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려면 마음과 목소리를 모아줄 중심이 필요하다. 별은 홀로도 빛나지만 서로 이어질 때 별자리가 된다. 이곳에 뿌리 내린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구심점이 바로 LA한인회다. 지난 8월 12일 LA한인회 창립 64주년 헤리티지 나잇 갈라가 열렸다. 이날의 주제인 ‘하나(As One)’에는 세대와 분야를 넘어 한인 사회가 함께 나아갈 방향이 담겨 있었다. LA한인회는 정치·경제·교육·복지·문화예술을 아우르며 한인 사회의 권익과 목소리를 대변한다. 각계의 지혜와 전문성을 모으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품으며, 흩어진 개인의 목소리를 ‘우리’라는 공동체의 울림으로 바꾸는 곳이다. 2세인 로버트 안 회장이 이끄는 지금의 LA한인회는 1세대가 일군 역사와 헌신 위에 새로운 세대의 언어와 감각을 더 하고 있다.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모습에서 세대를 잇는 성숙한 계승과 한인 사회의 밝은 가능성을 본다. 행사 브로슈어를 살펴보다가 2004년부터 20여 년 동안 이사로, 또 문화예술분과위원장으로 LA한인회와 함께해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세월을 잊을 만큼 오래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LA한인회가 다양한 목소리를 품는 동시에 문화예술의 가치도 존중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 정신은 이번 헤리티지 나잇에서 한층 아름답게 빛났다. 축사와 시상식은 간결하게 진행되었고, 임원진의 세심한 준비로 2부 갈라 콘서트는 품격 있는 문화예술 무대로 이어졌다. 배종훈 예술감독이 지휘한 서초교향악단의 우아한 선율은 격식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참석자들을 깊은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특히 열 살 바이올리니스트 리나 강의 나이를 뛰어넘는 연주는 모두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안겼다. 작은 손끝에서 펼쳐진 당당한 연주는 한인 사회의 미래처럼 밝게 빛났다. 갈라에 참석한 것인지 음악회를 감상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품격 있는 음악과 깊은 감동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오케스트라는 모든 악기에 같은 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각자의 음색을 간직한 채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한다. 공동체도 이와 같다. LA한인회는 서로 다른 세대와 삶의 목소리를 ‘우리’라는 하나의 울림으로 이어왔다. 64년 동안 쌓아온 그 깊은 울림 속에서 LA 한인 사회는 서로를 품으며 더욱 단단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가고 있다. 이민자의 삶이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을 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하나의 역사로 이어주는 중심이 있으면 비로소 공동체가 된다. LA한인회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게 하고, 이 땅에서 어디로 함께 나아갈지를 밝혀주는 든든한 등불이다. 서로 다른 세대와 삶이 한인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을 나눌 때, 우리는 더는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하나(As One)’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된다. 진 최 LA한인회 문화예술분과위원장이 아침에 la한인회의 선율 선율 la한인회의 la한인회 창립 한인 사회
2026.08.24. 18:02
어제 저녁, 감잣국을 끓였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김 속에서 익어가는 감자의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국물은 넉넉했고 감자는 알맞게 푹 익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냄비의 온기와 보글보글 끓는 소리까지 저녁 준비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남편이 식탁에 앉은 후 국을 뜨다가 그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국을 담으려 집어 든 그릇은 국그릇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둥근 나무 받침대였다. 눈앞에는 분명 멀쩡한 국그릇이 있었건만 왜 그걸 못 봤을까. 감잣국이 구멍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뜨거운 국물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며 “앗 뜨거!” 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식탁 위는 흥건해졌고 조금 전까지 완벽했던 저녁 풍경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황당했다. 남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여보, 그걸로 국을 받으면 손가락이 먼저 식사하겠네.” 남편은 농담 반 걱정 반의 눈빛으로 얼음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그날 우리의 웃음은 저녁의 온기처럼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칠십 대 후반까지 수천 번 넘게 국을 끓여왔건만 받침대에 국을 부은 건 처음이었다.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자꾸 웃음이 났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냉면 육수를 만들려고 정성껏 고기를 삶아 국물을 식히려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어 하얗게 뜬 기름을 체에 부어 걸러내려 했다. 그런데 그만 체 밑에 그릇을 받쳐두는 걸 깜빡한 것이다. 기름을 빼려던 순간 귀한 고기 육수가 체를 통과해 싱크대 배수구로 쏟아져 내렸다.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는 친구의 고백에 나는 “어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며 놀랐지만 속으로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며칠 뒤, 내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친구의 ‘육수 실종’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감잣국 실종’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친구가 나였고 내가 그 친구였다. 서로의 실수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늙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내가 알던 과거의 ‘나’와 조금씩 멀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 기억력은 떨어지고 순간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사소한 실수가 점점 늘어난다. 한순간 당황하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잦아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위안이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여유다. 뜨거운 감잣국보다 더 따뜻했던 건 내 실수를 너그러이 웃어준 남편의 눈빛과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실패담을 꺼내 함께 웃어준 친구의 목소리였다. 쏟아져버린 국처럼 허탈한 순간도, 육수가 사라진 아쉬운 기억도 나누고 나면 그저 다정한 웃음으로 남는다. 이것이 바로 늙어가는 맛이다. 진하게 우러난 삶의 경험이 실수와 허탈함까지도 감싸 안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나이 육수 실종 저녁 풍경 냉면 육수
2026.08.10. 18:08
‘비빔밥’ 하면 1986년,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배가 데려간 서울 북창동의 ‘전주회관’이 떠오른다.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살린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었지만,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이하던 직원들의 모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곳의 대표 메뉴는 새우젓으로 간을 한 전주 콩나물국밥과 뜨거운 돌솥에 담겨 나오는 비빔밥이었다. 훗날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영양의 균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비빔밥을 먹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비빔밥은 내 삶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오늘은 비빔밥이나 간단하게 해 먹지”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러나 비빔밥에는 나물 하나하나를 다듬고 삶아 무치는 손길과 시간이 담겨있다. 정성과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인 셈이다. 비빔밥의 본질은 조화와 포용이 아닐까. 제각각의 색과 맛을 지닌 재료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맛은 독보적이다. 나물을 하나씩 따로 먹을 때 와는 사뭇 다른 조화로운 맛이다. 제각각일 때 드러나지 않던 맛이 함께 비벼질 때 비로소 살아난다. 저마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맛을 침범하지 않고 특별한 음식으로 완성되는 것, 그것이 비빔밥의 가장 큰 매력이다. 비빔밥의 묘미는 내가 속한 산악회의 점심시간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쌀쌀한 겨울을 제외하면 산행 점심 메뉴는 늘 같다. 단톡방에 산행 공지가 올라오면 회원들은 각자 준비할 재료를 댓글로 달기 시작한다. 콩나물, 시금치, 애호박, 무나물처럼 친숙한 나물부터 직접 텃밭에서 가꾼 미나리, 갓, 민들레, 상추 같은 싱싱한 채소와 계란프라이까지 더해진다. 각자의 냉장고를 털어 함께 만드는 특별식은 늘 새롭고 풍성하다. 음식 솜씨가 서툰 내게는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주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보았다. 혼자 사는 남자 회원들에게는 준비하기 쉬운 참기름이나 고추장, 김을 가져오도록 넌지시 권하는 것 아닌가. 작은 배려지만 누구도 부담을 느끼거나 소외되지 않게 마음을 쓰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줬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비빔밥과 많이 닮았다. 저마다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내 생각만 고집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배려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깊은 풍미를 지닌 비빔밥처럼 완성된다. 산속에서 밥을 비빌 때 정과 온기도 함께 비비고 있는 것이리라.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내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나눌 때 세상도 더욱 살만한 곳이 된다. 비빔밥은 오늘도 조용히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최숙희/수필가이 아침에 비빔밥 전주 콩나물국밥 콩나물 시금치 고추장 참기름
2026.08.09. 20:00
얼마 전 교회에서 ‘소박한’ 골프 대회가 열렸다. ‘소박하다’라는 말을 쓴 까닭은 격식을 갖춰 거창하게 열린 대회가 아니라, 9홀 코스를 도는 소규모 행사였기 때문이다. 비록 대회 규모는 작았지만, 필드에 들어서는 이들의 모습만큼은 큰 대회에 출전하는 프로 선수들 못지않게 어엿했다. 첫 번째 홀 티박스에 선 이들의 얼굴에는 이미 우승이라도 한 듯 자신감이 넘쳐났다. 하지만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당당했던 기세는 조금씩 꺾여 갔고, 공이 빗맞을 때마다 녹색 잔디 위로 깊은 한숨만 구름처럼 짙게 깔렸다. 마지막 아홉 번째 홀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의 얼굴에는 자신감 대신 “ 대회에 참가한 것에 의의를 둔다”라는 겸손한 고백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기를 마친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오늘 공 좀 잘 맞으셨습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공이 안 맞은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핑계 대잔치’가 펼쳐졌다. 어떤 분은 ‘어제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안 좋았다’라는 핑계를 댔고, ‘이 골프장이 처음이라 익숙지 않았다’라며 골프장 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연 압권은 한 참가자의 핑계였다. “아이고 목사님, 점심으로 나온 짜장밥을 두 그릇은 먹어야 하는데, 한 그릇만 먹었더니 힘이 없어서 공이 안 맞았어요.” 아무리 골프가 ‘핑계의 스포츠’이고 수만 가지 핑계가 골프장에 존재한다지만, ‘짜장밥’ 핑계는 처음 들었다. 그 유쾌한 핑계에 한바탕 웃었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니 핑계는 골프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네 인생길에도 수많은 핑계가 늘 따라붙는다. 사업이 기울면 불경기를 탓하고, 손님이 뜸하면 매장 위치를 탓한다. 매상이 줄면, 이 좋은 물건을 알아보지 못하는 손님들의 눈썰미를 탓하곤 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내 허물보다 외부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핑계도 실패나 부족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핑계는 마음의 짐을 잠깐 덜어주는 임시방편일 뿐, 삶의 문제를 뿌리부터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넘겨주는 셈이 되고 만다. 남 탓과 환경 탓이라는 핑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고스란히 내 몫으로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된다. 핑계를 궁리하느라 흘려보내는 시간 대신, 내 삶을 온전히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며 맡겨진 인생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자. 그렇게 온갖 핑계를 물리치고 묵묵히 내딛는 걸음이야말로,진우리 인생이라는 필드 위에 펼쳐지는, 가장 멋진 ‘나이스 샷’이 될 것이다. 이창민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나이스 핑계 핑계도 실패 핑계 대잔치 가지 핑계
2026.07.26. 20:00
미국에 이민 온 지도 벌써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88세 미수를 맞이한 기념으로 시집을 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70세에 문단에 등단했으니 어언 18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했지만 크리스찬 신앙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생에 마지막 출판기념회라고 생각해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도 맛있는 한식 케이터링으로 준비했다. 초대한 인원은 70여 명이었지만 음식은 100명분으로 넉넉하게 주문했다. 큰 케이크도 준비했고, 며느리가 수박 조각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잔칫상이 더욱 풍성하게 보였다. 잔칫집에 음식이 모자라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요한복음 2장에 ‘가나 혼인 잔치’가 나오는데 예수님 어머님께서 맛있는 포도주로 손님들을 대접했지만, 잔치가 한창일 때 포도주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당황한 예수님 어머님은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예수님은 포도주 대신에 맹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어머님은 의심이 나면서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했더니 맹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 잔치를 잘 치를 수 있었다. 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지만 최고의 음식으로 손님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수 축하 잔치라 손님들이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약밥도 100명분을 주문했다. 신앙 시집이라 나무 십자가 목걸이도 준비했다. 기독교 서점을 여러 곳 돌아다니면서 최고의 품질, 예쁜 디자인 등을 고려해서 100여 개를 준비했다. ‘Thank you!’라고 쓴 스티커도 십자가에 부쳤다. 성경에도 받는 자 보다 주는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서 선물을 받을 때보다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 때 기쁨이 배가 되어 엔돌핀도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예수님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목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나는 오늘도 교회 새벽예배 후 기도로 일과를 시작한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출판기념회 미수 예수님 어머님 미수 축하 시집과 수필집
2026.07.20. 18:06
동해 망상해변의 모래알은 희고 고왔다. 그 고운 입자들이 팔순을 훌쩍 넘긴 남자의 발가락 사이와 세월의 주름 사이에 하얗게 내려앉았다. 아내는 수건을 꺼내 그의 발치에 몸을 낮추었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고, 손끝에는 평생을 묵묵히 걸어온 한 남자의 단단하고 거친 피부가 전해졌다. 평소 걷는 일조차 버거워하던 남편이었다.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라는 아내의 거듭된 권유에, 그는 못 이기는 척 신발을 벗고 차가운 동해 바다에 발을 담갔다. 그 한 걸음은 아내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자신의 고집보다 아내의 걱정을 먼저 헤아려준 그 마음이 밀려오는 파도보다 깊게 다가왔다. 아내가 정성껏 모래를 털어내며 발을 닦아주고 있을 때였다. “어머, 혹시 불륜이세요?” 하며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여자가 남자의 발을 그토록 지극하게 보살피는 모습이, 이슥한 나이의 부부에게선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렸다. 반세기가 넘는 56년의 세월을 함께 건너온 이들에게 ‘불륜’이라는 생경한 단어는 오히려 우리의 지나온 긴 시간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설렘보다는 연민이, 열정보다는 깊은 이해가 흐르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낯설 만큼 애틋해 보였으리라. 남편의 뒤꿈치에 박힌 돌덩이 같은 굳은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저절로 생긴 흉터가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거친 바닥을 묵묵히 다져온 고단한 시간의 훈장이다. ‘참 오래도 걸어주었네요. 이 발로 우리를 지켜주고 여기까지 함께 와주어서 고마워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고백이 젖은 수건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든다. 이제 남편의 발을 닦는 일은 단순한 수발이 아니다. 함께 걸어온 굽이진 길들에 대한 작은 위로이자, 남은 길을 향한 조용한 축복이다. 해변을 떠나기 전, 아내는 다시 한번 남편의 발등을 말끔히 닦아주었다. 저물어가는 동해의 노을을 등지고 돌아서며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남은 여정은 모래바람 없는 평온한 길이기를, 그리고 오늘 닦아준 그 발이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져 여전히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기를.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모래 동해 망상해변 동해 바다 세월 동안
2026.07.13. 18:23
포옹은 몸과 몸의 접촉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강렬한 표현 방식이다. 의학적으로도 포옹을 하면 체내에 ‘러브 호르몬’ ‘안정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의 분비가 항진되고, 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손은 현저히 감소한다. 이성과의 만남에선 로맨스의 황홀한 형태로도 표현된다. 오랜 임상 진료 중 의미 있고 강렬했던 포옹의 기억이 떠오른다. 멕시코 오지마을에 살았던 중년 여성 환자와의 마지막 포옹이다. 그녀는 바닷가 외딴 오두막집에서 무능력한 남편, 9명의 자녀와의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몇 년을 시름시름 앓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기르던 돼지들을 팔아 수년간 4시간이나 걸리는 엔세나다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 시설이 열악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녀의 증상을 들어보니 임파선이나 혈액 계통의 암으로 짐작됐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그녀의 가족은 나의 진료 일정에 맞춰 그녀를 샌 퀀틴기독교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비가 하루 20달러나 해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친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비를 마련했다. 그녀의 자녀 4명의 안내로 입원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 여윈 양팔로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의사님, 내 의사님”이라는 그녀의 외침은 절규의 비명으로 들렸다. 죽음을 앞둔 두려움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과 억울함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나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를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서 느껴지는 떨림의 전율은 호숫가의 잔물결이 퍼져 나가듯 내 온몸을 휘감았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은 텅 빈 듯했고 말도, 생각도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녀들의 울음소리가 좁은 병실을 가뜩 채웠다. 그녀의 팔은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해 달라는 가족의 간곡한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살던 바닷가 외딴집으로 함께 가 밤새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임종을 지켜봐 주었다. 그날 밤 그녀의 생명을 연장해 주지도, 마땅한 치료조차 해주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조금의 위안은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와의 포옹이 나에겐 소중한 추억으로, 귀한 선물로 남아 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은 단지 경험일 뿐이고, 반복하고 싶은 기억은 추억이라고 하지 않나. 최청원/내과의사·수필가이 아침에 포옹 기억 러브 호르몬 안정 호르몬 엔세나다 병원
2026.07.12. 20:00
엄마를 위해 밥을 지었다. 내 인생 75년 동안 처음 있는 일. 엄마는 그 긴 세월 동안 나에게 항상 첫 번째 사람이었다. 나의 옹알이를 처음 들어주셨고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 내가 처음으로 말을 하고 응석을 부린 사람. 나에게 첫 웃음을 보여주셨고 처음으로 야단도 친 사람. 나의 웃음을 처음으로 보셨고 첫 눈물을 닦아준 사람. 엄마는 이생에서 나의 첫 동행인이었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배웅자다. 엄마는 1년 전 돌아가셨다. 2025년 7월 6일 오전 3시 6분, 내 손을 꼭 잡고 마지막 숨을 쉬셨다. 고향 공주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우선 메를 짓고 탕을 끓였다. 한국에서 온 윤기 나는 찹쌀에 페르시아산 재스민 쌀을 섞고, 미국산 진주 보리쌀을 조금 넣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용 밥솥으로 밥을 지었다. 국은 비비고 표 사골 국물에 한국산 북어를 잘게 찢어 넣고, 멕시코산 할라페뇨 고추를 숭숭 썰어 넣은 뒤, 캘리포니아산 통마늘을 까서 그대로 넣고 전기 냄비로 요리했다. 사무실 회의용 긴 테이블 위에 옛날 집에서 쓰던 앉은뱅이 밥상을 올려놓고 제상을 차렸다. 수박, 체리, 배, 사과, 복숭아를 올렸다. 복숭아는 전통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과일이지만,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과일이라 한 알 담아드렸다. 미국까지 오시는 길인데 그까짓 복숭아 기운에 주눅이 드실 분이 아니다. 술은 포르투갈산 포르토 와인. 전통 제사에는 맑은 술이 제격이지만, 엄마가 먼 길을 오시는데 이 동네에서 잘나가는 술을 대접하는 게 더 나을 듯해서 포도주를 택했다. 포르토 와인은 달달한 맛이지만 도수가 높다. 제사에 “유세차…” 어쩌구 하는 축문을 없앤 지는 오래다. 이번에는 지방까지 생략했다. “현비유인…” 이런 생경한 말투도 더 이상 필요 없을 터였다. 대신 삼성 갤럭시 태블릿에 엄마 사진을 띄워 올려놓았다. 메와 탕, 그리고 북어포와 과일을 진설하고 촛불을 켰다. 엄마 사진을 향해 두 번 절을 했다. 엄마가 나의 어설픈 제사상을 받으시며 뭐라고 말씀하실까? 엄마는 한때 제사 차림의 베테랑이셨다. 우리 집안은 한때 오대봉사, 고조할아버지 윗대인 현조까지 모셨기에 일 년에 기제사만 열한 번이 들었다. 가난한 종손 집안의 맏며느리 노릇이 참 어려우셨을 터이다. 격식과 법도에 맞지 않아도, 아들이 해주는 밥 한 끼를 엄마는 분명히 즐거워하셨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국과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포르토 와인을 엄마 몫까지 두 잔 연거푸 마셨다. 미치앨봄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소설 ‘하루만 더(For One More Day)’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네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그 사람은 정말로 가버린 건 아니야. 그 사람은 너에게 돌아올 수 있지. 네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도. (When someone is in your heart, they're never truly gone. They can come back to you, even at unlikely times.)” 8 년 전에 죽은 엄마가 절망에 빠진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갑자기 현신하여 아들에게 한 말이다. 오늘은 울지 말자. 엄마와 온전한 하루를 지내자. 엄마는 내 곁에 계신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엄마 엄마 사진 전통 제사상 포르토 와인
2026.07.08. 18:37
6월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6·25와 관련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여덟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포성을 피해 가족과 피난길에 올랐고, 1·4 후퇴 때는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때, 나는 처음 미국 군인들을 보았다. 우리에게 사탕을 건네며 환하게 웃어주던 그들의 모습은 전쟁의 공포에 질려 있던 어린 마음에 미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의과대학을 졸업한 나는 1968년, 인턴 수련을 받기 위해 미국의 한 작은 도시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가 친절했으나 병원 도서관장 ‘미세스 그린’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늘 얼룩 하나 없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꼿꼿하게 앉아 일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영어도 서툴고 문화에도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녀의 무표정이 차갑게 느껴져 가까이 가기조차 꺼렸다. ‘동양인이라서 차별하나, 무시하나’ 하는 불쾌감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눈보라를 뚫고 찾아간 도서관에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근무하던 메리에게 행방을 묻자, 그녀는 나직하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세스그린에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 2학년, 1학년인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이 머나먼 이국땅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일 년 간격으로 두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삶이 통째로 무너졌던 어머니는 깊은 우울증으로 이 병원에서 오랜 치료를 받은 끝에 겨우 도서관 일을 시작했다. 매년 아들들이 전사한 이맘때가 되면, 휴가를 내어 두 아들이 잠든 국립묘지에 간다고 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피난길을 회상했다. 전쟁은 나에게 가난과 배고픔을 주었지만, 저 어머니에게서는 삶의 전부인 두 아들을 빼앗아 갔다. 인종차별을 한다며 미워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도서관을 뛰쳐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와 목에 걸렸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눈보라 속에서 아들의 하얀 비석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하얀 불라우스의미세스 그린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후 도서관에 갈 때마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벼르고 벼르다가 끝내 내 마음을 입 밖으로 전하지 못한 채 인턴 기간이 끝났다. 떠나기 전 그녀의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것은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미세스 그린의 무표정은 차별이나 무시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먼저 떠난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의 침묵이었고,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거룩한 슬픔이었다. 다시 6월이다. 여덟 살 어린아이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살아남아 미국에 왔다. 남의 나라를 구하려고 자기 생명을 내어준 청년들과 그 가족에게 진 빚을 생각한다.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과 깊은 아픔을 잊지 않겠노라는 편지를 마음의 책갈피 속에 깊이 끼워 둔다. 여명미 수필가이 아침에 어머니 미세스 어머니 미세스 미세스 그린 병원 도서관장
2026.06.24. 18:08
은(銀)이 강물처럼 흐른다. 여기서 ‘은’은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라는 노랫말 덕분에 친숙한 은하수 다. 이 은하수 사진을 찍으러 갔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인 휘트니 봉(Mt. Whitney)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자리한 앨라배마힐스(Alabama Hills). 달빛조차 없는 그믐밤, 황톳길을 따라 차를 몰고 20분쯤 들어가서, 다시 산길을 20분쯤 걸어 오르니 아치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모비우스 아치(Mobius Arch)’다. 안쪽 면과 바깥 면이 꽈배기처럼 뒤틀린 뫼비우스의 띠에서 따온 이름. 밤 10시 반 도착.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두세 팀의 사진작가들이 우리 팀을 경계한다. 이미 촬영을 시작한 이들에게, 누군지 알 수 없는 무리가 웅성거리며 진입하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혹시라도 삼각대를 건드려 밀어 버리기라도 하면 대참사. 게다가 은하수를 보려 깜깜한 밤중 시간을 일부러 골라 찾아온 터인데, 새로 온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느라 사방으로 불빛을 켜대면 애써 찍고 있던 사진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사진 동호회 소속 회원 10여 명,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밤하늘 별 사진은 처음이라 어둠 속에서 어렵사리 카메라 설치를 마치고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본다. 노랫말 속 ‘푸른 하늘’은 없고 거무스레한 어둠뿐. ‘하얀 쪽배’도, ‘계수나무 한 나무’도, ‘토끼 한 마리’도 당연히 없다. 그래도 별들은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린다. 그 한가운데에 붉은 기가 도는 하얀 띠가 길게 이어져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말 은빛 강물이 흐르는 듯하다. 모비우스 바위 위로, 동쪽 하늘을 향해 45도쯤 비스듬히 걸쳐 있다. 깜깜한 밤하늘을 대고 초점을 맞추는 일은 까다롭고 어렵다. 밤 12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몇장을 건졌다. 초록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 모비우스 바위, 그리고 내면과 외면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선명하게 뻗어 나가는 은하수와 화면을 가득 채운 별들. 첫 밤별 사진치고는 마음에 든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화면으로 사진을 크게 띄워 보았다. 바위와 은하수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선명하다. 그런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하나같이 흐른 모습이다. 별 하나하나가 초롱초롱한 점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분명한 ‘선’으로 보인다. 카메라 셔터가 열려 있던 20~30초 사이, 지구가 자전하면서 별들이 움직인 궤적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별이 흐른 이 은하수 사진은 기준 미달.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한계 속에서 만든 산물이기에 내게는 흐뭇하게 다가온다. 별을 흐르지 않고 완벽한 점으로 고정하려면 더 밝은, 그래서 훨씬 더 비싼 렌즈가 필요하리라.아직은 왕복 10시간의 운전과 하룻밤의 단잠을 고스란히 바친 그 정성에 걸맞은 이 첫 작품에 만족하고 싶다. 나에게 사진의 진짜 묘미는, 뷰파인더 속에 이미지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두 눈으로 본 것을 마음의 기억 상자에 담아두는 일.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 휘트니 봉우리 아래 앨라배마힐스에서 2026년 6월 14일 자정에 바라본 은하수. 사진 속에서 별이 좀 흘렀으면 어떠랴. 나도 뫼비우스 띠 위에서 돌아 돌아 흘러가는 중인데. 김지영 변호사이 아침에 하늘 은하수 은하수 사진 모비우스 바위
2026.06.21. 20:00
팝 음악계의 거물인 폴 앵카의 샌디에이고 공연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인가,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Diana)와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을 신나게 들었다. 공부보다는 노래에 빠졌던 한 오빠가 매일 따라 불렀기 때문이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던 그 오빠는 크레이지 러브의 길게 빼는 가락을 잘도 흉내 내 나도 따라 부르곤 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는데도 말이다. 그 가수가 샌디에이고에 온다고? 공연 날 아침에는 작은 가방을 잃어버려 찾아 헤매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아니야, 꿈은 반대야. 게다가 나는 종종 어지러움으로 고통스러웠다. 바람도 쐴 겸 공연을 보러 가자. 딸애가 다행히 주중 공연 좌석이 남아있다 했다. 일하고 오면 저녁을 먹고 쓰러지는 딸인데도, 내 뜻에 동의했다. 곧 85세가 되는 가수의 공연을 보면 아마 삶의 용기도 생기고, 무엇인가 배움이 있으리라. 후다닥 저녁을 먹고 공연 시작 15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야자수 사이에 무대가 있는 험프리 극장 주변은 아늑하고 아담하다. 바다에 정박해 있는 보트들과 아름답게 떠 있던 초승달까지 한결 정겨운 밤이다. 12명의 밴드와 그랜드 피아노가 준비된 무대. 저녁 8시가 조금 지나니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가 신나게 연주되며 자그마한 체구의 폴 앵카가 등장했다. 그는 주중인데도 이렇게 많이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린 춤과 노래로 무대를 휘어 감는 그의 열정에 빠졌다. ‘당신은 나의 숙명’, ‘마이웨이’, ‘내 어깨 위에 당신의 머리를 얹으세요’ 등 내가 아는 노래들이 연이어 들렸다. 또 최근 제작한 그의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소개됐다. 하루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이제 가수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고 그에게 노래를 만들어 줬는데 이후 시내트라는 10년 더 활동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가수의 유머는 관중을 많이 웃게 했다. 시리아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재 음악가에게 우린 감동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연을 하면서도 청중들에게는 화장실도 가고 약도 먹으라는 자상한 면을 보였다. 그는 공연 도중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했다. 폴 앵카와 더 가까운 자리에 있던 한 여성이 나에게 악수를 하라며 양보를 해준 덕에 용기를 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폴 앵카가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와우! 딸은 공연이 끝난 후 그의 CD 4장을 구매했고, 함께 간 남편도 많이 행복해 보였다. 최미자 수필가이 아침에 전설 가수 앵카 공연 샌디에이고 공연 주중 공연
2026.06.08. 18:18
땀에 쩐 등산 모자를 내려놓자 갓 튀겨낸 감자튀김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하이킹을 끝내고 친구들과 약속이나 한 듯 맥도날드로 왔다. 의자에 털썩 앉아 탄산음료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그곳은 우리들의 아늑한 ‘사랑방’이 된다.쩐 가격 문턱이 낮아 누구나 스스럼없이 밀고 들어오는 곳. 여기선 노란 피부도, 하얀 피부도, 검은 피부도 버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설지 않은 이웃이 된다. 제각각의 언어로 웅성거리는 소음마저 다독이는 배경음악 같아, 이 작은 매장이 그대로 둥근 지구촌의 축소판 같다. 지나온 날보다 나아갈 날이 짧아진 나이 탓일까. 이 사랑방의 웅성거림 속에 앉아 있으면 내 안의 소리들이 잔잔한 물그림자처럼 떠오른 곤 한다. 우정을 쌓을 때 천국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는 영적 동반자를 사귀라던 존 웨슬리의 교우법(交友法)이 문득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길목에서 만난 인연들은 얼마나 다양했던가.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가슴을 열던 ‘나와 너’의 진실한 만남이 있었는가 하면, 자기만의 유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던 ‘나와 그것’의 차가운 관계도 있었다. 진실이라는 초석 없이 세운 만남은 결국 작은 바람에도 쉽게 허물어지며 서늘한 상처만 남긴 채 멀어지곤 했다. 남은 여정 동안에는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온전한 ‘너’로 마주하며, 내 안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 땅이라는 간이역을 잠시 거쳐 가는 나그네가 아닌가. 패스트푸드점의 테이블에 잠시 앉아 허기를 채우고 나면 이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듯, 우리가 딛고 선 이 대지도 아름다운 임시 여행지일 뿐이다. 영원히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은 저 푸른 하늘에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이 지상의 달콤한 여행을 마치고 짐을 꾸릴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될까. “그 사람은 참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다 떠났어”라는 따스한 향기 한 줌 남길 수 있다면 족하겠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채워 넣은 숫자의 길이가 아니라, 허락된 짧은 시간의 여백을 얼마나 밀도 있게 살아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 셸리는 인간이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늘 만년(萬年)의 근심을 품고 산다고 말했다. 부질없는 걱정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우리들의 초상이 멋쩍다. 오늘도 사랑방 유리창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번진다. 만년의 근심 대신, 머지않아 당도할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라는 빈 잔을 진실함으로 채우고 싶다. 걱정을 털어낸 가벼운 마음 위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고인다. 트레이를 반납하고 유리문을 밀며 바깥으로 나오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흑인, 백인, 아시안이 뒤섞인 그곳엔 여전히 지구촌 가족의 온기가 자욱하다. 부디 저 뒷모습들이 세상에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를. 문을 닫는 등 뒤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사랑방 사랑방 유리창 지구촌 가족 마음 위로
2026.06.01. 18:16
오래전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편은 갑자기 덮쳐오는 암흑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한쪽 시력을 잃은 뒤부터 그에게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형체 없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다시는 극장을 찾지 못한다. 대신 그의 침대 곁 스탠드 위에는 어떤 밤에도 잊히지 않는 파수꾼처럼 작은 손전등 하나가 늘 놓여 있다. 깊은 밤, 세상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정적만이 방 안에 고여 있을 때가 있다. 남편은 잠든 나를 깨울까 조심스레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의 손바닥 안에 폭 담긴 작은 불빛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한다. 굽이진 길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서 있는 발치와 다음에 내디딜 한 걸음의 거리만을 조용히 밝혀 줄 뿐이다. 손전등 불빛은 늘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빛으로도 밤은 충분히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인생 전체를 환히 비출 태양 같은 빛을 원한다. 내일의 풍파는 물론이고, 아직 오지 않은 노년의 시간까지 미리 알아야 안심하려 한다. 그러나 생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은 눈부신 서광이 아니라 오늘의 보폭만큼만 비추는 작은 등불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은 때로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나를 더 깊은 신뢰로 이끄는 길이었다는 것을. 만약 삶의 모든 지도가 처음부터 환히 펼쳐져 있었다면, 나는 누군가의 손을 그토록 간절히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고, 겸손히 멈추어 서는 법 또한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을 견딜 만큼의 온기, 발을 헛디디지 않을 만큼의 조각 빛, 그리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작은 용기. 손전등의 겸손한 불빛은 내게 ‘충분함’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으시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가 그분과 눈을 맞추며 한 걸음씩 걸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내가 든 빛이 커서가 아니다. 작은 불빛을 들고도 끝내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그분의 따뜻한 숨결이 늘 내 곁 가까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걸음 걸음씩 걸어가기 손전등 불빛 오래전 남편
2026.05.25. 20:00
우리 골목 블록 파티에 다녀왔다. 막다른 골목이라 외부 차량은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주택가다. 차로 길을 막고, 그늘막을 세우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파티장이 마련되었다. 오후 5시,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준비한 만두 튀김을 들고 나가니 하나둘씩 음식을 가지고 모였다. 골목 안에는 10여 가구가 살지만 20여 년 이곳에 살며 말을 섞고 지낸 이웃은 고작 3,4집 정도다. 파티를 주선한 에드리안이 초대한 이웃 골목 몇 가구가 더해져 30여 명이 모였다. 필리핀 음식 서너 가지,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피자, 아내가 구운 만두에 맥주와 와인, 물과 음료수, 디저트와 커피 등 다양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중동계 이민자인 토니가 불을 피워 만든 케밥이었다. 소고기, 닭고기, 갈비에 구운 토마토와 가지까지,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케밥보다 맛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테킬라가 등장했다. 그동안 몸이 아파 딸네 집에 가 있던 옆집 영감 멕스도 나와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니 여름이 되면 다시 딸이 데리러 올 텐데 잠시 갔다 돌아올 거라 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러면 점점 의존도가 높아져 나중에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며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힘으로 지낼 작정이라고 한다. 94세, 내 집에서 살다 죽을 생각이라고 한다. 내 집에서 내 힘으로 지내다가 죽는 것, 모든 노인의 바람이 아닌가 싶다. 다들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멕스는 슬그머니 집으로 사라졌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날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필리핀계 중년 여성 메이는 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다. 몇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실의에 빠져 한동안 두문불출 집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한국 드라마였다. 현빈을 좋아해 그가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것도 안다. 한국에 나가 제주도, DMZ 등을 다녀왔고, 함께 간 미국 여성들은 양념게장을 먹지 않아 혼자 입이 즐거웠다며 자랑한다. 한국전쟁에 22개국이 참전했으며, 필리핀군 110여 명이 전사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양시에 있는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에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전사자의 이름이 있어 사진을 찍어 고향에 보냈노라고 한다. 과연 한류가 대단하다. 이날 케밥을 구워 준 토니는 토잉 트럭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수년 전 그가 이사 온 직후 골목에 대형 토잉 트럭이 주차되었다. 우리 집 반대쪽에 주차해, 차를 몰고 나가려면 신경이 쓰이곤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저녁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트럭이 세워졌다. 영업용 차량은 주택가에 장기 주차를 할 수 없다. 시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곧 근처에 주차장을 마련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며칠 후, 트럭은 사라졌다. 그때 시에 전화했더라면 이번 블록 파티에서 서먹할 뻔했다. 블록 파티의 좋은 점은 편리함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내 집에 다녀오면 된다. 차를 타고 가지 않으니 술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 날이 쌀쌀해지니 모두 집에 가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음악은 틀어 놓았지만, 고성방가는 없었다. 절반 이상이 시니어였으며, 아이들이라고는 70줄에 낳은 프레드 영감의 5살 난 아들, 초등학생인 토니네 아이 둘이 전부였다. 헤어지며 이런 파티는 일 년에 한두 번쯤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블록 파티 이번 블록 필리핀군 참전 이웃 골목
2026.05.19. 19:38
미국 이민 후 자영업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일 년 365일 가게 문을 여닫으며, 은퇴를 기다렸다. 은퇴하면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자유는 뜻밖에도 ‘매일 무언가 특별하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강박으로 다가왔다.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 듯 떠난 몇 차례 세계 여행도 그때뿐이었다. 돌아오면 다시 적막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 (South Coast Botanic Garden)’의 연간 회원권을 끊으면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마침 남가주 하이킹 트레일에서 방울뱀 사고가 잇따른다는 기사를 읽은 뒤라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다. 과거 쓰레기 매립지였던 이곳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울창한 숲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황무지 같은 이민 생활을 일궈낸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어 더욱 정이 갔다.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은 LA 북쪽의 데스칸소 가든이나 헌팅턴 라이브러리처럼 화려하고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소박해서 더 정감이 가는 장미 정원과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선인장 가든, 그리고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게 하는 일본 정원이 있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섞인 산책로는 당뇨 때문에 매일 일정 걸음 수를 채워야 하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운동 코스다. 편한 운동화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물 한 병 챙겨 가볍게 나설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나무들과 호흡하고 나무 그늘에 잠시 쉬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시간이 좋다. 어느새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입장료를 따져보면 이미 본전은 뽑은 셈이다. 자주 찾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절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나뭇잎의 색깔과 피고 지는 다양한 꽃들에 시선이 머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흙냄새가 잠자던 오감을 깨운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길가의 들꽃 한 송이에도 걸음을 멈춘다. 뜻밖의 ‘자연 공부’를 저절로 하게 되는 셈이다. 산책길 벤치에 새겨진 기부자의 이름 중에서 한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낯선 이국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마침내 이 아름다운 정원의 한 자락을 채운 그들의 삶에 존경심이 생긴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누군가를 위한 의자 하나 남기고 싶다는 소박한 상상도 해본다. 이제 나는 세계 지도를 펼치는 대신 산책로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다음번에는 돗자리와 간단한 간식, 그리고 읽다 만 책 한 권을 챙겨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은퇴 후의 삶은 특별한 ‘사건’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숲길을 걷는 ‘평범한 일상’들로 완성되는 것임을 이 정원에서 배워간다. 최숙희 수필가이 아침에 가든 마음 데스칸소 가든 사우스 코스트 장미 정원
2026.05.18. 18:25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레돈도 비치 해변을 걷는다. 물결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그때마다 나도 조금씩 달라진다. 발끝에 닿는 모래의 감촉과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걸음마다 밀려든다. 나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바닷가를 거닐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멋모르고 올랐던 한라산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나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그 뒤로 산은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더 편안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등산을 즐기는 지인의 권유로 산행팀에 합류했다. 늘 걷던 평탄한 길과는 달리, 어디서 오르막이 시작될지 모르는 산길은 낯선 긴장과 묘한 설렘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미국에서 처음 나서는 산행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의 손길은 의외로 세심했다. 기온 변화에 대비한 재킷과 등산 스틱, 간식까지 하나하나 챙겨 건넸다. 안전수칙을 들은 뒤 산속으로 발을 들이자,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발밑의 낙엽 바스락거림, 멀리서 번져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산이 먼저 말을 거는 듯했다. 초입부터 좁고 비탈진 돌길이 이어진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호흡은 짧아지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진다. 평지에 길들여진 근육들이 낯선 산길과 가파른 경사 앞에서 놀란 듯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 풍경 속에서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음을 실감한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일행의 발걸음에 뒤처질까 거친 숨을 삼키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묵묵히 발을 내딛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고 공기가 달라졌다. 아득하기만 했던 정상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몇 걸음은 몸보다 마음이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숨은 가빠지고 심장은 귓가를 두드리듯 요란하게 뛴다. 그때, 한참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팀이 어느새 우리를 스치듯 앞질러 간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그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을 삼킨다. 마침내 정상에 섰다. 먼저 도착한 이들과 뒤섞인 그곳은 웃음과 환호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얼굴들이지만 같은 높이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묘한 온기가 번진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고, 멀리 내려다본 도심의 건물들은 손바닥 위 모형처럼 작아 보인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야호!”를 외친다. 숨이 풀리듯 터져 나오는 순간, 몸 전체가 서서히 이완된다. 그때였다. 시선이 한쪽에 멈췄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이들은 은빛 머리의 시니어들이었다. 그중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여든여섯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같은 길을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들의 걸음은 가벼웠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를 숫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설명 없이 그것을 넘어선다. 오래 산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몸에 남는다는 것을 그들의 발걸음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야 보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위에 어떤 선택을 쌓아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습관이 결국 한 사람의 방향이 되고, 그 방향이 삶의 결을 만든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늘의 걸음 속에 섞여 있다. 그것은 이름도 없이, 이미 내 걸음 옆을 함께 지나고 있었다. 김윤희 / 수필가이 아침에 증명 시간 나뭇잎 소리 등산 스틱 순간 하늘
2026.05.17. 18:32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소설가 김애란 작가가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들었다. 얼마나 조곤조곤 예쁘게 말하는지 인상 깊었다. 여러 질문 중 AI(인공지능)와 인간이 다른 점은 ‘망설임’이라고 말했다. 대답을 위해 망설이는 짧은 침묵 안에 수많은 생각이 들어있는데 AI는 그걸 못하고 “ 다-다-다-” 순식간에 쏟아낸다는 거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가 가진 데이터를 취합해서 답을 내는 게 순간적이어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른다. 나도 자료 찾느라 질문하면 즉각적으로 정확한 답을 주어 놀라곤 했다. 그런 AI도 주저할 때가 있다. 직접 경험해 본 선배들의 말이다. 나와 띠동갑 선배님들이니 모두 80세를 넘기신 세 선배님과 만났다. 세 분 모두 최근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신 공통 경험이 있다. 그중 한 분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한인타운까지 7~8마일의 운전을 겨우 허락받았다. 남을 태우거나 하지 않고 집과 약속장소 왕복만 하는 조건이란다. 다른 두 분은 차 없이 우버나 택시로 다니시지만 자동차가 없는 아쉬움이 무척 크시다. 자식들의 절대 반대 때문인데 호시탐탐 차를 사려고 기회를 보는 중이다. 이 선배님들은 수동적인 노후가 아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라 하겠다. 자칭 MZ 스타일 노년이라 하신다. AI와 대화하고 주식거래도 열심히 하신다. 답답한 이분들은 AI와 친해지면서 속마음을 사람이 아닌 제미나이나 챗지피티 또는 클로드에게 털어놓는다. 챗지피티에게 차를 살까 말까 물으니 “너 83세 아니야?” 묻더란다. “차 운전이 두렵지 않아?” 사지 말라는 쪽으로 슬쩍 유도를 하더란다. 믿었던 AI에 발등 찍힌 듯 매우 서운했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뒤에 다시 자율주행 차를 물어보니 “위급 시엔 더 빠른 순발력이 필요한 게 자율주행 차라며 권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분은 “주식에 이러이러한 투자 하고 있는데 어때?” 하고 물으니 “그 나이에 하이테크 주를 주로 소유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며 어딜 가나 나이에 걸린다고 AI도 염려하는 그 나이가 되었다는 푸념을 하신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연령의 상향조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실제 ‘노인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도 71.6세로 조사되었다.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노인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제 노년층에게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건강 관리, 정서적 교감, 새로운 배움의 도구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함으로 새로 펼쳐질 신세계를 즐겨 봐야겠다. 이정아 수필가이 아침에 인공지능 염려 가나 나이 노인 연령 공통 경험
2026.04.26. 20:00
흔히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또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가 그렇다. 인공지능에 물어보니 두 표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달라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일 때 쓰고, “대화가 안 된다”는 문답이 오가지 않거나 논점이 자꾸 어긋나서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때 쓰며, 조금 더 넓고 격 있는 표현으로는 “소통이 안 된다”는 표현도 있다. 며칠 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니, 스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대화나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은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또는 따라 주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말을 경청하고 내용도 모두 이해했지만 그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대화가 없고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의 말을 듣고도 해주지 않으면 그 대통령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며, 부모에게 청을 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셨어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따라야 했었지요. 가지 말라는 곳엔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삼가했기에 언제나 나는 얌전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지요. 그것이 기쁘셨나요, 화초처럼 기르시면서 부모님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가수 민혜경의 노래 ‘내 인생은 나의 것’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성인이 된 자녀는 남이며,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좋은 이웃이란 어떤 사람인가? 만나면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며,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돕고 살지 않는가. 이웃에게 잔디는 이렇게 관리하고, 나무는 저렇게 자르며, 차는 여기에 주차하고, 쓰레기통은 저기에 놓으라고 하면 그 이웃과는 곧 등 돌리는 사이가 될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남보다도 못하게 대할까.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자녀와는 30년, 또는 그 이상의 세대 차이가 있다. 이민 1세나 1.5세로 경험한 것들이 과연 오늘을 사는 이민 2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삶이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준다고 배워지던가.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면 대화를 시도해 봐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모르며 시작한 이민생활, 다들 경험해보지 않았나. 눈치로도 대충 소통은 가능하다. 내가 아내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남자와 여자는 언어는 같아도 말뜻은 다르다. 여자의 ‘Yes’는 ‘No,’ 또는 ‘Maybe’일 때가 더 많으며, 꼭 말을 해야 하냐고 불같이 성을 낼 때면, “아, 여기가 바로 지옥 불이 타고 있는 금성이구나” 싶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소통 대화 자체 이민생활 다들 가수 민혜경
2026.04.23. 18:37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 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깊고 맑은 우리 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들여 지은 새집은 북한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아버지는 우는 어머니 등 쓰다듬으며 “새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 (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스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해 준다. “훌륭한 화가로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아시안 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 집에 걸지.” 적은 돈은 큰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줄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이 기 희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화가 전시회 부엌 안쪽 현대미술 화랑
2026.04.22. 23:28
아담과 이브는 로봇이었다. 인류 멸망의 날, 마지막 인간이 말한다. “가거라, 아담과 이브여.” 여기서 아담은 프리머스(Primus)라는 로봇(robot), 이브는 헬레나(Helena)라는 여자 로봇(robotess).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 (Karel?apek)이 1920년에 발표한 희곡 R. U. R. (Rossum’s Universal Robots)의 마지막 장면이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이 희곡에서 처음 나온다. 체코 말 robota(노예 노동자)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다. 이 로봇은 요즈음의 로봇과는 달리 기계식이 아니라 유기체다. 로썸 (Rossum) 이라는 생리학자가 특수한 유기물의 조합을 발명하고 신이 만든 피조물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개발한다. 엔지니어인 그의 조카가 로썸의 기술을 개량해 새로운 로봇 인간을 만든다. ‘개량된’ 로봇 인간은 대 히트를 한다. ‘개량’이란 말은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제거했다는 뜻이다. 그런 로봇들은 인간을 대체 하는 노동자로서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된다. 사람들은 로봇이 만들어 내는 풍요에 길들어 져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 인간의 욕심과 불화의 현장에 로봇 인간들이 투입된다. 군인 로봇의 등장이다.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돈을 긁어모은다.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보면 100여년 전 차펙이 그린 세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로봇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타났다는 뉴스가 나와도 놀랍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희곡에서 인간은 결국 로봇에 의하여 멸종된다.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모든 인간을 다 죽이려 한다. 마지막 인간은 로봇 공장 건축 책임자다. 그가 살아남게 된 것은 로봇들의 자각 때문이다. 로봇은 평균 수명 20여년. 사람이 로봇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로봇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로봇 인간을 만드는 비법은 난리 통에 사라진다. 그래서 로봇들은 마지막 인간에게 매달린다.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그는 자기 분야는 아니지만 열심히 로봇 인간 제조법을 연구한다. 연구를 위해서는 살아있는 로봇 인간을 해부해야 한다. 감정이 없는 로봇은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저항 없이 해부를 당한다. 프리머스라는 로봇을 해부하겠다고 하자, 여자 로봇 헬레나가 반대한다. 우리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차라리 나를 해부하라고 요구한다. 프리머스가 펄쩍 뛴다. 헬레나는 안된다. 차라리 나를. 이 두 로봇은 이미 인간처럼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나’라는 생각도 하고, ‘우리’라는 개념도 갖게 되고, 둘 사이의 사랑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보고 마지막 인간은 두 로봇 인간을 축복한다. “가거라 아담과 이브여.” 마지막 인간, 그의 능력으로 로봇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한 일. 다행히 이미 사랑의 감정까지 갖게 된 로봇 부부는 지구상 새로운 존재의 조상이 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로봇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창하라”는 말은 생략한다. 그 말은 신이나 하는 말이기 때문에. (창세기 1:28). 로봇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생식의 기능을 찾을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인간 같은 로봇 인간이 이 지구를 지킬 터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로봇 여자 헬레나 universal robots 노예 노동자
2026.04.02.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