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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행복한 사람’ 조동진, LA에 남긴 노래

대한민국 60년 포크 음악사에서 어쿠스틱 기타에 본인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여 활동한 포크 1세대 싱어송라이터들은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동진,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 이필원, 백영규, 정태춘, 방의경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80년대부터 2000년대 포크 팝 음악의 중심에는 언제나 조동진이 수장으로 포크 음악계를 이끌었다.   조동진은 계절과 사람, 자연을 배경으로 노래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라 할 수 있다. 한 편의 서정시를 읊조리듯 나지막한 목소리와 노랫말, 잔잔한 선율은 그 당시 시대의 유감을 노래에 담아 표현한 가수들과는 달랐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작은 배’, ‘배 떠나가네’ 등 60여 곡에서는 한결같이 높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함동균은 “미국에 노벨문학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조동진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동진 음악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의 음악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배 뮤지션 들도 여럿이 있다. 시인과 촌장, 한동준, 유희열, 김광석, 김현철, 김광진, 조동익, 장필순, 이규호, 고찬영 등인데 그들은 지금도 추모 음악회를 통해 조동진의 음악을 기리고 음악적 유산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동진과 LA한인들의 첫 만남은 언제였을까. 1985년 3가와 라브레아 코너에 가수 이장희가 운영하던 붉은벽돌 카페 ‘로즈가든’ 콘서트가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86년 추억의 열기로 가득 찬 헐리트론 포크 페스티벌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 무대에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이종용, 양희은과 함께 무대에서 노래했다. 또 1994년 그가 음악 총감독으로 기획, 연출해 ‘제2의 대학 가요제’라 불린 ‘아남 델타 가요제’ 미주 예선 대회도 있었다.     그 이후 7080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조동진 단독 콘서트를 여러 번 기획하고 섭외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제주도 생활이 장기화되면서였다. 결국 LA 단독 콘서트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그는 나뭇잎 사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올해는 조동진이 세상을 떠난 지 8주년이다. LA에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뮤지션들과 팬들이 많다. 그리고 조동진과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대광고등학교 18회 동기동창들도 2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돌아오는 9월, 가을이 스밀 때 소규모라도 아름다운 추모 음악회를 마련해 보고 싶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조동진 행복 조동진 음악 이장희 조동진 포크 음악사

2025.06.2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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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6월28일 서울이 함락되던 날

1950년 6월28일 우리집은 성동구 신당동에 있었다. 현재 박정희 대통령 본가 앞집이다. 그날, 우리는 세상의 돌아가는 전황을 알 수 없었다. 집에 있던 최고급 라디오는 고장 났고, 신문도 오지 않았다. 오직 시내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총성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나중에야 그 소리가 국군 저격 사건의 총성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이들 폭죽 소리처럼 아득했다.   해가 뜨자마자 시내 중앙청 국기 게양대의 깃발을 확인하려던 우리의 희망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펄럭이는 깃발은 태극기가 아닌 낯선 검은색 인공기였다. 가족들은 침묵 속에 얼굴을 굳혔다.   오전 8시경, 낯선 두 사람이 동회에서 왔다며 9시까지 대문에 인공기를 그려 붙이지 않으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난생 처음 듣는 험악한 말이었다. 형은 인공기를 본 적이 없어 그릴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그런데 내가 대문을 열고 나가보니, 이미 동네 모든 집 대문에는 인공기가 붙어 있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대체 언제, 어디서 보고 그린 것일까. 온 동네는 과거의 정겨움 대신 살벌한 냉기가 감돌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9시가 넘어 나는 몰래 광희국민학교 옆 기갑부대 자리로 가봤다. 부대는 텅 비어 있었고, 장갑차도 군인도 그림자조차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신당동 율원 파출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한 명도 없고, 붉은 완장을 찬 민간인 복장의 사람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 많던 국군과 경찰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괴뢰군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빨치산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앞으로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10시가 넘자 남산 하단부 장충단 공원 일대에서 분명한 총격전 소리가 들렸다. 퇴로가 차단된 국군 잔여 병력과 추격하는 괴뢰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였다. 총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들려왔지만, 강도는 약해졌고 결국 끊어졌다. 이것이 서울 시내에서의 국군 마지막 저항이었다.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을까, 가족들은 말없이 슬픈 표정만 지었다.   11시가 가까워지자 다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무장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에는 사촌 형과 큰어머니, 아주머니가 보였다. 동숭동 청년단장으로 6.25 직전 훈련을 받고 임관한 사촌 형은 서울이 점령된 와중에 병력을 이끌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에 어떻게 병력을 데리고 올 수 있었는지 놀랍다.   사촌 형은 동덕여중 근방에서 권총을 든 동대문 경찰서 소속 형사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형사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상관의 허락 없이는 통과시킬 수 없다며 길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사촌 형은 “세상에 이런 용감한 사람은 처음 봤다”며 그를 죽일 뻔했지만, 용감함에 감탄해 빨리 피신하라고 일러 보냈다고 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 형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존재함을 깨닫는다.   12시경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서울 운동장과 동대문 부근에서 괴뢰군의 위협 사격이 계속되었다.     오후 1시경, 우리는 군인들에게 주먹밥을 먹이고, 아버지와 협의 끝에 부대를 해산시켰다. 형은 군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큰어머니의 재촉에 한강을 향해 떠났다. 그러나 형은 결국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시내에서 체포되어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나중에 전해졌다. 임신 중이던 아주머니도 9.28 수복 당시 서울역 부근에서 피신 중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뱃속 아이와 일가족 네 명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일로 아버지와 사촌 누나 역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수복 후, 큰어머니는 아들이 그리워 무덤도 묘비도 없는 동작동 국군 묘지를 찾아 “대일아, 대일아” 아들 이름을 부르며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이 땅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민족 비극 역사의 가슴 아픈 한 단면이다.     오후 3시경, 무학봉 근처에서 외롭고 가녀린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차 약해지더니 30분 만에 완전히 멎었다. 한강 이북에서의 국군의 저항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해가 기울고, 주인이 바뀐 서울의 첫 밤이 어둠 속에 잠겼다. 서울이 함락되던 그날의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주영세 / 은퇴목사·ROTC 1기열린광장 서울 함락 서울 시내 동대문 경찰서 동대문 부근

2025.06.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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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맥주병’의 회복 탄력성 선언

직원들과 함께 플로리다 키웨스트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바다, 야자수, 노을, 신선한 해산물, 단합 파티까지… 모든 일정이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일정표 한 켠엔, 나 같은 ‘맥주병’에겐 존재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스노클링. 사실 나에게 스노클링은 한 번의 뼈아픈 흑역사가 있다. 몇 년 전, 팬데믹 시국 한복판에 가족들과 코스타리카 여행을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하는 아내와 딸은 바다 한가운데 들어가 잘만 놀고 있는데, 나는 잠깐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를 싣고 온 보트 옆 밧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친 채로, 매달려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이번 워크숍 계획을 듣고는 몇 달 전부터 수영 연습을 시작했다. 수영을 잘하시는 고객에게 부탁해서 개인 교습도 받고, 유튜브를 보려 숨 쉬는 법까지 혼자 공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달을 꾸준히 연습해서 나름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키웨스트. 모두가 들뜬 분위기에서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가슴 높이의 실내 수영장 물밖에 몰랐던 나는, 깊고 투명한 바다 밑바닥이 내 눈 아래 펼쳐지는 걸 보는 순간 몸이 돌처럼 딱 굳어버렸다. 그래도 한참 동안 배 근처 물속에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딸아이가 내 쪽으로 헤엄쳐 오자, 부딪힐 것 같은 공포감에 내 몸이 뒤집혔고, 그 순간 다섯 번쯤 짜디짠 바닷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파도는 세고, 시야는 흐리고, 호흡은 꼬이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모든 수영 기술은 뇌에서 싹 지워졌다. 팔은 허우적, 다리는 마비, 그 순간, 죽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다가 여직원 한 분이 스노클 마스크를 벗겨줘서 간신히 배로 돌아왔다.   물에 젖은 수영복과, 바닷물을 잔뜩 먹어 튀어나온 배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른 건…자괴감이었다.     ‘내가 그동안 뭘 연습한 거지? 왜 아무런 쓸모가 없지?’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창피했다. 젊은 직원들 앞에서 쩔쩔맨 것도 그렇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나 자신도 우스워졌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와서도 수영장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회복탄력성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나 실패, 트라우마 같은 걸 겪은 후에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물리학에서 ‘외부 힘에 눌렸던 고무공이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 이 단어는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데 더 자주 쓰인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하면서 처음 썼고, 최근에 교육, 심리, 조직문화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굴욕을 기억하며 다시 깨달았다. 성공의 정의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중요한 건 ‘수영을 잘했느냐’가 아니라, 바닷물을 그렇게 먹고도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내게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침에 다시 수영장에 다녀왔다. 누굴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을 위해서다. 누구는 물을 먹을 수도 있고, 누구는 비둘기에도 겁을 먹을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을 끌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힘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맥주병 탄력성 회복 탄력성 실내 수영장 수영 연습

2025.06.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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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편리한 중앙일보 전자신문

신문구독을 종이에서 태블릿으로 바꾸었다. 얼마 전부터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 태블릿으로 전자신문을 보아왔다. 전자신문을 이용해 보니 편리한 점이 많다.   배달 사고가 나는 일도 없고, 비가 와도 신문이 물에 젖지 않는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신문을 가지러 나갈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친환경적이다. 다 읽은 신문은 재활용 쓰레기 통에 들어가니 추후 재활용이 된다고는 하지만, 자원의 낭비다.   전자신문은 컴퓨터는 물론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태블릿을 선호한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아 다소 불편하다. 전자기기는 한, 두세 대 구형을 쓰는 것도 무방하다. 기능상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태블릿 하나만 있으면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TV 시청, 독서, 메신저, 이메일, 게임까지 모두 할 수 있다.   다시 전자신문 이야기로 돌아가서,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태블릿으로 중앙일보를 본다. 미주판을 먼저 보고, 본국판을 보고, 그리고는 LA 타임스를 본다. 노안이 있어도 화면을 키우면 돋보기 없이 볼 수 있다. 신문을 읽다 스크랩하고 싶은 기사가 있으면 프린트를 하거나, PDF파일로 저장해 보관할 수도 있다. 영어권의 자녀들과 공유하고 싶은 기사가 있으면, 번역기능을 이용 영어로 번역할 수도 있고, 프린트하거나 파일로 저장한 기사를 카톡 등 메신저 기능이나 이-메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구독료가 매우 저렴하다. 중앙일보 전자신문의 월 구독료는 8.99달러, 6개월 선납을 하면 디스카운트를 받아 45달러다.   주변에 신문을 보지 않는 이들이 생각 밖으로 많다는데 놀라곤 한다. 물어보면 전화기로 뉴스를 다 보아 신문구독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인터넷 매체에서 제공하는 뉴스는 단편적이며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흥미로운 (또는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클릭해 보면 내용은 빈강정인 경우가 허다하다.     신문에 실리는 기사는 기승전결이 확실하며 전후좌우가 분명하다. 뉴스는 일부일뿐, 신문에는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인문학적 기사도 많이 실린다. 미주판에는 건강, 교육, 문화, 여행은 물론 지역 소식, 단체나 행사, 생활정보 등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정보들이 매일 실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이니, “preach to the choir” (믿는 사람에게 설교하기)인 셈이긴 하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이웃에게 이 글을 보내주면 좋겠다. 배달이 용이치 않은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는 전자신문을 권한다. 전자신문은 산도 넘고 물도 건너 어디라도 간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중앙일보 전자신문 중앙일보 전자신문 전자신문 이야기 이용 태블릿

2025.06.2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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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6·25는 기념일인가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제 75주년 6.25 한국전쟁 기념식을 개최한다. 총영사관 측은 한인 동포, 정치인, 참전용사, 향군단체 등이 기념식에 참석해 한국전쟁의 아픔과 희생정신을 되새긴다고 전했다.”   지난 11일자 모 신문에 실린 이 글에서 기념식이란 낱말이 옳은 것인지 한 번 살펴 보려한다. 기념이란 낱말은 지난 일을 상기하여 기억을 새롭게 하는 일인데, 그렇다고 나쁜 일까지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공적으로 기억해야 할 뜻깊은 사건이나 그런 인물을 기리는 행사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LA총영사관에서는 북한이 침범한 6.25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새로 선출된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과는 연일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등 대북관계 업무가 미약해 보여 매우 찜찜하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침범한 전쟁을 잊을 수야 없겠지만  이날을 기념하는 건 마땅한 일은 아닌 성 싶다.   미국엔 ‘Memorial Day’가 있다. 전몰장병 추도의 날 곧 현충일이다. 나라를 위하여 조국에 목숨을 바친 장병을 기념하는 날이다. 처음에는 남북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위한 기념일로 지키다가 오늘날엔 특히 한국전과 월남전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행사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6.25 한국전쟁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앞에 말한 것처럼 이 행사를 6.25 한국전쟁기념식이라고 부르면서 요란스럽게 행사를 벌려야 할까. 미군을 비롯한 외국 장병들이 참전했다고 기념식이라 일컬어야 할까.     지난 일을 상기하여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표현이 있다. ‘전쟁이 일어난다’와 같이 어떤 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 바로 ‘발발(勃發)’이란 단어다. “곧 ‘6.25 한국전 발발일(韓國戰 勃發日)’을 기억하는 행사를 열다.” 처럼 쓰면 어떨까.   물론 6.25 한국전쟁을 글자대로 기념하는 행사가 될 법한 일이 있긴 있었다. 이 전쟁에서 북한을 물리치고 한국전을 승리로 이끈 5성 장군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의 ‘육해공군 합동작전(Amphibious Operation)’의 일화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미 제10 특수군단의 해병대를 한국으로 이동시켜 한국의 북서 해안의 인천만에 주둔케 했다. 이 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독단으로 시행했는데 특히 이 해안은 조석수의 차이가 9미터나 되는 곳이므로 특수작전이 필수적인 곳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제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 지휘하의 병사들을 서울로 침투시켜 북한군을 물리치고 9월26일에 서울을 함락했다고 발표했다.   맥아더 장군은 북한을 궤멸할 작전을 세웠는데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까 봐 겁을 먹고 1951년 4월11일에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매튜 리지웨이 장군을 UN군 사령관으로 교체했다.   맥아더 장군의 북진 계획이 성공하였더라면 양단된 오늘의 한국은 통일 한국으로 우뚝 서 있는 희망찬 나라가 되었을 것이며 6.25 한국전쟁도 ‘기념’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기념일 한국전쟁 기념식 맥아더 장군 한국전 발발일

2025.06.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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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감사의 외교, 그 시작은 기억

‘점령’이란 일반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장악해 자국의 지배하에 두는 행위, 곧 약탈적 패권국의 전형적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시혜적 패권국으로, 일정한 전략적 목적 외에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 점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와는 구분된다.   미국은 이미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 이민을 통해 유입된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의 경제와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다. 이러한 기반 덕분에, 근본적으로 타국의 영토를 탐하지 않는다. 다만 4년 또는 8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구조 속에서, 외교정책의 기조가 외향적 개입과 내향적 고립 사이를 오가며 혼선을 빚는 경우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도 불사해 왔다.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닌, 국제질서의 균형을 위한 개입으로 봐야 한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뤄졌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만주를 통해 한반도로 남하하자, 윈스턴 처칠의 권고에 따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38선이 설정되었고,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미군은 여러 차례 철수를 검토했으나, 한미 양국 군 수뇌부의 반대로 전력 균형 차원에서 주둔이 유지됐다.   해방 직후 극심한 빈곤 속에 있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30년간 총 74억 달러에 달하는 무상원조가 이뤄졌으며, 이후 카터 대통령 시절부터는 차관 형식으로 전환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은 전비 670억 달러를 부담했으며, 잉여 농산물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운송 수단이 부족하자 미국 측은 자국 수송선을 이용해 부산까지 운반해주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는 한국군에 전투수당은 물론 최신 무기를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 현대화와 국가 재건이 가능했다. 이와 같은 지원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실질적인 국가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약탈적 패권의 역사적 행태를 보여 왔다. 조선시대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해 왔으며, 특히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해 통일 직전까지 갔던 남진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종주국 행세를 하며 한국에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신세를 지고도 이를 부정하는 자는 배은망덕이며, 갚지 않는 자도 배은망덕하고, 잊어버리는 자는 가장 배은망덕하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비록 작고 사소한 예일 수 있으나,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출신 마리아, 독일 출신 로미나 같은 외국인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작지 않은 메시지를 준다. 마리아는 6·25 참전용사의 손녀이고, 로미나는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독일이 수천 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받아들여 외화를 벌 수 있게 도왔던 나라 출신이다. 특히 독일은 노동력을 담보로 1억5900(당시 4000만달러)만 마르크를 추가 지원해 우리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이런 인연을 가진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하고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소박한 보답이자, 성숙한 국가로서의 예의일 것이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소장열린광장 감사 외교 한반도 주둔 약탈적 패권국 시혜적 패권국

2025.06.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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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6.25 전쟁 75주년에 즈음하여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소련제 탱크가 나타나 평화를 짓밟았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다. 3년1개월간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의 유엔군이 참전했고, 중국공산군 또한 개입하면서 한국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6.25전쟁은 해가 가면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여전히 ‘Korean War’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한국전쟁을 잘 알고 있다는 예기다. 흔히 미국인에게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리지만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미국의 개입과 희생을 상징하며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도 전쟁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LA에서 북서쪽 6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샌타폴라(Santa Paula)라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농촌 도시가 있다. 이곳에선 매년 한국전에서 희생된 이 고장 출신 전몰장병 추모식이 열린다. 백발의 한 할머니는 “오렌지 밭에서 일하던 오빠가 소집영장을 받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머나먼 한국땅에서 전사했어요”라며 고인의 명패가 있는 자리에 꽃다발을 놓고 옆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곳 인근을 지나는 하이웨이 126번 도로에는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라는 표시판이 서있다.     미국 전역에 여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한국전 참전 기념물을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베트남전쟁보다 한국전쟁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전쟁 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을 점점 잊는 듯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세대 변화로 인해 젊은 층은 전쟁보다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특히 남북관계가 복잡한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전쟁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남북한 간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강한 반면,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자유진영 간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이념사건으로 바라본다.   한국전쟁은 잊지말아야 하고 꼭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되었으며, 북한 핵 문제 등 현재의 안보 문제 또한 전쟁의 결과와 연결된다. 따라서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의 교훈을 기억하고, 역사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잊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뿌리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중요한 과정이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전쟁의 교훈을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기 위해 올바른 인식을 전해야 한다. 모름지기 기억하는 것이 곧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이재학 /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쟁 한국 전쟁 전쟁 75주년 한국전 참전

2025.06.1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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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뉘신지…” 치매 가족의 고통과 소망

6월은 ‘치매 인식의 달(Dementia Awareness Month)’이다. 서늘한 그림자처럼 노년의 삶에 드리워지는 치매, 그리고 그 가장 흔한 형태인 알츠하이머병은 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송두리째 흔드는 질병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이미 500만 명 이상의 노인이 치매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곁을 지키는 가족과 의료진, 돌봄 제공자들의 수를 헤아리면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한 거대한 과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협회는 2060년이 되면 환자 수가 지금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의학과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인류의 삶은 풍요로워지는데도, 우리는 왜 이토록 아픈 도전 앞에 서 있는 것인가.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노년의 여정을 걷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성찰과 대비에 나서야 할 때이다.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생활 수칙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 지면에서는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병원 채플린으로서 기억의 상실과 싸우는 환자들과 동행하며 길어 올린, 삶의 성숙과 시간에 관한 절절한 통찰인 까닭이다.   환자와 그 가족의 투병기는 한 편의 긴 ‘상실의 서사’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가족들은 처음에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어느 한순간 켜켜이 쌓아온 슬픔과 아픔이 터져 나오며 무너지곤 한다. 한 사람의 인격과 사회적 존재감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고통,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가족의 심적 부담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아직 의학적 완치법은 없으나,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삶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들은 수많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   상담의 최우선 순위는, 환자의 힘겨운 여정 속에서 ‘삶의 기쁨’과 ‘존재의 의미’를 선제적으로 찾아 함께 빚어가는 데에 있다. 환자는 점차 기억과 단어를 잃어가며 대화의 끈을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궁극의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발견하고 그 여정을 완주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돌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소망을 붙드는 프로그램 중 ‘매주 한 시간, 스토리 타임’은 금보다 귀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환자의 삶의 목적을 함께 다듬고, 영적 자아상을 그리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길 ‘마음의 유산’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날이 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환자를 보며, 이 시간이야말로 얼마나 꾸준하고 헌신적인 돌봄의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미래의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이처럼 우리를 실존의 중심으로 이끌며, 궁극적 신뢰의 대상을 향하게 하는 구심력이 된다.   수년 전, 필자의 선친께서 알츠하이머를 앓으셨을 때 아내와 함께 잠시나마 집에서 아버지를 돌본 경험이 있다. 평온한 얼굴로 우리를 보시거나, 말없이 뒤뜰을 바라보시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우리 내외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물으셨다.     “뉘신지….” 그 순간 필자는 하늘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제부터 아버지의 남은 여정,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성경은 이같이 위로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 모두는 유한한 존재로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피할 수 없는 질병이 닥쳐온다 해도, 그 시간 속에서 ‘궁극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 단순한 소멸이 아닌, 거룩한 축복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한다. 김효남 / HCMA 채플린 본부 디렉터열린광장 치매 가족 치매 가족 치매 환자 치매 인식

2025.06.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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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재명과 이명박의 평행이론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은 여러 면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정치의 기존 틀이나 주류에서 벗어난 이력, 성과와 경제를 강조하는 리더십, 대중 친화적인 화법,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소신을 꺾고 상대방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 같은 성향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모두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CEO에서 서울시장,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기업가적 경력을 앞세운 실용주의 리더였다. 그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시키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성장 중심의 공약을 내세웠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일하며 정치인보다는 행정가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행정 성과를 바탕으로 지지층을 확장해왔다. 두 사람 모두 엘리트 정치인 출신은 아니었고, 비주류이지만 강한 추진력과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능력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들의 경제정책 기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7 공약’(연 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세계 7대 경제강국)을 내세우며 규제 완화, 기업 친화 정책, 자원외교 등 외형 성장 중심의 경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며 ‘기본소득’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국가주도형 성장’을 앞세운다. 재정 건전성과 기업 혁신의 균형을 꾀하려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경제를 통해 국민의 삶을 바꾸겠다’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화법 또한 유사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유의 기업가식 언어와 자신감 넘치는 단어 선택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직설적인 언변과 SNS를 활용한 대중 직접 소통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들의 언어는 직관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지지자들에게는 통쾌함을, 반대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또 하나 주목할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를 이유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이념 중심 정치와 보수층과의 갈등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일 잘하는 경제전문가’로서 어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하는 바람에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전임자의 실정이 만든 반작용의 정치적 산물인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그를 괴롭혔던 사법리스크와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조사,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퇴임 후 그를 감옥으로 보내는데 기여했다. 이재명 대통령 앞에 놓였던 수많은 재판들과 사법적 위기들은 취임과 함께 잠시 멈출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민은 그가 5년 임기를 마친 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감옥에 가게 될지, 아니면 포용력을 바탕으로 실용주의에 기반한 성과 중심의 정치를 성공시켜 새로운 시대를 연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지켜볼 것이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이명박 평행이론 이재명 대통령 정치인 출신 경제정책 기조

2025.06.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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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말에 대해 깊은 통찰로 교훈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인지, 친절한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라”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사람을 설득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무기다”라고 했다. 에픽테토스도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말을 하기 전에 진실과 선의를 따져보아야 함을 강조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상처나 혼란을 줄 수 있어 먼저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이다. 말이 생각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기에 단순히 소통을 위한 도구를 넘어 사람을 설득하거나 상처를 주는 강력한 무기도 될 수 있다. 인격을 반영하고, 성격과 가치관 그리고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일본 작가이자 대체의학 연구가인 에모토 마사루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The Hidden Messages in Water)’는 자신의 저서에서 컵에 담긴 맑은 물에 아름다운 말과 부정적인 말을 했을 때, 물의 분자가 변화한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에모토는 맑은 물이 담긴 컵 앞에서 여러 가지로 대화한 후에 물을 얼려서 그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찍어 8년간 연구한 결과를 사진과 함께 책으로 집필했다. 그는 물에 긍정적인 말을 하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물 분자가 아름다운 결정체를 형성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말이나 소리를 들려주면 일그러진 결정체를 형성한다고 사진으로 보여준다.   물이 인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기에 인간의 몸은 70%가 물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기인 수정란 때는 물이 99%, 막 태어났을 때는 90%, 완전히 성장하면 70%, 죽을 때는 약 50%가 된다고 한다. 물은 다른 생물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성분이다. 그런데 이런 물이 어떤 기나 혹은 파장을 받아서 좋은 결정체를 만들기도 하고, 일그러진 결정체를 만든다는 것이 에모토의 주장이다. 그는 물로 구성된 우리 몸이 좋은 말에 좋게 반응한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아름다운 결정체로 증명하고 있다. 결국,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몸속에 있는 물이 나쁜 결정체를 이루어 몸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컵에 담긴 맑은 물에 ‘사랑한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한다는 것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물은 소리도 듣고, 사진도 인식한다고 한다. 베토벤의 ‘전원’을 들려주었을 때 한결같이 로맨틱한 결정체로 보여주고,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을 들려줬을 때도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는 일상에서 수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있다. 사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위로와 힘이 되고, 형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던진 부정적인 말이 오히려 마음을 닫게 할 때가 있다. 앞서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말이다.   서로의 신뢰에서 오는 진심이 담긴 말은 변화와 감동을 가져다주는 긍정의 힘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잘 선택된 말 한마디가 때로는 그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따뜻하고 정이 담긴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살맛이 나는 세상, 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각자의 속내를 컵에 담긴 맑은 물 앞에서 드러내면 과연 어떤 결정체로 변할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고 하는데. 박철웅 / 일사회 회장열린광장 감정 상태 통찰로 교훈 고대 철학자들

2025.06.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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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사리 카페촌, 부활의 노래

2000년대를 전후해 고국을 방문하는 미주 동포들이 자주 찾았던 추억의 명소가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이다.     서울에서 한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올림픽대로가 끝나고 하남시 방면으로 접어들면 강변의 금빛 모래, 은빛 모래가 아름답다 하여 ‘미사리’로 이름 붙여진 강변 마을이다. 이곳에 88올림픽을 앞두고 미사리 조정 경기장이 세워지고 한강변에 야영하기 좋은 캠핑장이 생기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해진 추억의 장소가 되었지만, 전성기 시절 매일 밤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인파들이 몰려들었고 카페들은 불야성을 이루며 라이브를 들었던 7080 문화특구였다.   그 당시 미주 공연에 초청할 가수 섭외를 위해 서울 방문이 잦았던 나는 기획사 사무실이 아닌 미사리 카페에서 출연하는 가수들을 만나곤 하였는데 실력파 뮤지션들의 언플러그드 무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또한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LA 지인들과의 시간도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때 인연을 맺고 LA에서 공연을 가졌던 가수들은 이태원, 하남석, 장계현, 이동원, 이광조, 유익종, 이주호, 강인원, 박강성, 최성수, 변진섭, 임지훈, 채은옥, 김세화 등이였다. 특히 유익종은 그 당시 미사리에서 최고의 가수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또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쳤던 박강성은 이곳에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사리 스타’에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는 1990년대 중반, 전원 카페 형태의 ‘전인권클럽’과 ‘록시’로 시작됐다. 이후 전성기인 2000년대 초중반에는 70~80개가 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업소 간에 스타 가수 유치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30일 출연료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에 달하는 업소도 생겼고 피크 타임 때는 커피값이 3만~4만원까지 치솟았다.   천정부지로 높아진 출연료는 결국 미사리의 문제점으로 현실화됐고 가격에 부담을 느낀 고객들은 하나 둘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업소 간의 과대경쟁은 쇠퇴의 원인이 되어 중년들의 추억의 장소로 빛나던 미사리의 영광은 아쉽게도 15년을 지키지 못하였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미사리가 최근 새로운 변신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남시 문화재단은 미사리 카페촌 부활을 위해 7080을 대표하는 포크 가수들과 대담회를 여는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한다. 포크 가수들의 꿈인 통기타 전용 공연장 건립 이야기도 나왔다고 하는데 반가운 일이다.   모두가 떠난 미사리 강변에서 ‘DOME 676’, ‘윤시내의 열애’, ‘카페 쉘부르’는 아직도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과연, 미사리는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중년들의 청춘과 낭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미사리 카페촌 미사리 카페 미사리 라이브 미사리 스타

2025.05.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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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저축의 역설

경제학에서 저축은 ‘미래소비’로 정의된다. 현재의 소비를 줄여 미래의 소비 여력을 확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소비와 미래소비는 서로 보완적인 개념이며, 소득은 이 둘의 합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월소득이 100인 사람이 80을 소비하고 20을 저축한다면, 그의 현재소비는 80, 미래소비는 20이 되고, 저축률은 20%가 된다.   2025년 1분기 기준, 미국의 평균 가계 저축률은 약 4.6%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해 100을 벌면 95.4를 소비하고, 4.6만 저축한다는 뜻이다. 최근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축 여력이 부족한 가계는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생산도 위축되며, 결국 경기 하강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축과 절약은 바람직한 경제 습관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재 2만 달러인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고 5년 후를 기약하며 저축한다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해당 차량의 가격은 4만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 5년 후의 2만 달러는 물가 상승률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력을 절반으로 하락시킨다. 은행 이자가 일부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저축 수단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초과하는 수익을 얻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면, 지금 2만 달러로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은 상황이 다르다. 중고차 가격 역시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상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5년 뒤 해당 차량을 다시 2만 달러에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대가 확산하면, 사람들은 저축보다 소비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물가 상승과 저축은 상반된 경향을 가지게 된다.   물가 상승이 없는 상황에서도 저축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면, 기업의 판매량은 감소하고, 생산은 축소되며, 고용도 줄어든다. 실직은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가속화한다. 이처럼 개인에게 미덕인 절약이 전체 경제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 부른다.   ‘착한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저축은 개인 재정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항상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경제 구조와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전통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황에 맞는 경제 감각이다. 미국처럼 현재소비 성향이 강한 나라는 절약의 역설로 인한 소비 위축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반대로 저축이 부족해 경기 침체 시 회복력과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경기는 언제나 호황일 수 없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다. 경제적 체력은 단순한 저축뿐 아니라, 혁신, 자기계발, 생산성 향상 같은 능동적 전략에서 나온다. 특히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세계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민첩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저축 역설 저축 수단 가운데 저축 현재소비 성향

2025.05.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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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새 대통령의 품격

지금 한국은 전임 대통령 탄핵 후 또 한 번의 조기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그 꽃이 아름답게 피기 위해선 건강한 토양, 곧 성숙한 정치 문화와 책임 있는 시민 의식이 필수다.   한국 정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책보다 정파적 충성심이 주요 쟁점이 되고 여야는 마치 전쟁하듯 싸운다. 정작 민생 문제나 국가 비전은 뒤로 밀린다. 이러한 구도가 반복되면서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정치 혐오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투표율이 낮아지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쟁취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가 아니라 탄핵 이후의 경제 회복,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기후 위기 대응과 같은 장기적 과제에 대한 청사진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누가 더 인기있는가’가 아닌 ‘누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치는 사람을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후보자의 인격과 윤리성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후보자를 둘러싼 도덕적 논란은 단순한 흠결을 넘어서 그가 최고 권력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의 품격은 대통령에게서 시작된다. 대통령은 단순히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의 품격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족과 관련된 윤리, 도덕 논란은 단지 후보 한 사람의 이미지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를 사생활로 치부하며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는 공적 책임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둔 지금, 유권자들은 단순히 진영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인물의 윤리성과 정치 세력의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도덕성과 공정성을 매우 중시하며 권력자에게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한다.     거대 양당 모두 당내 검증 시스템 부재와 리더십 부족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정치적 이념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인 ‘이 사람이 과연 대통령으로서 품격과 자질을 갖췄는가’를 던지고 있다.   바라건대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후보자는 국가 부흥을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묻게 한다. 또 가장 중요한  대북 문제에 대한 후보자의 일관성 있는 발언도 요구된다.     한 후보는 과거 북한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정권 교체 국면에서는 강경한 메시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국민은 외교와 안보에 있어 신중하고 일관된 리더를 원한다. 모름지기 경제는 국가의 성장을, 안보는 국가의 존폐를 뜻한다.   정치의 품격은 높은 도덕성과 정치적 책임감을 요구받는 게 당연하다.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은 ‘누구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는가’이다.     정치는 비전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은 단지 한 명의 대통령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유권자와 정치권 모두가 성숙한 책임감을 발휘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대통령 품격 대통령 탄핵 차기 대통령 한국 정치

2025.05.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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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내 영혼 어디에

작년 이맘때 문인 3개 단체가 관광 버스를 대절해 단합대회 겸 야유회를 갖고자 ‘카추마 레이크’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여류 소설가 K 작가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이름 석 자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첫 인상은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느껴졌다. 우수에 젖은 듯한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녀에게서 친필 서명이 적힌 작품 ‘내 영혼 어디에’를 선물로 받았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미국 교포인 미모의 의대생 강엔젤라와 20년 연상인 한국 인기 영화 배우 김청하가 전무후무한 뜨거운 사랑에 빠졌으나 엔젤라가 의문의 교통 사고로 사망하여 그 영혼이 우주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암으로 10년을 고생하다 죽은 70대 여인 유여사와 동반자가 되어 하늘 아래 지상을 내려다보며 나누는 대화체 형식의 중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나는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오늘도 새벽 1시쯤에 깨어난 이후로 갖은 상념에 잠겨 밤을 꼬박 새웠다. 내가 살아온 70평생을 뒤돌아보며 지은 죄가 어떤 것이었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중절시키는데 공범이 된 것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죄를 여섯 번이나 더 범하였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인간이 죽어서 육체가 땅에 묻히면 흙 속으로 사라지고, 불에 타면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육체는 이미 사라졌지만 영혼은 그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영국의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 역정’은 기독교 우화 소설로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익히는 책이라고 하는데 죽은 영혼이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비슷하나 천로 역정은 내가 무지해서인지 이해하기가 역부족이었고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 어디에’는 미사여구 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간 작품이었기에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영혼이 100%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살아온 이유는 밤에 자다가 가끔 꿈을 꾸게 되기 때문이다.     꿈이란 넋이 돌아다니며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육체는 그대로 누워 있으나 그 혼은 돌아다니며 망자를 만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꿈속에서는 이루기도 하는 등 온갖 일을 경험한다. 꿈을 꾸며 살기에 영혼은 존재한다고 여기고 살아오지만, 천국과 지옥설에는 반신 반의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영혼처럼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느냐? 확증은 없으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있다’ 라고 심증을 굳혔다.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이 우주 어디엔가를 떠돌아다닌다는데, 내가 지은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하느라 잠 못 이루고 있다.     내 여생을 자신보다 처지가 불우하고 가난하며 약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간다면 그 지은 죄를 대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께 용서받는 길이란 그것 뿐일 것이라고 가슴 속에 새겨둔다. 사후 세계에서 내 영혼을 벌하실 신 앞에 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영혼 영혼 어디 여류 소설가 우주 공간

2025.05.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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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중상모략과 보이지 않는 손

심리전 원리에 따르면, 모략(謀略)이란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주체에게 불리하도록 조작된 정보로 누명을 씌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방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단결력을 파괴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작되는 정치적 기술이자 심리적 전술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모략은 이처럼 비열한 공격 수단으로 활용된다.   최근 불거진 한 정치인의 ‘모략’ 의혹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논란을 던졌다. 유력 정치인의 부인이 ‘점쟁이를 찾아다닌다’는 날조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심에 박지원 의원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스스로 ‘정치 9단’이라 칭하며 김대중 정부에서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가 이러한 종류의 공격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안긴다.   화려한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국가의 중요한 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인사가, 나라의 장래를 논하고 인재를 보호하기보다 이러한 정치적 공세에 나섰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적 모략의 위험성과 그 파장이 얼마나 큰지는 역사가 생생히 증언한다. 지금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던 엄혹한 시절의 일화는 여전히 정치의 윤리를 곱씹게 한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으로 근무했던 필자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을 구상하고 관계 당국에 보고한 바 있다.   첫째,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사형을 집행하는 방안, 둘째,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유배처럼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는 방안, 셋째,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처럼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방안이었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상세히 기술했다.   특히 호남 지역 인사들의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임을 강조했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당시 망명 중이던 박지원 씨를 만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경제 원리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당시 필자의 이러한 건의와 결정 과정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망명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박지원 의원이 훗날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을 더욱 깊게 맺고 성장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음을 박 의원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정치적 여정 이면에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했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의 저서 발간 과정에서 뒤늦게 일부 알려지기도 했으며, 호남 지역 인사들과 손주환 의원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여러 차례 제안받았으나 사양했다. 박지원 의원의 오늘이 있기까지 이러한 알게 모를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근거 없는 중상모략은 스스로 자제하기를 촉구한다.   동양의 지혜가 담긴 팔만대장경에는 정치인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경구가 실려 있다. 경, 율, 논 삼장 중 한 구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이익을 위해 남을 모략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 경구처럼, 정치라는 어려운 사회생활 속에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보이지 않는 손’이나 역사적 인연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기본적인 윤리와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9단’이 갖춰야 할 덕목일 것이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중상모략과 정치적 모략 유력 정치인 정치적 인연

2025.05.1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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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세 개의 주머니

살아가면서 꼭 챙겨야 하는 주머니가 있다. 무조건 돈을 열심히 많이만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담고 어떻게 나눠둘 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이걸 ‘세 개의 주머니’라고 부른다. 생활비 주머니, 은퇴 주머니, 그리고 꿈의 주머니다.   가장 기본이자 생존의 근간이 되는 것은 첫 번째 주머니, ‘생활비 주머니’다. 이는 매달 벌어들이는 소득이 들어오고, 동시에 월세, 공과금, 식비, 교통비 등 생존에 필수적인 지출이 쉼 없이 빠져나가는 영역이다. 사업가의 매출이든 직장인의 급여든, 이 주머니는 은퇴할 때까지 평생 채우고 비워야 할 삶의 흐름 그 자체다. 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아지는 순간, 재정적 불안정은 시작되고 타인의 도움이나 빚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주머니는 엄격하고 일관된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에 대한 냉철한 자제력이 요구되는 재정 관리의 기초 체력과 같다.   생활비 주머니에 숨통이 트이거나, 설령 당장의 여유가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일정 부분을 떼어내 채워야 할 두 번째 주머니는 ‘은퇴 주머니’다. 젊은 시절에는 멀게만 느껴질지라도, 노동 소득이 중단되는 미래 어느 시점에 우리의 삶을 든든히 지탱해 줄 최후의 보루가 바로 이 은퇴 자금이다. 준비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시간이라는 강력한 동맹군이 복리의 마법을 부려 작은 씨앗을 거목으로 키워주기 때문이다. 은퇴 주머니를 채우는 행위는 단순한 저축을 넘어, 미래의 나에게 선사하는 자유와 독립을 위한 가장 지혜로운 투자다.   앞선 두 주머니가 현재와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세 번째 ‘꿈의 주머니’는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열정을 현실로 만드는 동력원이다. 이 주머니에는 사업 투자금, 창업 시드 자금, 혹은 자녀 교육이나 평생 숙원 사업 등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재원이 담긴다. 이 자금의 일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에도 과감히 활용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지만, 성공한다면 그만큼 인생의 지평을 넓혀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꿈의 주머니는 단순히 돈을 불리는 것을 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희망의 기금이다. 로또 한 장으로 한 주를 행복하게 꿈꾸듯, 이 주머니를 채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이나 예상치 못한 행운처럼 찾아온 목돈을 이곳에 넣어두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 개의 주머니를 구분하기는커녕, 하나의 주머니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도 많다. 하루 벌어 하루 쓰는 구조 속에서 미래를 위해 따로 떼어둘 여유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그리고 바로 그럴수록 마음속에서만큼은 이 세 개의 주머니를 명확히 나눠둘 필요가 있다. 당장 실천하기 어렵더라도, 내가 벌어들인 돈의 쓰임새를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고 각 영역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재정 관리의 방향성은 확립되기 때문이다. 방향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지금 당신은 어떤 주머니를 얼마나 채우고 있는가? 당신은 삶의 재정이라는 설계도를 그리기 위해 세 개의 주머니를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 마음속으로라도 그 주머니들을 그려보고 있는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잡한 재정이라는 삶의 설계도를 한 걸음씩 완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돈은 목적이 아닌 도구이며, 그 도구를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주머니 은퇴 주머니 생활비 주머니 주머니로 하루하루

2025.05.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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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오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파-란 하늘 아래 언덕에서 우리들이 즐겁게 노래부르면 하늘을 포르르 날아가는 종달새들도 좋아라 노래부른다.”   어린 시절 입가에 맴돌던 이 동요 가락이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문득 귓가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5월의 푸른 하늘 아래, 언덕 위에서 뛰놀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 맑은 노랫소리는 울긋불긋 만개한 온갖 꽃들과 힘차게 비상하는 바다새들처럼 아름답고 활기찬 삶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비록 작금의 국정 혼란으로 마음 한편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찬란하게 도래한 이 아름다운 5월을 외면하고 침묵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이 계절의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을 노래할 힘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덧 하얀 은방울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5월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한 해의 다섯 번째 달인 5월(May)의 어원은 ‘인생의 봄’ 또는 ‘봄꽃을 따다’라는 뜻을 지녔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 5월은 그 자체로 봄날의 절정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니, 어찌 이를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월은 푸름의 계절이다. 눈 시리도록 맑은 하늘도, 생명력 가득한 땅도, 넘실거리는 바다도 온통 푸른빛이다. 이 생동하는 푸른 5월은 새싹처럼 피어나는 어린이들의 세상인 동시에, 넉넉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달이다.   5월의 아름다움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으로도 다가온다.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 만개한 꽃들의 향연, 그리고 화사하게 단장한 이들의 모습까지. 이 아름다운 계절에 문득 잊히지 않는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메이플라워(Mayflower)’이다. 5월에 피는 꽃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했던 이들의 배 이름으로 더욱 친숙하다. 이 배에 올랐던 신앙 선조들이 먼 훗날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메이플라워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아름답고 의미 깊은 5월에는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이 태어나고,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서 5월은 어떤 발자취를 새겼을까. 한국 최초의 아동문학가이자 ‘어린이‘라는 존칭을 처음 사용한 방정환 선생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며 이 땅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했다. 그의 뜻을 기리며 이때부터 매년 5월 5일은 온 국민이 어린이를 기념하는 날이 됐다. 또한 한국 최초의 예술가곡으로 평가받는 ‘봉숭아’를 작곡한 홍난파 선생은 이 곡을 발표한 지 4년 뒤인 1924년 5월, 중앙기독교회관에서 직접 바이올린 연주로 대중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다.   5월의 정취는 예술을 통해서도 깊어진다. 문득 요하네스 브람스의 자장가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 피었네. 잘 자라 내 아기 밤새 편히 쉬고, 아침에 창 앞에 찾아올 때까지.”   5월에 태어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떠올려본다. 서양 음악사의 거장으로 꼽히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의 이름은 물론, 그들보다 후대에 활동한 독일의 요하네스 브람스가 1833년 5월 7일에 태어났고, 놀랍게도 러시아 음악의 위대한 별 피터 차이콥스키 역시 1840년 같은 날에 세상의 빛을 봤다. 이 외에도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만든 어빙 벌린(1888년 5월 11일, 미국) 등 5월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이름들을 많이 품고 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이야기 요하네스 브람스 서양 음악사 이름 하나

2025.05.1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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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너 늙어봤냐"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내가 요즘 즐겨 듣는 서유석의 노래 제목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젊은 사람들 눈에는 나이 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을 듯싶겠지만, 살아보면 이 나이에도 새로 경험하고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난 어려서부터 냉수만 마셨다. 할머니가 누룽지를 끓여 구수하게 만든 숭늉을 드시며 “시원하다”하는 것이 도무지 생소하고 낯설었다. 받아 놓은 물은 차갑지가 않아, 추운 겨울에도 마당의 수도에서 갓 받는 얼음 같은 냉수만 마셨다.     우리 집 정수기에서는 온수, 냉수, 상온, 이렇게 세 가지 온도의 물이 나온다. 어느 날부터 냉수 대신 상온의 물을 마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게다가 누룽지를 끓인 물이 구수하니 맛있어졌다. 점심을 잘 먹은 날은 끓인 누룽지를 저녁으로 먹는다. 전기밥솥에서는 누룽지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아내가 집에서 누룽지를 만든다.     언제부턴가 조금 힘을 쓰는 일을 할 때면 “끙끙”소리가 절로 나온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끄응.” 옆에 있던 여학생이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본다.   나이가 드니 큰소리가 싫다. 남이 내는 큰소리는 물론 내가 내는 큰소리도 싫다. 세상사 좋은 게 좋은 거다. 지내고 보면 다 별것 아니다. 가끔은 아내가 할 말은 하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며 답답해 한다. 사람이 변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심하게 따질 수 있겠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싫어 일을 그만두었다. 매출과 수익이 주는 스트레스가 힘들었다. 막상 일을 그만두고 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없다. 일을 그만두면 스트레스 없는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전에는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스트레스가 된다.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콜레스테롤과 당도 적당량이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스트레스가 주는 긴장감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몸이 알아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걱정을 하고 산다. 남들이 보기에는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걱정은 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실은 삶의 의미인 것이다. 죽어보지 않아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죽은 사람이나 걱정이 없으려나.   나이가 들면 죽음이 다가오는데, 도리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차츰 사라진다. 이것도 자연이 마련해 주는 배려가 아닌가 싶다. 차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 결국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모양이다.   70~80대의 인생 선배들은 “너 70 넘어 봤냐, 난 60대를 지나 봤단다”라고 말할 것이다. 과연 70줄에 들어서면 또 어떤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될지 자못 기대하고 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열린광장 온수 냉수 냉수 대신 가지 온도

2025.05.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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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이 멀다

또 일을 저질렀다. 가든그로브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났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다시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여자 화장실 앞에는 항상 여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 싶다.     아내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가서 나오지 않으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텔레비전을 보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 일어나서 주차장으로 나가려는데, 아내가 밖에서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와 곧바로 주차장으로 갔다고 했다.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아내가 나가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아내를 떼어놓고 혼자 다니는 ‘전과’가 있다. 오래전 일이다. 그랜드캐년에 갔었다. 그곳은 몇 번 갔어도 항상 그 웅대함에 압도당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흙탕물이다. 누군가가 “음료수로 마시기는 너무 걸쭉하고 농사짓기는 너무 묽다”라고 했다. 나는 군중과 같이 움직였지만, 아내는 풀 한 포기, 돌 하나를 세심히 관찰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내를 놓쳤다. 한 참 돌아다니다가 쉼터서 만났다. 아내는 뿔이 났다. 혼자 다니다가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어찌 혼자 구경 왔느냐 묻더란다. 아내는 “당신은 날 생과부로 만들었어”라고 툴툴거렸다.   단체 여행을 가도 아내를 깜빡 잊어버리고 혼자 다닌다. 몇 년 전 동유럽에 갔었다. 안내자는 나와 아내가 따로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해, 아내의 손을 끌어다 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같이 다녀요”라고 주의를 줘 모두 웃었던 일도 있다.   성경에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인천에서 경기도 향남의 시골 초등학교로 전근 발령이 났다. 미군 부대 박봉으로 시동생을 도와주며 살아가는 남편을 보다 못해 교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매주 토요일이면 한 시간씩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인천에 왔다. 그리고는 하룻밤 자고 다시 향남의 학교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냉면도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아들이 8개월 조산아로 태어나서 2파운드가 되지 않았다. 아기의 포동포동한 모습은 없고 작고 약하기만 했다. 마침, 인천 기독 병원에서 인큐베이터를 최초로 도입한 혜택으로 아들을 살렸다. 아내는 교사를 포기하고 아기를 키우는 데 전념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지금 청년 장로 그리고 심장전문의로, 매년 필리핀으로 단기 의료선교를 다녀온다. 모두 천우신조(天佑神助)다.   아내가 3년 전 뇌졸중을 일으켜 심신이 쇠약해졌다. 나도 구순을 넘겨 걸음걸이가 시원하지 않은 몸으로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다. 아내에게 빨리 보상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가도 아내 사이 아내 여자 화장실

2025.05.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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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잊히지 않는 LA 폭동

4월이 저물었다. 엘리엇의 시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4월은 나에게도 잔인한 달이다. 폭동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느새 33년 전의 일이 됐다. 잊힐만한 세월인데 잊히지 않는다. 1992년 4월29일, 폭동은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들을 석방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그 무렵 두순자 사건의 판결을 보도함으로써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을 야기하며 LA 코리아타운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4.29는 우리 식구가 LA에 정착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일어났다. 남편은 은행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은행 면접을 마친 상태였다. 출근을 앞두고 일어난 폭동으로 나는 예정보다 일주일 늦게 일터로 나갔다. 그 사이 주방위군이 출동했고 5월4일이 되어서야 폭동은 끝났다.     폭동이 진압되고 나서 은행에 출근했다. 폭동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피해자들의 실상은 다양했다. 화마로 전소된 가게를 보며 실의에 빠진 분들이 많았다. 물건은 약탈당했어도 가게는 그대로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란다.     장사가 안 되던 차에 가게가 전소돼 보상금을 받게 돼 오히려 잘됐다는 분도 있었다. 세금을 잘 낸 분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보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 또 다른 희망을 내보이기도 했다.   폭동이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돈벌이만 열중하던 한인들은 정치력이 약함을 깨닫고 한인 정치인을 세우기에 한마음이 됐다.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 지역에서 장사하던 한인들이 그들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그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현지 타인종과 교류를 활발히 해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은행을 퇴직하고 지금은 리커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25년이 훌쩍 넘었다. 베트남 사람과 히스패닉이 대다수인 지역이다. 그동안 험한 일을 셀 수 없이 겪었다. 도둑이 가게에 들어와 물질적 손실을 낼 때마다 4,29를 생각하곤 했다. 개인적인 4.29를 수없이 겪었다. 눈앞에서 물건 들고 뛰는 도둑을 여러 번 마주했다. 나도 어느 순간 두순자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손님과 도둑을 구별할 수 없으니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말은 예의 갖춰 하나, 가슴 한구석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먹고 사느라 바쁜 이민자일 터. 타인종 손님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히스패닉은 우리 자녀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됐다. 그들과 결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타인종 이민자들은 우리 아이들의 급우며 직장 동료며, 우리 며느리, 사위가 됐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하겠지만 양심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남의 것을 훔쳐 살아가는, 옳고 그름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 그들의 가슴이 말랑말랑 해지길 바란다.      4월이 지나갔다. 오늘도 손님을 미소로 맞는다. 잊히지 않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김현실 / 수필가열린광장 폭동 la 폭동 타인종 이민자들 히스패닉 지역

2025.05.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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