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음은 기울어진 쪽으로 발길을 움직인다. 생의 구도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음의 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작품의 성패는 구도에 달려 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골몰해야 ‘어떻게 그릴 것’인지 감이 잡힌다. 졸작이라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극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누구나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 사는 것이 진흙탕이고, 한 번 빠지면 헤쳐 나올 수 없는 늪이라 해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자유롭게 날기를 꿈꾼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가 없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새장에 갇힌 것들을 날려보내라. 돌아오면 내 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랑도 인생도 운명까지도 내 것이 아닌 것들은 거리낌 없이 날려보내라. 스스로 새장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사회나 직장, 가정의 틀 속에 갇혀 허무의 신발가게를 오가며 자신의 가치를 잃고 방황한 적이 한 두 번이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루에도 수차례 그 질문을 반복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의 답을 찾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린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초인’을 뜻한다. 자신이 가진 힘의 의지로 자기 극복을 하는 사람이다. 초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려는 인간을 의미한다.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는 자, 주어진 규칙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 고난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절망과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은 초인의 삶을 산다. 위버멘쉬는 극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자는 초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니체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건강이 악화돼 퇴직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극심한 두통과 발작 등 끔찍한 아픔을 겪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위장병과 구토, 발작과 감각마비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생과 사투를 벌이지만 니체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니체는 죽음의 강을 오락가락하며 주옥 같은 글들을 남긴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인간을 살아있게 한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것이다. 이 무렵 시작된 니체의 글쓰기와 사유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킨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진다. 완벽한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는 달라져야 한다.’ 니체가 남긴 사유의 흔적들은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가장 인간적인 생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기억의 창고에서 살아 숨쉰다. 사는 것이 어릿광대의 줄타기라 해도, 인간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어쩌면 극복을 통한 니체의 ‘위버멘쉬’가 초인이 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진정 나의 길을 찾고 싶다면 남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 스스로를 극복하는 용기가 인생을 진실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한다. 천국은 마음 속에 있다. 고통과 실패로 쓰러져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길이 열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프리드리히 니체 하늘 머리 자기 극복
2026.05.12. 13:01
너무 오래 살았나 봐요. 봄의 정원은 천국처럼 아름다운데 왜 눈물이 나는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이 얼얼해집니다. 흐르는 눈물은 가슴 속 때를 훔치고 봄비는 세상살이에 쌓인 먼지를 말끔하게 지웁니다. 코발트색 옷자락을 펼치는 하늘은 목화 꽃처럼 크고 작은 흰구름을 그려 넣습니다.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립니다.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가 떠 올랐어요. 청록의 옷을 입은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만남과 이별, 생과 사의 갈림길도 서두르지 않으면 구름처럼 처연하게 흘러가겠지요. 지난 겨울은 참담했습니다. 폭풍우가 대지를 뒤덮고 무릎까지 눈이 쌓였습니다. 봄은 새 각시의 더딘 걸음으로 왔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흔적은 찾으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손톱만큼 작은 깻잎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연달아 철쭉이 진홍색 잎을 가지 끝에 매달고 목련은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봅니다. 담장을 등에 업은 샛노란 개나리는 질투의 화신처럼 무리 지어 정원의 뒤뜰을 가득 채울 심산입니다.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림으로 여린 손 내밀던 코스모스는 혹한으로 생사가 묘연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을에 씨를 받아 이름표 붙여 창가에 매달아 두었거든요. 뿌리만 살아있으면 죽지 않듯이, 씨앗은 작고 말라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뒷마당에 병풍처럼 줄지어 선 나무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찬란한 초록 빛으로 계절의 풍요로움을 화폭에 담습니다. 연못에는 겨울동안 숲 속에 갇혀 살던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며 장난질합니다. 새들이 지지배배 떠드는 소리에 꽃잎들은 빛나고 아름다운 색깔로 단장하고 세상 어느 오페라 보다 황홀한 인생의 무대를 장식합니다. 그동안 미친듯이 인생을 불태우고 살았습니다. ‘죽지 않으면 산다’ 세 단어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올인했습니다. 사업과 화랑을 병행하며 아이 셋 키우고 한국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뼈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비발디의 사계(절)처럼 바뀝니다. 봄과 여름을 허술하게 보낸 사람은 풍요로운 가을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중요한 시간입니다. 박수갈채와 찬란했던 날들을 망각의 강으로 떠나보냅니다. 작지만 반짝이는 새벽별의 손짓을 담아 새롭고 창의로운 인생을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백지에 그려 주세요. 영욕으로 뽐내며 명함 뿌리던 날들을 지워버리면 사는 것이 정직하고 수월합니다.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인연을 절단하는 게 현명합니다. 불필요한 만남과 인연을 덜어내야 목말라 하던 자유를 누리며 작지만 보석 같은 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망각의 강은 남은 찌꺼기를 바다로 보내고 인생은 늘 푸른 아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주변의 연락 끊고 ‘귀양살이’ 한다며 너스레 떨다가 ‘유배생활’ 중이라고 바꿨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빛나는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스치는 바람과 악수하고, 수시로 떠오르는 언어를 가슴에 품고, 다가올 생의 아름다움에 몰두하면, 사랑과 아픔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듯 사는 게 편하고 따뜻합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힘은 타인의 위로와 간섭이 아니라 스스로 견디는 용기입니다. 지난 겨울은 추워도 따스했습니다. 손바닥에 그려준 사랑의 맹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잎의 향기로 흩날리듯, 망각의 강물 속에 사랑의 날들은 흘러갑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맹세가 계절 코발트색 옷자락 editions 대표
2026.05.05. 12:51
돌팔매질이 적중하면 이길 승산이 높아진다. 과녁에 맞지 않아도 한 번 날아간 화살은 어딘가 안착한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큐피트는 사랑의 화살을 마구 쏘는 습관이 있었다. 사랑과 전쟁은 이미 신의 세계에서 시작됐다. 사랑이 없으면 인생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달짝지근한 팥소의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그 피를 바다에 던진 거품에서 올라온 여인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서양미술사의 주목받는 걸작이다. 벌거벗은 채 커다란 조개껍데기에 서있는 여인의 모습은 성모 마리아에 익숙했던 미학적 인식을 뒤집는다. 사랑은 빈 캔버스에 마구잡이로 그리는 배합이 맞지 않는 아이들의 장난이다.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르니카(Guernica, 1937,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소장)’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작품으로 꼽힌다. 1937년 스페인내전 중 독일군 폭격기들의 공습으로 20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게르니카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도시는 폐허가 된다. 이 소식에 분개한 피카소는 가로 7.8m, 세로 3.5m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대작을 불과 6주 만에 완성했다. 절규하는 여자들과 산산이 부서진 조각상처럼 토막 난 군인들의 시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하는 듯한 황소와 혀에 송곳이 꽂힌 채 비명을 지르는 말, 모든 참상을 바라보는 목격자의 눈처럼, 불이 켜진 전구가 작품 위쪽에 그려져 있다. 게르니카를 그리기 1년 전, 중년의 피카소는 스물아홉살 도라 마르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와 동거 중이였다. 꿈꾸는 듯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풍만한 마리 테레즈에게 피카소는 욕정을 퍼붓는 투우장의 황소처럼 자신을 그려 넣었다. 개인적인 욕망을 표현하기에는 마리 테레즈가 완벽한 뮤즈였지만 ‘게르니카’ 작업을 할 동안 검은 머리에 자의식이 강한 도라의 반항적인 에너지가 필요했다. 피카소는 도라를 ‘게르니카’ 오른쪽에 절규하는 여인의 이미지로 그려 넣는다. 사랑의 고통이 전쟁만큼 잔혹하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도라는 결국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피폐해졌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도라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피카소가 죽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도니체티 대표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명곡이다. 어리숙한 총각 네모리노가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던 중 사기꾼에게 속아 사랑의 묘약을 사서 마신다. 약은 전설 속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사실은 싸구려 포도주다.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해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영어 ‘큐피드의 화살(Cupid’s dart flower)’의 꽃말은 사랑과 열정이다. 꽃봉우리가 화살촉처럼 흡사하게 꽃대가 길게 올라와 ‘화살꽃’이라 부른다. 베스비오 화산이 폼페이를 용암으로 휩쓸기 전까지 연인들은 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순간은 가끔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라진다. 큐피트가 장난삼아 마구잡이로 쏜 화살은 지구의 동쪽 혹은 서쪽 어디쯤 둥지를 튼다.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고 물거품으로 모래사장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파도가 새벽을 껴안기 전, 해변의 발자국을 보라. 사랑과 기침은 감추기가 힘들다. 누구인가 지금, 당신에게 그리움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그리움 마르와 사랑 게르니카 시민들 시체 하늘
2026.04.28. 13:3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옥이 언니가 머리를 들이밀고 ‘아’ 소리지르면 메아리가 들려왔다. 우물에 빠질까봐 언니 치마를 붙잡았다. 깊고 맑은 우리집 우물은 부엌안에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서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수박을 매달아 놓으면 냉장고에 넣은 것보다 차갑고 상큼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 것처럼 파랑새가 슬픈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날아간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 들여 지은 새 집은 인민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우는 아내 등 쓰다듬으며 “새 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난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 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미쉘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쓰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기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 같은 대답을 한다. “훌륭한 화가가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 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들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동양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집에 걸지.” 작은 돈은 큰 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쥴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우물 화가들 전시회 현대미술 화랑
2026.04.21. 13:40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망울 터지는 봄의 향연처럼 들린다. 줄지어 서 있는 나무숲 사이로 하늘은 불타는 빨강과 주황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른 아침 집앞에서 자전거 패달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빼꼼 열고 보니 앞집 아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쾌 속력으로 질주한다. 스티브는 잠이 덜 깬듯 하품을 하며 뒷짐지고 느릿하게 아들 뒤를 따른다. 콜드섹(Cul-De-Sac)에 위치한 우리집은 차가 들락거리지 않아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안성 맞춤이다. “굿 모닝! 지금 할 수 있을 때 즐겨요(Enjoy while you can).” 내가 새벽 인사를 건네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I am doing my best)”라고 손을 흔든다. 누굴 닮았는지, 우리 애들은 어릴 적엔 별나고 흥분 잘하는 하이퍼(Hyper)들이라서 안정성을 고려해 그 때도 콜드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애들은 와 잠도 안 자고 이리 설치노?” 어머니는 아이들 자전거 꽁무니 따라다니며 땀을 닦았다. 그 때가 좋았다. 참 좋았다. 미친듯 사업하고 밤잠 설치며 애들 셋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받은 날들이다. 그 시절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흘러가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간의 힘을 역설한다. 그리스인들은 두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이다. 제우스의 막내 아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신의 이름이다. ‘크로노스’는 일상을 집어삼키는 시간, 허둥대며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 받는 시간을 말한다. 독일어 재촉하다의 ‘헷첸(hetzen)’은 ‘미워하다’라는 뜻의 ‘하센(hassen’에서 유래했다.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미워하는 행위와 같아서 ‘크로노스’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카이로스’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꼭 알맞은 순간’을 뜻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작고 큰 순간을 포착하고, 각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경험들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카이로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간은 공평하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진다. 순간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순간은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순간은 영원을 잉태한다. 카이로스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풍성해 제때 잡으면 쉽게 붙잡힌다.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잡을 수가 없다. 타임캡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이나 물건을 담아서 후세에 온전히 전할 목적으로 고안한 용기다. 내 타임캡슐은 빈 통이다. 시대를 위한 업적도 역사의 족적으로 남길 기록도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생명의 기적들을 내게 선물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자녀들, 손자와 손녀들은 내가 남기는 소중한 타임캡슐이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카이로스적 시간 시간 개념 카이로스 앞머리
2026.04.14. 12:46
봄이다. 두터운 외투 벗고 빛나는 봄을 맞는다. 지난 겨울은 참담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과 싸우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의 인내심은 견디지 못하고 작은 미풍에도 곤두박질 친다. 참고 조금만 기다리면 봄꽃들은 기지개 켜며 작고 앙정맞은 입술을 벌릴텐데 조급하게 계절을 성토했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은 견뎌낼 줄 안다. 계절이 두툼한 솜이불을 벗어 제치고 꽃샘바람이 뒷마당을 휩쓸자 꽃잎은 찬란한 빛깔로 정원을 물들인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행복은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다. 채색이 잘 안되고 화려하지 못해도 나만의 독창성을 가지면 명화가 된다. 내면의 투명함은 의식의 깊이를 파고 든다. 영혼이 맑아지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인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싹을 틔운다. 사람과 바람, 꽃잎과 풀잎. 하늘과 땅 사이 경계를 허문다. 레프 톨스토이 대표작 ‘부활’은 사회의 모순, 법의 부조리,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각성하고 영적인 부활을 이루어내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대서사시다. 네흘류도프 공작은 상류사회의 방탕과 타성에 젖어 사는 인물이다. 우연히 재판소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 그는 독살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가 과거 자신이 짓밟고 버린 카튜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 하녀였던 마슬로바를 유혹해 아이를 낳게 하고, 그의 무책임한 행동이 한 여성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 아이를 임신한 카튜샤는 쫓겨나고, 아이는 죽고 끝없는 나락으로 매춘부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부투하지만 카튜샤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죄책감을 느낀 네흘류도프는 속죄하고자 카튜샤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당한다. 사면될 거라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카튜사는 시베리아에서 시몬손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다. 네흘류도프는 과거를 속죄 받기 위해 청혼하지만 감옥에서 만난 시몬손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튜샤는 원래 선했던 모습이 된다. 사랑은 정직한 선택이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도, 대가를 지불하는 사면도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 하나가 되고, 흔들리는 바람으로 다가와 심장에 대못을 박는다. ‘나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질문한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채송화 꽃잎따서 손톱에 물들이듯 조금씩 인생을 채색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창문을 두드리면 팬지는 흙내음새 맡으며 머리 숙여 꽃을 피운다. 팬지 이름은 꽃모양이 사색하는 사람 같아서 프랑스어 명상(pensée)에서 유래됐다. 꽃들은 부활한다. 뿌리만 살아있으면 다시 핀다. 인간도 부활한다. 각자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형태와 색깔로 꽃이 핀다. 살아있는 것만큼 찬란한 행복은 없다. 노아의 홍수 때 민들레는 도망가지 못했다.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가엽게 여긴 하나님이 씨앗을 바람에 날려 꽃이 피게 해준다.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말라. 제일 슬픈 사랑은 ‘잊혀진 사랑’이다. 민들레 꽃씨나 나물 캐는 처녀들 바구니에 담겨 부활을 꿈꾼다. 순간은 영원과 맞닿아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영원은 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톨스토이 대표작 재판소 배심원 시베리아 유형
2026.04.07. 12:44
시작은 뜨겁다. 희망으로 불타오른다. 결의와 갈망으로 벅차오른다. 실패를 염두에 둔 시작은 없다. 낭패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끈을 잡고 놓치 않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소망을 담은 그림을 채색하며 구겨진 인생의 팔렛트에 희망의 점들을 수없이 새겨넣었다. 달력의 장을 넘길 때마다 강렬했던 목표는 서리 맞은 잎새처럼 오그라들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내일은 남아 있을까? 두려운 것은 시작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는 것이다. 절망은 오래된 간이역에서 기차가 멈췄을 때도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게 만든다. 장편소설 2권 쓰겠다는 장대한(?)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희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이 가능한 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의 주인공은 낡고 찢어진, 혹은 찬란한 망토를 두르고 막이 내리기 전 가장 높은 옥타브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쓰러져도 인생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맞선 대가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 꼭대기에 다다른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반복은 영원히 계속된다. 매일 같은 일, 반복적인 일상을 계속하며 생의 바위를 각자의 등에 업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면 산다. 우리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면, 삶은 계속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매일 같이 일하고, 버티고, 성취하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좀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다. ‘왜 사는가?’는 질문 앞에서 세상은 침묵한다. 카뮈는 이 침묵과 충돌하는 인간의 갈망을 ‘부조리’라 간파한다. 부조리(不條理)는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부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과 세계, 생의 의미와 실제 생활과 불합리한 관계를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알제리 출신으로 짧지만 강렬한 불꽃을 태운 작가다.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삼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는 시상식에서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긴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운명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가난과 질병,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체험한 카뮈는 삶의 불합리함을 체험한다.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참다운 유형을 보여준다. ‘내 안의 태도가 삶을 결정하고, 환경이 힘들어도 내면의 힘은 꺼지지 않으며,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 안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카뮈가 절망을 견디는 인간에게 던지는 통찰의 독백이다. 겨울이 봄을 이길 수 없고 희망은 절망을 이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치 않고, 흔들리며 갈피를 못잡아도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부서진 바위처럼 금이 생겨도 단단해지는 법을 익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내일을 가슴 속에 품는다. 절망의 길목에서,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빛나는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editions 대표
2026.03.31. 13:24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중략)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중략)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잘 생긴 외모와 도시적 낭만성, ‘명동백작’ ‘댄디보이’라고 불리던 박인환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전후 지식인의 통음이 들리듯, 한 구절 한 구절에 절절함이 담겨있다. ‘목마와 숙녀’는 한국 시사에서 감상주의 또는 낭만주의 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감상주의는 슬픔, 동정, 연민 따위의 감상을 지나치게 드러내려는 문예 현상이다.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는 개성이 없는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학 작품이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18세기 말 유럽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 경향이다.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 ‘세월이 가면’은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술을 마시다가 쓴 즉흥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같이 술을 마시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부치고 ‘백치아다다’로 유명한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테너 가수 임만섭과 나애심이 불러 ‘명동의 샹송’으로 유명해지고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로 국민적인 애창곡이 된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한 후 이듬해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고 3일 간 폭음한 탓에 결국 그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자택에서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향년 29세로 요절했다. 예술가 특히 시인이나 작가들은 왜 술을 죽도록 마시고 사랑하는가?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심일까, 아니면 비겁한 용기일까? 술에 취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자신을 감싸는 사회적 방어막이 없는 상태가 된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담이 아니라 본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술에 취했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평소에 잘난 척하고 엄숙하던 작가들이 술이 거나해지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안 마신다. 그래도 문인들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끼고, 술값은 열심히 낸다. ‘술 안 마시고, 담배 못 피우고, 애인도 없으니, 무슨 맛으로 살꼬. 글을 우째 쓰겠노’라고 핀잔을 받으면 ‘그래서 작가가 못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사랑했던 문우 여럿이 가난과 절망, 술독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게 청춘의 꿈이였다. 시를 버려도 세상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문학을 포기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맨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 ‘술은 비와 같다. 비가 오면 나쁜 흙은 진창이 되지만 좋은 흙은 꽃을 피운다’는 존 헤이의 말을 새긴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진흙 속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박인환 시인 무방비 상태 가수 박인희
2026.03.24. 12:38
‘사랑은 자유로운 새 /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 / (새를) 부르는 것이 무의미하지 / 싫으면 절대로 오지 않아 / 협박하고 빌어도 소용 없어 / (중략) 사랑은 보헤미안의 아이 / 법을 알지 못하고 살지 /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야 /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해야 돼’- 카르멘 ‘하바네라(Habanera)’ 중에서. 보헤미안은 프랑스어 보엠(Bohême)에서 유래해 체코 보헤미아 출신 집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에는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랑과 예술적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오페라(Opera)는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에서 유래한다. 음악이 기본적 요소이고 가수들이 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서양 연극의 한 양식으로 무대 장치, 의상, 춤, 발레와 같은 여러 공연 예술을 포함한다. ‘카르멘’은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로 ‘르뷔 데 되 몽드’라는 잡지에 발표된 짧은 소설이다. 촉망 받는 군인 돈 호세가 집시 카르멘과 사랑에 빠져 인생이 망가지자 카르멘을 살해하고 자신도 파멸을 맞게 된다. 카르멘은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의 극치를 보여준다. 비제의 ‘카르멘’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더불어 극장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초연 당시 카르멘의 관능적이고 비 도덕적인 캐릭터와 비극적 결말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혹평을 받고 비제는 큰 좌절을 겪는다. 니체가 극찬한 비제의 카르멘은 처참한 실패였다. 초연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초연 3개월 후 비제는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왜 우리는 어렵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세속적이고 관능적이며 비극의 끝판왕인 오페라에 열광하는가? 커튼이 올라갈 때 관중은 박수갈채로 환호한다. 우아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며 불륜을 즐겨보고 비극적인 사랑과 몰락에는 눈물을 흘린다. 니체는 인간은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꿈의 ‘가상’을 만들어내고 삶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가상을 끊임없이 부수고 환상•오류• 변명•핑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설명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원초적 예술의 충동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끊임 없는 투쟁과 조화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성스러운 세계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방종을 억제한다. 이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이 결합함으로써 삶의 가혹함•전율•악함•고통이 음악적 도취와 화려한 무대, 감미로운 아리아로 환상적인 설득력을 갖게 한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면 청중은 시작과 기대,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지막 장의 커튼이 내려오면 관객은 ‘길들이지 않은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커튼콜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와 환성으로 박수를 계속 보내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인생에는 앙코르(Encore)도 커튼콜도 없다. 공연은 한 차례뿐이다. 박수치며 재연을 요청하지 않는다. 찬란한 순간들은 한 차례 연습 없이 막을 내린다. 오페라 팜플렛 접어 들고 멋진 스카프를 두르며, 무대를 떠날 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비제의 카르멘 집시 카르멘 공연 예술
2026.03.17. 13:08
‘영혼이 털린다’는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피로, 지나친 감정 소모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업무나 고강도 운동,견디기 힘든 충격 등으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머리가 멍해지거나,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영혼은 육체에 담겨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다.영혼은 문화•학문•종교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인간의 정신적•본질적 성격을가리키는 말이다. 혼(soul)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영(sprit)은 신과 교통하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간주된다. 괴테는 남편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친구가 자살한 것과 약혼자 사라테부프와 못이룬 사랑을 엮어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1774년 출간되자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진 소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괴테의 대표작이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었다. 변호사•행정가•경영자•극장장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바이마르 군주의 초청을 받아 군사•외교•사법 행정까지 국정 운영을 도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서른일곱의괴테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구원이란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하는 학자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세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조건으로 영혼을 팔기로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맺지만 더 큰 세계에서정치 예술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늙은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전진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다. 길은 잃고 방황하는 자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절망은 희망을 등에 업고뜀박질할 내일을 기다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을인용한다. 영혼이 갈피를 못잡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가만히 멍 때리기를 계속하라.멍 때리기는 더럽고 너덜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한다. 죽지 않으면 산다. 영혼이 털려도 육신이 살아 있는한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목숨 줄이 끓어지지 않으면 살 것이고, 살아있는 육신은 영혼의 축복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출구를 모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머무르면 된다. 영혼은 복귀 능력이 탁월하다. 참고 기다리면 정상으로 회귀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낳기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설파한다. 별이 빛나는 밤 춤을 추자. 혼돈의 시간에 매듭을 묶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생명의 기쁨을 담은 왈츠를 추자. 연인이 없으면 어떠리. 운명은 내 편이다. 나를 이기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 혼돈이라해도, 별빛머리에 이고 달빛을 연인 삼아 춤을 추리라. 전쟁과 평화에서 애틋한 눈길 보내며사랑의 화살로 속삭이던 연인들처럼 ‘Natasha’s Waltz’에 맞춰 춤을 추리라. 잠시 영혼이 털린다해도, 흔들리는 것들은 바람을 타고 영원 속에 머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주인공 파우스트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대문호 괴테
2026.03.10. 13:32
뜸만 들이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적당히 살겠다며 모든 일에 뜸만 들이다 보면 적당하게 살다 간다. 인생이 한번 왔다가는 소풍놀이라는 건 빈말이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은 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렸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장터에 내다 팔 달걀 중에 제일 큰 놈 두개를 골라 병아리 꽁지처럼 노란 지단 부쳐 돌돌 말아 김밥을 싸 주셨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 떫은 맛 도는 땡감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슬프게도 봄소풍은 일년에 단 한 차례뿐이였다. 감나무 가지 타고 올라가 나무들의 초록빛 치마에 마음을 빼앗긴 아지랑이 보며 봄을 기다렸다. 소풍가는 날을 학수고대 하는 사람에겐 봄은 꼭 온다. 뜸을 잘 들이는 것은 요리의 기본 학습이다. 옥수수는 뚜껑을 닫고 약 30분 삶아주면 탱글탱글하고 쫀득한 식감을 주는데 너무 오래 삶으면 물컹해진다. 밥을 지은 뒤 뜸을 들이는 것은 밥솥 내부의 잔열이 쌀알 속까지 고르게 침투해 밥알의 찰기를 높이고 맛있는 밥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추가로 열을 가하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맛난 밥을 짓게 한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더 빨라 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간다고, 더 늦는 게 아니라, 숨 고르며 느긋하게 가다 보면,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구수한 삶의 냄새가 넘쳐 난다’ - 정웅구 시 ‘뜸 3’ 전문 달리기와 뜀박질에 익숙한 사람은 속도를 줄이고 달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꺼질 줄 모르는 불꽃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고 불태우면 재가 되어 흩어진다.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고, 재물을 쌓고, 빨리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쉽게 무너진다. 인생에도 뜸 들이는 시간, 기다림의 인내, 숙성의 날들이 필요하다. 내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였다. 전국여고생 백일장에서 청상과부로 소복 입은 어머니 모습 담은 ‘백목련’이 당선됐다. 김춘수 시인 칭찬 듣고 내 꿈은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것, 양키시장에서 구입한 바바리 코트 입고 동성로를 배회했다. 소풍이 끝나고 발을 헛디디며 산을 내려올 때처럼, 운명은 꿈꾸던 인생의 달콤한 소풍날을 알려주지 않았다. 시인의 꿈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에서 침몰됐다. 20년이 넘게 매주 빠짐없이 미주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며 자음과 모음을 기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방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눈물과 상처를 담은 장편소설 두권을 쓰고 싶었다. 20년간 뜸 드리며 몸살 앓던 숨고르기를 시작한다. 죽을 각오로 자신이 원하는 길 따라 행군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이든 밥이 되든 되돌아 갈 수 없어 지금 시작한다. 나이는 시간을 잡아 삼킨다. 집필을 시작했다. 장편 1권 ‘바람의 연가’, 2권 ‘바람벽에 기대’로 가제를 정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처럼, 시작과 끝은 있을 것이고 불꽃은 마지막까지 타오른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언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높이 뜀박질한다고 하늘에 닿지 않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고 어제가 지워지지 않는다. 물구나무서기 해도 멀리 바라보고, 뜸 들이지 말고 숨고르기 하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것인지 고심한다. 마음의 창을 열고, 남은 시간들을 사랑하고, 올인하는 사람들의 꽃밭에는 청춘이 퍼드덕 봄의 날개를 펼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김춘수 시인 전국여고생 백일장 editions 대표
2026.03.03. 12:58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 바르르 떤다(중략) /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중략) / 3월(三月)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중에서 시인은 관념을 벗어나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감각적인 언어를 시상에 담아 영혼에 불을 지핀다.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이며, 봄의 맑고 순수한 생명력을 환상적인 분위기에 담아 따뜻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봄을 기다리는 사나이의 관자놀이는 희망으로 생명을 잉태한다. 고통과 상처가 깊어도 겨울열매들은 올리브빛 옷을 입고 여인들은 그해의 찬란한 불을 지핀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으면 희망은 작은 풀잎에도 여린 꽃봉우리를 맺는다. 꽃샘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찔레꽃이 바람에 흩날려도 사랑은 맹세를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한평생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인지 모른다. 윤흥길의 중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인간의 존엄성를 상실해가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셋방살이하다 집을 장만한 오씨 집에 세든 권씨는 자신이 대학까지 나온 안동권씨라며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권씨는 아내의 수술비를 오씨에게 빌리려다 거절당하자 (오씨가 수술비를 대준 걸 모르고) 칼을 들고 서툰 강도짓을 하다가 탄로가 나고, 그는 행방불명이 된다. 다음날 오씨는 권씨의 방에 그가 애지중지하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不條理)극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는 ‘기다림’이다. 주 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난 술이 싫다고 동문서답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지만 실은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지 모른다.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두서 없고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힘겨운 에스트라공은 ‘우리 당장 목이나 매자’며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마치 힘겨운 삶을 도피하려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과 같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상처에 베이고 긁히며 세월에 떠밀려 살아왔는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무너지는 자존심에 절망해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생’이란 글자에 목숨을 걸며 살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 베케트의 명대사다. 무의미한 생을 의미있는 축제로 끝맺기 위해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겨울이 모질어도 봄을 이기지 못한다. 고도가 영영 오지 않는다 해도 기다림의 끈을 놓치 않는 사람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겨울 열매들 주인공 블라디미르 사무엘 베케트
2026.02.24. 13:31
모질던 겨울이 소리 소문 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산더미처럼 쌓였던 폭설과 꽁꽁 얼어붙었던 빙판이 지축으로 스며든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씨가 며칠 계속되자 따사로운 햇볕이 하늘 끝에서 내려와 축제를 벌이듯 사방을 어루만진다. 눈사태에 덮혀 형체도 없이 사라졌던 잔디밭과 연못, 숨죽여 엎드린 채소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릎까지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자 거짓말처럼 잔디밭이 푸릇푸릇 얼굴을 드러낸다. 세상에! 그토록 가혹한 추위와 사투를 벌리며 목숨줄 붙잡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생명은 모질다. 죽지만 않으면 사는구나 생각했다. ‘오늘은 까치 설날’ 어제 동창이 카톡을 보냈다. 고등학교 동창 여섯명이 옹기종기 모인 카톡방은 시시껄렁 해도 정겨운 사연들로 넘쳐난다. 카톡은 지난 여름 한국 가서 배웠는데 재미 있다. 그동안 회의 참석차 한국 방문 했을 때도 비즈니스 때문에 일주일 정도만 체류하고 황급히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여지껏 살면서 놀러다니거나 남의 집에 ‘마실 다닌 기억’이 없다. 미국 달력에 구정 표시가 없어 동그라미 쳐두고 ‘Chinese New Year’를 기다렸다. 나보다 더 열심히 기다리는건 손주들이다. 세배보다 세뱃돈의 위력은 크다. 새뱃돈 수취인의 전폭적인 지지로 ‘양력과 음력’으로 설날을 두 번 치르게 됐다. 우리집 설날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새뱃돈 많이 받으세요’로 둔갑했다. 한복 입히고 한국말 인사 연습까지 시켰는데 세뱃돈에 몰입한 막내가 실수인지 고의인지 절하며 “세뱃돈 많이 주세요”라고 해 설날 인사말이 변경됐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목청 돋우고 삼만이 아재가 치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누렁이 앞세워 마을 한 바퀴 돌면 동네 어른들이 소쿠리에 감이나 군밤, 대추을 담아 주었다. 수 십 년이 넘도록 타향살이를 하셨지만 어머니 미국생활은 동지미 시골 마을에서 훈장(訓長) 어른 노릇하던 그 때 그 모습이다. 설날이나 구정, 추석 명절이 되면 온갖 음식을 장만해 손님을 초대하고 잔치를 벌인다. 한달 전부터 설날 상차림과 고유명절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재물을 소망하는 둥근 엽전 모양 떡과 가래떡을 만들고 동그랑땡, 오색꼬지전, 동태전, 깻잎전, 육전, 빈대떡, 잡채, 모듬전 부치고 소갈비를 재운다. 삼색나물은 뿌리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무친다. 뿌리를 상징하는 도라지는 조상을 뜻하고, 고사리 줄기는 부모를, 시금치 잎은 자손이 하나로 연결돼 대대손손 번영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 뿐이랴! 밤새 찹쌀 삭혀 식혜 만들고 약식 유과 약과 강정을 만들어 개별 포장해 이름표 붙여 일요일 교회에서 분배한다. 특혜를 받는 사람은 평소에 다정하게 손잡아 주거나 건강을 챙겨주는 의사들이다. 배달 책임은 막내 아들! 내 말은 죽기로 안 들어도 할머니 지시는 즉시 복종한다. 인생의 꽃밭에는 수만가지의 꽃들이 자란다. 가슴에 사랑을 품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추억의 꽃밭에는 사시장철 꽃이 핀다. 물 주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가지각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자란다. 천국처럼. 그 곳은 사랑과 기쁨이 항상 넘쳐나서 외롭고 슬플 때는 되돌아보면 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설날 인사말 까치 설날 설날 상차림과
2026.02.17. 13:17
빈자리에 누군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천지차이(天地差異)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광기다. 천둥과 비비람이 몰아쳐도 함께 있는 순간은 따스하고 평화롭다.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벽면에 시민들이 남긴 비문과 그림 79건이 새롭게 발견됐다. 벽면에는 검투사 두 명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과 ‘에라토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목적어 없는 고백이지만 사랑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우주를 떠돈다. 사랑은 광야에 몰아치는 모래 바람이다. 형체도 없이 경계를 허물고 세월의 강을 건너 국적을 초월해 사랑없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환희를 새긴다. 제25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대회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아르모니아(Armonia)’. 영어로는 하모니, 즉 조화와 균형을 말한다. 복잡다난하고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21세기, 세계 정세와 세대-계층과 균열이 심각한 사회 분위기를 아우르는 시의적절한 주제다.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잠들지 말라’를 열창할 때는 가슴이 저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부른 ‘Nessun Dorma’는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다. 추억은 왜 하릴없이 시공을 뛰어넘고, 사랑했던 순간들은 축지법을 쓰며 세월의 흔적을 무자비하게 허무는가? 예술이 없었다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었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 가슴 떨리는 선율이 없었다면 높고 낮은 절망의 순간들을 어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청력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제자가 교향곡 제5번 ‘운명’ 1악장 서두의 주제를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해서 제목이 붙여 졌다고 전해진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비켜가는 수밖에 없다. ‘운명’ 교향곡으로 생의 고통과 좌절을 견디며, 모닝 커피를 마시며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듣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여린 풀잎에 입맞추고, 늙어 껍질이 벗겨진 고목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겠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말을 남긴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앞에서 피처럼 붉은 하늘의 아픔을 삼키고, 봄이 오면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뒷마당에서 이웃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겠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목표는 여태 남아있다. 인생의 완벽한 그림은 없다. 구도도 없이 불시착해서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 사는 것이 바람개비의 펄럭임이라 해도 꼭 붙잡고 살기로 한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예술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색깔로 생을 채색한다. 뿌리 없는 나무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심장의 불꽃은 사랑으로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예술 심장 이탈리아 밀라노 올림픽 스타디움
2026.02.10. 14:14
가난이 수치가 아니던 시절은 행복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서로 돕고 기대며 산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초가집이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마을에 살았다. 스물 남짓한 집들은 담장이 허름해 내 집, 남의 집 경계가 없었다. 어느 집 쌀통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집이 누구인지 안다. 저녁 때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향해 ‘새끼들 데불고 밥 묵으라 오라 캐라’라고 소리쳤다. 굶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은 행복했다. 꼬부라진 논둑길 따라 요리조리 논밭 사이를 달리면 보자기로 싼 양은 도시락은 달그락 소리를 냈다.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처진 교문 앞에 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은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세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는 바위산이 있었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는 전설을 믿고 기다린다. 재력가, 장군, 성공한 정치가를 만났지만 탐욕과 권력 명예욕에 찌든 것에 실망한다. 노년기에 든 어니스트는 마을에서 설교자로 존경 받는 인물이 되고 사람들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 얼굴은 천차만별이다. 인생이란 대본에는 각기 살아온 세월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태어날 때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월이 산천을 다스리듯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이 들면 생김새와 얼굴 모양이 달라진다. 미술이나 문학은 숟가락 얹지만 무식이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음악이다. 시골에선 풍금에 맞춰 종달새처럼 따라 부르면 됐다. 건반이 두개나 고장 나도 목소리 높여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전학해 피아노의 맑고 명쾌한 소리에 주눅 들어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촌티가 탄로날까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풍금 소리는 어머니 젖무덤에 잠들 때처럼 포근하고 따스했다. 소복 입은 어머니 한숨소리 같아서 잊히지 않는 날들에 슬픈 날개를 달아준다. 피아노는 고통과 아픔을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풍금은 슬픔의 강물 따라 생을 떠돈다. 우리집 그랜드 피아노는 장식용이다. 애들에게 어릴 적 피아노 바이올린 풀룻 기타 등 렛슨을 시켰지만 연습을 안해 렛슨비만 날렸다. 전인교육 시킨다고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미술전시회를 주말이면 끌고 다녔다. 그나마 아들이 집에 오면 악보 없이 피아노 치는 걸 보며 ‘잔디밭에도 민들레 꽃은 핀다’로 위로받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가는 것이다.’-앙드레 말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찬란한 수식어와 빛나는 경력 없이도, 힘든 세상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면 진실 하나로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 애들이 그리우면 피아노의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유년의 풍금소리를 듣는다. 세월이 가도 풍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감꽃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풍금소리 들으며 찔레꽃 향기로 마음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건반이 몇 개 없어져도, 생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주눅들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기억은 흔적으로 남아 바람개비로 유년의 강가를 맴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큰바위 얼굴 풍금 소리 가도 풍금
2026.02.03. 13:14
자고 나니 풍경이 달라졌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집과 집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길과 길 사이가 모호해지고, 내 것과 네 것이 불투명해졌다. 땅과 하늘이 맞닿아 껴안고 하나가 되었다. 세상은 숨죽이는 고요 속에 백색으로 대지를 덮고 어둔 밤인데도 온 천지가 천사처럼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미국 전역에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강력한 겨울 푹풍으로 한파경계령이 내려지고 인구 절반이 넘는 약 1억850만명이 피해 영향권에 들어 22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두려움으로 잠을 설치며 소파에 누워 일기예보를 지켜본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3-4절) 폭설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다.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높은 작업대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누워서 4년만에 ‘천지창조(Creation of Adam)’를 완성했다. 천재는 스스로 길을 만든다. 미켈란젤로는 허공에서 창조의 길을 만들었다. 사는 동안 수없이 갈 길을 잃었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길을 잃고 헤매여도 찿으면 길은 열린다. 뉴욕 아트엑스포 전시회에 35년 동안 참석해도 여태 화장실을 못찾는다. 눈썰미 없고, 방향 감각 제로에다, 길치에 기계치라서 길 잃는 것이 주 특기다. 운전 면허 땄을 때도 겁쟁이라서 빌빌거리며 운전을 잘 못했다. 옛날 옛적에, 길 잃으면 차를 즉시 세울 것, 곧장 고속도로 순찰 경찰 부를 것, 아는 체 달리다 보면 다른 주로 빠질 위험 있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의 길은 표지판이 없어도 혼자서 잘 찿아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어디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인지 알지 못해도, 마음이 내키는 곳을 향한다.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살아온 길이 아니라고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 없다.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 가는 길이 꿈꿔왔던 길이 아니라 해도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지고 갈 만큼의 무게를 등에 업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던 차분히 걸어갈 뿐이다. 인생 후반부는 후회하고 따질 겨를이 없다. 요란한 생의 깃발을 꽂을 필요 없다. 버티고 살아온 생의 발자취 껴안고 작은 조약돌로 이름 없는 돌탑을 쌓는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중략)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중략)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중략)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마음에도 길이 있다. 억만개의 장미로 불태우던 꽃길이 있고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던 가시밭길도 있었다. 사투를 벌이던 고통 속에서도 생명줄 놓지 않으면 아픔은 바람따라 흩어지고 봄이 오면 꽃들은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부지런한 이웃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든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이니다. 사는 것이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바람벽이라 해도, 무너지면 다시 쌓고, 흩어지면 다시 불러 모으면 된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도, 살을 에는 모진 겨울이 지나면 마음의 길은 마른 나무 가지에 백목련 한송이 꽃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인생 후반부 운전 면허 뉴욕 아트엑스포
2026.01.27. 13:40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84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혼자 보트에서 지내다가 대어를 만난다. 상어와 사투를 벌리는 노인은 많은 고난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물고기는 단순한 낚시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고난을 상징한다. 헤밍웨이 글은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의미와 감정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빙산이론’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외로운 싸움과 고독을 존재론적 치열한 갈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고독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 색깔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홀로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은 따스하지만 적조하다. 고독은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마지막 잎새들처럼 외롭고 쓸쓸함으로 뒷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실로 오랜만에 비발디의 사계(四季, Le quattro)를 듣는다. 봄이 감미롭고 경쾌한 반면에 여름의 1악장은 천둥번개를 떠오르게 하고 황홀하고 격렬하다. 가을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음율로 둥지의 새를 남쪽나라로 날려 보낸다. 겨울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쇠소리 내며 마지막 잎새처럼 애절하게 나부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왈츠(Natasha's Waltz)를 추던 연인들의 사랑처럼 겨울은 슬픈 작별을 견디며 가슴 아리게 등을 돌린다. 인생의 4계절은 소리소문 없이 왔다가 미처 껴안을 틈도 없이 세월 속으로 흘러갔다. 봄날은 아지랑이 머리에 이고 사랑이 있는 곳이면 무작정 달려갔다. 여름은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수십 마리의 상어 떼를 만나도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왜 그리 살았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목숨 갈아먹는 줄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달렸을까?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문패도 없는 역을 향해 물욕과 탐욕, 욕망과 성공의 지도를 그리며 무작정 질주했다. 세상을 다 가져도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다. 소명(疏明)할 까닭이나 기회 조차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82세 때 가출해서 열흘 만에 시골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객사했다. 16살 연하에게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해 13명의 아이를 낳고 ‘전쟁과 평화’ 원고를 6번이나 필사한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반대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죽음을 보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톨스토이는 돈 명예 명성 지위를 모두 가졌지만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불완전한 영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복한 척하기는 쉽다. 요란한 포장지를 벗기고, 내려놓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행복은 환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에 형체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행복은 평온한 고독으로 생의 순간을 따스하게 데운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지 말라. 죽는 것보다 살아있음에 찬가를 부르라. 용기 있는 자만이 고독이 머무는 자리에 생명의 나무 한그루 심는다. 고독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견디는 성찰이다. 마음의 바다에 돛단배 띄우고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며, 무너지는 날들 위해 튼실한 나무 가지 붙잡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렛대 하나 세우는 일이다. 마음의 바다에 폭풍우 가라 앉히고, 조약돌처럼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사랑이 머무는 곳에 빛과 희망 있음을 믿으면, 고독이 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문호 톨스토이 나무 한그루 나무 가지
2026.01.20. 12:43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이 첫눈 올 때까지 안 빠지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첫눈 오는 날 같이 맞으면 연인이 된다는 낭만적인 속삭임도 아련한 옛추억이다. 쓸쓸해지면 종이학 접어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종이학은 돌아오지 않았다. 삶이 흔들리는 창가에 여린 날개 접고 사뿐히 그대 품에 안겼으리라. 옆집 옥이 언니는 인형놀이 대신 내 얼굴에 숯덩이로 눈썹 그리고 꽃잎 따서 입술과 볼을 연홍색으로 다듬었다. 꽃물 들인다고 봉숭아 찔레꽃 진달래 개나리 철쭉 유채꽃 동백꽃 꺾어 삼만이 아재가 주워 온 돌접시에 갈아 명주실로 꼭꼭 싸매 주었다. 첫눈 오기를 기다리며 손톱 꽃물이 지워질까봐 애를 태웠다. 올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폭풍이 몰아치고 모진 회오리 바람이 벌거벗은 가지를 꺾는다. 눈덩이를 등에 업은 채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껴안는다. 갈대는 죽은 듯 서있지만 생명을 움켜쥐고 사투를 벌인다. 죽지 않으면 산다. 쓰러져도 사랑이 생명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여우와 놀던 시절, 아득한 기억의 파노라마 속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아이처럼 철 없는 여자를 죽도록 사랑했다, 여자는 귀엽지만? 고집이 세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제 할 말만 지껄였다. 달래고 가르치고 응원하는 남자의 깊은 사랑이 여자의 삶 속으로 파고 들었다. 여자는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세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팝콘을 한 바가지 튀겨 승마장 근처 연못에 가서 한 시간을 놀았다. 병아리 날개처럼 노오란 원피스에 수술 달린 노란 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을 낀 리사는 예쁘다는 말 듣는 게 좋아 아빠 손잡고 오리 먹이주려 매일 연못으로 갔다.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지만 귀엽고 둥근 한국인 얼굴을 하고 있어 언뜻 보면 정상아 같았다. 우리 가족 누구도 리사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리사는 우리집에서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보석이었다. 세상에 완전한 행복은 없다. 온전한 사랑도, 영원한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칡흙 같은 어둠이 몰려오듯 태양은 공전을 하며 돌고 있을 뿐이다. 짧았지만 행복했다. 불행은 햇볕을 가리는 어둠일 뿐 심장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의사가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고 했을 때 ‘전쟁터에서, 아무도 내가 오늘 하루 살아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시간은 죽음 앞에 무자비하게 흘렀다. 검정 드레스에 검은 모자를 쓰고, 리사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란 드레스를 입혔다. 성조기를 받자 21발 예포(Canon Salute)가 발사됐다. 리사는 아빠가 왜 안보이는지 모른 채 내 치마 뒤로 숨었다. 별들도 가볍고 무거운 인생을 산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신비로운 천체다. 중력이 강해서 빛조차 못빠져 나온다. 사랑도 빠져나올 수 없다. 산다는 것이 허공에 날리는 휘파람 소리라 해도 그리움의 강에 돛단배 띄우는 사람은 사랑의 묘약을 먹고 산다. 천지가 흰눈으로 덮여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운명을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을 선택할 수 있기 바란다.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슬픔이 빗물처럼 쏱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은 마지막 잎새 붙잡고, 눈밭 헤치고 방황했던 계절의 아픔 접으며, 사랑으로 버티고 사랑으로 살아남은 그해 겨울은 따스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그해 겨울 봉숭아 꽃물 손톱 꽃물
2026.01.13. 12:33
유년의 기억 속에 대청마루 한 가운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칠 때까지 뭐가 적혀 있는지 읽지 못했다. 우리집 대청마루는 엉덩이만 붙이면 누구나 쉬어갔지만 대부분 액자의 글을 읽지 못했다. 출생지가 현풍면 원교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현풍읍을 지나 마산과 창영을 연결하는 삼거리 작은 동네다. 낙동강을 구비 돌아 비슬산을 등지고, 먼지가 눈 앞을 가리는 도로를 달리면 삼천리 버스는 우리집 앞에 선다. 대구에서 탑승해 목마른 손님들에게 차갑고 신선한 우리집 우물물을 배달하는 건 내 몫이다. 갈증을 푼 손님들은 청문 틈으로 찌게발(?)을 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애호박 바가지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고마운 사람에겐 돈을 주는구나 생각했다. 아! 이젠 족보도 연유도 없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청마루에 유령처럼 자리잡고 있던 그 액자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하루에도 몇차례 삼천리버스가 오고가는 탓에 누렁이 황구 털처럼 잘 다져진 갈색 마당은 먼지를 뒤집어쓴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차례 회색 눈처럼 덮히는 대청마루를 쓸고 닦는데 공을 드린다. 한글을 잘 못 읽는데도 어머니는 정성스레 액자의 먼지를 닦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액자의 시를 내가 낭송하고부터 어머니 이마의 굵은 주름살이 펴지고 보름달은 외양간과 돼지우리, 찔레꽃이 만발한 마당을 훤하게 비춰주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리도 / 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옴을 믿으라.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1837초판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저서 출간 번역본 참고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슬픔과 괴로움은 결국 지니갈 것이고 인생의 역경과 불안, 좌절과 슬픔을 견디면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푸쉬킨의 시는 청상과부 어머니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푸시킨은 러시아 사람들한테는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단순한 시인을 넘어 러시아 문어체의 기틀을 세운 작가로 토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푸쉬킨은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 없는 작가로 시대와 맞선 조용한 저항은 푸시킨이 남긴 침묵의 항거였다. 살아갈수록 푸쉬킨의 시가 주는 무게가 가슴에 쌓인다. 어릴 적엔 철 없어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탐욕과 재물에 도취돼 욕망이라는 전차에 매달려 허우적거렸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무엇을 위해 남은 시간을 소모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중한 것들이 한 순간, 눈 깜박 할 사이에 사라져도 그리운 것들을 붙잡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고뇌와 아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새벽별 머리에 이고 아침을 기다린다. 마음은 침묵으로 말한다. 떠들지 않는다. 마음의 창문을 닫지 않으면, 내일은 미래를 머리에 이고, 밝은 걸음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사랑하는 그대여! 마음이 미래에 사는 것처럼, 오늘이 슬퍼도 내일은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한 순간에 인생이 덧없이 지나가도, 떠나는 것들에게 가볍게 손 흔들며, 다가오는 날들 위해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간구합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대청마루 청상과부 어머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2026.01.06. 13:24
지는 것이 태양뿐이랴! 꽃잎도 피고 진다. 사랑도 뭉게구름으로 부풀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달이 차면 보름달도 이지러지고, 동쪽 하늘에서 새벽별로 반짝이던 그대 눈동자도 세월이 가면 목련꽃잎 되어 흩어진다. 새벽별은 계명성, 샛별, 금성을 가리킨다. 리투아니아 신화 속 새벽과 하늘의 여신으로 미모가 뛰어난 아우슈리네는 샛별(베누스)이 되어 하늘을 밝히고 어둠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어릴 적 산만하고 앞을 안 보고 생각(?)에 골몰해서 잘 넘어졌다. 엄마가 호호 불며 빨간색 아까징끼 발라준 무릎은 피카소 추상화처럼 성할 날이 없었다. 인생은 수백번 엎어지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무릎이 깨져도 절뚝거리며 어딘지 모르는 종점을 향해 달린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사는 것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지막 열차라 해도 뛰어내릴 수 없다. 1819년 겨울 아침 사형대 앞에서 생의 마지막 5분을 세며 서 있던 스물여덟살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1분이라도 더 살 수 있기를 빌며 죽음 직전 그가 본 건 교회 첨탑에 반사된 빛이였다.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그는 절규한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작품을 쓰는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는데 페트라솁스키 금요모임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가난과 아버지의 죽음, 사형 선고 후 집행 직전 특사로 풀려나지만 혹독한 시베리아 강제 유배 생활, 광적인 도박 중독, 평생을 달고 산 뇌전증 등으로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가난한 사람들, 악령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집필했다. 1881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토스토예프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장례식에는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토스토예프스키는 한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 맺는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 죄와 구원, 자유와 신앙을 가장 깊이 파고 들어 불멸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잃어버린 인생의 희망과 방향을 제시한다. 지는 해는 슬퍼라! 노을은 찬란하게 불타는 별리의 인사말도 끝내기 전에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다.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 그대가 잠든 순간에도 그리움의 끈을 놓치 않는다. 석양은 마지막 남은 잎새 껴안고 작별의 눈물 감추며 활화산처럼 불타오른다. 성냥개비 하나로 사랑은 우주를 밝힐 불을 지핀다. 오늘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어둠과 고통의 강을 건너 새벽별과 작별하고, 태양은 숨죽이며 찬란한 생명으로 대지를 물들인다. 힘든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꼭 오고야 만다. ‘내일’이란 단어 속에는 ‘희망’이라는 밝은 햇살이 반짝인다. 태양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 검은 망또 걸친 절망을 등 떠밀어 보내면 희망의 태양이 숨죽이며 다가온다. 지는 태양 붙잡고 눈물 떨구지 말라. 내일의 태양은 내일 찬란하게 빛난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새벽과 하늘 동쪽 하늘 건너 새벽별
2025.12.30.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