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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고슴도치 사랑의 딜레마

이기희

이기희

사랑은 독약이다. 치유할 약이 없다. 한 번 빠져 들면 물불을 안 가리고, 헤쳐 나올 길이 막막해진다. 사랑할 때는 꽃길이지만 끝이 나면 배신의 지옥불에 몸부림 친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은 찿아 헤맨다. 사랑에 빠지면 가시덤불 속에서도 손을 꼭 잡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든다.
 
‘옛날에 고슴도치는 자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다람쥐와 사랑에 빠진다. 다람쥐는 고슴도치의 생김새와 가시가 싫었지만 고슴도치의 사랑이 너무 커서 다람쥐도 고슴도치를 사랑하게 된다. 고슴도치는 다람쥐를 안을 때마다 다람쥐의 몸에 베어나는 상처에 가슴이 저려 슬픔에 빠진다. 고슴도치는 다람쥐를 위해 자기 몸의 가시를 뽑기로 결심한다. 가시를 뽑으며 붉은 피가 넘쳐났지만 고통을 견디며 다람쥐를 껴안는다. 다람쥐는 더 이상 상처가 나지 않았고 가시를 뽑은 고슴도치는 다람쥐 품에서 죽는다.  
 
‘고슴도치와 다람쥐의 사랑’은 유래가 불분명 하지만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상처가 될까 거리를 두는 상황”을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명명한다. 인간은 서로를 요구하면서도 독립적이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지닌 모순적 존재라는 설명이다.
 
고슴도치는 적대감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나 천적이 나타났을 때, 몸을 숨겨야 하는 필요성이 있을 때만 가시를 곧추세운다. 고슴도치는 온 몸의 가시를 뽑지 않아도 사랑할 때만큼은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다. 가시가 돋친 생명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너그러워 지고, 친구와 우정을 나눌 때, 가족과 함께 일 때는 가시를 납작하게 만든다. 행여나 소중한 사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는 내 청춘의 로망을 담은 순정 영화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더글라스 서크 감독이 제작한 멜로와 로맨스를 적절하게 담은 전쟁 영화다. 함부로 영화관 출입을 못하던 시절, 일년에 한 두 번 단체 관람을 허락하던 학교 방침에 따라 보게 됐는데 마지막 장면은 일생동안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독일 병사 에른스트는 러시아 전선에서 고향으로 잠시 귀향한다. 고향은 폐허로 됐고 부모님은 행방불명이다. 충격에 빠져 길을 걷던 에른스트는 반나찌 혐의로 처형된 옛 스승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엘리자베스가 임신을 하고 에른스트는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전시 상황이 바뀌면서 곧바로 전선에 투입된다. 전쟁터에서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을 때, 그는 과거에 자신이 풀어주었던 게릴라 요원이 쏜 총에 맞고 쓰러진다. 에른스트가 숨을 거두고, 그의 손에서 떨어진 편지가 물 위로 흘러간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감동과 묘미는 극과 극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때문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을 대조하고 병치함으로써 소설이 줄 수 있는 극적 체험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의 꽃은 피어난다. 짓밟고 뭉개도 봄이면 푸른 잔디가 돋아나는 것처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고슴도치처럼 털을 모두 뽑아 죽음에 이를지라도, 사랑은 불꽃 속에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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