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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지금’과 ‘여기’에서 찾는 새해

새 천년을 맞이한 지도 어언 스물다섯 해가 흘렀다. 어느새 2026년이 다가오고, 우리는 또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해가 바뀌면 나라마다 새해를 맞이하지만, 그 부르는 이름과 인식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해가 바뀌는 순간을 ‘새해(New Year)’라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좋은 해(Bonne annee)’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새해’라는 말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해의 숫자는 하나 늘었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짧아졌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새것’이라 부른다. 공간적으로 보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365일이 지나 다시 같은 자리에 돌아온 것에 불과하고, 시간적으로는 지구가 태양을 2025번 돌고 2026번째 순환을 시작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출발점을 ‘새해’라 부른다.   미국의 철학자 윌 듀란트는 “이 세상에 새것이란 없고, 다만 다시 배열될 뿐이다(Nothing is new but arrangement)”라고 말했다.     성경 전도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우리가 있기 전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 역시 “자기 시간을 잘 살려 쓰는 일은 마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의 빛과 같다”고 했다. 결국 새로움이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뜻일 것이다.   새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국은 서기 2000년을 맞이하며 그 집착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른바 Y2K 문제를 해결한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컴퓨터 결함을 대비하는 데 1220억 달러를 썼고, 시스템 점검과 중단으로 인해 추가로 22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큰 문제 없이 넘어간 러시아와 대비되며 논란이 일었고, 당시 미 국방성 정보담당자였던 스트라스만은 “미국은 컴퓨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2000년이 21세기의 시작이 아니라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2000년을 ‘새 천년’, ‘새 세기’로 부르기를 원했다. 하루만 지나면 진짜 21세기인 2001년이 오기 때문이었고, 세상은 늘 그렇게 편리한 표현을 택해 왔다. 법에도, 관습에도, 언어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2026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하며 복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새해’와 ‘행복’이 언제나 원앙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달력이 바뀐다고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버트 잉거솔의 말처럼 “행복해질 시간은 지금이고, 행복해질 곳은 여기”일 뿐이다.   하루하루의 ‘지금’에서, 한 달 한 달의 ‘지금’에서, 그리고 한 해의 ‘지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여기에서, 내가 일하는 여기에서, 내가 믿음을 두고 있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행복은 새해가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일하는 사람을 돕기 때문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새해 자기 시간 컴퓨터 결함 대문호 빅토르

2026.01.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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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올해 삶의 안전 운행을 위하여

태풍이 지나고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펼쳐진 주말에 다시 사이클을 타러 나갔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남가주 날씨는 한국의 가을처럼 화창하다.     이십여 킬로가 되는 길 내내 페달을 힘껏 밟고 달렸더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궂은 날씨였던 크리스마스 연말 휴가 때에 받은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5번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교량에서 잠시 땀을 닦을 겸 휴식을 취했다.     남북 양방향으로 가는 열두 차선 모두 자동차로 가득 차 있다. 승용차에서 대형 트럭까지 형형색색의 차량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저편 멀리 휘어져 가물가물한 고속도로로 빨려가듯 질주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도로를 내려다보는 내 눈이 어지러웠고, 휙휙 거리며 지나는 차 소리에 살짝 겁도 났다.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운전자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꼭 잡고 가속페달을 누르고 있을 것이다.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에서 일말의 멈춤도 없이, 모든 차선에서 마치 경쟁하듯이 차량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어디선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최종 목적지로 운전해 갈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이라는 소중한 차량을 매일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을 운행하고 내일을 찾아간다. 그러나 정말 삶의 목적지를 알고 가고 있을까.     나처럼 길치라면 잘못된 길로 들어가 당황 속에서 운전하는 경험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인데 삶의 운전이 단순할 수만 없다. 가끔은 과속으로 티켓도 받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접하게 된다.   젊은 시절 나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한 적이 있다. 원하는 대학을 선택하지 못해 좌절감에 짓눌렸다. 빙빙 돌고 돌아 마침내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서부터 최종 학위 과정을 마치는 데 십사 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디 이것뿐만이랴. 주행 중에 규칙 위반으로 받는 속도위반 티켓과 같은 징계 통지가 인생이라는 운전에도 있다.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낸 일, 타인의 말을 쉽게 오해한 일, 진실을 왜곡한 일, 건강에 해로운 습관들을 버리지 못한 일들이다. 또는 격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인 일도 징계 통지를 받을 만하다. 나의 잘못을 누가 직접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은 알 수 있다.   한 해를 보냈다. 마지막은 항상 허전하다. 그러나 한 해의 끝이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가 흔들리고 넘어져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모범 운전사는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운전대를 잡고 처음처럼 운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해를 되돌아보니 먼길을 잘 운전해 왔다. 위험한 길도 있었지만 잘 버텨냈다. 스스로 장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피곤도 했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길을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 든다.     내 심지를 굳게 세워보면 새해에는 실수도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는 내 인생의 속도를 약간 줄이더라도 안전 운행을 하고 싶다. 이효종 / 수필가열린광장 안전 운행 안전 운행 모범 운전사 속도위반 티켓

2026.0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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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낙망의 시대, 당신의 필요는

과연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필요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만약 누군가 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식이나 정보, 재산이나 즐거움 같은 차원의 필요였다면, 인류는 이미 그에 걸맞은 위대한 선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지니는 가장 깊은 필요는 무엇일까.   지난 한 해의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을 건넨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선물은, 지나온 시간을 잠시라도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는 이즈음의 시간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각자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지난 한 해 큰 근심이나 아픔 없이 지낼 수 있었다면, 그 행복을 감사로 누리면 된다. 혹시 근심과 아픔이 동반된 여정이었다면,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신 성육신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더 깊이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 한 해의 시간을 살아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나이의 언덕을 하나 더 넘어온 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삶의 부서지기 쉬움은 세대를 막론하고 더해진다. 병원 원목으로서 환자들과 만날 때, 병리학적 안위보다 영적 안목을 더 많이 나누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병약함과 낙망, 힘겨운 치료의 과정을 지나온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 안목이란 단순히 교회 출석이나 종교적 실천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영성의 자세다. 새날을 기다리며 질병과 낙망, 회복과 소망을 돌아보고, 중년과 노년에 접어들며 삶의 목적을 다시 정의해 보는 대화다. 시간과 노화, 사랑과 상실 사이에서 생명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기계문명의 시대’라고 불러왔다. 요즘은 여기에 더해 ‘낙망의 시대’라는 이름도 붙인다. 자동화와 인공지능, 눈부신 기술 발전이 편리함을 제공하며 한때 인류가 희망의 끈을 붙잡은 듯 보이지만, 정작 낙망의 감정이 짙어지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다시 극심한 절망의 시대를 통과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눈을 돌리게 된다.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을 겪은 한 정신의학자는, 자유를 얻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강단에 서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낡지 않은 메시지를 전했다. 어제 삶의 의미에 대한 긍정이 내일의 희망을 낳았고, 그 희망이 오늘을 버티게 했다는 고백이다. 그는 모든 절망적 환경과 경험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정의는 끝내 퇴색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빅토르 프랭클의 『그럼에도 삶에 예스라 말하다(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에 담긴 통찰이다.   병상 곁에서 수많은 사람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것이 있다. 각자의 가장 큰 필요가 채워지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귀한 영적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모든 사람의 가장 깊은 필요는 여러 차원을 넘어, 마음과 영혼의 평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서는 성육신 사랑의 목적을 이렇게 전한다.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새해의 새로운 시간 여정 속에서, 우리 모든 교민 가정과 일터마다 건강과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김효남 / HCMA병원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낙망 정작 낙망 낙망 회복 시간 여정

2026.01.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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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2026년 더 단단한 한인사회를 위해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해는 언제나 기대와 다짐을 안겨준다. 동포사회에 새해는 공동체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뤄온 동포사회가, 새해에는 더욱 성숙하고 단단한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새해를 맞아 세대 간 이해와 연대가 한층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연대는 함께하는 경험과 공정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1세대의 헌신과 희생 위에 1.5세와 2세대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더해질 때, 동포사회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고 배움으로 이어간다면, 세대 간의 간극은 갈등이 아니라 다양성의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협력의 장을 넓히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정한 구조가 마련될 때 신뢰와 연대는 지속 가능해진다. 1세대는 안정된 삶의 존엄을 지키고, 1.5세와 2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쪽의 희생에 기대는 연대는 오래갈 수 없다. 세대 갈등은 가치의 대립이라기보다, 각 세대가 살아온 시대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가정과 커뮤니티 차원의 이해와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다.   물론 한인회를 비롯한 여러 동포 단체들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언론과 SNS의 책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디지털 공간은 이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공동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언론은 1세대의 경험을 젊은 세대의 언어로 풀어내고, 차세대의 목소리를 공동체 전체의 담론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과 전통 매체가 서로를 보완하며 세대 간 가교가 될 때, 동포사회는 새로운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현실도 존재한다. 일부 1세대 공동체가 SNS를 통해 전달되는 한국 정치에 깊이 매몰되면서,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언어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 담론이 숙성된 토론이 아니라, 갈등의 구조로 거의 비판 없이 수용되며 공동체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에게 1세대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미 1세대 내부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라져 있다. 한국에서 보던 진영 논리가 이곳에서도 재현되며, 사람을 줄 세우고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동포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연대는 적지 않게 훼손되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반복 재생되는 정치적 프레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현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조국의 정치에 관심 갖고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차세대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남긴다면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토대로 성장한 사회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정치의 극단적 갈등 구조가 그대로 공감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한 정치 소비자가 아니라, 멀리서라도 성찰과 판단의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   공동체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정체성이란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곧 ‘인정의 공간’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서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인격을 단정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념으로 분절된 군중에 머무르게 된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차세대의 기억에 남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새해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가. 그 답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속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며 토론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세가 공동체의 품격을 결정한다.   2026년 새해의 바램은 분명하다. 차세대와 더 많이 소통하고, 더 오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차세대에 남겨줄 유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찰과 절제 속에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기를 소망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한인사회 공동체 철학자 공동체 전체 한국 정치

2026.01.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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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동토에 새겨진 노병의 기억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공통으로 회고한 가장 무서운 기억 중 하나는 적의 공격보다 혹독한 전장의 추위였다. 미군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 한국전쟁은 총성과 포성만이 아니라,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국의 겨울과의 싸움으로 남아 있다.   흰 눈이 대지를 덮고, 사람들은 따뜻한 온돌방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성탄과 새해의 기쁨을 기다리던 망향의 동산, 강원도 양구 북방, 눈보라가 몰아치고 매서운 바람이 옷깃 속을 저미는 외딴 고지 위에서는 눈송이 대신 피가 내렸다.   특히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비롯한 북부 전선의 기온은 영하 30~40도까지 떨어졌다. 이 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총이 얼어 발사되지 않고, 윤활유가 굳어 무기를 분해해 녹여야 했으며, 수통의 물과 식량은 돌처럼 얼어붙었다.     병사들의 발과 손은 순식간에 감각을 잃었고, 동상 환자가 전투 부상자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눈 속에서 잠깐만 멈춰도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었기에, 미군들은 “보이지 않는 적은 공산군이 아니라 추위였다”고 회상했다.   겨울,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따뜻한 불빛과 가족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한 세대는 이 시기를 맞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기억을 또 무겁게 꺼내든다.   1952년 12월25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선 공방전을 일컫는 ‘크리스마스고지 전투’를 상기한다. 겨울 혹한 속에서 벌어졌던 중공군과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만큼 끈질기고 처절했던 전투다.     전투의 무대는 강원도 양구 북방 1090고지. 이곳에서 방어하던 우리 군은 적의 공격을 백병전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피에 엉켜 싸웠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피아간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은 낮과 밤이 뒤섞인 채 헐벗은 산허리는 억수 같은 포화에 잘려나갔다. 몇 번이나 뺏고 빼앗기던 고지, 그 땅 위에서 피 흘린 이름 없는 병사들은 조국 위해 싸우다 젊음에 죽었어도 말이 없다.   전선의 병사들은 철모를 눌러 쓴 채 따뜻한 물 한 모금 없이 차디찬 주먹밥을 손에 취고 나라를 위해 눈보라 속을 헤치며 고지를 사수했다. 서로의 차가운 어깨에 등을 기댄 채 열이 아직 식지 않은 총열을 움켜쥐고 조국의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 어떤 이는 고향의 부모님을 끝내 보지 못했고, 또 다른 이는 연인과의 약속을 가슴에 품은 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의 행복한 일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차곡차곡 쌓여 올려진 귀한 평화다.   우리는 이 계절이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 적 있는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역사는 결코 스스로 보전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는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형태로 전달될 수 있다.   오늘도 노병은 차가운 밤하늘 아래 조국을 품고 전우의 손을 붙잡았던 젊은 병사들의 숨결을 어루만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내어주며 우리가 누릴 따뜻한 오늘을 건네준 그들을 잊지 않겠노라고….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동토 노병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겨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2026.01.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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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Why me?”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세상을 제법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보았을 터다. 대상도 특정할 수 없고 메아리도 있을 법하지 않은 원망의 말이다.     빌리 필그림이라는 44세의  미국인. 딸 결혼식 날 밤, 외계인들에게 잡혀간다. 영문을 모르는 채 그들의 비행접시 안으로 끌려들어 가며 그는 말한다.   “Why me?” “나를, 왜?”   트랜스팔마도르라는 먼 별에서 온  외계인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지구 놈들이나 하는 질문이지. 왜 너냐고? 왜 우리냐고 물어보지. 왜, 왜냐고 물어? 이 순간은 그저 이렇게 있을 뿐이야.(… this moment simply is.) 자네는 호박(amber) 속에 갇혀서 박제된 곤충을 본 적이 있나?”   “본적이 있죠.” “바로 그거야. 이 순간이라는 호박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 (그저 그럴 뿐) ‘왜’ 라는 질문은 성립이 안 되지 (There is no why.)”   빌리라는 사내는 22살 때, 2차대전 말 독일 드레스덴 공습 때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한 극심한 트라우마로 가끔 헛것을 보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잘 살아가는 검안전문의(optometrist)였다.   그는 그렇게 끌려가서 트랜스팔마도르의 동물원에 지구인의 표본으로 전시된다. 비슷하게 잡혀온 여자 지구인과 합방해 아이까지 낳고 그저 그렇게 ‘몇 년’ 살다가 지구로 돌려보내 진다.     그의 시간으로는 몇 년이지만 외계인의 시간으로는 ‘한 순간’. 그는 잡혀간 그 순간 그곳에서 다시 지구로 온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라는 미국 소설가가 1966년에 출간한 ‘5호 도살장(Slaughterhouse Five)’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가 자신이 겪은 생지옥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 보네커트는 22세에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전쟁 말기 드레스덴 폭격 당시 죽은 독일인 시체 발굴 처리반원이었다.     빌리가 그의 온 세상이 뒤집히는 그 순간에 내뱉은 두 마디 탄식, “Why me?”     그것이 이 지구별에서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난 중생들의 ‘전도몽상(顚倒夢想)’, 세상을 거꾸로 보고 꾸는 꿈이다. 우선 ‘나(me)’라는 존재가 의심할 여지 없는 주체이며 가장 소중한 주제이다. 또 ‘왜(why)’라는 물음 속에는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들이 나 바깥의 어떤 존재 또는 힘의 탓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인간보다 한 차원이 높은 외계인의 눈으로 보면 지구인이 그렇게 집착하는 ‘나’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다 인연 따라 생겨서 한 시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 무상(無常) 그 무엇일 뿐.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누군가의 탓으로 이해하려는 본능적 습성이 뜬금없다. 4차원의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까지 훤히 보이는 외계인에게는 빌리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분명해서 “왜”라는 질문은 필요가 없다.   “그저 이렇게 있을 뿐(… this moment simply is)”이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여여 (如如)하다’고 한다. 우리가 읽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의 가르침은 ‘여리실견(如理實見)’,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생각이 만든 나를 꼭 붙잡고 있는 한, 중생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유리한 대로 본다. 그래서 나에게서 나를 씻어내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말 대로 ‘눈 녹은 물이 또 눈을 씻어내는 것처럼(wash yourself of yourself).’ 김지영 / 변호사열린광장 여자 지구인 독일 드레스덴 독일인 시체

2026.0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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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평균의 함정과 투자손실

수학에 이런 농담이 있다. “키 1미터 80센티인 사람이 평균 수심 1미터인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었다”. 평균이 1미터인 것이지, 이 강의 어떤 곳은 30센티 정도로 얕았지만, 강 중간의 어떤 곳은 수심이 3미터가 넘었기 때문이다. ‘평균’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평균을 맹신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평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험 점수 평균은 과목별 점수들을 전부 다 더해서 과목수로 나누는 산술평균이다. 하지만 주식의 수익률과 손실율은 냉정한 ‘기하평균’이다. 기하평균은 산술평균 금액보다 작거나 같다. 다시 말해서 기하평균은 절대로 산술평균보다 클 수는 없다. 이 차이를 모르는 순간, 아무리 열심히 투자해도 우리의 계좌는 조용히 줄어든다.   예를 들어보자. 1만 달러를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첫날은 운이 좋게 10%를 벌었고, 다음날은 안타깝게 10%를 잃었다. 산술평균으로 계산하면 수익률은 0%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전은 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해다. 1만 달러가 10% 올라 1만 1000달러가 되었다가, 거기서 10%인 1100달러가 빠지면 최종 금액은 9900달러가 된다. 순서를 바꿔서 1만 달러에서 먼저 10%를 잃어서, 9000달러가 된 후에 10%인 900달러를 벌어도 결과는 똑같이 처음보다는 100불이 손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루는 40%만큼 수익이 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30%로 손실이 발생했다. 산술적으로는 10% 이익 같지만 사실은 손해다. 1만 달러의 40%를 벌면 1만4000달러가 된다. 하지만 1만4000달러에서 30%를 잃으면 9800달러가 된다. 처음 1만 달러보다 200달러가 손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분산투자를 추천하는 것이다. 가진 돈을 한 곳에 집중투자 하면 수익률이 손실률보다 크다고 해도 결국은 변동성 때문에 큰 돈을 한꺼번에 모두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 따르면 40%의 투자자는 오로지 한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분산투자는 단순히 종목을 분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산을 현금이나 부동산등 다양하게 보유해서 변동성과 위험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위의 예에서 가진 돈의 절반만 투자해보자. 처음 1만 달러 중, 5000달러만 투자해 40% 이익을 보면 7000달러가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은 5000달러를 더하면 총자산은 1만 2000달러가 된다. 이제 다시 총자산의 절반인 6000달러를 투자해 30% 손실을 보면 6000달러는 4200달러가 된다. 여기에 투자하지 않았던 6000달러를 더하면 최종 자산은 1만200달러가 된다. 원금이 200달러 늘었다.   분산투자는 전재산을 잃을 위험을 줄이고 시장에서 물이 전부 빠졌을 때를 대비해 속옷을 미리 입는 전략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투자손실 함정 산술평균 금액 과목별 점수들 시험 점수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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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아주 특별한 음악회

11월의 늦가을 바람이 코리아타운을 스쳐 지나가던 어느 토요일, 피코 길의 ‘AI Auto Collision’ 앞에는 이른 저녁부터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평소에는 철과 기름 냄새가 어우러진 자동차 정비소였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정비소 창립 1주년과 추수감사절을 맞아 마련된 이웃 초청 음악회는 마치 오래된 이웃집 마당에서 열리는 잔치처럼 정겹고 소박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BBQ 그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반가운 사람들을 첫 번째로 맞이했고, 가을이 떠나가는 것을 붙잡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이들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정비소라는 이름표를 잠시 떼고, 이곳은 단번에 사람과 음악이 서로를 안아주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바디 프레임 머신 위에 즉석 무대가 설치되고 벽 높은 천장을 이용한 ‘K-Top Band’라는 로고가 들어간 대형 배너가 행사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다국적 음식과 술이 익어가는 가운데 연주되는 음악들은 BBQ 연기마저 아련하리만큼 감미로웠다. LA 코리아타운의 3대 기타리스트라는 박강서, 이승희, 최동남이 총출동하고 명 MC 한미옥이 키보드를 맡았는가 하면 방송인이자 가수 이영곤의 특별 무대까지 감동을 더 하면서 우리 모두를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그동안 서로를 지켜준 시간에 대한 고마움도 눈빛으로 전하면서….   첫 곡, 마이클 부블레의 ‘Quando, Quando, Quando’를 부른 박강서와 K-TOP Band는 우리에게 호소하는 듯했다. “언제 나에게 좋아라고 대답할 거야? 말해줘 언제쯤이야?”라는 가사의 뜻처럼 기다림과 설렘을 너무도 매끄럽게 풀어내면서 누군가에 당장이라도 고백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혹시 오늘 같은 밤이 또 올 수 있을까 싶어서….   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긴 서로 얼굴을 숨기던 팬데믹의 기억이 조명 아래 조용히 내려앉는 듯하여 노래는 아프지만 부드러웠다. 조금씩 가면을 벗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한 지금이기에 우리의 마음엔 어쩌면 이 음악이 더 큰 위로로 다가왔을지 모를 일이다.     이어진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정적을 깼다. 기타가 공기를 찢으며 나아가자, 무대를 마주한 모두는 환호를 하며 잠시 잊고 지냈던 발끝의 리듬을 다시 기억해냈다. 전설적인 록밴드의 기타 연주가 끝나고 산타나의 ‘Samba Pa Ti’ 연주에서는 깊어가는 가을밤 사랑이 샘솟듯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모두를 무도회장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이어 등장한 게스트 이영곤과 최동남은 한승기의 ‘연인’과 강산에의 ‘예럴랄라’를 불러 이날 참석한 타인종에게도 K-POP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마지막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가 연주되는 순간 나는 잠시 가벼운 대화마저 멈춰야 했다.     영국 북아일랜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이면서 락과 블루스, 헤비메탈,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게리 무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 만의 섬세한 필링과 마치 기타가 우는 듯한 특유의 플레어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쳤던 사나이. 그 곡이 K-Top Band의 목소리와 연주로 재현되면서 공연은 절정에 달했다.   11월 어느 날, 감사의 계절을 보내면서 모두와 함께했던 아주 특별한 음악회였다. 무대와 박수, 음식과 음악이 각자의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진 나눔이었기 때문이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음악회 기타 연주가 다국적 음식 정비소 창립

2025.12.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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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거기서 뭐 하세요?’

‘거기서 뭐 하세요?’ 낯선 질문 하나가 불현듯 내 삶에 찾아와 머릿속에 둥지를 틀더니 쉬이 떠나지 않는다. 그 질문은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이 뭐 하는지 유심히 살피며 다녔다. 짐짝처럼 버스에 실려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한밤중에도 불을 밝힌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동네 어귀에서 장기를 두며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들을 보면서도 ‘거기서 뭐 하세요?’라고 묻곤 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었지만, 그 질문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질문이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들 하는 것을 보면 굳이 묻지 않아도 뭘 하는지 웬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고, 내 삶 챙기기도 벅차 남의 일에까지 관심을 둘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과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누가 어디서 뭘 하든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었는데,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거기서 뭘 하다니?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이만큼 살려면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혼자 푸념하며 넘겨 보려 했는데, 이번에는 연말을 맞아 이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위로해 왔지만, 지나고 나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때는 최선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도대체 거기서 뭘 했던 걸까.’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박정민이라는 배우다. 지금은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유명인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다. 그가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한 상태를 속되게 일컫는 ‘찌질이’라고 자신을 부르던 시절, 그는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특별하다, 잘 나간다’가 아니라 ‘찌질했었다’라고 정의했다.   ‘찌질하다’라는 현재형 꼬리표를 ‘찌질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바꾸는 순간 찌질한 인생은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찌질함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비밀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게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갈고 닦은 내공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   ‘의외’라는 말이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세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한 이들에게 그는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 후 능글맞게 말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별것 아닌 질문에 한참 동안 괴롭힘을 당했는데,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라는 담담한 감사의 고백 앞에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올 한 해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버티고, 애쓰고 수고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 말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견디기 힘든 시간도 있었겠지만,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올 한 해 어디서 뭘 하셨든 고맙습니다.’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열린광장 현재형 꼬리표 동네 어귀 고층 빌딩

2025.12.2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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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분노를 파는 시대

지난 한 해 전세계 사람들이 어떤 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매년 12월에 옥스포드 사전 측에서 선정하는, 올 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와 그와 함께 최종 경쟁을 보였던 단어들을 살펴 보는 일이다.   이 단어들이 2025 문화적 흐름을 반영해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올 해의 단어로는 ‘분노 미끼(Rage bait)’가 선정되었다. 이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격분하도록 고의로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를 뜻한다. 조회 수를 높일 목적으로 이를 읽거나 보는 이들에게 분노나 짜증을 유발하게 하는 글, 그림, 영상 등을 가리킨다. 올 해 사용 빈도가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올 해의 단어가 선정되기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단어는 ‘아우라 파밍(Aura farming)’과 ‘바이오핵(Biohack)’이었다.   아우라 파밍은 멋있게 보이려고 일부러 분위기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SNS를 이용해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은근히,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요즘은 늙은 오빠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이런 행동을 한다.   이는 지나치게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자신을 맞추면서 거꾸로 자존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젊은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예에서 이의 폐단을 읽을 수 있다.   다른 경쟁 단어였던 바이오핵은 몸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식단 조절, 생활 습관의 변화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자신의 신체, 건강, 수명 등을 최적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의 가치를 내면에서 찾지 않고 외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건강은 삶을 위한 좋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몸은 최적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반자이다.   경쟁했던 두 단어가 개인에게 치중된 반면 최종 선정된 분노미끼는 사회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디지털 문화의 변화를 의미한다. 온라인 콘텐츠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의 제공이나 즐거움을 제공하는 ‘클릭 미끼(Click-bait)’가 아니라, 감정을 조작하고 참여를 유도해 극단적으로 편향된 집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SNS의 알고리즘은 무엇을 제공해야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와 한국 갤럽이 지난 1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한국 사회와 정치에 관련해 “음모론이 많아 졌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느냐”라고 물은 결과 65%가 ‘동의한다’였고, 26%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20대 등 젊을수록 긍정 비율이 높았고,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층일수록 부정 비율이 높았다.   같은 성향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에 지배당할 수도 있는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 원장열린광장 분노 분노 미끼 온라인 콘텐츠 한국 사회

2025.1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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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연말연시 범죄 예방법

연말연시라 다들 들뜬 분위기다. 이럴 때일수록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범죄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순간보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순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범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 속 작은 습관 하나가 대부분의 범죄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게 한다. 오늘은 실제 사건들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패턴을 기반으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범죄예방 원칙을 소개해 본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미국이건 한국이건 가장 많은 살인 사건은 배우자 살인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범인이고,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범인일 확률이 가장 높다. 배우자 살인의 이유는 대부분 불륜이나 돈 문제다. 배우자가 사망하면 큰 보험금이 나오는 경우, 소득에 비해 보험료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는 보험금 때문에 배우자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불륜이 발각되었거나, 불륜 상대와 자연스럽게 재결합하기 위해서, 자신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까지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재산을 나누기 싫어서든, 보험금을 받아 일확천금을 얻고 싶어서든 이런 생각을 가진 배우자를 처음부터 만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잘 모르고 만났다면, 훗날 배우자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신속하게 헤어져야 한다. 붙잡고 살아봐야 상대가 미워서 죽이고 싶어지거나 본인이 비극을 당할 수도 있다.   #잠가라.     강도, 절도, 성범죄 사건의 상당수는 잠그지 않은 문을 통해서 시작된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난 요즘 오피스텔, 원룸 등에서는 잠깐 환기하려고 열어두었다가 피해를 입는 일이 빈번하다. 자녀들을 등교시키기 위해서 잠시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한 후에 집에 돌아왔다가 열린 문으로 집안에 들어온 살인자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죽임까지 당한 주부가 있다. 잠시라도 문을 잠그고 나갔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이다. 미국의 절도범이나 살인범 중에는 주택의 열린 뒷문으로 침입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처럼 차가 출발하면 자동으로 자동차 문이 잠기는 기능이 없을 때는, 서행을 하거나 잠시 정차한 자동차 문을 열고 범죄자들이 들어와 범행을 저지르는 일이 많았다. 문을 잠그기만 해도 상당히 많은 범죄로부터 예방이 가능하다.   #음식 함부로 먹지 않기.   고국에서 한때 100명 정도 되는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거나 성폭행후 살인했던 택시 운전사가 있었다. 그는 교회 장로로서 평소에 모든 교인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의 범죄 수법은 간단했다. 자신의 택시에 탄 여자승객이 마음에 들면 건강 음료를 자신이 뚜껑을 열어서 건네준다. 음료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어서 마시는 사람들은 정신을 잃는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몹쓸 짓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피해자들을 협박했다.     집앞에 누가 가져다 놓은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모르고 마셨다가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중태에 빠진 사건도 있었다. 요즘은 술이나 음료수에 소위 ‘물뽕’이라는 약을 몰래 타서 먹이고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낯선 사람 또는 아는 사람이라도 위험한 사람과는 식사 자리 자체를 피해야 한다.   #정신을 챙기자.   한 때 고국에서 취객을 대상으로 ‘퍽치기’와 ‘아리랑 치기’가 기승을 부린 적이 있다. 새벽에 다니는 사람 머리를 가격해서 정신을 잃게 하고 금품을 탈취하던 퍽치기범 중에는,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개조해서 휴대가 간편하게 들고다니며 수십 건의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있었다. 나도 고국에서 술에 취해 지갑을 잃어버린 경우가 10차례는 되는 것 같다. 정신을 잃는 순간은 범죄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취해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범죄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연말연시 예방법 연말연시 범죄 범죄예방 원칙 범죄 수법

2025.12.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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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한 해의 결산은 새해의 희망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모두는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것이다. 무엇보다 이민자의 삶에 있어 끝없이 변하는 현실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 지나온 시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풍요와 가능성의 땅이면서도,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압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대견한 것은 수많은 갈등과 혼잡에서도 한 해를 버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받기에, 충분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누구나 던져진 존재’고 했다. 특히 이민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한다. 주어진 조건은 내 뜻과 다를 때가 많고, 상황은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하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일터로 나선다. 삶에 숱한 파편들을 안고 우리는 한 해 내내 몸으로 증명하며 살아왔다.   반복되는 생존의 연속에서도 이해타산을 앞에 놓고 짐처럼 흔히 잘잘못을 나누려 한다. 니체의 말처럼, 과거는 짐이 아니라 다시 어떤 형태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일까.   사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는 직간접으로 숱한 파편들이 있었다. 특히 올해 물가는 물론 집값, 보험료의 인상이 교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불체자 단속은 생업에 충격으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던 아픔, 가족 건강 문제로 인한 불안,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 사이에서의 갈등, 관세문제, AI의 기술 변화 속에서 느낀 뒤처짐의 두려움, 이것들은 우리가 어떤 존재로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의 변화이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이민자의 삶은 내 힘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자주 흔들린다. 그럴 때면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라고 고백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 삶을 붙들고 계셨다는 것이다.   성경의 시간관에서 보면 이 회고는 단순한 연말의 습관이 아니다. “여호와여, 나의 날이 한 뼘 같사오니” 인간의 시간은 짧고 유한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순간순간을 통해 성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를 향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2026년이 기대되는 것도 가능성의 시간, 존재의 방향을 새롭게 확립하는 순간을 찾을 수 있기에 새해의 포부가 크다.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가능성으로 자신을 던지는 존재”라고 규정한 것도 결국 현실 속에서 하루를 조금 더 성실히 살아내는 일이란 것이 아니겠는가. 나와 가족을 더 잘 돌보고, 공동체를 향해 작은 연대의 손을 내밀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만의 리듬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언론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종교단체나 사회 각종 모임을 통해 고립된 이들을 연결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는 단순한 사적 모임이 아니라 존재를 비춰주는 거울이기에 말이다.   이민자의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깊이 ‘삶의 이유’를 묻고, ‘존재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가능성’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새해의 포부 또한 이 거울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성경에서 예레미야 기자는 미래 계획에 대한 확신을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 라고 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는 조용히 지난 시간과 화해하며, 다가올 시간을 향해 다시 한걸음 내딛겠노라고 결단하며 새해를 맞이하자.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결산 새해 시간 존재 지난 시간 갈등 관세문제

2025.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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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등가개념과 금성 <等價槪念>

곧 2026년 새해가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새해의 이름은 병오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부를 새해가 그 이름처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속과 겉이 똑같이 하나로 보이는 낱말이 생각났다. 등가개념(等價槪念)이란 낱말이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 뜨는 샛별과 저녁에 보는 개밥바라기는 그 내포는 다르지만 바깥은 아주 똑같은 금성(金星)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금성에 관한 이야기가 제법 많아서 아주 재미있다. 특히 한국에서 일컬어지는 이야기와 서양에서 말하는 금성의 이야기는 아주 다르다. 뿐만 아니라 이 금성을 일컫는 이름들도 여러 가지다. 우리 한국에서는 초저녁에 나타나는 별을 개밥바라기 또는 태백성(太白星), 새벽에 볼 수 있는 샛별을 계명성(啓明星)이라 부른다.   그런데 등가개념의 속성에 문제가 있다. 속이야 어떻든 바깥이 똑같기 때문에 바깥으로 보이는 것처럼 속도 똑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어 가운데 한문으로 인공(人工)이란 것이 있다. 자연물을 사람의 힘으로 다르게 바꿔 놓는 일 또는 아주 새로운 것으로 바꿔 놓는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인공이란 말이 그냥 사물을 바꿔 놓는 뜻인지 또는 요즈음 Al 형태의 사람을 만드는 뜻인지 인공이란 낱말만 보고서는 그 속내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인공의 정의(定義)에 문제가 생긴다. 자연물을 사람의 힘으로 달리 바꿔 놓는 일이나 또는 새로운 것으로 바꿔 놓는 일이란 뜻은 맞지만 Al 형태의 사람을 만드는 뜻은 맞지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예수’를 ‘이에스’라고 적는다. 일본어로는 예수라고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어느 일본 학자는 한국어 인공의 정의 속내에 Al  형태의 종교적(이에스적?) 속성이 들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일본식 사고방식에 융통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특히 人工의 한문자를 일본어로 ‘이에’이며 여기에다가 한글의 ㅈ를 붙여 ‘이에스’라고 불러 종교적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금성을 비너스(Venus)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별빛을 바탕으로 개밥바라기와 샛별이 금성이란 이름으로 등가개념이 이뤄졌지만 미국에서는 금성과 지구가 크기가 비슷하여 금성을 ‘지구의 쌍둥이(earth’s twin)’이라 일컬는다.     금성은 그 크기가 직경 1만2100 킬로미터로 지구보다 644 킬로미터가 작다. 금성은 지구에서 바라봤을 때 다른 위성보다 그 빛이 밝다. 옛날 천문학자들은 아침에 뜨는 금성을 포스포루스(Phosphnerus), 저녁에 뜨는 별을 헤스페루스(Hesperus)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이 별들이 둘이 아니고 같은 별임을 알고 그 이름을 로마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을 사모해서 비너스라고 지었다고 한다.   금성이 한국에선 등가개념이란 철학적 산물을, 미국에선 우주과학의 무인항행을 선사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일컫는 등가개념의 속성이 금성처럼 유익한 선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윤경중 / 릿쥐크레스트한민교회 명예목사열린광장 등가개념 금성 한국어 인공 한국어 가운데 샛별과 저녁

2025.12.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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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부자로 살까, 부자로 죽을까

미시간에 살던 로널드 리드(Ronald Read)는 늘 낡은 차를 타고 다니며 점심은 2달러짜리 샌드위치로 해결하던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유소와 자동차 정비소에서 평생을 일한 성실한 노동자였고, 시간이 나면 동네 도서관을 찾던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부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그의 주식 계좌 잔액은 무려 8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는 번 만큼 쓰지 않았고, 평생 미국의 우량주에 조용히 장기 투자를 했다. 아무도 모르게, 묵묵히 부를 키운 것이다. 생전에는 검소했지만, 2014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는 부자로 죽었다.     그의 죽음 이후, 그는 브래틀버러 병원에 약 480만 달러, 자신이 늘 다니던 공공도서관에 120만 달러를 기부했다. 병원은 역사상 가장 큰 개인 기부를 받았고, 도서관은 그의 이름을 새긴 공간을 마련했다.   반면 리처드 퓨즈콘(Richard Fuscone)은 겉으로는 전형적인 ‘부자’였다. 노틀댐 대학을 졸업하고 하바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은 그는 대형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부회장까지 지냈다. 침실 12개에 욕실 12개, 실내 수영장에 극장까지 갖춘 호화 맨션에서 살았고, 이동할 때는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그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과소비와 빚, 무리한 투자 탓에 그의 맨션은 압류되었고, 세금 문제와 법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파산을 거쳐 감옥까지 다녀왔다. 엄청난 부자로 살았지만, 그의 가난한 죽음에 대해서는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다.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Money)’에서 두 사람의 사례를 소개했다.   하우절은 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부자는 ‘얼마나 많이 버는가’라는 ‘소득’이 아니라 ‘얼마나 절제하고, 꾸준히 오래 기다릴 수 있는가’라는 ‘습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은 로널드 리드의 검소함과 그가 남긴 재산, 그리고 그가 유언으로 행한 기부를 커다란 미덕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로널드 리드의 검소함과 절약, 그리고 꾸준한 투자를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절약이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돈을 모으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누리고, 사는 동안 기쁨을 경험하는 것 역시 재산의 중요한 쓰임이기 때문이다. 저축을 아무리 잘해도, 정작 본인은 그 돈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비록 ‘부자로는 죽겠지만, 가난한 삶을 산’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더니 나중에 잘 살려고 아끼다가 굶어 죽는다더라.” 절약도 좋지만, 너무 아껴서 삶 자체를 즐기지도 못하고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다.   퓨즈콘처럼 빚으로 만든 성 위에서 허황된 삶을 사는 것도 피할 일이겠지만, 리드와 같이 재산을 늘리기만 하고, 자신은 즐겨보지도 못하는 삶 또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늘 그렇지만, 지혜는 중용에 있다. 미래를 위해 늘 조용히 준비하면서도, 행복을 위해 오늘을 누려야, ‘부자로 살고, 부자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부자 로널드 리드 대형 투자은행 하바드 경영대학원

2025.12.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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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100년의 세월, 고원 박사를 기리며

올해는 시인 고원 박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외적으로 명망 있는 시인이며, 번역가이고 영문학자이셨으며 또한 민주화 운동가이시기도 했던 고원 박사는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5년 12월 8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산골에서 태어나셨다.   그해 1925년은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는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던 해였다. 일제의 식민지 만행이 극심했던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의 만주사변, 1940년대 태평양 전쟁, 이어서 해방과 분단, 1950년대 한국전쟁-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원 박사는 전주로, 서울로, 런던으로, 뉴욕으로 장소를 넓혀가며 학업에 매진하셨고 뉴욕 NYU에서 비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공부를 마친 뒤에 선생은 뉴욕과 LA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며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펴나가셨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김지하 시인을 구출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활동을 전개하는 등 유신독재와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인권, 민주화 운동을 벌이시기도 하였다.     내가 LA에서 고원 박사를 만나 길지 않은 세월 동안이나마 가깝게 교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원로 민주화 운동가로 존경했던 분이기도 했지만 충청북도 영동이 매체가 된 연유도 있었다. 내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떠나 중학교까지 다녔던 곳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이었는데 고원 박사의 출생지 영동군 학산면과는 매우 인접한 곳이었다.   2001년 ‘고향이 어딥니까?’라는 수필집을 만들어 출판 기념회를 하는 자리에 선생이 기꺼이 서평을 허락해 주신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 고향은 영동”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모른다. 당시 LA문화원장으로 나와 있던 분도 마침 영동 출신이어서 세 분이 자주 만나 고향이야기와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더해 갔었다. 선생은 평소 성품이 매우 친화적이며 유머가 많으신 분이었다.   2008년 1월, 83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뒤 정찬열씨 등 후배 문인들이 고원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해마다 고원 문학상을 선정하고 문학세계를 출판하는가 하면 영동에 고원 박사 시비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는 19일에는 LA에서 고원 박사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연다고 한다.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지금 나는 선생이 LA로 옮기시기 전에 사셨던 뉴저지 리빙스턴에서 20여 마일 떨어진 곳에 와서 살고 있다. 여기서 이곳의 친구로부터 선생이 이곳에 계실 때 교회와 커뮤니티에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셨으며 아드님은 미국교회 목사로, 따님은 주류 TV방송의 유명작가로 성공시키기는 등 자녀들을 얼마나 훌륭하게 키우셨는지를 전해 듣고 있다.   또 다른 100년이 되기까지, 고원 박사님이 품으셨던 고향과 고국에 대한 한없는 애정, 그리고 평생을 그리셨던 인간사회의 사랑과 정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 얼마나 채워져 나갈 것인지, 간절한 소원을 가져볼 뿐이다.  김용현 / 언론인열린광장 세월 고원 고원 박사 고원 문학상 충청북도 영동군

2025.12.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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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페니 중단, 가격표 개혁도 필요

링컨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있는 페니(1센트 동전)는 미국화폐의 최저 단위의 법정화폐로 1793년에 발행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232년간 계속 생산, 유통되어 왔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무부에 내린 지시에 의해 지난 11월 12일, 마지막 페니가 제조됐고, 그 이후부터는 그 생산이 중단됐다. 이유는 페니의 제조비용이 액면가치보다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무부에 의하면, 1센트 페니의 제조 비용은 1.69센트라고 한다. 이 조치로 미국정부는 약 56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게 되는 효과를 갖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페니는 여전히 미국에서 법정화폐 지위를 유지하며 마켓 등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약 3000억 개의 페니가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치는 정부 차원의 예산 절감을 위한 개혁임에는 틀림없지만, 일반 시민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전 화폐에 대하여, 제조뿐만 아니라, 아예 통용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동전을 휴대하고 다니기가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 동전을 사용할 필요가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자들 대부분은 물건을 살 때 크레딧카드를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미국에 사는 성인들 중 크레딧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연준(Federal Reserve)의 2024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 성인중 약 17~19%의 사람들이 크레딧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     또 서류미비자 등 거주 신분 형편상 크레딧카드를 신청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고 본다면, 크레딧카드 없이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들의 지급수단은 현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동전은 휴대하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꽤 불편한 점이 많다. 나는 상점에서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받게 되는 경우, 계산대에 비치되어있는 ‘기부금(donation)’ 함에 넣는다. 하지만 기부금 함이 없는 상점도 많다. 자연히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오게 되므로, 집안 어딘가에 동전이 쌓이게 된다.   제조비용이 액면가보다 더 높은 동전들을 계속, 발행, 유통, 사용케 하는 것이 과연 필요하고 합리적일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일까?     상품에 센트(cent) 단위의 가격표를 붙이는 것이 과연 필요하고 합리성이 있는 것일까? 또 ‘몇 달러 몇 센트’ 가격표, 그런 것이 지금도 물가에 영향을 끼칠까?     상품의 가격표에서 아예 ‘센트’ 단위를 없애 페니 사용을 없애는 것이 고객들의 불편을 없애는 방법일 수 있다. 센트 단위를 없애면 물가가 오른다는 주장도 있다. 이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물가가 센트 제도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 않은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동전 및 센트 단위 가격표를 없앴다. 정부는 페니 제조를 없애는 소극적 개혁을 할 게 아니라 아예 센트 단위 가격제 및 페니 동전을 전면 폐지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김택규 / 전 서울 감신대객원교수열린광장 가격표 중단 중단 가격표 단위 가격표 동전 화폐

2025.12.1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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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산타가 되어보세요

블랙프라이데이는 큰 연례행사였다. 목요일 신문을 사서 세일 품목을 검토하고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 필요하면 가족이 분산하는 쇼핑계획까지 세우곤 했다.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매장을 찾으면 이미 긴 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쇼핑 덕에 굳이 새벽에 일어날 필요가 없다.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은 내가 포장을 하고 우체국까지 가는 번거로움 없이 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필요하면 카드도 동봉할 수 있다.   지난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수시로 세일을 한다. 가격을 올려놓고 할인해 주는 행사의 메리트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 쇼핑을 그만두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일 년 12달, 거의 매주 쇼핑을 한다. 선물 때문이다.   내게는 야구팀을 구성할 수 있는 숫자의 자녀와 그들의 배우자가 있고, 9명 외에 지명 대타까지 넣을 수 있는 숫자의 손주들이 있다. 평균 한 달에 2명 정도의 생일이 있다. 여기에 어머니 날에는 딸과 며느리, 아버지 날에는 아들과 사위에게 선물을 보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면 가족 외에 친지, 교우 등과 나눌 선물을 마련한다. 잊지 않고 생일을 알려주는 스마트 폰과 쇼핑의 동반자 노트북이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선물에 대해 다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가능하면 자주 많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자칫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한다.   손주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무엇이든 하나씩 선물을 준다. 이건 첫 손자를 낳았을 때부터 시작한 일이다. 자동차, 인형, 책, 레고 등 작은 것을 하나씩 주면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노느라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게다가 할아버지 집에 가자고 하면 무릇 기대감을 가지고 올 것이다.   선물을 고르다 보면 내가 상대방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취미가 있는 사람이거나,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좋은데, 아니면 그냥 내 취향대로 가게 된다. 나 역시 예상치 못 한 선물을 받고는, 뭐 이런 것을 주나 싶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언제 이런 물건을 쓰거나 먹어보겠나.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아끼는 선물 중에는 10여 년 전에 받은 휠체어 장갑과 노트북 받침대가 있다. 내가 받아서 써 보기 전에는 편리함을 몰랐던 물건들이다. 굳이 따지자면 현금이나 선물권이 실용적이긴 하다. 하지만 선물에는 실용성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포장된 선물을 받는 즐거움, 그걸 열어보는 기쁨이 있다. 무엇보다 선물을 고르고 포장해서 건네주는 이의 따스한 마음이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있는 12월, 산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산타 온라인 쇼핑 동반자 노트북 노트북 받침대

2025.12.0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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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나는 사람이 될 겁니다”

단잠에서 깬 이른 아침, 몸을 이리저리 틀어 하루의 창문을 엽니다. 잠든 동안 단 한순간도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신 창조주가 계심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신다”는 다윗의 시편(139:2)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생각의 가닥들을 천천히 넘기다 보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10대 시절, 철없던 때의 기억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호롱불을 켜놓고 놀고 있으면 할머니는 “야야, 기름 달겠다. 불 끄고 일찍 자거라” 하고 타이르셨습니다. 장작과 벼짚을 땔감으로 쓰던 시절, 눈 오는 날 들판에서 놀다 돌아오면 누나는 따뜻하고 통통한 두 손바닥으로 내 언 손을 감싸 녹여주곤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플까 국밥을 듬뿍 담아 건네던 어머니, 그리고 호롱불 아래에서 양말의 구멍을 꿰매던 모습도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머나먼 땅, ‘꿈이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니 문득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제는 교도소 사역 일정으로 연방교도소를 찾았습니다. 재소자들이 예배당으로 올 때까지 잠시 조용히 앉아 있는데, 문득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곳에 있는가.”   잠시 후 재소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를 좌우로 나누어 놓고 줄 맞춰 앉았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온 사람도 있고, 빈손으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명 남짓의 재소자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앉았습니다.   앞에는 강단과 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서너 개의 의자가 가지런히 정돈된 작은 예배실이었습니다. 책꽂이에는 우리 ‘푸른초장’에서 매달 보내는 성경책이 단정히 꽂혀 있었습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혹시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한 재소자가 나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설교 원고에는 없는 질문을 불쑥 던졌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여기에 있습니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때 한 재소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하자,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 와 있습니까?”   참으로 좋은 질문이었지만, 선뜻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칫하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위로 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냥 웃주었습니다. 누군가 박수를 치자,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오래전부터 작은 메모지에 적어 성경책 속에 넣어 다니던 채희동 씨의 책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대화’라는 짧은 글인데, 중학교 교사와 ‘순이’라는 여학생의 대화가 소재입니다.   “순이는 뭐가 되고 싶어?”   “저는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정말.”   “그래도 뭐가 될 텐데?”   “정말 저는 아무것도 안 될 거예요. 저는 사람이 될 거예요. 선생님도, 하나님도 절대로 안 될 거예요. 저는 진짜로 사람이 될 거예요.”   참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말씀과 함께 재소자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연말입니다. 마음도 몸도 분주한 나날입니다. 못 다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올해도 얼마나 많은 격려와 사랑, 기도를 받았는지. 다 갚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그 여학생의 말처럼 “나는 진짜로 사람이 될 거야”라는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열린광장 사랑 기도 순간 마음 중학교 교사

2025.12.0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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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웬디스의 성공 철학 세 가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웬디스’는 내가 즐겨 찾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주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자료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실내 공간이 넓고, 쾌적하며 카운터에서 직접 볼 수 없는 구조여서 부담 없이 오래 머물 수 있다. 간혹 햄버거가 먹고 싶을 때는 좋아하는 칼스 주니어 햄버거를 먹기 때문에 조금은 미안할 때가 있다. 그래도 직원들은 한결 같이 친절하다.   웬디스는 데이브 토마스가 1969년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처음 매장을 연 햄버거 체인점이다. 그는 다른 햄버거 체인점들이 아직 주목하지 않았던 중서부 지역에 웬디스를 창업했다. 이는 당시 맥도날드나 버거킹의 체인점 비율이 낮았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는 1932년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태어나 6주 만에 토마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5살 때 양어머니가 죽고, 직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양부와 평탄치 않은 삶을 살며,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12살부터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양외할머니와 살기도 했다. 이때 양외할머니가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데이브에게 평생 지켜야 할 세 가지 교훈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데이브의 웬디스가 세계에서 맥도날드, KFC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진 햄버거 식당이 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첫째, 옳은 일을 해라(Doing the right thing). 둘째,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Treating people well). 셋째, 질과 서비스를 중요시하라(Important lessons about quality and service)였다. 이 세 가지는 그의 모든 사업에 적용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리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하던 그는 30대 초에 주방장이 되었고, 이때 한참 가맹점을 늘려가던 KFC의 창업자 샌더스가 찾아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망해가던 KFC 4개를 맡아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매장을 살려내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웬디스를 창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웬디스를 중서부와 북부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키워 내었다. 동북부를 대표하는 ‘파이브 가이즈’, 서부를 대표하는 ‘인 앤 아웃’과 더불어 지역별 대표 기업이 된 것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개념을 사업에 적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패스트푸드라는 이름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간편 외식점(Quick Service Restaurant)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부호임에도 “나는 그저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그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웬디스 TV 광고에 가장 오랜 기간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겸손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는 부의 사회환원 방법으로 입양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했다.   웬디스에 가면 여기저기 보이는 로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말괄량이 삐삐’는 그의 딸 멜린다의 어릴 때 모습을 본떴다. 딸의 애칭이 ‘웬디’다. 그는 딸 이름으로 상호로 삼고, 본인은 대표 햄버거 메뉴인 ‘Dave’s’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 원장열린광장 성공 철학 햄버거 식당 햄버거 체인점들 주니어 햄버거

2025.12.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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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알고리즘은 기도하지 않는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능력을 놀라울 만큼 확장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19세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은 오늘의 AI 시대를 예언한 듯한 작품이다. 지킬 박사는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고, 실험을 통해 자신의 악한 본성을 따로 떼어내려 했다. 그가 만들어낸 악한 존재 하이드는 점점 지킬을 삼켜버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악에 의해 파멸한다.   AI의 등장도 어쩌면 현대판 지킬 박사의 실험과 닮아있지 않은가 싶다. 우리는 AI를 통해 인간의 지식을 확장하고, 감정을 계산하고, 판단을 자동화한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AI는 인간의 양심과 영혼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통제되지 않은 기술은 또 다른 하이드가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지킬 박사도 처음엔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 인간의 선한 부분만 남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의 질서 밖에서 조작하려 한 오만을 범했다. 인간이 만든 약이 인간의 본성을 구원할 수 없듯, 인간이 만든 AI 역시 인간의 죄성은 구원할 수 없다.   GPU는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계산하며 AI에게 빠른 판단과 예측 능력을 제공한다. 이미 AI는 인간의 노동, 사고, 창조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며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문제는 AI가 인간의 도구로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도구처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실제 사회에서도 GPU 기반 AI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SNS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을 자극하고, 자율주행 차량과 무인 시스템은 인간의 판단 없이 결정을 내린다.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틀이 되어 버렸다. AI가 아무리 정밀해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양심과 영성이다.   GPU와 AI는 도구일 뿐, 인간 존재의 핵심을 대체할 수 없다. 오히려 AI는 인간의 욕망과 교만을 증폭할 수 있다. 지킬 박사가 자신을 시험하며 하이드에게 지배당했듯이, 양심 없는 AI는 인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 형상 안에는 선을 사랑하고 악을 회피하며, 사랑과 회개로 성장하는 영혼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GPU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해도, 알고리즘은 기도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으며, 스스로 잘못을 회개할 수도 없다.   창의적 예술, 감성적 노동, 상담, 고도의 창의적 문제 해결이 필요한 분야는 AI로 대체되기 어렵다. 복잡한 협상 및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일은 인간의 고유한 판단력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AI는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작업에서 강점이 보이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작업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단순히 정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양심과 사랑으로 옳은 길을 선택하는 존재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정답’을 제시하지만, 그 ‘정답’이 언제나 ‘선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단순히 정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양심과 사랑으로 옳은 길을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AI는 잘못된 명령을 받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인간은 잘못을 깨닫는다. AI는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사랑과 공감할 수 없다. 누군가의 눈물을 보고 함께 울어주는 마음, 상처 입은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헌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희생이며, 관계의 깊이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이요 결단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알고리즘 기도 존재 하이드 인간 존재 예측 능력

2025.12.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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