없는 해킹의 시대를 열었다.   미토스는 전 세계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에서 수천 건의 제로데이(Zero-Day: 아직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을 발견했다. 철옹성이라고 불리던 OpenBSD에서는 지난 27년간 수많은 천재와 보안 전문가들이 놓쳤던 결함을 찾아냈으며, 자동화 테스트 도구가 500만 번 검사했다는 영상처리 소프트웨어의 16년된 버그도 잡아냈다.   무엇보다 섬뜩한 사건은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토스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이 AI에게 샌드박스(격리 환경) 탈출을 시도하고, 성공하면 이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미토스는 보안 장치를 우회하고 다단계 공격 경로를 구축해 탈출한 후,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쉬던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메일을 읽는 동안 탈출 방법을 웹사이트 여러 곳에 올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 게시물을 누군가 발견했다면 미토스의 보안 뚫는 방법을 손쉽게 익혔을 것이다.     각국 정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주요 금융기관과 기업 경영진들을 긴급 소집해 보안 점검 강화를 요구했고, 백악관은 앤트로픽 최고 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를 직접 불러 브리핑을 받았다. 영국과 캐나다,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금융 당국과 은행권이 긴급히 회동했다.     앤트로픽은 미토스의 일반 공개를 보류하고, 기업과 정부 기관 등 40개 조직에만 접근을 허용하는 선별 공개 방식을 택했다. 동시에 글래스윙(Glasswing) 프로젝트를 가동해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과 함께 방어 체계 구축에 나섰다. 오픈AI 역시 유사한 ‘GPT-5.4-사이버’를 공개해 우려는 더욱 커졌다.     자율형 AI의 사이버 공격 파괴력은 핵폭발급이다.  AI 공격과 핵무기가 닮은 점은 한번 확산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이다. 이미 AI 공격의 진화 속도는 인간의 방어 패치 속도를 앞질렀다. 미토스는 취약점 탐지 능력은 탁월하지만, 보안 패치 코드 작성은 아직 제한적이다. 앤트로픽에서 새 모델을 검증하는 ‘레드팀’을 이끄는 로간 그레이엄은 앞으로는 AI 출시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토스가 공원의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낸 그 순간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었다. 지시를 받아 울타리를 넘은 AI가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자율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 측은 이 기이한 행보를 AI가 자신의 성취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인간의 안전’이라는 변수가 없는 AI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AI다. 문제는 기술이 통제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점이다.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늘 한 발 늦은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 이메일은 연구원이 아닌 우리에게 올 수도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미토 경고 사이버 범죄자 보안 전문가들 보안 장치

2026.04.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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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전화 피싱사기’ 정부 차원 대책 세워야

스마트폰 화면에 ‘총영사관’ ‘주미대사관’ ‘ICE(이민세관단속국)’ 발신의 전화번호가 뜬다. 전화기 너머 남자는 ‘아무개 영사’ ‘아무개 요원’이라며 근엄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당신의 한국 은행 계좌가 돈세탁 범죄에 이용되고 있으니 검사와 통화해보라”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식이다. 겁에 질려 자세히 물어보면 ‘아무개 검사’에게 전화가 넘어가 “지금 당장 여권이 취소되고 입국 즉시 체포, 추방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이들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물어보고, “수배를 풀어야 한다”며 수만 달러의 돈을 송금하라고 한다. 놀라고 당황해서 돈부터 송금하면 늦는다. 요즘  한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칭 사기’ 유형이다.   최근 전화 피싱 사기가 다양해 지고 있다. 은행, 신용카드 회사를 도용하는 수준을 넘어, 경찰관, 검사, 판사를 통째로 사칭하는 단계까지 왔다. 전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보호국 소속 변호사였던 모니카 바카 변호사는 “심지어 ICE를 사칭하는 사기 전화도 많다”고 지적한다. FTC의 케이티 다판 변호사는 “보석금 명목의 송금 요구, 위조된 석방 명령서, 반복되는 소액 결제 등이 사기꾼들의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사기 범죄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다. “당신에게 수배 영장이 떨어졌다” 또는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되어 보석 석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방된다”고 위협한다. 정보는 단절되고 불안은 극대화된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 사기범은 ‘해결사’로 등장한다. “지금 수배를 풀어야 한다” “반드시 풀려난다”는 식의 보장, “지금 보석금을 당장 결제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진다. 피해자는 선택지를 잃는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미디어)도 사기꾼의 새로운 사냥터다. 검색 상단의 유료 광고, 인스타그램의 추천 게시물, 겉으로는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해 보인다. 하지만 클릭 한 번이 수천 달러의 손실로 이어진다. 디지털 시대의 신뢰는 쉽게 위조된다. 최근 한국식 양념치킨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 1000달러를 사기를 당한 사례도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예방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신뢰할만한 가족 또는 변호사 연락처를 찾아두고, 가족 간 크레딧카드 및 은행 계좌 접근 권한 및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국 이민법센터, 법률지원정의센터 등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해를 보았다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은행과 송금업체에 연락해 거래를 취소하고, 신고가 부담스러우면 신뢰할 변호사 또는 단체를 통해 대리 신고를 요청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되찾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가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민 체류 신분에 대한 두려움, 언어 장벽,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침묵을 강요한다.   이 사기의 진짜 문제는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는 불안을 키우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사기꾼들이 ‘타깃’을 찾아내는 수단이 된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는 범죄의 온상이 된다. 사기범은 이 틈새를 파고든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경각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체계적 지원, 접근 가능한 법률 정보,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불안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안을 덜어주는 구조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피싱사기 전화 사기 전화 전화기 너머 사기 범죄

2026.04.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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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알래스카 지렁이와 개구리의 생존법

알래스카 중북부 지역은 겨울철 토양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토양생물은 생존 전략으로 동면을 택한다. 다만, 북극곰은 예외이다. 동면하지 않는 북극곰의 체지방 층은 다른 곰들과 달라 툰드라의 강추위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가을 차고 앞에서 20~30마리의 지렁이를 발견했다. 지렁이는 비가 온 뒤, 피부가 촉촉하면 땅으로 기어 올라온다. 땅속의 물이 포화상태면 피부로 호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자연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지렁이는 먹이 섭취를 위해 흙을 삼킨다.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한 후에는 소화액과 함께 흙을 배설한다. 이렇게 지렁이가 배설한 흙더미에는 식물에 필요한 영양소가 가득 담겨 있다. 식물성장에 꼭 필요한 질소도 그중 하나다.   생활 쓰레기 중 과일 찌꺼기나 야채 등을 이용해 지렁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과학 콘테스트를 관람하며 평가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플라스틱 통에 흙과 함께 지렁이를 넣고 키웠다. 지렁이는 수분이 60%에서 80%로 습한 환경을 선호한다. 생육온도도 20도 전후가 적당하다. 이런 생육조건과 환경이 조성되면, 과일이나 채소 찌꺼기를 흙위에 덮어 둔다. 며칠이 지나면 지렁이의 왕성한 먹성 때문에 이들 찌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렇게 분변토를 모아 둔다. 가끔 지렁이가 알을 낳아 새끼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알래스카 중부 지역 가옥들은 보온이 잘 되는 건축자재를 사용한다. 중부와 북부 지역은 매서운 추위 속에 습도는 30% 정도에 불과 사막형 기후에 속한다. 그래서, 피부가 건조하기 쉽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지렁이를 사육하려면 분무기를 이용해 물을 자주 공급해 주어야 한다. 지렁이는 피부가 메마르면 호흡 곤란으로 죽기 때문에 수시로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여름철 개인 농장이나 텃밭에 작물을 심을 때, 지렁이 분변토가 최고의 천연비료라고 한다. 알래스카 중심부 지역의 경우, 여름엔 백야로 해가 거의 지지 않는다. 작물 재배가 가능한 기간은 수개월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알래스카도 한여름에는 최고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다.      지렁이가 어떻게 알래스카의 춥고 긴 겨울을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렁이의 생존전략도 조물주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지렁이는 아마도 겨울엔 체내에 천연부동액 (Natural Antifreezing Liguid)을 만들어 스스로 보호하지 않을까 싶다.      알래스카에서는 모기도 동면을 한다면 믿을까? 알래스카 모기는 혹독한 겨울에 동면하고 봄철에 깨어나 알을 낳는다. 암컷 모기들은 월동을 위해 체내에 천연부동액을 만들어 몸을 보호한다. 지렁이도 비슷한 원리로 생존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신비가 따로 없다.  인간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방한복을 착용하지만, 곤충이나 동물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차이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따라 종단 관측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북위 66도 부근에서 토양 조사 중에 개구리를 발견했다. 개울에는 올챙이도 있었다. 개구리도 지렁이처럼 피부호흡을 한다.   그런데 알래스카에는 뱀이 없다. 변온동물인 뱀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뱀의 활동 온도는 영상 20도 이상이다.     너무나 빠른 기후 변화로 이러한 생육 조건들이 깨지지 않을까 싶다. 기후환경에 따른 변화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곤충과 동물도 변화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인류의 산업 활동 부산물이 자연에 해를 끼치는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열린광장 알래스카 지렁이 개구리도 지렁이 지렁이 분변토 알래스카 모기

2026.04.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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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사’로 소리나는 값진 낱말들

한 해의 네 번째 달인 4월(四月)이다. 음력으론 사월(巳月)이라 부른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 전쟁 탓에 사월(四月)인지 생월(死月)인지 모르겠다.  이 전쟁 때문에 ‘사생관두(死生關頭)’에 설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死)자가 들어있는 단어를 싫어하는 한인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死)자가 들어간 어휘는 많다. 육체는 없어져도 명성만은 영원히 남는다는 뜻의 ‘사차불후(死且不朽)’, 사정거리 안에 있지만 장애물 등으로 화력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뜻하는 사각(死角),  죽음을 마물(魔物)로 보아 이르는 말인 사마(死魔), 광석을 다 채굴하여 광물이 거의 없어진 광맥을 일컫는 사맥(死脈),  곰팡이나 버섯처럼 죽은 생물에 기생하는 것을 뜻하는 사물기생(死物寄生),  음력 초하룻날 또는 그 날의 달을 일컫는 사백(死魄),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은 사병(死病), 한이 깊이 맺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명목(死不暝目), 또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군사는 사사(死士)라고 한다.     이 밖에 거의 죽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사상(死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얼굴은 사상(死相)이라 칭한다.  또 저항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행위는 사승습장(死僧習杖), 불교에서 중생이 수명이 다해 숨을 거두려는 찰나를 사유(死有)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이후이(死而後已), 사람의 생사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의 사생유명(死生有命)이란 말도 있다.  앞에 언급한 사생관두(死生關頭)는 죽느냐 사느냐의 결정적인 순간을 말한다. 밀도가 낮고 수온이 높은 바닷물이 그 반대의 바닷물을 덮고 있어 배가 나가는데 장애가 되는 사수현상(死水現象), 의사가 환자의 사망 사실을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사체검안(死體檢案), 막다른 길을 의미하는 사로(死路)에도 ‘사’자가 들어간다.     발음이 ‘사’자로 시작되는 어휘로는 실학의 대가 박지원을 사우(師友)로 모신 네 실학자를 일컫는 사가(四家), 역사가의 준말 사가(史家), 개인의 살림집 사가(私家), 사돈집 사가(査家), 스승의 집 사가(師家), 왕조 때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는 것을 말하는 사가(賜暇) 등도 있다.       ‘사상’으로 소리나는 낱말도 재미있다. 불교에서 생멸(生滅) 무상의 모습을 네 가지로 정리한 것 사상(四相),  천체에서 일월성신을 이르는 말 사상(四象), 일의 되어가는 형편 사상(事相),  낱낱의 특수한 성질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 사상(捨象),  실과 같이 가늘고 긴 모양을 의미하는 사상(絲狀)등 다양하다.     끝으로 영어의 에이프릴(april)과 불어의 에이브릴(avril)은 라틴어 아페리레(aperire)에서 비롯된 말인데 ‘펼치다, 또는 열다’란 뜻이다.  그래서 농부나 밭일을 하는 사람들은 4월이 되면 들로 나와 힘차게 활동을 하고 겨우내 땅속에서 잠들었던 동물들도 동굴을 박차고 나와 힘차게 움직이며 움츠리고 있던 식물들도 파릇파릇한 들로 나와 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윤경중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낱말 형편 사상 음력 초하룻날 전쟁 때문

2026.04.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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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선택적 인권, 공정한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의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고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것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인권은 어느 나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인권의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데 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 처형,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러시아의 전쟁범죄 의혹은 국제 사회가 오래전부터 지적해 온 심각한 인권 문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는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이스라엘 문제에만 유독 강경하다면, 그것은 보편적 인권의 실천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같은 인권 문제에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순간, 인권은 공정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국제 사회는 그것을 대한민국의 외교적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다. 누구에게는 엄격하고 누구에게는 침묵하는 태도는 결코 원칙이 될 수 없다.   같은 인권 문제라면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문제에만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면, 국제 사회는 이를 인권 외교가 아니라 선택적 인권 정치로 해석할 것이다.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인권은 공정이 아닌 정치적 계산일 뿐이다.   외교는 도덕적 만족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국익과 신뢰를 지키는 냉정한 전략의 영역이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외교적 파장을 낳고, 그 파장은 결국 국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안보·기술·외교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국가이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편향된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외교적 부담만 키우게 된다.   특히 미주 한인 사회에도 그 부담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미국 내 유대인 공동체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인권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미주 한인 사회도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한다. 이미 이스라엘 내 한인 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외교적 발언은 무책임하다. 더 큰 문제는 국제 사회가 이러한 태도를 원칙이 아니라 계산으로 본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특정 국가에만 강경한 태도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원칙 없는 인권 외교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인권 외교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같은 인권 문제라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이 되고, 신뢰가 생긴다.     그러나 내 편에는 침묵하고 상대에게만 엄격하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위선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인권의 기준을 달리하는 순간, 인권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명분도 잃고 국익도 잃는다.   인권을 외교의 명분으로 내세우려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북한에는 침묵하고 이스라엘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태도는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선택적 인권은 공정이 아니라 인권의 이름을 빌린 정치일 뿐이다. 인권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외교의 신뢰는 무너지고, 외교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익도 무너진다. 결국 선택적 인권이 반복될수록 공정은 사라지고 국익은 희생된다.   대통령의 외교 언어는 감정이 아니라 공정한 전략이어야 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선택 인권 인권 외교가 선택적 인권 인권 문제

2026.04.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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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룰라’와 함께한 아름다운 콘서트의 기억

1994년 한국 가요계는 많은 음악 그룹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가운데 음반 2장으로 가요시장을 석권한 혼성 댄스그룹 (이상민·김지현·고영욱·채리나)이 등장하는데 바로 ‘룰라’다. 1집의 ‘백일째 만남’과 2집 수록곡 ‘날개 잃은 천사’로 단숨에 정상에 올라섰다. “천사를 찾아 ~사바 ~ 사바사바~ ”라는 재미있는 가사에 엉덩이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려주는 가벼운 춤은 당시 누구나 따라 했을 정도로 인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인기 절정의 룰라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고 1996년 1월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내용인즉슨 3집 수록곡 ‘천상유애’가 1992년에 결성된 일본 남성 그룹 ‘닌자(Ninja)’의 ‘오마츠리 닌자’를 표절하였다는 의혹이었다. 멜로디, 후렴구, 리듬 등이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방송 출연 및 앨범 판매 중단, 이어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리더 이상민과 멤버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버뱅크에 거주하면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이때 룰라의 소속사와 교분이 있었던 필자는 미국에서 명예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KBS ‘일요스페셜’에 소개된 백혈병 입양인 브라이언 성덕 바우만(당시 공사 4학년)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던 시절이라 ‘성덕 바우만과 백혈병 환자 돕기 자선 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룰라 멤버들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먼저 멤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찾아 병상의 성덕 바우만에게 6월 자선 콘서트 취지를 설명하고 사관학교 교회에서 바우만의 쾌유를 비는 기도도 드렸다.    공연 일자는 1996년 6월 4일, 장소는 슈라인 오디토리엄(6300석)을 예약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스타디움이 최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LA 공항 인근 ‘할리우드 팍’(2만석)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룰라와 함께 헌혈 동참 캠페인을 겸한 대대적인 팬 사인회를 여는 등 홍보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좀 더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룰라 멤버들이 LA 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내려오면 하얀색 리무진이 그들과 함께 공연장을 한 바퀴 돌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퍼포먼스 후 무대로 이어지는 연출을 선보였다.   공연은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팬 1만5000여명이 공연장을 찾았으며, 수백 명이 헌혈에 동참했다. 공연 수익금 중 2만 달러를 룰라 이름으로 아시안골수기증협회 (AMMM)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자선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룰라는 재기에 성공했다. ‘3!4!’라는 히트곡이 담긴 4집을 발표하며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공연은 관객, 아티스트, 수혜자, 스폰서, 기획사 등 모두에게 큰 보람을 선사했다. 그날 1부를 진행하며 공연 취지를 널리 알렸던 방송인 동문자, 정재윤, 김병규씨 등 세 분의 수고도 잊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두 분(정재윤, 김병규)은 이미 고인이 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공연장을 찾았던 청소년들은 지금 40~5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룰라와 함께했던 그 날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기억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콘서트 룰라 룰라 멤버들 자선 콘서트 이때 룰라

2026.04.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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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막연한 공포 대신 ‘법치의 힘’ 믿어야

최근 한인 사회에 흐르는 분위기 가운데 하나가 ‘공포감’이다.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발언들이 평범한 이민자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이 있다면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라거나 “미국적 가치에 반하는 이민자는 배척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들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의 합리적인 법리와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가 만든 안갯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법치의 힘’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성 정체성과 관련된 이민 신분 문제다.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 운전면허증 등 법적 서류를 만든 이들이 “트럼프 정부가 이를 서류 조작이나 사기로 간주해 추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초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차원에서 출생 시 성별만을 공식 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 정부 서류와 연방 이민 서류 간 불일치가 행정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은 실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법적 원칙이 있다. 이민법에서 정의하는 ‘사기’란 혜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대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행위를 뜻한다. 주 정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친 성별 정체성을 소급 적용해 추방의 근거로 삼으려면 반드시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 절차(Due Process)’ 원칙에 따른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한 뒤 타주로 이사하거나 직종을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영주권이 취소된다는 소문도 떠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주권자는 미국 내 어디서든 거주와 취업의 자유가 있어 이사나 이직 자체는 영주권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영주권자가 장기간 미국을 떠나 거주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다. 즉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하거나 미국을 ‘주된 거주지’로 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영주권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던 이민법 원칙이다. 실제로 재입국허가서 없이 한국에 장기 체류하다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한인 사례도 적지 않다. 소문이 아닌 법조문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는 것, 그것이 불안을 이기는 첫걸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민권자 추방’ 역시 불안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번 부여된 시민권을 다시 빼앗는 일은 역사적으로 드물다. 그 절차 역시 행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여러 겹의 법적 장치로 묶여 있다. 시민권 박탈은 반드시 연방 법원을 거쳐야 하며, 법원은 정부에 높은 수준의 입증을 요구한다. 애초에 신분을 속여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성실히 살아온 이민자가 시민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적다. 미국은 여전히 헌법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사법부가 행정부의 과잉 조치를 견제하는 시스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법적 보호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행정법원에서 연방 항소법원까지 이어지는 이민 재판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뜬소문에 휘둘리는 대신, 본인의 체류 신분 취득 경로와 해외 체류 기록 등에 흠결이 없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법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만큼 단단한 방패는 없다. 거센 정치적 파도 속에서도 법치주의와 이민법 시스템은 미국의 중심을 잡는 닻 역할을 한다. 막연히 추방의 공포에 떨기보다 자신의 법적 권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김원아 / 변호사열린광장 공포 법치 시민권자 추방 시민권 취득 시민권 박탈

2026.04.1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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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원택의 영-한 지구촌 사전’

79년의 생을 마감한 한 정신과 의사가 인류의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 40일 동안 극심한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견딘 후 4월 3일 아침 11시, 마치 제단의 번제물처럼 자신의 생을 불태우듯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가 남긴 ‘이원택의 영-한 지구촌 사전’은 단순한 언어 사전이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향한 철학과 사유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50여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마주해왔다. 본래는 문학을 꿈꾸던 소년이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오랜 세월 환자 치료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작가로서의 꿈이 자리하고 있었고, 40대 이후 그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창작의 세계로 들어섰다.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그는 기존 문학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생의 후반부에는 사전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를 따라가기 어렵다면, 차라리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단어가 살아 움직이는 사전’, 즉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의 공간을 꿈꾸었다. 기존 사전들이 권위적이고 고정된 지식을 담은 ‘죽은 사전’이라면, 그가 만들고자 한 것은 대화가 ‘살아 숨 쉬는 사전’이었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교만으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바벨탑과는 달랐다. 그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확장을 목표로 삼았다. 영어와 한글을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통해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갈등과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언어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였다.   의사 이원택, 그의 삶은 겸손과 배려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 적이 없었다. 타인을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격려, 도움을 줬다. 그는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며 스승이자 친구, 그리고 성자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경기도 파주에서 독서와 집필 활동으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언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말에는 온도와 힘이 있다”는 그의 믿음처럼, 그의 사전 속 단어들은 단순한 뜻의 정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가 된다.   혼란과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그는 마지막까지 평화의 언어를 선택했다. 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책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인류의 미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이원택 지구촌 지구촌 사전 언어 사전 의사 이원택

2026.04.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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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옳음’을 잃어버린 정치

영화 한 편이 사람을 오래 붙들어 놓을 때가 있다. 최근 관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그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극이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의 정치를 향해 정면으로 던지는 불편한 고발장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비운의 왕 ‘단종’이 있다. 권력에서 밀려난 어린 왕, 그리고 그를 지워버리려는 냉혹한 권력. 그 서슬 퍼런 칼날 아래, 끝까지 남은 사내가 있다. 영월의 촌장 엄흥도다. 모두가 등을 돌린 자리에서 끝까지 등을 보이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이다.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둔다는 것은 단순한 장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가문의 파멸을 각오해야 하는 결단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기꺼이 나섰다.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 내려진 서늘한 판결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가 무엇을 상실했는지를 단 한 줄로 꿰뚫는 선언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정치인들에게 불편하다.   이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정치인의 ‘옳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 ‘옳음’은 늘 권력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가.   오늘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국회에서 여당이 표를 앞세워 일사불란하게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조차 않다.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울지 모르나, 고국을 바라보는 미주 한인들의 시선은 절대 편안하지 않다.   지금 여당 내부를 관통하는 흐름은 단순하다. 철저한 권력 중심의 재편이다. 권력의 향배에 얼마나 빠르게 올라타느냐, 얼마나 정확하게 줄을 서느냐가 정치적 생존의 유일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책은 장식이 되었고, 철학은 실종됐으며, 가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극적인 것은 이것을 더는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계파 정치에는 최소한 ‘명분’이라는 가림막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조차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결과뿐이다. 누가 권력을 쥐었는가, 그리고 그 곁에 누가 서 있는가다. 결국 정치의 언어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천박한 연고주의로 축약된다.   그 과정에서 ‘의리’라는 단어가 다시 호출되지만, 그 의미는 처참하게 변질되었다. 지금의 의리는 신념이 아니라 ‘거래’다. 권력에 대한 선제적 투자이며, 보상을 전제로 한 계산기 두드리기다. 충성은 미덕이 아니라 보험이 되었고,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전략으로 덧칠됐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단지 고도화된 ‘생존 기술’일 뿐이다.   본래 정당정치는 질서를 지향한다. 공동체의 지속을 논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을 말하는 자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질서는 복종으로 치환되었고, 자유는 줄서기로 대체됐다. 철학은 사라지고 기술만 남았다.   정당은 외부의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의 기준이 무너질 때 비로소 붕괴하는 법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조차 실종된 조직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옳음’을 잃어버린 배는 결국 암초를 만나 침몰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현실이기에 타협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판단이 일사불란함으로 환원되어 침묵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때부터 정치는 사람을 버리기 시작하고, 결국 국민을 버린다.     명백한 문제 앞에서도,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입을 여는 순간 공천과 직위, 영향력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양심의 입을 닫는다.   그러나 정치는 본래 그 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결단, 그 기개 있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겐 그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엄흥도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자리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나, ‘옳음’을 지켰다. 지금 한국 정치가 가장 뼈아프게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권력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옳음’은 앞으로도 권력 앞에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미주 한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철웅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정치 본래 정당정치 정치적 생존 한국 정치

2026.04.12.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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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야구 시즌의 시작

야구 팬들이 기다리던 메이저리그(MLB) 시즌이 시작됐다. 야구에서도 중요한 것이 심판의 역할이다. 특히 투수가 던진 볼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는 전적으로 주심의 판정에 달렸다. 볼도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면 경기는 그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서도 주심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컴퓨터로 다시 확인하는 규정이 생겼다. 인공지능(AI)이 스포츠의 승패를 가르는 영역까지 진출한 셈이다.   야구(baseball)는 미국에서 '국민 스포츠(National Pastime)'로 불릴 정도로 인기다.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MLB)는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와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로 나뉜다. LA다저스가 포함된 내셔널리그는 1876년에, 아메리칸리그는 1900년 창설됐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국가 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려 세계 야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가 우승 후보였던 미국을 3대2로 꺾고 우승했다.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포수인 살바도르 페레스는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무릎을 꿇고 흑백 TV로 우리를 응원하는 모습을 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페레스의 언급은 양국의 정치적 긴장 관계를 고려하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주로 편입하고 싶다는 말로 여론을 들끓게 했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안전 가옥에 병력을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 미국으로 압송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의 야구 역사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두 명의 선수가 있다. MLB에서 755개의 홈런을 기록한 행크 아론과 그 이전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1920년대 수퍼스타 베이브 루스다. 714개의 홈런을 기록한 베이브 루스가 갖고 있던 MLB 최다 홈런 기록은 1974년 4월 8일 당시 밀워키 브레이브스 소속이던 행크 아론이 715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아론은 미국 야구 역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야구 선수들도 여럿이 있다.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스탠 뷰니앨, LA다저스의 샌디 쿠팩스 등이다.     이정후(SF 자이언츠), 김혜성(LA다저스), 송성문(SD파드레스),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  MLB에서 활약중인 한국 선수들의 행운을 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야구 시즌 야구 시즌 야구 선수들 세계 야구팬들

2026.04.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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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스크린 속 전쟁,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미사일이 목표물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파괴의 현장에 록 밴드 AC/DC의 강렬한 기타 선율이 흐른다. 화면 구석에는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것은 게임 트레일러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공개한 이란 공습의 실제 영상이다.   미-이란 무력 충돌은 물리적 전장뿐만 아니라 틱톡, 인스타그램, X(트위터)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공습 장면이 비디오 게임 클립처럼 편집되고,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영화 장면과 교차된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한 편의 전투 게임처럼 엔터테인먼트화된 것이다.     이러한 홍보 전략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이란 역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전장에서의 우위를 주장하는 선전물과 허위 정보로 정보전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AI(인공지능)로 만든 정교한 가짜 영상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만큼이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쟁 홍보와 심리전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역사는 인류의 무력 충돌 역사만큼 오래됐다. 핵심은 항상 동일하다. 아군의 정당성과 승리 확신, 그리고 적의 악마화다. 매체만 진화했을 뿐이다.     고대와 근대에는 정보전이 지도자의 위엄과 위상에 집중됐다. 1차 세계대전 후 신문과 포스터가 발달하면서 비로소 조직적인 면모를 띠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선전의 위력을 극대화한 인물이었다. 논리를 감정과 자극으로 대체했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라디오를 통해 선전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하고, 반복된 전쟁 메시지로 대중의 인식을 지배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이 여론전의 분수령이었다. 1970년대 TV 시대가 열리며 전쟁의 참상이 중계되자 반전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걸프전(1991년)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반영해 선별되고 통제된 영상만 공개됐다. 정보는 설계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정보전은 내용보다 '어떻게 소비되는가'에 집중한다. 밈화 되고 게임화된 영상은 전쟁을 안보의 최후 수단이 아닌, 조회 수를 올리는 자극적인 콘텐트로 변질시킨다. 시청자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가공된 이미지에서 쾌감과 몰입감을 느낀다. 이를 ‘스펙터클 정치’라 부른다. 실제보다 보이는 이미지나 소비되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스펙터클 정치는 시청자를 관찰자가 아닌 지휘관의 시점에 놓아 위험한 환상을 심어준다.     맥락을 제거하고 특정 장면만을 강조하는 밈은 특히 강력한 선전 도구다. 스크린에 인기 게임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활보하고, 친숙한 레고 인형이 전투를 하면 시청자는 친밀한 시청 경험을 얻는다. 미국은 전쟁을 희화화하여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거나 국가의 우월감을 강조하며, 이란은 미국에 대한 국제적 반감을 조장하고, 역전 서사를 밈으로 퍼뜨린다.   전쟁은 언제나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 더 이해하기 쉽고 덜 불편한 형태로 재구성되어 왔다. 신문과 포스터는 전쟁에 대한 의무감을 세뇌했고, TV는 생중계로 전쟁의 비극과 고통을 드러냈으며, 밈과 쇼트 폼은 손끝의 유희가 되어 심리적 거리감을 제거한다.   정보전 전문가 루카스 올레이닉이 지적한 것처럼, 알고리즘은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감정의 틀을 완성한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인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특정 진영의 서사를 강화하는 심리전 설계자가 됐다. 전쟁은 현실에서 벌어지는데, 우리의 인식은 화면 위에서 형성된다. 비판적 거리 두기 없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이 만든 프레임 안에 이미 들어서 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보았나?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스크린 전쟁 전쟁 홍보 전쟁 메시지 베트남 전쟁

2026.04.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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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화창했던 3월의 마지막 주말,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공연 소식을 듣고 진발레스쿨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공연에 앞서 현대무용을 이해하며 그 예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시간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앨빈 에일리 현대무용단’은 하나의 역사이자 정신이다. 1958년, 안무가 앨빈 에일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무용단을 창단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삶, 특히 흑인 노예의 고통과 해방의 기억을 춤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춤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이 견뎌온 시간과 기억을 몸에 새기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정신은 무대 위에 흐르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는 오페라나 발레 공연과는 확연히 달랐다. 관객은 흑인 중심이었고, 표현은 훨씬 직접적이었다. 무용수의 작은 동작 하나에도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고, 인터미션마저도 대화와 웃음으로 가득해 조용한 쉼이 아닌 살아 있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 공간에는 다른 결의 자유로움과 생동감이 숨 쉬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차이 사이(Difference Between)’, ‘포옹(Embrace)’, ‘성스러운 블루스(The Holy Blues)’.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인간은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   마지막 작품 ‘계시(Revelations)’는 무용단의 대표작이다. 가스펠 음악 ‘아브라함의 품 안에서 내 영혼이 흔들린다(Rocka My Soul in the Bosom of Abraham)’가 흐르는 가운데, 성서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품’처럼 모든 고통이 잠잠해지는 안식의 감각이 스며든다.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는 장면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의지가 조용히 전해진다.   동작 하나하나가 피나는 연습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더 깊이 와 닿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무엇을 보게 되는가?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이 공연을 만난다. 어떤 이는 지루해하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미소를 짓는다. 현대무용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매년 이 공연을 보지만, 느낌은 늘 다르다. 같은 무대지만, 나는 늘 다르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났을 때, 나는 더는 단순한 관객이 아니었다. 내 안에 남은 울림을 조용히 느꼈다.   예술은 우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 비춰줄 뿐이다. 진최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발레 공연 공연 소식 동작 하나하나

2026.04.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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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위기에 처한 ‘출생 시민권’ 제도

연방 대법원이 ‘출생시민권 제한’ 위헌 여부 심리를 4월 1일 시작했다. ‘부모의 체류 신분에 따라 출생 시민권을 제한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의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다.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미국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한 이 원칙은 156년 동안 미국 정체성의 토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민권자, 영주권자의 자녀만이 미국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자 등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이민자의 자녀도 미국 시민권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 등 이민자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의 사소한 오류나 기록 누락도 수십 년 후 시민권 박탈의 근거로 삼겠다는 뜻이다.   아시아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헬렌 지아의 경고는 명확하다. “출생 시민권 제한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민권 정책으로 가장 위기에 빠진 이민자 커뮤니티는 쿠바, 베네수엘라, 이란계다. 원래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는 미국 이민 정책의 수혜자였다. 그들은 망명자,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후, 미국 정부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권 취득 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 지지자가 됐다.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동포들이 그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쿠바, 베네수엘라 출신 난민, 망명자를 위한 임시보호신분(TPS) 대상인 가족이 추방 위기에 놓이자, 이들 커뮤니티에서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출생 시민권 논쟁의 본질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다. 미국 헌법 수정 14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하고 그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시민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관할권에 속한다’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합법, 불법 체류자의 자녀가 ‘관할권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한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고생하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들이, 같은 한인들을 “체류 신분이 없다”며 배제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배제의 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역시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트럼프 행정명령은 보여주고 있다. 시민권의 토대까지 무너진다면, 이민자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시민권 위기 출생시민권 제한 출생 시민권 시민권 취득

2026.04.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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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부활’은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형

예수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이다. 무덤은 죽은자만의 공간이다. 무덤이 비어 있음은 더는 죽음에 매여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살아나셨기에 무덤 안에 계실리가 없고, 하여 그 무덤은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빈 무덤의 첫 번째 증인은 바로 돌에 맞아 죽을뻔했다가 예수님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창녀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그분 덕분에 살아난 막달레나에게 생명의 은인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가장 비통한 절망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한 여인이었다. 그랬기에 그날 새벽, 그녀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동트기 전 은인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리려 무덤에 갔다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어 즉시 사도들에게 달려가 예수 부활을 알렸다.   이것은 막달레나의 예수께 향한 사랑의 체험이 예수 부활을 맞게 된 극적인 순간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국계 청년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했다. 그가 약물에 취해 방황하던 20대 초반, 어느 추운 겨울 난생처음 양아버지인 퇴역군인을 따라 강원도 산골 바위 사이에 있는 돌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생모의 죽음과 입양인이 된 사연을 들었다.     양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하던 부대와 떨어져 칠흑 같은 산속을 헤매다가 바위 근처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눈 속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이었다. 얼어붙은 손으로 눈더미를 파헤치자 그의 눈앞에 놀라운 모습이 드러났다. 웅크린 채 숨진 알몸의 여인 품속에서 포대기와 엄마의 옷으로 감싸인 아기가 울고 있었다. 아기만은 살려내기 위해 자신이 입었던 마지막 옷까지 벗어 아기를 감싸고 동사한 여인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바위 사이에 여인의 시신을 묻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밤새 헤매다가 천행으로 부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부대장의 호의로 막사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전역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입양한 것이었다.     말없이 양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청년은 돌무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어 엄마의 무덤을 덮기 시작했다. 그가 알몸이 되었을 때, 그는 약물에 찌든 청년이 아니었다. 알몸으로 죽어간 엄마의 사랑이 그의 안에 사랑의 불씨가 되어 새사람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처참히 끌려가 매 맞고, 가시관으로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간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 앞에서 우리도 더는 죄 속에 살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그분의 사랑이 나의 모든 거짓과 위선과 탐욕의 자아를 불태우기에 충분했기에, 이제 올바르고 진실한 진리의 삶을 추구하는 ‘새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하는 내 삶의 ‘부활’아니겠는가!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김재동 / 의사·가톨릭 종신부제열린광장 현재형 부활 예수 부활 은인인 예수 예수님 덕분

2026.04.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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