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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감정, 시간과 자연 담은 회화적 탐구

  색과 선, 감정과 직관이 교차하는 예술적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하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LA한인타운 내 리앤리갤러리(관장 아녜스 이)가 내달 4일부터 25일까지 이경수 개인전 ‘언홀딩 컬러(Unholding Colors: Between Abstraction and Nature)’를 개최한다.     리앤리갤러리는 “‘언홀딩’은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순간, 색이 스스로 호흡하며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며 “관람객에게 작가의 예술적 변천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적 풍경을 반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신작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 작품들은 푸른빛, 초록, 보라, 터쿼이즈 등 다층의 색채가 겹겹이 스며들며 차분하고 명상적인 울림을 전한다. 작가의 의도적 조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탄생한 화면은 마치 시간과 감정이 녹아든 추상적 풍경으로 관람객 앞에 펼쳐진다.     이 작가는 “익숙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내면의 다양한 층위를 마주하고 감정과 직관을 따라 아름다움과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신작에는 비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매체가 활용됐다. 콜라주, 크레파스, 잉크 등 혼합 재료를 통한 믹스드 미디어 기법으로 색과 질감, 선의 리듬을 탐구하며 회화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경수 작가는 성신여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캘스테이트(CSU) LA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고 키아프(KIAF) 아트 서울, 아트 샌디에이고, 디 아더 아트 페어 등 국제 전시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보르도 우네 코망드리 박물관, 카우아이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언더우드대학교 교수로 LA카운티미술관(LACMA)과 한국문화원 등에서 다수 강의를 진행했고 미술 서적 출간과 웨어러블 아트 컬렉션 제작 등 다양한 창작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갤러리 측은 “모든 전시 작품에는 해설을 제공해 관람객이 색채와 질감, 매체의 선택에 담긴 작가의 심미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오프닝 리셉션은 내달 4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10월 18일 오후 1시에는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주소: 3130 Wilshire Blvd. #502. LA   ▶문의: (213)365-8285  이은영 기자감정 시간 성신여대 회화과 회화적 표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5.09.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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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경찰 출동 시간 점점 길어져

뉴욕시경(NYPD) 인력 부족 문제로 뉴욕시 경찰 출동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공개된 뉴욕시장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5회계연도 평균 경찰 출동 시간은 14분 53초로, 직전 회계연도(15분 23초)보다는 소폭 단축됐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경찰 출동 시간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2021~2022회계연도와 2024~2025회계연도를 비교하면 출동 시간이 3분 13초 늘었다. 즉 4년 전 보고된 11분 40초보다 출동 시간이 약 27.6% 길어졌다는 것이다.     주된 원인은 계속되는 인력 이탈이다. 올해 들어 매달 평균 300명이 퇴직하거나 사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NYPD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만 해도 316명이 퇴직하거나 사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3~2024회계연도(월평균 약 200명)와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인력 이탈은 남아 있는 경관들에게도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파악됐다.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강도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경관들이 점심시간 없이 몇 시간씩 초과 근무를 해야 하며, 많은 동료들이 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며, “이러한 삶의 질 저하로 인해 퇴직한 동료들도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달 NYPD 신임 경관 약 1100명을 채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NYPD 총 경관 수는 약 3만3000명이며, NYPD는 내년 가을까지 3만5000명 경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NYPD 인력 부족 및 출동 시간 관련 문제는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되기에, 올해 뉴욕시장 선거에서 관련 문제와 대응 방안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에릭 아담스 현 뉴욕시장은 “신규 경관 채용을 확대하고, 경찰 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후보인 조란 맘다니 뉴욕주하원의원은 경찰 예산 삭감을 지지했던 과거 입장을 전환해 “NYPD의 인력 수준을 유지하고, 정신건강 대응 부서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무소속 후보 앤드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경관들의 급여를 인상하겠다고 했으며, 공화당 후보인 커티스 슬리와는 뉴욕시의회가 NYPD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통해 시의회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윤지혜 기자출동 시간 출동 시간 경찰 출동 뉴욕시 경찰

2025.09.24. 19:42

멈춘 일상 속 시간, 영화로 되살리다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의 거장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자전적 영화다.     멈춰진 시간(Suspended Time)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전 지구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고, 동시에 사회 시스템의 취약성과 가능성을 모두 드러냈던 인류사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트라우마와 피로감 등 팬데믹의 여파는 지금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이처럼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었음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아사야스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구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멈취진 시간'은 팬데믹이 끝난 지 4년 만에 공개되었지만, 팬데믹의 초기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관계와 기억, 정체성을 섬세하게 되짚는다.     장기적인 격리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가던, 그리하여 모두가 집에 갇혀 지내야 했던 2020년 봄. 영화감독 폴 버거(뱅상 마케인)는 파리 남쪽 시골 마을인 슈브뢰즈 밸리에 위치한,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부모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며 누구나처럼 불확실성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강제된 고요는 폴에게 뜻밖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읽던 책을 다시 꺼내 들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며, 주변 숲을 거닐며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폴의 연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캐롤(노라 함자위), 음악 전문 저널리스트인 동생 에티엔(미샤 레스코), 그리고 에티엔의 새 연인 모건(나인 두르소)이 차례로 집을 찾는다. 네 사람은 세세한 방역 지침에 적응해 가며 온라인 쇼핑을 하고, 줌으로 소통하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들이 마스크 착용, 장보기, 거리 두기를 두고 서로 엇갈리는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 팬데믹의 불확실성은 그들 사이에 예기치 않던 갈등을 불러온다. 네 사람은 도덕성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간다.       '멈취진 시간'은 팬데믹 초기의 감정인 고립감, 불안, 그리고 시간의 상실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외부와 단절된 채 시간이 흘러가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기묘한 경계 안에서 네 인물을 통해 인간 행동의 다양한 면모들을 섬세하게 그려간다.       영화는 절제되고 은은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더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음을 직면하는 중년의 모습이 보게 된다. 아사야스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내레이션은 전환점 역할을 한다. 중년의 초상이 에세이처럼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멈춰진 시간'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종종 지적 허영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사유하는 작품이다. 폴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글들에 집요하게 집착하는데 여러 지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들은 통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남기려는 예술적 행위에 대한 회상으로 다가온다.       아사야스의 이전 작인 '이르마 벱', '실스 마리아의 구름', '퍼스널 쇼퍼'와 비교하면 '멈춰진 시간'은 규모 면에서 소품이다. 그러나 울림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시간 영화 시간 영화 베를린 국제영화제 기억 정체성

2025.08.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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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통금 시간 조정…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

불법체류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행된 LA 다운타운 통금 시간이 줄어든다.   LA시는 16일부터 통금시간을 기존 오후 8시에서 10시로 2시간 늦춘다고 밝혔다. 종료 시간은 기존과 동일하게 그다음날 오전 6시까지 유지된다.   캐런 배스 LA시장은 16일 “통금시행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며 “현장 상황에 따라 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통행금지 조치는 해제 발표 전까지 계속된다. 통금 시간에는 거주자, 응급요원, 다운타운 지역 내 직장인, 언론인만 이동이 가능하다. 배스 시장은 “위반자는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정윤재 기자 [email protected]통금 시간 통금 시간 종료 시간 la 통금

2025.06.1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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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시간의 혼

내년 5월이면 대학 졸업 50주년 재상봉이라고 동창회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믿기 어렵지만 옛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고 흥분된다. 20대 초반 우리 모두 풋풋한 꿈을 키우며 가슴 터질듯한 젊음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들, 50년이란 세월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궁금해진다. 특히 나처럼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온 경우 친구들과 소식이 끊어진 상태여서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여대생의 앳된 모습만 떠오르고 마법처럼 할머니로 변해 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이번 재상봉은 그런 의미에서 ‘50년의 공백’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 문제는 점점 시간이 가깝게 다가오니 마음 한쪽에 갈등이 생긴다. 유난히 얼굴에 주름이 많은 나는 신경이 쓰이고 친구들을 만날 자신이 없어진다. 한국은 성형 천국의 나라라고 한다. 보통 부모님의 효도 선물로 성형수술이 제1순위라고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짜리로 치장했는지 그 값어치만큼의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대화 내용은 물질 지상주의이고 피상적이어서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고 내 주위의 친구들이 귀띔해 준다.     50년이란 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보낸 지난 50년은 강산이 5번 변한 것이 아니라 50번은 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시간의 개념은 과연 무엇인가. 시간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오직 느끼고 알아차릴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아예 시간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차차 사람들은 낮과 밤이 반복되고 계절이 순환하며 해가 되풀이됨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초, 분, 시, 일, 주, 월, 년으로 정하기로 했다.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다. 시간의 본질은 전진할 뿐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 24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일주일 한 달은 빨리 지나간다.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가고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이는 시간을 주관적 관점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나이를 잊고 살지만 우리 손자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볼 때 문득 자신의 나이를 깨닫게 된다. 시간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고, 꽃이 피고 지게 하고, 포도를 발효시켜 멋진 포도주를 만들기도 한다. 또 시간은 바위를 부숴 모래를 만들기도 하고 바다를 사막이 되게도 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     “나의 육체적 삶은 시간이 준 놀라운 선물이다. 시간은 그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그 선물을 회수해 간다.” 『Unlocking the secrets of time』 by Christopher Dewdney, 이 얼마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묘사인가. 우리는 육신을 갖고 시간 속을 지나고 있는 시간 여행자들이다. 시간은 사물을 부패시키고 생명체를 변형시킨다. 시간은 먼지를 모으고 거미줄을 친다. 시간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중후한 멋과 품위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동안 시간은 2차원의 세계에서 직진만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써 내려 가면서 시간에도 깊이가 있고 혼이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시간의 주인이 시간을 사방이 다 열린 공간에 내놓고 3차원의 세계로 창조할 수도 있다. 시간이 뿜어내는 내면의 빛을 통과한 수많은 파문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대화는 시간의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나는 어느덧 그 선율에 맞춰 유영하며 하늘을 무대로 춤추고 있다.     시간은 물의 속성을 닮아 유동성이 있다. 물이 담기는 용기에 따라 모습이 바뀌듯 시간도 쓰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는다. 왜냐하면 시간의 혼은 오직 그 시간의 주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빛나는 시간을 위해 우리 모두 축배 하자.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하루 24시간 그동안 시간 보통 나이

2025.04.21. 21:52

[이 아침에] 내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내 편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받지 않고 무시당하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먹을 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먹고 나이테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닦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 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나를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나이테 숫자 남편 자식 좌절 행복

2025.04.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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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반나절’은 몇 시간일까

한국의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KTX는 대부분의 목적지 역에 3시간 내외에 도착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반나절은 3시간을 의미한다. 한나절은 6시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음 기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 반나절 만에 석방’이란 제목의 기사인데 기사 내용에는 “그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났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는 반나절이 6시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나절이 3시간인지 6시간인지 저마다 달라 헷갈린다.   의문을 풀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나절’을 ‘1)하룻낮의 반(半) 2)하룻낮 전체’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반나절’은 ‘1)한나절의 반 2)하룻낮의 반=한나절’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하루를 낮과 밤 둘로 쪼개 하룻낮을 12시간이라고 본다면 ‘한나절’의 풀이 중 ‘하룻낮의 반’은 6시간, 또 다른 풀이인 ‘하룻낮 전체’는 12시간을 의미한다. ‘반나절’ 또한 사전 풀이에 따르면 ‘한나절의 반’인 3시간과 ‘하룻낮의 반=한나절’인 6시간을 뜻한다. 즉 ‘반나절’은 3시간, 6시간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KTX가 전국을 반나절(3시간)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나 반나절인 6시간 만에 ○○○을 석방했다는 기사 모두 맞는 말이 된다.   국립국어원은 실제 언중의 쓰임을 토대로 2011년 두 번째 풀이를 사전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 수치와 관련한 기준은 정확할 필요가 있다.우리말 바루기 반나절 시간 반나절 생활권 다음 기사 기사 모두

2025.04.13. 19:09

[문예마당] 시간은 그냥 흐르는데

왜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   제 맘대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는가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야지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눈금에 닿으면 곡식을 거두어야지   해 시계, 물 시계가 훨씬 자연적이지   경칩에 개구리가 시간이 바꿨다고 한 시간 일찍 나오는가   늦가을, 낙엽이 한 시간 늦게 떨어지는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는다   생체리듬을 방해해 사고의 위험까지 생긴다       늦게까지 야외에서 즐기도록 영구적으로 시간을 당기자고   시간이 가는 길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천 년 전 마야 시간이 지금 시계보다 정확하다   스트레스 없는 원시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문예마당 시간 원시 시간 마야 시간 늦가을 낙엽

2025.04.10. 18:40

[글마당] 시간은 그냥 흐르는데

왜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   제 맘대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는가   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야지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눈금에 닿으면 곡식을 거두어야지   해 시계, 물 시계가 훨씬 자연적이지   경칩에 개구리가 시간이 바꿨다고 한 시간 일찍 나오는가   늦가을, 낙엽이 한 시간 늦게 떨어지는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는다   생체리듬을 방해해 사고의 위험까지 생긴다       늦게까지 야외에서 즐기도록 영구적으로 시간을 당기자고   시간이 가는 길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천 년 전 마야 시간이 지금 시계보다 정확하다   스트레스 없는 원시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글마당 시간 원시 시간 마야 시간 늦가을 낙엽

2025.04.03. 22:19

[이아침에]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한 경우가 종종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한강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가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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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번에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독후감을 ‘조용한 천재’라고 명명한 후 이 자리에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 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하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문학사에 숨어있는 천재를 발견한 것이다. 한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과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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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드닝] 프리마베라, 봄의 시간

2월을 봄으로 보지는 않는다. 보통 3~5월을 말한다. 하지만 찰떡같이 잘 맞는 24절기의 봄은 입춘 2월 3일이다. 입춘엔 늘 꽃샘추위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꽃샘을 넘어 엄동설한의 추위가 찾아왔다. 정원 공부를 하면서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입춘의 시기였다. 왜 아직 춥디추운 2월 초를 봄의 시작이라고 봤을까?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에서 일할 때, 2월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화분에 씨를 심고, 물을 본격적으로 주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씨앗은 처음부터 땅에 뿌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6~8주 정도 실내에서 싹을 틔워 키운 후 바깥에 옮겨 심는다. 밖에 나가는 시기가 4월 초순이니, 2월 초부터는 씨앗 작업을 해야 한다. 토마토·가지·배추 등 채소가 그렇고 감자도 마찬가지다. 감자 싹 틔우기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3월에서 4월 초 봄 감자를 심어야 하니, 입춘 즈음부터 따뜻한 곳으로 옮겨 싹을 틔운다.   과일나무에 중요한 것은 가지치기다. 열매를 잘 맺도록 매년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 적기가 겨울 추위 지나고 아직 땅이 풀리기 전인 2월이어서 시기가 짧다 보니 이즈음 과수원은 전화를 받기 어려워질 정도로 분주하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챌리는 ‘프리마베라’를 그렸다. 프리마베라는 ‘처음’과 ‘봄’의 합성어다. 이 그림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맨 오른쪽에 입에 잔뜩 바람을 문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아내 클로리스가 있다. 중앙엔 화려한 가운을 걸친 꽃의 여신 플로라와 함께 사랑의 신 비너스와 큐피드, 왼쪽에는 삶의 영광을 뜻하는 3명의 님프 그레이스와 태양의 신 머큐리가 등장한다. 그림 속 500송이의 꽃 가운데 다른 종이 190종이나 된다. ‘프리마베라’는 부드러운 서풍이 불어 꽃이 피니 우리 삶에 사랑과 영광이 가득해진다는 의미다. 아직 춥고 시려도 곧 꽃피는 봄이 온다. 조금만 더 견뎌보자. 오경아 /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행복한 가드닝 프리마베라 시간 입춘 즈음 씨앗 작업 겨울 추위

2025.02.05. 21:42

[문장으로 읽는 책] 기도가 필요한 시간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에서.   그날 밤 지옥문이 열린 기분이다. 우리 앞에 느닷없는 정치와 역사의 퇴행극이 펼쳐졌다. 폭주한 망상가는 여전히 반성을 모른다. 정치 셈법에만 눈먼 정치인들도 너무 많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무리 중 한 여성은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굴리며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마마”라고 울부짖었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목사님’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아스팔트 목사님’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세상이 도저히 공존 불가능한 사람들로 동강 난 느낌이다. 하도 어이없는 풍경의 연속이라 차라리 눈과 입을 닫고 싶다는 이들도 많다.   마냥 희망찬 인사를 주고받기조차 꺼려지는 연초, 위태로운 마음을 다스리며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를 펼친다. 이문재 시인이 시처럼 읽히는 기도문들을 묶은 책이다. 모든 기도는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한다.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기도의 쓰임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우루과이 성당 벽 주 기도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만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기도 시간 우루과이 성당 아스팔트 목사님 신학자 아브라함

2025.01.22. 19:38

주택보험 청구 숙지 사항들…산불 피해 보상까지 ‘시간과의 싸움’

남가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보험 청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 보험, 가주페어플랜, 무보험 등 상황별로 주의할 점을 정리했다.     ▶일반 보험   일반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는 산불 피해에 대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청구 과정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특히 산불 피해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인 만큼, 보험 청구 처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 청구 과정에서는 손해 사정인 고용에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손해사정인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돈을 요구하거나, 지나친 수수료를 청구할 경우 절대 이에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손해사정인은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상에 일정 비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약에 따라 비율은 달라지지만 10~20%가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30%가 넘는 비율은 '불합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했다.     ▶가주페어플랜   가주페어플랜은 일반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주 정부가 감독하는 화재보험이다. 최근 일반 보험 가입이나 갱신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가입자가 급증했다.   많은 가입자가 가주페어플랜이 충분히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가주페어플랜은 먼저 유보금을 사용해 보상을 지급한다. 지난해 여름, 빅토리아 로치 가주페어플랜 회장은 유보금이 3억8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보금이 소진되면 재보험사에 청구를 진행한다. 리키 최 가주 보험협회 부회장은 “재보험사에 청구할 금액이 23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재보험 자금도 부족할 경우, 가주 내 모든 보험사에 시장 점유율에 따라 자금 분담을 명령할 수 있다. 이는 1994년 노스리지 대지진 당시에도 적용된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법적 구조 덕분에 가주페어플랜 가입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가주페어플랜에 보상을 받을 때는 주택의 경우 300만 달러, 상업용 건물의 경우 2000만 달러의 보상한도가 있으므로 이에 주의해야 한다.     ▶무보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해자는 비영리단체나 연방재난청(FEMA)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을 활용해야 한다. FEMA는 재난 상황에서 긴급 지원금을 제공하며, 비영리단체들도 피해 복구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지원금에 관심을 두고 충분한 조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반 보험이나 가주페어플랜 가입자라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그러나 청구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피해자의 청구가 몰리는 만큼, 보상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최 부회장은 “보험 가입자들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청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며 “결국에는 ‘긴 시간과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조원희 기자주택보험 시간 주택보험 청구 보험 가입자들 청구 절차

2025.01.13. 19:0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빌려온 시간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잘못된 시간이 사라지고 있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일이란   내 마음의 잡초를 걷어낸 후에라도   서로의 발자국을 확인해야만 했네       꽃향을 따라 나비가 길을 내듯   불 밝힌 오두막을 향해 길을 내어야했네   머물 수 없는 어둠의 울타리를 넘어야 했네       “괜찮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네   비장한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한 걸음 발을 뗄때마다 이명은 사라지지 않네       내게는 빌려온 시간이 있네   그 시간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네   지나 보니 내 것이 아니었네       내가 어둠의 청색이 가라앉는 동안 길을 내었네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오는 언덕에 서네   바람은 지나온 시간을 밀어내고 있네         창밖을 봅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립니다. 먼 나라, 꿈도 꿀 수 없는 하늘에서 빈들로 여린 동작으로 눈이 내립니다. 시야에 꽉 찬 풍경은 하얀 눈의 여백으로 일상의 풍경을 한 폭의 동양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눈입니다. 밖으로 나가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목적도 없이 발끝이 닿는 곳으로 갑니다. 발자국이 찍힌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았습니다. 이 발로 그 긴 시간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제자리인데 나는 눈길을 걸으며 다시 태어납니다. 내 볼을 만지는 눈은 어느새 녹아 눈물이 됩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담을 쌓고 작은 창문을 내고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던 바깥세상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을 잊어 버리고 살아왔던 시간이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 그 말은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함께였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차마 그 손을 놓아줄 수 없을 겁니다. 눈길을 걸으며 지나온 나의 시간으로 눈을 돌립니다. 나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살아온 날들이 보입니다. 그 시간이 낯설어집니다. 꼭 빌려온 시간같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과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함께 뜨거운 커피를 나누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짙은 회색의 하늘을 보고, 서로의 걸어온 길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사진을 찍고, 아쉬워 돌아오는 밤길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좋아요” 활짝 웃는 그리운 얼굴이 차창을 따라옵니다. 다시 아침은 오고 또 날이 저물어 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신기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잠든 나를 비추는 그 별은 아침이 되면 하얗게 부서져 무너집니다.     이별이란 단어와 이별하는 날을 꿈꾸어봅니다. 어느 날 함께였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새하얀 눈이 내리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 하늘 언저리에 당신의 아픔을 덮어줄 푸른 새벽이 올 것임을 압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동쪽 하늘 가을 하늘 위로 바람

2024.11.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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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말기

시간은 고무줄이다. 늘어나고 줄어든다. 하루를 일년처럼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년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게 허송세월로 보내기도 한다. 허송세월(虛送歲月)은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을 말한다.   시계 추는 다른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추가 좌우로 흔들림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엽이 풀리며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아침부터 밀려오는 하루의 시작(중략)/ 평범하게 씻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이 지나가면(중략)/ 똑딱거리는 시곗바늘에 맞춰/ 시계추마냥 왔다갔다 하는 하루들/ 하루가 모여 한달, 일년을 넘어가면/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걸까’-유니의 ‘시계추’ 중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매달려 인생의 시계는 돈다. 인생의 시계는 수동이다. 멈추지 않게 하려면 태엽을 감든지 베터리를 갈아끼워야 한다. 매일 새벽 4시,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하루를 맞는다. 눈 여겨 보는 이 없어도 밤새 어둠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새벽별과 작별하고, 제일 먼저 가슴 스치는 바람과 악수한다. 어둠에 묻힌 잔디는 작은 진주알 같은 이슬을 품고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는, 정갈하고도 고요한 하루의 시작에 가슴 떨린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왠 수다냐고? ‘나이 들면 새벽에 깬다’며 아들은 나의 새벽 세러모니를 평가절하 한다. ‘나쁜 놈, 저도 늙어봐라.’ 하려다가 늦잠꾸러기로 어머니 애간장 태우고 지각 밥 먹듯 하며 벌 서던 생각이 나서 히죽이 웃는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버릇은 길들이기에 달렸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고 아이 셋 건사하다 보면 해뜨고 질 때까지 내 시간은 일 분도 허락되지 않았다. 애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 유일한 피신처요 탈출구였다. 그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내 ‘새벽 동화’가 시작된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고통과 권태를 견디고 영롱한 새벽별 보고 폭풍이 지나간 하늘에 뜬 무지개를 만나는 사람은 슬퍼도 울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편한데로 세상을 본다. 자기 생각대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 길고 짧음을 판단한다. 마음은 변덕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힘든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한국행 비행 시간은 왜 그리 느리게 가는지. 아이폰 꺼내 보고 또 꺼내 봐도 병아리 눈물만큼 움직인다. 한국에 있는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간다. 옛 동무나 지인 만나 동대문에서 갈치솥밥, 냄비우동, 꼬마김밥. 옛날 짜장면, 추억의 오뎅국물 즐기며 먹방투어 하다보면 날벼락처럼 휘가닥 시간이 달아난다.   ‘동짓달 기니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시는 밤 꺼내고 싶은 황진이 사랑은 에로틱하며 서정적이다.   사랑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간다. 안 하는 것보다 시작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고민이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시작의 종창역은 끝이 아니다.   쓰러지고 무너져도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않기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시간 동안 시간 새벽 세러모니 허송세월로 보내기

2024.09.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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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반나절’은 몇 시간일까?

‘나절’은 하룻낮의 절반쯤 되는 동안이다. 그렇다면 ‘한나절’은 하룻낮의 절반이다. 즉 하룻낮을 12시간으로 본다면 ‘한나절’은 6시간이 된다. ‘반나절’은 ‘한나절’의 반이므로 3시간이 된다. 너무나 단순하고 쉽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과거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풀이돼 있어 오해하거나 헷갈릴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1년 국립국어원은 언어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한나절’의 의미에 ‘하룻낮 전체’라는 내용을 추가한다. 그리고 ‘반나절’은 ‘한나절의 반’ 또는 ‘하룻낮의 반’이라고 풀이한다. 여기에서 대혼란이 발생한다.   ‘한나절’은 기존처럼 6시간도 되지만 하룻낮 전체인 12시간도 된다. 그리고 ‘반나절’은 3시간도 되고, 6시간도 된다.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란 말은 차를 타고 가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포함하므로 왕복 5~6시간 정도의 거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반나절’은 6시간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나절과 한나절·반나절이 모두 6시간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셋이 동의어가 된다.   ‘한나절’ ‘반나절’은 시간 개념으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려면 ‘한나절’ 대신 6시간·12시간, ‘반나절’ 대신 3시간·6시간 등의 표현을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반나절 시간 전국 반나절 시간 개념 모두 6시간

2024.09.08. 18:45

내 시간·돈 내서 봉사하니 삶에 뜻이 서더라

자원봉사는 개인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다. 무보수가 대부분이라 경제적 이득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시니어가 자원봉사에 앞장선다. 이들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자원봉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동료 시니어, 차세대, 커뮤니티를 위해 거액의 사비까지 내놓고 있다.   ▶삶의 황혼, 의미 찾아   한인 청소년 환경미화 봉사단체 파바월드(PAVA World)를 이끄는 명원식(67) 회장은 8년째 매년 2만 달러를 청소년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그가 일군 의류업체 ‘드림USA’도 장학기금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명원식 회장은 차세대인 청소년 750명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어릴 때부터 남을 위한 봉사활동에 익숙하도록 돕고 있다. 명 회장은 “청소년들과 매주 토요일마다 남가주 6곳에서 환경미화를 하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나선다. “아이들이 잘 커서 대학교도 좋은 곳 가고 남을 계속 도와주는 모습을 볼 때 내가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명 회장은 시니어들이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이유로 “인생은 사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우리가 빈손으로 떠날 때까지 각자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고 가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글로벌어린이재단 이정희(67) 전 회장도 시니어가 돼서야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남을 위한 봉사는 안 한 것 같았다”며 “나이가 드니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린이 돕기 등 봉사활동을 해보니 큰 기쁨이 돌아왔다. 봉사활동을 통해 뜻이 맞는 좋은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나이 먹고 아무 생각없이 골프만 치는 것보다 . 남을 도우면서 생활하면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봉사활동을 할수록 더 건강해지는 것은 덤으로 따라온다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열려 있다면 봉사단체 문을 두드리라”고 말했다.     특히 이 전 회장은 늙어서 경제적 부를 일궜을 때 사회환원 차원에서 돈을 쓰면 “개인을 위한 소비보다 기쁜 마음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시니어 자원봉사 득 많아   시니어에게 자원봉사 활동이 삶의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는 연구결과는 다수 발표됐다.   연방기관 차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담당하는 CNCS(Corporation for National and Community Service)가 발표한 ‘자원봉사가 미치는 55세 이상 중장년층의 건강과 웰빙(volunteering can improve the health and well-being of people age 55 and older)’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시니어가 자원봉사에 나서면 치매예방 등 육체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우울감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고서는 시니어가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성취감 및 자존감 회복 ▶개인적 성장 ▶의미 있는 관계 형성’ 기회도 얻는다고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원봉사에 2년 이상 나선 시니어의 84%는 건강이 개선 또는 안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봉사 시작 당시 5가지 이상 우울증 증상을 보였던 시니어 중 78%도 2년 후 우울감이 줄었다고 답했다. 자원봉사 시작 당시 친구가 부족하다고 느낀 시니어 88%도 2년 후 고립감이 감소했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시니어의 자원봉사를 추천했다.     이웃케어클리닉 부속 버몬트 양로보건센터 디렉터인 이동수 노인학 박사는 “시니어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 우선 건강과 만성질환을 관리하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숙면 또는 수면량 증가, 스트레스 감소, 자존심 및 자존감 향상, 우울증 예방 등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어 “시니어가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소속감과 정체성은 ‘삶에 대한 의미부여’로 이어진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는 “자원봉사를 하면 정신적 에너지가 부정적 상태에서 의미감, 자존감, 타인과 유대감 증가로 긍정적 감정상태로 변하도록 돕는다”며 “시니어가 자원봉사를 하면 집중할 일이 생기고 하루하루 본인의 스케줄도 관리한다. 특히 본인에게 남아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경험을 통해 자존감과 가치감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도 즐거움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김 전문의는 “인간이 느끼고 싶어하는 가장 상위의 욕구는 ‘이타적인 삶’을 통한 의미감”이라며 “자원봉사에 나서는 시니어는 활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개인 삶과 자원봉사 조율 중요   시니어가 자원봉사에 참여하면 육체적·정신적 건강관리에 긍정적 효과를 볼 때가 많다. 하지만 의지만 앞설 경우 자칫 낭패를 보기도 한다.     수년째 자원봉사 중인 시니어들은 ‘개인의 삶과 자원봉사 시간 조율’을 강조한다. 정인숙 할머니는 “일상생활에서 자원봉사는 여유 있게 시간을 잡아야 한다. 개인 활동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 2~3일 또는 하루 4~5시간 정도로 자원봉사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차승표 할아버지는 “주 5일 자원봉사를 하지만 오후 3시부터는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쓴다”고 말했다.  평소 자원봉사 습관화도 큰 도움이 된다. 한미여성회 시니어 자원봉사자 180여명은 뜨개질팀, 바느질팀으로 신생아 배냇저고리, 참전용사 무릎 덮개, 기금마련용 목도리와 인형을 만들고 있다.     최지아 디랙터는 “한미여성회는 올해 20주년으로 시니어 자원봉사자 중에는 1980~90년대부터 봉사활동을 해온 분들”이라며 “이런 분들이 새로 오는 시니어 자원봉사자를 인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시니어가 자원봉사에 나설 때 건강상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수 노인학 박사는 “활동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가능한 활동과 시간할애 등 주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는 “자원봉사 초기 조금씩 본인의 능력과 에너지 한계를 테스트하면서 감당할 수준으로 활동하고 성공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리한 시도를 했다가 감당을 못할 경우 ‘실패의 경험’으로 되레 부정적 감정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봉사 시간 시니어 자원봉사 자원봉사 활동 자원봉사 시작

2024.08.2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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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을 만나는 시간

데크의 오른쪽 코너에 둥근 테이블을 놓고 접었던 의자를 폈다. 이곳에 앉으면 한 그루 나무를 대면하게 된다. 이 나무는 아픈 사연이 있는 나무다. 5년 전 눈 폭풍에 쓰러진 전나무에 온몸을 맞았다. 겨울 내내 무거운 무게를 지탱하느라 용을 쓴 탓인지 몸이 뒤틀리고 가지가 엉켜지고 한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다. 빨리 치워주지 못한 내 탓이 크다.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을 초봄에 치우리라 생각했다. 그 사이 나무는 힘겹게 나무의 무게를 버티어냈다. 사람도 사고를 당하면 지체를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오랜 시간 재활 운동을 한다. 5년이란 긴 세월을 나무는 힘들게 다친 가지를 스스로 포기 하기도 하고 간간히 하얗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 아직 살아있어요 손짓하기도 했다. 늦은 봄이면 어김없이 싸라기눈 같은 꽃을 한 아름 안고 뒤란에 진한 향기를 쏟아주었던 라일락이다.     봄이 온 후에도 쓰러진 전나무를 제거해주는데 한 계절을 보냈다. 잔가지를 자르고 전기톱으로 여러 토막으로 몸통을 잘라 땔감으로 쌓아놓다 보니 여름이 왔다. 구부러진 라일락을 다듬어주고 휘어진 가지를 세워 주려다 몇 가지를 생으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추스리는 라일락 옆에서 꽃은 물론 더는 잎사귀를 내밀지 않는 가지를 다듬고 삐쭉 내민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 가지를 자르면 그곳에서 두 개의 가지를 뻗어내기에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가위질을 많이 했다. 그 후로 나는 봄만 되면 나무에 싹이 돋는지를 확인하러 분주히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행여라도 가지 끝에 잎눈이라도 불거지면 그날 하루는 마냥 기뻤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 발을 들이고,   내 손을 내놓고,   내 마음을 열고,   내 머리를 내려놓고,   나를 태우고, 없애고,   나를 소멸 할 때   당신을 만날 수 있어요   당신을 향해 걷고   당신 향해 두 손 모으고   당신을 마음 가득 채우고   당신 앞에 날 데리고 갈 때   가까이 있는 당신께   싹을 내고, 꽃 피울 수 있어요       반으로 작아진 나무에서 올라오는 줄기를 제외하고는 몇 해 꽃이 피지 않았다. 나무의 고통을 우리는 알기나 할까? 나무는 어지간히 힘들어 보였다. 몇 년이 지나도 휘어진 채 다시 곧게 돌아오지 않은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 주었다. 홀로만 삐죽한 가지도 다른 가지와 높이를 맞추어 정리 해주었다. 땅에서 올라오던 나뭇가지도 잘라 주고 나무 안쪽에 싹을 내지 않은 가지들도 모두 제거해 주었다.   나무를 자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무의 크기는 전에 비해 작아졌지만 새로 자라나는 싱싱한 줄기에 잎들이 나날이 자라나고 있다. “잘 자라거라 그리고 내년엔 하얀 꽃망울을 가득 피워다오.” 돌아서는 내게 나무가 흔들리며 내 머리를 만진다. “고마워 내년엔 향을 가득 담은 꽃을 하얗게 피워줄게” 뒤돌아 나는 웃었다. 대답하듯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이제 네 속에서 자라날 꺼야.”   죽은 가지들을 쳐 주듯이 내 몸에도 살아나지 않은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 옹이. 내 몸을 돌아보았다. 쉼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내 몸 구석구석이 휘어져 있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 속 티끌만 눈에 띄어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참 아이러니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멀리 보지 않고 나를 보아도 그렇다.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시간들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내 앞에 있다. 나무의 굽은 가지와 꽃 피우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보였지 내 안의 휘어진 마음과 꽃피우지 못한 꿈들은 보지 못했다. 당신을 만나는 시간 내내….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시간 재활 나무 주위 나무 안쪽

2024.06.1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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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니어의 시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후다.  20대에는 늑장을 피우는 것 같던 시간이 65세가 넘으니 꿈결처럼 흘러가 버린다. 내 인생에 배급받은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니어들은 모이면 건강 이야기다. 누가 갑자기 쓰러졌고, 몸 어디가 이상하면 무슨 병의 증상이고, 어떤 병에는 무슨 약이 좋다는 등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의학자들은 100세까지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라고 말한다. 100세 장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건강관리?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건강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간 관리다. 시간은 돈이라고들 말하지만 65세가 넘으면 시간은 돈, 그 이상이다. 시간은 구매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니어가 우두커니 앉아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본다. 지적 자극이나 새로운 도전이 없으면 우리의 뇌는 급격히 쇠퇴한다고 한다. 물론 치매도 빨리 올 수 있다.     시니어는 인생의 오후이다. 오후는 오전보다 더 길고 다양하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쓰느냐가 시니어에 주어진 삶의 숙제다. 시간은 차별이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스스로 삶의 시간표를 짜야 하는 고민이 시니어의 몫이다. 시간은 마치 그릇과 같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죽을 담으면 죽 그릇이 된다. 시간에 담긴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삶의 의미를 정의했다.    많은 사람이 돈 낭비는 아까워해도 시간 낭비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고산증을 겪어봐야 산소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시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재산이다. 그 재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고 삶의 윤택함이 결정된다. 돈 있고 시간도 있어야 진짜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분노의 자리를 연민의 자리로 채우고 허욕에서 벗어나 맑은 눈빛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시간, 세상을 조망하는 지혜와 이해력이 높아지는 시간, 그 시간이 시니어의 시간이다.     시니어의 시간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짧더라도 알맹이가 꽉 찬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속도를 늦추지 않는 홀로서기의 스케줄을 짜야 한다. 신앙은 물론, 봉사활동, 여행, 취미생활도 하며 스스로 삶을 만들어야 한다.     피곤한 사람은 피하는 것도 시간의 질적 사용의 한 방법이다. 책도 아무것이나 읽지 말고 양서들을 골라서 읽어야 한다. 이 모임 저 모임에 나가 다른 사람 뒷말 하는 데 맞장구치는 것도 시간 낭비다.     시니어의 시간은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고, 저녁노을에도 감동하고, 자주자주 감탄할 때, 나이의 숫자를 의식하지 않는 즐겁고 건강한 시니어의 삶이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배급받은 시간을 쓰는 것이다. 시간의 비밀을 푸는 것이 현명하게 나이를 먹는 비결이며, 조화가 아니라 향기 있는 생화로 시니어의 시간을 사는 일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시니어 시간 시간 낭비 시간 세상 봉사활동 여행

2024.06.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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