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네에서 저녁 초대가 있었다. 최근 들어 누구 집을 방문한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그 집 정원에 있는 수영장을 열었나. 그래서 바비큐를 하나라고 추측했다. 오랜 세월에 거쳐서 몇 번 만났지만 남자 주인은 수영장을 무척 아낀다는 것, 안 주인은 자식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그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느닷없는 저녁 초대가 왔을 때, 나는 십여 년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수영장의 바비큐를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주소도 가물가물한 듯 스트리트 이름이 뭐더라 하고 물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집 주소가 툭 튀어나왔다. 기억이란 참 제멋대로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스치는지, 나 편한 대로 형성된 기억의 조합이 사실처럼 들어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 집에는 세월이 가져다준 상장처럼, 벽마다 네 명의 손주 사진이 붙어 있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그림도 함께 붙여 놓았다. “세상에 우리 손주가… 가문에 영광 아니가.” 안 주인은 눈을 초승달처럼 뜨면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응접실에 햇볕이 드는 창가 쪽에는 탐스럽게 꽃이 핀 난 화분들이 보였다. 오래된 것 같은 화분들은 노랑, 분홍, 흰색으로 꽃을 피워 내고 있었다. 안주인은 먹다 남은 미네랄 워터에 물을 타서 주면 꽃이 더욱 생생해진다고 한다. 예상과는 달리 부엌에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정원이 한눈에 보였다. 팔을 넉넉하게 펼친 소나무가 주변의 집들을 완전히 가려 주었다. 고졸한 조형물이 수영장 둘레에 서 있다. 멀리 사는 아들네가 찾아와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갓 구운 크루아상을 베이커리에서 사 오고, 오후에는 놀이동산을 가든지, 손주들이 사달라는 펀치백을 사러 함께 운동구 점으로 가기도 한다고 한다. 한 달이란 시간을 오롯이 내어주는 헌신적인 조부모였다. 바비큐일 거라고 단정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오븐에서 갓 꺼낸 듯한 고기 냄새가 났다. 안 주인이 구워낸 오리를 남자 주인이 정성스럽게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갈색으로 기름이 쏙 빠진 오리 껍데기는 조그만 사각형으로 잘라서 접시에 깔아 놓았다. 오이채와 파채가 한편으로 놓이고 세 종류 김치가 흰 접시에 담겨있다. 나는 오리고기를 어디서 시켜 왔을까를 생각하며 여자 주인이 쪄내는 밀전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생오리를 사다가 오븐에 직접 구었다는 것이다. 나도 마트 냉동고에서 방망이처럼 길쭉한 오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오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집에 가서 검색해 보기로 했다. 디저트 시간이다. 남자 주인이 내가 사서 온 케이크를 보고 반색을 했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이게 행복이야. 친구와 더불어 맛있는 거 먹는 것.” 그는 감격해서 말했다. 알프스에서 산악 바이크를 타고 이탈리아 맛집을 순회하던 분이 이 여름에 어디 가지 않고, 손주들을 기다리며 케이크 한 쪽에 좋아하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행복은 단순해지나 보다. 평소에 지인을, 친구를 생각하면 얼굴만 떠오른다. 밖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 얼굴만 둥둥 뜨고 배경은 백지로 남는다. 평소 밖에서 보던 안주인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리고기하고는 거리가 멀었기에 난 밖에서 사 왔을 거라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그분은 난을 예쁘게 피워내기도 하고 오븐의 열기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기도 하고 김치를 정성스레 담그는 여자였다. 이렇듯 잘못된 기억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한 우주를 체험하는 것이다. 사람을 편견 없이 진심으로 알아 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리고기 향연 저녁 초대가 수영장 둘레 오리 껍데기
2025.06.25. 22:51
“너무나도 그 임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가수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는 아버지의 18번 곡이다. 엄마를 선산에 묻고 돌아오신 날, 아버지는 금주 선언 30년 만에 다시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 어른들 모시고 살면서 눈치 보느라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아온 세월이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무정하게 먼저 떠나버린 아내가 야속해서였을까. 절규하듯 부르시던 그 노래를 우리는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셨다. 고모 집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버지를 기다리던 고모의 전화 한 통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고모 집은 버스로 15분 거리, 걸어가도 충분히 도착할 시간이었기에 모두가 불안에 휩싸였다. 이곳저곳 수소문하던 중,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계시는 아버지를 지나가던 행인이 경찰에 인계했다는 것이다. 여든 되시던 해, 치매 검사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만큼 총명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얀 백지처럼 되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더 충격을 받으셨는지, 그날은 식사도 거른 채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셨다. 재검사 결과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였다.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에 시곗바늘이라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90세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했던 65세로 돌아가 계신 듯하다. 이제 아버지의 뒷바라지는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보살피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나는 늘 구경꾼일 뿐이다. 올케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아버님은 너무 착한 치매, 예쁜 치매라서 우리 힘들게 하시진 않아요, 고집이 없어지셔서 오히려 더 편한 점도 있어요”라고 말해주니 참 고맙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 주었다. 친척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너거 엄마가 자식들 힘들게 할까 봐 하늘에서 너거 아부지 정신 줄 딱 붙잡고 있는갑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는 언약을 지키지 못한 엄마의 마지막 배려일까. 치매는 식구들까지 잡는다고 할 만큼 무서운 병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질병 1위가 치매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아버지는 이제 모범생이 되었다. 휴지가 눈에 띄면 얼른 주워 휴지통에 버리시고 손은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깨끗하게 씻으신다. 외출 후 갈아입은 옷은 가지런히 접어두고 방 안은 늘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다. 가끔은 수업 시간인데 운동장에서 배회하는 학생들을 교실로 들여보내야 한다며 서둘러 밖으로 나가시려 한다. “학생들은 잘 타일러야지 윽박지르거나 체벌로 다스려선 절대 안 돼.”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평생 어떤 교육관과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오셨는지 단면이 보이는 듯하다. 무병장수는 모든 이의 소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병장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의술과 의약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아버지는 인지능력 저하로 손녀딸을 막내딸로 착각하시고, 자신의 나이조차 가물가물하신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세월을 견뎌온 25년의 기억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이제는 ‘동숙의 노래’를 부르던 이유마저 잊어버리셨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아버지께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예쁜 치매’라는 이름 아래 남은 여생을 자식들에게 기대어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가족 카톡방에 작은언니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번 주말에 아버지 모시고 봄나들이 가는 것 잊지 않았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맛집에 가서 점심 먹고, 선산에 들러 엄마께 봄 소식도 전하자. 언덕에서 쑥 캐고, 벚꽃나무 그늘에서 쉬다 올 거니까 돗자리는 오빠가 꼭 챙겨 줘.” 따스한 봄볕을 만끽하며 흩날리는 꽃비를 맞을 때, 또 하나의 추억이 조용히 쌓일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 시계여, 쉬엄쉬엄 놀면서 가렴. 김윤희 / 수필가이 아침에 인생시계 아버지 치매 검사 버스정류장 벤치 가족 카톡방
2025.06.17. 19:42
손을 꼭 쥐었다 편다. 손바닥을 살펴보니 주름 사이로 흐르는 손금 옆에 길게 자리한 상처 흔적이 보인다. 오랜 세월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개하며 살아온 손이다. 투박한 내 손을 어루만진다. 미국 이민와서 13년이 지나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홀로서기를 작정했다. 막 비행기에서 내린 이민자의 자세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부지런하고 든든한 손이 있어 가능했다. 주름 사이에 드러나는 왼쪽 검지에 쌀톨만한 흉터를 들여다본다. 마음에 화를 담고 칼질하다 입은 상처의 흔적이다. 칼을 만질 때마다 머릿속을 비우라는 안전 수칙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손이다. 이민 초기, 가게에 총을 든 강도가 들었다. 무서움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당할 수만 없다는 생각으로 상황을 침착하게 살펴보며 주먹을 쥐었다. 요구하는 돈을 챙기려면 강도 뒤쪽으로 가야만 했다. 놈은 제 뒤에 있는 여자 한 명쯤이야 안중에 없다는 듯, 마룻바닥에 엎드려 있는 종업원들을 말로 위협하며 건들거리고 있었다. 돈을 봉투에 담으며 상황을 살피는 동안 남자의 손 안에 총이 헐렁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내 손이 민첩하고 강하게 총을 쳐냈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 생겼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종업원들이 일제히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우리 다섯 명 손에 꼼작 없이 잡혀 죽지 않을 만큼 맞은 다음 경찰에 넘겨졌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 손가락 상처는 대여섯 살쯤이었다. 집토끼 먹이를 찾아 개천 둑으로 갔다. 낫을 들고 어른 흉내를 내다 풀잎 대신 내 왼쪽 중지 마디를 찍어 피가 흘렀다. 울면서 들어서는 나를 본 엄마는 빨강 약을 발라주고 천 조각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 지금도 손을 만지다 흉터를 느낄 때면 호호 입김을 불어 주던 엄마가 보인다. 생전에 내 손을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손이 많이 상했구나’ 하며 내 손을 감싸며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태평양 건너에 살아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딸,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줄 알았던 딸의 고생을 알고 묻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손을 꼬옥 잡고 소통하는 동안 뜨겁고 끈끈한 감동이 피어났던 그 시간이 그립다. 그때가 어머니와 피부를 맞대는 마지막이 되리라곤 짐작조차 못했다.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주름과 흠집이 많은 손, 내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손이다. 내 어린 조막손을 잡아주던 엄마를 불러오는 손, 환갑이 지난 나를 염려하던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을 간직하고 있는 손, 강도를 물리친 손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생의 굽이 굽이를 헤쳐온 손. 그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는다. 손의 온기가 얼굴에 전해온다. 아직 따뜻한 내 손, 이 손으로 옆집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이웃과도 온기를 나누고 싶다.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상처 흔적 손가락 상처 강도 뒤쪽
2025.06.16. 21:00
지난 토요일 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한강 읽기 모임’이었다. 책을 많이 잘 읽고 싶은데 혼자는 한계가 있다. 읽다가 중단한 적이 많다. 수행하듯 읽으니 다른 재미있는 일에 치이기 일쑤다. 스스로 정한 목표치만 간신히 채우고 덮어버리곤 한다. 글을 쓰려 맘먹고부터 독서의 필요를 더욱 느끼고 있다. 어떻게 쓰는지 곁눈질했다. 고전을 읽으려 시도했다. 사람들이 살아낸 환경을 배우며 그네들을 이해하고 글 속의 주옥같은 표현도 닮고 싶었다. 읽을수록 내 부족한 점이 드러났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렵게 읽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 의지를 다해 읽어 내린 책은 곧 책꽂이에서 장식품이 됐고 나는 읽어냈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생각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내 맘을 깨닫기도 한다, 동의하는 혹은 반대하는 대화를 통해 제대로 알아간다. 책 속에 나오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내 기준에 갇히기 쉽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고정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설득하기도 하고 설득당하며 폭이 넓어진다. 타인과 더불어 배울 수 있어 참 좋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독서 모임이 열린다니 가슴 뛰는 일이었다. 신문을 통해 알고 오신 분이 대부분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과 작품을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고 곁가지도 듣고 왔다. 선물 하나 들고 갔다가 두 손 가득 선물 받고 왔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로 모임을 했다. 작품 배경인 제주 4·3사건에 대한 자료를 공부하고 책도 꼼꼼히 읽어 갔다. 독서 토론 경험이 없는 나는 책에 밑줄 쳐가며 읽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의견을 말했다. 모임에는 제주에서 생활하신 분들이 있어 제주 살이에 대한 다양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집에 살더라도 각자의 부엌을 갖고 따로 살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독립적인 여성들의 삶이 놀라왔다. 한강 작가를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젊은 여성인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어 몇 편을 읽었다. ‘아버지 영향으로 문단에 쉬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라는 내 선입견은 사라졌으나 이상 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을 접하고는 난해한 작가라 여기고 그녀를 잊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그녀 책을 다시 보고 있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적 표현이 담긴 작품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린다. 한강 작가는 역사 뒤안길에서 잊혀져간 사람들 삶에 시선을 둔다. 나는 비겁하게 뒤로 빠져 적당히 살아가고 있으나 누군가 나와 주길 바랐다. 용기 있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승자들이 써 내려간 역사 안에서 그녀는 소시민을 어루만진다. 그녀 책을 읽음으로 그녀를 응원하기로 했다. 다음 독서 모임이 기다려진다. 한 달에 한 번, 오렌지글사랑에서 진행되는 이 모임에 관심 있는 분들 함께했으면 좋겠다. 김현실 / 수필가이 아침에 독서 모임 독서 토론 다음 독서
2025.06.11. 19:44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데기와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 벌여서 승소했다.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 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물 오물 사이 사회 분위기 모순적 아이디어
2025.06.09. 19:54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한미여성회(KAWA) 미술사 수업 시간이었다. 감각과 공간, 움직임을 다루는 그의 예술 세계는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작년부터 LA현대미술관(MOCA)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 드디어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MOCA라고 하기에 브로드 미술관 옆에 있는 곳인 줄 알고 네비게이션도 없이 당당히 가서, “엘리야슨 예약했습니다” 하고 QR 코드를 내미니 직원이 웃으며 “그 전시는 게펜 컨템포러리(MOCA의 별관)에서 열려요”라고 했다. 결국 다시 차를 몰았고 주차비만 두 번 들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는 그 시간조차 왠지 예술처럼 느껴졌다. 미술도 인생도, 모든 공간이 늘 우리가 예상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두 번째 전시장, 게펜 컨템포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전시 제목 ‘OPEN’은 단지 문이 열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곳은 감각과 시선, 생각을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엘리아슨은 묻는다. “나는 지금 느림에, 타인의 시선에, 나 자신에게 솔직한가?”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의 문이 하나 열리는 경험을 했다. 빛과 그림자, 색과 공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전시 안에서 나는 멈춰 선 채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무용수처럼. 나는 미술관에서 종종 그림 앞에서 춤을 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색과 선의 리듬에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다. 발레는 나만의 감상 방식이다. 엘리아슨의 작품 앞에서는 그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예술에 닿는 정당한 방식임을 느꼈다.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가 말하는 듯했다. 전시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3월, 한국 리움미술관에서 우연히 본 구석진 계단에 구조물이 사실 엘리아슨의 작품이라는 걸 나중에 미술사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감동이 이제는 이름과 의미를 가진 예술로 되살아났다는 사실. 알지 못한 채 느꼈던 감정이, 이해를 통해 더 깊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엘리야슨은 청소년 시절 브레이크댄스를 추던 무용수였다. 그의 작품에는 몸과 공간, 움직임의 감각이 살아 있다. 퍼포먼스와 빙하를 활용한 작업을 보면, 자연과 빛, 몸의 관계를 예술로 풀어내는 그의 철학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내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예술이다.” 그 말은 무용수인 나에게도 깊이와 닿았다. 내 춤도 그렇다.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은 생각과 감정이 흘러나오는 하나의 형식이다. 나의 존재가 몸을 통해 표현될 때, 그것은 예술이 된다. 오늘 나는 ‘빛의 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춤, 내 삶, 내 예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내 곁에서 늘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는 남편이라는 조용한 동행자가 있다는 것. 예술의 길이 외롭지 않은 건 그 따뜻한 동반자 덕분이다. 나는 진발레스쿨의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에게 늘 미술사 수업을 권한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미술은 감각을 일깨우고, 무용은 그 감각을 몸으로 피워내는 예술이다.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삶을 더 풍요롭고 빛나게 가꿔 나간다. 누군가는 새롭게 눈을 뜨고, 누군가는 잊었던 날개를 되찾는다.그렇게 우리의 일상에도 예술의 기적은 조용히 깃든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이 아침에 미학 예술 세계 미술사 수업 공간 움직임
2025.06.04. 19:51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질과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그런데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친구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반박했다. “소재가 신선하잖아. 본업은 작가고 취미가 시위하러 가는 거래.” “그래서 글이 그 모양이구나.” 친구의 혹평은 끝이 없었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벌여서 승소했다. 지금 친구와 논쟁하고 있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가끔 변기 속에 나타나더니,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 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정보라 작가가 대학에 다닐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괴담이 많이 떠돌았다. 어느 백화점 지하 화장실에 가면 여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귀신은 마당 구석에 있는 변소에서 나온다고 했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시커먼 마당을 가로질러 변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머리털이 곤두서곤 했었다. 그때는 변소 밑에서 손이 나타나서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집에 출몰하던 여자 귀신이 현대 사회로 진화한 다음에는 공공장소인 백화점으로 옮겨갔나 보다. 한국인의 무속 및 민담은 시대가 지나도 본질은 여전히 같다는 점이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 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이야기 역설 역설적 이야기 여자 귀신 가면 여자
2025.05.29. 17:39
머리 염색할 날짜를 훨씬 넘겼다. 흰 머리카락은 정수리, 뒤통수, 옆머리와 앞머리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였다. 흰머리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한 독한 염색약을 바르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고 보니 별일이었다. 개성이랄 게 별다른 게 있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개성이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거나 청결하지 않은 것은 문제겠지만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쾌를 주거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이 내 생활에 있을까. 흰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 생각의 닻을 용기의 바다에 내려보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자르기만 할 뿐이어서 새로운 머리카락은 각자의 색깔대로 용기 있게 자라났다. 6개월쯤 지나니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위에서부터 하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위아래 중구난방이다. 바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이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으로 나뉘었다. “염색 안 하실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던진다. 말끝에 매달린 관심들은 흰머리에 대한 일종의 낯섦과 옅은 거부감으로 내게 부딪혀 닿았다. 눈이 파랗고 코가 오뚝한 백인 할머니들은 백발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흉내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염색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은 인위적으로 검은 머리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은발 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얼굴보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머리카락을 염색 안 할 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생긴 대로 살자던 마음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확인하듯 흰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옆머리를 보려고 좌우로 눈을 뾰족하게 뜬다. 앞머리에도 가닥가닥 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휘청거리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은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은빛으로 빛났고 머리카락 영양 상태도 좋았고 머리카락 수도 많아 보기 좋았다. “나이 들수록 예뻐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어려보여요”가 기분 좋은 덕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젊어 혹은 어려보이길 원한다. 이 사회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해서일까.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눈가의 주름을 최대한 펴는 시술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허공을 가르지도 못하는 비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또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은 완곡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을 피하지 말고 늙음으로써 새롭게 생긴 외모와 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대해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나이 듦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늙을수록 더 필요한 용기 같다. 내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염색약 용기 머리카락 색깔 머리카락 영양 머리카락 수도
2025.05.26. 15:22
노라. 노라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직장 동료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첫 직장. 신입사원은 일 년간 교습을 받고 통과해야 정식 사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도와 가면서 혹독한 훈련을 함께 받았다. 동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아이리스 계의 노라였다. 선한 갈색 눈동자를 한 삼십 대 중반의 노라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강사가 질문할 때마다 막히지 않고 대답하며, 모르는 사항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 그녀와 나는 상당히 친해졌다. 약간 펑퍼짐한 몸매의 그녀는 남편이 금발을 좋아한다며 항상 머리를 물들었다. 아기를 갖고 싶어했지만, 치과 의사인 그가 아이를 원치 않자, 애완용 개를 자기 아들이라 했다. 어느 날 아침 노라의 사무실로 우편이 배달되었다. 그 전날까지 함께 저녁 먹고 한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같이 출근한 남편이 보낸 이혼 서류였다. 나이 어린 히스패닉계의 간호사가 자기 아이를 가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오십을 바라보는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 일 년 동안의 이혼 소송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우울증과 술에 빠졌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6개월의 병가를 주었지만, 재출근 후 일주일 만에 사표를 냈다. 그 후로 노라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오랜만에 노라가 일했던 오피스에 들려서 일을 보고 차로 향했다. 저쪽에서 어떤 꾀죄죄한 옷을 입은 뚱뚱한 여자가 환히 웃으며 걸어왔다. 검게 썩어가는 누런 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여기저기 색깔이 벗겨진 낡은 갈색 선글라스 너머로 90도가 넘는 이 더운 대낮에 행여 바람이라도 들어갈까 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얼굴엔 검버섯이 잔뜩 핀 여자. 한눈에 봐도 노라였다. “리나”라고 부르면서 다가온 그녀는 반갑게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무심결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눈을 꼭 감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묻고, 우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헤어졌다. 잊히지 않는 죽음을 살아가는 노라의 뒷모습을 봤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라를 보며 고작 내가 꺼낸 말은 “안 더운가!”였다. 또, ‘이 옷은 한번 빨아선 냄새가 가시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만함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그 여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상하게 채워주던 그 여자, 위트가 넘치던 내가 알던 노라는 어디로 갔을까. 문득 피천득의 ‘인연’이 떠오른다. 과거는 추억으로 새기고 마지막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춘천의 소양강에는 못 가지만 대신 주마 비치에나 가야겠다. 모든 것을 품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련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여자 위트 이혼 소송 갈색 선글라스
2025.05.19. 19:06
5월이 열리면 어김없이 1980년 5월18일, 광주와 금남로, 망월동이 떠오른다. 망월동. 5.18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5.18 최초의 사망자 김경철씨도 그곳에 잠들어있다. 거기 누워있는 어느 죽음이 애통하지 않겠는가 마는 그의 죽음은 특히 듣는 이의 가슴을 후빈다. 김경철, 그는 스물여덟 살 청각장애인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정을 말할 수도 없었는데, 수를 쓴다고 오해한 공수부대원들의 곤봉을 맞고 결국 사망했다. 45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 한 편을 썼다. 연작시 ‘5월의 한 풍경(17) - 5.18 최초의 희생자 김경철’이다. ‘내 죄는 귀머거리 / 내 죄명은 귀머거리 // 80년 5월 그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망이를 든 군인들이 몰려와 군홧발로 무작스럽게 걷어찼어요. 나는 머리를 움켜쥔 채 허깨비처럼 길바닥에 벌렁 넘어졌지요. 벌떼처럼 달려들어 매타작을 했어요. (중략) 박달나무 몽둥이가 내 머리 위에 소나기처럼 쏟아졌어요. 오-매 으째야쓰까 잉, 으째야쓰까 잉, 발을 동동 구르는 아줌마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희미하게 스쳐갔어요. 내 스물여덟 청춘이 가.물.가.물 저물어 갔어요. 나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소리, 소리, 질러댔지요. // 왜 때려, / 왜 때리냐고 / 이유나 알고 맞자고 이놈들아!’ 죽은 자는 말없이 달을 보고 누워있는데 총을 들었던 자는 햇빛 아래 활보하고 있다. 반백 년 세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역사적 평가가 끝난 그때의 일을 왜곡하여 시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 아침에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거대한 국가폭력 앞에 쓰러져간 개인의 생명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동학혁명, 3.1 독립운동, 제주 4.3, 보도연맹사건, 4.19, 5.18…. 근세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작가 한강이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5월은 6월을 위한 징검다리이다. 징검다리는 조심 조심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새 땅에 도착할 것이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6월을 기다린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희생자 희생자 김경철 사망자 김경철씨 금남로 망월동
2025.05.18. 18:45
얼마 전, 코펜하겐 공항의 한 탑승구에 특별한 여행객들이 모였다. 이들의 여정이 남달랐던 이유는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를 알리는 탑승구 전광판에는 ‘유럽 내 미상의 목적지(Unknown Schengen)’라고 적혀 있었다. 이 비행기는 1985년 체결된 ‘솅겐(Schengen) 협정’에 따라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유럽 내 30여 국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 중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 비행기였다. 승객은 물론, 기장을 제외한 승무원들조차 행선지를 모른 채 비행에 나설 정도로 도착지에 대한 보안이 철저했다. 이 비행기는 이륙 후 두 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를 밝혔다. 비행기가 향하는 곳은 스페인의 중세 도시, 세비야였다. 여행을 마친 많은 이들이 세비야의 풍경보다,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느꼈던 기대와 설렘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후기를 남겼다. 목적지를 모른 채 여행을 떠나는 미스터리 여행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티켓은 발매 4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한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며 이런 미스터리 여행은 목적지의 비자 문제가 없는 유럽이나, 땅이 넓은 미국이나 호주의 국내선 여행에서나 가능하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여행이라고 하면서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를 했다. “한국엔 없는 상품. 우리야 뭐… 나라와 국민 전체가 목적지 미상의 미스터리 여행을 하는 중일 수도?” 이 문장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정치, 불투명한 경제, 흐릿한 미래가 맞물린 현실에 대한 자조적 진단이었다. 전체가 목적지 미상의 미스터리 여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이민자로 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가 찾은 미국은 표면상의 목적지였을 뿐, 그 너머에서 어떤 삶이 펼쳐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 여정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를 탄 여행객들은 모르는 곳을 향하여 함께 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한 동료의식을 느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낯선 세계를 향해 함께 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민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는 각자의 사연과 꿈을 안고 익숙함을 떠나 모르는 곳을 향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이민자로 사는 우리는 모두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고, 생각의 방향도 서로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모르는 곳을 향한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 그 여행에 나선 이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비방보다는 위로, 무관심보다 격려, 불신보다 신뢰로 서로를 감싸안아야 한다. 목적지는 여전히 불확실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서로 붙잡아 주는 그 순간, 이 길은 고단한 생존의 현장이 아니라 은혜의 여정이 될 것이다. 낯선 길일수록, 함께 걷는 이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이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모르는 곳을 향해 갈지언정 서로의 길이 되어줄 품 넓은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미스터리 여행 목적지 미상 국내선 여행
2025.05.18. 18:41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대사다. 내가 최근 아들과 겪은 일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최근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일이 준 만큼 물론 보수도 줄었을 것이다.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허덕이는 게 안쓰러웠다. 아이를 믿어서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건강 해칠까 걱정했다. 5년을 버텼으니 할 만큼은 했다, 싶었다. 일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내 출판기념회에서 아들을 손님들에게 인사시켰다. 마침 한 분의 아들이 법대를 나와 대형 로펌에 다니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타와 춤을 배우러 다니고 회사의 인턴으로 만난 아가씨와 데이트도 하며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뉴욕 사는 딸이 휴가로 2주간 LA 집에 온다는 소식에 구순 노모가 손녀딸을 볼 겸 한국에서 오셨다.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러 부엌에 있느라 부자지간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아빠와 언성이 높아지는 거 같더니 아들이 제집으로 가버렸다. 다정하고 속 깊은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가족에게 터놓을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와 사무친 서운함이 많았나. 그렇다 해도 할머니까지 계신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 얘기로는 출판기념회에서 자기가 비교당했다며 화를 냈단다. 예민한 건 알고 있지만 아이의 속 좁음이 남편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아기 때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눈을 맞추면 세상을 모두 가진 양 행복했지. 아이 덕분에 으쓱하며 행복해지고, 겸손을 배우며 불행한 주위의 사람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려서 예쁜 짓 한 걸로 평생 할 효도를 다 한 걸까. 자식에게 쏟아부은 정성을 희생으로 여기며 아이를 나의 분신으로 생각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서운해 했다. 성공한 자식을 이민자의 트로피로 여기며 보험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 특히나 아들은 서운할 일만 남았을 터이니 미리 예방주사를 맞은 걸까.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부모와 자식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대가 그에게 족쇄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내 사랑이 그를 가둬 버리면 안 된다. 내 꿈이 사랑하는 이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믿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주라. 내가 할 일은 그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워 주는 것.’(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중) 오래전에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그나저나 ‘어머니날’을 잊은 건 아니겠지.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예방주사 자식 각자 순간 자식 최근 아들
2025.05.12. 18:48
어제저녁 맷돌에서 3시간 구웠다는 달걀 2개를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그 귀한 달걀을 챙겨주는 친구의 배려가 고맙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달걀 2개를 재봉틀 옆 공간에 놓고 앉아 껍질을 벗겼다. 달걀 속이 보통 달걀과 다르다. 하얀색이 아니고 누런 색이다. 씹는 맛도 물컹하지 않고 존득존득하다. 달걀을 보면서 기다림으로 채운 수고와 정성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배를 채우고 허기진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달걀을 삶는 일은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삶은 달걀의 껍데기가 잘 벗겨지려면 냉장고에서 꺼낸 후 잠시 상온에 두어야 한다. 달걀 표면에 이슬이 송송 맺힐 즈음 끓는 물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7분쯤 끓이다가 찬물에 잠시 식힌 후 꺼내면 삶은 달걀이 완성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쉽게 자라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 사춘기도 있고 힘들어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인생이 쉽게 자라겠는가. 푹 삶는 기간도 있고 힘들게 지나야 하는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함께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된다. 톡톡 책상에 달걀을 두드린 후 껍데기를 벗기는데 오늘따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출출한 배는 얼른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채건만 서두를수록 껍질은 조각이 난다. 껍질과 함께 흰 살점이 떨어진다. 달걀은 점점 곰보가 되어간다. 똑같은 조건으로 삶아도 그런 달걀이 하나씩은 있다. 달걀 모양을 지키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껍데기를 조각조각 벗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각난 달걀 껍데기를 하나씩 천천히 벗기는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가 떠오른다. 껍데기가 잘 떨어지는 달걀처럼 손발이 척척 맞거나 생각이 통하는 이들은 만남부터 즐겁다. 만남이 기다려지고 헤어질 때도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만들어 내는 결과물도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토를 다는 이들은 만나기 전부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계를 내팽개치지는 못하기에 힘을 빼고 느릿느릿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안아가야 할 때도 있고 손해를 봐야 할 때도 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진지한 소통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달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식이고 값도 싸고 영양은 풍부하고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었던 달걀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값이 천정부지다. 지난 주말 마켓에 갔었는데 어느 중년 부인이 2팩 달걀을 카트에 넣었다가 1팩을 다시 내놓는 광경을 보았다. 오랫동안 양계장을 운영하는 남미 사람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닭장 청소를 하는 사람에게 닭똥을 모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친절하게도 버리지 않고 쓰레기 비닐 백에 넣어 야무지게 묶어서 준다. 닭똥은 운반하기가 무겁고 냄새가 심하지만 채소밭에 뿌리면 깻잎이 손바닥보다 넓고 색깔이 진녹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닭을 그 자리에서 잡아 주기도 하고 달걀을 판매한다. 아침에 내놓으면 오후에는 없다. 주위 사람들이 바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닮은 하루를 살아내기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인내심으로 천천히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듯 촘촘한 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때론 기다림을 배우고 때론 수고스러움을 익힌다. 어쩌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버리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 주는 삶은 달걀이 된다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호주머니의 두둑함보다 마음의 풍요로움이 행복지수가 높다. 행복은 소박하고 가까이에 있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껍데기 인생 달걀 껍데기 보통 달걀 달걀 표면
2025.05.05. 19:29
해마다 이맘때 맞이하는 부활절은 만물이 소생하는 꽃 피는 봄과 함께 찾아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부활절 덕분에, 이미 땅은 새싹으로 푸르러졌고 나무가지마다 망울을 터뜨리거나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냈다. 도심 주변의 나지막한 언덕에도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듯 만발하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있음이 벅찬 행복으로 다가서는 가슴 뛰는 계절이다. 어릴 적 산골 마을에서 자랐던 나는 봄이 오면 뒷산의 진달래와 마을 앞 시냇가의 노란 개나리꽃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다. 자연의 품에 안긴 어린 강아지처럼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때문일까, 매년 꽃 피는 봄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내게 유난히 특별한 기쁨을 안겨준다. 기나긴 겨울 한철 꽁꽁 얼어붙었던 동토를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새싹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희망’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자 ‘부활’의 생생한 상징이다. 불현듯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던 〈젊은 죄수〉에 대한 실제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주먹 하나만 믿고 방황하며 거친 삶을 살다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독방에서 절망하며 몸부림치던 그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짧은 청춘을 이렇게 끝낼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화장실 구석에서, 그의 눈에 다 해어진 낡은 성경책 한 권이 들어왔다. 휴지 대용으로 쓰였는지 구약은 이미 찢겨 나가고 신약의 일부만 겨우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책 첫 장에 쓰인 구절이 그의 시선에 박혔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의 멍에를 가볍게 해주겠다’ (마태복음 11:28). 우연히 마주친 이 한 말씀이 그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고 뜨거운 은총이 되었다. 죽으려 가져온 노끈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서럽게 흐느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 생각하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 수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신구약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출소 후 우여곡절을 거쳐 신학대학에 들어가 결국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얼어붙었던 인생의 절망을 뚫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이 전직 재소자의 이야기는 진실로 아름다운 ‘부활’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봄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활’의 신비를 알리는 계절이다. 계절의 상징인 ‘꽃’과 ‘나비’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죽은 듯 보였던 씨앗이 대지의 품속에서 새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어두운 고치 안에 갇혀 죽은 듯했던 애벌레는 허물을 벗고 찬란한 ‘나비’가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이처럼 되살아난 새 생명체인 꽃과 나비는 이 세상에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이며, 우리가 맞이하게 될 부활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아름다움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죄와 죽음이라는 어두운 불안 속에 갇혀 움츠러들었던 인간의 삶은 2000년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대지의 흙처럼 포근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유한했던 우리의 존재가 아름답고 찬란한 ‘새 사람’으로 영원히 꽃피울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이 신비로운 은총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부활’의 기쁨이자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 아침에 약속 부활 부활절 덕분 약속 부활 신구약 성경
2025.04.28. 19:54
머리 염색할 날짜를 훨씬 넘겼다. 흰 머리카락은 정수리, 뒤통수, 옆머리와 앞머리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였다. 흰머리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한 독한 염색약을 바르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고 보니 별일이었다. 개성이랄 게 별다른 게 있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개성이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거나 청결하지 않은 것은 문제겠지만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쾌를 주거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이 내 생활에 있을까. 흰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 생각의 닻을 용기의 바다에 내려 보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자르기만 할 뿐이어서 새로운 머리카락은 각자의 색깔대로 용기 있게 자라났다. 6개월쯤 지나니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위에서부터 하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위아래 중구난방이다. 바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이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으로 나뉘었다. 염색 안 하실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던진다. 말끝에 매달린 관심들은 흰머리에 대한 일종의 낯섦과 옅은 거부감으로 내게 부딪혀 닿았다. 눈이 파랗고 코가 오뚝한 백인 할머니들은 백발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흉내를 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염색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은 인위적으로 검은 머리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은발 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얼굴보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머리카락을 염색 안 할 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생긴 대로 살자던 마음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확인하듯 흰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옆머리를 보려고 좌우로 눈을 뾰족하게 뜬다. 앞머리에도 가닥가닥 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휘청거리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은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은빛으로 빛났고 머리카락 영양 상태도 좋았고 머리카락 수도 많아 보기 좋았는데 그분이 지나가는 얼굴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 머리 모양이라고 했었다. 나이 들수록 예뻐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어려 보여 요가 기분 좋은 덕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젊어 혹은 어려 보이길 원한다. 이 사회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해서일까.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눈가의 주름을 최대한 펴는 시술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허공을 가르지도 못하는 비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또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은 완곡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을 피하지 말고 늙음으로써 새롭게 생긴 외모와 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대해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나이 듦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늙을수록 더 필요한 용기 같다. 내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용기 머리카락 색깔 머리카락 영양 머리카락 수도
2025.04.22. 17:49
한인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히기 쉬운 이들에게 교회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과 달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가 적은 이민 사회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를 찾는다. 때로는 이러한 만남이 신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이민자들은 대개 집에서 가까운,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한인 교회를 찾게 된다. 한번 정착한 교회는 익숙함과 정 때문에 이사를 가더라도 쉽게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인타운의 유서 깊은 대형 교회를 수십 년째 다니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나는 안타깝게도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신도 간의 의견 다툼, 신도와 성직자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일부는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이러한 갈등은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이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겪지 않는 교회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렸던 소중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는 없을까. 교회가 추구하는 사랑 안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 역시 심각한 분쟁을 겪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라는 귀한 가르침을 남겼다. 교회의 분열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져야 하는 아픔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일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교회 내의 다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서로 마주 앉아 사랑의 공동체로서 진솔하게 대화하고 화해한다면, 그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호 / 수필가이 아침에 한인 교회 한인 교회 교회 재정 고린도 교회
2025.04.21. 18:21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얻고, 또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값진 경험이다. 학창 시절, 순수한 열정 속에서 맺어진 인연은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래전,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던 친구가 있었다.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어 오랜 시간 마음 한 켠에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팔순을 맞아 출판기념회를 겸한 잔치를 열게 되었는데, 기적처럼 60년 만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뉴욕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친구를 만났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미국 이민 생활 중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만난 A권사는 흔치 않은 강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분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이 뒤늦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업한 병원이 번창하던 중 갑작스러운 췌장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A권사에게 주변에서 홈스테이를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유학 온 초중고등학생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고 헌신적으로 섬겨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생들이 입국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재는 소수의 학생들만 돌보고 있다. 그녀는 남가주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그 교회 안에는 그녀처럼 배우자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이 세미나에 꾸준히 참석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의 집에서 제26회 ‘상실 회복’ 세미나를 연다면서 나를 초대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감동을 주는 시를 부탁해, 나는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2세 자녀들도 참석하여 영어 시를 낭송하는 순서도 마련되었다. 정성껏 준비된 풍성한 음식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두 배우자를 잃거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상처를 더욱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들은 고백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야 한다. 십자가와 천국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상실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 시간 마음
2025.04.20. 19:00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테크놀로지라면 머리를 흔든다. 카톡도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멀리서 사는 아들은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분은 오랫동안 사는 너른 뒷마당이 있는 집을 고집한다. 커다란 집에 혼자 사는 엄마가 불안하여, 아들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고, 층계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는 카톡을 못 하면 노후에 쓸쓸하다고 말했지만, 그분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내가 언제 만나자고 하면, 지인은 날짜를 기억하려고 몇 번 소리 내 중얼거린다. 나는 휴대폰 캘린더에 저장하면 얼마나 편한데 그러냐고 안타깝게 바라보곤 한다. 오늘은 모처럼 시내에서 그분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한식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요즘 새로 생긴 핫하다는 베이커리를 찾아 들어갔다. 한국 분들 몇 분이 빵집의 아늑한 코너에서 앉아 있었다. 다들 머리는 하얗고 간단한 패딩을 입고 야무지게 여민 가방을 옆구리에 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리가 아는 분들이었다. 15년 전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같이 들었던 분들이다. 그때 알았던 분들이 지금도 여전히 만나며 소녀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다. 그분들은 오랜만에 만난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분이 성큼 일어났다. 맛있는 빵이 진열된 카운터로 다가갔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모찌를 5통 사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었다. 집에 가서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모찌를 먹으면서 친구들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한다.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세월이 굳혀놓은 정이 찹쌀 모찌처럼 끈적거려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분들은 여전히 기억이 또랑또랑했다. 버스 스케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시니어 카드를 소지하고, 한두 블록은 걸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나온다. 봄비가 질척거리고 바람이 냉랭한 오늘 같은 날도 서슴없이 외출한다. 나는 돌아오면서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노인이 기억을 잃어가는 이유는 나이 탓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휴대폰에 지나친 의존, 그로 인한 산만함, 그리고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도 해당한다. 화면을 보다 보면 광고가 뜨고 다른 링크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텍스트를 대충 보고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집중하지 못하므로 산만해지고, 기억이 뇌 속에 입력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베이커리에서 만난 슈퍼 시니어들은 치매도 우울증도 도망갈 것 같은 기세다. 수시로 버스 타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밤 공연도 함께 보러 다닌다. 외출하는 몇 시간 동안, 버스 시간, 장소 찾기, 지하철 노선, 차표 간수 등등을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 회로는 왕성하게 연결된다. 오늘 같이 나온 지인은 3년 전에 남편이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는 모든 일 처리를 남편이 해 주었다. 혼자 남은 엄마가 걱정스러워 엉엉 울던 아들에게 지인은 말했다. 이 집을 유지 관리 못 하면 팔겠다고 말이다. 아들과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그분은 휴대폰 대신에 자신의 기억에 의존했다. 새벽에 일어나 붓글씨를 쓰고, 낮에는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큰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가계부 정리도 손으로 하고 좋은 말을 읽거나 들으면 노트에 자주 적는다. 지인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카랑카랑해졌다. 오늘 시내를 같이 걸어보니 몸도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나는 가끔 나의 가까운 미래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궁금해할 거 없다. 오늘 내가 하는 것이 곧 나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이다. 베이커리에서 만난 분들은 15년 전에 하던 것을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내 발로 어디든 다니는 이분들은 당당해 보였다. 편한 것을 택하지 말라. 어려운 길을 택하라. 나는 흰색 모찌를 한입 베어 물면서 중얼거렸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초특급 시니어 초특급 시니어 지하철 시니어 슈퍼 시니어들
2025.04.17. 17:52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받지 않고 무시당하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먹을 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먹고 나이테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닦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 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나를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나이테 숫자 남편 자식 좌절 행복
2025.04.16. 20:13
일을 나가려 차를 후진하며 좌우를 살핀다. 어깨 너머로 제인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 제인, 오랜만입니다, 인사를 했다. 그녀가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는다. 걷기를 끝내고 오는 길인 성싶어 얼마나 걸었느냐고 물었다. 요즘엔 공원까지 다니기가 힘들어 1마일 거리에 있는 마켓 쪽으로 갔다 오는 길이란다. 무탈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한 집 건너에 사는 이웃이다. 7년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 오다가다 가끔 마주하는 그녀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몇 살인지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대답 대신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몇 살인지 더 궁금해졌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마주친 제인은 담소 중 뉴저지가 고향이고 열아홉 살 때 남편을 만나 LA로 왔다고 했다. 나는 그때가 몇 년도였는가를 물었더니 주저하지 않는 그녀의 답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올해 90세가 된다. 믿지 못할 만큼 꼿꼿하고 정신이 맑다. 그녀는 내가 나이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테다. 언젠가 막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 내게 제인이 다가와 도와달라 했다. 피부과 의사가 등 뒤에 붙여준 밴디지를 바꿔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못하고 있단다. 그녀의 집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넓은 집안에 가득했다. 가족역사가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제인의 젊은 리즈 시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목선까지 내려오는 진한 갈색 머리의 미녀. 미소가 봄 햇살처럼 싱그러웠다. 제인이 사진 속 가족을 소개했다. 그녀는 딸과 손녀를 가리켰다. 암으로 고생하는 딸과 유방에서 시작한 암세포가 온 뼛속으로 번져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살 만큼 살아온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 소식에 외로움이 짙어간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가질 것 다 가져 복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넉넉한 물질이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 마주할 나의 시간일 수도 있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 기반과 사회적 관계망은 약해지고 홀로라는 생각이 날 때면 어찌 쓸쓸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무거워 걷기를 내일로 미룰까 하다 걸었다고 제인이 말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 나가고 싶지 않은 때 같이 걷자며 내 전화번호를 그녀 전화기에 입력했다. 남편 전화번호도 저장해주며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했다. 이웃에 관심을 갖는 일이 사생활 침해로 오해받을까 싶어 지금껏 그들을 소 닭 보듯 지나쳤다. 이 아침에 다짐한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고. 데면데면한 ‘옆집’이 아닌 언제라도 문이 열려있어 소통 가능한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이웃 남편 전화번호 피부과 의사 검정 카우보이모자
2025.04.14.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