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반이 훌쩍 지나가고 7월이 시작됐다. 은방울꽃과 장미꽃과 더불어 오뉴월도 우리를 떠나가고 말았다. 올해 7월은 7월의 꽃 수련(睡蓮)처럼 아름다울까?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7월 초하루에 전쟁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1863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남북전쟁의 최후 결전이 된 게티즈버그 전투가 벌어졌고, 1898년에는 미국이 쿠바에서 벌인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샌 후안 힐을 점령했다. 7월에는 미국 바깥에서도 전쟁이 있었다. 1914년 7월 28일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졌고, 1937년 7월 7일에는 중국군과 일본군이 충돌했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7월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776년 7월4일 연방 의회에서 존 핸콕이 독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에 서명함으로써 미국독립기념일 (Independence Day)이 된 것이다. 한자 사자성어에 용양호박(龍攘虎搏)이라는 말이 있다. 힘센 두 사람이나 두 세력이 맹렬히 싸운다는 뜻인데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는 큰 사건이 7월에 터졌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알라모골도’에서 몇몇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을 실험한 것이다. 그 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이어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짐으로써 마침내 세계 2차대전이 끝났다. 한국에는 ‘칠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칠월에는 으례 장마가 있기 마련이다)’거나 ‘칠팔월 은어 끓듯 한다(수입이 줄어서 살기 힘들다)’는 속담도 있다. 7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훌륭한 격언이나 어휘도 제법 있는데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것이 잘 섞여 있어서 꽤 재미있다. 7자가 겹친 낱말 ‘칠종칠금 (七縱七擒)’ 은 마음대로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 하는 비상한 재주를 일컫는 어휘고, 사업이 계속 실패하거나 잇따른 불운으로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을 일컫는 낱말을 ‘칠령팔락 (七零八落)’ 이라 한다. 7자가 들어간 쉽고도 재미있는 낱말도 적지 않다. ‘칠뜨기’는 칠삭둥이의 속된 말이고, 새색시가 쓰는 족두리를 ‘칠보 (七寶) 족두리’라고 한다. 담근 뒤 이레 만에 마시는 술은 ‘7일주(七日酒)’, 아이가 태어난 지49일째 되는 날을 ‘칠칠일(七七日)’이라고 한다. 7월에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도 있었는데 그중 세 가지 큰 사건만 소개한다. 먼저 프랑스에서 일어난 바스티유 폭동이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광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왕정 체제가 무너졌으며, 프랑스인이 남긴 최고의 업적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또한 1969년 7월 20일은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올던 암스트롱이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한 날이다. 한국에서도 7월에 큰 정치적 사건이 있었다. 군사정권 때 벌어졌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다. 군사정권은 1980년 7월 체포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 후 미국의 도움으로 형 집행이 정지됐다. 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수련 아름 independence day 세계 2차대전 프랑스 혁명
2026.07.12. 20:00
“종일 일해서 투표할 시간이 없다”, “투표하면 배심원 재판에 불려 나가는 게 싫다”, “투표하면 정치광고, 전화가 귀찮을 정도로 많이 온다”, “미국 여권이나 시민권 서류를 못 찾겠다” 등은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한인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한인 시민권자 가운데는 미국 선거에 별 관심이 없고 그러다 보니 투표도 하지 않은 분들이 많다. 이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AAPI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한인 유권자는 10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그리고 이 중 평균 58% 정도만이 투표에 참여한다. 사실 한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민자 커뮤니티 투표율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투표 참여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법안이 나왔다. 유권자 신분검사 강화 법안(일명 SAVE 법안)이다. 이 법안에는 투표 때 유권자의 신분증 및 미국 시민권 증명 제시 의무화(미국 여권, 출생증명서, 시민권 증서 등), 우편투표 금지 등의 세부 내용이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SAVE 법안의 통과 없이는 다른 법안에도 서명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SAVE 법안의 통과를 주장하는 것은 ‘부정선거 방지’라는 이유 때문이다. “불법체류자와 비시민권자가 미국 시민권자를 가장해 투표하고, 부정선거로 미국 선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미국 시민권자 여부를 조사하겠다”, “투표를 하고 싶으면 신분증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비시민권자가 투표에 참여해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첫째, 비시민권자의 투표는 번거롭고 위험하다. 비시민권자가 미국 선거에 투표하면 이민 신분을 빼앗기고, 최악의 경우 추방당할 수도 있다. 투표 한 번으로 인생을 망치고 싶은 비시민권자는 없다. 더구나 자영업 비중이 높고 대부분 영어가 서툰 비시민권자들은 복잡한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참여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둘째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부정선거'를 주장한 직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조지아 주 정부가 조사한 결과 투표자 820만명 가운데 비시민권자는 20명에 불과했다. 전체 유권자 비율의 0.0002%로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다. 보트라이더스(VoteRiders)의 김다해 매니저는 "미국에서 유권자 사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셋째, 시민권자 증빙 서류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미국 시민 가운데 여권을 소유한 사람은 52%에 불과하다. 오래전 발급받은 출생 증명서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시민권자도 많지 않고, 귀화와 결혼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시민권자 증명에 사용할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결국 SAVE 법안의 의도는 뻔하다. ‘부정선거’를 핑계로 시민권 증빙 서류를 갖추기 어려운 이민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의 투표를 방해하겠다는 의도다. 김 매니저는 “기존 법체계만으로도 비시민권자의 투표는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장벽이 계속 만들어진다. 존재하지 않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유권자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SAVE 법안은 투표함 앞에 선 사람을 돌아서게 만드는 법이다. 총칼보다 조용하지만 더 효과적으로 유권자를 탄압하는 법안이다.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 대신, 한인을 비롯한 더 많은 이민자가 미국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이종원 / 변호사열린광장 부정선거 실체 비시민권자가 투표 비시민권자가 선거 비시민권자가 시민권자
2026.07.09. 20:34
해마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때가 오면, 내 마음속에는 늘 한 사람이 떠오른다. 한국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했던 한 미국 여인. 이름은 세월 속에 희미해졌지만, 그녀의 따뜻한 마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휴전 후에도 군에 남아 장교로 복무했다.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국토는 폐허였고 군대도 현대식 장비와 기술이 절실했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으로 미국의 대규모 무상 군사원조가 이루어졌다. 새 장비를 운용할 초급장교들을 미국 각 군사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게 했고, 나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뉴저지의 미 육군 통신학교에서 1년간 레이더와 통신 교육을 받았다. 낯선 미국 생활 속에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영화에서만 보던 풍경을 찾아다니며 향수를 달래곤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외출하려 숙소를 나서는데 서른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미국 여인이 어린 남매와 함께 장교 숙소 앞에서 “Let's Go to Church”라고 적힌 작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의 권유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 뒤 집으로 초대를 받아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탁 옆에는 군복을 입은 한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남편이십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말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제 남편입니다.” 순간 식탁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을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 사람을 만나면 남편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후 우리는 그녀를 따라 교회에 다녀온 후 함께 식사하거나 공원에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김치입니다.” 며칠 뒤 그녀는 직접 만든 김치를 내놓았다. 한국 영사관에 전화해 담그는 법을 배웠지만 배추를 구하지 못해 양배추로 대신 만들었다고 했다. 정통 김치는 아니었지만, 그 한 접시에는 한국을 향한 사랑과 전쟁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김치를 세상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게 먹었다. 그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가 서툴던 시절이라 성이 '스미스'였다는 것만 남아 있다. 우리는 늘 그녀를 “맴(Ma’am)”이라 불렀고, 어느새 모두가 애정을 담아 ‘김치마담’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녀도 그 이름을 무척 좋아했다. 훗날 미국에 이민 온 뒤 나는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은 너무나 변해 있었고 끝내 그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긴 세월이 흘렀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나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겼다. “미세스 스미스, 아니 우리의 ‘김치마담’. 당신이 보여주신 사랑은 한미동맹의 어떤 조약보다도 따뜻했고, 저는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김치마담 미세스 미세스 스미스 한국 영사관 정통 김치
2026.07.08. 18:38
오래전 일이다. 당시, 유학생들은 주일이 되면, 갈 곳이 없어 믿음이 있든 없든 교회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 나와야 한국말도 할 수 있고, 그리운 한국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교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문제가 있다면 자체 건물이 없어서, LA한인타운에 있던 미국 교회의 교육관을 예배 장소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배와 교회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매년 9월 초, 노동절 연휴가 되면 1박 2일, 때로는 2박 3일로 빅베어에 있는 미국 장로교 수양관에서 유명한 강사님을 모시고 수양회를 가졌다. 꼬박, 10년을 그렇게 했다. 어느 해 수양회의 마지막 날 밤, 모두 밖에 나와 손을 잡고 각자 짧게 한마디씩 하는 기도회로 수양회를 마무리 지었다. 불게 타오르던 모닥불도 다 꺼지고, 남은 것은 밤하늘에서 내려 비취는 별빛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밤의 산바람 소리뿐이었다. 산바람 소리는 조용하고 고요했지만, 몹시 찼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담요를 가져와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집사님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집사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것이었다. 집사님은 6·25 때 평안도에서 혼자 남으로 피난을 나온 뒤, 명문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일찍 미국에 와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번 분이었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온순하고 조용해서 교회에 나와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목사님은 그분의 나이와 경력 학력,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집사로 임명했다. 그런 분이 처음으로 어렵고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이 교회에 열심히 나오시니 당연히 기도도 잘하실 수 있을 줄 알고, 정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분이 집사가 되신 후 대중 기도를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사님에게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집사님의 기도 내용을 궁금해했다. 궁금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비트는 사람,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오마니, 북두칠성을 보니까, 오마니 생각이 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뚝 그쳤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잔디밭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거룩하고 성스러워야 할 기도회가 그만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도저히 기도회를 더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모두 기도회가 어떻게 끝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날 이후 그 집사님의 별명은 ‘북두칠성’이 되고 말았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그 ‘북두칠성 집사님’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 지금은 높고 높은 북두칠성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 집사님과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그리울 뿐이다. 주영세 / 은퇴 목사·ROTC 1기열린광장 북두칠성과 집사 북두칠성 집사님 모두 기도회 산바람 소리
2026.07.07. 20:29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자유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국가로 성장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와 행정 시스템은 한국의 자부심이고, 미주 한인들에게도 조국의 발전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지방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선거관리 혼란은 이러한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장시간 기다리거나 투표를 포기해야 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투표용지가 파쇄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이 확산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관리 부실과 혼선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국민이 선거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에 대한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필요한 곳에는 투표용지가 부족하고, 다른 곳에서는 투표용지가 폐기되었다면 참정권 침해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지는 것만큼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송파구 선관위를 둘러싼 증거 보전 논란은 의혹을 더 키웠다. 법원의 증거 보전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선관위의 해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민주주의는 규정 준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투명성과 책임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사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세대는 2030 청년들이다. 이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권위보다 공정을 중시한다. SNS를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에 선관위의 늑장 대응과 소통 부재는 불신을 더욱 증폭시켰다.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의 의심을 샀다는 사실 자체가 선관위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선관위의 태도 역시 문제다. 선거관리 개혁과 참정권 침해 의혹을 다루기 위해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다수의 선관위원이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문을 남겼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질문조차 외면한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신뢰 위에 세워진다. 선거관리 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다. 우리에게는 이미 3·15 부정선거라는 아픈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선거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 국민적 분열과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는지 확인했다. 따라서 이번 논란 역시 진영 논리나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이 아니라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신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기관의 의무이며 민주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진실 규명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의혹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 파쇄된 용지의 실체, 법원 명령 이행 여부, 선거관리 전반의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해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뿐 아니라 외부 감사, 사법적 검증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의혹을 덮는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 더욱 강해진다. 선관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변명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제도 개혁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경쟁력은 첨단 기술이나 빠른 행정에 있지 않다. 공정한 제도와 신뢰받는 선거 시스템에 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다. 참정권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는 결국 국가 재난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경고를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참정권 위기 선거관리 혼란 선거관리 개혁 참정권 침해
2026.06.30. 19:44
아름다운 6월에도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다. 한국의 6·25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고 미국에서도 영국과의 전쟁, 인디언과의 대규모 전투가 많았던 것이 6월이다. 미국이 처음 영국과 싸운 것은 1775년 6월 17일 일어난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다. 전쟁(war)이라 하지 않고 전투(battle)라 부르는 까닭은 같은 민족 간의 소규모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12년의 전쟁은 달랐다. 규모도 컸지만, 미국이 정식으로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 전쟁이었다. 1775년 ‘벙커 힐 전투’ 당시 수많은 보스턴 주민이 영국군을 포위했다. 이때 영국군 토마스 게이지 중장은 본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보스턴 주민들은 영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벙커 힐을 점령하고 찰스 강 북쪽을 요새화했다. 그러자 윌리엄 호우 영국군 소장이 25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요새를 공격했고, 미군은 윌리엄 프레스컷 대령을 중심으로 맞섰다. 1775년 6월 17일 시작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미군은 전사자만 500여명에 달했다. 1812년 6월 1일 당시 매디슨 미국 대통령은 연방 의회에 영국과의 전쟁 선포를 요청했다. 그는 미국 해양업자와 무역업자들을 보호하고 영국군의 인디언 지원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연방 의회는 1812년 6월 18일에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의 외무장관은 미국의 전쟁 선포 이틀 전 이미 미국 의회의 전쟁선포는 무효라고 선언했지만, 그 내용은 전쟁 발발 때까지 미국에 전달되지 않았다. 영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전쟁 선포를 ‘메디슨의 전쟁(Mr. Madison’s war)’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의 서부개척 시기 몬태나주 북쪽 지역에 살고 있던 수 인디언(Sioux Indian) 부족과 백인 이주민 간의 갈등이 심했다. 이 와중에 육군 중령 조지 커스터와 그의 부대원들이 수 인디언 마을을 습격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 인디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커스터 중령과 그의 부하들을 죽였는데 이 사건이 1876년 6월 25일 발생한 ‘수 인디언 전쟁(Sioux Indian War)’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6·25 전쟁과 같은 날이다. ‘6·2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5성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 10 특수군단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했다. 이 지역은 조수의 차이가 9m나 되는 곳이다. 맥아더 장군은 제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 휘하의 군인들을 서울로 진격시켜 9월 26일 서울을 회복했다. 이후 1951년 3월 중공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북한을 완전히 궤멸하려는 맥아더 장군의 작전계획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11일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사령관에서 해임했다. 일설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한 조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맥아더 장군은 1964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회고록은 지하 납골당에 보관되어 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전쟁 전쟁 인디언 인디언 전쟁 전쟁 선포
2026.06.28. 18:40
매년 5월과 6월이면 미국 대학들은 300만 명이 넘는 사회 초년생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2026년 졸업생들의 출발선은 유독 냉혹하다. 졸업식 연사가 축사 도중 ‘인공지능(AI)’을 언급할 때마다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AI에 가장 익숙한 세대가 AI 때문에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미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고 실업률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2~27세 사회 초년생의 실업률은 전국 평균(4.3%)을 웃도는 5.7%에 달한다. 블룸버그는 지난 3년 동안 기업들의 신입 인력 채용 공고가 35% 감소했다고 보도했으며, 하버드대학의 노동경제학자 래리 카츠는 현재의 구직난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침체기 수준이라 진단한다. AI가 채용 시장 자체를 바꾼 것도 문제다. 시사지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지금의 구직시장은 인간적 교감과 검증 방식이 무너진 상태로 서로를 기만하는 소모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구직자는 AI를 이용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AI 면접을 준비해 수백 곳에 지원한다. 기업은 쏟아지는 유사한 지원서를 AI로 걸러낸다. 채용 과정에서 사람은 마지막 단계에나 등장한다.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최근 에세이에서 “AI는 과거 어떤 기술보다 노동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며, 그 충격은 장시간 지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교육이 쓸모없는 사치로 전락했다는 회의론도 등장했다. 그러나 급격한 기술 전환기일수록 대학 교육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다. 달라진 것은 시장이 요구하는 자격의 눈높이다. 기업들은 이제 경험 없는 신입보다 실무 경험과 기술 전문성, AI 활용 능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서류로 증명하기 어려운 의사소통 능력과 리더십도 요구한다. 대학 역시 AI 시대의 교육 방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불안한 학생들은 입학 직후부터 학업과 병행해 시장 조사와 아이디어 발전, 법인 설립까지 창업 전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AI는 창업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인턴십과 실무 경험, 동아리 활동 등은 취업 성공률을 두 배로 끌어 올려주는 자산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수천에서 수만 달러를 들여 자녀에게 커리어 코치를 붙여주고 이를 투자라고 한다. 대학들이 방향을 모색하는 사이 새로운 교육 실험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 비영리 교육기관 칸 아카데미와 테드(TED), 국제교육평가기관(ETS)이 손잡고 ‘칸 테드 인스티튜트’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AI 시대에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목적이다. 과거에는 정답을 빨리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정답이 바뀔 때마다 다시 배워야 한다. 올해 졸업생들이 지나온 길은 유난히 험난했다. 고교 시절엔 팬데믹으로 고립됐고, 대학 시절엔 캠퍼스 안팎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지켜봤으며, 사회로 나서는 문턱에선 AI 소용돌이를 만났다. 이들은 AI를 가장 능숙하게 사용하는 세대이지만 노동시장은 그 능력을 아직 평가할 방법을 모른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개인의 능력보다 시기와 구조의 문제다. 그러니 자책할 이유가 없다. 기성세대 역시 정확한 길을 알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100세 시대에 잠시 부모 집으로 돌아가 ‘부메랑 키드’가 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아니므로, 인턴, 계약직, 자원봉사, 프로젝트, 긱 워크(Gig work) 등 기회가 되는 대로 실무 경험을 쌓아 ‘중고 신인’으로 진화하는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MBA 졸업식에서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AI 시대를 살아갈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말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변화와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정직한 리더십을 추구하며, 회복 탄력성을 기르고, 인간적 연결을 소중히 여길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세상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흔들린 사람들은 대개 가장 먼저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이 아직 모를 뿐이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노동시장 대학 교육 실무 경험 사회 초년생들
2026.06.23. 18:56
처음으로 입원 환자가 되었다. 담당의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만 허용했다. 나름 건강하게 늙어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었는데 침상에 누워만 있으니 내 인생도 멈춘 것처럼 생각됐다. 산을 넘을 수 없다면 문지방이라도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담당 의사와 간호사에게 운동의 필요성을 열심히 설명했다.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과 설득으로 간신히 거동과 보행 허가를 받았다. 내가 입원한 UCLA병원 병동은 2줄의 긴 복도가 있다. 이 복도를 3번 왕복하면 7500보 정도를 걷게 된다. 그리고 중간에 큰 창문이 있는 공간에서 간단한 근육 강화 운동도 했다. 인간은 40대가 넘으면 생리적으로 매년 반파운드 가량의 근육 손실이 온다. 중년 이후에 근육 강화 내지 보존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더욱이 입원 환자는 일주일에 5파운드의 체중 감소가 발생한다. 그중 4파운드가 근육이다. 걷기 운동을 하면 종다리 근육군, 엉덩이 근육군, 허벅지 근육군, 그리고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근육 순으로 강화된다. 근육에서는 마이오카이닌이라는 신호 단백질이 분비되어 중·노년에게고중요한 면역체를 활성화 하고, 심혈관에도 도움을 준다. 걷는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준다.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진정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고,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발과 함께 움직인다”고 말했다.위대한 음악가 슈베르트와 베토벤은 걸으면서 많은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유명한 베토벤의 심포니 6번 전원교향곡도 걸으면 악상이 떠올랐다고 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혼자서 한적한 오솔길, 해변 모래밭을 산책하다보면 삶의 의미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되고, 마음에 쌓인 상처를 치료하고 명료한 생각도 끌어낼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중·노년 이후 습관적으로 매일 걷다 보면 건강을 유지하며 삶의 의미를 알게 되고 자신감도 갖게 될 것이다. 참고로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열량 소모는 걷기(220cal/hr), 자전거(300cal/hr),수영(425cal/hr),농구·축구(580cal/hr), 마라톤(610cal/hr) 순서로 많아진다. 걷기는 시니어들에 체중 조절의 좋은 방법도 된다. 하이킹이나 숲속, 바닷가도 좋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동네 한적한 길을 찾아 매일 꾸준히 걷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삶을 위해 모두 열심히 걷자. 최청원 내과의사·수필가열린광장 인생 종다리 근육군 근육군 허벅지 근육 강화
2026.06.22. 18:27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이들이 있다. ‘영주권’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땅을 밟은 지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직장을 얻어 성실하게 일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들은 미국을 ‘내가 살아갈 곳’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하지만 요즘 이민 사회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유난히 차갑고 무겁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각종 반 이민정책 때문이다. 지난달 이민국이 발표한 ‘정책 메모’의 충격도 그중 하나다. 이민 당국은 이 메모에서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신분조정(I-485) 절차를 ‘정부의 시혜이자 예외적 구제’라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발표 직후에는 미국 내에서 I-485가 제한되고 출신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 정성껏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번졌다. 특히 LA처럼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충격이 심했다. 다행히 ‘정책 메모’의 의도가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심사관들이 재량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숨ㄹ 돌리기는 했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민 변호사로 일하면서 고객의 절망에 찬 눈빛을 마주할 때가 많다.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오르곤 한다. 신들의 형벌을 받아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바위는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는 다시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가 처음부터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정부의 이민 정책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서류를 다시 챙겨야 하는 이민자의 현실과 닮아 있다. 그러나 카뮈는 이 신화의 결말을 비극으로 끝맺지 않았다. 바위가 굴러떨어진 후, 그것을 다시 밀기 위해 산 아래로 걸어 내려오는 시시포스의 그 ‘ 단단한 발걸음’에 주목했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다시 돌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시시포스는 형벌을 내린 신들보다 더 거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케이스를 다뤄온 경험으로 볼 때 이 상황은 결코 희망이 없는 막다른 길이 아니다. 현재의 강화된 심사 기조는 미국 내에서 영주권 신청을 전면 차단하는 일괄적 금지가 아니다. 이민국 ‘정책 메모’에 따르더라도,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다만 심사관의 재량과 서류 검증이 한층 더 철저해진 것뿐이다. 정부의 이민 정책 기조 변화로 바위가 몇 번이고 굴러떨어질지언정, 철저한 서류 준비와 합법적 신분 유지가 뒷받침된다면 제도의 장벽은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달라진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고, 요구 사항에 따르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면 된다. 공연히 불안과 초조함에 길을 잃지 말라는 의미다. 미국을 지탱하는 힘 가운데 하나는 매일 일터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내는 평범한 이민자들의 땀방울이다. 제도가 아무리 까다롭게 바뀌고 문턱이 높아진들, 우리는 늘 올바른 답을 찾아냈고 이 땅에 뿌리를 내려왔다. 바위는 단단하지만, 준비된 우리의 법적 권리와 삶은 그보다 더 단단하다. 김원아 변호사열린광장 이민자 바위 순간 바위 이민 정책 정책 메모
2026.06.21. 20:00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도 뛰어난 인물이 많다. 몰몬교의 영수 브리검 영, ‘엉클 톰스 캐빈’의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 노벨상을 받은 펄 벅 여사, 그리고 천문학자 조지 헤일 등도 그들이다. 몰몬교의 제2 영수인 브리검 영은 1801년 6월 초하루에 태어났다. 영은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the Later- day Saints’ 란 명칭의 교파 영수였던 조셉 스미스가 사망한 뒤 이 교파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영은 버몬트주 위팅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했고, 겨우 12일 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는 청년이 되어서는 페인터, 유리장사, 목수 등의 일을 했다. 그는 1829년 뉴욕 먼로 카운티에 살며 조섭 스미스의 종교 교육을 받고 1832년 세례를 받았다. 영은 성공적인 선교사로 일했다. 그는 1839년에서 1841년까지 영국에서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미국으로 이민도 주선했다. 영은 스미스가 총살 당할 때도 뉴잉글랜드에서 설교했다. 몰몬교는 유타주에서 크게 번창하였다. 영은 관개 기술을 이용 사막을 농토로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유타주 주지사가 되었다. 베스트셀러 소설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는 1811년 6월 14일 코네티컷주 리치필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장로교 목사였고, 레인 신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녀는 1836년 이 신학교 교수 칼빈 스토와 결혼했기에 성이 스토가 됐다. 소설 ’엉클 톰스 캐빈‘은 유머와 현실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다. 소설의 내용은 미국 남북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고 남부지역에서 그녀의 이름은 증오의 상징이었다. 특히 그녀의 후기 작품들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레이디 바이런의 정당성(1870년 출간)‘이란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바이런의 이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1892년 6월 26일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보로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출간한 책 가운데 중국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내용이 많은 이유다. 펄 벅의 책 가운데 1932년 풀리처상을 수상한 책이 유명한 ’대지(The Good Earth)‘ 다. 이 책엔 중국 농부 왕룽의 애국심을 잘 그린 책이다. 6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인 29일에 태어난 유명 천문학자가 있다. 1861년 시카고에서 출생한 조지 엘러리 헤일이다. 헤일은 태양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여러 기구를 개발한 선구자다. 그는 샌디에이고의 팔로마 전망대에 있는 헤일 반사망원경 등 여러 망원경 설치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메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헤일은 1819년에 단광태양사진기를 발명했는데 이 기구는 전기의 단파로 태양의 표면을 촬영할 수가 있다. 헤일은 또 위스콘신에 열크스전망대를 설치하고 초대 전망 대장을 지냈으며, LA 인근에 있는 마운트윌슨전망대를 세우기도 했다. 윤경중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유명인 천문학자 조지 신학교 교수 베스트셀러 소설
2026.06.18. 19:09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동물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 운명 개척은 고립된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고, 인간 자신을 알아야 생명과 정신의 관계를 바로 세우며, 사회를 알아야 협동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 세 가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물질세계의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한다. 거시세계의 천체부터 미시세계의 소립자까지 모든 물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자기를 보존하려는 주관적 성질을 지니고 운동.발전한다. 물질에 객관성만 있다는 유물론이나 주관성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론은 모두 일면적 오류다. 물질세계의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한다. 지구 형성 후 10억년간의 화학적 진화를 거쳐 유기물질이 나왔고, 그 후 35억 년 동안 생명물질로 진화했다. 살려는 욕망과 능력을 창조적으로 쓰기 위해 두뇌의 작용인 정신이 출현했다. 인간은 이를 통해 생활력을 객관화하고 사회적 존재로 발전했다. 동물은 생명력을 자신의 육체에만 가두어 두지만, 인간은 획득한 생활력을 도구와 제도, 문화라는 객관적 대상에 체현시켜 이용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회적 의식인 정신적 힘, 사회적 재부인 물질적 힘, 사회적 관계인 협조의 힘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인간은 개인인 동시에 사회적 집단이며, 물질세계 발전의 운명을 책임진 위대한 존재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자주적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기까지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원시 공동체의 채집·수렵 생활을 거쳐,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던 고대 노예제 사회로, 다시 신분적 차별을 신의 뜻으로 돌린 봉건사회의 숙명론으로 이어졌다. 18세기 서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은 왕의 독재와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며 자본주의를 꽃피웠다. 자유경쟁은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패배자에 대한 냉대와 강대국들의 이기주의라는 그늘을 남겼다. 그렇다고 노동계급 독재로의 전환이 대안이 아님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미 실증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과제는 명확하다. 정당들의 정경유착을 극복하고, 인간 본성에 맞게 개인주의의 창발성을 발양시키면서도 집단주의의 공공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권사상과 주권재민의 구현이다.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모든 아동이 교육을 받으며, 모든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기술과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지만, 인간성의 성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가 패권주의는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무한 경쟁의 경제 구조는 이기심을 강화한다. 인간을 도구화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인공지능(AI)과 로봇, 핵융합 에너지 같은 기술의 진보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기술이 단순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질문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책임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 존엄을 다시 문명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연결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선언은 인간을 우주적 질서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이해하라는 요청이다. 내면의 성찰과 영성은 사적 위안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실천과 공동체적 연대로 확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경쟁 중심에서 벗어나 협력과 공감을 기르는 장이 되어야 하며, 정치 리더십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의 민주화와 통일 역시 인류 보편의 가치와 연결된 문제다. 과학 기술은 모든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사막을 농장으로 바꾸는 기적을 전하겠지만, 그 기술을 움직이는 리더십은 결국 인간의 정신에 있다. “함께 살며 발전하자”는 명제는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나의 성장이 타인의 불행이 되지 않고, 우리의 풍요가 지구의 고통이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가야만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을 믿고, 연대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개척해야 할 인간의 참된 운명이다. 김 용 / 한울 운동 대표열린광장 ai시대 윤리 사회적 존재 물질세계 발전 소련식 사회주의
2026.06.17. 19:25
이솝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매일 황금알 하나를 얻던 주인은 더 많은 황금을 한꺼번에 얻고 싶은 욕심에 거위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거위의 배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는 황금알도, 거위도 모두 잃고 말았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기업 이익과 미래 산업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며 이 우화가 떠오른다. AI(인공지능)는 이제 국가 경쟁력과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AI 산업이 만들어낼 막대한 부를 국민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AI 혁명의 경제적 혜택을 일부 기업만 누리지 않고 국민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언급했다. 겉으로 보면 이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삼성전자 초과이익 분배 논쟁과 비슷해 보인다. 기업이 만든 부를 사회와 함께 나누자는 주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두 논쟁의 출발점은 다르다. 한국의 삼성전자 논쟁은 이미 발생한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미국의 AI 논의는 앞으로 성장할 미래 산업을 어떻게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더 가까운 접근이다. 결국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황금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황금알을 계속 낳을 수 있는 거위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다. 기업은 노동자의 노력, 소비자의 선택, 그리고 사회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기업이 사회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의 방식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결과를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과 기업의 현재 이익을 정치적 압력으로 즉시 재분배하는 것은 다르다. 미국의 AI 논의 역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하거나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자유시장 원칙에 맞는지에 대한 우려다. 정부가 투자자와 규제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은 AI 산업의 성장을 막지 않으면서 국민이 미래 성장의 혜택에 참여할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에서 기업 이익 논쟁이 단순히 현재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만 머문다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전자는 단순한 한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와 연결된 핵심 산업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데이터, 반도체, 기술 인재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은 미국의 엔비디아, 대만의 TSMC 등 세계 최고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의 이익은 단순히 쌓아두는 돈이 아니다.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성장의 자원이다. 오늘의 이익을 모두 소비해 버린다면 내일의 성장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도 변해야 한다. 노동자와 협력업체를 단순한 비용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성장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발전할 때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의 씨앗을 약화시키는 방식의 분배는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경제는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기업,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이익을 얻는 구조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욕심 때문에 거위의 배를 가르면 황금알도 사라진다. 그러나 거위를 건강하게 키운다면 더 많은 황금알을 기대할 수 있다. AI 시대의 진정한 과제는 ‘누가 먼저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큰 성장을 만들고 그 열매를 함께 나눌 것인가’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결국 이 질문에 달려 있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황금알 거위 황금알 하나 거위 이야기 미래 성장
2026.06.16. 19:15
이른 아침에는 늦가을, 낮에는 한여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환절기 남가주의 날씨다. 어떤 날은 새벽과 한낮의 기온 차이가 30도 이상이다. 새벽에는 잠시 전기장판을 켰는데, 오후가 되니 에어컨이 돈다.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문득 부채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부채질해 본 것이 언제였지? 요즘도 간혹 접는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서도 여름이면 홍보 부스에서 손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진짜 부채는 대나무 살을 갈라 종이를 붙여 만든 다소 투박한 것이다. 외가에는 낡은 철제 선풍기가 있었지만, 소리도 크고 바람의 세기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를 낡은 대나무 살 부채로 견디곤 했다. 부채는 사람이 품을 팔아야 바람이 나온다. 세게 부치면 센 바람이 나오고, 살살 부치면 미풍이 나온다. 덥다고 마구 부치다 보면 팔이 아파, 팔을 바꿔 부치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고 부치기도 한다. 이상하게 내가 부치는 바람보다는 남이 부쳐주는 바람이 훨씬 더 시원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곁에서 살살 부쳐주는 바람이 가장 시원했지 싶다. 더울 때는 차가운 온돌 바닥이나 마루에 누우면 시원하긴 하지만, 땀에 피부가 달라붙는다. 그래서 돗자리나 삼베 또는 모시 홑청 위에 눕는다. 할머니 곁에 누우면, 할머니가 부치는 부채 바람이 할머니의 땀을 식히고 내게도 온다. 부채는 땀을 식히는 일 외에 모기나 파리를 쫓거나 잡는 일에도 쓰였다. 팔·다리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내려치기도 하고, 먹고 남은 참외나 수박 위에 앉은 파리를 잡기도 한다. 그래서 낡은 부채는 끄트머리가 찢기고, 여기저기 모기와 파리의 피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하수 시설이 열악했던 모양이다. 장마철이면 저지대의 부엌에는 아궁이로 물이 스며들기도 했다. 습기를 없앤다고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꺼진 연탄불에 불을 붙일 때도 부채는 쓰였다. 불을 피울 때는 너무 세게 부치면 안 되고 살살 불씨를 키워야 한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날씨가 더워지면 창문을 꼭꼭 닫고 블라인드나 커튼을 친다. 찬바람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부채를 부치던 시절에는 더워지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지면 낡은 부채 하나씩 들고 작은 공터에 누군가 내다 놓은 평상 위에 모였다. 어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어두운 외등 아래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더우면 평상 앞에 와 할머니의 부채 바람에 땀을 식히곤 했다. 이제는 할머니도 없고, 부채도 없다. 그 시절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부채 추억 부채 바람 부채 생각 진짜 부채
2026.06.14. 20:00
사람마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인간관계는 물론 학교와 이웃, 직장과 사업, 취미와 기술, 문화와 신앙, 그리고 디지털 공간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다. 이런 커뮤니티가 주는 의미는 크다. 매일의 삶이 커뮤니티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내에서 위로를 받고 정보도 얻지만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삶의 의미를 가까이 마주하게 되는 병상에서의 커뮤니티는 또 다른 만남이다. 그래서 임상학자들은 상실과 아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중환자들도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서 아픔과 슬픔의 힘든 시간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실망과 소망도 경험한다. 환자에게는 병상 곁에 있는 가족과 친지만이 아니라 의료전문인들도 내 커뮤니티가 된다. 부부도 특별한 커뮤니티라 생각한다. 오래전 필자의 아내가 갑자기 닥친 질병으로 인해 6개월간 입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처음 가보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지쳐갔다. 더구나 “이젠 의학적으로 더 시도할 것이 없고 회복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료진의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 그 기간, 우리는 두 사람만의 영적 커뮤니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나는 병상 옆 의자에서 자고 아침에 출근하며 함께 회복을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드미트리 본회퍼가 말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커뮤니티 개념은 지금도 유효한 임상적이고 영적인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욕심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치않는 은총과, 각자의 책임과, 그리스도의 희생적 섬김을 중심으로 영성을 나누는 모습이다. 그러한 커뮤니티를 통해 당시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나치 치하의 길고 험난한 도전을 견디는 소망을 발견했다. 성서는 커뮤니티의 영적 부분에 대해 기록하면서 적극적인 영적 꿈을 말한다. “아비들아,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자손들에게 영적 커뮤니티를 가르치는 것은 측정할 수 없는 혜택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날(Father’s Day)’을 기념하는 6월은 모두 영성의 옷깃을 다시 여미는 기회가 아닐까. 무엇보다 아버지와 가장의 위치에 있는 모든 한인에게 자신의 영적 커뮤니티를 꿋꿋이 지켜나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HCMA 임상목회교육 디렉터열린광장 커뮤니티 커뮤니티 개념 영적 커뮤니티 입원 기간
2026.06.14. 20:00
아름답던 5월이 떠나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6월이 찾아왔다. 6월의 꽃은 장미다. 그런데 장미(Rose)가 성인 유명한 여성이 있다. 미국의 여성인권운동가인 어네스틴 포토우스키 로즈다. 그녀는 1869년 전국여성참정협회를 창설하는 등 여성의 참정권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는 ‘장미’라는 이름이 들어간 잡지가 있었다. 1921년 창간호를 낸 한국 최초의 시 전문 동인지 ‘장미촌(薔薇村)’이다. 황석우, 박종화, 변영로 등이 동인이 되어 낭만주의를 표방하여 만들었지만 창간호를 낸 후 안타깝게도 폐간하고 말았다. 6월에 태어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875년 6월 6일에 태어난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과 17년 뒤인 1892년 6월 26일에 출생한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 벅 여사가 있다. 만의 생일인 6월6일은 세계 2차대전 당시인 1944년 연합군이 프랑스 북쪽 해안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을 물리친 날이기도 하다. 프랑스 천재로 알려진 철학자이자 과학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에 태어났다. 그는 액체의 무게는 모든 방향에서도 똑같은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파스칼 법칙(Pascal’s Law)'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의 유명한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1810년 6월 8일 태어났다. 특이한 이력의 미국 여류 사회복지 사업가 헬렌 켈러 여사의 출생일은 1880년 6월 27일이다. 켈러 여사는 출생 직후부터 큰 병을 앓아 결국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았는데 일곱 살 때 앤 설리반이란 은인을 만나게 되었고, 설리반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켈러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부터 켈러 여사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많은 상을 받은 유명인이 되었다. 또 6월에 출생한 인물로 조지 고털즈라는 미육군 공병장교를 빼놓을 수 없다. 1858년 6월 29일에 태어난 그는 독특한 공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파나마 운하의 완성을 이끈 인물이다. 당시 고털즈 중령을 파나마 운하 건설 책임자로 임명한 것인 시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6월을 특별히 빛나게 하는 것은 미국 성조기가 탄생한 달이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1777년 6월14일 성조기(the Stars and Stripes)를 미국의 국기로 공식 선포했다. 끝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선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기념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은 1909년 소노라 스마트 도드라는 인물의 주장으로 제정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념됐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장미꽃 켈러 여사 여류 소설가 헬렌 켈러
2026.06.14. 18:50
유월이 오면, 우리 집안에는 한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 빛바랜 사진 한장 속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리움이 고여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책가방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펜을 쥐어야 할 손으로 총을 들어야 했던 열여덟 소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큰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치열하게 남하하던 중공군에 맞서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처절한 고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포성으로 뒤흔들리던 1951년 6월, 큰아버지는 그날의 포화 속으로 청춘을 남긴 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의 잔인함은 남겨진 이들에게 더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전황이 너무도 급박했던 탓에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사망통지서 한장만을 손에 쥔 채, 자식의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의 이름 석 자를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가야 했다.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은 두 분에게 또 다른 전쟁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유월이 오면 할아버지는 유난히 말씀이 없으셨고 할머니의 눈가에는 늘 물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때는 그 이유를 미처 알지 못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젖은 눈망울 뒤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휴전선 어느 고지의 차가운 흙 속에 홀로 남겨졌을 아들을 가슴에 품은 채, 두 분은 평생을 견뎌 오셨다. 그것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이 땅의 수많은 부모가 감당해야 했던 전쟁의 가장 크고도 쓸쓸한 대가였다. 온 나라가 눈물로 출렁이던 해가 있었다. 1983년 여름, 밤낮없이 이어지던 TV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잃어버린 30년’의 애달픈 선율이 온 거리에 울려 퍼지던 때였다. 사망통지서를 받았으면서도 할머니는 어쩌면 아들이 어느 곳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끝내 놓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름과 군번을 신청해 두고, 밤새 화면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끝내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은, 할머니에게 오래전부터 멈춰 있던 자신의 시간이 되살아난 듯했다. 그것은 죽는 날까지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내 품의 자식들이 어느새 그때 큰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지나고 나서야 조부모님의 아픔이 비로소 내 가슴으로 건너왔다. 털끝 하나만 다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앞에 어린 자식을 내보내야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리며 흘려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자식을 키워낸 시간의 무게만큼, 두 분이 품고 살아야 했던 슬픔 또한 더욱 깊이 다가온다. 그리운 아들의 묘소 하나 가져보지 못했던 한은 세월이 흘러 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새겨진 이름 앞에서 작은 위안을 얻었다. 큰아버지는 지금 유해를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과 함께 그곳에 잠들어 계신다. 비록 육신은 차가운 DMZ 어느 고지에 남아 있을지라도, 나라를 위해 바친 젊은 영혼만큼은 현충원의 품 안에서 안식을 찾았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 곁으로 떠나셨다. 이제 포탄 소리도, 긴 한숨도 닿지 않는 곳에서 고등학생 모습 그대로인 아들을 품에 안고 있을 것이다. 헤어진 세월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도 풀어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온 현충일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푸르다. 전쟁은 한 소년의 시간을 열여덟에 영원히 묶어두었고, 한 어머니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새겼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 멈추기를, 더는 그 어떤 삶도 포화 속에 멈춰 서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소년은, 끝내 열여덟에 머문 시간 속에서 지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 있다. 김윤희 / 수필가열린광장 유월 소년 할아버지 할머니 그때 큰아버지 품의 자식들
2026.06.04. 20:48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텀블러’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기업의 책임과 국가 권력의 개입 범위를 다시 묻게 만든 사건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탱크 텀블러 세트’ 판매 행사에서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 많은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하고 역사적 의미를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용진 회장의 사과, 대표이사와 관련 임원 해임, 미국 본사의 공식 사과까지 이어지며 기업은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에 나섰다. 여기까지는 시장경제와 기업윤리의 영역이다. 소비자는 비판할 권리가 있고, 기업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적 아픔을 기업 마케팅에 사용한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부적절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기업이 이미 사과와 문책 인사까지 진행한 상황에서 국가 권력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언어로 기업을 공격하는 모습은 또 다른 우려를 낳았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기준을 세우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감정적 수사와 정치적 언어가 앞서게 되면 민주주의 사회는 쉽게 또 다른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기업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 “패륜 행위”라는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다. 기업의 부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는 개인의 분노와 다르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시장에 영향을 주고, 여론을 움직이며, 사회 전체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자칫 편 가르기의 언어가 될 경우 국민통합에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공적 언어는 정당성만큼이나 절제와 균형이 요구된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도덕적 심판자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관리자여야 한다.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대중의 갈등과 분노를 직접 증폭시키는 방식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일부 단체들까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거대한 정치적 공방 속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이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본사의 마케팅 실수와 정치권의 공방 사이에서 매장 직원들은 매출 하락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 속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흔들리는 현실은 늘 반복됐다. 기업의 실수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와 정부 관료들의 메시지가 시장 전체에 불필요한 불안과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감정이 아니라 법과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이런 원칙에 익숙하다. 기업이 실수하면 소비자가 불매로 응답하고, 시장이 판단한다. 정부 권력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직접 압박하는 모습에는 익숙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권력의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역시 절제될 때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진짜 질문은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권력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의 언어는 어디까지 절제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분노만으로 성숙하지 않는다. 책임과 절제, 법치와 통합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앞에서, 권력의 언어는 어디까지인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스타벅스 사태 스타벅스 코리아 국가 권력 민주주의 사회
2026.06.03. 18:59
지난달 초,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주민투표로 승인된 연방하원 선거구 재획정안(redistricting)을 무효화했다. 입법 절차가 헌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법정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선거구 획정 경쟁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유는 공화당이 28개 주의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우세주들은 주민투표로 독립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도입한 탓에, 재획정 방식을 바꾸려면 다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제도의 공정함이 오히려 불균형을 고착시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각 주의 재획정안이 마무리될 경우, 공화당이 구조적으로 최대 14~17석의 우위를 확보한 채 선거에 임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 정치 분석가 네이트 콘도 민주당이 전국 득표에서 앞서더라도 실제 하원 다수당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선거구 재획정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에 공화당 우위의 새로운 선거구 지도를 그릴 것을 요구하며 전방위적 동참을 압박했다. 이에 발맞춰 앨라배마,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미주리, 오하이오 등 공화당 우세 12개 주가 재획정을 추진하거나 확정 지었다. 반면 당 지도부의 이 같은 요구에 맞섰던 인디애나주의 일부 공화당 주상원의원들은 조직적인 낙선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예비선거에서 대거 탈락했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이 내린 투표권법 판결은 이러한 흐름에 강력한 동력이 됐다. 대법원은 2019년 ‘루초 대 커먼코즈(Rucho v. Common Cause)’ 판결로 당파적 게리맨더링을 ‘정치적 문제’로 선을 그었고, 이번 루이지애나 판결로는 ‘소수계 보호를 위한 인종 고려 선거구 획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수계 유권자를 보호할 법적 수단이 크게 축소된 셈이다. 판결의 배경은 1965년에 제정된 투표권법이다. 1982년 개정된 투표권법은 선거구 구획에 있어 ‘차별 의도’가 없더라도 ‘차별 결과’가 나타나면 위법이라는 기준을 도입했다. 이어 1986년, 연방대법원은 ‘손버그 대 징글스(Thornburg v. Gingles)’ 판결을 통해 소수인종 유권자에게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핵심 원칙을 확립했다. 이 원칙은 1990년대 초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인구조사 이후 흑인과 라탄계가 다수인 선거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역풍도 뒤따랐다. 민주당 성향의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특정 선거구에 집중되면서 주변 선거구들은 백인 위주로, 보수적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공화당 전략가들이 기대했던 결과였다. 남부의 온건파 백인 민주당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고, 공화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이 되는 쾌거를 거뒀다. 2010년 공화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REDMAP(선거구 재획정 다수당 프로젝트)’을 통해 선거구 재획정을 장기 전략으로 발전시켰다. 경합 주의 주 의회 선거에 자금과 조직을 대거 투입해 먼저 주 의회를 장악한 뒤, 인구조사 이후 선거구 재획정을 공화당에 유리하게 설계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는 공화당이 연방하원의 주도권을 쥐는 확고한 발판이 됐다. 이제 공화당은 과거 자신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소수인종 다수(majority-minority) 선거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신 남부와 교외 지역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를 굳히려고 한다. 이를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1965년 3월, 앨라배마 셀마에서 투표권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위대가 경찰 곤봉에 쓰러지는 장면은 미국 사회를 움직였고, 마침내 투표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백악관이 아닌 의사당을 직접 찾아 법안에 서명했다. 투표권 확대를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진으로 봤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정치는 다시 지도를 둘러싼 권력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게리맨더링은 공화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주 의회 권력이 한쪽에 집중된 구조에서는 선거구 재획정의 효과가 비대칭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 정치의 승패는 후보보다도, 누가 지도를 그리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지도 선거구 재획정 선거구 지도 독립 선거구획정위원회
2026.06.02. 19:15
LA 한인타운에서 서쪽으로 10분쯤 떨어진 핸콕파크 지역 루선(Lucerne) 불러바드와 윌셔, 8가 사이에 위치한 윌셔이벨극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극장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한 곳이다. 지금도 한인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이 수시로 무대에 오른다. 이 극장은 1층 오케스트라 887석, 2층 로지 168석, 발코니 215석을 포함 총 1270석 규모의 중대형 공연장으로 오랫동안 LA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유서 깊은 공연장이다. 이러한 윌셔이벨극장이 내년이면 개관100주년을 맞는다. 1927년에 지그문트 롬버의 뮤지컬 ‘사막의 노래(The Desert Song)’의 세계 초연으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이래 수많은 유명 공연이 열린 이 극장은 원래는 ‘윈저 스퀘어 (Winsor Square Theatre)’ 극장으로 불렸다가 1930년 중반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100년 된 이 극장은 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이곳을 스쳐 간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흔적이 조명되는 추억의 저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인 문화예술인들이 이 극장을 이용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기록을 살펴보면 88년 전인 지난 1938년 조선 최고의 무용가인 최승희 선생의 무용 공연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또 극작가 장소현 선생이 2003년 문학세계에 발표한 ‘남가주 한인 연극사’에 따르면 1980년 재미한국 연극협회 창립공연 ‘시집가는 날’(오영진/극본 이평재/연출)과 1981년 ‘배비장전’(나재우/작 이평재/연출), ‘귀향’(이근삼/작 정호영/연출) 등의 연극 공연이 이곳에서 있었다. 따라서 한인 문화예술인들은 50년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이 극장을 이용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문화기획사 에이콤에서 2023년 발간한 ‘사막에서 연극을 만나다’에 수록된 공연 기획 연보를 보면 36년 동안 120회의 공연이 기획됐는데 이중 51회가 이벨극장 무대에서 열렸다. 연극 부문만 소개하면 1988년 모임극회 ‘우리 읍내’(숀톤와일더 작/정호영/연출)를 시작으로 극단 서울의 ‘오 마미’ (장소현/작 이효영/연출), ‘아버지의 꿈’ (아서밀러/작 이언호/각색 이효영/연출), 가주예술인연합회의 마당극 ‘사람찾기’(장소현/작 이근찬/연출) 등 한인 사회 연극인들의 공연이 있었다. 초청 연극으로는 극단 자유의 ‘피의 결혼’, 극단 미추의 ‘벽속의 요정’, 우석레퍼토리의 ‘맹진사댁 경사’, SBS악극 ‘홍도야 울지마라’, KBS탤런트극회의 ‘배비장과 애랑이’, 대학로극단의 ‘행복을 찾아서’, ‘최고의 사랑’, 극단 가가의 ‘품바’, 소리극 ‘장날’, 변사극 ‘순애 내사랑’, 시민극장의 ‘할배열전’, 손숙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극단 바탕골의 ‘어머니’, 신구와 손숙의 ‘장수상회’, 극단 글로브의 ‘동치미’등 19편이 공연됐다. 또 이미자, 남진, 조영남, 심수봉, 이광조, 유익종, 변진섭 등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25회, 국악 초청공연 2회, 발레 초청공연 2회, 기타공연 4회 등 총 51회의 공연이 이벨무대에서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한인 문화예술단체들의 광복 80주년 기념공연 ‘광희’, 이민 100주년 다큐 ‘아리랑’ 시사회, 한인 이민 120주년 공연 ‘줄기마다 꽃이어라’, 뮤지컬 ‘도산’ 등 다양한 역사 관련 기념 공연들도 이곳에서 열렸다. 나는 윌셔이벨극장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오래전 리틀도쿄에 세워진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JACCC)를 생각하게 된다. 한인 사회에도 우리만의 극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한인 문화예술인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고, 고국과의 문화 교류도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해 이곳저곳 무대를 알아봐야 하는 공연 프로듀서의 고민도 덜어질 것이다. 미국 건국 250년, 한인 이민 123년, 한인 사회의 달라진 위상만큼 이제는 ‘한미문화커뮤니티센터’가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져만 간다. 이광진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공연장 한인 한인 문화예술인들 중대형 공연장 한인 커뮤니티
2026.06.01. 18:18
미국에서 50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나름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할 일이 더 많았다. 거소증 발급부터 운전면허 전환, 은행 계좌 개설, 휴대폰 개통, 집 찾기까지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야 했다. 한국말은 익숙했지만 시스템은 낯설었고, 오래 떠나 있었던 시간만큼 한국 사회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 큰 도움을 받은 곳이 네이버 카페 ‘역이민 첫걸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단순한 인터넷 카페 이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거소증 취득 경험을 공유하고, 누군가는 건강보험이나 은행 업무 방법을 알려준다. 또 어떤 분은 지역 생활 정보나 부동산 경험담을 올려준다. 특히 해외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실제 경험담이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현실적인 정보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람들의 따뜻함이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카페 회원분들과 하동, 화개장터로 2박 3일 꽃나들이를 다녀왔다. 약 30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오래 살다 돌아온 분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은퇴 후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돌아왔으며, 또 누군가는 자녀 교육이나 건강 문제 때문에 귀국했다고 했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모두가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에 살아보니 좋은 점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안전하다. 늦은 밤에도 비교적 안심하고 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음식 문화는 다양하고 수준 높으며, 의료와 생활 인프라는 기대 이상으로 효율적이다. 조금만 이동하면 산과 바다, 전통시장과 현대 도시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여행의 다양성도 큰 매력이다. 오랫동안 해외에 살다 돌아와 보니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처음 맞은 국경일에 생애 처음으로 집 앞에 태극기를 달았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묘하게 뭉클했다. 올해는 태극기를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이제는 두 개를 달 생각이다.역이민은 단순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고 공동체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차비호 / 회계사열린광장 역이민 길잡이 역이민 첫걸음 한국 생활 한국 사회
2026.05.26.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