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예방주사를 맞다

최숙희 수필가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대사다. 내가 최근 아들과 겪은 일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최근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일이 준 만큼 물론 보수도 줄었을 것이다.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허덕이는 게 안쓰러웠다. 아이를 믿어서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건강 해칠까 걱정했다. 5년을 버텼으니 할 만큼은 했다, 싶었다.
일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내 출판기념회에서 아들을 손님들에게 인사시켰다. 마침 한 분의 아들이 법대를 나와 대형 로펌에 다니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타와 춤을 배우러 다니고 회사의 인턴으로 만난 아가씨와 데이트도 하며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뉴욕 사는 딸이 휴가로 2주간 LA 집에 온다는 소식에 구순 노모가 손녀딸을 볼 겸 한국에서 오셨다.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러 부엌에 있느라 부자지간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아빠와 언성이 높아지는 거 같더니 아들이 제집으로 가버렸다. 다정하고 속 깊은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가족에게 터놓을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와 사무친 서운함이 많았나. 그렇다 해도 할머니까지 계신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 얘기로는 출판기념회에서 자기가 비교당했다며 화를 냈단다. 예민한 건 알고 있지만 아이의 속 좁음이 남편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아기 때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눈을 맞추면 세상을 모두 가진 양 행복했지. 아이 덕분에 으쓱하며 행복해지고, 겸손을 배우며 불행한 주위의 사람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려서 예쁜 짓 한 걸로 평생 할 효도를 다 한 걸까.
자식에게 쏟아부은 정성을 희생으로 여기며 아이를 나의 분신으로 생각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서운해 했다. 성공한 자식을 이민자의 트로피로 여기며 보험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 특히나 아들은 서운할 일만 남았을 터이니 미리 예방주사를 맞은 걸까.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부모와 자식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대가 그에게 족쇄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내 사랑이 그를 가둬 버리면 안 된다. 내 꿈이 사랑하는 이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믿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주라. 내가 할 일은 그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워 주는 것.’(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중) 오래전에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그나저나 ‘어머니날’을 잊은 건 아니겠지.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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