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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덜 된 밥은 맛없고 빈 깡통은 요란하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삼척을 버리면 사는게 수월해진다. 편해진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자기 존재의 불확실성을 덮고 과대포장 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부풀려 자신의 모습을 위장해 인정 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림 그릴 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작품을 망친다. 스케치는 명암 표현을 과도하지 않고 부드럽게 해야 채색 시 엉김을 방지한다. 남의 작품을 베끼지 말고 기법이나 구도는 참고만 하고 자신의 영감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좋은 작품을 만든다. 과도한 채색이나 덫칠은 작품의 신선함을 망가트리고 욕심이 과하면 그림이든 인생이든 어수선하게 황칠한 것 같아 망치기 쉽다.   잘난 척 잘하는 사람은 무리에서 골빈당으로 찍힌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잘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난 척 떠들어대는 사람의 변론은 지루하고 역겁고 진정한 대화의 장을 열기 힘들다.   아는 척 저 혼자 떠드는 사람은 대체로 무식한 사람들이다. 벼가 익으면 머리를 숙인다. 지식이 많을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언어 선택에 무게가 실린다.   ‘척’ 잘 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훌륭해 보이고 싶은 표면적인 욕망과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자존감을 얻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다. 자존감 결핍은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현란한 말투로 상대를 제압하려 노력한다. 자존감(自尊感)은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내적 기준에 따른 자기 수용이며 외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존심(自尊心)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지존감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긍정하는 내적 가치인데 비해 자존심은 경쟁이나 타인의 평가에 기반한 외적 긍정이다.     잘난 척과 잘난 것의 차이점은 자신감의 능력을 혼돈하는 것에서 나온다. 잘난 척 하는 사람과 잘난 사람은 다르게 행동한다. 잘난 체 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감추려고 오버 액션 하는 경우가 많지만 잘난 사람은 보이는데로 보게 한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자신이 잘난 걸 알기 때문에 굳이 티를 낼 필요가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잘난 척 하는 것은 스스로를 해독제에 중독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헛소리만 지껄이다 보면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 믿게 되고 중독에 빠져 사기꾼으로 전락하기 쉽다.   자존심은 자기 사랑이며 자기애(自己愛)다. 자존감이 자신의 가치성을 스스로 가늠하여 느끼는 감성인데 비해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자기애는 자신의 가치성을 으뜸으로 기준하는 개인주의적 사랑이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내가 나를 승인할 수 있는 마음이다. 자기의 하자나 약점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다.   자기를 긍정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는 게 편안해진다.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투영된다. 거울은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춘다.   요리할 때 향신료와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으면 음식 맛이 간다. 자랑이 넘치면 듣기에 민망하고 덜 된 밥을 씹을 때처럼 맛이 없다. 빈 깡통은 요란하고 시끄럽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자존감 결핍 부리면 작품 벤자민 프랭클린

2025.08.0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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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가진 것 하나 없는

다 가지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유의 기쁨은 빈 손일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이다. 모든 걸 다 가지면 갖고 싶은 것들이 사라진다.   어릴 적 헝겊으로 만든 예쁜 인형을 갖고 싶었다.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동네에는 도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예쁜 인형을 가진 애들이 없었다. 인형을 본 적도 없지만 나이든 언니 있는 동무들은 자투리 헝겊으로 인형은 만들었다.   근동에서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지만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인형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동무들이 인형을 업고 다닐 때 베게를 포대기에 싸서 업었다.   옥이언니는 내 유년의 구세주다. 빛나는 환상이다.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참한 아기인형을 만들었다.   부엌에서 타다 남은 장작 부스러기로 둥글게 눈썹을 그리고 숯덩이를 골라 피카소 그림의 여인들 눈처럼 삐딱하게 선을 그린 뒤 비율에 안 맞는 동그라미를 눈동자로 그려넣었다. 머리와 팔다리는 솜을 뭉쳐 만들고 몸통은 쌀이나 나락 찌꺼기를 도톰하게 넣었다. 참꽃이나 장미꽃잎을 으깨 입술을 칠하면 20세기 큐비즘 시대를 알리는 ‘장밋빛 시대’를 우리기 먼저 연 셈이다.   천경자 화백의 ‘길례언니’는 아름다운 꽃모자를 쓰고 긴 손가락으로 턱을 살짝 고이는 우아한 모습인데 비해 나의 옥이 언니는 세상풍파를 헤쳐나가는 씩씩한 선장처럼 늠름하다.   자전소설 찔레꽃에는 남매를 키우는 나의 어머니 ‘해연’과 원조 현풍할매곰탕 창업주 ‘소선’의 슬픈 사연과 아름다운 인연이 담겨 있다. 옥이 언니는 소선할매 딸이다. 가난으로 떠돌던 언니 가족이 언제 마을로 들어와서 동고동락하며 살게 됐는지 기억이 없다. 유년의 추억 속 언니는 잘 익은 감처럼 달달하고 휘영청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나부낀다.   지금은 여장군이지만 어릴 적엔 키가 작고 비실비실 했다. 뇌일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내가 두살 때 돌아가셨다. 딸이 부실한 것이 남편 병구환 하느라고 돌보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해서 나는 엄마나 언니의 등에 업혀 자랐다.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날 업고 언니가 동네를 한바퀴 돌면 동네 총각들이 일손을 멈추고 흠모의 몸짓을 보내는데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 나무꾼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어도 스스로 공주라 믿으면 영원한 공주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인증샷 무시하고 스스로 붙인 타이틀 갖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 인간(?)답지 않다.   기막힌 떠돌이 생활로 학교 다닌 적이 없어 보이지만 언니는 모르는 것 빼고는 다 안다. 하늘을 우러러 땅이 품는 진리에 익숙해지면 배우지 않아도 깨우침의 경지에 도달한다. 어차피 인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여정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매달지 않으면 가진 것이 없어도 넉넉하게 산다. 죽는 것이 두려우면 살아있는 시간에 감사하면 된다. 지나온 날보다 남은 시간에 몰두하면 지난 날의 추억이 향기로 다가온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망설이지 않고, 생각만 하기 보다 실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며, 오늘이 이땅에서 보내는 마지막이라 해도 별을 가슴에 품고 떠날 생각 하면 슬프지 않다.   인생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 갈 길 걸어가는 여정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아무것 언니 가족 삼거리 동네 동네 총각들

2025.07.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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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상을 바라보는 눈

눈은 보이는 것만큼 본다. 가슴은 느낄 수 있을 때만 흐느낀다. 슬픔은 눈물방울을 만들고 꽃잎이 피고 꽃잎이 흩어질 때 영롱한 이슬로 반짝인다. 상처는 지나간 시간의 아픈 흔적이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불교에서 오온(五蘊)은 생멸ㆍ변화하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를 말한다. 오온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으로 나누고 정신을 다시 네 요소로 세분한다. 물질인 색온(色蘊), 감각 인상인 수온(受蘊), 지각 또는 표상인 상온(想蘊), 마음의 작용인 행온(行蘊), 마음인 식온(識蘊)이다. 석가모니는 무아상경에서 오온의 특성 중 ‘통제불가능성’과 ‘영원하지 않음’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태어나서 변화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주 작은 모래알 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며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자만하지 말고 덧없는 인생무상을 직시하라는 경고다.   나바호 인디언의 ‘메멘토 모리’는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 견디고 감추지 마라. 잘난 체 하지 말고, 못 나도 숨지 말고, 죽는 날까지 자신을 믿어라.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자신도 믿을 수 있을 때까지만 믿기로 한다. 죽음은 선택이 불가능한 마침표다. 살아있는 동안 가슴 조리지 않고 편히 사는 것이 죽는 일보다 훨씬 수월하다.   인생이 좀 찌그려졌다고 실망하지 말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쓰다듬고, 나누고 싶을 때 마음껏 주고 받고, 혼밥 과식하다 홀로 일찍 죽지 말고, 좀팽이로 아끼고 절약하며 궁상 떨지 말고, 자식이나 친구들에게 있는 척, 잘 사는 척, 호들갑 떨지 말고, 보여주기보다 보이는 대로 살면 편해진다.   사는 게 슬프고 누군가 그리우면 사랑을 하자. 그리움과 슬픔은 같은 말이다. ‘욕심 많은 사람의 큰 그림은 기껏해야 자기가 가진 제일 큰 액자에 그림을 가득 채워 그리는 것이고, 현명한 사람의 큰 그림은 자기 액자를 부숴버리고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성진 스님의 화담이다.   원래 영어 ‘큰 그림(Big Picture)’의 의미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뜻이다. 좁은 시야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큰 전체를 보라는 말이다.   그리울 때 사랑하고, 울고 싶을 때 눈물 흘리는 사람은 무자비한 ‘모멘트 모리’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빛나는 인생의 그림을 그린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시각에 있다. 심미안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이다. 같은 사물을 봐도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 있고 보기싫은 것만 골라보는 사람이 있다. 심미안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꾼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인생은 아름다운 꽃밭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메멘토 모리 모멘트 모리 표상인 상온

2025.07.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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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름드리’ 나무에서 안목을

안목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안목은 사람이나 사물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다. 안목을 키우는 것은 더 현명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서다.     안목을 키우려면 일단 발품을 팔아야 생긴다. 안 보고 안 듣고 남의 말에 귀 안 기울이고 독야청청 자기 생각만 하면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 예술적인 심미안을 갖거나 훌륭한 미술 작품을 선택하가 위해 안목이 필요한 것만이 아니다. 안목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현명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비즈니스 결정이나 중대 사안을 논의할 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 있어서도 안목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크고 작은 안목들이 쌓여 내공을 거치면서 실력이 발휘된다. 안목은 스스로의 경험과 사고를 통해 훈련된 자기 설득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곁눈질 안하며 세기의 커플로 하트를 쏘아올려도 신뢰와 믿음없이 땅만 파다가는 가뭄에 동이 날 수도 있다. 사랑은 스스로 등장인물을 제한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과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랑을 키우기 어렵다.   좋은 그림 훌륭한 작품을 판별하는 안목을 키우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장을 다니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많은 작품을 눈여겨 보고 만나면 눈과 가슴이 먼저 미세한 떨림의 작은 반응을 일으킨다. 시각적인 만남을 지나 가슴의   떨림이 영혼 속으로 침투하는 미동을 느낀다. 작가가 누군지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무식이 탄로날까 봐 지례 겁먹고 뒷걸음 칠 필요가 없다.   안목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인사동이나 아트페어, 전시회 등을 부지런히 다니며 발품을 팔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창공을 날던 새가 내 품으로 날아드는 환희를 느낀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큐레이터의 몫이다. 화랑을 찿는 손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림에 대해 잘 몰라요’라며 꽁무니를 뺀다. 예술에 대한 무식이 탈로날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하드웨어 스토어에 가서 어느 쪽에 찿는 연장이 있는지 몰라 내가 해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매일 조금식 배우고 있어요.’라고 일단 안심시킨다. 화상과 큐레이터, 바이어가 서로 믿고 한 몸이 되야 판매를 성사시킬 수 있다.   고객에게 좋은 작품을 권하기 전에 전시된 작품 중에 고객에게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눈여겨 살핀다. 고객이 눈을 반짝이며 흡사 나비가 꽃봉우리에 날아들 듯 주시하는 작품이 판매의 대상이다.     일단 좋아하는 작품이 생기면 구매가 가능한 지(Affordble)를 파악해 판매를 진행한 것이 큐레이트의 전략이다.   고객이 창공을 날아오르는 기쁨을 민끽할 때 성공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고 장래를 기약할 수 있다.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도 영혼을 끌어안는 에너지가 없으면 투자의 목적은 되겠지만 고객과 궁합이 맞지 않는 선택이다   안목은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눈이다. 귀하고 좋은 것들을 찾아 헤매지만 보석을 손에 쥐고 있어도 알아볼 수 없으면 값싼 사금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드리’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큰 나무를 말한다. 겉모습만 보지 않고 안목을 키워나가면 아름드리 나무의 작은 잎새에서 사물을 통찰하고 꿰뚫어 보는 안목과 혜안(慧眼)이 생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아름드리 이기희 아름드리 나무 미술 작품 큐레이터 바이어

2025.07.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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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촉’에 충실하고 직관을 믿어라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드셨다.’ 유대인 격언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당찬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 ‘폭삭 속았수다’는 국민적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꽃잎 같고, 여전히 꿈을 꾸는 당신에게’라는 봄 포스터를 시작으로 세월을 뛰어넘어 피어나는 사랑이야기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극중에서 애순이는 그 옛날 납치당할 뻔했었다. 다리 아픈 척하는 아줌마를 도와주려고 심부름을 했는데 실은 어린이들 납치해서 조직적으로 갈취하는 앵벌이들이다. 그날따라 애순이 엄마는 애순이를 찾으러 생전 가지 않는 곳을 뛰어다니며 납치 당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애순이를 구해낸다. 엄마의 촉은 그렇게 애순이를 살렸다. 어머니의 촉은 하늘이 내린 사랑의 선물이다.   ‘촉’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가지 않고-혹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바로 알아내는 직감이다. 직감은 현상을 직접 느끼는 감각적 판단을 의미한다. 직감은 논리적 추론이나 경험적 근거 없이 느끼는 본능적인 예감이다.   직감은 특정한 경험이나 지식에 기반하지 않고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나 판단이다. 직감은 사물이나 현상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직감은 논리적 추론이나 경험적 근거 없이도 본능적으로 발생한다.   지금은 장군 체질이지만 어릴 적 장질부사에 걸려 6개월 사경을 해맸다. 갖은 병치례로 여러번 죽울 고비를 넘겼는데 어머니의 촉이 내 목숨을 구했다.   자식이 위험에 빠지면 어머니의 촉은 귀신도 소름돋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감지한다. 어머니의 촉에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주술이 담겨 있다.   직감이나 촉이 ‘느낌’이나 ‘감각’에 가까운데 비해 직관(Intuition)은 경험과 배경, 지식이 은연중에 작용하여 나온 판단이나 통찰이다. 직관력은 판단이나 추리 같은 사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직관력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지식이 쌓여 단단한 내공이 쌓였을 때 발휘된다.   촉이나 직감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직관력은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직관력은 지능보다 강력하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진정으로 가치있는 인간의 유일한 것은 직감이다’라고 했다.   직감이 에너지 감지 능력인데 비해 직관은 영혼이 알고 있던 진실에 대한 인식이다. 직감은 생존을 돕고 직관은 각성과 사명의 길로 인도한다.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마치 완성돤 작품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짜르트가 그린 악보에는 수정한 흔적이 없다. 미켈란젤로의 모든 대리석 안에는 이미 조각이 숨어 있다. 조각가는 대리석에 숨어 있는 조각을 발견할 뿐이다.   직관이 발달한 사람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 효과적인 결정을 내린다. 촉은 생각을 해서 다가오는 느낌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 번개처럼 떠오른다. 촉이 발달된 사람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 못하지만 플래그가 생성된 것처럼 쿡 찌르듯이 심장을 치고 달아난다.    본능적인 촉에 충실하고, 직관을 믿어라.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경험적 근거 사유 과정 배경 지식

2025.07.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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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들

자고 나면 오늘은 또 무슨 일부터 시작 해야 되나 고민이 태산이다. 게으름 안 부리고 나름대로 부지런떨어도 해야 할 일은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명종, 선조 때 문장가로 이름 높은 양사언의 시조다. 산에 올라가지도 않고 높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산도 산 나름이고 평지도 평지 나름이다. 매일 똑 같은 마루바닥을 쓸고 부엌 그릇 닦고 옷가지 집어 세탁기 돌리면 발로 차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집은 매일 치우고 닦아도 청소한 표시가 안 나는데 며칠만 손을 안대면 엉망진창이 된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몫이라면 용감하고(?) 기분 좋게 해치울 작정이었는데 마음 먹은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유없이 부대끼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은 멍 때리며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하늘을 바라본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인생 후반기는 남은 시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에 빠진다.   해야 할 일은 의무고 책임이 따른다. 사업하며 아내 노릇 부모 노릇 집안 챙기며 사는 동안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갔다. 해야 하는 일을 분별해서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은 소중한 도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스티브 잡스 어록이다.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도 된다. 생의 버거운 짐 내려 놓고 어릴 적 노랑나비 좇아 산천을 해매던 순수한 모습으로 살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랑하는 사람 더 깊히 사랑하며 살 수 있으면 된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할 만큼/ 꿈꿔 왔던 일들은 잠시 여기 한 켠에 밀어둔 채로(중약)/ 네가 꿈꾸는 게 무엇이든 되고픈 게 뭐든 될 수 있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으면/ 너의 삶의 이유를 찾으면(중약)/ 춤을 추듯 하루를 사는 것/ 다시 없을 지금을 사는 것 (중약) /네가 꿈꾸는 게 무엇이든/하고픈 게 뭐든 할 수 있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으면/ 너의 삶의 이유를 찾으면’ -심규선의 ‘해야할 일’ 중에서   어차피 할 일은 다 못하고 죽는다. 시간의 톱니바퀴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찿아나설 수 있다.   폴 세잔은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목숨 건 사람들’이라고 했다. 목숨은 하나 뿐이지만 목숨 걸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결과에 매달리지 마라.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생의 마지막 촛불이고 축복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출발의 시간이다.   신호등이 바뀌면 빨리 길을 건너야 한다. 주저하고 망설일 시간 없다. 남의 충고에 귀 기울이면 남의 인생을 산다.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다. 가슴 속 응어리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하고 싶은 일의 윤곽이 잡힌다.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하고 싶은 일에 올인 하면 태산도 정복할 수 있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하늘 아래 인생 후반기 시간 무엇

2025.07.0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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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라지는 것과 오래 남는 것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것은 없다.’ 어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다. 청춘에 홀로 되어 두 남매 배 안 고프게 하고 올바르게 키우려고 몸이 부셔져라 일하셨다.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가신 무학이지만 내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쳐 개똥철학의 달인이 되신다.   근동에서 대지주였던 아버지는 내가 두살 때 뇌일혈로 돌아가셨다. 그 때부터 가장이 되신 어머니는 머슴들과 소작농들을 한 식구처럼 돌보며 일꾼들보다 더 열심히 손목이 휘어지도록 농삿일을 했다.   해기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옥이 언니는 무쇠 가마 솥에 삼만이 아재가 땔감으로 팬 장작에 불을 지핀다. 뜸이 돌기 시작하면 온 마당에 구수한 밥 냄새가 진동하고 누렁이는 제 꽁지를 잡으려고 마당을 뛰어다닌다.   저녁 햇살 받아 옻칠이 반짝이는 오래된 밥상은 우리 세 식구가 먹을 자리다. 근데 군데 갈라지고 터진 커다란 두리상 다리를 펴는 건 오빠 몫이다. 둥근 모양의 두리상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기 편해 밥 먹을 사람 머릿수에 상관없이 수저만 더 갖다 놓으면 된다.   그 시절에는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쌀 독에 바닥이 보이면 부엌에 연기 나는 집 앞을 어슬렁거리면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던 시절이다.   단골로 오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와서 황토로 단단해진 마당에 물을 뿌려 쓸어주거나 돼지 우리를 치워 주기도 한다. 우리집은 언제나 사람이 넘쳐났다. 아버지가 안 계셨지만 나는 외롭지 않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배고픈 사람, 몸이 아픈 사람,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 동네를 떠돌던 미치광이 여자, 우리집 담벽 햇살 따스한 곳에 포대기 깔고 사는 동님(?)씨를 챙겼다. 아이들은 동님이 아재를 거지라고 놀려댔다. 동님씨는 일제 때 강제 징집 당해 전쟁터에서 두 다리가 잘려 불구자가 됐다. 흙 담장을 타고 새하얀 박꽃이 피면 동님씨는 꽃을 꺾어주며 머리에 꽂으라고 손짓을 한다.   몸으로 실천하고 가슴으로 새기는 사랑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은 없다.   ‘밤에 잘 잤나? 밥은 묵었나? 그라면 됐다 끊는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전화를 친구 할머니에게 일년이 넘도록 했다. 할머니를 공주처럼 떠받들고 사랑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황야의 무법자 모자에 멋진 부츠를 신은 피니씨를 우리 애들은 카우보이 할배라고 불렀다.   골프왕 피니 할매는 국은 절대로 안 먹고 밥을 물에 말아먹지 않는다. 식모살이 할 때 주인이 매일 멀건 죽을 먹여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남편 잃고 죽을만큼 힘든 친구의 생사를 확인하는 911 안전요원 노릇을 한 셈이다.   모든 걸 잃고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해도 산 사람은 살아 남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복잡한 사연이나 갈피 없는 방황이 아닌 아주 단순한 몸짓, 간단한 말 한마디, 사랑이 담긴 다정한 눈빛인지 모른다.   인생에는 공식이 없다. 어디서 어떤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힘든 사람 다정하게 손잡아 주고 잔잔한 미소로 사랑을 전하는 작은 실천일 뿐.   어쩌면 사는 게 힘든 것이 아니라, 생을 힘들게 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사라지는 것이 있는 것처럼 작지만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친구 할머니 한마디 사랑 아재가 땔감

2025.06.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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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간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세상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너는 늦으므로 해서 나는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로 내 삶이 아름다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너를 기다렸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해도 기다림으로 설레던 시간은 축복이였다. 사랑했던 아름다운 시절도 꽃잎 송별되어 바람으로 흩어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과 미움, 후회와 미련도 절망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며 조금씩 잊혀지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와 죽음의 시간이 오는 것처럼 나아갈 때와 멈출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사랑할 때와 작별할 때, 마지막 손을 흔들어야 할 시간이 온다. 태어난 때가 있었으니 떠나갈 시간도 온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로 흐른다. ‘찰나’는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 ‘크샤나(kṣaṇa)’의 음역이다. 1찰나는 약 0.013초에 해당하며 75분의 1초로 여긴다.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다. 찰나는 시간의 단위를 넘어 순간의 변화와 무상(無常)을 나타내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찰나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고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삶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명상을 통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면 마음의 평화를 찿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나이 들면서 슬픈 일은 주변에 계시는 어른들이 돌아가시거나 병마와 싸우는 소식을 듣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늙어지면 사랑도 미움도 날개를 꺾는다.   세월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생의 순간마다 상채기를 내며 파국으로 달려간다. 돈. 명예, 권력, 지위, 가족, 친구, 사랑과 욕망이 지속되길 바라지만 잠시도 머물지 않고 찰나로 흐른다. 후회해도 떠나간 것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다. 무상은 모든 것이 덧없음을 의미한다.   살아있음과 죽음의 고통에서 진리를 찿기 원한다면 무상의 진리를 깨닫고 물처럼 흐르면 된다고 가르친다. 육신과 마음, 생사고락의 변화를 힘들게 붙잡으려 하지 말고 찰나의 변화에 몸을 맡기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나이듬과 늙음은 살아있다는 진리다. 변화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라. 모든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에서 생성된다. 깨달음은 움켜쥐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놓았을 때 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어느 것도 붙잡고 집착하지 말고, 마음과 육신을 한곳에 가두지 말고 해방시키면, 고통과 행복,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돌아오지 못하는 강가에 혼자 서 있어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슬프지 않다. 다정한 손길로 나의 모습을 보듬고 쓰다듬는 것은 찰나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고 마지막 숨을 쉴 때가지 목숨을 소중하게 사랑하고 아끼면 생명은 찬란한 축복이고 선물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육신과 마음 불교 가르침 불교 용어

2025.06.1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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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며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겨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 밑’   ‘보리수’는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중에서 5번째 곡이다.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는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서정 시인으로 ‘보리수’를 비롯한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등 맑고 깨끗한 민요풍의 많은 시를 썼는데 슈베르트가 작곡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곡이 된다.   뮐러와 슈베르트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 비엔나 부근 힌터뷜 마을 보리수가 서 있는 우물가를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자주 찾았다.   슈베르트는 인생의 마지막 겨울 동안 친구 프란츠 폰 쇼버의 집에 살며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는데 길 위에 선 고독한 방랑자의 심정에 자신의 남은 음악적 정열을 바친다. 슈베르트는 31세로 병사했는데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의 가곡과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으며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보리수(菩提樹)는 장미목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이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복엽이 어긋난 형태로 자라 있다. 개화시기 4월에서 5월에 서식지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진 땅에서 자란다.   귀국 때마다 존경하는 선배는 나를 위해 조촐하고 아주 특별한 오찬을 마련한다. 아름드리 늙은 느티나무 아래서 등 굽은 할머니가 차려주는 꽁보리밥 된장찌개는 가시처럼 목에 걸려 눈물을 삼킨다. 멀리 민둥산을 어루만지며 불어오는 바람이 느티나무 잎새를 흔들고 해묵은 평상은 삐그덕 가슴 아픈 소리를 낸다.   오랜 시간 동구밖 느티나무는 도도한 자태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마을을 지킨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견뎌온 끈질긴 생명의 연결 고리는 인간과 자연이 맺은 깊은 관계를 상기시킨다. 어쩌면 유년의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낯선 이국 땅에서 영원히 한국인의 이름으로 내가 살아야 하는 것처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토마스 만은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독일 민중의 자산이며 독일 내면성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장편소설 닥터 파우스트(Doktor Faustus)는 예술과 문화, 인간 정신에 처한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한다.   ‘내가 있는 곳에 독일 문화가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독일 정신의 성찰을 담아 정치 역사 문화 전반의 방대한 사상을 집약한 최후의 걸작으로 꼽힌다.   ‘닥터 파우스트’의 주인공 천재 음악가 레버퀸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지적 탐구에 몰두한다. 레버퀸은 어느 순간 음악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창조력의 위기에 직면한다. 창의력을 얻기 위해 악마의 힘에 의존해 악마로부터 천재성을 보장 받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잃고 영혼을 판다.   보리수가 우람하게 서 있는 농가에서 태어난 레버퀸은 보리수가 휘어진 가지를 드리운 고향 집에서 최후의 안식을 맞는다.   슈베르트와 레버퀸에게 ‘보리수’가 회귀와 귀속의 원형적인 쉼터가 되는 것처럼 느티나무는 세상 어느 곳에서 살던지 내게 돌아갈 지표를 알려준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장미목 보리수나무과 마을 보리수가 느티나무 잎새

2025.06.1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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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리웠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평소 실력이 진짜 실력이다. 평소에 놀기만 하다가 갑자기 오두방정 떨며 벼락치기 공부해도 결과는 뻔하다. 학업에는 집중 안하고 시와 그림을 벗 삼아 나홀로 풍류를 즐기다 보니 성적이 뒤죽박죽, 분야별 꼴찌로 들락날락 했다. 그나마 글짓기나 미술실기 대회에서 상타는 일로 겨우 체면 유지는 됐다.   평상시에 잘 놀다가 학기말 시험 전날은 초비상이다. 초치기 분치기로 시험 준비에 몰두한다. 일단 대청마루에 상을 편 뒤 졸릴 걸 대비해 세수 대야에 찬물을 준비한다. 밤샘 할 요량으로 혹여 잠이 들면 어머니께 깨우라고 신신당부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백점 받은 시험지를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진다. 연필에 침을 발라 가며 네모진 공책 칸을 메꾸며 한글을 익히는 동안 소복 입은 어머니는 한석봉 어머니처럼 하얀 가래떡을 써신다. 난리방구통 떨며 시작한 밤샘 공부는 새벽도 안 돼 꼬꾸라지고 어머니는 한쪽 무릎을 꼿꼿이 세운 채로 모시 적삼을 다듬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대 사랑이 흔들리는 안개 속에 잊혀지는 것처럼 머무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동여맬 수 없다 해도 아름다운 기억들은 사랑의 열매로 꽃을 피운다.   부모나 자식, 형제나 이웃, 애인이나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때를 놓치기 전에 일상의 바쁜 손 멈추고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있을 때 잘할 걸 후회해도 때를 놓치면 소용없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뼈 아프게 깨달았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물거품이란 걸. 생각만 하고 할 뻔했던 것들은 흘러간 물이고 놓쳐 버린 파랑새다. 놓친 자의 후회는 공허한 메아리로 가슴을 후려친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작은 틈이 생기면 금세 사이가 벌어진다. 죽자 사자 사랑을 불태우던 커플도 헤어질 땐 빙하기의 팽귄처럼 털갈이하며 등을 돌인다.   급하고 먹고 칠칠치 못해서 옷에 음식을 자주 흘린다. 얼룩 지면 얼른 수건에 물 적셔 살살 문지르면 얼룩이 사라진다. 얼룩이 마르면 자국을 지우기 힘들다.   산천은 세월에 묻혀 천천히 변하지만 사람 마음은 작은 말 한마디 흔들리는 눈빛에 일순간 변한다. 때를 놓치면 많은 걸 잃는다. 사랑은 접착제다. 금이 간 도자기는 그대로 두면 언젠가 깨진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다. 대나무 꽃은 잘 피지 않는다. 100년을 지나 꽃이 피기도 한다. 대나무는 줄기가 거의 시들어갈 무렵에 꽃을 피운다. 끝간 데 없는 사랑은 매마른 땅을 대나무 숲을 만든다.   사랑은 기다림으로 바위에 상형 문자를 새긴다. 사랑은 따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믿고 보이는 그대로 사랑하고 내 속에 너를 품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사자 사랑 그대 사랑 한석봉 어머니

2025.06.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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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고슴도치 사랑의 딜레마

사랑은 독약이다. 치유할 약이 없다. 한 번 빠져 들면 물불을 안 가리고, 헤쳐 나올 길이 막막해진다. 사랑할 때는 꽃길이지만 끝이 나면 배신의 지옥불에 몸부림 친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은 찿아 헤맨다. 사랑에 빠지면 가시덤불 속에서도 손을 꼭 잡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든다.   ‘옛날에 고슴도치는 자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다람쥐와 사랑에 빠진다. 다람쥐는 고슴도치의 생김새와 가시가 싫었지만 고슴도치의 사랑이 너무 커서 다람쥐도 고슴도치를 사랑하게 된다. 고슴도치는 다람쥐를 안을 때마다 다람쥐의 몸에 베어나는 상처에 가슴이 저려 슬픔에 빠진다. 고슴도치는 다람쥐를 위해 자기 몸의 가시를 뽑기로 결심한다. 가시를 뽑으며 붉은 피가 넘쳐났지만 고통을 견디며 다람쥐를 껴안는다. 다람쥐는 더 이상 상처가 나지 않았고 가시를 뽑은 고슴도치는 다람쥐 품에서 죽는다.     ‘고슴도치와 다람쥐의 사랑’은 유래가 불분명 하지만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상처가 될까 거리를 두는 상황”을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명명한다. 인간은 서로를 요구하면서도 독립적이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지닌 모순적 존재라는 설명이다.   고슴도치는 적대감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나 천적이 나타났을 때, 몸을 숨겨야 하는 필요성이 있을 때만 가시를 곧추세운다. 고슴도치는 온 몸의 가시를 뽑지 않아도 사랑할 때만큼은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다. 가시가 돋친 생명체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겐 한없이 너그러워 지고, 친구와 우정을 나눌 때, 가족과 함께 일 때는 가시를 납작하게 만든다. 행여나 소중한 사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는 내 청춘의 로망을 담은 순정 영화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더글라스 서크 감독이 제작한 멜로와 로맨스를 적절하게 담은 전쟁 영화다. 함부로 영화관 출입을 못하던 시절, 일년에 한 두 번 단체 관람을 허락하던 학교 방침에 따라 보게 됐는데 마지막 장면은 일생동안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독일 병사 에른스트는 러시아 전선에서 고향으로 잠시 귀향한다. 고향은 폐허로 됐고 부모님은 행방불명이다. 충격에 빠져 길을 걷던 에른스트는 반나찌 혐의로 처형된 옛 스승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엘리자베스가 임신을 하고 에른스트는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전시 상황이 바뀌면서 곧바로 전선에 투입된다. 전쟁터에서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을 때, 그는 과거에 자신이 풀어주었던 게릴라 요원이 쏜 총에 맞고 쓰러진다. 에른스트가 숨을 거두고, 그의 손에서 떨어진 편지가 물 위로 흘러간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감동과 묘미는 극과 극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때문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을 대조하고 병치함으로써 소설이 줄 수 있는 극적 체험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의 꽃은 피어난다. 짓밟고 뭉개도 봄이면 푸른 잔디가 돋아나는 것처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고슴도치처럼 털을 모두 뽑아 죽음에 이를지라도, 사랑은 불꽃 속에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고슴도치 이기희 고슴도치 사랑 다람쥐 품 영화관 출입

2025.05.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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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모든 게 사랑이었어

고통과 슬픔, 환희도 사랑이었다. 만남과 이별은 시작과 끝이 속절없는 반복이 되고 상처의 흔적이 물안개처럼 앞을 가려도 사랑이 없었다면 허공에 그리는 그림이다. 그대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순간은 기적이었다. 사랑이 없었다면 꽃잎에 맺히는 새벽 이슬과 스쳐가는 바람에 서로를 묶지 않았을 것을.   가랑비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허우적거리며 구멍이 송송 난 가슴을 쓰다듬는다. 사랑으로 총 맞은 흔적은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수시로 아프다.   내 꿈은 여류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서 ‘백목련’으로 수상했는데 심사를 맡은 김춘수 시인이 대구에서 노천명 같은 시인이 될 거라고 칭찬하셨다. 시인이 못 됐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일생동안 자음과 모음을 가슴에 품고 살게 했다. 길을 잃고 흔들릴 때, 한국 방문이 쓸쓸하고 외로울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사랑으로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불러 주셨다.    믿음은 어떤 고난과 불행도 견디게 한다. 사랑은 신통력을 가진 주술처럼 심장을 뛰게 하고 자유로운 영혼 되어 성냥개비 하나로 우주를 불태운다.   운명의 물줄기는 여러 가닥으로 흐른다. 대학시절 미 문화원 원장 부인의 한국어 교사로 일 하다가 미국 독립기념파티에서 미 육군 보급사령관을 만나 결혼하고 도미했다. 너무나 엄청난,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보수적인 지역 문인들의 마른 안주로 입방아에 올리기에 충분했다. ‘주변문학’ 동인 활동을 함께 하던 동지가 내가 결혼할 즈음 간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가난한 작가의 사랑을 배신하고 부귀와 영화를 위해 백마 탄 남자’를 선택한 시나리오로 둔갑했다.     연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는 사랑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과 배신자가 등장한다. 작가 지망생의 뼈를 수장하는 문우들의 슬픔을 담은 중편소설 ‘전리’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진출한 작가는 훗날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된다. 기억조차 흐릿한 먼 옛날의 추억은 아득하고 멀지만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지상으로 내려와 반짝인다.   결혼 후 첫번째 고국여행 때다. 문단의 반항아로 찍힌 나를 측은하게(?) 여긴 선배 시인이 오늘의 작가상을 탄 신예작가 술잔치에 날 데려갔다. 순식간에 인기 문인 반열에 오른 작가가 ‘남편을 사랑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난감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위장된 정답이고 아니라면 부귀영화에 침몰한 여자가 된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지옥에서도 나를 구출해 줄, 내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남편이라면 사랑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 대답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작가와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된다.   모국어는 내 존재의 증명서다. 천국과 지옥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패스포트다. 지상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살아야 하는 지는 여태 미지수다. 살아있다는 것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단지 잊히지 않는 작은 눈짓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사랑에는 인센티브(Insentive)가 없다. 성과나 실적에 따라 보상받지 않는다. 사랑은 받은 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유통기간의 제한 없는 조건 없는 선물이다.   사랑은 무언의 자작극이다. 흉내 낼 수 없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한다.분가루를 얼굴에 바르고 비통하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별들의 아픔을 새기는 광대의 무언극이다. 사랑은 각본 없이 가면 쓰고 목숨 걸고 줄타기 하는 꼭두각시 탈춤이다.   단 한 번의 몸짓으로 막이 내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사랑 이야기 국민적 사랑 김춘수 시인

2025.05.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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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이것 저것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력해지는 날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안 구석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십 분이면 끝낼 일을 한시간이나 뒤적거리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허둥댄다. 이 일 하다가 저 일 꺼내며 갈피를 못 잡고 헷갈리며 무력해진다.     생각의 태엽이 너무 탱탱하게 감겨 오류가 발생했나. 벽시계는 매 순간 잘 돌아 가는데 일상의 태엽은 중요한 순간에 떡 가래처럼 늘어지고, 죽치고 멍청하게 허탈한 날엔 등 푸른 생선처럼 퍼덕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머리도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한 시간인가. 괜히 슬퍼지고 가슴으로 눈물이 방울져 내린다. 이런 날엔 사고의 바다에서 멸치 꺼내 육수를 우려내서 국수를 말아먹는다.   가슴 속 흐르는 눈물은 닦을 손수건이 없다. 멍 때리고 앉아 창밖을 무심히 바라본다. 매일 똑 같은 자리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인데 항상 새롭다. 하늘은 단 한차례도 같은 색의 물감을 하늘 바다에 풀지 않는다.     칠흙 같은 어둠을 헤치고 제일 먼저 어둠을 깨우는 것은 짙은 파랑색(Navy)다. 여명의 빛이 나무숲 가지 사이로 안개를 피우듯 번지기 시작하면 하늘은 청옥색 사파이어(Sapphire)에 보랏빛 자수정(Amethyst)을 수놓으며 하늘 바다로 떠오른다. 그 사이로 맑고 푸른 눈의 터키옥색(Turquoise)이 청록색의 물감을 풀어낸다. 곧이어 진홍색 빨강이 번져 나오고 비슬산 참꽃을 닮은 뜨거운 핑크색(Hot Pink)이 무지개를 그리며 한편의 오작교를 완성한다.   그 황홀함에 빠져 아무 생각도 없이 다가오는 천상의 조화에 빠져 든다. 이승에서 새겨진 상처와 고뇌, 회환과 슬픔이 흐릿한 무채색으로 번져 나간다.   존재의 살아있음을 잊어버리고 시간을 멈추고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온전한 자유로움은 창조의 원동력 된다. 움켜진 정신 줄을 내려 놓으면 경의로운 발견을 체험한다. 살아있는 존재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멍 때리다’는 영어로 ‘Space out, Zone out’으로 표현한다. 집중력을 잃고 멍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멍하게 있거나 무의미하게 어떤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상태를 말한다.   2025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서울에서 열려 80팀, 총 126명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2016년 시작됐는데 매년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다. 참가자는 90분 동안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고 ‘멍 때리기’를 가장 잘한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참가자들은 심박 측정기를 착용하고 15분마다 측정된 심박수와 시민 투표로 점수를 받는다. CNN은 “한국의 초경쟁 사회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처”라고 평가했다.   돌덩이처럼 무겁게 하늘과 땅이 가라앉는 날, 너를 지우고 나를 잊어버리는 시간은 엄마가 무릎에 발라주던 아까징끼처럼 굳은 살이 박혀 치유의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든, 일상의 짐 내려놓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 날, 영혼도 무거운 옷 벗고 맑은 폭포수에 목욕 하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진다.   이유도 없이 울컥 울고 싶은 아침,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망각의 강을 건너는 시간은 영혼의 조용한 반란이다.   속박과 억눌린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놓아주는 시간은 자유와 해방으로 창조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하늘 바다 청옥색 사파이어 보랏빛 자수정

2025.05.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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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 비비며 사는 곳이 나의 지표

새 봄이 진짜 왔다. 무섭도록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반짝이는 햇살이 따스하다. 조석으로 앙칼진 싸늘한 기운이 돌지만 햇볕은 단단한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천둥 치고 폭설이 내리던 추위에도 모질게 견뎌낸 나무와 풀잎들은 작은 손을 내밀고 기지개를 켠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것들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들은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꽃잎은 서로 얼굴을 비비고 가지는 작은 잎을 손 끝에 매달고 여린 악수를 한다. 아마 작은 휘파람 소리로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바람은 휘몰아 치며 무섭게 소리 지른다. 꽃잎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나뭇가지 꺾어 내동댕이 친다. 산들바람은 그대 창가에 기웃거리다가 장난끼가 발동하면 분홍빛 새아씨의 두 볼을 툭툭 치며 달아나기도 한다.   온 동네가 왁자지껄 하다. 적막강산이던 이웃들이 야단 법석이다. 아이들이 타는 롤러스케이트와 스쿠터 밟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모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 사람사는 소리가 넘쳐난다. 제일 시끄러운 건 잔디 깎는 소리다. 가스 넣어 자체 잔디 깎는 기계를 사용했는데 새로 이사 온 집은 뒷마당이 넓어서 Riding lawn mower를 구입했다.   잦은 소낙비로 잔디를 못 깎다가 주말에 햇빛만 나면 온 동네가 잔디 깎는 소리로 귀가 아플 정도다. 옆집 아저씨는 귀마개 끼고 멋진 선글라스 쓰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긴 부츠를 신고 작업에 몰두한다. 키 작은 우리집 정원사 아저씨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요리 조리 운전을 잘 해서 순식간에 해치운다.   30년이 넘게 살던 옛집은 처음에는 동네 애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대학 졸업하고 결혼 하고부터 일년에 몇 차례 공휴일 때만 귀향(?)해서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됐다. 할로윈 때는 백명 가까운 아이들이 별의별 변장을 하고 축제를 벌여 뒷마당 잔디밭을 쑥대밭으로 망가트렸는데 그 때가 정말 그립다.   상큼한 풀 냄새가 진동하는 새 동네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현관 문을 닫아도 아이들 웃음소리, 앞집 꼬마가 타는 세발 자전거 페달 소리, 담장에 골대 쳐 놓고 두 아들에게 풋볼 연습시키며 땀 뻘뻘 흘리는 뒷집 남자 팔뚝은 싱싱한 활어처럼 듬직하다. 옆집의 귀염동이 하얗고 반짝이는 멋진 털을 뽐내는 그레이스 양은 백수로 왔다 갔다 하는 날 꼬시려고 프리스비(frisbee)를 물고 와서 같이 놀자고 꼬리 흔든다. 완벽하고 멋진 봄날! 즐거운 비명 소리가 동네에서 터져 나온다.   죽은 것, 생명 없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체 황급히 길을 떠난다. 밤이면 또 다시 다가올 어둠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별이 쏟아지는 연못가 언덕에서 그리움 담은 엽서를 띄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중략)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항해(航海, navigation)나 위치 찾기(orientation)는 목표를 향하여 이동하는 상태나 능력, 그런 과정이다. 개미는 특정 냄새가 나는 페로몬을 길 위에 분비해 다른 개미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길을 찿는다. 철새는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자 단백질인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을 뇌와 망막에 가지고 있어 이동주기를 결정하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동물도 끼리끼리 모여 산다. 새들은 군단을 이루며 난다. 봄 향기와 사람 냄새에 취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나의 지표라는 생각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뒷마당 잔디밭 아이들 웃음소리 휘파람 소리

2025.05.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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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우정으로 맺은 선택 받은 자매들    가족도 아닌, 피를 나눈 형제 자매도 아닌데 형제 자매보다 더 소중한 친구를 가진 사람 이야기다.     윈드 화랑의 고객 리스트에 첫번째로 꼽히는 Huber 여사는 남편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대궐 같은 집에서 검정색 털이 비단처럼 빛나는 개 두 마리와 산다. 미스 오하이오 출신인 여사는 잘록한 허리와 세련된 몸매, 한 올 흐트러짐 없는 금발 웨이브가 아름답다. 내가 사는 이웃 동네 이름이 ‘Huber Height’인데 땅 부자인 휴버씨 이름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화랑에는 두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는 고객의 개인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유출하지 않는다. 둘째는 고객은 오로지 고객일 뿐 친분(친구 포함)을 쌓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화랑 앞 파킹랏에 차를 세우면 우선 고객이 타고 온 승용차부터 살핀다. 화랑에 들어오면 고객의 시선이 멈추는 작품에 집중한다.     여사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작품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러시아 출신으로 토론토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Figure Painting의 대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Anna Razumovsky의 작품들이다.   여사는 새집을 짓는 중이라며 대저택에 소장할 작품 의뢰를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여자의 눈은 반짝였지만 슬퍼 보였다.   안나의 작품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낭만적이고 구상적인 작품은 전통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우아함을 포착한다. 안나의 매혹적인 인물들은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아우라를 가지는데 루벤스나 렘브란트와 같은 옛 거장들과 나란히 배치하여도 손색이 없다. 역동적인 기법과 작품의 표현적인 자유로움과 관능미는 신선하게 현대적이며 남녀 간의 사랑과 아름다움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흰 대리석으로 장식한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새 집을 직원들은 ‘작은 베르사유(Little Versailles)라고 불렀다. 집을 완공하는데 5년이 걸렸고 화랑에서 작품을 주문하고 위탁 주문(Consignment)까지 하는데 3년이 소요됐다. 고객으로부터 특별히 주문 받아 제작하는 ‘Consigning Artwork’는 딜러에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화가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고객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조하는 일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첫 작품인 여사의 초상화를 중세 여신처럼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화가를 초청해 모델과 이틀 동안 식사하고 소통하며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문제는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여인이 마주 보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인데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하는 친구라며 타이틀은 ‘선택 받은 자매들(Chosen Sisters)’이라고 했다. 피를 나눈 자매는 아니지만 친자매로 선택한 친구라고 설명했다. 스케치를 위한 사진 촬영에서 만난 친구는 조용하고 평범한 분이었다. 피를 깎는 노력으로 작품은 완성된다. 참된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곁에만 있어도 힘이 되고 말없이 위로가 되는 사람이다.   3년 동안 함께 미술작품을 수집하며 조금씩 여사에 대해 알게 됐다. 날씨가 좋은 날은 화랑에 들리는데 초콜릿을 좋아해서 화랑의 상비품목이 됐다. 재산이 많은 것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다. 자선 단체들은 후원금을 더 받기 위해 전용 비행기를 보낸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와 프로포즈 받은 순간들, 투병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맺힌다.     ‘벗이 없으면 이 세계는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 생각난다. 재물과 명예가 인간의 삶에 위로와 축복이 되지 않는다. 길을 잃고 목이 말라 허덕일 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우정을 나눌 한사람만 있으면 인생은 선택 받은 사람들 속에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형제 자매도 작품 활동 작품 의뢰

2025.04.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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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젖어 있는 것이 하늘뿐이랴. 슬픈 것들은 젖어 있다. 하늘과 땅이 흐느끼는 동안 나무는 온 몸을 떨며 가지마다 눈물 방울을 매달고 풀잎은 땅 속에 머리 파묻고 눈물로 대지를 적신다. 슬픔을 견딜 수 없을 때는 구름은 천둥 번개로 심장을 찢는다.   혼자일 때는 잘 견디며 버티다가 누가 곁에서 달래면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슬픔은 사랑처럼 공유하면 부피가 커진다.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간다.   어릴 적 천방지축으로 잘 넘어져 무릎 성할 날이 없었다. 곁에 아무도 없으면 벌떡 일어나 흙을 털고 집으로 갔다. 멀리서 ‘밥 먹어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땅바닥에 코를 박고 아픈 시늉을 했다. 어머니 약손이 긁힌 자국의 흙을 털어내고 호호 불어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이젠 아무도 내 상처에 입김을 불어주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도 긴 파노라마다. 변화와 굴곡이 많고 감동과 좌절, 반전과 역전이 끝없이 펼쳐진다. 인생의 파노라마는 한 번 지나면 재생이 불가능한 지극히 개인적인 필름이다.   파노라마(Panorama)는 본래 큰 전망이라는 뜻이다. 전체 경치 중에서도 360° 방향의 모든 경치를 담아내는 기법이나 장치, 그렇게 담아 낸 사진이나 그림을 의미한다. 전경(全景)은 180°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를 말하고 환경(環景)은 360°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파노라마는 둥근 모양의 건물 안의 벽에 전방위(全方位)로 풍경화를 그려 넣어 마치 그 건물 안에서 실제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파노라마로 남는다. 딸 대학 졸업 기념으로 떠난 파리 여행은 추억의 창고에 영원히 살아 숨쉬며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 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등을 딸과 손잡고 관람한 아름다운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추억의 창고에 보석처럼 빛난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1840-1926) 앞에서 딸은 한동안 망부석처럼 숨도 쉬지 못한 체 서 있었다. 1920년 프랑스 정부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한 쌍의 타원형 전시실을 마련해 모네의 수련 벽화 8점을 상설 전시했다. 전시실은 모네가 죽은 지 몇 달 뒤인 1927년 5월 16일 대중에 처음 공개된다. 1999년에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 특별전을 기획하여, 전세계 60여점의 수련 그림이 한 자리에 전시되었다. 지베르니의 모네 생가에 있는 수련 정원을 그린 그림으로 1890년대부터 1920년대 까지 30여년 간 오랜 세월 동안 그린 작품이다.     작품 중 대다수는 모네가 백내장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내장 수술 후에도 모네는 시력이 감퇴돼 색깔 분별이 어려워지고 두 눈으로 동시에 볼 수 없게 된다. 사물이 왜곡되어 보였지만 모네는 죽는 날까지 빛을 그리는 화가로 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울보’였다. 눈물 샘이 잘 발달된 탓인지 작은 바람, 꽃 향기에도 눈물을 흘렸다. 일 년에 한 두 번 시골 마을의 천막 친 가설 극장에서 흑백영화가 상영되면 동네 어른들 손잡고 공짜로 입장했다. 앞자리에 앉아 ‘유정천리’를 보며 눈물이 뒤범벅이 돼 울고 있으면 “눈꼽만한 것이 뭘 알고 우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이젠 잘 울지 않는다. 울지 않고 견딘다. 아파도 눈물을 삼키는 법을 터득했다. 나이 들면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슬픔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눈물샘은 울지 않는다.   인생이란 한 편의 파노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꼬꾸라지면 풀잎이라도 잡고 일어나 슬픔에 길든 눈물 지우고, 그리움이 새겨진 엽서 한 장 그대 창가에 띄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눈물샘 달래면 눈물 눈물 방울 클로드 모네

2025.04.2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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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뼈와 흙의 대결

뼈와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백전백패 뼈가 이긴다. 흙은 던지면 흩어지지만 뼈는 여간해서 부스러지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힘으로 하면 남자가 이길 것 같지만 끝까지 가면 여자가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남자가 호랑이 가죽 뒤집어쓴 동물이라면 여자는 꼬리 열 개 달린 여우라서 대적이 불가능하다.   후배 한 사람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아내 맘을 알 수 없다면서 어떻게 하면 아내를 이길 수 있는지 고민했다. 결론은 간결하다. ‘무조건 져라. 항복 선언해라. 그러면 가정과 자식, 부모 형제, 이웃과 친구들, 삼대가 평온해진다’고 답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여자는 마음이 한 번 틀어지면 원한을 품고 독하기 그지없다. 불똥이 튀기 전에 평화조약 맺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부부 싸움은 고대부터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가정의 여신 헤라는 파뿌리가 하얗게 되도록 부부 싸움을 했다. 신들은 선악의 개념 없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제우스는 무녀의 딸 이오에게 흑심을 품어 겁탈한 뒤 증거 인멸을 위해 암소로 둔갑시킨다. 제우스가 바람 피운 사실을 눈치챈 부인 헤라는 암소를 자신에게 달라고 한 뒤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에게 감시 임무를 맡긴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를 잠재워 죽인 뒤 이오를 구출해낸다.   ‘헤르메스와 아르고스(드레스덴 미술박물관, 1635~1638)’에는 헤르메스의 피리 소리에 잠든 아리고스 옆에 암소가 된 이오가 처량한 눈으로 보고 있다. 루벤스는 불륜과 부도덕으로 가득 찬 신들의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했다. 그리스 신화가 매혹적인 이유는 욕망과 힘의 논리가 지배한 인간세계의 원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창세기 7장)’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21장)’ 흙과 뼈로 된 인간이 인류 최초의 가정을 만드는 장면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원리를 추정해 볼 단서다.   여자와 남자는 선천적으로 다르다. 서로 타협하기 힘들다. 부부간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남자가 목숨 거는 건 자존심이고 여자는 사랑이다. 여자에게 사랑이 없으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악착 같고 치밀하다. 자존심은 타협으로 보수가 가능하지만 사랑은 파장이 광대하고 자기 중심적이라서 대처하기 불가능하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게 태어난다. 죽었다 깨어나도 남자는 여자를 알지 못한다. 여자는 외출할 때 몇시간 전부터 야단법석을 떨지만 남자는 약속시간 될 때까지 컴퓨터만 한다. 철이 바뀌면 여자는 옷이 가득한 옷장을 보며 입을 옷이 없다고 한다. 남자는 텅 빈 옷장을 보고 입을 게 거뜬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말로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여 주길 바라지만 남자는 말 안 해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기가 마지막 사랑이길 원하지만 남자는 자기가 첫사랑이길 바란다. 여자가 용의주도 하고 남자가 천진난만 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자는 비정상적 인간의 정상화 방법을 탐구한다. 하늘 향해 침 뱉으면 내 얼굴만 더러워진다. 아담이 갈비대로 만든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으니 남자가 여자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여자를 알려고 노력하지 하지 말라. 이해 불가능해도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여자는 뼈를 깍는 아픔을 견디며 흙으로 믿음의 반석을 세운다. (작가,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가면 여자 여호와 하나님 그리스 신화

2025.04.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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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늪에서 헤어나려면

덫에 걸리면 꼼짝 못한다.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들다. 늪도 마찬가지다. 늪에 빠지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숙이 빠진다. 늪지대는 한번 푹 빠지면 중력에 의해 점토나 모래가 몸과 압착돼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늪’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빠져 들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위협하는 경지를 ‘늪에 빠지다’라고 한다. ‘도박의 늪’, ‘사채의 늪’, ‘유혹의 늪’ 등등 매우 부정적인 단어라서 ‘늪’이란 말은 이미 답이 없다는 뜻이 된다.   살면서 실수나 부주의로 늪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눈 부릅뜨고 살면서 늪에 빠지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 과욕의 끝은 파산이다.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능가하는 과욕은 파멸의 길을 간다.   ‘대박’과 ‘쪽박’은 한 끗 차이다. 한쪽은 웃고 다른 한쪽은 울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은 성공했던 실패했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점이다. 대박 나면 행운의 여신을 믿고 다시 배팅 해서 본전까지 날린다. 쪽박 찬 사람은 자기도 행운이 올 것 같은 조짐에 비비대기로 발목 잡혀 결국 알거지가 된다.   피테르 브뢰헬의 그림 ‘사순절과 사육제의 싸움’(1559, 판넬에 오일, 118cmx164cm, 빈 미술관 소장)’은 두 개의 구도로 나누어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결 양상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사순절(Lent)은 부활절을 앞두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겪은 고난에 감사하며 경건과 절제로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카니발Carnival)의 어원인 사육제(謝肉祭)는 고난 기간인 사순절을 맞이하기 전 인간 본능에 맞춰 마음껏 고기 먹고 한바탕 놀자는 축제다.   작품에는 200여명이 등장하는데 왼쪽은 술집 식당 여인숙, 오른쪽에는 교회가 보인다. 방탕한 축제 행렬과 경건, 속죄, 자선, 금식의 행렬이 그림 앞 가운데에서 마주친다. 사육제를 의인화한 인물은 돼지머리와 소시지, 닭들이 꽂혀 있는 꼬치를 들고 술통 위에 앉아 있다. 오른쪽 사순절을 상징하는 수레에는 나무 의자에 앉은 빼빼 마른 여인을 신부와 수녀가 힘들게 끈다. 이마에 재로 십지가를 그린 아이들과 불구자가 뒤 따르고 거지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다.   브뢰헬은 이 그림을 통해 종교적 관행에 매몰된 채 사회와 유리된 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순절의 고행을 억지로 따르거나, 반대로 사육제에서 방탕하게 즐기는 신구교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맹목적인 절기 준수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작품은 말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에서 벗어나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간구하는 사순절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내 금식은 삼 일을 넘기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흔들린다. 위선과 탐욕의 허울을 벗지 못하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세상의 부정한 것들을 위해 TV 금식, 핸드폰 금식도 생겼다니 약간의 변명이 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는 좋아하는 주기도문이다.     몸과 마음이 늪에 빠진 것처럼 생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위로를 준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사순절과 사육제 오른쪽 사순절 축제 행렬

2025.04.0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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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자유가 충만케 하리라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 받지 않고 무시 당한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구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 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 먹을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 먹고 나이태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 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 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찿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닥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 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였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들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 하지 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 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 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날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남편 자식 editions 대표 좌절 행복

2025.04.0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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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있으면 다시 만나리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 하네/ 벌겋게 힘들어 하네/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하얀 구름 한 조각/ 여보게 우리 쉬었다 가세/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가면 어때 저 세월 가면 어때 이 청춘’-‘나훈아 작사 작곡 노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조각’은 2006년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나훈아 특유의 감성적인 목소리가 시적인 가사와 어우려져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흐름을 슬프고 애잔한 곡조로 가슴 저미게 한다.   오랫만에 조국땅을 밟는다. 고향땅이라고 부르기엔 북극성보다 아득히 먼 곳을 헤메다 돌아온 느낌이다. 모두 떠나버린 부둣가에서 가슴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뱃고동 소리는 세 차례 울린다고 한다. 떠나는 배에서 들려오는 첫 소리는 잘 있으라는 작별의 뜻이고 두 번째는 잘 다녀오라는 안녕을 기원하는 고동 소리다. 세 번째 뱃고동 소리는 재회를 약속하는 다짐이다.   재회의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비행기가 끝없는 허공을 날 때도 금의환향 돌아올 모습을 생각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과 다정했던 사람들과 작별해도 울지 않았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낮선 땅 어눌한 언어로 부딫히는 일상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절망하지 않았다. 돌아가야 할 내 땅, 고향이 있는 나의 뿌리는 단단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깊고 맑은 우물과 봄이면 천지를 뒤덮는 비슬산 참꽃, 툇마루에 걸터 앉아 찔레꽃 향기에 스르르 잠이 들면 들 일을 나간 삼만이 아재가 샛노란 고들배기꽃과 아기똥풀 엮어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었다.   나는 가난한 나라의 공주였다. 비록 멋진 옷과 화려한 치장이 없어도 공주는 울지 않는다. 빌 붙지 않으며 낮은 것과 타협하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다.   세월은 믿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바람에 날려 버린다. 원점으로 되돌리지 않는다.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내 땅과 남의 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랑과 미움이 엇박자가 되면서 악함과 선함, 진실과 거짓이 분간하기 힘든 형국으로 바뀐다.   서울에 가면 택시를 즐겨 탄다. 택시 기사는 한국 정세를 밝히는 민중의 지팡이다. 신문 방송 볼 필요 없다. 현실의 맥을 잡는 살아 숨쉬는 생방송 뉴스다.   우리 국민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두뇌가 명석하고 창의력과 손재주가 탁월한데 얼빠진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곤경에 처한다는데 전적으로 합의 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600달러를 기록해 세계 6위를 유지했다.   독불장군은 외롭다. 자기 고집대로 행동한다. 군중 속에 파묻혀 살면서 늘 외로웠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 싸웠다.   회의 참석이나 사업 관계로 한국을 방문할 때도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시간에 쪼들려 만나기 힘들었다. 조금 벌어지면 점차 사이가 금이 간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난다. 노을 베고 누운 구름처럼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다가 바람이 머무는 곳에 둥지 튼다. 떠나간 사람은 잊었지만 남은 자는 흔적을 품는다. 긴 세월의 떼를 벗고 고교 동창생이 살갑게 일정을 챙겨준다.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만난 동무처럼 낯설지 않다. 흘러간 시간은 재생이 불가해도 추억의 필름 속에 세월 베고 누운 구름 한 조각 떠오르지 않을까.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 하기 전에 소녀처럼 까르르 웃을 만남을 기다린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세월 가면 구름 한조각 뱃고동 소리

2025.03.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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