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노라, 너는 지금 어디에

이리나 수필가
선한 갈색 눈동자를 한 삼십 대 중반의 노라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강사가 질문할 때마다 막히지 않고 대답하며, 모르는 사항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 그녀와 나는 상당히 친해졌다.
약간 펑퍼짐한 몸매의 그녀는 남편이 금발을 좋아한다며 항상 머리를 물들었다. 아기를 갖고 싶어했지만, 치과 의사인 그가 아이를 원치 않자, 애완용 개를 자기 아들이라 했다.
어느 날 아침 노라의 사무실로 우편이 배달되었다. 그 전날까지 함께 저녁 먹고 한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같이 출근한 남편이 보낸 이혼 서류였다.
나이 어린 히스패닉계의 간호사가 자기 아이를 가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오십을 바라보는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 일 년 동안의 이혼 소송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우울증과 술에 빠졌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6개월의 병가를 주었지만, 재출근 후 일주일 만에 사표를 냈다. 그 후로 노라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오랜만에 노라가 일했던 오피스에 들려서 일을 보고 차로 향했다. 저쪽에서 어떤 꾀죄죄한 옷을 입은 뚱뚱한 여자가 환히 웃으며 걸어왔다. 검게 썩어가는 누런 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여기저기 색깔이 벗겨진 낡은 갈색 선글라스 너머로 90도가 넘는 이 더운 대낮에 행여 바람이라도 들어갈까 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얼굴엔 검버섯이 잔뜩 핀 여자. 한눈에 봐도 노라였다.
“리나”라고 부르면서 다가온 그녀는 반갑게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무심결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눈을 꼭 감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묻고, 우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헤어졌다.
잊히지 않는 죽음을 살아가는 노라의 뒷모습을 봤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라를 보며 고작 내가 꺼낸 말은 “안 더운가!”였다. 또, ‘이 옷은 한번 빨아선 냄새가 가시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만함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그 여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상하게 채워주던 그 여자, 위트가 넘치던 내가 알던 노라는 어디로 갔을까.
문득 피천득의 ‘인연’이 떠오른다. 과거는 추억으로 새기고 마지막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춘천의 소양강에는 못 가지만 대신 주마 비치에나 가야겠다. 모든 것을 품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련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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