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열린광장]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민자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이들이 있다. ‘영주권’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땅을 밟은 지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직장을 얻어 성실하게 일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들은 미국을 ‘내가 살아갈 곳’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하지만 요즘 이민 사회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유난히 차갑고 무겁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각종 반 이민정책 때문이다. 지난달 이민국이 발표한 ‘정책 메모’의 충격도 그중 하나다. 이민 당국은 이 메모에서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신분조정(I-485) 절차를 ‘정부의 시혜이자 예외적 구제’라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발표 직후에는 미국 내에서 I-485가 제한되고 출신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 정성껏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번졌다.  특히 LA처럼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충격이 심했다. 다행히 ‘정책 메모’의 의도가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심사관들이 재량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숨ㄹ 돌리기는 했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민 변호사로 일하면서 고객의 절망에 찬 눈빛을 마주할 때가 많다.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가 떠오르곤 한다.     신들의 형벌을 받아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바위는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는 다시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가 처음부터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정부의 이민 정책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서류를 다시 챙겨야 하는 이민자의 현실과 닮아 있다.     그러나 카뮈는 이 신화의 결말을 비극으로 끝맺지 않았다. 바위가 굴러떨어진 후,  그것을 다시 밀기 위해 산 아래로 걸어 내려오는 시시포스의 그 ‘ 단단한 발걸음’에 주목했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다시 돌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시시포스는 형벌을 내린 신들보다 더 거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케이스를 다뤄온 경험으로 볼 때 이 상황은 결코 희망이 없는 막다른 길이 아니다. 현재의 강화된 심사 기조는 미국 내에서 영주권 신청을 전면 차단하는 일괄적 금지가 아니다. 이민국 ‘정책 메모’에 따르더라도,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다만 심사관의 재량과 서류 검증이 한층 더 철저해진 것뿐이다.  정부의 이민 정책 기조 변화로 바위가 몇 번이고 굴러떨어질지언정, 철저한 서류 준비와 합법적 신분 유지가 뒷받침된다면 제도의 장벽은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달라진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고, 요구 사항에 따르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면 된다. 공연히 불안과 초조함에 길을 잃지 말라는 의미다.       미국을 지탱하는 힘 가운데 하나는 매일 일터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내는 평범한 이민자들의 땀방울이다. 제도가 아무리 까다롭게 바뀌고 문턱이 높아진들,  우리는 늘 올바른 답을 찾아냈고 이 땅에 뿌리를 내려왔다. 바위는 단단하지만, 준비된 우리의 법적 권리와 삶은 그보다 더 단단하다. 김원아 변호사열린광장 이민자 바위 순간 바위 이민 정책 정책 메모

2026.06.21. 20:00

썸네일

[열린광장] 6월에 태어난 유명인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도 뛰어난 인물이 많다. 몰몬교의 영수 브리검 영, ‘엉클 톰스 캐빈’의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 노벨상을 받은 펄 벅 여사, 그리고 천문학자 조지 헤일 등도 그들이다.     몰몬교의 제2 영수인 브리검 영은 1801년 6월 초하루에 태어났다. 영은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the Later- day Saints’ 란 명칭의 교파 영수였던 조셉 스미스가 사망한 뒤 이 교파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영은 버몬트주 위팅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했고, 겨우 12일 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는 청년이 되어서는 페인터, 유리장사, 목수 등의 일을 했다. 그는 1829년 뉴욕 먼로 카운티에 살며 조섭 스미스의 종교 교육을 받고 1832년 세례를 받았다.     영은 성공적인 선교사로 일했다. 그는 1839년에서 1841년까지 영국에서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미국으로 이민도 주선했다. 영은 스미스가 총살 당할 때도 뉴잉글랜드에서 설교했다.   몰몬교는 유타주에서 크게 번창하였다. 영은 관개 기술을 이용 사막을 농토로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유타주 주지사가 되었다.      베스트셀러 소설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는 1811년 6월 14일 코네티컷주 리치필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장로교 목사였고, 레인 신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녀는 1836년 이 신학교 교수 칼빈 스토와 결혼했기에 성이 스토가 됐다. 소설 ’엉클 톰스 캐빈‘은 유머와 현실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다. 소설의 내용은 미국 남북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고 남부지역에서 그녀의 이름은 증오의 상징이었다.   특히 그녀의 후기 작품들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레이디 바이런의 정당성(1870년 출간)‘이란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바이런의 이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1892년 6월 26일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보로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출간한 책 가운데 중국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내용이 많은 이유다. 펄 벅의 책 가운데 1932년 풀리처상을 수상한 책이 유명한 ’대지(The Good Earth)‘ 다. 이 책엔 중국 농부 왕룽의 애국심을 잘 그린 책이다.     6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인 29일에 태어난 유명 천문학자가 있다. 1861년 시카고에서 출생한 조지 엘러리 헤일이다. 헤일은 태양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여러 기구를 개발한 선구자다.  그는 샌디에이고의 팔로마 전망대에 있는 헤일 반사망원경 등 여러 망원경 설치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메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헤일은 1819년에 단광태양사진기를 발명했는데 이 기구는 전기의 단파로 태양의 표면을 촬영할 수가 있다.   헤일은 또 위스콘신에 열크스전망대를 설치하고 초대 전망 대장을 지냈으며, LA 인근에 있는 마운트윌슨전망대를 세우기도 했다.                                                                 윤경중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유명인 천문학자 조지 신학교 교수 베스트셀러 소설

2026.06.18. 19:09

썸네일

[열린광장] AI시대, ‘함께’의 윤리 필요하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동물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 운명 개척은 고립된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고, 인간 자신을 알아야 생명과 정신의 관계를 바로 세우며, 사회를 알아야 협동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 세 가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물질세계의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한다.  거시세계의 천체부터 미시세계의 소립자까지 모든 물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자기를 보존하려는 주관적 성질을 지니고 운동.발전한다. 물질에 객관성만 있다는 유물론이나 주관성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론은 모두 일면적 오류다.   물질세계의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한다. 지구 형성 후 10억년간의 화학적 진화를 거쳐 유기물질이 나왔고, 그 후 35억 년 동안 생명물질로 진화했다. 살려는 욕망과 능력을 창조적으로 쓰기 위해 두뇌의 작용인 정신이 출현했다. 인간은 이를 통해 생활력을 객관화하고 사회적 존재로 발전했다.   동물은 생명력을 자신의 육체에만 가두어 두지만, 인간은 획득한 생활력을 도구와 제도, 문화라는 객관적 대상에 체현시켜 이용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회적 의식인 정신적 힘, 사회적 재부인 물질적 힘, 사회적 관계인 협조의 힘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인간은 개인인 동시에 사회적 집단이며, 물질세계 발전의 운명을 책임진 위대한 존재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자주적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기까지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원시 공동체의 채집·수렵 생활을 거쳐,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던 고대 노예제 사회로, 다시 신분적 차별을 신의 뜻으로 돌린 봉건사회의 숙명론으로 이어졌다. 18세기 서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은 왕의 독재와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며 자본주의를 꽃피웠다. 자유경쟁은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패배자에 대한 냉대와 강대국들의 이기주의라는 그늘을 남겼다. 그렇다고 노동계급 독재로의 전환이 대안이 아님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미 실증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과제는 명확하다. 정당들의 정경유착을 극복하고, 인간 본성에 맞게 개인주의의 창발성을 발양시키면서도 집단주의의 공공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권사상과 주권재민의 구현이다.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모든 아동이 교육을 받으며, 모든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기술과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지만, 인간성의 성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가 패권주의는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무한 경쟁의 경제 구조는 이기심을 강화한다. 인간을 도구화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인공지능(AI)과 로봇, 핵융합 에너지 같은 기술의 진보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기술이 단순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질문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책임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 존엄을 다시 문명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연결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선언은 인간을 우주적 질서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이해하라는 요청이다. 내면의 성찰과 영성은 사적 위안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실천과 공동체적 연대로 확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경쟁 중심에서 벗어나 협력과 공감을 기르는 장이 되어야 하며, 정치 리더십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의 민주화와 통일 역시 인류 보편의 가치와 연결된 문제다.   과학 기술은 모든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사막을 농장으로 바꾸는 기적을 전하겠지만, 그 기술을 움직이는 리더십은 결국 인간의 정신에 있다. “함께 살며 발전하자”는 명제는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나의 성장이 타인의 불행이 되지 않고, 우리의 풍요가 지구의 고통이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가야만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을 믿고, 연대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개척해야 할 인간의 참된 운명이다. 김 용 / 한울 운동 대표열린광장 ai시대 윤리 사회적 존재 물질세계 발전 소련식 사회주의

2026.06.17. 19:25

썸네일

[열린광장]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를 것인가

이솝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매일 황금알 하나를 얻던 주인은 더 많은 황금을 한꺼번에 얻고 싶은 욕심에 거위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거위의 배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는 황금알도, 거위도 모두 잃고 말았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기업 이익과 미래 산업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며 이 우화가 떠오른다. AI(인공지능)는 이제 국가 경쟁력과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AI 산업이 만들어낼 막대한 부를 국민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AI 혁명의 경제적 혜택을 일부 기업만 누리지 않고 국민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언급했다. 겉으로 보면 이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삼성전자 초과이익 분배 논쟁과 비슷해 보인다. 기업이 만든 부를 사회와 함께 나누자는 주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두 논쟁의 출발점은 다르다.   한국의 삼성전자 논쟁은 이미 발생한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미국의 AI 논의는 앞으로 성장할 미래 산업을 어떻게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더 가까운 접근이다. 결국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황금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황금알을 계속 낳을 수 있는 거위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다. 기업은 노동자의 노력, 소비자의 선택, 그리고 사회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기업이 사회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의 방식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결과를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과 기업의 현재 이익을 정치적 압력으로 즉시 재분배하는 것은 다르다.   미국의 AI 논의 역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하거나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자유시장 원칙에 맞는지에 대한 우려다. 정부가 투자자와 규제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은 AI 산업의 성장을 막지 않으면서 국민이 미래 성장의 혜택에 참여할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에서 기업 이익 논쟁이 단순히 현재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만 머문다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전자는 단순한 한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와 연결된 핵심 산업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데이터, 반도체, 기술 인재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은 미국의 엔비디아, 대만의 TSMC 등 세계 최고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의 이익은 단순히 쌓아두는 돈이 아니다.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성장의 자원이다. 오늘의 이익을 모두 소비해 버린다면 내일의 성장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도 변해야 한다. 노동자와 협력업체를 단순한 비용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성장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발전할 때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의 씨앗을 약화시키는 방식의 분배는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경제는 하나의 생태계와 같다. 기업,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이익을 얻는 구조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욕심 때문에 거위의 배를 가르면 황금알도 사라진다. 그러나 거위를 건강하게 키운다면 더 많은 황금알을 기대할 수 있다. AI 시대의 진정한 과제는 ‘누가 먼저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큰 성장을 만들고 그 열매를 함께 나눌 것인가’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결국 이 질문에 달려 있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황금알 거위 황금알 하나 거위 이야기 미래 성장

2026.06.16. 19:15

썸네일

[열린광장] 부채를 추억하며

이른 아침에는 늦가을, 낮에는 한여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환절기 남가주의 날씨다. 어떤 날은 새벽과 한낮의 기온 차이가 30도 이상이다. 새벽에는 잠시 전기장판을 켰는데, 오후가 되니 에어컨이 돈다.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문득 부채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부채질해 본 것이 언제였지?   요즘도 간혹 접는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서도 여름이면 홍보 부스에서 손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진짜 부채는 대나무 살을 갈라 종이를 붙여 만든 다소 투박한 것이다.   외가에는 낡은 철제 선풍기가 있었지만, 소리도 크고 바람의 세기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를 낡은 대나무 살 부채로 견디곤 했다.     부채는 사람이 품을 팔아야 바람이 나온다. 세게 부치면 센 바람이 나오고, 살살 부치면 미풍이 나온다. 덥다고 마구 부치다 보면 팔이 아파, 팔을 바꿔 부치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고 부치기도 한다. 이상하게 내가 부치는 바람보다는 남이 부쳐주는 바람이 훨씬 더 시원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곁에서 살살 부쳐주는 바람이 가장 시원했지 싶다. 더울 때는 차가운 온돌 바닥이나 마루에 누우면 시원하긴 하지만, 땀에 피부가 달라붙는다. 그래서 돗자리나 삼베 또는 모시 홑청 위에 눕는다. 할머니 곁에 누우면, 할머니가 부치는 부채 바람이 할머니의 땀을 식히고 내게도 온다.   부채는 땀을 식히는 일 외에 모기나 파리를 쫓거나 잡는 일에도 쓰였다. 팔·다리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내려치기도 하고, 먹고 남은 참외나 수박 위에 앉은 파리를 잡기도 한다. 그래서 낡은 부채는 끄트머리가 찢기고, 여기저기 모기와 파리의 피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하수 시설이 열악했던 모양이다. 장마철이면 저지대의 부엌에는 아궁이로 물이 스며들기도 했다. 습기를 없앤다고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꺼진 연탄불에 불을 붙일 때도 부채는 쓰였다. 불을 피울 때는 너무 세게 부치면 안 되고 살살 불씨를 키워야 한다.     에어컨이 있는 집은 날씨가 더워지면 창문을 꼭꼭 닫고 블라인드나 커튼을 친다. 찬바람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부채를 부치던 시절에는 더워지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지면 낡은 부채 하나씩 들고 작은 공터에 누군가 내다 놓은 평상 위에 모였다. 어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어두운 외등 아래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더우면 평상 앞에 와 할머니의 부채 바람에 땀을 식히곤 했다.     이제는 할머니도 없고, 부채도 없다. 그 시절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부채 추억 부채 바람 부채 생각 진짜 부채

2026.06.14. 20:00

썸네일

[열린광장] 내 커뮤니티는 누구인가

사람마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인간관계는 물론 학교와 이웃, 직장과 사업, 취미와 기술, 문화와 신앙, 그리고 디지털 공간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다.   이런 커뮤니티가 주는 의미는 크다. 매일의 삶이 커뮤니티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내에서 위로를 받고 정보도 얻지만 실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삶의 의미를 가까이 마주하게 되는 병상에서의  커뮤니티는 또 다른 만남이다. 그래서 임상학자들은 상실과 아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중환자들도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서 아픔과 슬픔의 힘든 시간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실망과 소망도 경험한다. 환자에게는 병상 곁에 있는 가족과 친지만이 아니라 의료전문인들도 내 커뮤니티가 된다.     부부도 특별한 커뮤니티라 생각한다. 오래전 필자의 아내가 갑자기 닥친 질병으로 인해 6개월간 입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처음 가보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지쳐갔다. 더구나 “이젠 의학적으로 더 시도할 것이 없고 회복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료진의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 그 기간, 우리는 두 사람만의 영적 커뮤니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나는 병상 옆 의자에서 자고 아침에 출근하며 함께 회복을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드미트리 본회퍼가 말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커뮤니티 개념은 지금도 유효한 임상적이고 영적인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욕심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치않는 은총과, 각자의 책임과, 그리스도의 희생적 섬김을 중심으로  영성을 나누는 모습이다. 그러한 커뮤니티를 통해 당시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나치 치하의  길고 험난한 도전을 견디는 소망을 발견했다.     성서는 커뮤니티의 영적 부분에 대해 기록하면서 적극적인 영적 꿈을 말한다. “아비들아,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자손들에게 영적 커뮤니티를 가르치는 것은 측정할 수 없는 혜택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날(Father’s Day)’을 기념하는 6월은 모두 영성의 옷깃을 다시 여미는 기회가 아닐까. 무엇보다 아버지와 가장의 위치에 있는 모든 한인에게 자신의 영적 커뮤니티를 꿋꿋이 지켜나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HCMA 임상목회교육 디렉터열린광장 커뮤니티 커뮤니티 개념 영적 커뮤니티 입원 기간

2026.06.14. 20:00

썸네일

[열린광장] 장미꽃이 피네

아름답던 5월이 떠나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6월이 찾아왔다. 6월의 꽃은 장미다. 그런데 장미(Rose)가 성인 유명한 여성이 있다. 미국의 여성인권운동가인 어네스틴 포토우스키 로즈다.  그녀는 1869년 전국여성참정협회를 창설하는 등 여성의 참정권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는 ‘장미’라는 이름이 들어간 잡지가 있었다. 1921년 창간호를 낸 한국 최초의 시 전문 동인지 ‘장미촌(薔薇村)’이다. 황석우, 박종화, 변영로 등이 동인이 되어 낭만주의를 표방하여 만들었지만 창간호를 낸 후 안타깝게도 폐간하고 말았다.   6월에 태어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875년 6월 6일에 태어난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과 17년 뒤인 1892년 6월 26일에 출생한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 벅 여사가 있다. 만의 생일인 6월6일은 세계 2차대전 당시인 1944년 연합군이 프랑스 북쪽 해안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을 물리친 날이기도 하다.     프랑스 천재로 알려진 철학자이자 과학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에 태어났다. 그는 액체의 무게는 모든 방향에서도 똑같은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파스칼 법칙(Pascal’s Law)'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의 유명한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1810년 6월 8일 태어났다.     특이한 이력의 미국 여류 사회복지 사업가 헬렌 켈러 여사의 출생일은 1880년 6월 27일이다. 켈러 여사는 출생 직후부터 큰 병을 앓아 결국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았는데 일곱 살 때 앤 설리반이란 은인을 만나게 되었고, 설리반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켈러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부터 켈러 여사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많은 상을 받은 유명인이 되었다.     또 6월에 출생한 인물로 조지 고털즈라는 미육군 공병장교를 빼놓을 수 없다. 1858년 6월 29일에 태어난 그는 독특한 공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파나마 운하의 완성을 이끈 인물이다.  당시 고털즈 중령을 파나마 운하 건설 책임자로 임명한 것인 시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6월을 특별히 빛나게 하는 것은 미국 성조기가 탄생한 달이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1777년 6월14일 성조기(the Stars and Stripes)를 미국의 국기로 공식 선포했다.   끝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선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기념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은 1909년 소노라 스마트 도드라는 인물의 주장으로 제정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념됐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장미꽃 켈러 여사 여류 소설가 헬렌 켈러

2026.06.14. 18:50

썸네일

[열린광장] 유월의 소년

유월이 오면, 우리 집안에는 한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 빛바랜 사진 한장 속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리움이 고여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책가방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펜을 쥐어야 할 손으로 총을 들어야 했던 열여덟 소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큰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치열하게 남하하던 중공군에 맞서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처절한 고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포성으로 뒤흔들리던 1951년 6월, 큰아버지는 그날의 포화 속으로 청춘을 남긴 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의 잔인함은 남겨진 이들에게 더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전황이 너무도 급박했던 탓에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사망통지서 한장만을 손에 쥔 채, 자식의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의 이름 석 자를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가야 했다.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은 두 분에게 또 다른 전쟁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유월이 오면 할아버지는 유난히 말씀이 없으셨고 할머니의 눈가에는 늘 물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때는 그 이유를 미처 알지 못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젖은 눈망울 뒤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휴전선 어느 고지의 차가운 흙 속에 홀로 남겨졌을 아들을 가슴에 품은 채, 두 분은 평생을 견뎌 오셨다. 그것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이 땅의 수많은 부모가 감당해야 했던 전쟁의 가장 크고도 쓸쓸한 대가였다.   온 나라가 눈물로 출렁이던 해가 있었다. 1983년 여름, 밤낮없이 이어지던 TV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잃어버린 30년’의 애달픈 선율이 온 거리에 울려 퍼지던 때였다. 사망통지서를 받았으면서도 할머니는 어쩌면 아들이 어느 곳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끝내 놓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름과 군번을 신청해 두고, 밤새 화면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끝내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은, 할머니에게 오래전부터 멈춰 있던 자신의 시간이 되살아난 듯했다. 그것은 죽는 날까지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내 품의 자식들이 어느새 그때 큰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지나고 나서야 조부모님의 아픔이 비로소 내 가슴으로 건너왔다. 털끝 하나만 다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앞에 어린 자식을 내보내야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리며 흘려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자식을 키워낸 시간의 무게만큼, 두 분이 품고 살아야 했던 슬픔 또한 더욱 깊이 다가온다.   그리운 아들의 묘소 하나 가져보지 못했던 한은 세월이 흘러 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새겨진 이름 앞에서 작은 위안을 얻었다. 큰아버지는 지금 유해를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과 함께 그곳에 잠들어 계신다. 비록 육신은 차가운 DMZ 어느 고지에 남아 있을지라도, 나라를 위해 바친 젊은 영혼만큼은 현충원의 품 안에서 안식을 찾았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 곁으로 떠나셨다. 이제 포탄 소리도, 긴 한숨도 닿지 않는 곳에서 고등학생 모습 그대로인 아들을 품에 안고 있을 것이다. 헤어진 세월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도 풀어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온 현충일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푸르다. 전쟁은 한 소년의 시간을 열여덟에 영원히 묶어두었고, 한 어머니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새겼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 멈추기를, 더는 그 어떤 삶도 포화 속에 멈춰 서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소년은, 끝내 열여덟에 머문 시간 속에서 지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 있다. 김윤희 / 수필가열린광장 유월 소년 할아버지 할머니 그때 큰아버지 품의 자식들

2026.06.04. 20:48

썸네일

[열린광장] 스타벅스 사태가 남긴 질문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텀블러’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기업의 책임과 국가 권력의 개입 범위를 다시 묻게 만든 사건이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탱크 텀블러 세트’ 판매 행사에서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 많은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하고 역사적 의미를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용진 회장의 사과, 대표이사와 관련 임원 해임, 미국 본사의 공식 사과까지 이어지며 기업은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조치에 나섰다.   여기까지는 시장경제와 기업윤리의 영역이다. 소비자는 비판할 권리가 있고, 기업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적 아픔을 기업 마케팅에 사용한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부적절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기업이 이미 사과와 문책 인사까지 진행한 상황에서 국가 권력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언어로 기업을 공격하는 모습은 또 다른 우려를 낳았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기준을 세우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감정적 수사와 정치적 언어가 앞서게 되면 민주주의 사회는 쉽게 또 다른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기업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 “패륜 행위”라는 거친 표현으로 비판했다. 기업의 부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는 개인의 분노와 다르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시장에 영향을 주고, 여론을 움직이며, 사회 전체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자칫 편 가르기의 언어가 될 경우 국민통합에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공적 언어는 정당성만큼이나 절제와 균형이 요구된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도덕적 심판자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관리자여야 한다.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대중의 갈등과 분노를 직접 증폭시키는 방식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일부 단체들까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거대한 정치적 공방 속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이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본사의 마케팅 실수와 정치권의 공방 사이에서 매장 직원들은 매출 하락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 속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흔들리는 현실은 늘 반복됐다.   기업의 실수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와 정부 관료들의 메시지가 시장 전체에 불필요한 불안과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감정이 아니라 법과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이런 원칙에 익숙하다. 기업이 실수하면 소비자가 불매로 응답하고, 시장이 판단한다. 정부 권력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직접 압박하는 모습에는 익숙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권력의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역시 절제될 때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이 남긴 진짜 질문은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권력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대통령의 언어는 어디까지 절제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분노만으로 성숙하지 않는다. 책임과 절제, 법치와 통합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가 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앞에서, 권력의 언어는 어디까지인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스타벅스 사태 스타벅스 코리아 국가 권력 민주주의 사회

2026.06.03. 18:59

썸네일

[열린광장] 누가 지도를 그리는가

지난달 초, 버지니아주 대법원이 주민투표로 승인된 연방하원 선거구 재획정안(redistricting)을 무효화했다. 입법 절차가 헌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법정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선거구 획정 경쟁에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유는 공화당이 28개 주의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우세주들은 주민투표로 독립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도입한 탓에, 재획정 방식을 바꾸려면 다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제도의 공정함이 오히려 불균형을 고착시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각 주의 재획정안이 마무리될 경우, 공화당이 구조적으로 최대 14~17석의 우위를 확보한 채 선거에 임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 정치 분석가 네이트 콘도 민주당이 전국 득표에서 앞서더라도 실제 하원 다수당이 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선거구 재획정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에 공화당 우위의 새로운 선거구 지도를 그릴 것을 요구하며 전방위적 동참을 압박했다. 이에 발맞춰 앨라배마,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미주리, 오하이오 등 공화당 우세 12개 주가 재획정을 추진하거나 확정 지었다. 반면 당 지도부의 이 같은 요구에 맞섰던 인디애나주의 일부 공화당 주상원의원들은 조직적인 낙선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예비선거에서 대거 탈락했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이 내린 투표권법 판결은 이러한 흐름에 강력한 동력이 됐다. 대법원은 2019년 ‘루초 대 커먼코즈(Rucho v. Common Cause)’ 판결로 당파적 게리맨더링을 ‘정치적 문제’로 선을 그었고, 이번 루이지애나 판결로는 ‘소수계 보호를 위한 인종 고려 선거구 획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수계 유권자를 보호할 법적 수단이 크게 축소된 셈이다.     판결의 배경은 1965년에 제정된 투표권법이다. 1982년 개정된 투표권법은 선거구 구획에 있어 ‘차별 의도’가 없더라도 ‘차별 결과’가 나타나면 위법이라는 기준을 도입했다. 이어 1986년, 연방대법원은 ‘손버그 대 징글스(Thornburg v. Gingles)’ 판결을 통해 소수인종 유권자에게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핵심 원칙을 확립했다.     이 원칙은 1990년대 초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인구조사 이후 흑인과 라탄계가 다수인 선거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역풍도 뒤따랐다. 민주당 성향의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특정 선거구에 집중되면서 주변 선거구들은 백인 위주로, 보수적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공화당 전략가들이 기대했던 결과였다. 남부의 온건파 백인 민주당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고, 공화당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이 되는 쾌거를 거뒀다.     2010년 공화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REDMAP(선거구 재획정 다수당 프로젝트)’을 통해 선거구 재획정을 장기 전략으로 발전시켰다. 경합 주의 주 의회 선거에 자금과 조직을 대거 투입해 먼저 주 의회를 장악한 뒤, 인구조사 이후 선거구 재획정을 공화당에 유리하게 설계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는 공화당이 연방하원의 주도권을 쥐는 확고한 발판이 됐다.     이제 공화당은 과거 자신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소수인종 다수(majority-minority) 선거구를 없애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신 남부와 교외 지역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를 굳히려고 한다. 이를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1965년 3월, 앨라배마 셀마에서 투표권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위대가 경찰 곤봉에 쓰러지는 장면은 미국 사회를 움직였고, 마침내 투표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백악관이 아닌 의사당을 직접 찾아 법안에 서명했다. 투표권 확대를 민주주의의 위대한 전진으로 봤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정치는 다시 지도를 둘러싼 권력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게리맨더링은 공화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주 의회 권력이 한쪽에 집중된 구조에서는 선거구 재획정의 효과가 비대칭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 정치의 승패는 후보보다도, 누가 지도를 그리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열린광장 지도 선거구 재획정 선거구 지도 독립 선거구획정위원회

2026.06.02. 19:15

썸네일

[열린광장] 윌셔이벨극장 100년, 한인 공연장은 언제나

LA 한인타운에서 서쪽으로 10분쯤 떨어진 핸콕파크 지역 루선(Lucerne) 불러바드와 윌셔, 8가 사이에 위치한 윌셔이벨극장은 한인 커뮤니티의 극장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한 곳이다. 지금도 한인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이 수시로 무대에 오른다.     이 극장은 1층 오케스트라 887석, 2층 로지 168석, 발코니 215석을 포함 총 1270석 규모의 중대형 공연장으로 오랫동안 LA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유서 깊은 공연장이다. 이러한 윌셔이벨극장이 내년이면 개관100주년을 맞는다. 1927년에 지그문트 롬버의 뮤지컬 ‘사막의 노래(The Desert Song)’의 세계 초연으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이래 수많은 유명 공연이 열린 이 극장은 원래는 ‘윈저 스퀘어 (Winsor Square Theatre)’ 극장으로 불렸다가 1930년 중반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100년 된 이 극장은 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이곳을 스쳐 간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흔적이 조명되는 추억의 저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인 문화예술인들이 이 극장을 이용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기록을 살펴보면 88년 전인 지난 1938년 조선 최고의 무용가인 최승희 선생의 무용 공연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또 극작가 장소현 선생이 2003년 문학세계에 발표한 ‘남가주 한인 연극사’에 따르면 1980년 재미한국 연극협회 창립공연 ‘시집가는 날’(오영진/극본 이평재/연출)과 1981년 ‘배비장전’(나재우/작 이평재/연출), ‘귀향’(이근삼/작 정호영/연출) 등의 연극 공연이 이곳에서 있었다. 따라서 한인 문화예술인들은 50년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이 극장을 이용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문화기획사 에이콤에서 2023년 발간한 ‘사막에서 연극을 만나다’에 수록된 공연 기획 연보를 보면 36년 동안 120회의 공연이 기획됐는데 이중 51회가 이벨극장 무대에서 열렸다. 연극 부문만 소개하면 1988년 모임극회 ‘우리 읍내’(숀톤와일더 작/정호영/연출)를 시작으로 극단 서울의 ‘오 마미’ (장소현/작 이효영/연출), ‘아버지의 꿈’ (아서밀러/작 이언호/각색 이효영/연출), 가주예술인연합회의 마당극 ‘사람찾기’(장소현/작 이근찬/연출) 등 한인 사회 연극인들의 공연이 있었다.      초청 연극으로는 극단 자유의 ‘피의 결혼’, 극단 미추의 ‘벽속의 요정’, 우석레퍼토리의 ‘맹진사댁 경사’, SBS악극 ‘홍도야 울지마라’, KBS탤런트극회의 ‘배비장과 애랑이’, 대학로극단의 ‘행복을 찾아서’, ‘최고의 사랑’, 극단 가가의 ‘품바’, 소리극 ‘장날’, 변사극 ‘순애 내사랑’, 시민극장의 ‘할배열전’, 손숙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극단 바탕골의 ‘어머니’, 신구와 손숙의 ‘장수상회’, 극단 글로브의 ‘동치미’등 19편이 공연됐다.     또 이미자, 남진, 조영남, 심수봉, 이광조, 유익종, 변진섭 등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25회, 국악 초청공연 2회, 발레 초청공연 2회, 기타공연 4회 등 총 51회의 공연이 이벨무대에서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한인 문화예술단체들의 광복 80주년 기념공연 ‘광희’, 이민 100주년 다큐 ‘아리랑’ 시사회, 한인 이민 120주년 공연 ‘줄기마다 꽃이어라’, 뮤지컬 ‘도산’ 등 다양한 역사 관련 기념 공연들도 이곳에서 열렸다.   나는 윌셔이벨극장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오래전 리틀도쿄에 세워진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JACCC)를 생각하게 된다. 한인 사회에도 우리만의 극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한인 문화예술인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고, 고국과의 문화 교류도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해 이곳저곳 무대를 알아봐야 하는  공연 프로듀서의 고민도 덜어질 것이다.     미국 건국 250년, 한인 이민 123년, 한인 사회의 달라진 위상만큼 이제는 ‘한미문화커뮤니티센터’가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져만 간다.     이광진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공연장 한인 한인 문화예술인들 중대형 공연장 한인 커뮤니티

2026.06.01. 18:18

썸네일

[열린광장] 역이민에도 길잡이가 있어야

미국에서 50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나름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할 일이 더 많았다. 거소증 발급부터 운전면허 전환, 은행 계좌 개설, 휴대폰 개통, 집 찾기까지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야 했다. 한국말은 익숙했지만 시스템은 낯설었고, 오래 떠나 있었던 시간만큼 한국 사회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 큰 도움을 받은 곳이 네이버 카페 ‘역이민 첫걸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단순한 인터넷 카페 이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거소증 취득 경험을 공유하고, 누군가는 건강보험이나 은행 업무 방법을 알려준다. 또 어떤 분은 지역 생활 정보나 부동산 경험담을 올려준다.     특히 해외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실제 경험담이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현실적인 정보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람들의 따뜻함이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카페 회원분들과 하동, 화개장터로 2박 3일 꽃나들이를 다녀왔다. 약 30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오래 살다 돌아온 분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은퇴 후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돌아왔으며, 또 누군가는 자녀 교육이나 건강 문제 때문에 귀국했다고 했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모두가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에  살아보니 좋은 점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안전하다. 늦은 밤에도 비교적 안심하고 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음식 문화는 다양하고 수준 높으며, 의료와 생활 인프라는 기대 이상으로 효율적이다.  조금만 이동하면 산과 바다, 전통시장과 현대 도시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여행의 다양성도 큰 매력이다. 오랫동안 해외에 살다 돌아와 보니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처음 맞은 국경일에 생애 처음으로 집 앞에 태극기를 달았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묘하게 뭉클했다. 올해는 태극기를 하나 더 사기로 했다. 이제는 두 개를 달 생각이다.역이민은 단순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고 공동체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차비호 / 회계사열린광장 역이민 길잡이 역이민 첫걸음 한국 생활 한국 사회

2026.05.26. 19:41

썸네일

[열린광장] 간병인

 “아야,아야.” “온몸이 다 아파.” “왜 이렇게 죽는 것이 힘이 들지?” “눈 감으면 다시 못 뜰 것 같아….”     86세 어머니는 몇 분 주무시다 다시 신음을 내신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가끔은 정신이 또렷해졌다가도 헛것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당뇨병과 고혈압,심장병이 있는 어머니는 자주 넘어지셨다. 갈비뼈에 두 번 금이 갔고, 쇄골과 엉치뼈도 손상을 입었고, 머리를 다친 후에는 기억력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3개월간 세 번 입원하셨다. 조카들과 동생들, 아버지, 고용간병인과 번갈아 병간호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가족들의 고통과, 병원·양로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의 수고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 환자를 돌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밖으로 나가 몇 시간을 헤매다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병원이나 양로시설에 모시게 되지만, 그곳  역시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물론 병원이나 양로시설 측의 부주의나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고는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이해와 격려가 필요하다.     요즘 한인타운 양로병원은 필리핀 출신 간호사들이 대부분이다. 식사를 돕고,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주로 라틴계 직원들이 한다. 한인 가족들의 마지막 시간을 그들이  돌보고 있는 셈이다.     매년 5월엔 간호사 주간(6~12일)이 있다.앳된 모습으로 병원에  들어왔던 간호사들도 10년, 20년이 지나면 중년이 된다. 그들은 “직업병 때문에  살이 찐 것이니 산재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고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말 못 할 고단함이 숨어 있다.     특히 양로병원은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처절한 현장이다. 옷이 없어졌다며 소리치는 환자, 예수님이 밖에서 기다린다며 나가려는 환자, 밤새  울부짖는 환자….   인간의 고통과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모두 겸허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얼마 전 라틴계 간호보조사가 뇌 손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몸을  씻기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약을  발라주는 모습을 봤다. 간호보조사가 돌아서려는 순간, 그 환자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자 간호보조사는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 for the kiss”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짧은 한마디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조병화 시인의 ‘밤의 이야기’에는 “원래 생명은 아픔에서 시작된 거다/ 그리고 아픔을 뚫고 태어난 거다/ 그리고 그 아픔을 뚫고 다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소리 없는 소리 저 소릴 들어보아라 /하나의 생명이 숨져가기 위하여 신음하는 /피울음 저 소리.” 라는 구절이 나온다.   양로병원에서 일하는 리셉셔니스트, 소셜워커,액티비티 운영자, 주방 근무자, 그 외 모든 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간병인 라틴계 간호보조사 환자 예수님 의사 간호사

2026.05.25. 20:00

썸네일

[열린광장] 월드컵, 몸으로 외치는 대한민국

월드컵 시즌이 다가온다.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그해를 기억하는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집집이 TV 앞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골이 들어갈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함께 숨 쉬고, 환호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는가? 왜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묻는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 답은 단순하다. 우리는 대한인이기 때문이다. 그 해, 한미무용연합 진발레스쿨은 처음으로 응원 무대 단순한 이벤트 참여가 아니라, 우리 팀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깨닫게 한 출발점이었다. 몸으로 외치는 응원,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연대, 그리고 춤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경험. 그때 우리는 알았다. 춤은 무대 위의 예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살아 있는 언어라는 것을….   그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매번 열리는 월드컵마다 커뮤니티의 중심에서 아이들과 어른, 그리고 시니어까지 함께 모여 춤으로 응원해 왔다. 발레, 재즈, 케이팝, 한국무용이 어우러진 움직임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와 시간이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졌다. 그때 무대에 섰던 아이들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2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다. 함께 숨 쉬고, 함께 움직이며 하나가 되었던 그 감각이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월드컵이 갖는 의미는 더 특별하다.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고, 설명보다 먼저 움직임이 이어진다. 같은 음악과 같은 구호 속에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 하나의 흐름 속에 선다. 그 순간, 우리는 이곳에 살지만 분명히 같은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월드컵은 그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다.   이번 월드컵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LA 한인 사회의 여러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응원한다는 점이다. ‘LA Reds 2026’을 중심으로 응원팀과 퍼포먼스 팀이 구성되고,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춤으로 응원한다. 샤우팅 댄스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구호와 리듬이 결합한 이 춤은 보는 공연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응원이다.     월드컵은 승패를 넘어선다. 골이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완전히 같은 감정 속에 서게 된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에, 우리는 다시 모인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자. 붉은 물결이 되어 다시 응원하고, 다시 외치자.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그 답을, 우리는 지금도 춤으로 증명하고 있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대한민국 월드컵 월드컵 대한민국 월드컵 시즌 이번 월드컵

2026.05.21. 19:52

썸네일

[열린광장] ‘눈물 한 방울’은 고귀한 흔적인가

이어령 교수의 유작 ‘눈물 한 방울’은 암 투병 중 2년 4개월 동안 죽음의 문턱에서 써 내려 간 마지막 기록이다. 글과 그림으로 남긴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나 철학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응시한 한 지성인의 깊은 성찰에 가깝다.   그는 평생 언어와 사상, 문명과 지성을 탐구하며 시대를 이끌어온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누구보다 인간 이성과 문명의 가능성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 그가 붙든 것은 거대한 철학도, 화려한 업적도 아니었다. 바로 ‘눈물 한 방울’이었다.   이 대목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삶을 끝까지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현대 문명은 오랫동안 강함을 숭배해 왔다. 권력과 성공, 속도와 효율이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가치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쉼 없이 달린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감추고, 연약함을 숨기며, 타인보다 우월해지려 애쓴다. 눈물은 종종 나약함의 상징처럼 취급된다. 울지 않는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문명을 지탱해 온 힘은 오히려 눈물에 가까웠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약자를 향한 연민, 상처 입은 존재를 품으려는 인애의 정신이 인간 사회를 유지해 왔다. 인간은 경쟁만으로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문명이 된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삶의 외형들이 놀라울 만큼 작아진다. 직함과 업적, 명성과 소유는 마지막 순간 힘을 잃는다. 결국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를 위해 아파했는가 하는 삶의 흔적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눈물은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아직 인애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타인의 슬픔 앞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할 때 인간성은 무너진다. 반대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울고, 상실하기 때문에 울며, 죄책감과 연민을 느끼기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인간이 단순한 생존 본능의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관계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어령 교수가 죽음 앞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평생 지성을 탐구했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붙든 것은 논리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따뜻한 흔적이었다. 죽음은 인간이 평생 쌓아온 외형을 벗겨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결국 사랑의 기억만 남는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위기 역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슬픔조차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어 간다. 디지털 문명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연결하지만 정작 마음은 더 깊이 고립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눈물의 의미는 더욱 소중해진다. 눈물은 인간이 아직 완전히 비인간화되지 않았다는 마지막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 한 방울’은 단순한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선언처럼 들린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에 고귀한 것이 아니다. 연약함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다. 눈물은 그 사랑의 흔적이며, 인애의 마지막 언어다.   이어령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언은 군더더기 말이 아니라 내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얼마나 강한가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나 깊이 아파할 수 있는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가에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한 방울 눈물 속에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눈물 방울 방울 눈물 이어령 교수 디지털 문명

2026.05.20. 19:49

썸네일

[열린광장] 은방울 꽃처럼 빛나는 5월과 사람들

5월은 많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종 모양의 꽃이 피는 ‘은방울 꽃(lily of the valley)’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아름다운 5월에 은방울 꽃봉오리가 피고 참새들이 노래하면의자연스레 아름다운 사람둘의 이름과 일들이 떠오른다.     우선 5월에는 많은 왕과 대통령들이 태어났다.러시아의 캐서린 여황제가 1729년 5월 2일 태어났고,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1884년 5월 8일 출생이다. 또 스웨덴 왕 구스타부스 출생일은 1496년 5월12일이고, 오스트리아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는 1717년 5월 13일 태어났다.   이밖에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II (1868년 5월 18일), 영국 여왕 빅토리아(1819년 5월 24일),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년 5월 29) 등도 5월 출생자다. 반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 사망했다.   5월에는 기억할만한 일들도 많았다.   미국 최초의 의학전문대학이 1765년 5월 3일 필라델피아에서 문을 열었고,1840년 5월 6일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우표가 판매됐다. 미국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된 것이 1869년 5월 10이고, 메모리얼 데이가 시작된 것은 1866년 5월 5일이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유럽기념일 (V-E Day)이 1945년 5월 8일 생겼고, 미국에서 항공우편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18년 5월 15일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The Golden Gate Bridge)는 1937년 5월 27일 역사적인 개통을 했다.       5월에는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도 많이 태어났다.  ‘군주론(The Prince)’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에서 출생했고, ‘자본론(Das Capital)’으로 유명한 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또 유명한 음악가인 요하네스 브람스(183년 5월 7일), 유명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퀴리 부인(1859년 5월 15일), 천연두 환자에게 처음으로 주사를 놓아준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젠너(1749년 5월 17일),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경(1872년 5월 18일),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작(1799년 5월 20일), 독일의 유명 음악가 리차드 바그너(1813년 5월 22일) 등도 아름다운 계절 5월 출생자다.   미국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래인 ‘ 공화국 전투 찬가(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의 작사가인 줄리아 워드 호위가 태어난 것도 1819년 5월 27일이었다.   이밖에 미국의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리는  1856년 5월6일 북극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일은 나중에 북극 항공로를 개척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은방울 은방울 꽃봉오리 북극 항공로 북극 탐험가

2026.05.19. 19:35

썸네일

[열린광장] 5·16과 잊혀진 한강다리 전투

한국에서 발행된 5월 달력을 보면 많은 기념일이 있다.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동학농민혁명기념일(11일), 스승의 날(15일), 18일: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부부의 날(21일), 석가탄신일(24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5월 16일에는 아무 표시가 없다. 하지만 65년 전의 5월16일은 대한민국의 ‘역사 수레바퀴’가 초 스피드로 돌아갔던 날이다.     1961년 5월 15일 밤, 한강 하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제1여단 예하의 증강된 제1대대 병력 1300명은 완전무장을 한 채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밤 12시쯤, 여단장과 대대장의 지휘 아래 트럭에 탑승, 서울로 향했다. 5·16 군사 정변의 시작이었다.     부대는 새벽 2시쯤, 한강 인도교 앞에 도착했다.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와 철교, 2개의 다리만 있었다) 한데 인도교 입구에는 육군 헌병대 소속 지프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막아섰고  현병들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해병대 차량 행렬 선두에 있던 2중대장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육군 헌병대 대위가 소리쳤다. “참모총장 명령으로 한강 다리는 폐쇄되었소. 즉시 돌아가시오.” 그러자 해병대 중대장은 “우리는 수도 서울 방어 훈련 중이오. 육군 참모총장이 해병대 훈련에 명령을 내릴 수는없소. 다리를 통과해야겠소!”라고 소리치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때 지프 한 대가 달려 나왔다. 해병대 대대장이 탄 차였다. 그는 차에서 뛰어내리며 “즉시 물러가라!”고 소리치며 그 헌병대 대대의 헬멧 위쪽을 향해 권총을 쐈다.     어둠을 뚫고 새벽공기를 가른 그 한방의 총소리,  그것은 5·16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신호탄이었다. 그러자 육군 헌병들은 급히 다리 쪽으로 되돌아 달려갔다. 그 직후 다리 쪽에 포진해있던 헌병부대가 해병부대를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헌병부대는 이미  노량진 방향, 중지도 방향, 그리고 다리 끝 서울 진입로 등에 3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던 해병부대는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약 2시간여에 걸쳐  총격전이 벌어졌다. 헌병대의 피해는 알려진 바 없으나 해병대에서는 1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나의 소대원 중에서도 하사 한 명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추후 정부 당국은 5·16을 ‘무혈’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치열했던 한강 전투와 해병들이 흘린 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재까지도 5·16 군사 정변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5·16,  그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지금의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만년 동안 지독한 가난에 쪼들리고, 외신 기자들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필 수 없다'며 희망이 없는 나라로 무시당하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날 한강 다리 전투에서 흘렸던 해병들의 피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택규 / 트루스 역사문제연구회 대표열린광장 한강다리 전투 해병대 중대장 해병대 대대장 해병대 훈련

2026.05.14. 19:38

썸네일

[열린광장] ‘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민초들 마음

강물과 절벽에 둘러싸여 있던 소년 왕의 눈빛은 외롭고도 선했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문종의 유언으로 어린 왕을 보위하던 원로대신들을 제거하고, 이들과 뜻을 같이한 안평대군을 역모로 모함한다. 그는 또 거짓 어명으로 살생부에 적힌 반대파들을 죽이며 실권을 잡는다. 수양대군이 왕이 되자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은 신체를 찢는 거열형 등의 극형을 당했는데, 그들의 통한의 심정은 글로 남아있다.     이개는 ‘저 촛불 날과 같아서 내 속도 타는 줄 모르네/ 뼈마디가 녹아내려 재가 되어 흩어져도/ 임 향한 이 내 마음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네’ 라고 비분강개를 토했고, 성삼문은 낙랑장송으로, 박팽년은 야광명월로 굳은 절의를 보였다. 유응부는 ‘하물며 못다 핀 꽃’으로 단종의 처지를 슬펴하였다.     또한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불후의 작품은 시어마다 애절함을 품고 있다. 이 글은 당시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지만 영월 사람들이 전하고 외우고 있는 것을  중종 때 김지남이 한문으로 된 단가로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연려실기술, 제4권〉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아무튼 왕방연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 때 사림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은 훗날 세조의 공신들이 중심인 훈구파에 의해 피바람을 몰고 온다.  세조의 불의를 중국 초나라 항우에 빗댄 글이라 하여 사림파 선비들은 대거 죽임을 당한다. 세조는 14년 재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공적을 쌓았지만 두 동생에게 사약을 내리고, 조카를 죽였기에 그의 패륜은 심판받아야 했고, 도덕성을 중시하던 사림파는 영월의 노산군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왔다.      단종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보면, 〈세조실록 1457,10,21〉에는 세조 3년 양녕대군과 정인지가 노산군과 금성대군의 과오를 지적하고 처형을 상소했을 때 세조는 처음엔 ‘불가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를 윤허했다고 되어 있다. 이어 ‘노산군은 이를 듣고 스스로 목메어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 라고  기록됐다.   또 〈중종 실록 1516,12,10〉에는  ‘…고을 사람들이 군왕의 묘라 부르므로 비록 어린이들이라도 식별할 수 있었고,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스럽게 여긴다’다고 신상이 눈물 흘리며 중종께 아뢨다는 내용이 나온다.   단종 사후 60년이 지나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단종의 죽음이 밝혀지면서 엄흥도의 존재가 드러났다. 영조와 정조는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높이 예우했으며, 고종은 시호를 내려서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했다.     앞에서 보듯 선비들의 비분강개는 글로 뚜렷하게 남아있지만 글줄과 인연이 먼 민초들의 행적은 허공에 떠돌아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의 이야기는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행적이 어떠했던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단지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픽션으로 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토사학자들의 관점이 궁금할 뿐이다. 권정순 / 전직교사열린광장 남자 민초 민초들 마음 고을 아전 훗날 세조

2026.05.12. 18:55

썸네일

[열린광장] 개스값·물가 올리는 ‘전쟁 인플레이션’

지난 2일 새벽 댈러스 포트워스행 스피릿 항공 비행기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스피릿 항공은 오늘 새벽 3시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 이 비행편은 우리의 마지막 비행입니다. 40년 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항공사 하나가 하룻밤에 문을 닫았다. 승객들은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표를 쥐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수백대의 비행기가 내려앉았고, 1만5000여명의 직원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이 항공사 변호사는 법원에 “최근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지속되며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석유는 연료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혈액이다. 핏줄이 마르면 몸 전체가 앓는다.     개스값 상승의 여파는 주유소에서 먼저 느껴진다. 각 가정마다 자동차 1대 당 수십달러에서 수백달러의 추가 개스비를 지출하고 있다. 주유소 가격표가 바뀌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트럭이 멈추면 마트 진열대가 비고, 비료값이 오르면 농부는 씨앗을 덜 뿌린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라이언 넌 소장은 이 현상을 ‘전쟁 인플레이션(warflation)’이라 부른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한 달 사이 1% 가까이 뛰었다. 그는 “숫자는 작아 보여도 그 무게는 가계마다 다르다. 전쟁이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긴장만으로도 경제는 먼저 무너진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물건 가격이 오를 때와 내릴 때의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유가가 하락해도 마트 가격표는 한참 뒤에야 바뀐다. 넌 소장은 이를 ‘비대칭적 움직임’이라 표현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고통은 유가 그래프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이 지속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소득에서 연료와 난방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전기차로 갈아탈 여유도, 유기농 대신 다른 식품을 고를 여지도 없다. 경기 둔화로 일자리마저 줄면 그 압박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이 충격은 미국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긴장으로 출렁이면, 한국 자동차 운행이 중단되고, 인도 농촌의 부엌불이 꺼진다. 한국 정부는 이미 기름 부족에 대비해 자동차 10부제를 시작했다. 인도는 요리용 LPG의 상당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UC리버사이드의 아닐 디올랄리카 박사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식량 위기 한가운데 있다”며 “비료값이 오르면 올해 심은 씨앗이 줄고, 그 결과는 연말 식탁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란 전쟁의 근원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미네소타대의 윌리엄 비먼 교수는 “이란을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이란의 주권 의식은 혁명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상대의 역사와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강압만 반복하면, 협상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유가는 계속 오른다.   결국 지금 전세계가 치르고 있는 비용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 실패의 청구서다. 그 청구서는 전투기 조종사나 핵 협상가에게 날아오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 티켓을 들고 당황하는 미국 승객, 10부제로 운전을 못하는 한국 운전자, 비싼 개스값을 고민하는 텍사스의 트럭 운전사, 수확하지 못하는 뭄바이의 노점상, 나이로비의 어머니에게 먼저 도착한다.  전쟁은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굶긴다.  이종원 변호사열린광장 인플레이션 개스값 전쟁 인플레이션 개스값 상승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2026.05.11. 18:36

썸네일

[열린광장] 참 아름다운 5월에

 5월이 찾아오니 온갖 꽃들이 울긋불긋 피어나고 예쁜 새들이 즐겁게 노래 부른다.     이런 5월에 꽃과 새들만 찾아오는 것일까?  철없는 어린이들이 뛰놀고 샘 많은 여인들은 아름답게 꾸민다.   ‘인생의 봄’이란 뜻을 지닌 영어 ‘메이’에 걸맞는다.     한국의 ‘어린이날’은 아동 문학가 방정환이 1922년에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지키자고 부르짖은 데서 비롯됐다. 이후 1957년 5월 5일 ‘어린이 헌장’이 선포됐고 이날이   ‘어린이날’로 지정됐다 그래서 ‘어린이날’엔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란 노래를 부른다. 노래처럼 5월은 푸르다.  하늘도 푸르고, 땅도 푸르고 바다도 온통 푸르다.   아울러 어머니의 마음을 기리는 달도 5월이고 보면 5월은 아름답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지킨다.  영국에선 ‘귀향 일요일 (Mothering Sunday)’을 4순절의 넷째 일요일에 ‘어머니 날’로 지키기도 했으며,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어머니 날’을 기리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872년에 줄리아 워드 하우란 여성이 6월 2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1907년 애너 잘비스가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하자면서 전국적으로 카네이션 달아주기 운동을 펼친 것이 현재 ‘어머니 날’의 시작이었다.  1914년 5월 9일 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문서에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서명하고 그 이듬 해에 정식 선포됐다.      ‘어머니 날’이 있기 전 옛 로마에선 예쁜 옷을 입은 여성들이 여신 ‘훌로라’에게 5월의 꽃을 따다 제사를 지냈으며, 영국에선 잘생긴 남성들이 5월의 꽃으로 축제 기둥인 ‘메이 포울’을 꾸미면, 아름다운 아가씨들 가운데서 뽑힌 ‘메이 퀸’이 이 기둥을 붙잡고 춤을 추기도 했다.   5월은 어린이와 어머니만을 위한 달이 아니란 학설도 있다. 5월의 영어 이름 ‘메이’는 ‘나이 든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마조레스’에서 비롯되었기에 5월은 나이 든 사람의 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 든 사람을 뜻하는 단어를 5월의 이름으로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도 5월의 파릇파릇한 나무와 예쁜 꽃처럼 살아가라는 뜻일 게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이여,  5월처럼  푸르고 아름답게 살아가라! 이것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 주는 5월의 선물이리라.    1620년 영국의 ‘필그림 파더스’들이 신앙의 자유와 희망을 찾아 신대륙으로 떠날 때 탄 배 이름도 ‘메이플라워’다.  5월은 어린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계절의 여왕이다. 우리 모두 웃음과 젊음, 그리고 따뜻함으로 감싸인 5월의 품으로 들어가 보자.     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귀향 일요일 어린이 헌장 축제 기둥인

2026.05.10. 20:00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