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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꿈꾸던 시간, 돌아갈 수 없는 날들

Los Angeles

2026.04.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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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Q7파인아트 대표,작가

이기희 Q7파인아트 대표,작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 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깊고 맑은 우리 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들여 지은 새집은 북한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아버지는 우는 어머니 등 쓰다듬으며 “새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 (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스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해 준다. “훌륭한 화가로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아시안 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 집에 걸지.” 적은 돈은 큰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줄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이 기 희 Q7 Edition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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