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데이부터 노동절까지 이어지는 여름철 교통사고 위험 기간인 이른바 ‘가장 치명적인 100일(100 Deadliest Days)’이 시작된 가운데, 캘리포니아에서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가 공개됐다. 머큐리 보험이 최근 5년간 자동차 보험 청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캘리포니아에서 사고 청구가 가장 많이 접수된 10분 구간은 낮 12시부터 12시 10분 사이로 나타났다. 다만 카운티별로 위험 시간대에는 차이가 있었다. LA카운티와 샌버나디노카운티에서는 오후 3시부터 3시 10분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간대로 꼽혔다. 오렌지카운티와 리버사이드카운티, 샌디에이고카운티는 낮 12시부터 12시 10분 사이에 사고 청구가 가장 많았다. 샌타클라라와 새크라멘토카운티는 오후 4시부터 4시 10분 사이, 프레즈노카운티는 오후 3시부터 3시 10분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간대로 조사됐다. 전국적으로는 평일 오후 3시부터 3시 10분 사이에 사고 건수가 가장 많이 몰렸다. 부상 위험은 약 1시간 뒤인 오후 4시부터 4시 10분 사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머큐리 보험은 이 시간대에 차량 흐름이 빨라지면서 충돌 사고가 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머큐리 보험의 헤더 폴 클레임 담당 매니저는 오후 이른 시간대에는 학교 픽업과 외출 차량 증가로 정체가 심해지면서 저속 추돌이나 정체 구간 사고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후 교통 흐름이 풀리기 시작하면 운전자들이 속도를 높이거나 주의력이 떨어져 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에는 사고 위험 시간대가 더 앞당겨졌다. 전국적으로 주말에는 낮 12시부터 12시 10분 사이에 사고 건수와 부상 위험이 높았다. 통근 대신 점심 무렵 장보기, 외출, 여가 이동이 집중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보행자의 경우 차량 운전자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사고의 부상률은 60%를 넘는 경우가 많고, 일부 시간대에는 80%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머큐리 보험은 밝혔다. 특히 점심시간, 출퇴근 시간, 오후 중반 시간대에 보행자 사고 위험이 높았다. 머큐리 보험은 운전자들에게 여름철 이동이 늘어나는 시기일수록 휴대전화 등 주의 분산 요인을 피하고, 앞차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며, 교통 흐름이 빨라지는 시간대에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온라인 속보팀교통사고 시간 여름철 교통사고 일부 시간대 위험 시간대
2026.05.27. 16:33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레돈도 비치 해변을 걷는다. 물결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그때마다 나도 조금씩 달라진다. 발끝에 닿는 모래의 감촉과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걸음마다 밀려든다. 나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바닷가를 거닐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멋모르고 올랐던 한라산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나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그 뒤로 산은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더 편안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등산을 즐기는 지인의 권유로 산행팀에 합류했다. 늘 걷던 평탄한 길과는 달리, 어디서 오르막이 시작될지 모르는 산길은 낯선 긴장과 묘한 설렘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미국에서 처음 나서는 산행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의 손길은 의외로 세심했다. 기온 변화에 대비한 재킷과 등산 스틱, 간식까지 하나하나 챙겨 건넸다. 안전수칙을 들은 뒤 산속으로 발을 들이자,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발밑의 낙엽 바스락거림, 멀리서 번져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산이 먼저 말을 거는 듯했다. 초입부터 좁고 비탈진 돌길이 이어진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호흡은 짧아지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진다. 평지에 길들여진 근육들이 낯선 산길과 가파른 경사 앞에서 놀란 듯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 풍경 속에서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음을 실감한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일행의 발걸음에 뒤처질까 거친 숨을 삼키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묵묵히 발을 내딛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고 공기가 달라졌다. 아득하기만 했던 정상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몇 걸음은 몸보다 마음이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숨은 가빠지고 심장은 귓가를 두드리듯 요란하게 뛴다. 그때, 한참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팀이 어느새 우리를 스치듯 앞질러 간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그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을 삼킨다. 마침내 정상에 섰다. 먼저 도착한 이들과 뒤섞인 그곳은 웃음과 환호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얼굴들이지만 같은 높이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묘한 온기가 번진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고, 멀리 내려다본 도심의 건물들은 손바닥 위 모형처럼 작아 보인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야호!”를 외친다. 숨이 풀리듯 터져 나오는 순간, 몸 전체가 서서히 이완된다. 그때였다. 시선이 한쪽에 멈췄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이들은 은빛 머리의 시니어들이었다. 그중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여든여섯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같은 길을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그들의 걸음은 가벼웠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를 숫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설명 없이 그것을 넘어선다. 오래 산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몸에 남는다는 것을 그들의 발걸음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야 보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위에 어떤 선택을 쌓아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습관이 결국 한 사람의 방향이 되고, 그 방향이 삶의 결을 만든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늘의 걸음 속에 섞여 있다. 그것은 이름도 없이, 이미 내 걸음 옆을 함께 지나고 있었다. 김윤희 / 수필가이 아침에 증명 시간 나뭇잎 소리 등산 스틱 순간 하늘
2026.05.17. 18:3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 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깊고 맑은 우리 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들여 지은 새집은 북한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아버지는 우는 어머니 등 쓰다듬으며 “새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 (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스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해 준다. “훌륭한 화가로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아시안 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 집에 걸지.” 적은 돈은 큰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줄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이 기 희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화가 전시회 부엌 안쪽 현대미술 화랑
2026.04.22. 23:28
LA 거리의 요란한 버스 소리와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케이트 보더들, 길거리 패션 애호가들 사이엔 하나의 포털 같은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페어팩스 애비뉴 한복판, 중고 의류 가게와 유대교 회당 사이에는 시간이 훨씬 느리게 흐르던 과거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다. 벽에 붙은 표지판엔 ‘잡지(Magazines)?!’라고 적혀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한 행인은 “와, 아직도 이런 게 있네”라고 말한다. 한때 신문·잡지 가판대는 LA 시민들의 아침 일상이었다. 신문을 사는 일은 에스프레소 한 잔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가판대는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되는, 도시의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 잡지를 넘기며 느끼는 촉감과 낯선 사람과의 짧은 대화는 디지털 시대에 점점 사라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을 즉시 제공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레코드 가게가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가판대는 더 이상 주요 정보원이 아니지만, 이제는 오히려 호기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됐다. 페어팩스 거리에 있는 가판대 ‘코셔 뉴스(Kosher News)는 LA에서 가장 오래된 가판대 중 하나다. 1950년에 문을 연 이 가판대는 2004년 문을 닫았지만, 인근에 살던 에레즈 다 코스타가 이를 인수해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 가판대를 동네의 상징으로 여겨왔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은 가판대 운영자들에게 매우 낯선 시기였다. 뉴스 소비 방식이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LA의 동네 풍경도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했다. 페어팩스 지역은 한때 조용한 유대계 상점들이 모여 있던 거리였지만, 점차 길거리 패션 문화의 중심지로 변했다. 코셔 뉴스는 이러한 변화를 모두 지켜봤다. 2010년대에는 LA 시 조례로 가판대에서 음식, 음료 판매가 금지됐다. 다 코스타는 이것이 많은 가판대에게 중요한 부수입원이었기 때문에 큰 타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쳤다. 그 영향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LA의 가판대들은 살아남았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코셔 뉴스를 지켜온 티토 에스트라다 매니저는 “나는 이곳이 정말 좋다. 이렇게 밖에 있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곳은 다른 데에 없다. 난 매일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LA의 가판대 앞 계산대에서는 단골과 낯선 사람들이 일요일 헤드라인을 확인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이 등장한 롤링스톤(Rolling Stone) 기사를 찾으며 모인다. 과거 브렌트우드 뉴스스탠드의 주인이었던 마크 사르파티는 “가판대는 항상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가판대 차양 아래 서 있으면 잠깐의 고요가 찾아온다. 남가주의 강한 햇빛에 바랜 천막 아래에서 자동차 소음은 희미해지고 바람에 넘겨지는 종이 소리가 들린다. 형광등 불빛은 패션 잡지를 덮은 비닐을 비추고, 새 종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선반의 향기가 섞이며 감각을 깨운다. LA에서 이렇게 오래 사랑받은 장소는 많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사람들도 가판대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말리부 뉴스스탠드의 주인 네이선 실즈는 “읽으려면 멈춰야 한다. 지금은 여기 서서 페이지를 넘겨보는 잠깐의 순간 자체가 하나의 사치가 됐다”고 말했다. LA의 가판대 운영자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쇄된 글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잡지와 신문, 독립 출판물 속 이야기를 넘기다 보면 끊임없이 바쁜 도시 속에서도 잠시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 오스카상 또는 주목받는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잡지를 손에 들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런 몰입을 경험하기 어렵다. 실즈는 종이 매체를 “느린 사치”라고 부른다. 요즘 20대의 집에선 오히려 종이책과 잡지가 더 많이 보인다. 뉴욕과 런던에 매장을 둔 클라이맥스(Climax) 같은 상점은 오래된 책과 인쇄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것이 단순한 향수 때문인지, 아니면 스마트폰 속 넘쳐나는 얼굴과 이야기들에 지친 사람들이 다시 익숙했던 물건을 찾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베벌리힐스 뉴스스탠드와 메이더 뉴스의 주인 에번 메이더는 “새로운 출판물이 많이 나오면서 일종의 르네상스를 보는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체돼 있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활력이 생겼다. 요즘은 패션 디자이너나 건축가 같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가판대를 찾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말리부 가판대는 지난해 팰리세이즈 화재 이후 한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 화재로 많은 주민들이 떠났고, 태평양 해안도로가 폐쇄되면서 신문 배송도 끊겼다. 실즈는 몇 달 동안 직접 차를 몰고 밸리까지 가서 신문을 가져왔다. 어느 날은 계산대에서 산불이 산 위로 번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 가판대가 30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이웃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한다. 사르파티도 임차 계약이 끝나면서 위기를 겪었다. 그가 계약 연장을 요구하며 시작한 청원에는 6000명의 고객이 서명했다. 오랫동안 라치몬트 지역 명물로 자리했던 어바브 더 폴드(Above the Fold)는 지난해 여름 임차 계약 만료로 문을 닫았다. 지역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소셜미디어엔 수백 개의 작별 인사가 쇄도했다. 한 단골은 “마치 내 교회가 불타버린 것 같다”고 적었다. 가판대는 현대화를 향해 달리는 도시 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 하나는 더 그로브 옆에 있는 50년 된 가판대 ’셸탐스‘다. 가판대 주인 폴 소벨은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이들은 방과 후 이곳에 들렀으며 주차장에서 운전 연습을 했다. 그는 “LA 전통의 일부인 가판대가 상징하는 공동체와 인쇄된 글의 가치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가판대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곳이기도 하고, 영감을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공유하는 도시에서 가판대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오래 바라볼수록, 그 안에서 우리 모두의 공통된 모습이 다시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 원문은 LA타임스 3월 9일자 ’A slow indulgence. L.A. newsstands are no longer regular; they‘re remarkable’ 기사입니다. 글=카테리나 포텔라가판대 시간 오늘날 가판대 가판대 운영자들 한때 신문
2026.03.25. 20:00
비가 며칠째 내린다. 빗소리에 섞여 공기가 한결 차가워졌다. 저녁을 조금 일찍 마친 탓인지 허기라기보다는 마음이 출출했다.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알아챈 나는 자연스럽게 에어프라이어를 꺼내 고구마를 구웠다. 기계가 낮은 숨결로 윙윙거리다 멈추고 잠시 후 ‘땡’ 하는 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울렸다. 에어프라이어 문을 여는 순간 잘 익은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콤한 향이 김과 함께 퍼지며 집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데웠다. 뜨거운 고구마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가며 껍질을 벗기는데 노란 속살을 품은 그 작은 고구마 하나에 오래된 얼굴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맛은 혀에서 시작되었지만 기억은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깨어났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길모퉁이에 서서 사 먹던 군고구마가 생각났다. 얼굴에 연탄 가루를 묻힌 채 말없이 고구마를 건네던 아저씨의 손길에는 하루를 견뎌낸 노동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따뜻한 종이봉투 너머로 전해지던 온기 속에는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삶의 사연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던 것 같다. 87세의 남편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의 표정에는 어느새 칠십 년 전의 시간이 천천히 다가와 있었다. 고구마 하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나는 얼굴은 할머니다. 겨울밤, 화롯불 앞에 둘러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재 속에 묻어 두었던 고구마를 툭툭 털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던 그 따끈함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엌 아궁이 장작불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부엌 쪽문을 열고 뭉근하게 구워야 맛있다면서 “고구마 꺼내서 잔불로 구워라” 하셨다. 부엌일을 돕던 언니가 다 구워진 고구마를 방으로 들고 들어올 때 퍼지던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는 어린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때 먹던 고구마는 왜 그렇게 달았을까. 아마도 불의 온기만이 아니라 기다림과 정성, 그리고 함께 나누던 마음이 곁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참 편해졌다. 버튼 하나면 군고구마가 완성되는 시대다. 불을 지피며 재를 헤치던 수고는 사라졌고 시간은 한결 단축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한다. 고구마는 역시 삶는 것보다 굽는 게 제일이라고. 그을린 껍질에서 배어 나오는 향, 그 속에 스며든 지난 시간의 기억까지 함께 씹으니 오늘 밤의 고구마는 유난히 더 달다. 에어프라이어 너머로 흐르는 이 맛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을 건너온 손길과 얼굴들,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우리의 시간이 포개진 따뜻함이다. 비 내리는 밤, 고구마 하나로 데워진 마음은 조용히 말한다. 어떤 그리움은 이렇게, 천천히 익어야 제맛이 난다고.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그리움 시간 고구마 하나 부엌 아궁이 부엌 쪽문
2026.02.22. 19:11
“나중에 기운 차리면 만나자.”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자매처럼 지낸 명순 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언니의 문자를 받은 지 사흘 만이었다. 70세 생일을 불과 석 달 앞둔 때였다. 서울 서초동의 같은 아파트단지 옆 동에 살며 우리는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겨울이면 과천 서울랜드 눈썰매장에서 양 볼이 빨개지도록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꾸벅꾸벅 졸곤 했다. 광화문 화랑에서 닥종이 작가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사람’ 전시를 보며 한국의 전통 풍속을 언니와 경쟁하듯 아이들에게 설명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하고 분주한 일상이 훗날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줄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날에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조카를 맡아 다섯 아이를 돌보느라 기진맥진하여 백화점 폐장 세일에 가지 못했는데, 그 일이 우리를 살렸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보자는 말로 만남을 미루지 않았던가. 한국을 방문하면, 당시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던 나를 위해 언니는 기꺼이 남대문 시장을 안내해 주었다. 미국의 가게에서 판매할 반짝이는 머리 액세서리를 사고 시장통의 좁은 골목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음식의 맛보다 더 진하게 남은 것은 마주 앉아 웃던 언니의 얼굴이다. 90년대 말, 우리는 손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언니 시누이를 통해 신청한 영주권이 나와서 내가 사는 도시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에 뛸 뜻이 기뻤다. 낯선 타국에서 다시 이어진 인연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삶의 고비마다 솔직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던 사람인 언니를 나는 많이 따랐다. 함께 바닷가와 공원, 트레일을 걸으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는데,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사라졌지만, 함께한 시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최근 이집트 여행 후 시차로 고생하다가 언니에게 연락했지만 위암 투병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기운 차리면 보자”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는 ‘나중’을 당연한 미래로 믿지만,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온화한 미소와 수줍은 듯 양 볼에 패인 볼우물이 어여쁘던 언니의 모습과 추모식에서 마주한 언니의 야윈 모습이 겹친다. ‘기억이 지워질 때까지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어느 인디언 부족의 말이 생각난다. 언니와 함께한 시간이 또렷이 남아 있는 한, 언니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보고 싶다는 표현을 더는 미루지 않겠다고, 나중이라는 시간 대신 오늘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일 것이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시간 시간 대신 언니 시누이 명순 언니
2026.02.19. 20:10
새해 아침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며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바깥은 영하 7도의 차가운 날씨인데도 찬란한 햇빛을 머금은 하늘 전부가 쏟아진다. 나만의 공간인 책상 앞에는 남동쪽으로 난 두 개의 창문을 뚫고 눈 부신 햇살이 떼창으로 몰려온다. 창밖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실물의 크리스마스트리(Holly Tree)가 붉고 화려한 열매로 온갖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도 오늘과 같은 축복의 기회를 맘껏 즐기고자 신명이 났다. 갑자기 나무 한 줄기가 휘청댄다. 둘러보니 다람쥐 한 쌍이 신나게 장난치며 나에게 즐거운 아침을 선물한다. 아!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다. 행복한 아침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 지난 11월에 폭풍과 눈사태가 염려되어 큰 나무 6그루 이상을 베어냈다.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그런대로 상록수와 나목이 겨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참 신기하다! 12월 말이었던 지난주만 해도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간에 쫓기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단 며칠 사이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생활에서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벌써 차량이 많아지고 학교 버스 천국이 된다. 10월 말이면 핼러윈, 11월엔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벌써 와있다.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대한 의식이 되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연말을 보내고 나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몸과 마음에서 기와 진이 다 빠져나가고 몸살을 앓게 된다. 준비의 여부와 상관없이 새해는 벌써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새해 아침에 찾아온 고요, 고요는 평화를 부르고 평화는 내 마음에 평온을 부른다. 1월은 2월 속으로 질주할 것이다. 모두 몸을 움츠리며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꾸역거리게 된다. 이때다. 1월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겨울나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겨울잠만 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토록 거칠고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뿌리들은 지하조직에서 연락망을 통해 상생의 길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겨울만 잘 견뎌보자고 서로 어깨를 껴안고 있을 것이다. 오는 봄에 피울 꽃과 잎을 생각하며 이 추운 겨울에 죽을힘을 다해 버텨보자며 서로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면 겨울은 참으로 따뜻한 계절이다. 야외생활을 하다 보면 시선과 관심이 분산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널려있는 물건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시나브로 연상해 본다. 평소 지나쳤던 시선에 애정을 담아본다. 올해의 작은 소망을 다짐해 본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섬세하고 예리하고 곱게 나 자신을 연마하고 싶다. 나의 오감을 존중하고 음미하며 나에게 이 감각을 선물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삶이란 고귀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묵과할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천천히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들어주어 그들만이 품어내는 향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정제하고 싶다. 원석에서 최고의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를 정제하듯, 백지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을 담아내는 노력, 생의 최고 걸작은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새해 아침 고요한 시간을 맞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시간 자신 새해 아침 주위 사람들
2026.01.26. 22:16
미국 서부에는 사막과 협곡을 하나의 원으로 잇는 길이 있다. 애리조나와 유타를 가로지르며 대지의 가장 깊은 주름과 오래된 시간을 마주하는 여정, 일명 ‘그랜드서클’이다. 이 길에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명소가 이어진다. 그랜드캐년의 심연, 모뉴먼트밸리의 붉은 탑, 아치스 국립공원의 자연석 문, 브라이스캐년의 후두 숲, 자이언의 거대한 협곡까지. 모두가 지구가 오랜 시간 자신을 조각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야외 박물관이다. 총 1500~2000마일, 약 2주 일정으로 즐기는 로드트립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인간의 크기와 시간의 깊이를 새삼 깨닫게 하는 존재의 여행이다. LA에서 출발해 미국 서부의 대자연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그랜드서클 여정에 나서볼 만하다. 1일차: LA서 그랜드캐년으로 캘리포니아 도시권을 벗어나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면 풍경은 서서히 비워지고, 하늘은 끝없이 열린다. 그리고 마침내 말문이 막히는 거대한 절벽 앞에 선다. 그랜드캐년이다. 그랜드캐년은 풍경을 넘어 하나의 세계다. 매더 포인트에서 내려다보는 붉고 황금빛 협곡은 수백만 년의 시간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지질의 연대기다. 해가 기울면 바위는 불타듯 붉게 물들고 계곡은 깊은 그림자로 잠긴다. 이 한순간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긴 여정을 달려온다. 2일차: 페이지, 물과 바람이 만든 조각 페이지는 작은 도시지만, 주변에는 자연이 숨겨놓은 비경이 가득하다. 엔텔롭캐년의 물결 같은 암벽, 말굽 모양으로 강이 휘감아 도는 홀슈밴드, 사막 위의 바다처럼 펼쳐진 레이크 파월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물과 바람은 바위를 부드럽게 깎아 빛이 스며드는 신전을 만들어 놓았다. 여행객들은 협곡 속 빛의 결을 따라가며 사막 지형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한다. 3일차: 모뉴먼트밸리, 붉은 신들의 땅 황량한 평원 위로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우뚝 서 있다. 모뉴먼트밸리다. 고대 신들의 석상을 연상시키는 풍광은 서부영화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존 웨인의 서부극이 이곳에서 탄생한 이유도 현장에 서 보면 단번에 이해된다. 하지만 모뉴먼트밸리는 영화보다 먼저 나바호 원주민들에게 살아 있는 성지다. 해가 기울고 붉은 대지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풍경은 현실보다 신화에 가까워진다. 4~6일차: 모압, 바위의 왕국 모압은 작은 마을이지만, 그 주변은 장엄하다. 캐년랜드와 아치스, 이 두 국립공원은 바위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솟은 절벽, 외계의 행성에 도착한듯한 침봉 바위들, 그리고 거대한 돌 아치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협곡. 여기서는 걷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7일차: 고블린밸리, 장난꾸러기들의 놀이터 수천 개의 바위 인형들이 늘어선 고블린밸리는, 자연이 잠시 장난을 친 듯한 곳이다. 마치 닌자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신비롭다. 밤이 되면, 인공 불빛 하나 없는 하늘 위로 은하수가 쏟아진다. 이곳은 별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8~10일차: 캐피톨리프와 에스칼란테, 숨겨진 대지 캐피톨리프는 조용하지만 깊다. 거대한 절벽과 구불구불한 계곡 길을 따라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이다. 에스칼란테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문명이 사라지고, 슬롯캐년과 후두 바위들이 만들어낸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모험가들의 천국이다. 11일차: 브라이스캐년, 붉은 숲 브라이스캐년의 후두 바위들은 숲처럼 빽빽하게 서 있다. 해가 떠오르면 붉게, 해가 지면 분홍과 보랏빛으로 변한다. 림 위에서 보는 풍경도 장관이지만, 아래로 내려가 그 사이를 걷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거대한 조각 정원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12일차: 자이언캐년, 협곡의 성전 자이언캐년은 압도적이다. 수직으로 솟은 절벽 사이로 강이 흐르고, 사람은 그 틈을 따라 걷는다. 에인절스 랜딩, 내로우스 등 이곳에서의 하이킹은 풍경이 아니라 체험이다. 자연이 인간을 시험하는 성전과도 같다. 13~14일차: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귀환 자연의 대서사시를 지나 도착한 도시는 라스베이거스다. 불빛과 음악, 인공의 화려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문명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도시 주위에도 바위와 바람, 별과 협곡이 숨어 있다. 그랜드서클은 단지 국립공원을 도는 코스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시간 속을 달리는 여행이며,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조용히 일깨워 주는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가 되고, 한 번 다녀온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바위와 하늘이 그린 거대한 원, 그 위를 달리는 우리는 잠시, 지구의 일부가 된다. ▶여행 시즌: 봄(4월~5월), 가을(9월~10월)이 가장 좋다. 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너무 춥다. ━ 김인호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 있다.그랜드서클 시간 그랜드서클 여정 후두 바위들 침봉 바위들
2026.01.22. 20:34
‘수고한 자들이여 먹고 마셔라’까지는 아니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최소한 연말 자축의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며 우리가 만나는 이유다. 올해 남가주 한인 은행과 기업들 대부분은 예전과 같은 전직원 송년회 모임을 열지 않는다. 국가 경기와 고용이 팬데믹에서 벗어났다고 선언을 했다지만, 소수계 기업들의 심리적 위축과 우려는 여전한 것일까. 한인 은행장들도 연봉이 소폭 오르고, 은행 내 인력 고용도 늘었지만 이번 연말은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실 모여서 흥청망청하며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송년 모임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오히려 직장에서 꼭 필요한 이벤트다. 첫째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회복’이다. 열심히 일해왔음을 확인하며 리커버(recover)하는 것이다. 첨예한 경쟁과 생산 속에서 많은 직원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겨웠다. 물론 적절한 재정적 보상으로 위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께 모여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의미는 돈 이상의 것이다. 바빠서 보지 못했던 옆 부서 동료들과의 인사,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는 직장생활에서 매우 값진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런 가치는 없어지면 금방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있을 때는 꽤 큰 힘을 발휘한다. 원상복구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또 달려야 할 내년을 위해서다. 더 많이 뛰고 일해야 하는데 목표를 적은 신년사나 단체 이메일 보다는 리더의 웃는 모습이 훨씬 더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직원들은 리더들도 지난해 알찬 시간이었는지, 내년에는 어떤 각오로 뛸 것인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는 물론 조직이 바라는 내년의 생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로는 직원들의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 구성원들은 그가 일하고 있는 조직의 성장 수치만큼이나 사무실에서 여유가 있는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행복한지 보고 싶어 한다. 이는 직원의 근속과 연계될 수 있는 사안이다. 크게 비싸지 않더라도 송년회 후 들고 오는 선물은 때론 그가 조직에서 가진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송년회는 웃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요즘은 혹시나 누구에게 상처나 폭력이 될까봐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진행자를 비싸게 불러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해서 모두 같이 웃어보자. 적어도 기자의 경험에 따르면 웃음에 인색한 리더는 리더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송년회를 통해 리더들은 직원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웃음과 여유를 선물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수년 전 한 회사의 송년회에 초대받았는데 대표되는 분이 가장 먼저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인사말을 통해 가장 먼저 유머를 전달했다. 게임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지갑을 열었음은 물론이다. 평소에 기억해온 사무적인 모습과 달라서 보기 좋았다. 나중에도 두고두고 칭찬해드렸더니 “내가 망가져야 다 망가져서 신이 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밀려오는 업무와 스트레스로 많이 웃지 못한 한 해였다면 송년회에서 신나게 웃어보자. 모두 그럴 자격이 있지 않은가. 아쉽다. 은행들과 기업들이 차라리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못한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더 많이 잔치를 벌였으면 좋겠다.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다면 부서별로라도 조그만 파티를 꼭 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부가적이지만 한인타운에서는 올해 연말을 기점으로 폐업을 고민하는 식당 업주들이 적지 않다. 렌트비 부담과 식재료비 상승으로 힘겨운 한인 요식업계에도 힘을 줄 수 있는 연말이 되면 어떨까. 올 한해 수고 많이 한 우리 독자님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최인성 / 경제부 부국장중앙칼럼 잔치 시간 전직원 송년회 지난 시간 한인 은행장들
2025.12.01. 17:59
색과 선, 감정과 직관이 교차하는 예술적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하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LA한인타운 내 리앤리갤러리(관장 아녜스 이)가 내달 4일부터 25일까지 이경수 개인전 ‘언홀딩 컬러(Unholding Colors: Between Abstraction and Nature)’를 개최한다. 리앤리갤러리는 “‘언홀딩’은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순간, 색이 스스로 호흡하며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며 “관람객에게 작가의 예술적 변천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적 풍경을 반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신작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 작품들은 푸른빛, 초록, 보라, 터쿼이즈 등 다층의 색채가 겹겹이 스며들며 차분하고 명상적인 울림을 전한다. 작가의 의도적 조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탄생한 화면은 마치 시간과 감정이 녹아든 추상적 풍경으로 관람객 앞에 펼쳐진다. 이 작가는 “익숙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내면의 다양한 층위를 마주하고 감정과 직관을 따라 아름다움과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신작에는 비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매체가 활용됐다. 콜라주, 크레파스, 잉크 등 혼합 재료를 통한 믹스드 미디어 기법으로 색과 질감, 선의 리듬을 탐구하며 회화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경수 작가는 성신여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캘스테이트(CSU) LA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고 키아프(KIAF) 아트 서울, 아트 샌디에이고, 디 아더 아트 페어 등 국제 전시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보르도 우네 코망드리 박물관, 카우아이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언더우드대학교 교수로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한국문화원 등에서 다수 강의를 진행했고 미술 서적 출간과 웨어러블 아트 컬렉션 제작 등 다양한 창작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갤러리 측은 “모든 전시 작품에는 해설을 제공해 관람객이 색채와 질감, 매체의 선택에 담긴 작가의 심미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오프닝 리셉션은 내달 4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10월 18일 오후 1시에는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주소: 3130 Wilshire Blvd. #502. LA ▶문의: (213)365-8285 이은영 기자감정 시간 성신여대 회화과 회화적 표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5.09.28. 18:00
뉴욕시경(NYPD) 인력 부족 문제로 뉴욕시 경찰 출동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공개된 뉴욕시장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5회계연도 평균 경찰 출동 시간은 14분 53초로, 직전 회계연도(15분 23초)보다는 소폭 단축됐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경찰 출동 시간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2021~2022회계연도와 2024~2025회계연도를 비교하면 출동 시간이 3분 13초 늘었다. 즉 4년 전 보고된 11분 40초보다 출동 시간이 약 27.6% 길어졌다는 것이다. 주된 원인은 계속되는 인력 이탈이다. 올해 들어 매달 평균 300명이 퇴직하거나 사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NYPD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만 해도 316명이 퇴직하거나 사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3~2024회계연도(월평균 약 200명)와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인력 이탈은 남아 있는 경관들에게도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파악됐다.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강도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경관들이 점심시간 없이 몇 시간씩 초과 근무를 해야 하며, 많은 동료들이 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며, “이러한 삶의 질 저하로 인해 퇴직한 동료들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달 NYPD 신임 경관 약 1100명을 채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NYPD 총 경관 수는 약 3만3000명이며, NYPD는 내년 가을까지 3만5000명 경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NYPD 인력 부족 및 출동 시간 관련 문제는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되기에, 올해 뉴욕시장 선거에서 관련 문제와 대응 방안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에릭 아담스 현 뉴욕시장은 “신규 경관 채용을 확대하고, 경찰 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후보인 조란 맘다니 뉴욕주하원의원은 경찰 예산 삭감을 지지했던 과거 입장을 전환해 “NYPD의 인력 수준을 유지하고, 정신건강 대응 부서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무소속 후보 앤드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경관들의 급여를 인상하겠다고 했으며, 공화당 후보인 커티스 슬리와는 뉴욕시의회가 NYPD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통해 시의회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윤지혜 기자출동 시간 출동 시간 경찰 출동 뉴욕시 경찰
2025.09.24. 19:42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의 거장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자전적 영화다. 멈춰진 시간(Suspended Time)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전 지구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고, 동시에 사회 시스템의 취약성과 가능성을 모두 드러냈던 인류사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트라우마와 피로감 등 팬데믹의 여파는 지금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이처럼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었음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아사야스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구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멈취진 시간'은 팬데믹이 끝난 지 4년 만에 공개되었지만, 팬데믹의 초기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관계와 기억, 정체성을 섬세하게 되짚는다. 장기적인 격리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가던, 그리하여 모두가 집에 갇혀 지내야 했던 2020년 봄. 영화감독 폴 버거(뱅상 마케인)는 파리 남쪽 시골 마을인 슈브뢰즈 밸리에 위치한,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부모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며 누구나처럼 불확실성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강제된 고요는 폴에게 뜻밖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읽던 책을 다시 꺼내 들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며, 주변 숲을 거닐며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폴의 연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캐롤(노라 함자위), 음악 전문 저널리스트인 동생 에티엔(미샤 레스코), 그리고 에티엔의 새 연인 모건(나인 두르소)이 차례로 집을 찾는다. 네 사람은 세세한 방역 지침에 적응해 가며 온라인 쇼핑을 하고, 줌으로 소통하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들이 마스크 착용, 장보기, 거리 두기를 두고 서로 엇갈리는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 팬데믹의 불확실성은 그들 사이에 예기치 않던 갈등을 불러온다. 네 사람은 도덕성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간다. '멈취진 시간'은 팬데믹 초기의 감정인 고립감, 불안, 그리고 시간의 상실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외부와 단절된 채 시간이 흘러가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기묘한 경계 안에서 네 인물을 통해 인간 행동의 다양한 면모들을 섬세하게 그려간다. 영화는 절제되고 은은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더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음을 직면하는 중년의 모습이 보게 된다. 아사야스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내레이션은 전환점 역할을 한다. 중년의 초상이 에세이처럼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멈춰진 시간'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종종 지적 허영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사유하는 작품이다. 폴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글들에 집요하게 집착하는데 여러 지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들은 통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남기려는 예술적 행위에 대한 회상으로 다가온다. 아사야스의 이전 작인 '이르마 벱', '실스 마리아의 구름', '퍼스널 쇼퍼'와 비교하면 '멈춰진 시간'은 규모 면에서 소품이다. 그러나 울림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시간 영화 시간 영화 베를린 국제영화제 기억 정체성
2025.08.20. 19:04
불법체류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행된 LA 다운타운 통금 시간이 줄어든다. LA시는 16일부터 통금시간을 기존 오후 8시에서 10시로 2시간 늦춘다고 밝혔다. 종료 시간은 기존과 동일하게 그다음날 오전 6시까지 유지된다. 캐런 배스 LA시장은 16일 “통금시행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며 “현장 상황에 따라 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통행금지 조치는 해제 발표 전까지 계속된다. 통금 시간에는 거주자, 응급요원, 다운타운 지역 내 직장인, 언론인만 이동이 가능하다. 배스 시장은 “위반자는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정윤재 기자 [email protected]통금 시간 통금 시간 종료 시간 la 통금
2025.06.16. 20:53
내년 5월이면 대학 졸업 50주년 재상봉이라고 동창회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믿기 어렵지만 옛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고 흥분된다. 20대 초반 우리 모두 풋풋한 꿈을 키우며 가슴 터질듯한 젊음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들, 50년이란 세월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궁금해진다. 특히 나처럼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온 경우 친구들과 소식이 끊어진 상태여서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여대생의 앳된 모습만 떠오르고 마법처럼 할머니로 변해 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이번 재상봉은 그런 의미에서 ‘50년의 공백’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 문제는 점점 시간이 가깝게 다가오니 마음 한쪽에 갈등이 생긴다. 유난히 얼굴에 주름이 많은 나는 신경이 쓰이고 친구들을 만날 자신이 없어진다. 한국은 성형 천국의 나라라고 한다. 보통 부모님의 효도 선물로 성형수술이 제1순위라고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짜리로 치장했는지 그 값어치만큼의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대화 내용은 물질 지상주의이고 피상적이어서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고 내 주위의 친구들이 귀띔해 준다. 50년이란 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보낸 지난 50년은 강산이 5번 변한 것이 아니라 50번은 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시간의 개념은 과연 무엇인가. 시간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오직 느끼고 알아차릴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아예 시간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차차 사람들은 낮과 밤이 반복되고 계절이 순환하며 해가 되풀이됨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초, 분, 시, 일, 주, 월, 년으로 정하기로 했다.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다. 시간의 본질은 전진할 뿐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 24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일주일 한 달은 빨리 지나간다.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가고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이는 시간을 주관적 관점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나이를 잊고 살지만 우리 손자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볼 때 문득 자신의 나이를 깨닫게 된다. 시간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고, 꽃이 피고 지게 하고, 포도를 발효시켜 멋진 포도주를 만들기도 한다. 또 시간은 바위를 부숴 모래를 만들기도 하고 바다를 사막이 되게도 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 “나의 육체적 삶은 시간이 준 놀라운 선물이다. 시간은 그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그 선물을 회수해 간다.” 『Unlocking the secrets of time』 by Christopher Dewdney, 이 얼마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묘사인가. 우리는 육신을 갖고 시간 속을 지나고 있는 시간 여행자들이다. 시간은 사물을 부패시키고 생명체를 변형시킨다. 시간은 먼지를 모으고 거미줄을 친다. 시간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중후한 멋과 품위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동안 시간은 2차원의 세계에서 직진만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써 내려 가면서 시간에도 깊이가 있고 혼이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시간의 주인이 시간을 사방이 다 열린 공간에 내놓고 3차원의 세계로 창조할 수도 있다. 시간이 뿜어내는 내면의 빛을 통과한 수많은 파문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대화는 시간의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나는 어느덧 그 선율에 맞춰 유영하며 하늘을 무대로 춤추고 있다. 시간은 물의 속성을 닮아 유동성이 있다. 물이 담기는 용기에 따라 모습이 바뀌듯 시간도 쓰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는다. 왜냐하면 시간의 혼은 오직 그 시간의 주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빛나는 시간을 위해 우리 모두 축배 하자.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하루 24시간 그동안 시간 보통 나이
2025.04.21. 21:52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받지 않고 무시당하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먹을 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먹고 나이테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닦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 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나를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나이테 숫자 남편 자식 좌절 행복
2025.04.16. 20:13
한국의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KTX는 대부분의 목적지 역에 3시간 내외에 도착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반나절은 3시간을 의미한다. 한나절은 6시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음 기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 반나절 만에 석방’이란 제목의 기사인데 기사 내용에는 “그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났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는 반나절이 6시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나절이 3시간인지 6시간인지 저마다 달라 헷갈린다. 의문을 풀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나절’을 ‘1)하룻낮의 반(半) 2)하룻낮 전체’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반나절’은 ‘1)한나절의 반 2)하룻낮의 반=한나절’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하루를 낮과 밤 둘로 쪼개 하룻낮을 12시간이라고 본다면 ‘한나절’의 풀이 중 ‘하룻낮의 반’은 6시간, 또 다른 풀이인 ‘하룻낮 전체’는 12시간을 의미한다. ‘반나절’ 또한 사전 풀이에 따르면 ‘한나절의 반’인 3시간과 ‘하룻낮의 반=한나절’인 6시간을 뜻한다. 즉 ‘반나절’은 3시간, 6시간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KTX가 전국을 반나절(3시간)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나 반나절인 6시간 만에 ○○○을 석방했다는 기사 모두 맞는 말이 된다. 국립국어원은 실제 언중의 쓰임을 토대로 2011년 두 번째 풀이를 사전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 수치와 관련한 기준은 정확할 필요가 있다.우리말 바루기 반나절 시간 반나절 생활권 다음 기사 기사 모두
2025.04.13. 19:09
왜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 제 맘대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는가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야지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눈금에 닿으면 곡식을 거두어야지 해 시계, 물 시계가 훨씬 자연적이지 경칩에 개구리가 시간이 바꿨다고 한 시간 일찍 나오는가 늦가을, 낙엽이 한 시간 늦게 떨어지는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는다 생체리듬을 방해해 사고의 위험까지 생긴다 늦게까지 야외에서 즐기도록 영구적으로 시간을 당기자고 시간이 가는 길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천 년 전 마야 시간이 지금 시계보다 정확하다 스트레스 없는 원시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문예마당 시간 원시 시간 마야 시간 늦가을 낙엽
2025.04.10. 18:40
왜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 제 맘대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는가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야지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눈금에 닿으면 곡식을 거두어야지 해 시계, 물 시계가 훨씬 자연적이지 경칩에 개구리가 시간이 바꿨다고 한 시간 일찍 나오는가 늦가을, 낙엽이 한 시간 늦게 떨어지는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는다 생체리듬을 방해해 사고의 위험까지 생긴다 늦게까지 야외에서 즐기도록 영구적으로 시간을 당기자고 시간이 가는 길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천 년 전 마야 시간이 지금 시계보다 정확하다 스트레스 없는 원시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글마당 시간 원시 시간 마야 시간 늦가을 낙엽
2025.04.03. 22:19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한 경우가 종종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한강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가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8. 18:45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번에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독후감을 ‘조용한 천재’라고 명명한 후 이 자리에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 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하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문학사에 숨어있는 천재를 발견한 것이다. 한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과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0.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