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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불완전한 사장의 비서 채용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합리적인 인간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가장 옳은 결정을 하는 인간이다.    경제학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Homo-economics)’라고 부른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줄여서 ‘이콘(Econ)’이라고도 부른다. 이콘은 계산하는 인간이며 완벽한 인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다르다. 정보는 불완전하고, 소비 결정에는 가격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감정 같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이렇게 기존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행동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태경제학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휴리스틱(Heuristic)’, 즉 경험을 통해 얻은 단순한 규칙과 직관에 따라 판단한다고 본다. 언뜻 보면 주먹구구식 같지만, 수많은 실험은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완벽한 합리적 인간상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인간이 무한한 정보를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만족스러운 선택(Satisficing)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완벽한 이콘(Econ)’이 아닌, 현실의 인간을 설명하는 첫걸음이었다.     이후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휴리스틱의 구체적 유형을 밝혀냈다. 그들의 연구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합리적 계산보다는 직관적인 규칙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카너먼의 ‘자동차 보험 가입 실험’은 유명한 실험이다. 한 그룹에는 “보험료는 연간 200달러”라고 제시했고, 다른 그룹에는 “보험료는 하루 0.55달러”라고 제시했다. 두 금액은 동일하지만, 사람들은 하루 단위로 제시된 조건을 훨씬 저렴하게 인식해 그쪽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인간의 선택이 숫자와 확률보다 직관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수학자들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재미있는 문제 하나가 있다. 바로 ‘비서 문제(Secretary Problem)’다.   사장은 100명의 지원자를 순차적으로 면접하고, 그 자리에서 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번 거절한 지원자는 다시 부를 수 없으며, 마지막 100번째 지원자까지 모두 거절한다면 결국 아무도 뽑지 못한다.     만약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이라면, 사장은 수학자들이 계산한 최적의 전략을 택할 것이다. 즉, 처음 37명은 무조건 거절하고 관찰만 한 후, 그때까지 만난 지원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63명 가운데 처음 37명 중 가장 뛰어났던 사람보다 우수한 지원자가 나오면 즉시 채용하는 것이다. 이 전략을 따르면 가장 우수한 지원자를 뽑을 확률은 37%로 최대가 된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사장은 초반 10명쯤 보고 금방 결정을 내리고, 어떤 사장은 끝까지 기다리다 허둥지둥 채용을 하기도 한다. 사장만의 성격, 경험, 감정 같은 수많은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완벽한 이콘(Econ)이 아니다. 휴리스틱을 통해 내리는 ‘충분히 괜찮은 결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불완전 사장 비서 채용 비서 문제 합리적 계산

2025.09.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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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망치와 모루 작전

1950년 9월 15일, 9월 23일, 그리고 9월 28일은 대한민국이 적으로부터 회생과 반격의 불씨를 되살린 역사적인 날들이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은 소련제 T-34 탱크 242대와 122 미리 곡사포 172문을 앞세워 국군의 2배나 되는 20만여 병력으로 무방비 상태의 대한민국을 남침했다. 불과 3일 만에 한국은 수도 서울을 함락당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적군에 갈피를 못잡던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8일,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UN군 총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넘겼다. 그러나 전황은 계속 악화했다. 10월 19일에는 중공군 83만명이 압록강을 도하하면서 인해전술을 감행했고, 11월에는 소련군 미그기가 청천강 일대에 출몰하여 위협을 가했다.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급박한 형세를 일시에 해소하기 위해서 만주 일대 원자력 폭탄을 투하할 구상을 했지만 반대가 심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급기야 UN군과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대한민국의 영토는 경상남북도로 축소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맥아더 장군은 고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고안한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 작전을 구상했다. 망치는 불로 달군 쇠를 두드리는 연장이고, 모루는 그 쇠를 올려놓는 받침대다. 이 작전은 적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양쪽에서 공격하는 포위 섬멸 전술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조수 간만의 차가 10m에 달해 수많은 미군 장성들이 반대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위험이 클수록 기습 효과가 크다며 작전 수행을 강행했다.   1950년 9월 15일,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됐다. 미 해병 제1여단, 미 육군 제7보병사단, 한국 해병 2개 대대, 육군 제17연대로 구성된 UN군과 한국군 상륙부대는 인천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들은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며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모루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낙동강 전선에서 후퇴했던 미 제1기갑사단과 UN군, 한국군으로 편성된 제8군은 9월 23일 낙동강을 도하해 북진하며 망치 역할을 맡았다.   이 양동작전으로 북한군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10만여 명의 병력을 잃었고, 3만 명의 잔여 병력은 북으로 도주하는 참혹한 패배를 맛보았다. 이 작전은 전세를 뒤집고 대한민국의 존망을 지켜낸 기념비적인 승리였다.   그후로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수도를 점령당하면 패전한다”는 옛 병법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악랄한 북한군을 불과 40km 거리에 두고 있다. 6.25 전쟁 당시처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마지노 방어선과 같은 철통같은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나치군이 파리를 정면 공격하지 못하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우회해야 했던 것처럼, 방어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쟁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망치 모루 작전 수행 낙동강 방어선 한국군 상륙부대

2025.09.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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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10여 년 전 레지오 주 회합 때의 일이다. 단원 12명이 매주 일요일 성당에서 모임을 갖는 행사였다. 지각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여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단원 한 명이 불현듯 김일성을 찬양하며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자 한 사람이 “당신 빨갱이구먼”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상대가 “빨갱이가 뭡니까, 좋은 말 놔두고…”라고 반박하자 그분은 “그럼, 빨갱이보고 빨갱이라고 하지 뭐라고 말하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러자 “진보라고 해야지요”라고 맞받으면서 두 사람은 육탄전 일보직전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장인 내가 그 언쟁을 제지하려 회합을 속히 진행했다.     정치 성향에 대한 갈등은 미국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을 하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두 명 있는데 미 육군에서 전역한 짐은 공화당 성향이었고 다른 친구 토니는 민주당원이었다. 토요일 11시경 세 명이 브런치를 먹는 좌석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화제가 정치 쪽으로 흘렀다. 두 사람이 의견 차이로 언성이 점점 높아져 살벌해졌다. 내가 “화제를 바꾸자”고 제안했더니 두 사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명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정치적, 종교적인 대화는 삼가자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언쟁이 유발되기 십상팔구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좋았던 관계가 금이 가고 사이가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나 미국이 진보와 보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파와 우파는 있는데 중도파가 없는 것이 문제다.     검은색에 흰색을 배합하면 회색이 된다. 회색은 흑색이나 백색보다는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중도 성향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두 진영에 양다리를 걸친 기회주의자나 보신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극단적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것이다. 중도 성향은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은 3개월 전에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진보 성향의 정부든 보수 성향의 정부든 국민을 화합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힘쓰는 정권이라면 상관없지 않은가. 국민이 자유롭고 잘 살 수 있게 해주어 행복하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약 50여 년 전 중국의 정치 지도자가 ‘흑묘 백묘’론을 주장하였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다. 내가 전적으로 공감하는 금언이다. 좌파든 우파든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정부라면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이미 퇴출된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좌파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혐오감을 갖고 있다. 또한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하기만 한 우파 정치인들에게도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모든 일은 자신의 입장에서 아전인수격 사고로 판단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좌파 정치인들 우파 정치인들 진보 성향

2025.09.1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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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완의 ‘크레이지 호스’를 바라보며

지난달 필자는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두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하나는 ‘러시모어(Rushmore)’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조각상이다. 이들은 미국사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각각 독립, 영토 확장, 연방 통합, 산업화 시대를 상징한다. 1927년 착공해 14년에 걸쳐 완공된 이 조각상은 미국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의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하나의 조각상은 아직도 진행 중인 미완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조각상이다. 두 조각상이 세워진 블랙힐스는 원래 라코타 수우족(Lakota Sioux)의 땅이었다. 1868년 미국 정부는 라라미 조약을 통해 이 지역을 라코타 수우족의 영토로 인정했다.     그러나 1874년, 금광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고, 연방정부는 일방적으로 조약을 파기했다. ‘러시모어’는 미국인의 자랑일 수 있으나, 원주민에게는 상처와 분노의 상징이기도 하다.   크레이지 호스는 리틀빅혼(Battle of the Little Bighorn) 전투에서 미 육군을 무찌른 라코타 수우족의 영웅이다. 그는 백인의 땅 확장에 맞서 싸웠고, 결국 체포되어 짧은 생을 마쳤다. 그의 조각상은 연방 정부의 도움 없이, 원주민 공동체의 손으로 1948년부터 지금까지 조각되고 있다. 77년이 지났지만, 얼굴과 쭉 뻗은 왼팔만 완성되었지 아직도 미완의 작품이다.   이 두 상징물은 미국이 어떤 나라였고, 지금 어떤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러시모어는 미국의 역사요, 자랑하고 싶은 함축된 상징이다. 반면 크레이지 호스는 인디언의 역사를 말하지 않으면 지워져 버리기에 잊히지 않기 위한, 지금도 살아 숨을 쉬는 인디언 역사의 흐름이다.   이 두 거대한 역사의 흔적을 보면 소수민족인 우리 이민자들의 삶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한인 이민은 1903년 1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102명의 조선인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바다를 건넜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땅에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공동체를 만들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자긍심을 지켰고, 자녀들에게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미국 주류 언론과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우리 선조들은 묵묵히 뿌리를 내렸다.   크레이지 호스는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공동체의 전통과 정신을 끝까지 지켜낸 정체성 수호자였다. 오늘날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들 역시 그와 같은 현장에 놓여 있다.   이민 생활은 늘 ‘적응’과 ‘정체성’ 사이에서의 균형을 요구한다. 영어를 배우고, 현지 문화를 익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뿌리를 잃어버린다면 결국 나 자신도 잃게 된다. 크레이지 호스는 라코타의 전통과 언어, 삶의 방식을 지키는 것이 단순한 문화 보존이 아니라 존재 의미를 지키는 일임을 보여줬다.   오늘날 우리 이민 사회에서도 정체성의 위기가 나타난다. 한국어를 모르는 2세대, 한국 문화를 낯설어 하는 3세대는 단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문화 교육과 공동체 형성의 부족 때문일 수 있다. 정체성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크레이지 호스는 공동체 중심의 지도자였다. 그는 개인보다 부족 전체의 안녕을 우선했다. 이민 사회에서도 개인의 성공에 앞서,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중요하다. 교회, 한인회, 문화 단체를 중심으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연결되는 일이야말로 이민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정신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생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이 아닐까.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크레이지 미완 크레이지 호스 반면 크레이지 한국 이민자들

2025.09.1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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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열사의 사막에서 다져지는 한미동맹

2주 전, 150명의 한국 육군부대 장병들이 미군과 함께 이곳 한 사막지대에서 한 달간의 합동훈련에 참가차 미국에 왔다. 불볕더위와 거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훈련은 단순한 체력 단련이 아니라, 실제 전장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장병들의 전투력과 정신력을 극대화하는 값진 경험이다.   이 훈련의 의미는 단순히 병사 개인의 군사기술 향상에만 머물지 않고 바로 또 한국과 미국이 70여 년간 맺어온 굳건한 동맹의 현재를 보여주는 표상이다. 한국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핵심 축이다. 미군과 나란히 훈련하며 호흡을 맞추는 우리 장병의 늠름한 모습은 두 나라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 운명체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즉 한미동맹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안보를 지탱하는 기둥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바로 이번 훈련이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협력을 넘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이는 한국군이 미국군과 똑같은 전장에서 호흡을 맞추며 미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역량을 증명하는 자리다.     전쟁은 준비된 자에게만 승리를 허락한다. 훈련에서 흘린 땀은 실제 전장에서 피를 줄이는 법이다. 특히 이곳 사막지대 훈련은 한국군이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작전 능력을 시험받는 자리다. 이는 다양한 지형과 조건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큰 의미가 있음은 물론 우리 장병들이 이 훈련을 통해 얻게 될 경험과 자신감은 곧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든든한 자산이다.   모름지기 전쟁은 훈련의 연장선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피를 흘리지 않는 훈련에서 흘리는 땀이, 실제 전장에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힘으로 전환된다. 특히 낯선 사막에서의 훈련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 속에서도 작전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병들에게 귀중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합동훈련은 미주 한인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 과거 한국전쟁 때 미국과 자유세계가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은 이제 당당히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고, 오늘도 그 안보를 위해 한미 양국의 젊은 장병들이 열사의 사막을 누비고 있다. 바로 한미간의 군사적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살아있는 약속이요 웅변이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우리 노병은 이 훈련에 나선 후배 장병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한다. 70여 년 전 우리는 조국의 생존을 걸고 싸워야 했고, 그때 곁에서 함께했던 미군 전우들의 피와 희생을 지금도 기억한다. 오늘도 한미 양국 군 장병들은 같은 동맹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의 훈련장을 뛰고 있다. 땀내 짙은 천막 속, 불타는 사막 훈련장에 뿌린 장병들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곧 조국의 안보, 그리고 세계 평화를 지키는 초석이 된다.   미주에 사는 해외동포로서, 또 참전용사로서 이번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 땀과 열정으로 한 달간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갈 우리 장병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동시에 한미 양국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굳건한 안보 협력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열사의 사막에서 뿌린땀방울이 곧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값진 유산이 되리라 믿는다.     “땀으로 쌓는 안보, 피로 지킨 동맹” 장병 여러분의 헌신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지키는 튼튼한 보루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한미동맹 열사 사막 훈련장 우리 장병들 이곳 사막지대

2025.09.0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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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위로 장사’와 ‘SayNo’의 가르침’

몇 해 전,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다가 중간쯤에 책을 덮었다. 일등석을 타고다니는 저자의 ‘일류 호텔에서 속옷을 직접 빨아 호텔 냉장고 뒤 열선에 널어 말린다’는 대목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부자들의 검소한 일화쯤으로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호텔 냉장고 뒤편의 먼지들이 생각나서 그가 아무리 잘 닦는다고 해도, 그곳에 속옷을 빨아 말리는 장면을 상상한 순간, 더 읽고 싶지 않아졌다.   한때 청춘 담론의 한복판에 선 인물들이 있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대신 교수직을 택한 김난도 교수, 그리고 예능인에서 ‘청춘 멘토’로 변신한 방송인 김제동이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청년 세대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다, 너희가 힘든 건 사회와 어른들의 탓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제동 역시 방송과 강연에서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다.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지목하며, 청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달콤했지만, 공허했다.   위로는 잠깐의 마취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라는 엘리트가 안정된 경력 위에서 “아픈 건 너희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청춘들에게, 그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현실 도피의 빌미가 되었다.     김제동은 어떤가. 기성세대의 잘못을 지적하며 약자의 편에 서는 듯했지만, 정작 본인은 강연 한 번에 1500만 원을 챙겼다. ‘청춘은 힘들다’는 말을 전하며 정작 본인은 그 ‘힘든 청춘’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을 강연료로 받으면서, 자신이 던진 말의 진정성을 갉아먹는다.   ‘세이노(SayNo)’는 필명이다. ‘기존 사회의 틀이나 잘못된 관행에 No라고 말하라’는 의미라고 알려져 있다. 필명이 마치 일본 이름같지만, 그는 한국 사람이다. 자산이 1000억원이 넘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실명을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가 틈만 나면 적었던 많은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나온 것이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이 책은 차갑고 불친절하다. 때로는 꼰대 같다. 그러나 최소한 솔직하다. 인생은 네 몫이고, 네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노력과 자기계발, 자산 축적, 태도의 변화만이 네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듣기 거북할지라도, 메시지는 현실을 도려내는 듯한 힘을 가진다.   “네 인생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 없이는 자유도 없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라.” “작은 습관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 “공짜 점심은 없다.” “세상이 네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가난은 불행이 아니라, 가난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불행이다.” “젊을 때는 배움에 투자하라, 배움은 배신하지 않는다.” “불평은 네 인생을 바꿔주지 않는다. 행동만이 바꾼다.” “네가 지금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네가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위로의 언어들이 순간의 진통제였다면, 세이노의 차가운 말들은 수술용 칼에 가깝다. 진통제는 잠시 통증을 잊게 하지만 병을 고치지는 못한다. 인생을 바꾸는 힘은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변화하며 삶을 주도하려는 용기와 작은 실천에서 나온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가르침 위로 위로 장사 청춘 멘토 호텔 냉장고

2025.09.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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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사랑의 씨앗을 심으며 살자

얼마 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는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를 기념하는 선교대회가 열렸다.     140년 전,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산실인 이화학당을 세운 메리 스크랜턴은 클리블랜드 지역의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조선 땅을 밟았다. 그녀의 아들이자 클리블랜드에서 의사로 있던 윌리엄 스크랜턴도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의 터전을 닦았다.   그들이 전한 것은 복음만이 아니었다. 배움의 길이 막힌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치료받을 길조차 없던 병자와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면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교육과 치료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기에 한국의 선교 역사는 단순한 복음 전도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선교의 기초를 놓은 두 선교사를 배출한 도시에서 열린 선교대회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140년의 세월을 잇는 대화의 장이었고,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복음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선교대회 참석을 위해 LA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중간 기착지인 디트로이트에 순조롭게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연결편이 연달아 지연되면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클리블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었다. 여러 차례 지연 소식을 전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우버를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주최 측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에 맞춰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부르스 목사였다. 푸근한 인상의 부르스 목사는 클리블랜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목회하다 올해 은퇴했다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가면서,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준 클리블랜드에 와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니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그는 지난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을 꼭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킨 나라가 발전한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해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감사했다고 했다. 더구나 그가 메리 스크랜턴과 윌리엄 스크랜턴을 파송한 클리블랜드 출신이었기에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아버지를 구해 준 이들이 바로 한국에서 파병된 해병대였다는 것이다.     140년 전, 클리블랜드에서 출발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한국에 전해졌고, 그 마음을 배운 이들이 베트남 전쟁 중에 죽음의 위기에 빠진 클리블랜드 출신 미군 병사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베푼 사랑과 도움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진리를 떠올렸다. 오늘 우리가 심는 사랑의 작은 씨앗이 언젠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큰 나무가 되길 소망하며, 사랑의 씨앗을 심으며 살자.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열린광장 사랑 씨앗 클리블랜드 출신 클리블랜드 지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2025.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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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광복 80주년 뮤지컬 ‘도산’의 감동

지난 8월 19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도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 및 뮤지컬 도산 갈라’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20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벅찬 감동 속에 공연을 즐겼다.   2019년 3월3일 첫 공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이번 뮤지컬 도산 공연은 기존의 뮤지컬 형식을 넘어 더욱 다채롭고 웅장한 ‘종합 예술’로 진화했다.     첫 공연이 역사적 사실의 스토리에 충실한 감격적인 공연이었다면 이번에는 전창한 지휘자가 이끄는 도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를 맡아 현장감과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전창한 지휘자는 2023년 뉴욕 클래식 음악 국제 콩쿠르에서 지휘부문 2위를, 영국 엘리자베스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던 실력 있는 음악가다.     특히 이번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공연의 배경은 물론 가사가 영어 자막으로 제공돼 한인 2·3세와 현지 미국인 관객들도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의 웅장함은 5개의 연합 합창단이 더해지며 절정에 달했다. 남가주 정신 동문 코러스, LA Charity Choir, 화랑 Youth Foundation, Young Angels Choir 그리고 Cahuenga 초등학교 Chorus 등 5개 단체는 주제별로 구성된 다섯 개의 무대에 함께하며 감동을 배가시켰다.   1부는 애국으로 시작하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고, 2부는 배움으로 흥사단 창단, 대성학교 설립 이야기를 소개하며 배워야함을 강조했다. 또 독립을 향한 도산의 의지를 담은 3부와, 부인 혜련과 가족의 아픔과 사랑을 노래한 4부로 이어졌다. 마지막 5부는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평화의 나라가 오길 바라는 희망을 노래하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과 정신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역사적 서사를 연기와 노래로 풀어냈던 지난 공연들과 달리, 이번 갈라 공연은 주제별로 오케스트라와 합창, 그리고 영상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절제된 연기와 안무로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는 한인들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처음 선보인 시도로, 성공적인 결과물로 이어졌다.   시즌 1 공연 당시 도산 선생의 막내 아들인 랄프 안 선생이 참석해 시종 눈물을 훔쳤고, 이번 시즌에는 도산의 손자인 웨슬리 안씨와 그의 가족 10여명이 자리했다.     참석한 2000여명의 관객들 역시 ‘고향의 봄’,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며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도산 선생이 꿈꿨던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날 공연은 단순한 예술 행사를 넘어, 우리 역사와 뿌리, 그리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미주 동포 사회의 후원과 여러 관계자의 헌신이 만들어낸 이 걸작이 앞으로도 매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영어권에도 큰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무대이니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차세대가, 그리고 미 주류사회가 관심 가질 수 있는 작품으로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모든 음악을 재구성하고 연출한 클라라 신 대표, 독립운동가처럼 연습에 매진한 단원과 스태프, 도산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전창한 지휘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지원한 미주도산기념사업회의 데이비드 곽 회장과 이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김동수 / 극단 시선 후원회 이사장열린광장 뮤지컬 광복 뮤지컬 도산 도산 심포니 뮤지컬 형식

2025.09.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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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학

연예인을 얕잡아 ‘딴따라’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호칭이 무색할 만큼, 많은 연예인이 대중문화의 첨병 역할을 넘어 사회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후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399년)를 소환해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묻는다.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물음으로, 삶의 본질과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을 대중에게 던져 큰 공감을 얻었다.   아테네 출생인 소크라테스는 30세에 보병으로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를 맛봤다. 그후 아테네의 국운이 상승하여 인생을 풍미할 수 있었으나 스파르타 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소망은 땅에 떨어졌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 3 가지를 물었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둘째, 나의 앞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셋째, 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은 죽으면 그만인가. 심각하게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 나오다가 출입문 상단에 적힌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독일의 고전학자 니체(1844~1900년)는 “인간은 아직도 확정되지 못한 동물이다” 라는 말을 했다. 잉카문명의 신화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신화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3번씩이나 창조했다고 한다. 첫 번째, 진흙으로 만들었더니 아주 둔하고 미련하여 폐기했다. 두 번째로 나무로 만들었지만 거칠고 심술 궂어 폐기해버렸다. 세 번째로 붓대를 만드는 반죽으로 창조하였는데 너무 영리하고 교활했다. 신은 고민하다가 두뇌활동을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게 하여 오류에 빠지도록 하고 세상의 최종 비밀을 탐구 못 하게 하고 잘못을 범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시사한다.   니체의 말과 잉카 신화처럼,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미완성의 인간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순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1901~1970년)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여러 정당의 난립으로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변비형 민주정치’를 겪은 후, 일당제를 선택해 모든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결국 국가의 영양실조를 초래하는 ‘설사형 민주정치’로 이어져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인사가 만사”라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다. 불완전한 인간이 운영하는 시스템일지라도, 적재적소에 올바른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불완전 정치학 불완전성은 정치 불완전성과 오류 설사형 민주정치

2025.08.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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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죽음 준비의 진정한 의미

젊었을 때 나는 직장에서 분주하게 일했다.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했었다. 늙어지리라는 생각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늙고 말았다. 나이가 90에 가까워지니, 눈앞에 죽음이 아련하게 서 있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동물들의 삶에 대한 영상을 가끔 본다. 사자나 호랑이는, 먹이를 잡아서 먼저 죽여 놓은 후 뜯어 먹는다. 그런데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다르다. 이네들은 먹이를 죽일 줄을 모른다. 그냥 살아있는 먹이를 뜯어 먹는다. 그러니, 먹이는, 살아 있는 채, 뜯겨 먹히니, 얼마나 아파하면서 죽어가겠는가! 아프리카 들개나 하이에나도 마찬가지다. 먹이가 살아 있는 채, 여럿이 함께 뜯어먹는다. 그러니, 먹이의 죽음은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사람도 때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기도 한다. 예수는 살아 있는 채, 몸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었다. 예수의 죽음은 정말로 처절하게 아픈 죽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서 혹은 칼로 난자하게 찔리어서 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전쟁터에서 폭탄의 파편이나 총알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죽음은 결코 좋은 죽음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늙어서, 병이 들어서, 집에서나 병원에서 편안하게 죽는다. 복 받은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편안하게 죽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사고로, 혹은 병이 들어서, 일찍 불운하게 죽는가. 이 문제를 놓고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해보았다.   이 세상은 연기(緣起·모든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칙)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짐으로 저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연기는 인과응보이다. 이 세상은 인과응보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 사람이 못된 짓을 했으면, 그 과보가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기어코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과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나타나게끔 돼 있다. 내일도 다음 세상이고 그리고 저승도 다음 세상이다. 몹시 나쁜 짓을 저질렀으면,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방등경』에서 태자는 부처에게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장수하고 무병하며 이별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처는 대답하셨다. “보살은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않았으므로 장수함을 얻고, 흉기로 사람을 상하게 아니했음으로 병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싸우는 것을 보면 권하여 화합하게 하였으므로 이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아끼지 않았으므로 재물을 잃거나 도둑맞지 않고, 남의 재산을 탐내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므로 장자(부자)의 집에 나며, 살생하거나 교만이 없었으므로 존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은, ‘잘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저승에서 잘 살 준비를 미리 해놓으라는’ 말이다. 저승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부처는 말했다.   젊었을 때, 뭣 모르고 못된 짓을 저질렀으면, 지금 참회해야한다. 남을 해치려는 나쁜 마음을 버려야한다. 그 대신 남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준비’인 것이다. 조성내 / 전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열린광장 의미 살생 도둑질 아프리카 들개 사회봉사 활동

2025.08.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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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광복 80년,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80년 전, 찬란한 새벽처럼 광복이 찾아왔다. 1945년 8월 15일, 민족의 운명을 짓누르던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날, 우리는 마침내 주권을 되찾았고, 이름조차 빼앗겼던 우리말과 문화, 그리고 자존의 불꽃을 되살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뿌리를 이어받아 건국의 기초를 다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남긴 피와 눈물, 신념 위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돌이켜보면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의 기쁨은 잠깐, 이는 다시 끝이 아닌 고난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정부 수립의 고난, 가난과 폐허 위에 찌든 민생, 그래도 오뚝이처럼 재기의 역사를 일구어냈지만 또 다른 피의 시련이 닥쳐 올 줄 누가 알았으랴. 바로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북한 인민군은 육중한 탱크로 짓밟고 포화로 서울은 불타고, 전쟁이 발발해 한반도는 폐허로 변하여 나라의 운명은 다시 풍전등화와 같았다.   위기의 순간, 나라를 지킨 건 총칼을 든 용기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나보다 조국을 먼저 선택한 참전용사들이었다. 그들의 피로 나라가 지켜졌고, 그들의 희생 위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고지의 능선을 한 치씩 기어오르며 끝내 진지를 사수했던 병사들, 거센 포화 속에서도 전우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학도병들, 그들의 이름 없는 용기와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사라진 용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의 영웅들이 돌아오지 못한 그 고향 땅에서, 자녀는 배움의 꿈을 꾸었고, 부모는 잘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을 전개했다. 국가는 다시 산업을 일으켰으며, 지금 우리는 당당히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그 눈부신 한강의 기적은 바로 국민의 희생 위에 지어진 역사다.   특히 우리 해외동포들은 언제나 조국의 외곽에서 조국을 지켜온 또 하나의 영웅들이다.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조국에 보내온 성금,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노력들, 그리고 2세, 3세 자녀들에게 한글과 문화를 전하며 민족의 뿌리를 지킨 해외 한인들의 수고는 결코 잊히지 않을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좁은 단칸 셋방에서 창업한 기업이 세계 시장을 누비고, 맨주먹으로 시작한 농촌이 IT강국의 뿌리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양극화의 벽을 넘고,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자유민주주의, 너와 내가 잘 사는 번영, 꿈에도 소원인 통일, 그리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광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의 영광스런 책임이다.   우리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기보다는 우리가 지켜낸 자유, 우리가 세운 나라를 어떻게 미래로 이끌 것인가를 다짐해야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닌 것처럼 광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기다렸다고 오지 않았으며, 지금의 번영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80년 전, 우리는 세계의 가장 아프고 슬픈 나라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희망의 나라가 되었다.   광복의 정신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이다. 자유 대한을 사랑하자. 대한민국이 하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소문난 나라, 고로  우리의 미래는 또 한 번의 5000년 역사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광복 자유 자유민주주의 너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정부

2025.08.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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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텃세

요즘 소일거리가 하나 더 생겨 외출이 잦아졌다. 두 군데 시니어 센터에 가서 마작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윌킨슨 센터에서 마작을 배웠는데, 셔먼옥스에 더 큰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에도 간다.   마작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텃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나 텃세가 있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주택단지나 아파트는 물론, 학교, 직장, 교회, 하물며 동우회나 친목단체에도 텃세는 있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자릿값을 챙기는 것이다. 이사를 가면 이웃에 떡을 돌리고, 단체에 새로 들어가면 선배들(?)에게 술이나 밥을 사거나 선물을 돌리는 일 등이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아니겠는가.   시니어 센터의 마작교실에도 텃세는 있다. 윌킨슨 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는 얼굴들끼리 짝을 맞추어 앉으니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한자리 남은 테이블에 마작교실의 리더인 ‘메리’가 나를 끼워 넣으려 하니, ‘에이드리언’이라는 노인이 자기는 40년 마작을 했는데 어떻게 초보자와 게임을 하겠느냐는 투의 말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니 결국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 하지 않았나, 얼떨결에 첫 판에 ‘마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 큰 실수 없이 넘어갔다. 그 다음주, 원피스를 입고 온 에이드리언에게 옷이 어울린다고, 예쁘다고 말해 주었더니 좋아한다. 립서비스로 자릿값을 지불했다. 그날 이후 매주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마작을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로컬룰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원래는 현지 상황에 맞는 규칙을 의미하는 용어지만, 좀 쉽고 편하게 골프를 즐기기 위해 규칙을 바꾸어 적용하는 것이다.   바둑이나 화투도 마찬가지. ‘낙장불입,’ ‘일수불퇴’가 원칙이지만,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작도 같다. 규칙이 있지만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가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정하기 나름이다.   윌킨슨 센터에서는 규칙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하는데, 셔먼옥스에는 꾼들이 많고,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돈을 걸고 하기 때문에 좀 엄하게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몇 사람이 유독 내게 룰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을 경험한다. 텃세다. 신참이 별수 있나 아니꼽지만 견뎌야지.   텃세에 맞서는 방법에는 죽기 살기로 맞짱을 뜨는 것과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있다. 힘을 믿고 맞짱을 뜨면 이기더라도 피를 보아야 한다.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단속도 결국은 텃세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미치는 부/긍정적인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선동하며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철새도 환경에 적응하고 눌러앉으면 텃새가 된다. 참고 견디면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나.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텃세 마작 이야기 윌킨슨 센터 시니어 센터

2025.08.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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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버텨줘서 고마운 아이들

아이티에 왔다. 몹시 안타깝고 그리웠던 아이들을 만나려고 뉴저지에서 마이애미로 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와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 북부 도시 캡 헤이션에 도착했다. 갱들의 피해를 보지 않아 조용한 캡 헤이션에서 다섯 시간을 기다려 작은 비행기를 타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는데, 20분이 걸렸다.   이번 방문은 10개월 만이다. 작년 9월 초에 다녀간 후, 11월부터 미국 항공편의 운항이 중단되었고, 이후 계속 연장되어 지금도 포르토프랭스는 국제선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다. 그나마 국내선이 지난 6월부터 정부가 보험을 보증하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했지만, 국제선은 내년까지 재개되지 못할 것으로 대부분 예상한다.   지금 포르토프랭스는 전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갱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애꿎은 송전탑 여섯 개를 절단해 넘어뜨리면서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우리가 머무는 센터도 제한적으로만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일반 서민들은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고, 낮에는 전기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수도 전체가 완전히 단전 상태다.   이런 사정 속에서, 오랜만에 온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차례대로 센터로 불러서 만났다. 전기도 전혀 들어오지 않고, 갱들은 여전히 밤낮없이 총격전을 벌이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고아원은 갱 점령지역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 긴장하며 지내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모처럼 푸짐한 도시락도 함께 먹으며 격려했다.   아이들은 표현이 없지만, 원장들은 어려운 걸음을 해준 우리에게 뜨거운 포옹으로 감사를 전하며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어찌 지냈느냐는 안부도 부질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주 울컥한다. “버텨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눈빛으로 나누며, 우리는 씩씩한 척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길고 깊은 감사 기도도 함께 드렸다.   아예 문을 닫은 학교가 수업을 하는 학교보다 훨씬 많은 상황인데, 문을 연 학교도 수업을 제대로 못 해 방학을 늦추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 국가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이번 주에 치러졌고, 고아원 아이들도 여러 명 응시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 입학시험을 볼 자격을 준다. 우리는 지금 4명의 대학생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9월 학기에 최소한 두 명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 기도 중이다.   갱단의 폭력으로 나라의 존립이 흔들리고,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우리는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좀 더 지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후원받은 식량을 받아가려면 적지 않은 통행료를 갱단에 내야 하고, 숨 한 번 크게 쉬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고아들의 삶이 처참해질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본다. 시편 140편 1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이 고난받는 사람을 변호해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분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아이티에서 고아들을 품고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고난받는 사람 편에 계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참혹한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 /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열린광장 국제선 비행기 고아원 아이들 가운데 고등학교

2025.08.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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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풋살과 블루박스

유럽축구가 ‘힘’이라면, 남미축구는 ‘개인기’다. 브라질은 남미축구를 대표하는 나라다. 좁은 공간에서 눈부신 개인기를 펼치는 브라질 선수들을 보면 마술을 보는 듯하다. 축구의 황제로 불리는 펠레를 비롯해 호나우지뉴, 네이마르까지 이들이 모두 풋살(Futsal)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축구가 넓은 운동장에서 11명이 펼치는 경기라면, 풋살은 그보다 훨씬 좁은 공간에서 5명이 뛰는 경기다. 보통 축구보다 6배나 빠르다고 알려진 풋살에서, 선수들은 공을 가진 시간이 짧고, 결정은 훨씬 빨라야 한다. 그만큼 선수 한 명 한 명이 공을 접할 기회도 많고, 좁은 공간에서 정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인기와 판단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풋살이라는 ‘작은 공간의 집중 훈련장’이 브라질 축구의 창의성과 기술을 낳은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항공 산업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1929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에드윈 링크가 개발한 ‘링크 트레이너(Link Trainer)’, 일명 블루박스는 외부가 파란색으로 칠해져 그렇게 불렸다. 블루박스는 실제 비행기 없이도 조종사를 훈련시킬 수 있는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였다. 특히 이륙과 착륙처럼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구간을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루박스는 혁신적이었다.     실전 훈련이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조종사는 수십 번, 수백 번의 위기 대응을 익혔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장치는, 미군이 300여 대를 도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미공군 전력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실제로 50만 명 이상의 조종사가 블루박스를 통해 실전 대응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실력은 실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오히려 제한된 공간에서, 반복된 훈련과 실패를 통해 탄생한다. 브라질 축구의 풋살과 항공 산업의 블루박스는 작고 안전한 환경에서 몰입도 높은 훈련이 어떻게 실전에서의 창의성과 침착함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들은 신입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이런 질문을 가진다. “신입 직원에게 전 분야를 넓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많은 조직이 전인적 교육, 즉 모든 것을 균형 있게 가르치려 한다. 실제 직원들도 모든 부분을 두루두루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언제나 ‘특정한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깊이 있는 반복 훈련에서 길러진다.   최근의 유능한 기업들은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들은 신입 직원을 처음부터 여러 부서로 돌리는 대신, 하나의 실무 영역에 집중 배치하고, 실전과 유사한 업무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게 한다. 풋살처럼 좁은 공간 안에서 반복된 터치와 판단을 익히게 하고, 블루박스처럼 실전에서 맞닥뜨릴 위기를 미리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전인적인 교육은 결국, 어느 하나에 깊게 빠져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분야가 달라도 한 분야에서 도가 통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도가 통한 사람과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손헌수 / 변호사, 공인회계사열린광장 블루박스 풋살 일명 블루박스 모두 풋살 브라질 축구

2025.08.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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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절망의 시대 화두, 영혼 돌봄

오늘의 필요가 채워지면 그것으로 최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시대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와 화재는 일상적인 절망과 슬픔을 낳고 있다. 서머캠프에 참여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급류에 휩쓸려 희생당한 비극적인 소식은 우리 모두를 숨 막히는 애통함 속에 빠뜨렸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와 비슷한 실망감들이 표출되고 있다.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는 앞으로 30년 안에 재정 고갈을 맞거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놓여 있다. 현재 30대 이후 세대들이 미래 복지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의학계 또한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에는 공감하면서도, 조만간 수십만 명의 의료 인력이 대체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인류는 당장의 만족을 추구하며 영혼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미루는 듯 보인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중환자조차 몸과 마음, 영혼을 함께 돌보는 통합적인 치료가 중요하다고 여기건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오늘의 필요’라는 환경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각자의 영혼을 돌보는 최종 책임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실과 아픔, 현대 사회의 상상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도 우리는 우선 나의 영혼을 돌봐야 한다. 삶의 여정이 느리고 순탄하다면 영혼을 돌볼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귀를 얻으면 남모르는 슬픔이 따르고, 명예를 얻으면 말 못할 아픔이 있다. 높은 연봉의 직장에서도 가정이 무너지기도 하고, 자녀가 성공해 이제 걱정이 없겠다 싶은 순간 예기치 못한 질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현대 심리치료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빅터 프랭클은 3년간의 유대인 수용소 생활에서 얻은 실존적 경험을 통해 기존의 임상 지식을 뛰어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1500명이 줄을 서서 첫 번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가운데 10% 가량은 오른쪽에 세우고 나머지는 왼쪽에 세워졌다. 그런데 왼쪽 줄에 있던 전원이 개스실로 보내진 것을 알게 된 것이 그의 실존임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바로 ‘삶의 목적, 신성한 사랑, 그리고 영혼의 존엄을 보는 용기’다. 그는 후에 생존한 임상 사례들을 “비극의 한가운데서 가진 낙관주의”라고 정의했다.   영혼의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더욱 요구되는 환경이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한 환자가 기도하기 전 “자신의 영혼에 의미를 불어넣는 찬미의 노래를 함께 올리고 싶다”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멀리 언덕 위에 낡고 투박한 십자가가 서 있네. 고통과 수치의 상징일세(On a hill far away stood an old rugged cross, the emblem of suffering and shame)…”   찬미를 함께 불렀던 그 순간은,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영혼의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주는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을 보내며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모든 가정 위에 영혼의 찬미와 돌봄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절망 화두 화두 영혼 마음 영혼 현대 심리치료학

2025.08.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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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검은 관광, 아픔을 마주할 용기

독일 여행, 투어 가이드는 일행을 베를린의 한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자동차 30~40대를 세울 수 있는 크지 않은 곳이었다. 왜 이곳에 우리를 안내했는지 의아했다.   독일인 현지 가이드는 한참 머뭇거린 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가 히틀러 지하 벙커입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기 직전, 히틀러는 소련군이 베를린 외곽에서 곧 여기를 덮칠 것을 알았습니다. 히틀러는 벙커에서 삶을 같이했던 여인과 아이들을 먼저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불에 태워달라고 말했고 그를 신처럼 따랐던 부하들은 유언대로 가솔린으로 불을 질러 그와 선전상, 가족을 모두 태웠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시신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가이드의 대답, “히틀러는 치아가 좋지 않아 구별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의 암울한 관광은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뉴욕 한인 언론에서 근무하던 시절, 신문사의 배려로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홀로코스트 뮤지엄으로 안내했다. (예루살렘인지 텔아비브였는지 오래돼서 분명치 않음) 컴컴한 홀,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를 썼다.이곳에는 2차 대전 때 학살당한 수백만 명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암울한 관광이었다. 눈물이 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후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찾았고 여행기를 써서 세기적인 비극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유럽에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없는 곳이 드물다.   나는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여행보다 역사여행에 관심이 많다. 캄보디아 여행 때 내전으로 죽은 자의 유골을 쌓아 놓은 작은 뮤지엄을 보았다. 왜 동족끼리 그렇게 많은 사람을 무차별로 죽였을까.   가이드의 말, “저기 머리뼈를 보세요. 어떤 것은 흰색, 다른 머리는 약간 불그스름 하지요. 출산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두개골 색깔이 다릅니다.” 어린 학생들은 아무런 감동 없이 그냥 지나치듯 듣고 있었다.   소설 ‘생스빌의 그 언덕’을 쓰기 위해 레바논을 여행했다. 1970년대 이 나라는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 구덩이를 파고, 한 줄로 세워 사살한 후 흙으로 덮었다.   7월 7일 아침, 뉴욕타임스에 실린 가이아나 존스 집단 자살 기사를 읽었다. (가이아나는 남미 상단에 있는 작은 나라다.) 인도계가 다수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가나 공화국과 이름은 비슷하나 완전히 다르다)     50년 전 짐 존스는 사교 집단을 만들어 인디애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겨 세력을 확장하다 당국에 쫓겨 가이아나 밀림으로 도망간다. 이 사교 집단에 가입하면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무조건 교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안 존스는 1000명의 신도에게 사약을 나누어 주고 자신과 함께 집단 자살한다. 가이아나 관광 당국이 우선 소수를 초청해 어두운 역사 투어를 시작했다는 기사다.   이 스토리를 읽고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검은 관광’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왜 어두운 과거를 찾아야 하는가. 과거의 아픔을 알지 못하면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열린광장 관광 용기 관광 당국 홀로코스트 뮤지엄 관광 아픔

2025.08.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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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큰 딸아이 갓 백일이 지나, 우리 가족이 이민 왔다. 어느새 5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민 생활 중, 요즘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 나 미국 사람 아니야?”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넌 아직 한국 사람이야. 18살이 되어 시민권을 받으면 미국 사람이 되는 거지.”   당시 우리 부부는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딸이 18세가 되기 전에 우리가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딸아이도 자동으로 시민권자가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당시 필자는 시민권 취득에 관심조차 없었다. 영주권으로 사업하는 데 걸림돌이 없었고, 세계 어느 곳에 다녀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결국 딸아이는 18세 되던 해에 시민권 시험을 치르고 미국 시민이 됐다. 부모의 안일함이 딸의 청소년 시절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다.   지난달 21일 한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던 김태흥 씨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는 5살에 가족과 함께 이민 왔다. 그는 텍사스 A&M 대학에서 생명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35년 이상 거주한 영주권자로, 정확한 구금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4년 전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한 혐의로 사회봉사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추방의 위기에 몰렸다.   왜 이런 위기가 김태흥 씨에게 왔을까. 이전 같았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을 텐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이민정책 시행의 희생자가 된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의문이 있지만, 이 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으로 이민자의 인권이 도마 위에 올랐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영주권자, 특히 1.5세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랬듯이 간혹 이민자는 영주권만 있으면 미국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영주권자는 엄연히 외국인이며 이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민법은 시민권자와 달리 영주권자의 범죄 기록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마약, 폭행, 절도, 성범죄, 음주운전 등은 강력한 이민법 적용 대상이며, 청소년기에 저지른 사소한 전과라도 시민권 취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영구 추방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전과도 이민국 시스템 안에서는 영구 기록되어있고, 국경을 넘는 순간 드러날 수 있다.   1.5세들은 어린 시절에 미국에 와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미국인으로 여기기 쉽다. 자녀 때문에 이민 왔다는 부모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이러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가 영주권자 신분이라면, 시민권자와 전혀 다른 법적 지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교 성적도 중요하지만, 신분에 따라 적용되는 상식적인 법률은 숙지하고 자녀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제 ‘영주권이면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18세 이상의 자녀가 있다면 시민권 취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시민권 신청 전이라면 자녀의 행동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은 몰랐다고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부모는 청소년 영주권자들이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민법은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영주권자 외국인 시민권 취득 시민권 신청 시민권 시험

2025.08.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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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인연들이 가져다준 축복

내 삶을 돌아보면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들에 의해 많이 달라졌다. 주한 미군에 파견 근무를 하는 카투사(KATUSA)로 군 생활을 한 것도 그중 하나다.     경기도 파주의 문산농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6년 12월 엄동설한에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입대 영장을 받았다. 입대와 동시에 모든 꿈과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없으면 취업 기회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련이 끝나자 운 좋게 카투사로 선발이 되었다. 그리고 배치된 곳이 모교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 1 기갑사단이었고 보충대 인사과에서 군번을 찍는 것이 임무였다. 당시 미군 군번표(U.S. Army dog tag)는 성명과 군번, 그리고 종교를 기재해 동판 기계로 찍어 만들었다.   주어진 임무는 밤늦게까지라도 마치며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직속 상관인 미군 인사과장과 친해졌다. 그에게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입대를 했고, 학교 졸업이 꿈이라는 말도 했다.     며칠 후 인사과장은 내게 중대장의 통학증을 받아 주었다.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병역 의무를 하면서 1년을 더 공부해 영광의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인사장교와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 야간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군 전우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등록금을 보태줬다. 지금도 그들의 후원에 무한 감사함을 갖고 있다. 카투사 복무는 내게 큰 행복이고 은혜였다.   1959년 10월 제대를 했다. 미군 근무 경력 덕에 미군 사령부 안전관리국의 안전사고 분석관(Safety Manager)으로 취업했다. 열심히 일했더니 우수직원으로 뽑혔고 1968년 사단장의 추천과 미8군 사령관의 최종 승인으로 뉴욕대에서 안전관리학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1970년에는 주한미군의 군수품을 운송하는 작전 차량부대로 전근, 5년간 근무했다. 그 기간 차 사고는 75%나 급감했고, 운전병 사망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우수한 근무 실적과 한미 유대 관계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 육군 2등 공로훈장을 받았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 주한 미 대사가 승인해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훈장이다.   그 후 특별 이민비자(Special Immigration Visa)를 받아 1976년 LA에 정착했다. 그리고 에스크로 회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인연으로 에스크로 회사를 설립해 42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 후배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세월 따라 인생은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각자 만남과 인연으로 인생길을 이어가고, 그 운명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카투사로 근무한 것이 내겐 행운과 축복이었다. 하지만 기회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성실하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하려 노력했고 그런 진심이 결국 사랑으로 열매로 맺은 것 같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조익현 / 한미 에스크로 대표열린광장 인연 축복 미군 인사과장 고등학교 졸업장 미군 근무

2025.08.0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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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절세는 지금, OBBBA 활용법

지난달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라는 세법에 서명을 한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었던 많은 세법들이 영구화됐다. 이 법안에는 한시적이지만, 팁 받고 일하는 분들, 야근 많은 직장인들, 은퇴한 분들, 세금이 부담되었던 중산층들에게는 추가로 반가운 소식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손님에게 받은 팁도 모두 소득으로 신고해야 했고, 거기에 세금도 붙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연소득이 15만 달러 이하(부부는 30만 달러 이하)인 사람은 1년에 팁 2만5000달러까지는 세금을 안내도 된다. 식당 서버, 네일샵 직원, 미용사, 배달기사나 택시운전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희소식이다. 팁을 많이 받으면 오히려 걱정됐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웃으며 팁을 받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이건 2028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초과근무 수당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개인은 최대 1만2500달러, 부부는 2만5000달러까지 초과근무수당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앞으로 4년 동안만 한정적이다.   65세 이상인 시니어 납세자들에게도 반가운 조항이 있다. 나이가 들면 의료비, 생활비가 모두 부담인데, OBBBA는 시니어에게 개인 6000달러, 부부 1만2000달러 공제를 추가로 해준다. 이러한 추가 공제로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Benefit)을 받는 시니어 10명 중에 9명은 사회보장연금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은퇴한 분들 10명 중에 1명꼴인, 은퇴 후에도 여전히 고소득자인 분들은 사회보장연금에 대해서도 여전히 추가로 세금을 내야만 한다. 이 조항 역시 2028년까지 한시적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나 시카고 등 주소득세와 재산세가 높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번에 법제화 된 SALT(State And Local Tax) 공제 상향이 큰 의미가 있다. 2024년까지 1만 달러로 묶였던 공제 한도가 4만 달러로 올라간 것이다. 당장 부동산세가 많이 나오는 집을 가진 분들에게는 개인소득세가 조금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2029년까지만이다. 대부분의 한시적인 조항이 2028년에 만료되지만, SALT 공제 상향은 2029년까지 1년 더 유예를 준다.   세법이라는 것이 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늘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번 OBBBA는 이름처럼 뭔가 “한 방에 크게 예쁘게 정리해보자”는 느낌이 있다. OBBBA의 모든 혜택은 영원하진 않고, 대부분 2028년 말이면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이 더욱 중요하다. 팁 받는 분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누려야 하고, 초과근무가 많은 사람들도 공제 한도를 확인하면서 초과근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퇴를 앞둔 분들이나, 이미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절세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하며,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재산세나 주소득세 공제를 못 받았던 SALT 공제 대상자들도 자신의 세금 신고 방식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세금은 ‘나중’보다 ‘지금’이다. 모르고 그냥 흘려보내면 지나가고 나서 후회가 남는다. 이번 OBBBA, 이름은 우스꽝스러워도 잘 이용하면 꽤 실속이 있을 수 있다. 이 법이 진짜 ‘Beautiful’할지는 납세자 각자의 준비에 달려 있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활용법 절세 초과근무수당 공제 추가 공제로 주소득세 공제

2025.08.0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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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보이지 않는 전선의 전사들

‘먼저 아는 자가 이긴다’는 말은 정보전의 오랜 상식이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고사성어는 여전히 군의 정보 교육 지침서로 회자되고 있다. 현대전은 더 이상 전선에서 총칼만으로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 작전이야말로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군 수뇌부 장성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2.3 계엄령 이후, 전 정권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장관, 합참의장, 참모총장 및 직할 작전사령관들이 군법이 아닌 일반 법관의 조사와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법원을 드나들고 있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2성 장군인 드론사령관이 정보전의 일환인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의혹’으로 세상에 감춰야 할 지휘관이 노출되어 사법기관에 불려다니고 있다. 정보 작전의 특성상 그 존재 자체가 기밀이어야 할 인물이 공개적으로 소환되는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21세기 군사 작전에서 정보 작전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전략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미국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동전쟁에서 미국은 정찰위성, 무인기, 전자 감청 자산 등을 활용하여 적군의 병력 위치, 지휘 체계, 통신망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공격 전에 이미 전쟁은 끝났다’는 말처럼, 미군은 적의 주요 기지를 초정밀 유도무기로 타격하여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고 적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분산시켰다. 정보 우위가 곧 전장의 주도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2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정보 작전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과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실시간으로 러시아군의 위치, 병참로, 작전 패턴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이처럼 현대전에서 정보 작전은 단순히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비대칭 전력의 핵심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은 열세에 있는 전력도 우위에 있는 상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만든다.   일컬어 정보 작전이란 단순히 ‘적의 정보를 빼오는 행위’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 무력보다 지성에 기반한 전장 대비책이다. 국가는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위험을 식별하고 대응 전략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방패이기도 하다. 적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미리 파악함으로써 불필요한 충돌을 막고,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최전선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 작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20세기에는 누가 더 많은 무기를 갖췄는지가 중요했다면, 21세기에는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대응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보는 무기보다 강하다. 우리 군은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도 앞서나가야 한다. 정보전은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끊임없이 수행되는 작전이다. 국가 안보를 지키는 최전선이자, 외부의 위협을 조기에 식별하고 차단하기 위한 눈과 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작전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정보전의 첫 번째 속성인 ‘은밀성’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정보전은 국가 기밀로 분류되며, 그 진행은 깊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공개되지 않는 정보,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 인물들, 그들은 국익을 위해 살아 있는 ‘유령’이 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많은 순간들 뒤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보 전사들의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묵묵한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든든한 초석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선 전사 직할 작전사령관들 정보 작전 군사 작전

2025.07.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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