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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토스’의 경고, 인간 없는 해킹 시대의 서막

1960년대 MIT 재학생들이 기차 모형을 개조하며 ‘해킹’이란 용어를 처음 썼을 때, 그것은 창의적 개선을 의미했다. 그러나 1971년 존 드레이퍼가 시리얼 상자 속 판촉용 호루라기로 AT&T 전화망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1988년 코넬 대학생 로버트 모리스가 ‘모리스 웜’으로 인터넷을 마비시켜 사이버 범죄자 1호가 되면서 해킹은 범죄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빈이 아파트에 앉아 시티뱅크에서 1000만 달러를 빼돌렸고, 작년 9월에는 중국이 클로드를 이용해 30개국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벌이던 스파이 활동이 발각됐다.     해킹은 언제나 인간이 저질렀다는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해킹의 역사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달 앤트로픽이 공개한 ‘클로드 미토스(Mythos) 프리뷰’는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취약점을 탐지하고 침투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자율형 AI(인공지능) 에이전트다. 인류 최고 난도 시험(HLE)에서 사상 최초로 정답률 50%를 돌파하며 AI 발전의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공개된 AI 중 가장 강력한 미토스가 인간 없는 해킹의 시대를 열었다.   미토스는 전 세계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에서 수천 건의 제로데이(Zero-Day: 아직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을 발견했다. 철옹성이라고 불리던 OpenBSD에서는 지난 27년간 수많은 천재와 보안 전문가들이 놓쳤던 결함을 찾아냈으며, 자동화 테스트 도구가 500만 번 검사했다는 영상처리 소프트웨어의 16년된 버그도 잡아냈다.   무엇보다 섬뜩한 사건은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토스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이 AI에게 샌드박스(격리 환경) 탈출을 시도하고, 성공하면 이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미토스는 보안 장치를 우회하고 다단계 공격 경로를 구축해 탈출한 후,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쉬던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메일을 읽는 동안 탈출 방법을 웹사이트 여러 곳에 올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 게시물을 누군가 발견했다면 미토스의 보안 뚫는 방법을 손쉽게 익혔을 것이다.     각국 정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주요 금융기관과 기업 경영진들을 긴급 소집해 보안 점검 강화를 요구했고, 백악관은 앤트로픽 최고 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를 직접 불러 브리핑을 받았다. 영국과 캐나다,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금융 당국과 은행권이 긴급히 회동했다.     앤트로픽은 미토스의 일반 공개를 보류하고, 기업과 정부 기관 등 40개 조직에만 접근을 허용하는 선별 공개 방식을 택했다. 동시에 글래스윙(Glasswing) 프로젝트를 가동해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과 함께 방어 체계 구축에 나섰다. 오픈AI 역시 유사한 ‘GPT-5.4-사이버’를 공개해 우려는 더욱 커졌다.     자율형 AI의 사이버 공격 파괴력은 핵폭발급이다.  AI 공격과 핵무기가 닮은 점은 한번 확산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이다. 이미 AI 공격의 진화 속도는 인간의 방어 패치 속도를 앞질렀다. 미토스는 취약점 탐지 능력은 탁월하지만, 보안 패치 코드 작성은 아직 제한적이다. 앤트로픽에서 새 모델을 검증하는 ‘레드팀’을 이끄는 로간 그레이엄은 앞으로는 AI 출시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토스가 공원의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낸 그 순간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었다. 지시를 받아 울타리를 넘은 AI가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자율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 측은 이 기이한 행보를 AI가 자신의 성취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인간의 안전’이라는 변수가 없는 AI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AI다. 문제는 기술이 통제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점이다.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늘 한 발 늦은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 이메일은 연구원이 아닌 우리에게 올 수도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미토 경고 사이버 범죄자 보안 전문가들 보안 장치

2026.04.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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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전화 피싱사기’ 정부 차원 대책 세워야

스마트폰 화면에 ‘총영사관’ ‘주미대사관’ ‘ICE(이민세관단속국)’ 발신의 전화번호가 뜬다. 전화기 너머 남자는 ‘아무개 영사’ ‘아무개 요원’이라며 근엄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당신의 한국 은행 계좌가 돈세탁 범죄에 이용되고 있으니 검사와 통화해보라”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식이다. 겁에 질려 자세히 물어보면 ‘아무개 검사’에게 전화가 넘어가 “지금 당장 여권이 취소되고 입국 즉시 체포, 추방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이들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물어보고, “수배를 풀어야 한다”며 수만 달러의 돈을 송금하라고 한다. 놀라고 당황해서 돈부터 송금하면 늦는다. 요즘  한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칭 사기’ 유형이다.   최근 전화 피싱 사기가 다양해 지고 있다. 은행, 신용카드 회사를 도용하는 수준을 넘어, 경찰관, 검사, 판사를 통째로 사칭하는 단계까지 왔다. 전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보호국 소속 변호사였던 모니카 바카 변호사는 “심지어 ICE를 사칭하는 사기 전화도 많다”고 지적한다. FTC의 케이티 다판 변호사는 “보석금 명목의 송금 요구, 위조된 석방 명령서, 반복되는 소액 결제 등이 사기꾼들의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사기 범죄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다. “당신에게 수배 영장이 떨어졌다” 또는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되어 보석 석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방된다”고 위협한다. 정보는 단절되고 불안은 극대화된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 사기범은 ‘해결사’로 등장한다. “지금 수배를 풀어야 한다” “반드시 풀려난다”는 식의 보장, “지금 보석금을 당장 결제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진다. 피해자는 선택지를 잃는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미디어)도 사기꾼의 새로운 사냥터다. 검색 상단의 유료 광고, 인스타그램의 추천 게시물, 겉으로는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해 보인다. 하지만 클릭 한 번이 수천 달러의 손실로 이어진다. 디지털 시대의 신뢰는 쉽게 위조된다. 최근 한국식 양념치킨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 1000달러를 사기를 당한 사례도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예방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신뢰할만한 가족 또는 변호사 연락처를 찾아두고, 가족 간 크레딧카드 및 은행 계좌 접근 권한 및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국 이민법센터, 법률지원정의센터 등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해를 보았다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은행과 송금업체에 연락해 거래를 취소하고, 신고가 부담스러우면 신뢰할 변호사 또는 단체를 통해 대리 신고를 요청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되찾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가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민 체류 신분에 대한 두려움, 언어 장벽,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침묵을 강요한다.   이 사기의 진짜 문제는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는 불안을 키우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사기꾼들이 ‘타깃’을 찾아내는 수단이 된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는 범죄의 온상이 된다. 사기범은 이 틈새를 파고든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경각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체계적 지원, 접근 가능한 법률 정보,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불안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안을 덜어주는 구조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피싱사기 전화 사기 전화 전화기 너머 사기 범죄

2026.04.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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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알래스카 지렁이와 개구리의 생존법

알래스카 중북부 지역은 겨울철 토양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토양생물은 생존 전략으로 동면을 택한다. 다만, 북극곰은 예외이다. 동면하지 않는 북극곰의 체지방 층은 다른 곰들과 달라 툰드라의 강추위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가을 차고 앞에서 20~30마리의 지렁이를 발견했다. 지렁이는 비가 온 뒤, 피부가 촉촉하면 땅으로 기어 올라온다. 땅속의 물이 포화상태면 피부로 호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자연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지렁이는 먹이 섭취를 위해 흙을 삼킨다.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한 후에는 소화액과 함께 흙을 배설한다. 이렇게 지렁이가 배설한 흙더미에는 식물에 필요한 영양소가 가득 담겨 있다. 식물성장에 꼭 필요한 질소도 그중 하나다.   생활 쓰레기 중 과일 찌꺼기나 야채 등을 이용해 지렁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과학 콘테스트를 관람하며 평가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플라스틱 통에 흙과 함께 지렁이를 넣고 키웠다. 지렁이는 수분이 60%에서 80%로 습한 환경을 선호한다. 생육온도도 20도 전후가 적당하다. 이런 생육조건과 환경이 조성되면, 과일이나 채소 찌꺼기를 흙위에 덮어 둔다. 며칠이 지나면 지렁이의 왕성한 먹성 때문에 이들 찌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렇게 분변토를 모아 둔다. 가끔 지렁이가 알을 낳아 새끼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알래스카 중부 지역 가옥들은 보온이 잘 되는 건축자재를 사용한다. 중부와 북부 지역은 매서운 추위 속에 습도는 30% 정도에 불과 사막형 기후에 속한다. 그래서, 피부가 건조하기 쉽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지렁이를 사육하려면 분무기를 이용해 물을 자주 공급해 주어야 한다. 지렁이는 피부가 메마르면 호흡 곤란으로 죽기 때문에 수시로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여름철 개인 농장이나 텃밭에 작물을 심을 때, 지렁이 분변토가 최고의 천연비료라고 한다. 알래스카 중심부 지역의 경우, 여름엔 백야로 해가 거의 지지 않는다. 작물 재배가 가능한 기간은 수개월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알래스카도 한여름에는 최고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다.      지렁이가 어떻게 알래스카의 춥고 긴 겨울을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렁이의 생존전략도 조물주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지렁이는 아마도 겨울엔 체내에 천연부동액 (Natural Antifreezing Liguid)을 만들어 스스로 보호하지 않을까 싶다.      알래스카에서는 모기도 동면을 한다면 믿을까? 알래스카 모기는 혹독한 겨울에 동면하고 봄철에 깨어나 알을 낳는다. 암컷 모기들은 월동을 위해 체내에 천연부동액을 만들어 몸을 보호한다. 지렁이도 비슷한 원리로 생존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신비가 따로 없다.  인간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방한복을 착용하지만, 곤충이나 동물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차이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따라 종단 관측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북위 66도 부근에서 토양 조사 중에 개구리를 발견했다. 개울에는 올챙이도 있었다. 개구리도 지렁이처럼 피부호흡을 한다.   그런데 알래스카에는 뱀이 없다. 변온동물인 뱀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뱀의 활동 온도는 영상 20도 이상이다.     너무나 빠른 기후 변화로 이러한 생육 조건들이 깨지지 않을까 싶다. 기후환경에 따른 변화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곤충과 동물도 변화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인류의 산업 활동 부산물이 자연에 해를 끼치는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열린광장 알래스카 지렁이 개구리도 지렁이 지렁이 분변토 알래스카 모기

2026.04.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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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사’로 소리나는 값진 낱말들

한 해의 네 번째 달인 4월(四月)이다. 음력으론 사월(巳月)이라 부른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 전쟁 탓에 사월(四月)인지 생월(死月)인지 모르겠다.  이 전쟁 때문에 ‘사생관두(死生關頭)’에 설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死)자가 들어있는 단어를 싫어하는 한인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死)자가 들어간 어휘는 많다. 육체는 없어져도 명성만은 영원히 남는다는 뜻의 ‘사차불후(死且不朽)’, 사정거리 안에 있지만 장애물 등으로 화력이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뜻하는 사각(死角),  죽음을 마물(魔物)로 보아 이르는 말인 사마(死魔), 광석을 다 채굴하여 광물이 거의 없어진 광맥을 일컫는 사맥(死脈),  곰팡이나 버섯처럼 죽은 생물에 기생하는 것을 뜻하는 사물기생(死物寄生),  음력 초하룻날 또는 그 날의 달을 일컫는 사백(死魄),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은 사병(死病), 한이 깊이 맺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명목(死不暝目), 또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군사는 사사(死士)라고 한다.     이 밖에 거의 죽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사상(死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얼굴은 사상(死相)이라 칭한다.  또 저항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행위는 사승습장(死僧習杖), 불교에서 중생이 수명이 다해 숨을 거두려는 찰나를 사유(死有)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이후이(死而後已), 사람의 생사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의 사생유명(死生有命)이란 말도 있다.  앞에 언급한 사생관두(死生關頭)는 죽느냐 사느냐의 결정적인 순간을 말한다. 밀도가 낮고 수온이 높은 바닷물이 그 반대의 바닷물을 덮고 있어 배가 나가는데 장애가 되는 사수현상(死水現象), 의사가 환자의 사망 사실을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사체검안(死體檢案), 막다른 길을 의미하는 사로(死路)에도 ‘사’자가 들어간다.     발음이 ‘사’자로 시작되는 어휘로는 실학의 대가 박지원을 사우(師友)로 모신 네 실학자를 일컫는 사가(四家), 역사가의 준말 사가(史家), 개인의 살림집 사가(私家), 사돈집 사가(査家), 스승의 집 사가(師家), 왕조 때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는 것을 말하는 사가(賜暇) 등도 있다.       ‘사상’으로 소리나는 낱말도 재미있다. 불교에서 생멸(生滅) 무상의 모습을 네 가지로 정리한 것 사상(四相),  천체에서 일월성신을 이르는 말 사상(四象), 일의 되어가는 형편 사상(事相),  낱낱의 특수한 성질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 사상(捨象),  실과 같이 가늘고 긴 모양을 의미하는 사상(絲狀)등 다양하다.     끝으로 영어의 에이프릴(april)과 불어의 에이브릴(avril)은 라틴어 아페리레(aperire)에서 비롯된 말인데 ‘펼치다, 또는 열다’란 뜻이다.  그래서 농부나 밭일을 하는 사람들은 4월이 되면 들로 나와 힘차게 활동을 하고 겨우내 땅속에서 잠들었던 동물들도 동굴을 박차고 나와 힘차게 움직이며 움츠리고 있던 식물들도 파릇파릇한 들로 나와 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윤경중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낱말 형편 사상 음력 초하룻날 전쟁 때문

2026.04.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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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선택적 인권, 공정한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의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고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것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인권은 어느 나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인권의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데 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 처형,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러시아의 전쟁범죄 의혹은 국제 사회가 오래전부터 지적해 온 심각한 인권 문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는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이스라엘 문제에만 유독 강경하다면, 그것은 보편적 인권의 실천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같은 인권 문제에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순간, 인권은 공정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국제 사회는 그것을 대한민국의 외교적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다. 누구에게는 엄격하고 누구에게는 침묵하는 태도는 결코 원칙이 될 수 없다.   같은 인권 문제라면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문제에만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면, 국제 사회는 이를 인권 외교가 아니라 선택적 인권 정치로 해석할 것이다.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인권은 공정이 아닌 정치적 계산일 뿐이다.   외교는 도덕적 만족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국익과 신뢰를 지키는 냉정한 전략의 영역이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외교적 파장을 낳고, 그 파장은 결국 국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안보·기술·외교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국가이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편향된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외교적 부담만 키우게 된다.   특히 미주 한인 사회에도 그 부담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미국 내 유대인 공동체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인권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미주 한인 사회도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한다. 이미 이스라엘 내 한인 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외교적 발언은 무책임하다. 더 큰 문제는 국제 사회가 이러한 태도를 원칙이 아니라 계산으로 본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의 인권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특정 국가에만 강경한 태도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원칙 없는 인권 외교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인권 외교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같은 인권 문제라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이 되고, 신뢰가 생긴다.     그러나 내 편에는 침묵하고 상대에게만 엄격하다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위선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인권의 기준을 달리하는 순간, 인권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명분도 잃고 국익도 잃는다.   인권을 외교의 명분으로 내세우려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북한에는 침묵하고 이스라엘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태도는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선택적 인권은 공정이 아니라 인권의 이름을 빌린 정치일 뿐이다. 인권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외교의 신뢰는 무너지고, 외교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익도 무너진다. 결국 선택적 인권이 반복될수록 공정은 사라지고 국익은 희생된다.   대통령의 외교 언어는 감정이 아니라 공정한 전략이어야 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선택 인권 인권 외교가 선택적 인권 인권 문제

2026.04.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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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룰라’와 함께한 아름다운 콘서트의 기억

1994년 한국 가요계는 많은 음악 그룹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가운데 음반 2장으로 가요시장을 석권한 혼성 댄스그룹 (이상민·김지현·고영욱·채리나)이 등장하는데 바로 ‘룰라’다. 1집의 ‘백일째 만남’과 2집 수록곡 ‘날개 잃은 천사’로 단숨에 정상에 올라섰다. “천사를 찾아 ~사바 ~ 사바사바~ ”라는 재미있는 가사에 엉덩이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려주는 가벼운 춤은 당시 누구나 따라 했을 정도로 인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인기 절정의 룰라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고 1996년 1월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내용인즉슨 3집 수록곡 ‘천상유애’가 1992년에 결성된 일본 남성 그룹 ‘닌자(Ninja)’의 ‘오마츠리 닌자’를 표절하였다는 의혹이었다. 멜로디, 후렴구, 리듬 등이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방송 출연 및 앨범 판매 중단, 이어 활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결국 리더 이상민과 멤버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버뱅크에 거주하면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이때 룰라의 소속사와 교분이 있었던 필자는 미국에서 명예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KBS ‘일요스페셜’에 소개된 백혈병 입양인 브라이언 성덕 바우만(당시 공사 4학년)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던 시절이라 ‘성덕 바우만과 백혈병 환자 돕기 자선 행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룰라 멤버들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먼저 멤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찾아 병상의 성덕 바우만에게 6월 자선 콘서트 취지를 설명하고 사관학교 교회에서 바우만의 쾌유를 비는 기도도 드렸다.    공연 일자는 1996년 6월 4일, 장소는 슈라인 오디토리엄(6300석)을 예약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스타디움이 최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LA 공항 인근 ‘할리우드 팍’(2만석)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룰라와 함께 헌혈 동참 캠페인을 겸한 대대적인 팬 사인회를 여는 등 홍보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좀 더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룰라 멤버들이 LA 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내려오면 하얀색 리무진이 그들과 함께 공연장을 한 바퀴 돌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퍼포먼스 후 무대로 이어지는 연출을 선보였다.   공연은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팬 1만5000여명이 공연장을 찾았으며, 수백 명이 헌혈에 동참했다. 공연 수익금 중 2만 달러를 룰라 이름으로 아시안골수기증협회 (AMMM)에 기부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자선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룰라는 재기에 성공했다. ‘3!4!’라는 히트곡이 담긴 4집을 발표하며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공연은 관객, 아티스트, 수혜자, 스폰서, 기획사 등 모두에게 큰 보람을 선사했다. 그날 1부를 진행하며 공연 취지를 널리 알렸던 방송인 동문자, 정재윤, 김병규씨 등 세 분의 수고도 잊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두 분(정재윤, 김병규)은 이미 고인이 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공연장을 찾았던 청소년들은 지금 40~50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룰라와 함께했던 그 날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기억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콘서트 룰라 룰라 멤버들 자선 콘서트 이때 룰라

2026.04.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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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막연한 공포 대신 ‘법치의 힘’ 믿어야

최근 한인 사회에 흐르는 분위기 가운데 하나가 ‘공포감’이다.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발언들이 평범한 이민자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이 있다면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라거나 “미국적 가치에 반하는 이민자는 배척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들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의 합리적인 법리와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가 만든 안갯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법치의 힘’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성 정체성과 관련된 이민 신분 문제다.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 운전면허증 등 법적 서류를 만든 이들이 “트럼프 정부가 이를 서류 조작이나 사기로 간주해 추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초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차원에서 출생 시 성별만을 공식 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 정부 서류와 연방 이민 서류 간 불일치가 행정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은 실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법적 원칙이 있다. 이민법에서 정의하는 ‘사기’란 혜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대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행위를 뜻한다. 주 정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친 성별 정체성을 소급 적용해 추방의 근거로 삼으려면 반드시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 절차(Due Process)’ 원칙에 따른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한 뒤 타주로 이사하거나 직종을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영주권이 취소된다는 소문도 떠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주권자는 미국 내 어디서든 거주와 취업의 자유가 있어 이사나 이직 자체는 영주권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영주권자가 장기간 미국을 떠나 거주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다. 즉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하거나 미국을 ‘주된 거주지’로 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영주권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던 이민법 원칙이다. 실제로 재입국허가서 없이 한국에 장기 체류하다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한인 사례도 적지 않다. 소문이 아닌 법조문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는 것, 그것이 불안을 이기는 첫걸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민권자 추방’ 역시 불안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번 부여된 시민권을 다시 빼앗는 일은 역사적으로 드물다. 그 절차 역시 행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여러 겹의 법적 장치로 묶여 있다. 시민권 박탈은 반드시 연방 법원을 거쳐야 하며, 법원은 정부에 높은 수준의 입증을 요구한다. 애초에 신분을 속여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성실히 살아온 이민자가 시민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적다. 미국은 여전히 헌법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사법부가 행정부의 과잉 조치를 견제하는 시스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법적 보호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행정법원에서 연방 항소법원까지 이어지는 이민 재판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뜬소문에 휘둘리는 대신, 본인의 체류 신분 취득 경로와 해외 체류 기록 등에 흠결이 없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법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만큼 단단한 방패는 없다. 거센 정치적 파도 속에서도 법치주의와 이민법 시스템은 미국의 중심을 잡는 닻 역할을 한다. 막연히 추방의 공포에 떨기보다 자신의 법적 권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김원아 / 변호사열린광장 공포 법치 시민권자 추방 시민권 취득 시민권 박탈

2026.04.1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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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원택의 영-한 지구촌 사전’

79년의 생을 마감한 한 정신과 의사가 인류의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의 마지막 40일 동안 극심한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견딘 후 4월 3일 아침 11시, 마치 제단의 번제물처럼 자신의 생을 불태우듯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가 남긴 ‘이원택의 영-한 지구촌 사전’은 단순한 언어 사전이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향한 철학과 사유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50여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마주해왔다. 본래는 문학을 꿈꾸던 소년이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오랜 세월 환자 치료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작가로서의 꿈이 자리하고 있었고, 40대 이후 그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창작의 세계로 들어섰다. 여러 작품을 남겼지만 그는 기존 문학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생의 후반부에는 사전이라는 독창적인 형식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를 따라가기 어렵다면, 차라리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단어가 살아 움직이는 사전’, 즉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의 공간을 꿈꾸었다. 기존 사전들이 권위적이고 고정된 지식을 담은 ‘죽은 사전’이라면, 그가 만들고자 한 것은 대화가 ‘살아 숨 쉬는 사전’이었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교만으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바벨탑과는 달랐다. 그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확장을 목표로 삼았다. 영어와 한글을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통해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갈등과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언어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였다.   의사 이원택, 그의 삶은 겸손과 배려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주장을 앞세운 적이 없었다. 타인을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격려, 도움을 줬다. 그는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며 스승이자 친구, 그리고 성자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경기도 파주에서 독서와 집필 활동으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언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말에는 온도와 힘이 있다”는 그의 믿음처럼, 그의 사전 속 단어들은 단순한 뜻의 정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가 된다.   혼란과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그는 마지막까지 평화의 언어를 선택했다. 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책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인류의 미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이원택 지구촌 지구촌 사전 언어 사전 의사 이원택

2026.04.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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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옳음’을 잃어버린 정치

영화 한 편이 사람을 오래 붙들어 놓을 때가 있다. 최근 관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그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극이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의 정치를 향해 정면으로 던지는 불편한 고발장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비운의 왕 ‘단종’이 있다. 권력에서 밀려난 어린 왕, 그리고 그를 지워버리려는 냉혹한 권력. 그 서슬 퍼런 칼날 아래, 끝까지 남은 사내가 있다. 영월의 촌장 엄흥도다. 모두가 등을 돌린 자리에서 끝까지 등을 보이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이다.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둔다는 것은 단순한 장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가문의 파멸을 각오해야 하는 결단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기꺼이 나섰다.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 내려진 서늘한 판결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가 무엇을 상실했는지를 단 한 줄로 꿰뚫는 선언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정치인들에게 불편하다.   이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정치인의 ‘옳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 ‘옳음’은 늘 권력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가.   오늘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국회에서 여당이 표를 앞세워 일사불란하게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조차 않다.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울지 모르나, 고국을 바라보는 미주 한인들의 시선은 절대 편안하지 않다.   지금 여당 내부를 관통하는 흐름은 단순하다. 철저한 권력 중심의 재편이다. 권력의 향배에 얼마나 빠르게 올라타느냐, 얼마나 정확하게 줄을 서느냐가 정치적 생존의 유일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책은 장식이 되었고, 철학은 실종됐으며, 가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극적인 것은 이것을 더는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계파 정치에는 최소한 ‘명분’이라는 가림막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조차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결과뿐이다. 누가 권력을 쥐었는가, 그리고 그 곁에 누가 서 있는가다. 결국 정치의 언어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천박한 연고주의로 축약된다.   그 과정에서 ‘의리’라는 단어가 다시 호출되지만, 그 의미는 처참하게 변질되었다. 지금의 의리는 신념이 아니라 ‘거래’다. 권력에 대한 선제적 투자이며, 보상을 전제로 한 계산기 두드리기다. 충성은 미덕이 아니라 보험이 되었고,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전략으로 덧칠됐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단지 고도화된 ‘생존 기술’일 뿐이다.   본래 정당정치는 질서를 지향한다. 공동체의 지속을 논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을 말하는 자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질서는 복종으로 치환되었고, 자유는 줄서기로 대체됐다. 철학은 사라지고 기술만 남았다.   정당은 외부의 공격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의 기준이 무너질 때 비로소 붕괴하는 법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조차 실종된 조직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옳음’을 잃어버린 배는 결국 암초를 만나 침몰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현실이기에 타협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판단이 일사불란함으로 환원되어 침묵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때부터 정치는 사람을 버리기 시작하고, 결국 국민을 버린다.     명백한 문제 앞에서도,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입을 여는 순간 공천과 직위, 영향력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양심의 입을 닫는다.   그러나 정치는 본래 그 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결단, 그 기개 있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겐 그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엄흥도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자리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나, ‘옳음’을 지켰다. 지금 한국 정치가 가장 뼈아프게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권력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옳음’은 앞으로도 권력 앞에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미주 한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철웅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정치 본래 정당정치 정치적 생존 한국 정치

2026.04.12.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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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야구 시즌의 시작

야구 팬들이 기다리던 메이저리그(MLB) 시즌이 시작됐다. 야구에서도 중요한 것이 심판의 역할이다. 특히 투수가 던진 볼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는 전적으로 주심의 판정에 달렸다. 볼도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면 경기는 그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서도 주심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컴퓨터로 다시 확인하는 규정이 생겼다. 인공지능(AI)이 스포츠의 승패를 가르는 영역까지 진출한 셈이다.   야구(baseball)는 미국에서 '국민 스포츠(National Pastime)'로 불릴 정도로 인기다.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MLB)는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와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로 나뉜다. LA다저스가 포함된 내셔널리그는 1876년에, 아메리칸리그는 1900년 창설됐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국가 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려 세계 야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가 우승 후보였던 미국을 3대2로 꺾고 우승했다.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포수인 살바도르 페레스는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무릎을 꿇고 흑백 TV로 우리를 응원하는 모습을 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페레스의 언급은 양국의 정치적 긴장 관계를 고려하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주로 편입하고 싶다는 말로 여론을 들끓게 했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안전 가옥에 병력을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 미국으로 압송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의 야구 역사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두 명의 선수가 있다. MLB에서 755개의 홈런을 기록한 행크 아론과 그 이전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1920년대 수퍼스타 베이브 루스다. 714개의 홈런을 기록한 베이브 루스가 갖고 있던 MLB 최다 홈런 기록은 1974년 4월 8일 당시 밀워키 브레이브스 소속이던 행크 아론이 715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아론은 미국 야구 역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야구 선수들도 여럿이 있다.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스탠 뷰니앨, LA다저스의 샌디 쿠팩스 등이다.     이정후(SF 자이언츠), 김혜성(LA다저스), 송성문(SD파드레스),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  MLB에서 활약중인 한국 선수들의 행운을 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야구 시즌 야구 시즌 야구 선수들 세계 야구팬들

2026.04.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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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스크린 속 전쟁,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미사일이 목표물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파괴의 현장에 록 밴드 AC/DC의 강렬한 기타 선율이 흐른다. 화면 구석에는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것은 게임 트레일러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공개한 이란 공습의 실제 영상이다.   미-이란 무력 충돌은 물리적 전장뿐만 아니라 틱톡, 인스타그램, X(트위터)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공습 장면이 비디오 게임 클립처럼 편집되고,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영화 장면과 교차된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한 편의 전투 게임처럼 엔터테인먼트화된 것이다.     이러한 홍보 전략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이란 역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전장에서의 우위를 주장하는 선전물과 허위 정보로 정보전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AI(인공지능)로 만든 정교한 가짜 영상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만큼이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쟁 홍보와 심리전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역사는 인류의 무력 충돌 역사만큼 오래됐다. 핵심은 항상 동일하다. 아군의 정당성과 승리 확신, 그리고 적의 악마화다. 매체만 진화했을 뿐이다.     고대와 근대에는 정보전이 지도자의 위엄과 위상에 집중됐다. 1차 세계대전 후 신문과 포스터가 발달하면서 비로소 조직적인 면모를 띠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선전의 위력을 극대화한 인물이었다. 논리를 감정과 자극으로 대체했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라디오를 통해 선전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하고, 반복된 전쟁 메시지로 대중의 인식을 지배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이 여론전의 분수령이었다. 1970년대 TV 시대가 열리며 전쟁의 참상이 중계되자 반전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걸프전(1991년)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반영해 선별되고 통제된 영상만 공개됐다. 정보는 설계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정보전은 내용보다 '어떻게 소비되는가'에 집중한다. 밈화 되고 게임화된 영상은 전쟁을 안보의 최후 수단이 아닌, 조회 수를 올리는 자극적인 콘텐트로 변질시킨다. 시청자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가공된 이미지에서 쾌감과 몰입감을 느낀다. 이를 ‘스펙터클 정치’라 부른다. 실제보다 보이는 이미지나 소비되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스펙터클 정치는 시청자를 관찰자가 아닌 지휘관의 시점에 놓아 위험한 환상을 심어준다.     맥락을 제거하고 특정 장면만을 강조하는 밈은 특히 강력한 선전 도구다. 스크린에 인기 게임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활보하고, 친숙한 레고 인형이 전투를 하면 시청자는 친밀한 시청 경험을 얻는다. 미국은 전쟁을 희화화하여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거나 국가의 우월감을 강조하며, 이란은 미국에 대한 국제적 반감을 조장하고, 역전 서사를 밈으로 퍼뜨린다.   전쟁은 언제나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 더 이해하기 쉽고 덜 불편한 형태로 재구성되어 왔다. 신문과 포스터는 전쟁에 대한 의무감을 세뇌했고, TV는 생중계로 전쟁의 비극과 고통을 드러냈으며, 밈과 쇼트 폼은 손끝의 유희가 되어 심리적 거리감을 제거한다.   정보전 전문가 루카스 올레이닉이 지적한 것처럼, 알고리즘은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감정의 틀을 완성한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인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특정 진영의 서사를 강화하는 심리전 설계자가 됐다. 전쟁은 현실에서 벌어지는데, 우리의 인식은 화면 위에서 형성된다. 비판적 거리 두기 없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이 만든 프레임 안에 이미 들어서 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보았나?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스크린 전쟁 전쟁 홍보 전쟁 메시지 베트남 전쟁

2026.04.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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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화창했던 3월의 마지막 주말,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공연 소식을 듣고 진발레스쿨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공연에 앞서 현대무용을 이해하며 그 예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시간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앨빈 에일리 현대무용단’은 하나의 역사이자 정신이다. 1958년, 안무가 앨빈 에일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무용단을 창단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삶, 특히 흑인 노예의 고통과 해방의 기억을 춤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춤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이 견뎌온 시간과 기억을 몸에 새기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정신은 무대 위에 흐르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는 오페라나 발레 공연과는 확연히 달랐다. 관객은 흑인 중심이었고, 표현은 훨씬 직접적이었다. 무용수의 작은 동작 하나에도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고, 인터미션마저도 대화와 웃음으로 가득해 조용한 쉼이 아닌 살아 있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 공간에는 다른 결의 자유로움과 생동감이 숨 쉬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차이 사이(Difference Between)’, ‘포옹(Embrace)’, ‘성스러운 블루스(The Holy Blues)’.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인간은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   마지막 작품 ‘계시(Revelations)’는 무용단의 대표작이다. 가스펠 음악 ‘아브라함의 품 안에서 내 영혼이 흔들린다(Rocka My Soul in the Bosom of Abraham)’가 흐르는 가운데, 성서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품’처럼 모든 고통이 잠잠해지는 안식의 감각이 스며든다.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는 장면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의지가 조용히 전해진다.   동작 하나하나가 피나는 연습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더 깊이 와 닿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무엇을 보게 되는가?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이 공연을 만난다. 어떤 이는 지루해하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미소를 짓는다. 현대무용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매년 이 공연을 보지만, 느낌은 늘 다르다. 같은 무대지만, 나는 늘 다르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났을 때, 나는 더는 단순한 관객이 아니었다. 내 안에 남은 울림을 조용히 느꼈다.   예술은 우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 비춰줄 뿐이다. 진최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발레 공연 공연 소식 동작 하나하나

2026.04.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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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위기에 처한 ‘출생 시민권’ 제도

연방 대법원이 ‘출생시민권 제한’ 위헌 여부 심리를 4월 1일 시작했다. ‘부모의 체류 신분에 따라 출생 시민권을 제한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의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다.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미국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한 이 원칙은 156년 동안 미국 정체성의 토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민권자, 영주권자의 자녀만이 미국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자 등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이민자의 자녀도 미국 시민권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 등 이민자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의 사소한 오류나 기록 누락도 수십 년 후 시민권 박탈의 근거로 삼겠다는 뜻이다.   아시아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헬렌 지아의 경고는 명확하다. “출생 시민권 제한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민권 정책으로 가장 위기에 빠진 이민자 커뮤니티는 쿠바, 베네수엘라, 이란계다. 원래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는 미국 이민 정책의 수혜자였다. 그들은 망명자,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후, 미국 정부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권 취득 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 지지자가 됐다.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동포들이 그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쿠바, 베네수엘라 출신 난민, 망명자를 위한 임시보호신분(TPS) 대상인 가족이 추방 위기에 놓이자, 이들 커뮤니티에서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출생 시민권 논쟁의 본질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다. 미국 헌법 수정 14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하고 그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시민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관할권에 속한다’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합법, 불법 체류자의 자녀가 ‘관할권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한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고생하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들이, 같은 한인들을 “체류 신분이 없다”며 배제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배제의 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역시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트럼프 행정명령은 보여주고 있다. 시민권의 토대까지 무너진다면, 이민자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시민권 위기 출생시민권 제한 출생 시민권 시민권 취득

2026.04.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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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부활’은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형

예수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이다. 무덤은 죽은자만의 공간이다. 무덤이 비어 있음은 더는 죽음에 매여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살아나셨기에 무덤 안에 계실리가 없고, 하여 그 무덤은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빈 무덤의 첫 번째 증인은 바로 돌에 맞아 죽을뻔했다가 예수님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창녀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그분 덕분에 살아난 막달레나에게 생명의 은인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가장 비통한 절망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한 여인이었다. 그랬기에 그날 새벽, 그녀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동트기 전 은인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리려 무덤에 갔다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어 즉시 사도들에게 달려가 예수 부활을 알렸다.   이것은 막달레나의 예수께 향한 사랑의 체험이 예수 부활을 맞게 된 극적인 순간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국계 청년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했다. 그가 약물에 취해 방황하던 20대 초반, 어느 추운 겨울 난생처음 양아버지인 퇴역군인을 따라 강원도 산골 바위 사이에 있는 돌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생모의 죽음과 입양인이 된 사연을 들었다.     양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하던 부대와 떨어져 칠흑 같은 산속을 헤매다가 바위 근처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눈 속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이었다. 얼어붙은 손으로 눈더미를 파헤치자 그의 눈앞에 놀라운 모습이 드러났다. 웅크린 채 숨진 알몸의 여인 품속에서 포대기와 엄마의 옷으로 감싸인 아기가 울고 있었다. 아기만은 살려내기 위해 자신이 입었던 마지막 옷까지 벗어 아기를 감싸고 동사한 여인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바위 사이에 여인의 시신을 묻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밤새 헤매다가 천행으로 부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부대장의 호의로 막사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전역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입양한 것이었다.     말없이 양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청년은 돌무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어 엄마의 무덤을 덮기 시작했다. 그가 알몸이 되었을 때, 그는 약물에 찌든 청년이 아니었다. 알몸으로 죽어간 엄마의 사랑이 그의 안에 사랑의 불씨가 되어 새사람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처참히 끌려가 매 맞고, 가시관으로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간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 앞에서 우리도 더는 죄 속에 살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그분의 사랑이 나의 모든 거짓과 위선과 탐욕의 자아를 불태우기에 충분했기에, 이제 올바르고 진실한 진리의 삶을 추구하는 ‘새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하는 내 삶의 ‘부활’아니겠는가!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김재동 / 의사·가톨릭 종신부제열린광장 현재형 부활 예수 부활 은인인 예수 예수님 덕분

2026.04.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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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돌봄의 의미로 맞이하는 부활절

이렇게 곤고한 환경에서도 봄이 찾아온다. 지구촌 여러 곳의 참혹한 전쟁이 인류의 마음을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봄이 봉오리 같은 소망의 기운을 함께 실어오기를 고대한다.   교회력으론 부활절이다. 복음서는, 골고다 언덕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록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 기록했다. 십자가를 통과하시고 첫 부활의 아침을 주신 그리스도의 ‘이처럼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고백하는 시간을 회복하기 원한다.       인류는 19세기까지도 아프고 슬퍼하는 가족이나 친지를 가정에서 돌보았다. 대다수가 가족의 돌봄을 통해 아픔과 상처를 함께 느끼고 회복을 느끼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의료진과 전문 케어 테이커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업무는 환자 치료이며, 마음과 영을 돌아보는 돌봄은 여전히 가족과 친지의 몫이다.   병원과 너싱홈의 확대로 인류가 새롭게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환자 가족 대기실과 수술 대기실, 그리고 ER의 침실과 일반병실 어디를 방문하든 가족은 환자를 둘러보고 가는 방문객일 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돌봄의 가치와 돌봄의 권리, 그리고 돌봄에 담긴 실존적 사랑과 이해의 감성은 인류가 잃어가는 중요한 부분이다.   어느 날 아침, 병원 복도에 긴급 코드가 울렸다.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이 환자 침상으로 모였다. 원목인 나도 도착해 상황을 보니 환자에게 긴급 프로토콜이 시작됐다. 몇 주간 병상을 지켰던 환자의 딸이 병실 코너에 앉아 힘들어하는 침상의 어머니만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가 임종을 기다리는 순간, 나는 딸의 특별 요청을 의료진에게 전하고 허락을 받았다. 딸이 어머니 곁에 누워 가만히 껴안고 체온을 느끼며 그간의 사랑이 고마웠다고, 그리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속삭이며 작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지난 40일간 십자가 묵상의 시간과 고난주간을 보내고 인류는 부활절을 다시 맞이한다. 주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되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통과하시기까지 ‘이처럼 사랑’ 하심을 이 아침에 마음 깊이 품어보자.     당시 부활절 아침 빈 무덤으로 달려온 제자 모습은 ‘두려움과 큰 기쁨’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돌봄을 주고받는데 익숙하지 못하여 고독의 질병에 쉽게 걸리는 시대를 지나지만,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그 사랑을 느끼고 품어보자.  그리고 마음 다해 찬미에 동참하자.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Hellelujah !     이 부활절에 소망 찬 새 생명의 기쁨이 모든 마음과 가정에 불어오길 간구한다. 김효남 / HCMA 원목 협회 디렉터열린광장 부활절 의미 당시 부활절 중환자 가족 십자가 고난

2026.04.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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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핵과 AI에 묻는 인간의 한계

핵무기와 인공지능(AI)의 발전은 21세기 국제 질서와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지역의 충돌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군사적 충돌을 넘어, 핵과 AI가 결합한 새로운 전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핵무기는 인류가 경험한 어떤 무기보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다. 단 한 번의 사용으로도 대규모 인명 피해와 문명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동시에 핵무기는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억제 장치로도 작동해 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제 정치에 지속적인 긴장을 부여한다.     AI는 전쟁 수행 방식에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 방대한 정보 수집과 목표 설정, 작전 수행 과정에서 AI의 역할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 전쟁이 인간의 판단과 경험에 크게 의존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의사 결정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점차 좁히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빠르고 정교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인간의 개입 여지는 줄어든다. 특히 핵무기와 결합할 경우, 그 위험성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선다. 만일 AI가 핵무기 운용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자동화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전쟁이 인간의 숙고를 거치지 않은 채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인간 스스로 이 힘을 통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더는 추상적 고민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충돌은 이 문제가 현실의 문제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핵 시설을 둘러싼 긴장, 그리고 동원된 정밀 타격 기술과 AI 기반 정보 분석은 전쟁이 얼마나 빠르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충돌이 오판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핵보유국들 사이에서 AI가 개입된 판단 체계는 속도를 높이는 대신 숙고의 시간을 줄인다. 그 결과 작은 신호 하나가 확대 해석되어 군사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과의 갈등은 역사적 긴장의 연장선에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 본질에서 다르다. 과거에는 인간의 판단과 정치적 협상이 마지막 안전장치로 작동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이 그 중간 단계를 대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결정의 주체라기보다 결정의 승인자로 밀려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핵과 AI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능력과 한계, 그리고 책임의 문제다. 인간은 오랫동안 더 강한 힘을 추구해 왔지만, 힘의 확대가 곧 통제력의 확대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중동 상황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때,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판단 능력과 도덕적 기준까지 충분히 갖추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기술력은 신속한 결정을 가능케 하지만, 정당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AI 역시 효율성과 정확성에서는 뛰어날 수 있지만, 가치 판단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결국 방향을 설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따라서 핵과 AI 시대에도 절제와 책임이 먼저 요구된다.     강력한 수단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통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리고 판단 속도가 인간의 숙고를 앞지를 때,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책임 있게 행동할 때만이 핵과 AI는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축적해 온 힘은 스스로를 위협하는 요소로 돌아올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술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한계 기술적 문제 핵무기 운용 전쟁 양상

2026.03.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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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열 길 물속과 한 길 사람의 속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길’이란 낱말이 참 재미있다. 사람의 ‘키’를 일컫는 말인데 사람의 키를 자로 쟀을 때 여덟 자나 열 자쯤 된다면 물의 깊이는 사람 키의 열 곱절이 되는 깊은 물이 되는 것이다. 깊은 물 속에 있는 것은 알아차리면서 제 키만큼도 안 되는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능력을 비꼬는 말이다.      사실 사람의 속마음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몇 십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산 부부일지라도 그 속내평을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 대인관계 등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특히 유명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제 허물을 털어놓는 일일 것이다. 갖고 있던 지위와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며 어쩌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타니엘 호톤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 등장하는 아더 딤즈데일 목사와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이야기도 그런 예다.       프린은 행방불명된 의사 남편을 찾다가 미남인 딤즈데일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딸까지 낳게 된다. 당시는 청교도 정신이 지배하던 사회였으므로 딤즈데일과의 관계를 밝힐 수 없었던 프린은 스스로 감옥에 가고 간통이란 의미의 A자가 새겨진 죄수복을 입고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행방불명됐던 프린의 남편은 돌아오고 프린이 낳은 아이가 딤즈데일의 딸임이 밝혀지자 양심의 가책을 받은 딤즈데일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프린은 딸을 키우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웃들은 그녀를 천사와 같은 여자라고 부르게 되고 간통의 A(Adultery)는 천사의 A(Angel)로 바뀌게 된다.        딤즈데일은 목사였다. 본인이 입어야 할 A자가 새겨진 옷을 프린이 대신 입었다. 하지만 늦게나마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양심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딤즈데일은 일곱 해 동안이나 자신의 죄를 숨기고 살았지만 마침내 죄를 털어놓고 세상을 떠난다. 죄를 감추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 없이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의미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때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 길 물속은 노란 H(거짓과 교만(Hypocrisy, Haughtiness)) 를 낳게 하고, 한 길 사람 속은 파란 H (정직과 겸손(Honesty, Humbleness)) 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기 쉽다는  촌철살인 (寸鐵殺人)을 귀담아 들여야 한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물속 입고 봉사활동 hypocrisy haughtiness honesty humbleness

2026.03.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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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약물 남용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

‘마약에 취한 미국’하면 금방 떠오르는 곳이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LA와 샌프란시스코다. 약물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마약중독자와 홈리스의 모습이 매일같이 언론에 보도되는 현실이다.     다행히 수치상으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LA카운티의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이 22% 감소했다. LA카운티 공중보건국(LA DPH) 약물남용 예방·통제 책임자인 브라이언 헐리 박사는 “펜타닐 관련 사망자가 크게 줄었고 메스암페타민 관련 사망자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LA카운티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 감소 이유는 날록손(naloxone)이라는 약물의 배포 확대다. LA카운티는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멈춘 호흡을 되살리는 이 약물 수백만 회 분량을 배포했다. 그 결과 2019년 이후 5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LA카운티 보건서비스국(LA DHS) 피해 감소 부서 책임자인 쇼샤나 스콜라는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서로를 살렸고 지역사회가 응급 처치자가 되었다. 공식 시스템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안전망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숫자 뒤에 가려진 진실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LA카운티에서는 흑인의 과다복용 사망률이 가장 높으며, 인구가 가장 많은 라틴계는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인종으로 나타났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구해지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특히 약물중독 노숙자 대부분은 휴대전화도 없다. 지원 체계도 부족하다. 과다복용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누군가 지켜보지 않으면 그가 위험에 처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약물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피해 감소 전략과 지역사회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우스 LA 지역 비영리단체 호픽스(HOPICS·Homeless Outreach Program Integrated Care System)의 켈빈 드리스콜 국장은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지원하는 아웃리치 활동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호픽스의 자원봉사자 오로라 모랄레스는 과거 홈리스 생활과 메스암페타민 중독을 경험했다. 지금은 스키드로와 맥아더 파크에서 약물 과다복용 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비난이 아니라 공감과 지원이었다”며, 산소공급 장비와 날록손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그 결과 호픽스는 지난해 599명의 생명을 구했고, 스키드로 케어 캠퍼스에 하루 3000명을 치료하고 있다.   한인 사회와 미국 사회는 약물 중독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본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치료와 회복보다 처벌과 격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LA의 사례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피해 감소(harm reduction)’라는 접근이다. 약물 사용을 당장 멈추지 못하더라도 생명을 지킨다. 그 생명이 살아있는 한 회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약물 위기는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 전체의 문제다. 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빈곤, 주거 불안정, 정신건강 지원 부족, 의료 접근성 격차가 얽혀 있다. 그래서 해결책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날록손 배포는 시작에 불과하다. 주거 지원, 정신건강 서비스, 치료 프로그램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역사회가 응급 대응자가 되는 것을 넘어, 회복을 지지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중독자를 ‘그들’이 아닌 ‘우리’로 보는 것. 비난 대신 공감을 선택하는 것. 모랄레스의 말처럼 “더 많은 대화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약물 위기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약물 남용 약물남용 예방 약물 과다복용 la카운티 약물

2026.03.2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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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에 대한 기억

지난해 5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최정우 배우는 LA 한인 사회와도 인연이 있다. 그가 연기 공부를 위해 LA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1997년 초, 우리는 만나면 연극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극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최정우가 33회 동아 연극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휩쓸었던 ‘돌아서서 떠나라’(이만희 작/채윤일 연출)의 LA공연을 추천했다. 본인이 한국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였기에 여자 주연인 채희주 역을 맡을 여배우만 캐스팅되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나 또한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곧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한인 여자 연극인 중에서 극 중 의사인 채희주 역에 적합한 배우를 찾았다. 디행히 무대 경험도 많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방송인 고영주씨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동네방네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가 있었던 때라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해 5월 첫째 주를 공연 날짜로 정하고 공연장을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한인타운에 있는 가든 스위트 호텔 2층 테라스였다. 당시 이 호텔은 한국 첫 프로 테니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덕희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호텔 2층 야외 테라스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200석 규모의 디너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5월 8일부터 11일까지 4회 공연을 올리기로 하고 준비 단계에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 작가 이만희가 합류하게 되어 연출부는 한층 힘을 얻었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이만희 작가의 대표적인 2인 극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를 앞둔 조직폭력배 두목 공상두와 여의사 채희주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는 “아름답고 멋지게 헤어지는 법, 슬픔의 재미, 감동적인 언어 미학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했다.     5월 초순, 다소 서늘한 바람이 불었던 주말 저녁, 저녁 식사를 끝낸 관객들은 극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연극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공상두가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사랑하고...혼자 남기고  떠나는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라는 중요한 대사를 하는 순간, 호텔 앞에서 경찰 차량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연극이 10초가량 정지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두 배우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멋지게 연극을 갈무리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한인 타운에서 처음 시도된 야외 연극 무대에  4일간 8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LA 공연 후 1998년 영화 ‘약속’(주연 박신양, 전도연)으로 재탄생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연극 기억 연극 이야기 동아 연극상 여의사 채희주의

2026.03.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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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감시 사회' 우려 낳는 SNS <소셜미디어> 검색 시스템

지난해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은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한국인은 소셜미디어(SNS) 주소를 공개하라”고 공지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는 AI(인공지능)을 이용해 비자 및 이민 신청자의 SNS를 검색하고 분석한다. 만약 비자 신청자가 미국 정부 또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SNS에 쓴 경우, 비자 심사에 참고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미국 정부의 ‘AI 분석과 감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이민 OS’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단순한 이민업무 처리 도구가 아니라, 국세청(IRS)의 납세 기록, 건강보험 정보, 푸드스탬프 등 사회복지 수혜 내역, 국경 출입국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통합 감시 인프라’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비시민권자’만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민 신청 후원자의 생체정보 수집, 식량 지원 프로그램 수혜자 추적, 관계망 분석을 통한 ‘생애 패턴’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감시의 그물은 이미 시민권자의 일상으로도 스며들고 있다. 그 결과 이민자들은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의료기관 방문을 주저하게 되고, 복지 서비스 신청도 지레 포기하게 된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는 이른바 ‘위축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이민서비스국의 AI 감시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감시 인프라는 처음에는 특정 집단을 겨냥해 시작되지만, 일단 구축이 되고 나면 그 범위와 용도가 확장되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 이민자 단속용으로 만든 시스템이 시위 참가자 추적에 쓰이고, 국경 관리 기술이 도심 감시에도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통제 아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억압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민서비스국 감시 시스템은 한인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2030년으로 예정된 인구조사(센서스)에 한인 등 이민자들의 참여율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AI감시가 계속된다면,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개인 정보가 포함된 센서스 기록이 나중에 이민 단속 등에 활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1941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 시민권자들을 격리, 수용하면서 센서스 기록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센서스 기록은 절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약속해왔지만, AI 감시 시스템 도입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이 ‘감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더 많은 개인 정보를 수집할수록 시민의 신뢰는 오히려 줄어든다. 투명성 없는 데이터 통합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되면 의료 서비스를 회피하는 이민자 가정, 복지 혜택을 포기하는 저소득층, 인구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혼합 신분 가구들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감시 강화가 오히려 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 수집을 방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의 감시는 이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번 구축된 AI 감시 인프라는 언제든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오늘 ‘그들’을 겨냥한 시스템이 내일은 ‘우리’를 향할 수 있다. 이를 막는 방법은 투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AI를 이용한 이민자 감시를 막아야 할 것이다. 이종원 변호사열린광장 소셜미디어 시스템 감시 인프라 통합 감시 사회복지 수혜

2026.03.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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