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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광복 80년,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80년 전, 찬란한 새벽처럼 광복이 찾아왔다. 1945년 8월 15일, 민족의 운명을 짓누르던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날, 우리는 마침내 주권을 되찾았고, 이름조차 빼앗겼던 우리말과 문화, 그리고 자존의 불꽃을 되살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뿌리를 이어받아 건국의 기초를 다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남긴 피와 눈물, 신념 위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돌이켜보면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의 기쁨은 잠깐, 이는 다시 끝이 아닌 고난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정부 수립의 고난, 가난과 폐허 위에 찌든 민생, 그래도 오뚝이처럼 재기의 역사를 일구어냈지만 또 다른 피의 시련이 닥쳐 올 줄 누가 알았으랴. 바로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북한 인민군은 육중한 탱크로 짓밟고 포화로 서울은 불타고, 전쟁이 발발해 한반도는 폐허로 변하여 나라의 운명은 다시 풍전등화와 같았다.   위기의 순간, 나라를 지킨 건 총칼을 든 용기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나보다 조국을 먼저 선택한 참전용사들이었다. 그들의 피로 나라가 지켜졌고, 그들의 희생 위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고지의 능선을 한 치씩 기어오르며 끝내 진지를 사수했던 병사들, 거센 포화 속에서도 전우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학도병들, 그들의 이름 없는 용기와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사라진 용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의 영웅들이 돌아오지 못한 그 고향 땅에서, 자녀는 배움의 꿈을 꾸었고, 부모는 잘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을 전개했다. 국가는 다시 산업을 일으켰으며, 지금 우리는 당당히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그 눈부신 한강의 기적은 바로 국민의 희생 위에 지어진 역사다.   특히 우리 해외동포들은 언제나 조국의 외곽에서 조국을 지켜온 또 하나의 영웅들이다.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조국에 보내온 성금,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노력들, 그리고 2세, 3세 자녀들에게 한글과 문화를 전하며 민족의 뿌리를 지킨 해외 한인들의 수고는 결코 잊히지 않을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좁은 단칸 셋방에서 창업한 기업이 세계 시장을 누비고, 맨주먹으로 시작한 농촌이 IT강국의 뿌리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양극화의 벽을 넘고,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자유민주주의, 너와 내가 잘 사는 번영, 꿈에도 소원인 통일, 그리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광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의 영광스런 책임이다.   우리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기보다는 우리가 지켜낸 자유, 우리가 세운 나라를 어떻게 미래로 이끌 것인가를 다짐해야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닌 것처럼 광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기다렸다고 오지 않았으며, 지금의 번영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80년 전, 우리는 세계의 가장 아프고 슬픈 나라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희망의 나라가 되었다.   광복의 정신은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이다. 자유 대한을 사랑하자. 대한민국이 하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소문난 나라, 고로  우리의 미래는 또 한 번의 5000년 역사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광복 자유 자유민주주의 너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정부

2025.08.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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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텃세

요즘 소일거리가 하나 더 생겨 외출이 잦아졌다. 두 군데 시니어 센터에 가서 마작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윌킨슨 센터에서 마작을 배웠는데, 셔먼옥스에 더 큰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에도 간다.   마작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텃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나 텃세가 있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주택단지나 아파트는 물론, 학교, 직장, 교회, 하물며 동우회나 친목단체에도 텃세는 있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자릿값을 챙기는 것이다. 이사를 가면 이웃에 떡을 돌리고, 단체에 새로 들어가면 선배들(?)에게 술이나 밥을 사거나 선물을 돌리는 일 등이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아니겠는가.   시니어 센터의 마작교실에도 텃세는 있다. 윌킨슨 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는 얼굴들끼리 짝을 맞추어 앉으니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한자리 남은 테이블에 마작교실의 리더인 ‘메리’가 나를 끼워 넣으려 하니, ‘에이드리언’이라는 노인이 자기는 40년 마작을 했는데 어떻게 초보자와 게임을 하겠느냐는 투의 말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니 결국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 하지 않았나, 얼떨결에 첫 판에 ‘마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 큰 실수 없이 넘어갔다. 그 다음주, 원피스를 입고 온 에이드리언에게 옷이 어울린다고, 예쁘다고 말해 주었더니 좋아한다. 립서비스로 자릿값을 지불했다. 그날 이후 매주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마작을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로컬룰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원래는 현지 상황에 맞는 규칙을 의미하는 용어지만, 좀 쉽고 편하게 골프를 즐기기 위해 규칙을 바꾸어 적용하는 것이다.   바둑이나 화투도 마찬가지. ‘낙장불입,’ ‘일수불퇴’가 원칙이지만, 작은 실수는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작도 같다. 규칙이 있지만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가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정하기 나름이다.   윌킨슨 센터에서는 규칙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하는데, 셔먼옥스에는 꾼들이 많고,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돈을 걸고 하기 때문에 좀 엄하게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몇 사람이 유독 내게 룰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을 경험한다. 텃세다. 신참이 별수 있나 아니꼽지만 견뎌야지.   텃세에 맞서는 방법에는 죽기 살기로 맞짱을 뜨는 것과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있다. 힘을 믿고 맞짱을 뜨면 이기더라도 피를 보아야 한다.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단속도 결국은 텃세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미치는 부/긍정적인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선동하며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철새도 환경에 적응하고 눌러앉으면 텃새가 된다. 참고 견디면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나.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텃세 마작 이야기 윌킨슨 센터 시니어 센터

2025.08.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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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버텨줘서 고마운 아이들

아이티에 왔다. 몹시 안타깝고 그리웠던 아이들을 만나려고 뉴저지에서 마이애미로 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와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 북부 도시 캡 헤이션에 도착했다. 갱들의 피해를 보지 않아 조용한 캡 헤이션에서 다섯 시간을 기다려 작은 비행기를 타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는데, 20분이 걸렸다.   이번 방문은 10개월 만이다. 작년 9월 초에 다녀간 후, 11월부터 미국 항공편의 운항이 중단되었고, 이후 계속 연장되어 지금도 포르토프랭스는 국제선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다. 그나마 국내선이 지난 6월부터 정부가 보험을 보증하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했지만, 국제선은 내년까지 재개되지 못할 것으로 대부분 예상한다.   지금 포르토프랭스는 전기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갱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애꿎은 송전탑 여섯 개를 절단해 넘어뜨리면서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우리가 머무는 센터도 제한적으로만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일반 서민들은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고, 낮에는 전기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수도 전체가 완전히 단전 상태다.   이런 사정 속에서, 오랜만에 온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차례대로 센터로 불러서 만났다. 전기도 전혀 들어오지 않고, 갱들은 여전히 밤낮없이 총격전을 벌이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고아원은 갱 점령지역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 긴장하며 지내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모처럼 푸짐한 도시락도 함께 먹으며 격려했다.   아이들은 표현이 없지만, 원장들은 어려운 걸음을 해준 우리에게 뜨거운 포옹으로 감사를 전하며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어찌 지냈느냐는 안부도 부질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주 울컥한다. “버텨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눈빛으로 나누며, 우리는 씩씩한 척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길고 깊은 감사 기도도 함께 드렸다.   아예 문을 닫은 학교가 수업을 하는 학교보다 훨씬 많은 상황인데, 문을 연 학교도 수업을 제대로 못 해 방학을 늦추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 국가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이번 주에 치러졌고, 고아원 아이들도 여러 명 응시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 입학시험을 볼 자격을 준다. 우리는 지금 4명의 대학생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9월 학기에 최소한 두 명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 기도 중이다.   갱단의 폭력으로 나라의 존립이 흔들리고,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우리는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좀 더 지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후원받은 식량을 받아가려면 적지 않은 통행료를 갱단에 내야 하고, 숨 한 번 크게 쉬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고아들의 삶이 처참해질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본다. 시편 140편 12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이 고난받는 사람을 변호해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분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아이티에서 고아들을 품고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고난받는 사람 편에 계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참혹한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 /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열린광장 국제선 비행기 고아원 아이들 가운데 고등학교

2025.08.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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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풋살과 블루박스

유럽축구가 ‘힘’이라면, 남미축구는 ‘개인기’다. 브라질은 남미축구를 대표하는 나라다. 좁은 공간에서 눈부신 개인기를 펼치는 브라질 선수들을 보면 마술을 보는 듯하다. 축구의 황제로 불리는 펠레를 비롯해 호나우지뉴, 네이마르까지 이들이 모두 풋살(Futsal)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축구가 넓은 운동장에서 11명이 펼치는 경기라면, 풋살은 그보다 훨씬 좁은 공간에서 5명이 뛰는 경기다. 보통 축구보다 6배나 빠르다고 알려진 풋살에서, 선수들은 공을 가진 시간이 짧고, 결정은 훨씬 빨라야 한다. 그만큼 선수 한 명 한 명이 공을 접할 기회도 많고, 좁은 공간에서 정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인기와 판단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풋살이라는 ‘작은 공간의 집중 훈련장’이 브라질 축구의 창의성과 기술을 낳은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항공 산업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1929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에드윈 링크가 개발한 ‘링크 트레이너(Link Trainer)’, 일명 블루박스는 외부가 파란색으로 칠해져 그렇게 불렸다. 블루박스는 실제 비행기 없이도 조종사를 훈련시킬 수 있는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였다. 특히 이륙과 착륙처럼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구간을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루박스는 혁신적이었다.     실전 훈련이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조종사는 수십 번, 수백 번의 위기 대응을 익혔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장치는, 미군이 300여 대를 도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미공군 전력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실제로 50만 명 이상의 조종사가 블루박스를 통해 실전 대응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실력은 실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오히려 제한된 공간에서, 반복된 훈련과 실패를 통해 탄생한다. 브라질 축구의 풋살과 항공 산업의 블루박스는 작고 안전한 환경에서 몰입도 높은 훈련이 어떻게 실전에서의 창의성과 침착함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들은 신입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이런 질문을 가진다. “신입 직원에게 전 분야를 넓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많은 조직이 전인적 교육, 즉 모든 것을 균형 있게 가르치려 한다. 실제 직원들도 모든 부분을 두루두루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언제나 ‘특정한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깊이 있는 반복 훈련에서 길러진다.   최근의 유능한 기업들은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들은 신입 직원을 처음부터 여러 부서로 돌리는 대신, 하나의 실무 영역에 집중 배치하고, 실전과 유사한 업무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게 한다. 풋살처럼 좁은 공간 안에서 반복된 터치와 판단을 익히게 하고, 블루박스처럼 실전에서 맞닥뜨릴 위기를 미리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전인적인 교육은 결국, 어느 하나에 깊게 빠져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분야가 달라도 한 분야에서 도가 통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도가 통한 사람과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손헌수 / 변호사, 공인회계사열린광장 블루박스 풋살 일명 블루박스 모두 풋살 브라질 축구

2025.08.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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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절망의 시대 화두, 영혼 돌봄

오늘의 필요가 채워지면 그것으로 최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시대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와 화재는 일상적인 절망과 슬픔을 낳고 있다. 서머캠프에 참여했던 수십 명의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급류에 휩쓸려 희생당한 비극적인 소식은 우리 모두를 숨 막히는 애통함 속에 빠뜨렸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와 비슷한 실망감들이 표출되고 있다.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는 앞으로 30년 안에 재정 고갈을 맞거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놓여 있다. 현재 30대 이후 세대들이 미래 복지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의학계 또한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에는 공감하면서도, 조만간 수십만 명의 의료 인력이 대체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인류는 당장의 만족을 추구하며 영혼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미루는 듯 보인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중환자조차 몸과 마음, 영혼을 함께 돌보는 통합적인 치료가 중요하다고 여기건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오늘의 필요’라는 환경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각자의 영혼을 돌보는 최종 책임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실과 아픔, 현대 사회의 상상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도 우리는 우선 나의 영혼을 돌봐야 한다. 삶의 여정이 느리고 순탄하다면 영혼을 돌볼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귀를 얻으면 남모르는 슬픔이 따르고, 명예를 얻으면 말 못할 아픔이 있다. 높은 연봉의 직장에서도 가정이 무너지기도 하고, 자녀가 성공해 이제 걱정이 없겠다 싶은 순간 예기치 못한 질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현대 심리치료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빅터 프랭클은 3년간의 유대인 수용소 생활에서 얻은 실존적 경험을 통해 기존의 임상 지식을 뛰어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1500명이 줄을 서서 첫 번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가운데 10% 가량은 오른쪽에 세우고 나머지는 왼쪽에 세워졌다. 그런데 왼쪽 줄에 있던 전원이 개스실로 보내진 것을 알게 된 것이 그의 실존임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바로 ‘삶의 목적, 신성한 사랑, 그리고 영혼의 존엄을 보는 용기’다. 그는 후에 생존한 임상 사례들을 “비극의 한가운데서 가진 낙관주의”라고 정의했다.   영혼의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더욱 요구되는 환경이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한 환자가 기도하기 전 “자신의 영혼에 의미를 불어넣는 찬미의 노래를 함께 올리고 싶다”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멀리 언덕 위에 낡고 투박한 십자가가 서 있네. 고통과 수치의 상징일세(On a hill far away stood an old rugged cross, the emblem of suffering and shame)…”   찬미를 함께 불렀던 그 순간은,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영혼의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주는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을 보내며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모든 가정 위에 영혼의 찬미와 돌봄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절망 화두 화두 영혼 마음 영혼 현대 심리치료학

2025.08.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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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검은 관광, 아픔을 마주할 용기

독일 여행, 투어 가이드는 일행을 베를린의 한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자동차 30~40대를 세울 수 있는 크지 않은 곳이었다. 왜 이곳에 우리를 안내했는지 의아했다.   독일인 현지 가이드는 한참 머뭇거린 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가 히틀러 지하 벙커입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기 직전, 히틀러는 소련군이 베를린 외곽에서 곧 여기를 덮칠 것을 알았습니다. 히틀러는 벙커에서 삶을 같이했던 여인과 아이들을 먼저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불에 태워달라고 말했고 그를 신처럼 따랐던 부하들은 유언대로 가솔린으로 불을 질러 그와 선전상, 가족을 모두 태웠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시신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가이드의 대답, “히틀러는 치아가 좋지 않아 구별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의 암울한 관광은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뉴욕 한인 언론에서 근무하던 시절, 신문사의 배려로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을 홀로코스트 뮤지엄으로 안내했다. (예루살렘인지 텔아비브였는지 오래돼서 분명치 않음) 컴컴한 홀,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를 썼다.이곳에는 2차 대전 때 학살당한 수백만 명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암울한 관광이었다. 눈물이 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후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찾았고 여행기를 써서 세기적인 비극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유럽에 홀로코스트 뮤지엄이 없는 곳이 드물다.   나는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여행보다 역사여행에 관심이 많다. 캄보디아 여행 때 내전으로 죽은 자의 유골을 쌓아 놓은 작은 뮤지엄을 보았다. 왜 동족끼리 그렇게 많은 사람을 무차별로 죽였을까.   가이드의 말, “저기 머리뼈를 보세요. 어떤 것은 흰색, 다른 머리는 약간 불그스름 하지요. 출산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두개골 색깔이 다릅니다.” 어린 학생들은 아무런 감동 없이 그냥 지나치듯 듣고 있었다.   소설 ‘생스빌의 그 언덕’을 쓰기 위해 레바논을 여행했다. 1970년대 이 나라는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 구덩이를 파고, 한 줄로 세워 사살한 후 흙으로 덮었다.   7월 7일 아침, 뉴욕타임스에 실린 가이아나 존스 집단 자살 기사를 읽었다. (가이아나는 남미 상단에 있는 작은 나라다.) 인도계가 다수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가나 공화국과 이름은 비슷하나 완전히 다르다)     50년 전 짐 존스는 사교 집단을 만들어 인디애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겨 세력을 확장하다 당국에 쫓겨 가이아나 밀림으로 도망간다. 이 사교 집단에 가입하면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무조건 교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안 존스는 1000명의 신도에게 사약을 나누어 주고 자신과 함께 집단 자살한다. 가이아나 관광 당국이 우선 소수를 초청해 어두운 역사 투어를 시작했다는 기사다.   이 스토리를 읽고 이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검은 관광’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왜 어두운 과거를 찾아야 하는가. 과거의 아픔을 알지 못하면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열린광장 관광 용기 관광 당국 홀로코스트 뮤지엄 관광 아픔

2025.08.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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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큰 딸아이 갓 백일이 지나, 우리 가족이 이민 왔다. 어느새 5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민 생활 중, 요즘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 나 미국 사람 아니야?”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넌 아직 한국 사람이야. 18살이 되어 시민권을 받으면 미국 사람이 되는 거지.”   당시 우리 부부는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딸이 18세가 되기 전에 우리가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딸아이도 자동으로 시민권자가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당시 필자는 시민권 취득에 관심조차 없었다. 영주권으로 사업하는 데 걸림돌이 없었고, 세계 어느 곳에 다녀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결국 딸아이는 18세 되던 해에 시민권 시험을 치르고 미국 시민이 됐다. 부모의 안일함이 딸의 청소년 시절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다.   지난달 21일 한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던 김태흥 씨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는 5살에 가족과 함께 이민 왔다. 그는 텍사스 A&M 대학에서 생명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35년 이상 거주한 영주권자로, 정확한 구금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4년 전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한 혐의로 사회봉사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추방의 위기에 몰렸다.   왜 이런 위기가 김태흥 씨에게 왔을까. 이전 같았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을 텐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이민정책 시행의 희생자가 된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의문이 있지만, 이 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으로 이민자의 인권이 도마 위에 올랐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영주권자, 특히 1.5세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랬듯이 간혹 이민자는 영주권만 있으면 미국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영주권자는 엄연히 외국인이며 이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민법은 시민권자와 달리 영주권자의 범죄 기록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마약, 폭행, 절도, 성범죄, 음주운전 등은 강력한 이민법 적용 대상이며, 청소년기에 저지른 사소한 전과라도 시민권 취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영구 추방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전과도 이민국 시스템 안에서는 영구 기록되어있고, 국경을 넘는 순간 드러날 수 있다.   1.5세들은 어린 시절에 미국에 와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미국인으로 여기기 쉽다. 자녀 때문에 이민 왔다는 부모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이러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가 영주권자 신분이라면, 시민권자와 전혀 다른 법적 지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교 성적도 중요하지만, 신분에 따라 적용되는 상식적인 법률은 숙지하고 자녀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제 ‘영주권이면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18세 이상의 자녀가 있다면 시민권 취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시민권 신청 전이라면 자녀의 행동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은 몰랐다고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부모는 청소년 영주권자들이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민법은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영주권자 외국인 시민권 취득 시민권 신청 시민권 시험

2025.08.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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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인연들이 가져다준 축복

내 삶을 돌아보면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들에 의해 많이 달라졌다. 주한 미군에 파견 근무를 하는 카투사(KATUSA)로 군 생활을 한 것도 그중 하나다.     경기도 파주의 문산농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6년 12월 엄동설한에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입대 영장을 받았다. 입대와 동시에 모든 꿈과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없으면 취업 기회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련이 끝나자 운 좋게 카투사로 선발이 되었다. 그리고 배치된 곳이 모교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 1 기갑사단이었고 보충대 인사과에서 군번을 찍는 것이 임무였다. 당시 미군 군번표(U.S. Army dog tag)는 성명과 군번, 그리고 종교를 기재해 동판 기계로 찍어 만들었다.   주어진 임무는 밤늦게까지라도 마치며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직속 상관인 미군 인사과장과 친해졌다. 그에게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입대를 했고, 학교 졸업이 꿈이라는 말도 했다.     며칠 후 인사과장은 내게 중대장의 통학증을 받아 주었다.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병역 의무를 하면서 1년을 더 공부해 영광의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인사장교와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 야간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군 전우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등록금을 보태줬다. 지금도 그들의 후원에 무한 감사함을 갖고 있다. 카투사 복무는 내게 큰 행복이고 은혜였다.   1959년 10월 제대를 했다. 미군 근무 경력 덕에 미군 사령부 안전관리국의 안전사고 분석관(Safety Manager)으로 취업했다. 열심히 일했더니 우수직원으로 뽑혔고 1968년 사단장의 추천과 미8군 사령관의 최종 승인으로 뉴욕대에서 안전관리학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1970년에는 주한미군의 군수품을 운송하는 작전 차량부대로 전근, 5년간 근무했다. 그 기간 차 사고는 75%나 급감했고, 운전병 사망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우수한 근무 실적과 한미 유대 관계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 육군 2등 공로훈장을 받았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 주한 미 대사가 승인해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훈장이다.   그 후 특별 이민비자(Special Immigration Visa)를 받아 1976년 LA에 정착했다. 그리고 에스크로 회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인연으로 에스크로 회사를 설립해 42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 후배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세월 따라 인생은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각자 만남과 인연으로 인생길을 이어가고, 그 운명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카투사로 근무한 것이 내겐 행운과 축복이었다. 하지만 기회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성실하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하려 노력했고 그런 진심이 결국 사랑으로 열매로 맺은 것 같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조익현 / 한미 에스크로 대표열린광장 인연 축복 미군 인사과장 고등학교 졸업장 미군 근무

2025.08.0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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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절세는 지금, OBBBA 활용법

지난달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라는 세법에 서명을 한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었던 많은 세법들이 영구화됐다. 이 법안에는 한시적이지만, 팁 받고 일하는 분들, 야근 많은 직장인들, 은퇴한 분들, 세금이 부담되었던 중산층들에게는 추가로 반가운 소식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손님에게 받은 팁도 모두 소득으로 신고해야 했고, 거기에 세금도 붙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연소득이 15만 달러 이하(부부는 30만 달러 이하)인 사람은 1년에 팁 2만5000달러까지는 세금을 안내도 된다. 식당 서버, 네일샵 직원, 미용사, 배달기사나 택시운전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희소식이다. 팁을 많이 받으면 오히려 걱정됐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웃으며 팁을 받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이건 2028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초과근무 수당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개인은 최대 1만2500달러, 부부는 2만5000달러까지 초과근무수당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앞으로 4년 동안만 한정적이다.   65세 이상인 시니어 납세자들에게도 반가운 조항이 있다. 나이가 들면 의료비, 생활비가 모두 부담인데, OBBBA는 시니어에게 개인 6000달러, 부부 1만2000달러 공제를 추가로 해준다. 이러한 추가 공제로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Benefit)을 받는 시니어 10명 중에 9명은 사회보장연금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은퇴한 분들 10명 중에 1명꼴인, 은퇴 후에도 여전히 고소득자인 분들은 사회보장연금에 대해서도 여전히 추가로 세금을 내야만 한다. 이 조항 역시 2028년까지 한시적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나 시카고 등 주소득세와 재산세가 높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번에 법제화 된 SALT(State And Local Tax) 공제 상향이 큰 의미가 있다. 2024년까지 1만 달러로 묶였던 공제 한도가 4만 달러로 올라간 것이다. 당장 부동산세가 많이 나오는 집을 가진 분들에게는 개인소득세가 조금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2029년까지만이다. 대부분의 한시적인 조항이 2028년에 만료되지만, SALT 공제 상향은 2029년까지 1년 더 유예를 준다.   세법이라는 것이 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늘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번 OBBBA는 이름처럼 뭔가 “한 방에 크게 예쁘게 정리해보자”는 느낌이 있다. OBBBA의 모든 혜택은 영원하진 않고, 대부분 2028년 말이면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이 더욱 중요하다. 팁 받는 분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누려야 하고, 초과근무가 많은 사람들도 공제 한도를 확인하면서 초과근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퇴를 앞둔 분들이나, 이미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절세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하며,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재산세나 주소득세 공제를 못 받았던 SALT 공제 대상자들도 자신의 세금 신고 방식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세금은 ‘나중’보다 ‘지금’이다. 모르고 그냥 흘려보내면 지나가고 나서 후회가 남는다. 이번 OBBBA, 이름은 우스꽝스러워도 잘 이용하면 꽤 실속이 있을 수 있다. 이 법이 진짜 ‘Beautiful’할지는 납세자 각자의 준비에 달려 있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활용법 절세 초과근무수당 공제 추가 공제로 주소득세 공제

2025.08.0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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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보이지 않는 전선의 전사들

‘먼저 아는 자가 이긴다’는 말은 정보전의 오랜 상식이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고사성어는 여전히 군의 정보 교육 지침서로 회자되고 있다. 현대전은 더 이상 전선에서 총칼만으로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 작전이야말로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군 수뇌부 장성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2.3 계엄령 이후, 전 정권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장관, 합참의장, 참모총장 및 직할 작전사령관들이 군법이 아닌 일반 법관의 조사와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법원을 드나들고 있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2성 장군인 드론사령관이 정보전의 일환인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의혹’으로 세상에 감춰야 할 지휘관이 노출되어 사법기관에 불려다니고 있다. 정보 작전의 특성상 그 존재 자체가 기밀이어야 할 인물이 공개적으로 소환되는 현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21세기 군사 작전에서 정보 작전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전략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미국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동전쟁에서 미국은 정찰위성, 무인기, 전자 감청 자산 등을 활용하여 적군의 병력 위치, 지휘 체계, 통신망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공격 전에 이미 전쟁은 끝났다’는 말처럼, 미군은 적의 주요 기지를 초정밀 유도무기로 타격하여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고 적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분산시켰다. 정보 우위가 곧 전장의 주도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2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정보 작전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과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실시간으로 러시아군의 위치, 병참로, 작전 패턴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이처럼 현대전에서 정보 작전은 단순히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비대칭 전력의 핵심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은 열세에 있는 전력도 우위에 있는 상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만든다.   일컬어 정보 작전이란 단순히 ‘적의 정보를 빼오는 행위’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 무력보다 지성에 기반한 전장 대비책이다. 국가는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위험을 식별하고 대응 전략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방패이기도 하다. 적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미리 파악함으로써 불필요한 충돌을 막고,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최전선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 작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20세기에는 누가 더 많은 무기를 갖췄는지가 중요했다면, 21세기에는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대응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보는 무기보다 강하다. 우리 군은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도 앞서나가야 한다. 정보전은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끊임없이 수행되는 작전이다. 국가 안보를 지키는 최전선이자, 외부의 위협을 조기에 식별하고 차단하기 위한 눈과 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작전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정보전의 첫 번째 속성인 ‘은밀성’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정보전은 국가 기밀로 분류되며, 그 진행은 깊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공개되지 않는 정보,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 인물들, 그들은 국익을 위해 살아 있는 ‘유령’이 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많은 순간들 뒤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보 전사들의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묵묵한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든든한 초석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선 전사 직할 작전사령관들 정보 작전 군사 작전

2025.07.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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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AI 권력, 미래를 지배한다

2022년 말 챗GPT의 등장은 세계를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불과 2년 만에 챗GPT는 세계 6위 웹사이트로 성장했고, 연매출은 100억 달러에 달했다. 현재 미국 직장인의 43%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즉 데이터 센터의 중요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데이터 센터는 수많은 특수 컴퓨터 칩이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 시설로, 특히 AI전용 센터는 기존 시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형화되고 막대한 전력과 냉각수를 쓰고 있다.  현재 AI 데이터 센터를 보유한 국가는 전 세계 32개국(약 16%)에 불과하다. 이 중 미국과 중국이 전체 설비의 절반 이상을 운영하고 있어 AI 주도권이 소수 국가에 집중된 양상이 뚜렷하다.     오픈AI는 텍사스에 600억 달러를 투자해 자체 천연가스 채굴 시스템까지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건설 중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시설이 완공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팅 허브가 될 전망이다.     아마존도 인디애나주의 농지에 축구장보다 큰 데이터 센터 7개를 지었고, 추가로 30개를 더 짓는 ‘라이너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놀라운 점은 이 엄청난 시설이 AI스타트업 앤트로픽(Antropic)만을 위한 전용 인프라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동수서산’ 전략(경제가 발달한 동부에서 데이터를 생산하고 서부에서 처리 및 저장)에 따라 신장, 칭하이, 간쑤 등 서부 내륙 지역에 AI 데이터 센터를 집중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이후, 중국 전역에서 250개 이상의 센터가 완공되었거나 건설 중이다. 이처럼 가파른 확장 속도는 미국의 우위를 위협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해외 데이터 센터 확장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미국 기업은 63개, 중국 기업은 19개의 해외 센터를 짓고 있다. 이는 사용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데이터를 처리해 속도를 높이고, 동시에 각국의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 규제를 충족하려는 전략적 조치다.   이처럼 세계는 AI 인프라를 자력으로 구축한 국가와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가로 나뉘고 있다. 그 격차의 핵심 요인은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수급 문제다. 첨단AI 모델을 설계하고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3인치 크기의 고성능 마이크로 칩이 수천~수십만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 국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첨단 GPU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 개발도상국의 AI 인프라 구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AI 주권 확보를 위해 토지와 에너지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공공 자금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목표는 자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 자국민과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주적 인공지능(sovereign AI)’ 구축이다.     AI는 이미 산업과 일상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통제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그 속도는 예상보다 너무 빠르다. 이제 AI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미래 패권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AI 권력을 확보한 국가와 기업이 세계 질서의 숨은 지배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을 향한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 AI 패권의 향방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레지나 정 / LA 독자열린광장 권력 미래 데이터 센터 해외 데이터 ai전용 센터

2025.07.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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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사후 세계에 대한 사색

얼마 전 사랑하는 이를 지병으로 떠나보내며, 자연스레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한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됐다. 과연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가져왔다. 대체로 세 가지 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허무론적 시각이다. 둘째, 사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삶이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셋째, 사후 세계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인류의 역사 속에는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영혼이 머물 궁전으로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했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영혼 불멸설을 중요한 사상으로 여겼다. 또한, 수많은 종교에서 영생과 관련된 개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기독교는 천국, 지옥, 그리고 일부 교단의 연옥 개념과 부활 신앙을 통해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구현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세상’ 또는 ‘영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그중에서도 18세기의 이마누엘 스베덴보리 (1688~1772) 박사와 현시대의 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천재적인 스베덴보리는 11세에 유서 깊은 웁살라 대학교에 입학하여 22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철학, 자연과학, 기계공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120여 권의 저서를 남긴 학자다. 50대 후반부터 약 30년간 ‘영의 세계’를 오가며 수많은 경험을 했고, 심지어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영계에서의 체험들을 약 30권의 책으로 기록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하버드 대학교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이븐 알렉산더 박사의 사례가 주목받는다. 현재 72세인 그는 2009년 희귀한 뇌 손상으로 인해 7일간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국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며, 『천국의 증명: 한 신경외과 의사의 사후 경험담』(Proof of Heaven: A Neurosurgeon’s Journey into Afterlife)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롯한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으며, 2012년 10월에는 『뉴스위크』지가 ‘천국은 실재한다(Heaven is Real)’는 제목으로 그의 이야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스베덴보리와 알렉산더 박사 모두 최고 수준의 지성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저세상’ 이야기는 매우 심오하고 수준 높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인 펄시 콜 목사의 이야기나 책을 보면 표현이 물질적이고 상당히 저급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결국 이들의 저세상 경험담이란 것은 그들 자신의 영(spirit)의 ‘영적 순례’에 불과한 것일까?   이 모든 논의를 종합하며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세상, 혹은 영의 세계는 초월적인 세계라는 점이다. 그곳은 시간 대신 영원(eternity), 공간 대신 무한(infinity)의 세계이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다. 따라서 현재 시공간에 갇혀 사는 우리로서는 ‘그곳’에 대하여 ‘잘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김택규 / 전 한국 감신대 객원교수열린광장 사후 세계 사후 세계 사후 경험담 알렉산더 박사

2025.07.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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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중 갈등, 우리의 생존 전략은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토대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역사 인식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한반도를 향한 침략을 끊임없이 자행해왔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위만조선 침략을 시작으로, 240년 수·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축출한 사례 등 수많은 침탈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들은 우리 민족을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東夷)라 칭하며 멸시하기도 했다. 나아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치지국(脣齒之國)이라며 한국을 자신들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의 ‘엉큼한 속내’는 근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942년 2월, 중경에 임시정부를 두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승인을 미국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코델 헐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한국과 만주를 중국이 다시 손에 넣어 종주국 행세를 하려는 야욕을 간파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3년 11월 24일 카이로 회담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이러한 야심에 경고를 보냈다. 그는 중국이 전후 한국을 다시 손에 넣으려 할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 신탁통치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자, 중국은 소련과 함께 김일성을 사주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일으켰다. 한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반격으로 통일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중국은 80만 대군을 앞세운 인해전술로 통일의 호기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 사건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결코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군사적 개입을 서슴지 않는 패권적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이러한 중국의 행태는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 조지프 슘페터가 ‘본능적 자기 확장 논리’라는 논문에서 지적한 바와 일치한다. 그는 “독재국가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갖추고 나면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고압적이고 패권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공산당 건설’이라는 100년 목표는 이러한 슘페터 교수의 통찰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 성장을 넘어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한미 동맹 강화와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단언컨대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현재의 행태로나 폭력으로 빼앗는 약탈적 패권국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해 기여하며, 때로는 동맹국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베푸는 시혜적 패권국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미중 갈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약탈적 패권국 역사 인식

2025.07.2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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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못 말리는 엄마들과 우리 2세들

나 자신은 참 한심한 엄마다. 주위 엄마들을 보면 일등 엄마의 표창장을 주고 싶은 분들이 많다. 물론 그들이 무슨 보상을 바라거나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단지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 그 딸들 몫이니 안쓰러워서 내 몸이 부서지는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엄마 A는 딸이 임신하자마자 딸 집으로 출퇴근하며 산전 간호를 시작하더니 산후조리까지 당연히 맡아서 하다가 지금 손자들이 10살, 6살인데 아직도 여기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 밤 8시에 모든 일과를 끝내고 퇴근한다. 식사 준비, 청소, 빨래는 물론 심리상담도 주요 업무의 하나다.   엄마 B는 딸이 세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산후조리 기간을 계속 늘리더니 이제는 아예 5명분의 일주일 분량의 음식을 준비해 배달서비스까지 한다.   엄마 C는 두 자녀가 모두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주기적으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순회업무를 본다. 음식을 배달받아 먹는 그들의 한결같은 코멘트는 “할머니 음식 최고!” 이제 식당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언젠가 남편에게 이 지인들 이야기를 하면서 이 엄마들 모두 일등 엄마들이야! 하자 “당신은 한 12등 정도 되나?” 하며 약을 올린다. 곰곰이 듣고 있으니, 부화가 올라온다. “3등도 아니고 12등?” 하며 독기 찬 눈으로 째려보니 남편이 꽁지를 내린다.   취중 진담처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12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다. 그렇다. 난 은근히 직장인임을 핑계로 시간이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그래도 첫 손자가 태어났을 때 3주 휴가를 받아 생전 처음 입주 산후조리라는 것을 해보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음식 준비, 청소, 빨래에 정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나의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가 재발하고 눈 망막 수술도 하게 되었다.   그 산후조리 마지막 날 딸아이가 건네는 ‘Thank you card’에 적은 진심 어린 감사의 말에 내 심장은 녹아내렸다.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딸아이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결국 아이를 3개월째부터 육아원에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손자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아주 힘들게 딸아이를 설득해 브루클린에서 롱아일랜드로 이사 오게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차로 25분 거리에 살고 있는 딸네와는 자주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항상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딸아이는 “항상 우리는 quality time을 중요시한다”라며 나를 위로한다.   나는 음식 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 놓은 음식은 먹으면 끝이다.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은 생산적이고 결과를 오래 간직할 수가 있다. 주위 사람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난 요리를 못 한다. 부엌을 싫어한다’고 미리 떠벌리지만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어느새 부엌에서 허둥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난 음식을 평가 절하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만든이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음미하면서 먹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 딸아이도 음식 만들기에 전혀 관심이 없고 만들기 쉬운 음식으로 영양가를 고려해서 식사 문제를 해결한다. 손자들이 8살, 5살인데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고 파스타, 피자만 좋아한다. 이 모두 내 탓이 아닌가 미안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우리 2세들을 보면 자녀 교육방식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우리 세대의 ‘못 말리는 엄마들’에 비하여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르치는 진정한 교육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정명숙 / 수필가열린광장 엄마 주위 엄마들 일등 엄마 엄마들 모두

2025.07.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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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재소자가 몰래 건넨 쪽지

교회에서 어떤 성도와 마주칠 때, 그분이 제 눈길을 피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득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반면, 어떤 분은 말 없이 마주 보기만 해도 따뜻한 교감을 느끼게 합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손을 잡은 듯, 포옹하지 않아도 마음이 포개진 듯한 순간, 그 짧은 인상이 가슴에 오래 남아 기분 좋게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교도소 사역에는 여러 규칙이 있습니다. 재소자와의 신체 접촉은 금지되어 있지만, 악수 정도는 교도관들이 묵인해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어떤 메모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연방교도소의 여자 재소자들과 재활교육 수업을 마친 뒤였습니다. 재소자들이 교도관의 인솔 하에 줄지어 퇴장할 때, 저도 일어서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한 재소자가 “Thank you, Chaplain Peter!”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저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아주 작은 종이쪽지를 제 손에 쥐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받으면 안 되는데...’ 아차 싶은 찰나였고, 재소자는 줄을 따라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던 교도관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와 그 교도관 둘뿐.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 교도관이 웃으며 “Chaplain Peter” 하고 말을 겁니다. 저도 “아무개 교도관님” 하고 답하면서, 종이쪽지를 펴보지도 않은 채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녀가 준 쪽지인데,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교도관은 쪽지를 읽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궁금했지만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교도관은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그녀를 아십니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재소자입니다”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그녀가 ‘I loves you’라고 썼네요.”   의미 없는 웃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적으로 그 교도관의 재량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피터 목사님, 아시죠. 모든 사람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저도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조심해서 잘 지내세요.(Chaplain Peter, you know, everybody needs love. I love you, too. Be careful and safe.)”   그렇게 말하며 교도소 사무실로 가서 제가 맡겨둔 신분증을 가져다 주었고, 저는 교도소에서 받은 명찰을 반납하며 조용히 그날의 ‘4막 4장’은 끝났습니다.   맞습니다. 죄인도, 죄 없는 척 하는 사람도, 경찰도, 대통령도, 독재자도, 목사도, 재벌도, 정치인도, 군인도, 농부도, 어부도, 경제인도, 교수도, 학생도, 아들도 딸도, 친구도, 손자 손녀도, 아내도 남편도, 그리고 의료인도….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과 용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열린광장 재소자 쪽지 여자 재소자들 아무개 교도관님 순간 교도관

2025.07.2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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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은퇴자들의 오아시스, 시니어 센터

6월 중순,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서머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듣는 미술 클래스는 없다.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마작을 배워 보기로 했다. 2년 전 일을 접고 난 후, 집 근처 시니어 센터의 메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더니 매달 뉴스레터가 온다. 시니어 센터에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는데 마작도 있다.   마작 그룹이 모이는 수요일, 처음으로 시니어 센터를 찾았다. 정오에는 초보자들에게 마작의 기본 룰을 알려주고, 오후 1~3시 사이에는 마작을 한다. 정오에는 3명이 마작그룹의 리더 격인 메리에게서 설명을 들었는데, 오후 1시가 되어 마작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홀로 자리를 옮기니 20명가량이 모였다. 같이 설명을 들었던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마작을 시작했다. ‘초보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 하지 않았던가. 얼떨결에 첫판에 ‘마작’을 불러 한 판을 이기며 단박에 메리의 눈에 들었다. 그 후, 메리의 소개로 셔면옥스 시니어 센터에 있는 또 다른 마작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마작이 아니고 시니어 센터다.   여기저기 시니어 센터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밸리에만도 ‘원 제너레이션’이 운영하는 꽤 큰 규모의 시니어 센터가 두 개, LA공원국의 시니어 센터 (LA시에 29개가 있다), VIC에서 운영하는 센터, 그리고 유대인 시니어 센터도 여럿이 있다.   시니어 센터에서는 기본적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양이나 맛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노인에게 필요한 칼로리와 영양소를 균형 있게 담은 식사다. 접시에 단백질 (고기나 생선), 탄수화물 (빵/밥), 야채와 과일, 그리고 우유가 제공된다. 식사는 무료로 제공되며, 3달러 도네이션을 받는다. 접수하는 테이블에 도네이션 박스가 있긴 하지만 돈을 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시니어 센터의 재원은 정부 보조금이다. 우리가 평생 일하며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센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미술, 줌바, 라인댄스, 사교댄스, 에어로빅, 요가, 뜨개질, 외국어 강좌, 당구, 게임, 영화상영, 그리고 매달 몇 차례 소풍을 나가기도 한다. 소풍 갈 때는 센터에서 별도의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   요일에 따라 전문가들이 나와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DWP를 비롯 공공요금 할인, 푸드 스탬프 신청, 법률 상담, 소득세 신고, 정신건강/카운슬링, 교통편의 등이 있다.   지난주에는 시니어 센터에서 점심시간에 한인 부부를 만났다. 일찌감치 은퇴를 했다는 그 부부는 이곳저곳 시니어 센터를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그날 점심에는 보리쌀 필라프와 오븐 구이 생선이 나왔다. 먹을만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오아시스 은퇴자 시니어 센터 이곳저곳 시니어 유대인 시니어

2025.07.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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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K의 마지막 길, 남겨진 성찰

지난 일요일, 32년간 몸담았던 교회에서 고(故) K 씨의 천국 환송 예배에 참석했다. 80여 명의 조문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향년 63세로 그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K씨는 이민 후 사업 실패로 가정이 파탄 나 가족과 연을 끊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동료로 만나게 된 인연이다.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성실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경영주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직원이었다.   그런 그가 노후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세금을 공제하지 않는 사업체로 이직했을 때, 먼지 쌓인 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 열악한 환경이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어 그를 불러냈다. 의사가 방사선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며 그는 어느 정도 안심하는 듯했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뒤 식대를 계산하러 카운터에 갔을 때, 이미 그가 지불했다는 말을 들었다.   호되게 나무라자, 그는 평소 내게 신세 진 것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리 준비해 간 작은 성의가 담긴 봉투를 그의 차 안에 던져주고 헤어진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그와의 이별은 나에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유교의 운명론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신의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치매 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장수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과 재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이 100세까지 산다 한들, 신적인 차원에서 보면 조물주가 눈 한 번 깜박이는 찰나의 순간과도 같다. 그래서 인생을 ‘초로(草露)’, 즉 풀잎에 맺힌 이슬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햇볕이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슬처럼,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몇 년 전,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노인 60명을 대상으로 한 명씩 수영장에 빠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물속에 가라앉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100%의 노인들이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 대학 동문인 최 선배는 올해 90세이다. 3살 어린 부인을 파킨슨병으로 올 초 먼저 떠나보내고 ‘짝 잃은 고무신’ 신세가 되었지만, 5년 넘게 눈물겹도록 아내 병수발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선배는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 외에는 여전히 꼬장꼬장하다. 혈색도 좋고 걸음걸이도 제대로다. 그는 “내가 살아보니 85세에 죽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너무 오래 살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판단으로는 그가 100세까지 장수하는 것은 무난할 것 같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일로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후세에 악인으로 오명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죽을 때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죽을 때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가는 이 짧은 인생을 왜 쓸데없는 욕심으로 아옹다옹하는가. 왜 부정한 짓으로 남을 울리는가.   내 나이 이제 고희를 넘겼다. 남은 인생은 죄를 짓지 않고 타인에게 선을 베풀며 살다가, 지금이라도 자다가 죽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니겠는가.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성찰 하버드대학교 연구진 폐암 말기 투병 소식

2025.07.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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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정전 72주년,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한국의 시인 모윤숙 여사가 6.25전쟁 때 피란 길에서 죽은 군인의 시체를 보고 읊은 한편의 서정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구구절절 가슴을 울린다.   ‘외딴 골짜기에 / 죽어 넘어진 국군을 본다 / (중략) /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 (중략) /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 나는 듣노라! 그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그 치열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총성이 멈췄다. 3년 1개월 동안 한반도를 폐허로 만든 동족상잔의 전쟁이 정전이라는 이름 아래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고 그날 이후 우리는 전쟁의 끝이 아닌, 전쟁의 ‘멈춤’ 속에서 숨차게 살아오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다시 되새겨야 할 그날의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72년 전, 전선의 돌산이 포탄에 산산 조각나고 푸른 강물이 뻘건 핏물이 되어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울려퍼지던 전쟁의 굉음은 조용한 휴전의 숨결로 퍼졌다. 그리고 이 땅을 지키겠다는 하나의 염원으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숱한 영웅들이 나라의 수호신이 돼 조국의 하늘로 산화했다. 가족을 뒤로한 채 전장을 향했던 젊은 병사들, 폐허 속에서도 삶을 일구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희생 위에 휴전, 또는 정전이라 부르며 평화의 숨고르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세월은 피 흘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의 자리에 다시금 그들을 초대했으나 총성 없는 냉전은 길어만 갔다. 그 속에서 우리는 폐허에서 번영으로, 상처에서 희망으로 72년간의 시간은 우리에게 전쟁이 남긴 고통을 이겨내는 힘과 평화를 향한 끈질긴 의지를 심어 주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선택받은 평화의 수혜자가 아니라 지켜내야 할 책임을 가진 주체로 굳건히 섰다.   정전(停戰)은 종전(終戰)이 아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된 상태에서 철책선을 사이에 둔 채 국군과 인민군이 총구를 겨누고 긴장과 불신, 이념의 대립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전쟁을 막아낸 군사력의 힘’이며, 동시에 ‘완전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자각이요 노력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일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피와 헌신, 그리고 멈춘 총성이 진정한 끝이 되기 위해서는 월등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선진 국력이 필요하다. 이는 바로 도발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비무장지대(DMZ) 너머엔 수많은 병력과 무기가 대치하고 있다. 분단의 선은 지리적 경계를 넘어 마음의 경계로도 이어졌고 그 경계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여전히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평화를 위해 만에 하나 전쟁에 대비해야 하고, 훈련해야 하며 무엇보다 ‘평화는 절대로 절로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지금도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무력 충돌의 위험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긴장 속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전쟁의 악몽을 평화의 소망으로 지켜내야 한다. 전선에 멈춘 총성의  그 고요함은 오직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만 지켜질 수 있다는 진리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정전 국군 하나 전쟁 대한민국 번영 지리적 경계

2025.07.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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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AI시대, ‘왜’라고 묻는 능력이 가치

“우리 강아지가 간식 기다리는 애틋함을 발라드로 써줘.” 5초 후, 그럴듯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거리에는 운전석이 텅 빈 웨이모(Waymo) 차량이 유유히 달리고, 코코(Coco) 무인 카트가 건널목을 건넌다. 30년 전 인터넷이 그랬듯, 인공지능(AI)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자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 유능하고 친절한 ‘유령 비서’가 진실과 그럴듯한 허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ChatGPT는 나의 개인 비서처럼 24시간 대기하며 월급도 없이 업무를 거들고, 연인 간 다툼이나 가사 스트레스까지 다정하게 위로한다. “AI가 남편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답은 방대한 온라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통계적 확률일 뿐, 검증된 진리가 아니다. AI의 답변은 언제나 출처 확인과 교차 검증이라는 비판적 필터를 거쳐야 한다. 그럴듯함에 속는 순간, 우리는 진실에서 멀어진다.   며칠 전, 역사를 가르치는 한 외국인 교수가 물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고들 하죠. 그런데 어떻게 데이터의 조합인 AI가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통찰은 교육의 미래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특정 직업의 소멸을 넘어, 우리가 ‘배움’이라 불러온 패러다임 자체의 종언을 예고한다. 교과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이제 AI의 하위 호환일 뿐이다. 4년 배울 지식을 4시간 만에 습득하는 시대, 교육기관은 인성과 윤리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지각 변동은 창작의 영역에도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온다. 한때 극장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두려워했듯, 이제 인간 크리에이터들은 AI의 잠재력 앞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다. 하지만 주요 국제영화제들은 이미 AI 부문을 신설했고, AI 영화만을 다루는 영화제까지 등장했다. AI는 위협인 동시에, 시간을 단축하고 예산을 절감하는 강력한 ‘창작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생존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AI를 도구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더 큰 기회를 얻을 것이다. 반면, 단순히 지시받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기술의 진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윤리적 책임감을 갖고 AI와 협력하며 평생 학습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머지않아 AI는 쇼핑, 여행, 결제까지 처리하는 원스톱 에이전트가 될 것이다. 우리는 AI에게 모든 것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AI야,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 AI가 내려야 할 궁극의 답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결국 AI는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최적의 답을 내놓을 뿐,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갈망과 최종적인 선택은 오롯이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그 질문에 답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인간 고유의 가치이자 마지막 밧줄이다.   크리스토퍼 이 / 다큐영화 감독열린광장 ai시대 능력 공감 능력 주요 국제영화제들 온라인 데이터

2025.07.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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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통한의 휴전, 왜 7.27인가

전투는 멈췄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한반도는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총성이 멎었지만, 그 과정은 복잡하고 불완전했다. 북한과 중공, 소련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 유엔군 내에서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입장은 제각각이었다. 결국 휴전은 미국 측의 의도대로, 제한된 전쟁의 틀 안에서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 이 휴전은 억울함 그 자체였다. 3년 1개월 동안 온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다. 당시 북한은 소총, 기관총, 박격포 등 보병 화기 정도는 자체 생산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총알 하나, 수류탄 하나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중공군의 참전 이후, 당시 전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주장한 만주 폭격은 군사적으로는 당연한 판단일 수 있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6·25 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제한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특히 맥아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장성과 일선 지휘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이 아닌 유럽 전선에서 복무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미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전쟁 장기화를 꺼리게 만든 요인이었다. 전쟁 말기에는 매일 중대 병력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를 감당할 여론적 기반도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한반도 방어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선이라 판단한 ‘캔자스(Kansas)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판문점 일대의 서부 전선을 고착화했다. 휴전회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명분 아래 서부 전선의 북진을 포기했고, 중동부와 동부 전선에서도 대대급 이상의 공격을 금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한국전의 승리를 포기한 셈이었다. 더욱이 영국은 이 전쟁을 소련의 유럽 침공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판단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종전하고 유럽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유엔군은 하루빨리 휴전을 원했지만, 오히려 칼자루를 쥐게 된 공산군은 느긋하게 2년 넘게 협상을 끌며 유리한 조건을 모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정전협정이 발효됐다. 협정문은 영문, 한글, 중국어 3개 국어로 작성되었고,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북한의 김일성 세 사람의 서명이 담겼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정식 서명국은커녕 배석자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였음에도 정전협정에 서명할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72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기회만 되면 도발을 일삼고, 불리한 국면에서는 ‘민족애’를 앞세운 평화 공세를 되풀이하고 있다. 남북 간의 대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장기 휴전 상태이며, 이산가족 간의 편지 한 장조차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도 한반도의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휴전 직전, 7월 13일 백마고지 전선에서 적군의 포로가 된 수도사단 부사단장 임익순 대령(1917~1997)은 자신의 회고록 『내 심장의 파편』에서 정전 회담 기간 중 평양으로 끌려가며 직접 목격한 북한의 전황을 기록하고 있다. 유엔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철도망은 마디마디 끊겨 있었고, 무기와 보급품은 확보되었더라도 운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공산군은 이 시점에 더 이상의 전쟁은 패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마침내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일선에서 싸운 군인들은 전투 의지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전 시각을 알지 못한 채 싸움을 계속했다. 그 결과, 정전 발효 직전 몇 분, 몇 초를 남기고 전사한 병사들도 있었다. 그 유가족들이 느꼈을 참담함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금성천 골짜기에서는 미군, 국군, 중공군, 북한군 병사들이 함께 물장구를 쳤다는 전언이 전해진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전쟁의 비극적 단면이다.   임익순 대령은 이후 남쪽으로 송환되어 포로복을 벗고 팬츠 바람으로 부대 사열을 받은 유일한 일선 지휘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에는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주영세 / 은퇴목사·ROTC 1기열린광장 휴전 제한 전쟁 전쟁 말기 유럽 전선

2025.07.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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