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너 늙어봤냐"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난 어려서부터 냉수만 마셨다. 할머니가 누룽지를 끓여 구수하게 만든 숭늉을 드시며 “시원하다”하는 것이 도무지 생소하고 낯설었다. 받아 놓은 물은 차갑지가 않아, 추운 겨울에도 마당의 수도에서 갓 받는 얼음 같은 냉수만 마셨다.
우리 집 정수기에서는 온수, 냉수, 상온, 이렇게 세 가지 온도의 물이 나온다. 어느 날부터 냉수 대신 상온의 물을 마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게다가 누룽지를 끓인 물이 구수하니 맛있어졌다. 점심을 잘 먹은 날은 끓인 누룽지를 저녁으로 먹는다. 전기밥솥에서는 누룽지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아내가 집에서 누룽지를 만든다.
언제부턴가 조금 힘을 쓰는 일을 할 때면 “끙끙”소리가 절로 나온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끄응.” 옆에 있던 여학생이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본다.
나이가 드니 큰소리가 싫다. 남이 내는 큰소리는 물론 내가 내는 큰소리도 싫다. 세상사 좋은 게 좋은 거다. 지내고 보면 다 별것 아니다. 가끔은 아내가 할 말은 하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며 답답해 한다. 사람이 변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심하게 따질 수 있겠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싫어 일을 그만두었다. 매출과 수익이 주는 스트레스가 힘들었다. 막상 일을 그만두고 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없다. 일을 그만두면 스트레스 없는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전에는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스트레스가 된다.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콜레스테롤과 당도 적당량이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스트레스가 주는 긴장감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몸이 알아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걱정을 하고 산다. 남들이 보기에는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걱정은 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실은 삶의 의미인 것이다. 죽어보지 않아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죽은 사람이나 걱정이 없으려나.
나이가 들면 죽음이 다가오는데, 도리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차츰 사라진다. 이것도 자연이 마련해 주는 배려가 아닌가 싶다. 차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 결국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모양이다.
70~80대의 인생 선배들은 “너 70 넘어 봤냐, 난 60대를 지나 봤단다”라고 말할 것이다. 과연 70줄에 들어서면 또 어떤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될지 자못 기대하고 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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