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골목 블록 파티에 다녀왔다. 막다른 골목이라 외부 차량은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주택가다. 차로 길을 막고, 그늘막을 세우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파티장이 마련되었다. 오후 5시,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준비한 만두 튀김을 들고 나가니 하나둘씩 음식을 가지고 모였다.
골목 안에는 10여 가구가 살지만 20여 년 이곳에 살며 말을 섞고 지낸 이웃은 고작 3,4집 정도다. 파티를 주선한 에드리안이 초대한 이웃 골목 몇 가구가 더해져 30여 명이 모였다. 필리핀 음식 서너 가지,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피자, 아내가 구운 만두에 맥주와 와인, 물과 음료수, 디저트와 커피 등 다양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중동계 이민자인 토니가 불을 피워 만든 케밥이었다. 소고기, 닭고기, 갈비에 구운 토마토와 가지까지,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케밥보다 맛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테킬라가 등장했다.
그동안 몸이 아파 딸네 집에 가 있던 옆집 영감 멕스도 나와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니 여름이 되면 다시 딸이 데리러 올 텐데 잠시 갔다 돌아올 거라 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러면 점점 의존도가 높아져 나중에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며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힘으로 지낼 작정이라고 한다. 94세, 내 집에서 살다 죽을 생각이라고 한다. 내 집에서 내 힘으로 지내다가 죽는 것, 모든 노인의 바람이 아닌가 싶다. 다들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멕스는 슬그머니 집으로 사라졌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날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필리핀계 중년 여성 메이는 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다. 몇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실의에 빠져 한동안 두문불출 집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한국 드라마였다. 현빈을 좋아해 그가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것도 안다. 한국에 나가 제주도, DMZ 등을 다녀왔고, 함께 간 미국 여성들은 양념게장을 먹지 않아 혼자 입이 즐거웠다며 자랑한다. 한국전쟁에 22개국이 참전했으며, 필리핀군 110여 명이 전사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양시에 있는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에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전사자의 이름이 있어 사진을 찍어 고향에 보냈노라고 한다. 과연 한류가 대단하다.
이날 케밥을 구워 준 토니는 토잉 트럭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수년 전 그가 이사 온 직후 골목에 대형 토잉 트럭이 주차되었다. 우리 집 반대쪽에 주차해, 차를 몰고 나가려면 신경이 쓰이곤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저녁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트럭이 세워졌다. 영업용 차량은 주택가에 장기 주차를 할 수 없다. 시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곧 근처에 주차장을 마련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며칠 후, 트럭은 사라졌다. 그때 시에 전화했더라면 이번 블록 파티에서 서먹할 뻔했다.
블록 파티의 좋은 점은 편리함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내 집에 다녀오면 된다. 차를 타고 가지 않으니 술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 날이 쌀쌀해지니 모두 집에 가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음악은 틀어 놓았지만, 고성방가는 없었다. 절반 이상이 시니어였으며, 아이들이라고는 70줄에 낳은 프레드 영감의 5살 난 아들, 초등학생인 토니네 아이 둘이 전부였다. 헤어지며 이런 파티는 일 년에 한두 번쯤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