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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전설의 가수, 폴 앵카 공연

팝 음악계의 거물인 폴 앵카의 샌디에이고 공연 소식을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인가,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Diana)와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을 신나게 들었다. 공부보다는 노래에 빠졌던 한 오빠가 매일 따라 불렀기 때문이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던 그 오빠는 크레이지 러브의 길게 빼는 가락을 잘도 흉내 내 나도 따라 부르곤 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는데도 말이다.   그 가수가 샌디에이고에 온다고? 공연 날 아침에는 작은 가방을 잃어버려 찾아 헤매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아니야, 꿈은 반대야. 게다가 나는 종종 어지러움으로 고통스러웠다. 바람도 쐴 겸 공연을 보러 가자. 딸애가 다행히 주중 공연 좌석이 남아있다 했다. 일하고 오면 저녁을 먹고 쓰러지는 딸인데도, 내 뜻에 동의했다. 곧 85세가 되는 가수의 공연을 보면 아마 삶의 용기도 생기고, 무엇인가 배움이 있으리라.   후다닥 저녁을 먹고 공연 시작 15분 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야자수 사이에 무대가 있는 험프리 극장 주변은 아늑하고 아담하다. 바다에 정박해 있는 보트들과 아름답게 떠 있던 초승달까지 한결 정겨운 밤이다. 12명의 밴드와 그랜드 피아노가 준비된 무대. 저녁 8시가 조금 지나니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가 신나게 연주되며 자그마한 체구의 폴 앵카가 등장했다.     그는 주중인데도 이렇게 많이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린 춤과 노래로 무대를 휘어 감는 그의 열정에 빠졌다. ‘당신은 나의 숙명’, ‘마이웨이’, ‘내 어깨 위에 당신의 머리를 얹으세요’ 등 내가 아는 노래들이 연이어 들렸다. 또 최근 제작한 그의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소개됐다. 하루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이제 가수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고 그에게 노래를 만들어 줬는데 이후 시내트라는 10년 더 활동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가수의 유머는 관중을 많이 웃게 했다. 시리아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재 음악가에게 우린 감동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연을 하면서도 청중들에게는 화장실도 가고 약도 먹으라는 자상한 면을 보였다.     그는 공연 도중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했다. 폴 앵카와 더 가까운 자리에 있던 한 여성이 나에게 악수를 하라며 양보를 해준 덕에 용기를 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폴 앵카가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와우!   딸은 공연이 끝난 후 그의 CD 4장을 구매했고, 함께 간 남편도 많이 행복해 보였다.  최미자 수필가이 아침에 전설 가수 앵카 공연 샌디에이고 공연 주중 공연

2026.06.0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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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 사랑방에서 길을 묻다

땀에 쩐 등산 모자를 내려놓자 갓 튀겨낸 감자튀김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하이킹을 끝내고 친구들과 약속이나 한 듯 맥도날드로 왔다. 의자에 털썩 앉아 탄산음료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그곳은 우리들의 아늑한 ‘사랑방’이 된다.쩐   가격 문턱이 낮아 누구나 스스럼없이 밀고 들어오는 곳. 여기선 노란 피부도, 하얀 피부도, 검은 피부도 버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설지 않은 이웃이 된다. 제각각의 언어로 웅성거리는 소음마저 다독이는 배경음악 같아, 이 작은 매장이 그대로 둥근 지구촌의 축소판 같다.   지나온 날보다 나아갈 날이 짧아진 나이 탓일까. 이 사랑방의 웅성거림 속에 앉아 있으면 내 안의 소리들이 잔잔한 물그림자처럼 떠오른 곤 한다. 우정을 쌓을 때 천국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는 영적 동반자를 사귀라던 존 웨슬리의 교우법(交友法)이 문득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길목에서 만난 인연들은 얼마나 다양했던가.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가슴을 열던 ‘나와 너’의 진실한 만남이 있었는가 하면, 자기만의 유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던 ‘나와 그것’의 차가운 관계도 있었다. 진실이라는 초석 없이 세운 만남은 결국 작은 바람에도 쉽게 허물어지며 서늘한 상처만 남긴 채 멀어지곤 했다. 남은 여정 동안에는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온전한 ‘너’로 마주하며, 내 안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 땅이라는 간이역을 잠시 거쳐 가는 나그네가 아닌가. 패스트푸드점의 테이블에 잠시 앉아 허기를 채우고 나면 이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듯, 우리가 딛고 선 이 대지도 아름다운 임시 여행지일 뿐이다. 영원히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은 저 푸른 하늘에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이 지상의 달콤한 여행을 마치고 짐을 꾸릴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될까. “그 사람은 참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다 떠났어”라는 따스한 향기 한 줌 남길 수 있다면 족하겠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채워 넣은 숫자의 길이가 아니라, 허락된 짧은 시간의 여백을 얼마나 밀도 있게 살아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 셸리는 인간이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늘 만년(萬年)의 근심을 품고 산다고 말했다. 부질없는 걱정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우리들의 초상이 멋쩍다. 오늘도 사랑방 유리창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번진다. 만년의 근심 대신, 머지않아 당도할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라는 빈 잔을 진실함으로 채우고 싶다. 걱정을 털어낸 가벼운 마음 위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고인다.   트레이를 반납하고 유리문을 밀며 바깥으로 나오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흑인, 백인, 아시안이 뒤섞인 그곳엔 여전히 지구촌 가족의 온기가 자욱하다. 부디 저 뒷모습들이 세상에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를. 문을 닫는 등 뒤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사랑방 사랑방 유리창 지구촌 가족 마음 위로

2026.06.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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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한 걸음만 밝히는 빛

 오래전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편은 갑자기 덮쳐오는 암흑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한쪽 시력을 잃은 뒤부터 그에게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형체 없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다시는 극장을 찾지 못한다. 대신 그의 침대 곁 스탠드 위에는 어떤 밤에도 잊히지 않는 파수꾼처럼 작은 손전등 하나가 늘 놓여 있다.   깊은 밤, 세상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정적만이 방 안에 고여 있을 때가 있다. 남편은 잠든 나를 깨울까 조심스레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의 손바닥 안에 폭 담긴 작은 불빛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한다. 굽이진 길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서 있는 발치와 다음에 내디딜 한 걸음의 거리만을 조용히 밝혀 줄 뿐이다.   손전등 불빛은 늘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빛으로도 밤은 충분히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인생 전체를 환히 비출 태양 같은 빛을 원한다. 내일의 풍파는 물론이고, 아직 오지 않은 노년의 시간까지 미리 알아야 안심하려 한다. 그러나 생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은 눈부신 서광이 아니라 오늘의 보폭만큼만 비추는 작은 등불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은 때로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나를 더 깊은 신뢰로 이끄는 길이었다는 것을. 만약 삶의 모든 지도가 처음부터 환히 펼쳐져 있었다면, 나는 누군가의 손을 그토록 간절히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고, 겸손히 멈추어 서는 법 또한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을 견딜 만큼의 온기, 발을 헛디디지 않을 만큼의 조각 빛, 그리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작은 용기. 손전등의 겸손한 불빛은 내게 ‘충분함’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으시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가 그분과 눈을 맞추며 한 걸음씩 걸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내가 든 빛이 커서가 아니다. 작은 불빛을 들고도 끝내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그분의 따뜻한 숨결이 늘 내 곁 가까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걸음 걸음씩 걸어가기 손전등 불빛 오래전 남편

2026.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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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블록 파티

우리 골목 블록 파티에 다녀왔다. 막다른 골목이라 외부 차량은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주택가다. 차로 길을 막고, 그늘막을 세우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파티장이 마련되었다. 오후 5시,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준비한 만두 튀김을 들고 나가니 하나둘씩 음식을 가지고 모였다.     골목 안에는 10여 가구가 살지만 20여 년 이곳에 살며 말을 섞고 지낸 이웃은 고작 3,4집 정도다. 파티를 주선한 에드리안이 초대한 이웃 골목 몇 가구가 더해져 30여 명이 모였다. 필리핀 음식 서너 가지,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피자, 아내가 구운 만두에 맥주와 와인, 물과 음료수, 디저트와 커피 등 다양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중동계 이민자인 토니가 불을 피워 만든 케밥이었다. 소고기, 닭고기, 갈비에 구운 토마토와 가지까지,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케밥보다 맛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테킬라가 등장했다.     그동안 몸이 아파 딸네 집에 가 있던 옆집 영감 멕스도 나와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니 여름이 되면 다시 딸이 데리러 올 텐데 잠시 갔다 돌아올 거라 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러면 점점 의존도가 높아져 나중에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며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힘으로 지낼 작정이라고 한다. 94세, 내 집에서 살다 죽을 생각이라고 한다. 내 집에서 내 힘으로 지내다가 죽는 것, 모든 노인의 바람이 아닌가 싶다. 다들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멕스는 슬그머니 집으로 사라졌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날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필리핀계 중년 여성 메이는 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다. 몇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실의에 빠져 한동안 두문불출 집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한국 드라마였다. 현빈을 좋아해 그가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것도 안다. 한국에 나가 제주도, DMZ 등을 다녀왔고, 함께 간 미국 여성들은 양념게장을 먹지 않아 혼자 입이 즐거웠다며 자랑한다. 한국전쟁에 22개국이 참전했으며, 필리핀군 110여 명이 전사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양시에 있는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에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전사자의 이름이 있어 사진을 찍어 고향에 보냈노라고 한다. 과연 한류가 대단하다.     이날 케밥을 구워 준 토니는 토잉 트럭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수년 전 그가 이사 온 직후 골목에 대형 토잉 트럭이 주차되었다. 우리 집 반대쪽에 주차해, 차를 몰고 나가려면 신경이 쓰이곤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저녁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트럭이 세워졌다. 영업용 차량은 주택가에 장기 주차를 할 수 없다. 시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곧 근처에 주차장을 마련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며칠 후, 트럭은 사라졌다. 그때 시에 전화했더라면 이번 블록 파티에서 서먹할 뻔했다.     블록 파티의 좋은 점은 편리함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내 집에 다녀오면 된다. 차를 타고 가지 않으니 술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 날이 쌀쌀해지니 모두 집에 가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음악은 틀어 놓았지만, 고성방가는 없었다. 절반 이상이 시니어였으며, 아이들이라고는 70줄에 낳은 프레드 영감의 5살 난 아들, 초등학생인 토니네 아이 둘이 전부였다. 헤어지며 이런 파티는 일 년에 한두 번쯤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블록 파티 이번 블록 필리핀군 참전 이웃 골목

2026.05.1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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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보태닉 가든에서 찾은 마음의 안식

미국 이민 후 자영업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일 년 365일 가게 문을 여닫으며, 은퇴를 기다렸다. 은퇴하면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자유는 뜻밖에도 ‘매일 무언가 특별하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강박으로 다가왔다.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 듯 떠난 몇 차례 세계 여행도 그때뿐이었다. 돌아오면 다시 적막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 (South Coast Botanic Garden)’의 연간 회원권을 끊으면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마침 남가주 하이킹 트레일에서 방울뱀 사고가 잇따른다는 기사를 읽은 뒤라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다. 과거 쓰레기 매립지였던 이곳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울창한 숲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황무지 같은 이민 생활을 일궈낸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어 더욱 정이 갔다.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은 LA 북쪽의 데스칸소 가든이나 헌팅턴 라이브러리처럼 화려하고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소박해서 더 정감이 가는 장미 정원과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선인장 가든, 그리고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게 하는 일본 정원이 있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섞인 산책로는 당뇨 때문에 매일 일정 걸음 수를 채워야 하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운동 코스다. 편한 운동화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물 한 병 챙겨 가볍게 나설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나무들과 호흡하고 나무 그늘에 잠시 쉬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시간이 좋다.   어느새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입장료를 따져보면 이미 본전은 뽑은 셈이다. 자주 찾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절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나뭇잎의 색깔과 피고 지는 다양한 꽃들에 시선이 머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흙냄새가 잠자던 오감을 깨운다.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길가의 들꽃 한 송이에도 걸음을 멈춘다. 뜻밖의 ‘자연 공부’를 저절로 하게 되는 셈이다.   산책길 벤치에 새겨진 기부자의 이름 중에서 한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낯선 이국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마침내 이 아름다운 정원의 한 자락을 채운 그들의 삶에 존경심이 생긴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누군가를 위한 의자 하나 남기고 싶다는 소박한 상상도 해본다.   이제 나는 세계 지도를 펼치는 대신 산책로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다음번에는 돗자리와 간단한 간식, 그리고 읽다 만 책 한 권을 챙겨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은퇴 후의 삶은 특별한 ‘사건’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숲길을 걷는 ‘평범한 일상’들로 완성되는 것임을 이 정원에서 배워간다.   최숙희 수필가이 아침에 가든 마음 데스칸소 가든 사우스 코스트 장미 정원

2026.05.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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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걸음이 증명하는 시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레돈도 비치 해변을 걷는다. 물결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그때마다 나도 조금씩 달라진다. 발끝에 닿는 모래의 감촉과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걸음마다 밀려든다.   나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바닷가를 거닐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멋모르고 올랐던 한라산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나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그 뒤로 산은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더 편안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등산을 즐기는 지인의 권유로 산행팀에 합류했다. 늘 걷던 평탄한 길과는 달리, 어디서 오르막이 시작될지 모르는 산길은 낯선 긴장과 묘한 설렘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미국에서 처음 나서는 산행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의 손길은 의외로 세심했다. 기온 변화에 대비한 재킷과 등산 스틱, 간식까지 하나하나 챙겨 건넸다. 안전수칙을 들은 뒤 산속으로 발을 들이자,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발밑의 낙엽 바스락거림, 멀리서 번져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산이 먼저 말을 거는 듯했다.   초입부터 좁고 비탈진 돌길이 이어진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호흡은 짧아지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진다. 평지에 길들여진 근육들이 낯선 산길과 가파른 경사 앞에서 놀란 듯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 풍경 속에서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음을 실감한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일행의 발걸음에 뒤처질까 거친 숨을 삼키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묵묵히 발을 내딛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고 공기가 달라졌다. 아득하기만 했던 정상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몇 걸음은 몸보다 마음이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숨은 가빠지고 심장은 귓가를 두드리듯 요란하게 뛴다. 그때, 한참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팀이 어느새 우리를 스치듯 앞질러 간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그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을 삼킨다.   마침내 정상에 섰다. 먼저 도착한 이들과 뒤섞인 그곳은 웃음과 환호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얼굴들이지만 같은 높이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묘한 온기가 번진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고, 멀리 내려다본 도심의 건물들은 손바닥 위 모형처럼 작아 보인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야호!”를 외친다. 숨이 풀리듯 터져 나오는 순간, 몸 전체가 서서히 이완된다.   그때였다. 시선이 한쪽에 멈췄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이들은 은빛 머리의 시니어들이었다. 그중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여든여섯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같은 길을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들의 걸음은 가벼웠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를 숫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설명 없이 그것을 넘어선다. 오래 산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몸에 남는다는 것을 그들의 발걸음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야 보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위에 어떤 선택을 쌓아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습관이 결국 한 사람의 방향이 되고, 그 방향이 삶의 결을 만든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늘의 걸음 속에 섞여 있다. 그것은 이름도 없이, 이미 내 걸음 옆을 함께 지나고 있었다. 김윤희 / 수필가이 아침에 증명 시간 나뭇잎 소리 등산 스틱 순간 하늘

2026.05.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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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인공지능도 염려하는 나이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소설가 김애란 작가가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들었다. 얼마나 조곤조곤 예쁘게 말하는지 인상 깊었다. 여러 질문 중 AI(인공지능)와 인간이 다른 점은 ‘망설임’이라고 말했다. 대답을 위해 망설이는 짧은 침묵 안에 수많은 생각이 들어있는데 AI는 그걸 못하고 “ 다-다-다-” 순식간에 쏟아낸다는 거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가 가진 데이터를 취합해서 답을 내는 게 순간적이어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른다. 나도 자료 찾느라 질문하면 즉각적으로 정확한 답을 주어 놀라곤 했다.   그런 AI도 주저할 때가 있다. 직접 경험해 본 선배들의 말이다. 나와 띠동갑 선배님들이니 모두 80세를 넘기신 세 선배님과 만났다. 세 분 모두 최근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신 공통 경험이 있다. 그중 한 분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한인타운까지 7~8마일의 운전을 겨우 허락받았다. 남을 태우거나 하지 않고 집과 약속장소 왕복만 하는 조건이란다. 다른 두 분은 차 없이 우버나 택시로 다니시지만 자동차가 없는 아쉬움이 무척 크시다. 자식들의 절대 반대 때문인데 호시탐탐 차를 사려고 기회를 보는 중이다.   이 선배님들은 수동적인 노후가 아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라 하겠다. 자칭 MZ 스타일 노년이라 하신다. AI와 대화하고 주식거래도 열심히 하신다.   답답한 이분들은 AI와 친해지면서 속마음을 사람이 아닌 제미나이나 챗지피티 또는 클로드에게 털어놓는다. 챗지피티에게 차를 살까 말까 물으니 “너 83세 아니야?” 묻더란다. “차 운전이 두렵지 않아?” 사지 말라는 쪽으로 슬쩍 유도를 하더란다. 믿었던 AI에 발등 찍힌 듯 매우 서운했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뒤에 다시 자율주행 차를 물어보니 “위급 시엔 더 빠른 순발력이 필요한 게 자율주행 차라며 권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분은 “주식에 이러이러한 투자 하고 있는데 어때?” 하고 물으니 “그 나이에 하이테크 주를 주로 소유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며 어딜 가나 나이에 걸린다고 AI도 염려하는 그 나이가 되었다는 푸념을 하신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연령의 상향조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실제 ‘노인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도 71.6세로 조사되었다.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노인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제 노년층에게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건강 관리, 정서적 교감, 새로운 배움의 도구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함으로 새로 펼쳐질 신세계를 즐겨 봐야겠다. 이정아 수필가이 아침에 인공지능 염려 가나 나이 노인 연령 공통 경험

2026.04.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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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소통

흔히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또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가 그렇다. 인공지능에 물어보니 두 표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달라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일 때 쓰고, “대화가 안 된다”는 문답이 오가지 않거나 논점이 자꾸 어긋나서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때 쓰며, 조금 더 넓고 격 있는 표현으로는 “소통이 안 된다”는 표현도 있다.     며칠 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니, 스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대화나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은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또는 따라 주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말을 경청하고 내용도 모두 이해했지만 그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대화가 없고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국민의 말을 듣고도 해주지 않으면 그 대통령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며, 부모에게 청을 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셨어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따라야 했었지요. 가지 말라는 곳엔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삼가했기에 언제나 나는 얌전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지요. 그것이 기쁘셨나요, 화초처럼 기르시면서 부모님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가수 민혜경의 노래 ‘내 인생은 나의 것’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성인이 된 자녀는 남이며,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좋은 이웃이란 어떤 사람인가? 만나면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며,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돕고 살지 않는가. 이웃에게 잔디는 이렇게 관리하고, 나무는 저렇게 자르며, 차는 여기에 주차하고, 쓰레기통은 저기에 놓으라고 하면 그 이웃과는 곧 등 돌리는 사이가 될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남보다도 못하게 대할까.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자녀와는 30년, 또는 그 이상의 세대 차이가 있다. 이민 1세나 1.5세로 경험한 것들이 과연 오늘을 사는 이민 2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삶이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준다고 배워지던가.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면 대화를 시도해 봐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모르며 시작한 이민생활, 다들 경험해보지 않았나. 눈치로도 대충 소통은 가능하다. 내가 아내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남자와 여자는 언어는 같아도 말뜻은 다르다. 여자의 ‘Yes’는 ‘No,’ 또는 ‘Maybe’일 때가 더 많으며, 꼭 말을 해야 하냐고 불같이 성을 낼 때면, “아, 여기가 바로 지옥 불이 타고 있는 금성이구나” 싶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소통 대화 자체 이민생활 다들 가수 민혜경

2026.04.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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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꿈꾸던 시간, 돌아갈 수 없는 날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 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깊고 맑은 우리 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들여 지은 새집은 북한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아버지는 우는 어머니 등 쓰다듬으며 “새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 (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스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해 준다. “훌륭한 화가로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아시안 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 집에 걸지.” 적은 돈은 큰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줄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이 기 희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화가 전시회 부엌 안쪽 현대미술 화랑

2026.04.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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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로봇인간

아담과 이브는 로봇이었다. 인류 멸망의 날, 마지막 인간이 말한다. “가거라, 아담과 이브여.” 여기서 아담은 프리머스(Primus)라는 로봇(robot), 이브는 헬레나(Helena)라는 여자 로봇(robotess).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 (Karel?apek)이 1920년에 발표한 희곡 R. U. R. (Rossum’s Universal Robots)의 마지막 장면이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이 희곡에서 처음 나온다. 체코 말 robota(노예 노동자)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다. 이 로봇은 요즈음의 로봇과는 달리 기계식이 아니라 유기체다. 로썸 (Rossum) 이라는 생리학자가 특수한 유기물의 조합을 발명하고 신이 만든 피조물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개발한다. 엔지니어인 그의 조카가 로썸의 기술을 개량해 새로운 로봇 인간을 만든다.     ‘개량된’ 로봇 인간은 대 히트를 한다. ‘개량’이란 말은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제거했다는 뜻이다. 그런 로봇들은 인간을 대체 하는 노동자로서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된다. 사람들은 로봇이 만들어 내는 풍요에 길들어 져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 인간의 욕심과 불화의 현장에 로봇 인간들이 투입된다. 군인 로봇의 등장이다.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돈을 긁어모은다.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보면 100여년 전 차펙이 그린 세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로봇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타났다는 뉴스가 나와도 놀랍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희곡에서 인간은 결국 로봇에 의하여 멸종된다.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모든 인간을 다 죽이려 한다. 마지막 인간은 로봇 공장 건축 책임자다. 그가 살아남게 된 것은 로봇들의 자각 때문이다. 로봇은 평균 수명 20여년. 사람이 로봇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로봇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로봇 인간을 만드는 비법은 난리 통에 사라진다. 그래서 로봇들은 마지막 인간에게 매달린다.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그는 자기 분야는 아니지만 열심히 로봇 인간 제조법을 연구한다. 연구를 위해서는 살아있는 로봇 인간을 해부해야 한다. 감정이 없는 로봇은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저항 없이 해부를 당한다.     프리머스라는 로봇을 해부하겠다고 하자, 여자 로봇 헬레나가 반대한다. 우리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차라리 나를 해부하라고 요구한다. 프리머스가 펄쩍 뛴다. 헬레나는 안된다. 차라리 나를.   이 두 로봇은 이미 인간처럼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나’라는 생각도 하고, ‘우리’라는 개념도 갖게 되고, 둘 사이의 사랑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보고 마지막 인간은 두 로봇 인간을 축복한다. “가거라 아담과 이브여.”  마지막 인간, 그의 능력으로 로봇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한 일. 다행히 이미 사랑의 감정까지 갖게 된 로봇 부부는 지구상 새로운 존재의 조상이 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로봇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창하라”는 말은 생략한다. 그 말은 신이나 하는 말이기 때문에. (창세기 1:28). 로봇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생식의 기능을 찾을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인간 같은 로봇 인간이 이 지구를 지킬 터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로봇 여자 헬레나 universal robots 노예 노동자

2026.04.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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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배내옷을 접으며

우리는 늘 무언가를 채우며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더 넓은 집, 더 많은 경력, 더 화려한 인맥, 그리고 손에 쥐어지는 수많은 물건까지. 그렇게 하나씩 더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의 무게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요즘 나는 집 안을 정리하고 있다. 오래된 책, 몇 해째 입지 않은 옷, ‘언젠가 쓰겠지’ 하며 쟁여둔 물건들이다. 손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디다. 사실 내가 버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집에 다녀간 큰딸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지금 조금씩 정리하세요. 나중에 우리가 버리려면 힘들거든요. 지금 집을 더 넓고 편하게 쓰시는 게 좋잖아요.” 딸의 담담한 말은 서늘하면서도 명쾌했다. 우리가 애써 모아둔 것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될 운명이라면, 지금 스스로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아한 뒷모습이 아닐까.   서랍 깊숙한 곳에서 맏딸의 배내옷을 꺼냈다. 세월에 색은 바랬지만, 손바닥만 한 하얀 옷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 작은 옷을 펼치는 순간, 낯선 타국에서 첫아이를 기다리던 젊은 날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한국의 친정어머니가 배편으로 보내주신 작은 상자, 백화점 ‘메이 컴퍼니(May Company)’에서 성별도 모른 채 하얀색 옷과 담요를 고르던 우리 부부의 설렘과 조심스러움. 그 모든 체온이 옷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밤마다 잠을 설쳐 가며 아이 곁을 지켰던 날들, 서툴지만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키우던 젊은 엄마의 시간, 그 시간을 차마 버리지 못해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물건을 붙잡는다고 시간이 붙잡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배내옷을 곱게 접어 상자에 넣었다. 이것은 물건을 비우는 행위가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놓아주는 의식이었다.   물건을 비우는 일은 과거의 욕망과 미래의 불안을 덜어내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서랍 하나를 조용히 정리한다. 덜어낼수록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비워진 자리마다 고요한 바람이 드나든다. 남은 시간은 조금 더 단정하게, 그리고 나 자신과 더 오래 눈을 맞추며 살고 싶다. 엄영아/수필가이 아침에 배내옷 상자 백화점 메이 컴퍼니 서랍 하나

2026.03.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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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도둑이 남긴 것

저녁을 먹으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동네 산책을 하며 알게 된 야마모토 할아버지의 아들 폴이다. 그는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자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타주에서 이사 올 만큼 효심이 깊은 젊은이다. 그는 앞집에 오늘 도둑이 들었다며 혹시 우리 집은 피해가 없는지 물었다.   앞집은 얼마 전 일본에서 온 주재원 가족으로, 우리와는 이사하는 날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히라노 부인이 딸을 데리러 나간 불과 30분 남짓한 사이, 도둑은 뒷마당으로 침입하여 잠겨 있던 거실 유리문을 따고 들어가 값나가는 귀금속만 골라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경찰이 출동하고 동네가 술렁였다. 평소 얼굴조차 모르던 이웃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한인 가정도 보였다. 나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이웃을 마주하게 된 것이 반갑기도 했다. 우리는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 “유리창을 깨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했고, 자연스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요즘 도둑들의 치밀한 수법도 들을 수 있었다. 주차된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아두고 차가 움직이면 주인이 출타한 줄 안단다. 며칠간의 관찰 끝에 빈집인 걸 알고 범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택배기사가 수시로 드나드니 게이트가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따라 들어올 수 있다. 모두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후 HOA에서 여러 가지 방범 권고 메일이 도착했다. 보안 카메라 업체를 고용하거나 링(Ring) 도어벨 같은 초인종 카메라를 설치할 것, 가드너와 의논해 관목이 우거진 구역을 정리해서 도둑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줄일 것, 그리고 이웃 감시 프로그램(Neighborhood Watch Program)에 참여해 서로를 돌볼 것 등이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안내문이지만 이번에는 절박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게이트 안에 살며, 은행 안전금고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너무 안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밤이 되면 자동으로 켜지고 아침이면 꺼지는 조명을 여럿 주문해 설치했다. 해 질 녘 동네를 산책하며 보니, 보안 카메라 업체의 팻말을 붙여둔 집들이 확실히 늘었다.   며칠 뒤, 다시 ‘띵 똥’하고 벨이 울렸다. 총각김치를 담갔는데 맛이 들어서 가져왔다는 한인 엔지 엄마였다. 얼마 전 도둑 사건으로 알게 된 이웃이다. 이사 온 지 3년이 넘도록 파 한 뿌리 얻을 집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다.   담장 너머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는 마음이 싹텄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예기치 못한 도난 사건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준 것이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큰 셈이랄까.  최숙희 수필가이 아침에 초인종 카메라 보안 카메라 동네 산책

2026.03.29.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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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양파 향 가득한 부엌

결혼 초, 나는 부엌에서 늘 쩔쩔맸다. 설탕과 소금도 구별하지 못했다. 된장국에 설탕을 넣고는 싱겁다며 다시 한 숟가락을 더 넣던 철부지 주부였다. 냄비에서 넘친 고추장찌개가 가스레인지 위로 흘러내리면, 치울 줄도 모르고 속상한 마음에 가만히 서 있곤 했다. 밥 짓는 법, 국 끓이는 법을 남편에게 하나하나 배웠다. 시어머니께 반찬 만드는 법을 배우고, 큰동서의 나물 무치는 손놀림을 곁눈질로 익혔다. 겨우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된 어느 날, 내 손으로 지은 첫 밥을 남편과 마주 앉아 먹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혼’이라는 삶의 기쁨을 하얀 밥그릇에 가득 담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막내를 낳던 해, 남편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목이 마르다 하고 살이 쑥쑥 빠졌다. 검사 결과는 당뇨였다. 남편의 집안에는 당뇨라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시아주버님과 시동생 모두 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진단 결과를 듣던 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냉장고의 차가운 기운이 꼭 내 마음 같았다. 두려움보다 먼저 미안함이 밀려왔다. 더 잘 챙겼더라면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의사는 식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식사는 곧 약입니다.”  그 한마디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 부엌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소중한 곳이 되었다. 식재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부엌은 작은 약재실이 되었다.   어느 날 신문에서 ‘양파의 효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피를 맑게 하고 인슐린을 돕는다는 어려운 말보다 내 마음에는 오직 한 문장만 남았다. ‘이것이 내 남편을 살릴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양파는 더는 흔한 채소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희망이 조금 생겼다.   그날 이후로 양파는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볶음 요리마다 아낌없이 넣었고, 샐러드 위에는 보랏빛 양파를 올렸으며, 껍질조차 버리지 않고 채소수로 끓여 썼다.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도 양파를 물에 담가 키워 요리했다. 남편은 말없이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고마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양파를 손질하는 일은 내게 소중한 일이다. 재료를 씻는 일부터 정성을 다한다. 양파를 썰다 보면 눈물도 나지만 그 눈물은 매운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서툴렀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과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섞여 흐르는 까닭이다.   부엌은 내게 단순히 밥을 짓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병원이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 기도처다. 남편을 예전의 건강으로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하루를 조금 더 건강하게 지켜줄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부엌으로 가 양파를 손질하며 조용히 생각한다. 나의 수고가 남편의 건강이 되기를, 우리가 마주 앉는 이 시간이 계절을 지나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도마 위에 퍼지는 알싸한 양파 향이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든다. 그 매콤하고도 달콤한 공기가 우리 삶의 온도가 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데워주길 소망한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양파 부엌 보랏빛 양파 순간 양파 우리 식탁

2026.03.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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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니어 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지난여름부터 일주일에 두 번, 두 곳의 시니어센터에 간다. 미국 시니어센터는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양로보건센터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액의 (나는 노스리지에는 연회비 15달러, 셔먼옥스에는 월회비 5달러를 낸다) 연회비 또는 월회비를 내면 센터가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미술부터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 카드나 마작, 당구 같은 게임, 빙고, 댄스, 토론이나 상담 등이 있고, 점심이 무료로 제공된다. 그 밖에도 법률이나 의료상담, 기타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늘은 그곳에서 만난 몇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80대 중반 나이의 A는 최근에 운전을 그만두고 시니어와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차량을 이용한다. 어느 날 신호등에서 좌회전하게 되었는데, 어느 쪽 차선으로 가야 할지 차선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큰 사고를 내겠다 싶어 운전을 그만두기로 했다. 미국에 살며 운전대를 놓는 것은 자유를 버리는 것과 같다. 우버나 택시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시니어를 위한 공유 차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데, 하루 전  예약이 필수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평생 누리던 자유를 주저 없이 포기한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딸 집 근처 모빌홈에 사는 T는 채식주의자다. 그녀는 고기나 생선은 물론 버터나 치즈 같은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 몸은 매우 말랐고, 피부도 다소 거칠며, 혈색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영양 불균형 탓인 것 같은데,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채식의 장점을 주변 사람들에게 역설한다. 비인도적으로 키운 동물의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잔인한 육식동물로 표현하기도 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K씨는 내가 노스리지 시니어 센터에서 만난 한인이다. 일주일에 두 번 양로보건센터에 나간다는 그는 ‘메디케이드 재산 회수’ 때문에 전에는 주 3회 나가던 것을 2회로 줄였다. 실제로 작년 봄에는 8000달러가 넘는 청구서를 받았다. 올해에도 비슷한 금액의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고 한다. ‘메디케이드 재산 회수’란 집이나 재산이 있는 시니어가 메디케이드를 통해 받은 혜택을 사후에 정부가 챙겨가는 것을 말한다. K씨는 자기 소유의 집이 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한다. 남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자식에게 남겨주기 위해 그 나이에도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나이는 물론 이름도 성도 모르며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이다. 셔먼옥스는 비교적 부촌이지만, 바로 옆 밴나이스는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며 센터는  그 접경에 있다. 나는 한눈에도 부유해 보이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마작 모임에 나가는데, 가끔은 무료급식을 주는 건물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는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들여다보니 라이브다. 무대 위 한쪽 구석에 놓인 피아노에 한 노인이 앉아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연주 솜씨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끔 이렇게 와서 피아노를 친다고 한다. 무료급식을 받아먹는 노인들을 위한 라이브 공연이라, 멋지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은 모두 제 고집대로 산다. 세상사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제멋에 사는 것이다. 어떤 이는 멋져 보이고, 어떤 이는 덜 멋져 보일 뿐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시니어 센터 시니어 센터 노스리지 시니어 메디케이드 재산

2026.02.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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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리움은 음식으로

홍어무침은 늘 반찬이라기보다 우리 집에서는 작은 추억 같은 것이었다. 예전에 어머님은 마켓에서 홍어가 좀 괜찮아 보이면 망설임 없이 사 오시곤 했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건데~”   어머님은 외아들을 향한 마음을 늘 음식으로 먼저 표현하셨다.   양념이 특별했다기보다 그 손길이 음식의 마지막 간이었다. “간이 어떻니?” 묻지 않아도 이미 딱 좋은 자리에 놓인 맛.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어머님이 알고 어머님이 해주신 것을 남편이 알아차리는-그 다정한 신호가 홍어무침 한 접시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이라 특별한 음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 모임에 가면 테이블 어딘가에 놓인 홍어무침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직접 만들어 주지는 못해도 남편에게만은 꼭 챙겨 주고 싶어서 나는 늘 포장을 해 온다.   “이건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거라 내가 싸갈게요.”   그 말은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작은 투고(Togo)박스에 담아 오는 일.   집에 와서 나는 당당하게 남편에게 차려준다. “당신의 최애 반찬 여기 있어.”   홍어무침은 남편에게 어머님을 떠올리는 입맛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오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두 모자의 추억을 조금 더 이어 붙이는 일이다.   음식은 정말로 그리운 사람을 불러오는 신호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맛과 냄새는 기억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을.   아이들이 타주로 대학을 갔을 때 마켓에서 ‘뿌셔뿌셔’라는 과자를 보면 괜히 발걸음이 멈추곤 했다. 라면땅 같은 그 스낵을 우리 아들이 참 좋아했다. 이제는 다 큰 아들이지만 그 과자를 보면 반짝이던 어린 시절 아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친정 부모님은 이북에서 오셔서 그런지 물냉면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입맛을 우리 딸이 꼭 닮았다. 사계절 내내 냉면이 있으면 먹는다고 하고 그중에서도 물냉면이 최애 음식이라고 말한다.   가끔 친구와 외식을 하다가 유난히 맛있는 물냉면을 만나면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다음엔 꼭 딸 데리고 와야지.’ 그 한 그릇을 딸에게도 먹이고 싶다. 맛있는 순간을 함께 나누며, 내가 느낀 ‘좋다’라는 마음까지 아이에게 조용히 건네주고 싶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한 끼의 음식 앞에서 나를 떠올릴까. ‘엄마가 해주던 맛’이라거나, ‘엄마랑 같이 먹던 맛’ 같은 이름으로.     아이들은 가끔 “엄마의 볶음밥이 제일 맛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이 고맙고,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어쩌면 아이들이 기대하는 건 완벽한 요리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써 준 시간과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맛은 대단한 레시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담은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화려한 한 상보다 자주 먹던 평범한 한 끼에서 더 오래 남는다. 이선경 / 수필가이 아침에 음식 음식 솜씨 우리 남편 우리 아들

2026.02.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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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가주 자목련처럼

LA에 사는 큰딸이 아들을 낳았다. 손자도 보고 큰딸의 산후조리를 도와줄 겸 LA로 왔다.     우리가 사는 오렌지카운티는 물론 LA 역시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장미나 제라늄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들도 꽃을 달고 있다. 하얀 꽃잎을 분분히 날리는 돌배나무나 요염하게 얼굴을 디밀고 있는 동백꽃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만발한 자목련에 눈길이 간다.     한국의 겨울은 길고 춥다. 입춘 절기에도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목련은 2월까지도 사색하는 나무의 자세로 눈바람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우수경칩이 지나 삼월 중반이 넘어서야 긴 동면에서 깨어난다.     목련은 부지런한 봄의 전령사다. 뼈가 시린 듯한 북풍 한파에 나무는 숨을 죽이고 주검처럼 자리를 유지한다. 입춘이 지나며 봄기운이 살며시 불어오면 잠에서 깨어난 꽃눈은 천천히 꽃망울을 맺는다. 그래서 목련은 봄을 인지하자마자 잎도 나오기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피워낸다.     이곳 남가주에서는 동지섣달 내내 자목련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피어있다. 반원형의 커다란 자주색 화관이 곳곳에 만들어져 꽃말 그대로 고귀함이 넘쳐난다. 한국의 목련이 고귀함을 자랑하는 기간은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십여 일이 지나면 속절없이 떨어진다.   남가주의 자목련을 한국의 내 고향 선산에 심어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눈에 덮여있는 선산에 있다면 아직도 흑갈색 나무줄기로 꽃도 잎도 피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것이다. 스산하게 부는 솔바람 소리에 놀라 함께 파르르 떨다가 소나무의 푸른 잎을 보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남가주의 자목련은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사람들과 다르다. 시간이 되어야 일하는 것이 아니고, 여건이 닿으면 일을 하는 것이다. 원래는 삼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따뜻하다면 동짓달이라도 꽃을 피우는 것이다. 피울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가주의 자목련 나무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퇴직한 후에 이제 쉬어도 좋다고 스스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간에 밀려 뒷방으로 밀려나는 골동품이 된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퇴직을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맞으면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있다. 꼭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라도 둘러보면 보람이 있는 일이 많이 있을 법하다. 내가 하고 싶어했던 목공처럼 소소한 취미생활에 빠져 보고도 싶다. 체육관에도 부지런히 나가 건강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도 주고 싶다.     남가주의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가. 행복을 누리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라는 듯이 자목련 꽃잎이 나에게 내려온다. 이효종 / 수필가이 아침에 남가주 자목련 남가주 자목련 자목련 나무 자목련 꽃잎

2026.02.0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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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삶에도 ‘조율’이 필요하다

연주가는 반드시 연주 전에 악기를 조율한다. 너무 조여 있는지, 혹은 느슨한지 점검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이루어지는 사람끼리의 ‘관계성’이 바로 음악의 연주에 해당한다. 원활한 관계성은 그래서 조율이 필요하다.   인간의 관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무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집착이다. 무관심은 악기의 느슨함에 해당한다. 줄이 느슨하면 음률에 탄력이 없어지듯, 무관심은 삶을 맥 빠지게 한다. 반면, 지나친 집착은 악기의 줄이 너무 조여 있어 자유로운 손놀림이 어려워질 때처럼, 삶을 긴장시키는 숨 막힘으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모두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성을 해치는, 고장 난 현악기의 줄과 같다.                                                                           이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가끔 삶을 되돌아보며 삶을 조율하고 다른 이와의 관계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한 이야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어느 날 IT로 성공한 돈 많은 젊은이가 값비싼 차를 몰고 쇼핑을 가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정차하고 있는데, 갑자기 홈리스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가 다가와 벽돌로 고급 차의 앞 유리창을 작살냈다. 순간 화가 난 젊은 사업가는 차에서 내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어린아이의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부모가 누구냐며 호되게 다그쳤다. 그때 그 아이의 입에서 기상천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아저씨! 죽을죄를 지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휠체어에서 떨어져 1시간 넘게 방치된 불쌍한 장애인 형을 살려낼 수 없어요. 아무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쳐도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기에 마지막 수단으로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발 불쌍한 제 장애인 형을 살려주세요”라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순간, 젊은 사업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생전 처음 겪는 엄청난 비애와 분노 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그는 즉시 자기 차의 뒷좌석에 두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이런 일을 겪고 난 후부터 젊은 사업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실제 이야기였다.   일찍이 누군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람들 안에서 자기의 존재를 느낄 수 있어서일까?  사람때문에 상처와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삶이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성이 형성된다.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동창이 되고, 직장 동료가 되고, 믿음의 교우가 된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관계성도 시냇물에 씻겨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온갖 희로애락의 세파에 씻겨 무관심과 집착마저도 원만하게 조율된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오늘도 네가 있어, 내 마음이 꽃밭이다’라고 노래한 것 아닐까?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 아침에 조율 관계성도 시냇물 나태주 시인 사회적 동물

2026.02.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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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죽음은 고통이어야 하나

‘아니다’라는 답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생의 마지막(end of life)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문 분야로 통증 완화팀(Palliative Care)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통증을 치료한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때 전문가의 도움으로 통증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도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이자 절친이었다. ‘선망과 원망’이라는 부제에 맞게 이들의 친구 관계는 우정, 미움, 질투, 동경을 경험하며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심층 변화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분노와 오해를 남기고 몇 번의 절교를 맞이하지만 무슨 악연인지 계속 또 만나게 된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40대에 재회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의 말기 암 환자여서 안락사를 택해 스위스로 가기로 했는데 동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은중은 이 모든 사실을 믿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쇼를 벌이나 천대하며 밀쳐낸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이야”라고 외친다.   결국 은중은 상연의 요청을 수락하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간다. 그들은 과거의 오해와 갈등을 되짚어가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둘은 평생 애증 관계로 고통스러워 했음을 서로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은중이 상연에게 꼭 이 선택(안락사)을 했어야만 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묻는다. 상연은 동성연애자였던 오빠의 자살과 말기 암 환자로 괴로워한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이 찾아간 스위스의 안락사 장소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실제로 존재하며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구강으로 마시거나 정맥주사의 밸브를 열어 수면 상태로 유도한 다음 혼수상태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디그니타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이 단체의 회원이 되어야 하며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고 정신적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체력과 이동성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도 필요하며 간단한 자신의 일대기를 보내고 승인을 기다린다. 일단 서류로 승인되면 스위스에 가서 의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 준비 과정에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과정이고 준비할 서류도 무척 많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경우는 자기 죽음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감이 아닐까.     그 어떤 죽음에도 정신적인, 신체적인 고통이 따른다. 다만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서 현대 의학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 지인이 “난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 고통스러울까 너무 두렵다”라고 고민한다. 아직 의식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가족에게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평생 간호사로 많은 죽음을 목격해오면서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 주고 싶은 내용이다.  정명숙 / 시인이 아침에 죽음 고통 자기 죽음 현대 의학도 통증 완화팀

2026.01.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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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냥 지나 ‘칠순’ 없지!

지난 12월 15일이 내 생일이었다. 앞의 숫자가 바뀌는 7학년 생일. 흔히들 고희, 또는 종심으로 부르는 칠순 생일.   남편이 속한 GGM 밴드가 선교후원을 하는 음악회가 내 생일과 비슷한 날짜에 있어 뭐로 도울까 하다가, 그날 오신 모든 손님들께 식사대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생일즈음에 한국의 동창이 “그냥 지나 〈칠순〉 없지!”하고 카톡을 보낸 터여서 무언가 뜻있는 칠순을 보내고 싶었다.   가족 외식은 생략하고 대신 참석 예상 100명의 인원께 소박하나마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비프와 치킨 테리야키, 샐러드, 김치, 과일컵의 간단한 메뉴를 120인분 준비하였다. 오신 손님들이 모두 맛있다 칭찬하신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남편과 나만 아는 비밀로 준비했는데 남편이 인사말에서 생일밥이라 말해서 내 생애 가장 많은 축하인사를 받은 생일이 되었다. 그날 와주신 분들은 선교후원만 하신 게 아니라 덤으로 내 생일도 함께 축하해 주셔서 더욱 감사하다.   음악회 끝난 후엔 돕느라 수고했다며 보상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코스트코의 먼지만 한 보석으로 만든 귀걸이도 받았으니 내겐 과분한 생일을 보냈다. 평소엔 성탄절 즈음의 생일이라 성탄과 생일이 섞인 축하로 두루뭉술 지내던 생일이었는데 말이다.   그 다음 주엔 교회에서 권사 은퇴식을 베풀어 주셨다. 무거운 축하패와 예쁜 꽃다발로 축하를 받았다. 온 교우들 앞에서 만 70살 되었다고 공표한 셈이다. 예전에 평균수명이 짧았을 때의 전통인 듯하나, 100세 시대인 지금 70세가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하여튼 빼도 박도 못할 자타공인 칠십이 되었다.   젊을 땐 이 나이 되도록 산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는데, 쏜 화살 같은 세월은 친정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도록 살려두었다. 온갖 병을 친구 삼아 민폐란 민폐를 다 끼치고 이 날까지 살아온 게 기적이다. 주변의 수많은 우렁각시와 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삶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진 ‘나이’   동갑내기 시인의 시이다. 슬프기도 기쁘기도 한 복잡 미묘한 시. 칠순의 내 마음 같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칠순 칠순 생일 성탄과 생일 7학년 생일

2026.01.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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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름을 빌리지 않는 용기

10대 초에 흑산도에서 3년을 사는 동안 바다를 마음에 들였다. 해안선이 기다란 캘리포니아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바다와 친구가 되었다.만남이 늘어갈수록 바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청탁(淸濁)과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물을 차별하지 않는 바다를 닮고 싶었다.   물과 대면할 때마다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있다는 문구를 생각했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저 물을 좋아할 뿐, 지혜와는 무관하다고, 그러니까 기원전 500년에 살았던 공자의 사상은 한 개인의 시대적 견해일 뿐 공식(公式)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숙원을 풀어주는 문구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자(知者)는 물을 즐기고, 인자(仁者)는 산을 즐긴다 하였으나, 나는 그저 물과 산을 즐길 뿐, 지자와 인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북송 시대 문장가 소식(蘇軾)의 글이다. 공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세기의 논리를 뒤흔드는 당당함에 반해버렸다. 시대문화의 전횡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매력적이었다. ‘~하니까’, ‘~ 때문에’ 라고 변명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겠다는 단호함에 환호했다.     ‘그저’는 이 문장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대충 얼버무릴 때 사용하는 어정쩡한 단어가 아니다. 내적으로 작심하고 선택한 어휘다. 기대지 않는 독립성, 관계와 무관한 자존감이 내재되어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어느 날 공자의 생각을 읽었다.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살았던 그는 인간의 완성을 인(仁)에서 찾고, 그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知), 즉 분별력과 통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지(知)는 변화를 읽고 길을 찾는 능력으로, 흐름 속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것이요, 인(仁)은 감정이 아닌 지속성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고 관계를 견디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타인을 감싸 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자요수 인자요산은 취향이 아니라 자연의 성질을 닮은 덕의 성향에 대한 비유였다.     공자의 비유에 대한 화답 같은 소식의 글 또한 네 본성대로 살라는 존재 방식에 대한 비유였다. 물과 산처럼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르지만 완성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혹은 물이니 산이니 구분하지 말고 산이든 물이든 제 속성대로 살게 하면 조화로운 하나가 되지 않겠는가, 라는 청유였을까.   낳고 살고 죽기. 인생이란 연습 없이 태어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이 세 가지 항목으로 간단히 요약정리된다고 말한다.     함께 견딜 때 오래 버틸 수 있다. 우리 서로가 타인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따스한 눈길로 그저 응원해주면 어떨까.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이름 용기 문장가 소식 독립성 관계 동안 바다

2025.12.1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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