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시간을 한 바퀴 돌다…그랜드서클
Los Angeles
2026.01.22 19:34
2026.01.22 20:34
[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2000마일의 그랜드서클
태고의 지층과 빛이 만든 신전, 그랜드캐년과 페이지
모뉴먼트밸리·모압, 붉은 바위 거인이 지키는 신의 땅
외계 지형을 닮은 사막의 모험, 고블린밸리·캐피톨리프
브라이스·자이언캐년, 영혼을 압도하는 붉은 숲·협곡
사우스림 대표 전망대 매더 포인트. 수백만 년의 지층이 드러난 협곡이 펼쳐진다.
미국 서부에는 사막과 협곡을 하나의 원으로 잇는 길이 있다. 애리조나와 유타를 가로지르며 대지의 가장 깊은 주름과 오래된 시간을 마주하는 여정, 일명 ‘그랜드서클’이다.
이 길에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명소가 이어진다. 그랜드캐년의 심연, 모뉴먼트밸리의 붉은 탑, 아치스 국립공원의 자연석 문, 브라이스캐년의 후두 숲, 자이언의 거대한 협곡까지. 모두가 지구가 오랜 시간 자신을 조각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야외 박물관이다.
총 1500~2000마일, 약 2주 일정으로 즐기는 로드트립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인간의 크기와 시간의 깊이를 새삼 깨닫게 하는 존재의 여행이다. LA에서 출발해 미국 서부의 대자연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그랜드서클 여정에 나서볼 만하다.
서부 애리조나·유타를 원형으로 잇는 대표 로드트립 ‘그랜드서클’.
1일차: LA서 그랜드캐년으로
캘리포니아 도시권을 벗어나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면 풍경은 서서히 비워지고, 하늘은 끝없이 열린다. 그리고 마침내 말문이 막히는 거대한 절벽 앞에 선다. 그랜드캐년이다.
그랜드캐년은 풍경을 넘어 하나의 세계다. 매더 포인트에서 내려다보는 붉고 황금빛 협곡은 수백만 년의 시간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지질의 연대기다.
해가 기울면 바위는 불타듯 붉게 물들고 계곡은 깊은 그림자로 잠긴다. 이 한순간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긴 여정을 달려온다.
2일차: 페이지, 물과 바람이 만든 조각
페이지는 작은 도시지만, 주변에는 자연이 숨겨놓은 비경이 가득하다. 엔텔롭캐년의 물결 같은 암벽, 말굽 모양으로 강이 휘감아 도는 홀슈밴드, 사막 위의 바다처럼 펼쳐진 레이크 파월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물과 바람은 바위를 부드럽게 깎아 빛이 스며드는 신전을 만들어 놓았다. 여행객들은 협곡 속 빛의 결을 따라가며 사막 지형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한다.
3일차: 모뉴먼트밸리, 붉은 신들의 땅
황량한 평원 위로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우뚝 서 있다. 모뉴먼트밸리다. 고대 신들의 석상을 연상시키는 풍광은 서부영화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존 웨인의 서부극이 이곳에서 탄생한 이유도 현장에 서 보면 단번에 이해된다.
하지만 모뉴먼트밸리는 영화보다 먼저 나바호 원주민들에게 살아 있는 성지다. 해가 기울고 붉은 대지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풍경은 현실보다 신화에 가까워진다.
거대한 자연석 아치와 침식 지형이 이어진 ‘바위의 조각 정원’.
4~6일차: 모압, 바위의 왕국
모압은 작은 마을이지만, 그 주변은 장엄하다. 캐년랜드와 아치스, 이 두 국립공원은 바위가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솟은 절벽, 외계의 행성에 도착한듯한 침봉 바위들, 그리고 거대한 돌 아치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협곡. 여기서는 걷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수천 개의 버섯 바위가 늘어선 독특한 침식 지형. 밤이면 은하수가 쏟아진다.
7일차: 고블린밸리, 장난꾸러기들의 놀이터
수천 개의 바위 인형들이 늘어선 고블린밸리는, 자연이 잠시 장난을 친 듯한 곳이다. 마치 닌자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신비롭다.
밤이 되면, 인공 불빛 하나 없는 하늘 위로 은하수가 쏟아진다. 이곳은 별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8~10일차: 캐피톨리프와 에스칼란테, 숨겨진 대지
캐피톨리프는 조용하지만 깊다. 거대한 절벽과 구불구불한 계곡 길을 따라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이다.
에스칼란테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문명이 사라지고, 슬롯캐년과 후두 바위들이 만들어낸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모험가들의 천국이다.
후두 바위가 숲처럼 빼곡한 협곡. 일출·일몰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11일차: 브라이스캐년, 붉은 숲
브라이스캐년의 후두 바위들은 숲처럼 빽빽하게 서 있다. 해가 떠오르면 붉게, 해가 지면 분홍과 보랏빛으로 변한다.
림 위에서 보는 풍경도 장관이지만, 아래로 내려가 그 사이를 걷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거대한 조각 정원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12일차: 자이언캐년, 협곡의 성전
자이언캐년은 압도적이다. 수직으로 솟은 절벽 사이로 강이 흐르고, 사람은 그 틈을 따라 걷는다.
에인절스 랜딩, 내로우스 등 이곳에서의 하이킹은 풍경이 아니라 체험이다. 자연이 인간을 시험하는 성전과도 같다.
13~14일차: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귀환
자연의 대서사시를 지나 도착한 도시는 라스베이거스다. 불빛과 음악, 인공의 화려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문명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도시 주위에도 바위와 바람, 별과 협곡이 숨어 있다.
그랜드서클은 단지 국립공원을 도는 코스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시간 속을 달리는 여행이며,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조용히 일깨워 주는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가 되고, 한 번 다녀온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바위와 하늘이 그린 거대한 원, 그 위를 달리는 우리는 잠시, 지구의 일부가 된다.
▶여행 시즌: 봄(4월~5월), 가을(9월~10월)이 가장 좋다. 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너무 춥다.
김인호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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