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정직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지 못한다. 외국어가 힘든 건 숨은 뜻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리랑’ 타이틀로 월드 투어 중인 BTS 콘서트는 파리에서 8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에 9만2,000명이 운집해 역대 최대 관객 기록을 갱신했다.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쇼를 시작으로, 월드투어 북미 여정은 매진 기록을 세우며 약 84만 관객들이 한마음으로 아리랑을 떼창 했다.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가 2027년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 부문을 처음으로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시아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그래미 무대에서 다양한 음악을 조명하려는 변화로 볼 수 있다. BTS 일곱 멤버는 같은 성명을 공유했다. “저희는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어 BTS는 다음 같은 뜻을 전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I hope that music can be heard and loved for what it is, rather than being divided by region or language).” 품격 있고 정중한 사양(Decline)은 칼보다 예리하다. 말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상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음악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방식에 대한 BTS의 도전이다. “For what it is”는 음악을 만든 국가나 사용된 언어가 아니라, 음악 자체가 가진 가치를 평가해 달라는 주문이다. ‘rather than’은 ‘‘~하기보다는’라는 뜻이다. ‘Best Asian Pop Music’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지역 논쟁을 염두에 둔 탁월한 지적이다. 보이콧 하루 만에 논란이 커지자 그래미 CEO는 공식 해명을 했다. “아시아 팝 부분은 아시아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탁월성을 위해 신설됐다”며 오해라고 강조했다. 팬들은 아시아 아티스트에게 ‘인종적 장벽’을 적용한다고 격분했고 글로벌 매체들도 일제히 방탄소년단을 지지했다. <<〈미국 유명 매거진 코스모폴리탄은 출품을 거부한 BTS의 용기 있는 선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방탄소년단의 결정은 부드럽지만 뼈 있는 강렬한 비판이라고 극찬했다.〉>> 말에도 뼈가 있다. 뼈 속에 살이 있고 그 속에 숨어있는 뜻이 진실이다. 빌보드는 BTS가 빠진 그래미가 어마 무시한 글로벌 시청자층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달에 여러 번 울었다. 여름에 다니러 온 손주들이 BTS ‘아리랑’을 멋지게 따라 불렀다. 눈물이 났다. 두 번째는 전 세계 팬들이 태극기 흔들며 아리랑 부를 때다. 애들 몰래 깜짝 선물로 앞자리에 BTS 뉴저지 콘서트 티켓을 샀다고 딸이 귀띔했다. “앞자리는 너무 비쌀 텐데…” 실언?이 튀어나왔다. “우리 애들은 한국사람입니다. 할머니 아빠 엄마 모두 한국사람! 한국인 정체성을 찾게 해야 돼요.” 눈물을 훔쳤다. ‘걔넨 몰라’로 가사를 바꾼 ‘에일리언스’를 부를 때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어쩜 그래 뻔뻔하기도. 예의를 차려 우린 이방인이야. 해는 동쪽에서 뜨지. 우린 이방인.” BTS의 북미투어에는 ‘예술엔 이방인이 없다’는 팬들의 메시지가 함께 울렸 퍼졌다. 대형 빌보드에 열렬 관중들 모습이 등장했다. 눈에 익은 두 아이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TV 돌려 확인하니 내 새끼들이 분명했다. 세계 인파들이 지켜보는 BTS콘서트 Billboard 영상에 손주들이 등장하다니! 눈물은 묵은 때와 슬픔을 닦아준다. 뿌리가 지축으로 깊이 스며들면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황혼의 꽃밭에서 내 인생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남아 있구나!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아시아 아티스트 음악 퍼포먼스 그래미 어워드
2026.08.04. 14:21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일기 중 부분이다.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축복이다. 6살 때 소아마비로 프리다는 평생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게 된다. 1925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해 철근이 척추와 자궁을 관통하는 부상을 당한다. 왼쪽 다리 11곳과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발이 탈골돼 요추, 골반, 쇄골 등이 골절된다. 이 사고로 세 차례의 유산과 척추 등 수많은 수술을 받았고 평생 하반신 장애로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생을 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지대가 없이는 몸을 가누기 어려워 칼로는 침대 위에 거울을 달고 자기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없는 세계가 좁아질수록 깊이 있는 창작의 세계가 펼쳐졌다.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끝없는 불륜과 외도는 프리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신체적 장애와 남편의 사생활이 주는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프리다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반복된 고통과 절망은 수많은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다. 망가진 몸, 배신의 사랑, 삶은 그녀를 무너뜨렸지만 프리다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얼굴에 남은 고통과 분노와 상처를 그림으로 남겼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세계는 ‘초현실주의’와 ‘멕시코’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짙은 갈매기 눈썹, 강렬한 눈빛, 육감적인 붉은 입술, 화려한 멕시코 의상으로 인기가 많았다. 프리다가 남긴 작품은 화려한 그림 몇 점이 아니다. 어떤 잔혹한 비극도 인간 존재의 주도권까지 빼앗아갈 수 없다는 생명의 선언이다. 프리다의 작품은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의 전통 문화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 뿐이다”라며 초현실주의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고 알려진다. 디에고 리베라는 생전에는 멕시코 미술계의 거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후에는 프라다의 남편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정부는 프리다의 모든 작품을 국보로 지정했다. 디에고는 프리다가 죽은 후 3년 4개월 뒤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한다. 죽기 전 화장되어 프리다 곁에 있고 싶어했지만 그 유언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생 만세! (Viva la Vida)’ 죽기 8일 전 프리다가 완성한 마지막 그림 제목이다. 교통사고로 척추에 철심을 박고 35번 수술로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던 프라다는 자신은 병이 난 게 아니라 ‘부서졌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자화상은 섬뜩하다. 가시 목걸이에 찔려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절망과 고통으로 삶이 지옥 그 자체라 해도 프리다 칼로에게 예술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사는 것이 고난과 상처, 영광과 부귀라 해도, 때가 오면 모든 걸 내려 놓고 하향곡선 따라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외롭고 우울한 인생을 다듬고 견디는 힘은 내 속에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 외친다.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이 고통을 견디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 친구를 떠나보내고, 끝없는 아픔과 그리움을 삭이며 남은 발자국 따라 생의 마지막 길을 허둥대며 산다. 하루가 끝나는 순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꽃 길을 걸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가시밭길을 맨발로 묵묵히 견디는 인생도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남은 시간을 견디는 힘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멕시코 초현실주의 프리다 칼로 멕시코 민중벽화
2026.07.28. 15:51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 울 엄니 명언이다. 가뭄이 계속되면 농부들의 가슴은 마른 장작처럼 바짝 타들어 간다. 논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면 어머니는 잣나무 아래 장독대에 정한수 떠 놓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삼만이 아재는 누렁이를 앞세우고 밭에 나가 비를 기다렸다.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자 없게 하라.’ 경주 최부자댁 실천 대훈(大訓)이다. 비는 목숨줄이다. 흉년이 계속되면 끼니를 굶는 사람이 많아진다. 어릴 적 입이 짧아 음식을 가려 먹었다. 어머니는 숟갈에 반찬을 얹어 먹였다. 밥을 삼킬 때마다 기뻐하시던 모습! 지금은 안 좋아하는 음식 없고, 못 먹는 것 없는 먹방 돼지다. 이번 여름은 혹독하다. 일 주일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살인적인 폭염(暴炎, Heat Wave)에 습도까지 시너지를 이루며 외출을 자제하라는 경고까지 발생했다. 더우면 에어컨 틀고 밖에 안 나가면 된다. 문제는 텃밭의 채소와 가지 각색으로 핀 꽃들. 아기 주먹보다 작은 과일을 가지에 매달고 숨막히는 더위를 견디는 목마른 나무들! ‘Alexa’에게 매일 수십 번 “오늘 언제 비가 오나요”라고 물었다. 성화에 짜증이 나는지 “일기 예보에 무척 관심이 많으시군요”, 엉뚱하게 대답한다. 비를 기다려는 이유는 또 있다. 사월은 한 달 봄비가 내렸다.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집 대문 앞에 높게 자란 나무 잘라야 될 것 같아.” 옆집 호위무사 브라이언과 경호대장 존이 “나무가 문 앞을 막아 나쁜 사람이 문 열려고 하면 우리가 볼 수 없어요.” 걱정했다. 경호원(?) 염려에 눈물이 핑 돈다. 모르면 괜찮은데 알고 나니 걱정된다. 당장 실천 모드! 키 큰 나무 안 죽이고 옮기려고 비 내리는 날을 학수고대 기다렸다. 드디어 대장정의 날. 정원사와 집사 할배, 이웃사촌들이 뭉쳐 큰 나무를 뒷마당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으로 변신, 폭염에 매일 물 주고 쓰다듬는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은 이상의 ‘날개’ 도입 부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젊은 느티나무는 여고생 숙희가 어머니가 재혼해 비 혈연인 오빠가 된 현규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청춘남녀의 사랑은 숙희에게 현규는 절대로 오빠가 될 수 없다는 젊음으로 항거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생명력이며 미래다. 어떠한 제도도 이 생명력의 몸부림을 제어할 수 없다. 현규와 숙희는 사랑으로 무섭게 뻗어 오르는 젊디 젊은 느티나무다. “편지를 거기 둔 건 나 읽으라는 친절인가?”라는 문장은 이 소설 최고의 명대사다. 숙희는 시골에 내려온 뒤 뒷산에 올라가 혼자서 견디는 시간을 갖는다. 그곳에는 ‘젊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지만 푸르고 싱싱하게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나무. 숙희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현규의 사랑과 삶에 대한 불안과 슬픔을 곱씹는다. 느티나무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진 젊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예부터 오래된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가지가 넓게 퍼지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그늘이 깊어 팽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정자나무로 불린다. ‘그대가 기억조차 하지 않아도. 나는 늘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도 느티나무는 낮은 목소리로 그 자리를 지킨다. 사는 것이, 목 마른 나무처럼 허기지고 메말라도, 그대가 떠난 청춘의 날들은 마른 잎새로 남아 그리움의 강을 건너 내일로 흘러간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 팽나무 은행나무
2026.07.21. 13:58
나를 섬기지 않으면 아무도 날 안 챙긴다. ‘집에서 새는 박은 밖에서도 샌다.’ 무학 출신 울 엄니 김해연 여사 개똥철학이다. 어머니는 보물처럼 딸을 아끼셨다. 아낙들은 “집안 일 하나도 안 가르치고, 시집은 우째 보낼라 카노”라며 걱정하는 척 말한다. 생활의 달인이 밀릴 소냐! “코나 흘리고, 공부 못하는 당신 딸 건사나 잘 하소. 내 딸은 남의 머리에 든 글도 잘 깨우치는데, 그깟 살림 못 배우겠소.”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 내 평생 목표는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뒷배가 있으면 마음이 푸근하다. 살면서,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니편 내편 안 가리고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어릴 적 멍 때리며 걷다가 잘 넘어졌다.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엎어져 멀리 엄마가 보고 있으면 엄살 부리며 크게 울었다. 엄마가 안 보이면 툴 툴 털고 일어났다. 자식들이 출가해 믿을 구석도 줄었다. 찐하게 내 편이 돼 줄 뒷배조차 오리무중이다. 여름방학 맞아 뉴저지 사는 딸과 사위, 손자 손녀들이 다녀갔다. ‘손님과 생선은 3일이 지나면 냄새가 난다’를 교양 있게(?) 견디며 일주일 동안 잘 버텨내는데 성공했다.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친구 말은 정설이다. 7살, 9살 된 손주들이 얼마나 설쳐대는지 정신이 혼미했다. 문제는 아이들 언어를 잘 알지 못하는데 있다. 그 뿐이랴! 매일 할머니 미술 학교 운영하며 그림 공부 가르치느라 녹초가 됐다. 2년 전 손주 넷으로부터 무보수 주문(Consignment)을 받았다. 다행히 아들 집 손녀들은 무지개와 바다, 나비를 주문했다. 공짜로 즉각 진품(Original)을 그려 보냈다. 문제는 별난(?) 딸 자식들! 손녀는 ‘북극광 오로라 (Nothern lights)’를 주문했다. 노르웨이 갔을 때 잠시 본 적이 있지만 기억이 묘연하다. 7살 손자 주문은 피를 말린다. 구름 떠도는 하늘, 해변의 Plam Tree, 바다 거북이. 본 적 없는 거북이를 그려 달라니? “크리스 애들 그림은 보내고 우리 애들 그림은요?” 까딱하다 가족 분쟁이 생길 조짐이다. 3일동안 거북이 그리는 연습을 했다. 애들이 도착하기 전 후다닥 공짜 주문을 완성했다. 손주가 거북이를 고양이 같다고 하면 망신살. “할머니 진짜 유명한 화가네.” 인증 샷! 팔은 안으로 굽는다. 뒤로 재끼면 부러진다. 가족은 같은 쪽으로 한 배를 타야 항해가 수월하다. 출가한 자식은 남이다. 내 속에서 나왔어도 남의 아내요 타인의 남편이다. 나이 들고 철 안 들면 망신이다. 어린애들이 미끄럼 틀에서 구르면 귀엽다. 할머니가 놀이터에서 넘어지면 주책이다. 사려 깊고 용감하며 쿨 하게 살아야 사랑받는다. 홀로서기에 충실하며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 존경받는다. 과도한 간섭은 서로의 신뢰를 무너트린다. 나는 여태 자녀들 배우자의 직장과 직책, 월급을 묻지 않는다. 알콩 달콩 다정하게 사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행복하다. “우리집 근처로 이사 와요. 애들도 할머니 좋아하고. 나이 드시면 내가 돌봐야 하니까.” 딸 말에 간이 툭 떨어진다. 내가 벌써 그렇게 늙었나? 아직까지 이팔청춘인데. 딸은 동부 끝, 아들은 서부 끝 샌디에이고에 살아 견우 직녀처럼 명절에 식구가 뭉친다. 하루 두 끼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하고 걷기도 매일 한다.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건강하게 살다 편하게 죽기 위해서다. 건강식 챙겨 먹고 7시간 잠 푹 자고 스트레스 안 받고,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즐기며 산다. 옷장을 정리하듯, 불필요한 인연의 끈을 자르면 사는 것이 살갑고 편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필살기로 나홀로 살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목숨 걸고 화이팅!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필살기 손주가 거북이 하늘 해변 손자 주문
2026.07.14. 12:35
살아서는 배고프고 죽어서 빛을 보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다. 화가, 작가, 음악가 등 예술가는 춥고 배고픈 현실을 견딘다. 대부분 죽어서도 빛을 보지 못한다. 암울한 시대의 불확실성을 견디며 청춘의 열기로 ‘주변문학 동우회’가 결성됐다. 가난한 지방 출신 초년병들은 대동강 막걸리 집에서 외상으로 술을 퍼 마셨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도 교사 이재형 시인이 제일 먼저 청춘 시절에 생을 마감했다. ‘보경이의 비행기에는 프로펠러가 없었다’는 시는 절망의 바다를 헤엄쳤다. 동우회 회장 김원도가 동인지 1호를 남기고 복수가 차 올라 죽었다. 원도는 끼니를 굶었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문학을 위해 가난하게 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Mark Rothko의 ‘Black over Reds’ 그림을 복사한 ‘주변문학’ 동인지는 누렇게 빛 바랜 얼룩으로 세월을 견딘다. 고등학생으로 얼굴을 비친 후배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됐다.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향연 88세로 별세했다. 생존 작가 낙찰가 신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그림은 ‘예술가의 초상-두 명의 인물이 있는 수영장’(Portrait of an Artist - Pool with Two Figures, 1972)이다. 2018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약 1,019억 원)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호크니는 “그림은 감상자에게 시각적 쾌감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본질에 충실한 화가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인물과, 물 밖에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인물의 대비가 압도적인 미학적 완성도를 선사한다. 빈센트 고흐는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고 했다. 고흐가 살아 생전 판 그림은 단 한 점 ‘붉은 포도밭’ 뿐이다. 전적인 생활비를 동생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이 위대한 화가는 때때로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했다. 국내 미술품 중 최고가 작품은 김환기의 ‘우주’(1971)’다. “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파리 유학 경비 마련하기 위해 그림을 팔려고 했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반세기 후 자신의 그림이 한국 미술품 중 가장 잘 팔리는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은 생전에는 인정 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대표작 ‘황소’가 사후에 고가로 판매돼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되기도 한다. 박수근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사후에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사랑받는다. 김환기와 더불어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다. 박수근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빨래터’ 등 한국적인 주제를 소박한 서민의 감각으로 충실하게 표현해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서민적인 한국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괴테는 독일문학 고전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괴테를 존경했다.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괴테를 평가했다. 출판된 괴테의 서적을 모두 소장하고 괴테의 흉상까지도 자택에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다. “예술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그래서 예술가는 평범한 것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을 시작하는 동안에 그는 이미 고상해진다.” 괴테의 명언이다. 짧은 인생동안 고귀하고 고상하게 살려면 예술에 심취하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한국인 화가 한국 근현대미술 주변문학 동우회
2026.07.07. 12:58
부자(?)의 100불은 쓸 곳이 천지다. ‘부자’로 찍히면 이름 값을 해야 한다. 움켜쥐면 구두쇠, 짠돌이, 노랭이라 불린다. 노랭이의 표준말 노랑이는 아량이 좁고 돈에 매우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영어론 ‘He is a dreadful penny pincher’다. 1원도 안 쓰려고 돈을 꼭 쥐고 있는 사람의 과도한 인색함을 비꼬는 말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뜻은 말은 사람 사이를 타고 순식간에 멀리 퍼진다는 말이다. 구두쇠로 소문나면 자손대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충주 자린고비’라 불리는 실존 인물인 조륵(趙玏, 1649~1714)은 식사 때 굴비를 천장에 매달고 밥 한 술에 굴비 한번 쳐다 보라는 일화로 유명하다. 아들이 굴비를 두 번 쳐다보면 굴비가 짜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가 평생 구두쇠 짓으로 모은 돈으로 가뭄에 시달리던 1만 호의 백성을 구한다, 주민들이 감동하여 사후에 ‘자인고비(慈仁考碑)’ 비석을 세운다. 자인고비는 어버이 같이 인자한 사람이란 뜻이다. ‘자린 고비’가 ‘절인 굴비’에서 왔다는 말도 전해진다. 세계 최고 부자 가운데 한 명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텍사스주 보카치카의 스페이스X 기지(스타베이스)에 위치한 약 $50,000(약 7,000만원) 상당의 10평형 조립식(모듈러) 주택에 거주한다.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겠다고 선언한 뒤 화려한 대저택을 모두 매각했다. 진짜 부자의 7000만원은 종이 장난감이다. 역사상 최고령이고 재산이 가장 많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좋아하는 햄버그를 자주 먹는다는데 자부심(?)과 위로를 받는다. 대통령과 내가 동급 인생 사는 건 절대 아니다. 구두쇠라 남의 입에 안 오르내리고,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부자로 칭송 받지 않아도 맘 편히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함께 나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ility Obliges)는 병아리 눈물만큼 실천한다. 35세, 밤길을 걷던 단테는 표범, 사자, 암늑대에게 위협을 당하는데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구해주고 지옥으로 인도한다. 신곡(La Divina Commedia) ‘지옥의 문’에는 신곡의 가장 유명한 구절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라 적혀 있다. 지옥에는 희망이 없다, 이승과 지옥의 경계인 아케론강(Acheronte)을 지나면 ‘고통 없는 절망의 공간’인 변옥(Limbo)이다. 죄는 없지만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지옥의 제4층은 탐욕의 지옥이다. 부(富)와 재물에 집착한 죄인들이 가는 곳이다. 낭비가 심하고 인색했던 자들이 생전 모은 재산만큼 무거운 짐을 가슴의 반대 방향으로 굴리면서 몸이 부딪히면 서로의 죄를 탓한다. 재물에 얽매여 살았던 그리스 신화의 플루토스, 부패한 성직자들, 보니파시오 8세가 탐욕의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 지상의 낙원에 도착한 단테는 천국에서 영원한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알게 모르게 죄를 짓는다 해도, 지옥으로 떨어질 일은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자식을 돈으로 키우면 돈벌레가 된다. 재산을 불려도 (돈)벌레는 인간 취급받기 힘들다. 정성과 사랑으로 자식을 돌보면 정이 넘친다. 정(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적게 가졌다고 불평하지 않고, 많다고 자랑하지 말고, 내 몫으로 배당된 100불을 소중하게 여기며 허투루 살지 않기를! 살아있는 것들 위해, 꽃잎 송별로 바람의 연가를 부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진짜 부자 구두쇠 짠돌이 첫사랑 베아트리체
2026.06.23. 13:54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믿지 않는다. 인생의 완벽한 답안지는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해도, 살아온 만큼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있다면 축복이고 다행이다. 한계에 도달하면 방향을 바꾸거나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인생의 그림은 완성도를 따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면 흔들리는 마음의 위기를 다스릴 수 있다. 완성도는 어떤 일이나 예술 작품 따위가 질적으로 완성된 정도를 말한다. ‘완성도’는 어떤 작업이 얼마나 완전하게 마무리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예술작품에서부터 건축물, 심지어 일상적인 업무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를 기준으로 그 가치와 질을 판단한다. 완성도는 단순히 ‘끝냈다’는 의미를 넘어서, 얼마나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기대치를 초과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를 포함한다. 예술의 완성도는 심미적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선과 색의 조화가 어우러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는 세세한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 완성도는 극에 달한다. 완성도는 단순한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열정과 철학이 담긴 영혼의 몸부림이다. 성숙 단계(maturity level)와 완전함(completeness), 완벽함(perfection)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작품에 담긴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할리우드의 반항아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에서 젊은이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반항적이고 반문화적인 대중문화를 형성해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제임스 딘은 마지막 작품 ‘자이언트’ 촬영을 마치고 애마였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타고 180km/h로 달리다가 맞은편 차와 충돌해 향년 24세로 사망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그가 남긴 어록은 죽음의 섬뜩한 예견처럼 들린다. 그가 사망한 지 무려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젊음, 스포츠카, 청바지 하면 제임스 딘을 떠올릴 정도로 청춘(靑春)을 상징하는 영원한 우상으로 남아 있다. 제임스 딘은 1956년 ‘에덴의 동쪽’이 영화사 최초로 사후에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 후보에 오른 남성 연기자가 된다. 1957년 ‘자이언트’로 다시 한번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에 사후 두 번이나 후보로 오른 사람은 제임스 딘이 유일하다. ‘인간에게 유일한 위대함은 죽지 않는 것이다(The only greatness for man is immortality)는 제임스 딘의 명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뒷마당 텃밭에는 가뭄에도 죽은 듯 살아남는 것이 있고, 살아있어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잡초들이 자란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무의미하게 사는 일상도 많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확실하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는 단조로우며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따뜻하다.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여인들은 가슴 속 담긴 한을 물 속으로 씻어 보낸다. 잔잔히 흐르는 물줄기는 지친 삶의 애환을 새로운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킨다. 인생의 완성도는 없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등장인물과 구도를 바꾸고 화려한 색깔로 덧칠을 해도, 때묻은 생의 흔적을 지우기 어렵다. 끝없는 미궁 속에서, 미완성으로 생을 끝맺는다 해도 영혼이 숨쉬는 내일은 위대하다. 삶이 생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 있는 것들에 경의를 표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완성도 반항아 제임스 예술 작품 동쪽 자이언트
2026.06.09. 15:17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한 달 넘게 매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코발트 빛 하늘에 목화 꽃처럼 흰구름이 떠다니고 햇살이 실타래를 풀 듯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다. 드디어 찬란한 그대와 우리들의 봄, 기다림에 가슴 졸이던 사랑의 봄이 왔다. 줄지어 서있는 우람한 나무들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녹색의 잎들을 매달고 하늘 향해 손을 펼친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거나 껴안고 버틴다. 나무는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오리들은 짝을 지어 한가로이 연못을 오락가락한다. 혹한으로 연못의 갈대가 죽어 Breakfast 식탁 앞 데크(Deck)에서 오리가 잘 보인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물오리의 사랑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운 것들은 잘 보인다. 청춘은 흘러가도 추억은 남는 것, 생명 있는 것들은 살아 남아 사랑을 속삭인다. 봄이면 담장 따라 여린 목 내밀던 코스모스가 폭설로 사라졌다. 이웃에게 나눠 주려고 받은 씨앗을 초봄에 뿌렸는데 폭우에 밀려 생명이 묘연하다. 하는 수 없이 씨앗을 구입해 양지바른 텃밭에 뿌렸더니 손바닥 두 뼘만큼 키가 자란다. 봄 햇살이 아늑하게 대지를 껴안으면 연분홍색 흰색 핑크색 꽃들이 가냘픈 가지에 연녹색 잎을 달고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디며 가을을 수놓을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 같이 초조하여라 (중략)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 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네.’ 옛 가락을 홀로 흥얼거린다. 그리스어 Cosmos는 질서, 조화라는 뜻이다. 꽃들은 엉겨 붙지 않는다. 다투며 얼굴 내 밀려 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다. 화창한 날씨에 온 동네가 축제 기분이다. 잔디 깎는 기계 소리와 쾌속으로 달리는 세발자전거 탄 아이들의 질주는 오페라 돈키호테의 라만차처럼 재기 발랄하고 흥겹다.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 소리가 들려야 즐겁다. 봄은 웅크린 날들을 웃음으로 채운다. 옆집 사는 Bryn이 예쁘게 차려 입고 찍은 졸업 축하 파티 초청장을 보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파티는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다. 미국이 개인주의란 말은 잘 모르는 소리다. 미국 문화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둔다. 미국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연휴 때는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막내 아들 졸업 파티가 생각난다. 친구들과 기획하고 준비한 졸업파티는 백명이 넘는 청춘들이 춤추며 비빈 탓에 뒷마당 잔디 완전 파괴로 다시 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장작나무에 구운 주문한, 통돼지 바비큐는 기괴하고 맛있었다. 고등 학생 졸업 선물은 고르기가 난색이다. 파티 손님이 북적일 것 같아 축하노래 나오는 예쁜 카드에 깔깔이 현금 넣고 축하 메시지 적어 미리 선물했다. ‘네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 파티 때 입을 멋진 옷 사세요’라 적었다. ‘PS: 돈이 모자라면 카드번호 줄게. 진짜 맘에 드는 옷 살 것’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사랑은 꽃들처럼 어깨를 기댄다. 텃밭의 채소처럼 정성을 들인 만큼 풍성하게 자란다. 토마토와 딸기는 탐스럽고 빨갛게 익어 건강을 챙겨주고, 깻잎과 부추는 여름 반찬 제1호로 사랑받는다. 마음 속에 사랑이 움트면 어둔 밤에도 별이 반짝인다. 작은 것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든다. 풀잎 같은 꽃들도 사랑을 듬뿍 주면 예쁘게 자란다. 삶이란 사랑에서 받은 영감을 서로 나누는 것. ‘귀찮다’고 대강 살면 대충 살다 죽는다. 인생의 답안지는 없다. 잘 산다는 것은 절망과 작별하고, 축제의 날들을 기다리는 청춘처럼, 살아있음을 견디는, 꽃들이 보내는 사랑의 독백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고등학교 졸업파티 남아 사랑 여름 햇살
2026.06.02. 15:36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이 만든 감옥에 길들여 산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친구들이 그려 놓은 그물에 갇혀 산다. 내가 누구인지, 뭐 때문에 사는 건지, 왜 사는 건지 질문조차 할 겨를이 없다.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는 논리로 스스로 산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삶이 중요한 의미라고 주장한다. 노예선(slave ship)에 실려 발가벗겨져 사슬에 묶인 체 노예시장에서 팔려간 원주민은 선택을 포기한 것이 아닌, ‘인간’에서 제외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사르트르는 소설가, 극작가로 실존주의 사상을 최초로 적용한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알베르 카뮈와 함께 사르트르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을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master)란 이론이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주장은 ‘인간’이라는 개념이 정의되기 전에 인간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논리다. 인간은 실존하는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방인의 작가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43세 때인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문맹이며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다. 카뮈는 페스트, 시지프 신화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지만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로 카뮈의 흔적은 알제리에서 이름마저 지워진 체 방치되어 있다. 사르트르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구토(La Nausée)’는 문학사의 희귀한 작품으로 꼽힌다.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 예술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작품이다. 역사학자 로캉탱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조용한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일상 속 사물과 존재 자체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과 불안을 느낀다. 존재 자체가 우연이며 필연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존재의 무상함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구토로 연결된다. 결국 주인공은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예술’을 선택한다. ‘구토(La Nausée)’는 실존주의 철학을 문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의 불안과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깊이 탐구한다. 사르트르는 피카소, 존 레논, 카뮈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주의 예술가로 꼽힌다. 반 자본주의, 친 공산주의적 사상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는데 6.25 한국전쟁을 남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이 서구 작가들에게만 치우쳐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샤르트르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의 친할아버지였는데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은 키에 사팔뜨기였지만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에 사람들을 곧잘 웃겼다. 인간은 타인이 던지는 사유의 그물에서 박제된 얼굴로 살아간다. 변장을 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일상과 힘 겨루며, 삶과 죽음의 강을 허우적거리며 건넌다.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르트르의 논리보다 운명은 더 자유롭다. 수첩에 남은 날들은 손꼽아 세지 않으면 운명은 스스로 굴러간다. 있음(有)과 없음(無), 많고 적음, 길고 짧음은 물량과 시간의 법칙일 뿐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고통과 구토를 참으며 스스로 존재의 무(無)를 견딘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사상 프랑스 실존주의
2026.05.26. 13:54
나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도 못 이긴다. 참고 견디면 고통과 슬픔도 새벽 이슬처럼 꽃잎사이로 숨어든다. 가슴을 타고 방울져 내리는 눈물은 닦지 않아도 된다. 숨길 필요 없다. 뒷마당에 핀 이름 모를 꽃들처럼 기억할 사람들 없다 해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견디는 용기다. 견디며 안도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아이들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굴러 떨어지듯 내려올 때도환호성을 질렀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마른 하늘에 주먹을 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는 리사 생일이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는 2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리사는 우리집의 중심 축이었다. 지구가 하루에 한 번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며 해와별이 뜨듯 리사는 가족들의 가슴속에 해와 별처럼 반짝였다. 일년에 한 번 지구가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날이면 예쁜 생일 케익을 구워 축포를 터뜨렸다. 리사 생일날 딸과 손주들이 리사 사진 앞에 리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에 촛불을 꽂고기도하는 사진을 보냈다. 누구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리사는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수술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대륙의 동쪽과서쪽 끝에서 달려온 아이들은 한달 동안 리사와 내 곁을 지켰다. 늘 행복한 미소로 웃던리사를 위해 절망 끝에서도 우리는 리사를 위해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리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집, 리사는 리사 방에서 동생들과 레고와 퍼즐을 했다.리사는 크리스티나와 내 손을 잡고 천사처럼 죽음을 맞았다. 남편이 죽으면 뒷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맞다. 가슴에 담기에는리사가 남긴 생의 부피가 너무 커서 뒷마당 양지 바른 곳에 유해를 묻었다. 오하이오주법에 의하면 자기가 소유한 땅에 유해를 묻을 수 있다. 리사 방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 집안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곳에 꽃밭을 만들어 리사를묻고 예쁜 꽃을 심었다. 봄꽃과 나무들이 줄지어 손을 흔든다. 리사가 발을 헛디디지않도록 꽃밭 가장자리에 태양광 램프를 설치했더니 캄캄한 밤에도 꽃밭이 보인다.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로 극의제2막에서 여주인공 알미레나가 납치당한 후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울게 하소서! /내 잔혹한 운명에/그리고 한탄으로/자유를 그리네/슬픔아 부수어라/내 고통의/이 속박을/오직 비탄을 통해서” 영화 ‘파리넬리’에서 거세한 남성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가 부르는 ‘울게 하소서’는노래라고 하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오기 전 소년에게 거세(去勢)를 해서 미성의 고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라는 실제인물의 삶을 그린 영화‘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은 가수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상관없이 어린 시절에 거세당한 아픔을 간직하며 평생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운명은 비참하지 않다. 비참하게 살아갈 뿐이다. 견디며 극복하는 자와 쓰러져 절망하는자가 있을 뿐이다. 세월은 잠든 순간에도 속수무책으로 달려가 운명의 다리를 건넌다. 남은 남이다. 타인은 내가 될 수 없다. 역경을 이기는 힘은 나에게서 나온다. 눈물을 참지 않겠다. 이제, 나를 위해 울도록 내버려 두겠다. 눈물이 흘러내려도 닦지않고, 슬프면 슬픔의 강물 따라 절망의 강을 건너고, 생의 곳곳에 별빛처럼 찬란하게빛나는 아침 이슬 머리에 이고, 짧고도 긴 생의 여정을 담담하게 걸어가리라.(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리사 생일날 꽃밭 가장자리 리사 사진
2026.05.19. 14:45
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음은 기울어진 쪽으로 발길을 움직인다. 생의 구도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음의 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작품의 성패는 구도에 달려 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골몰해야 ‘어떻게 그릴 것’인지 감이 잡힌다. 졸작이라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극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누구나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 사는 것이 진흙탕이고, 한 번 빠지면 헤쳐 나올 수 없는 늪이라 해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자유롭게 날기를 꿈꾼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가 없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새장에 갇힌 것들을 날려보내라. 돌아오면 내 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랑도 인생도 운명까지도 내 것이 아닌 것들은 거리낌 없이 날려보내라. 스스로 새장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사회나 직장, 가정의 틀 속에 갇혀 허무의 신발가게를 오가며 자신의 가치를 잃고 방황한 적이 한 두 번이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루에도 수차례 그 질문을 반복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의 답을 찾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린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초인’을 뜻한다. 자신이 가진 힘의 의지로 자기 극복을 하는 사람이다. 초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려는 인간을 의미한다.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는 자, 주어진 규칙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 고난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절망과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은 초인의 삶을 산다. 위버멘쉬는 극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자는 초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니체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건강이 악화돼 퇴직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극심한 두통과 발작 등 끔찍한 아픔을 겪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위장병과 구토, 발작과 감각마비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생과 사투를 벌이지만 니체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니체는 죽음의 강을 오락가락하며 주옥 같은 글들을 남긴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인간을 살아있게 한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것이다. 이 무렵 시작된 니체의 글쓰기와 사유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킨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진다. 완벽한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는 달라져야 한다.’ 니체가 남긴 사유의 흔적들은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가장 인간적인 생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기억의 창고에서 살아 숨쉰다. 사는 것이 어릿광대의 줄타기라 해도, 인간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어쩌면 극복을 통한 니체의 ‘위버멘쉬’가 초인이 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진정 나의 길을 찾고 싶다면 남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 스스로를 극복하는 용기가 인생을 진실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한다. 천국은 마음 속에 있다. 고통과 실패로 쓰러져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길이 열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프리드리히 니체 하늘 머리 자기 극복
2026.05.12. 13:01
너무 오래 살았나 봐요. 봄의 정원은 천국처럼 아름다운데 왜 눈물이 나는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이 얼얼해집니다. 흐르는 눈물은 가슴 속 때를 훔치고 봄비는 세상살이에 쌓인 먼지를 말끔하게 지웁니다. 코발트색 옷자락을 펼치는 하늘은 목화 꽃처럼 크고 작은 흰구름을 그려 넣습니다.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립니다.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가 떠 올랐어요. 청록의 옷을 입은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만남과 이별, 생과 사의 갈림길도 서두르지 않으면 구름처럼 처연하게 흘러가겠지요. 지난 겨울은 참담했습니다. 폭풍우가 대지를 뒤덮고 무릎까지 눈이 쌓였습니다. 봄은 새 각시의 더딘 걸음으로 왔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흔적은 찾으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손톱만큼 작은 깻잎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연달아 철쭉이 진홍색 잎을 가지 끝에 매달고 목련은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봅니다. 담장을 등에 업은 샛노란 개나리는 질투의 화신처럼 무리 지어 정원의 뒤뜰을 가득 채울 심산입니다.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림으로 여린 손 내밀던 코스모스는 혹한으로 생사가 묘연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을에 씨를 받아 이름표 붙여 창가에 매달아 두었거든요. 뿌리만 살아있으면 죽지 않듯이, 씨앗은 작고 말라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뒷마당에 병풍처럼 줄지어 선 나무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찬란한 초록 빛으로 계절의 풍요로움을 화폭에 담습니다. 연못에는 겨울동안 숲 속에 갇혀 살던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며 장난질합니다. 새들이 지지배배 떠드는 소리에 꽃잎들은 빛나고 아름다운 색깔로 단장하고 세상 어느 오페라 보다 황홀한 인생의 무대를 장식합니다. 그동안 미친듯이 인생을 불태우고 살았습니다. ‘죽지 않으면 산다’ 세 단어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올인했습니다. 사업과 화랑을 병행하며 아이 셋 키우고 한국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뼈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비발디의 사계(절)처럼 바뀝니다. 봄과 여름을 허술하게 보낸 사람은 풍요로운 가을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중요한 시간입니다. 박수갈채와 찬란했던 날들을 망각의 강으로 떠나보냅니다. 작지만 반짝이는 새벽별의 손짓을 담아 새롭고 창의로운 인생을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백지에 그려 주세요. 영욕으로 뽐내며 명함 뿌리던 날들을 지워버리면 사는 것이 정직하고 수월합니다.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인연을 절단하는 게 현명합니다. 불필요한 만남과 인연을 덜어내야 목말라 하던 자유를 누리며 작지만 보석 같은 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망각의 강은 남은 찌꺼기를 바다로 보내고 인생은 늘 푸른 아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주변의 연락 끊고 ‘귀양살이’ 한다며 너스레 떨다가 ‘유배생활’ 중이라고 바꿨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빛나는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스치는 바람과 악수하고, 수시로 떠오르는 언어를 가슴에 품고, 다가올 생의 아름다움에 몰두하면, 사랑과 아픔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듯 사는 게 편하고 따뜻합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힘은 타인의 위로와 간섭이 아니라 스스로 견디는 용기입니다. 지난 겨울은 추워도 따스했습니다. 손바닥에 그려준 사랑의 맹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잎의 향기로 흩날리듯, 망각의 강물 속에 사랑의 날들은 흘러갑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맹세가 계절 코발트색 옷자락 editions 대표
2026.05.05. 12:51
돌팔매질이 적중하면 이길 승산이 높아진다. 과녁에 맞지 않아도 한 번 날아간 화살은 어딘가 안착한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큐피트는 사랑의 화살을 마구 쏘는 습관이 있었다. 사랑과 전쟁은 이미 신의 세계에서 시작됐다. 사랑이 없으면 인생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달짝지근한 팥소의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그 피를 바다에 던진 거품에서 올라온 여인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서양미술사의 주목받는 걸작이다. 벌거벗은 채 커다란 조개껍데기에 서있는 여인의 모습은 성모 마리아에 익숙했던 미학적 인식을 뒤집는다. 사랑은 빈 캔버스에 마구잡이로 그리는 배합이 맞지 않는 아이들의 장난이다.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르니카(Guernica, 1937,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소장)’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작품으로 꼽힌다. 1937년 스페인내전 중 독일군 폭격기들의 공습으로 20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게르니카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도시는 폐허가 된다. 이 소식에 분개한 피카소는 가로 7.8m, 세로 3.5m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대작을 불과 6주 만에 완성했다. 절규하는 여자들과 산산이 부서진 조각상처럼 토막 난 군인들의 시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하는 듯한 황소와 혀에 송곳이 꽂힌 채 비명을 지르는 말, 모든 참상을 바라보는 목격자의 눈처럼, 불이 켜진 전구가 작품 위쪽에 그려져 있다. 게르니카를 그리기 1년 전, 중년의 피카소는 스물아홉살 도라 마르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와 동거 중이였다. 꿈꾸는 듯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풍만한 마리 테레즈에게 피카소는 욕정을 퍼붓는 투우장의 황소처럼 자신을 그려 넣었다. 개인적인 욕망을 표현하기에는 마리 테레즈가 완벽한 뮤즈였지만 ‘게르니카’ 작업을 할 동안 검은 머리에 자의식이 강한 도라의 반항적인 에너지가 필요했다. 피카소는 도라를 ‘게르니카’ 오른쪽에 절규하는 여인의 이미지로 그려 넣는다. 사랑의 고통이 전쟁만큼 잔혹하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도라는 결국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피폐해졌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도라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피카소가 죽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도니체티 대표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명곡이다. 어리숙한 총각 네모리노가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던 중 사기꾼에게 속아 사랑의 묘약을 사서 마신다. 약은 전설 속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사실은 싸구려 포도주다.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해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영어 ‘큐피드의 화살(Cupid’s dart flower)’의 꽃말은 사랑과 열정이다. 꽃봉우리가 화살촉처럼 흡사하게 꽃대가 길게 올라와 ‘화살꽃’이라 부른다. 베스비오 화산이 폼페이를 용암으로 휩쓸기 전까지 연인들은 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순간은 가끔 영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라진다. 큐피트가 장난삼아 마구잡이로 쏜 화살은 지구의 동쪽 혹은 서쪽 어디쯤 둥지를 튼다.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고 물거품으로 모래사장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 파도가 새벽을 껴안기 전, 해변의 발자국을 보라. 사랑과 기침은 감추기가 힘들다. 누구인가 지금, 당신에게 그리움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그리움 마르와 사랑 게르니카 시민들 시체 하늘
2026.04.28. 13:3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옥이 언니가 머리를 들이밀고 ‘아’ 소리지르면 메아리가 들려왔다. 우물에 빠질까봐 언니 치마를 붙잡았다. 깊고 맑은 우리집 우물은 부엌안에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서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수박을 매달아 놓으면 냉장고에 넣은 것보다 차갑고 상큼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 것처럼 파랑새가 슬픈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날아간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 들여 지은 새 집은 인민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우는 아내 등 쓰다듬으며 “새 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난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 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미쉘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쓰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기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 같은 대답을 한다. “훌륭한 화가가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 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들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동양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집에 걸지.” 작은 돈은 큰 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쥴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우물 화가들 전시회 현대미술 화랑
2026.04.21. 13:40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망울 터지는 봄의 향연처럼 들린다. 줄지어 서 있는 나무숲 사이로 하늘은 불타는 빨강과 주황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른 아침 집앞에서 자전거 패달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빼꼼 열고 보니 앞집 아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쾌 속력으로 질주한다. 스티브는 잠이 덜 깬듯 하품을 하며 뒷짐지고 느릿하게 아들 뒤를 따른다. 콜드섹(Cul-De-Sac)에 위치한 우리집은 차가 들락거리지 않아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안성 맞춤이다. “굿 모닝! 지금 할 수 있을 때 즐겨요(Enjoy while you can).” 내가 새벽 인사를 건네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I am doing my best)”라고 손을 흔든다. 누굴 닮았는지, 우리 애들은 어릴 적엔 별나고 흥분 잘하는 하이퍼(Hyper)들이라서 안정성을 고려해 그 때도 콜드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애들은 와 잠도 안 자고 이리 설치노?” 어머니는 아이들 자전거 꽁무니 따라다니며 땀을 닦았다. 그 때가 좋았다. 참 좋았다. 미친듯 사업하고 밤잠 설치며 애들 셋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받은 날들이다. 그 시절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흘러가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간의 힘을 역설한다. 그리스인들은 두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이다. 제우스의 막내 아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신의 이름이다. ‘크로노스’는 일상을 집어삼키는 시간, 허둥대며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 받는 시간을 말한다. 독일어 재촉하다의 ‘헷첸(hetzen)’은 ‘미워하다’라는 뜻의 ‘하센(hassen’에서 유래했다.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미워하는 행위와 같아서 ‘크로노스’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카이로스’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꼭 알맞은 순간’을 뜻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작고 큰 순간을 포착하고, 각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경험들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카이로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간은 공평하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진다. 순간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순간은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순간은 영원을 잉태한다. 카이로스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풍성해 제때 잡으면 쉽게 붙잡힌다.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잡을 수가 없다. 타임캡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이나 물건을 담아서 후세에 온전히 전할 목적으로 고안한 용기다. 내 타임캡슐은 빈 통이다. 시대를 위한 업적도 역사의 족적으로 남길 기록도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생명의 기적들을 내게 선물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자녀들, 손자와 손녀들은 내가 남기는 소중한 타임캡슐이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카이로스적 시간 시간 개념 카이로스 앞머리
2026.04.14. 12:46
봄이다. 두터운 외투 벗고 빛나는 봄을 맞는다. 지난 겨울은 참담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과 싸우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의 인내심은 견디지 못하고 작은 미풍에도 곤두박질 친다. 참고 조금만 기다리면 봄꽃들은 기지개 켜며 작고 앙정맞은 입술을 벌릴텐데 조급하게 계절을 성토했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은 견뎌낼 줄 안다. 계절이 두툼한 솜이불을 벗어 제치고 꽃샘바람이 뒷마당을 휩쓸자 꽃잎은 찬란한 빛깔로 정원을 물들인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행복은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다. 채색이 잘 안되고 화려하지 못해도 나만의 독창성을 가지면 명화가 된다. 내면의 투명함은 의식의 깊이를 파고 든다. 영혼이 맑아지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인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싹을 틔운다. 사람과 바람, 꽃잎과 풀잎. 하늘과 땅 사이 경계를 허문다. 레프 톨스토이 대표작 ‘부활’은 사회의 모순, 법의 부조리,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각성하고 영적인 부활을 이루어내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대서사시다. 네흘류도프 공작은 상류사회의 방탕과 타성에 젖어 사는 인물이다. 우연히 재판소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 그는 독살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가 과거 자신이 짓밟고 버린 카튜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 하녀였던 마슬로바를 유혹해 아이를 낳게 하고, 그의 무책임한 행동이 한 여성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 아이를 임신한 카튜샤는 쫓겨나고, 아이는 죽고 끝없는 나락으로 매춘부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부투하지만 카튜샤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죄책감을 느낀 네흘류도프는 속죄하고자 카튜샤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당한다. 사면될 거라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카튜사는 시베리아에서 시몬손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다. 네흘류도프는 과거를 속죄 받기 위해 청혼하지만 감옥에서 만난 시몬손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튜샤는 원래 선했던 모습이 된다. 사랑은 정직한 선택이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도, 대가를 지불하는 사면도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 하나가 되고, 흔들리는 바람으로 다가와 심장에 대못을 박는다. ‘나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질문한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채송화 꽃잎따서 손톱에 물들이듯 조금씩 인생을 채색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창문을 두드리면 팬지는 흙내음새 맡으며 머리 숙여 꽃을 피운다. 팬지 이름은 꽃모양이 사색하는 사람 같아서 프랑스어 명상(pensée)에서 유래됐다. 꽃들은 부활한다. 뿌리만 살아있으면 다시 핀다. 인간도 부활한다. 각자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형태와 색깔로 꽃이 핀다. 살아있는 것만큼 찬란한 행복은 없다. 노아의 홍수 때 민들레는 도망가지 못했다.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가엽게 여긴 하나님이 씨앗을 바람에 날려 꽃이 피게 해준다.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말라. 제일 슬픈 사랑은 ‘잊혀진 사랑’이다. 민들레 꽃씨나 나물 캐는 처녀들 바구니에 담겨 부활을 꿈꾼다. 순간은 영원과 맞닿아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영원은 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톨스토이 대표작 재판소 배심원 시베리아 유형
2026.04.07. 12:44
시작은 뜨겁다. 희망으로 불타오른다. 결의와 갈망으로 벅차오른다. 실패를 염두에 둔 시작은 없다. 낭패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끈을 잡고 놓치 않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소망을 담은 그림을 채색하며 구겨진 인생의 팔렛트에 희망의 점들을 수없이 새겨넣었다. 달력의 장을 넘길 때마다 강렬했던 목표는 서리 맞은 잎새처럼 오그라들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내일은 남아 있을까? 두려운 것은 시작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는 것이다. 절망은 오래된 간이역에서 기차가 멈췄을 때도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게 만든다. 장편소설 2권 쓰겠다는 장대한(?)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희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이 가능한 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의 주인공은 낡고 찢어진, 혹은 찬란한 망토를 두르고 막이 내리기 전 가장 높은 옥타브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쓰러져도 인생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맞선 대가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 꼭대기에 다다른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반복은 영원히 계속된다. 매일 같은 일, 반복적인 일상을 계속하며 생의 바위를 각자의 등에 업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면 산다. 우리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면, 삶은 계속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매일 같이 일하고, 버티고, 성취하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좀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다. ‘왜 사는가?’는 질문 앞에서 세상은 침묵한다. 카뮈는 이 침묵과 충돌하는 인간의 갈망을 ‘부조리’라 간파한다. 부조리(不條理)는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부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과 세계, 생의 의미와 실제 생활과 불합리한 관계를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알제리 출신으로 짧지만 강렬한 불꽃을 태운 작가다.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삼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는 시상식에서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긴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운명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가난과 질병,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체험한 카뮈는 삶의 불합리함을 체험한다.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참다운 유형을 보여준다. ‘내 안의 태도가 삶을 결정하고, 환경이 힘들어도 내면의 힘은 꺼지지 않으며,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 안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카뮈가 절망을 견디는 인간에게 던지는 통찰의 독백이다. 겨울이 봄을 이길 수 없고 희망은 절망을 이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치 않고, 흔들리며 갈피를 못잡아도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부서진 바위처럼 금이 생겨도 단단해지는 법을 익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내일을 가슴 속에 품는다. 절망의 길목에서,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빛나는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editions 대표
2026.03.31. 13:24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중략)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중략)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잘 생긴 외모와 도시적 낭만성, ‘명동백작’ ‘댄디보이’라고 불리던 박인환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전후 지식인의 통음이 들리듯, 한 구절 한 구절에 절절함이 담겨있다. ‘목마와 숙녀’는 한국 시사에서 감상주의 또는 낭만주의 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감상주의는 슬픔, 동정, 연민 따위의 감상을 지나치게 드러내려는 문예 현상이다.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는 개성이 없는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학 작품이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18세기 말 유럽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 경향이다.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 ‘세월이 가면’은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술을 마시다가 쓴 즉흥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같이 술을 마시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부치고 ‘백치아다다’로 유명한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테너 가수 임만섭과 나애심이 불러 ‘명동의 샹송’으로 유명해지고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로 국민적인 애창곡이 된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한 후 이듬해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고 3일 간 폭음한 탓에 결국 그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자택에서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향년 29세로 요절했다. 예술가 특히 시인이나 작가들은 왜 술을 죽도록 마시고 사랑하는가?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심일까, 아니면 비겁한 용기일까? 술에 취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자신을 감싸는 사회적 방어막이 없는 상태가 된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담이 아니라 본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술에 취했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평소에 잘난 척하고 엄숙하던 작가들이 술이 거나해지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안 마신다. 그래도 문인들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끼고, 술값은 열심히 낸다. ‘술 안 마시고, 담배 못 피우고, 애인도 없으니, 무슨 맛으로 살꼬. 글을 우째 쓰겠노’라고 핀잔을 받으면 ‘그래서 작가가 못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사랑했던 문우 여럿이 가난과 절망, 술독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게 청춘의 꿈이였다. 시를 버려도 세상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문학을 포기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맨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 ‘술은 비와 같다. 비가 오면 나쁜 흙은 진창이 되지만 좋은 흙은 꽃을 피운다’는 존 헤이의 말을 새긴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진흙 속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박인환 시인 무방비 상태 가수 박인희
2026.03.24. 12:38
‘사랑은 자유로운 새 /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 / (새를) 부르는 것이 무의미하지 / 싫으면 절대로 오지 않아 / 협박하고 빌어도 소용 없어 / (중략) 사랑은 보헤미안의 아이 / 법을 알지 못하고 살지 /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야 /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해야 돼’- 카르멘 ‘하바네라(Habanera)’ 중에서. 보헤미안은 프랑스어 보엠(Bohême)에서 유래해 체코 보헤미아 출신 집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에는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랑과 예술적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오페라(Opera)는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에서 유래한다. 음악이 기본적 요소이고 가수들이 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서양 연극의 한 양식으로 무대 장치, 의상, 춤, 발레와 같은 여러 공연 예술을 포함한다. ‘카르멘’은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로 ‘르뷔 데 되 몽드’라는 잡지에 발표된 짧은 소설이다. 촉망 받는 군인 돈 호세가 집시 카르멘과 사랑에 빠져 인생이 망가지자 카르멘을 살해하고 자신도 파멸을 맞게 된다. 카르멘은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의 극치를 보여준다. 비제의 ‘카르멘’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더불어 극장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초연 당시 카르멘의 관능적이고 비 도덕적인 캐릭터와 비극적 결말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혹평을 받고 비제는 큰 좌절을 겪는다. 니체가 극찬한 비제의 카르멘은 처참한 실패였다. 초연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초연 3개월 후 비제는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왜 우리는 어렵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세속적이고 관능적이며 비극의 끝판왕인 오페라에 열광하는가? 커튼이 올라갈 때 관중은 박수갈채로 환호한다. 우아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며 불륜을 즐겨보고 비극적인 사랑과 몰락에는 눈물을 흘린다. 니체는 인간은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꿈의 ‘가상’을 만들어내고 삶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가상을 끊임없이 부수고 환상•오류• 변명•핑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설명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원초적 예술의 충동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끊임 없는 투쟁과 조화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성스러운 세계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방종을 억제한다. 이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이 결합함으로써 삶의 가혹함•전율•악함•고통이 음악적 도취와 화려한 무대, 감미로운 아리아로 환상적인 설득력을 갖게 한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면 청중은 시작과 기대,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지막 장의 커튼이 내려오면 관객은 ‘길들이지 않은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커튼콜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와 환성으로 박수를 계속 보내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인생에는 앙코르(Encore)도 커튼콜도 없다. 공연은 한 차례뿐이다. 박수치며 재연을 요청하지 않는다. 찬란한 순간들은 한 차례 연습 없이 막을 내린다. 오페라 팜플렛 접어 들고 멋진 스카프를 두르며, 무대를 떠날 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비제의 카르멘 집시 카르멘 공연 예술
2026.03.17. 13:08
‘영혼이 털린다’는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피로, 지나친 감정 소모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업무나 고강도 운동,견디기 힘든 충격 등으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머리가 멍해지거나,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영혼은 육체에 담겨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다.영혼은 문화•학문•종교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인간의 정신적•본질적 성격을가리키는 말이다. 혼(soul)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영(sprit)은 신과 교통하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간주된다. 괴테는 남편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친구가 자살한 것과 약혼자 사라테부프와 못이룬 사랑을 엮어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1774년 출간되자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진 소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괴테의 대표작이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었다. 변호사•행정가•경영자•극장장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바이마르 군주의 초청을 받아 군사•외교•사법 행정까지 국정 운영을 도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서른일곱의괴테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구원이란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하는 학자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세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조건으로 영혼을 팔기로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맺지만 더 큰 세계에서정치 예술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늙은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전진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다. 길은 잃고 방황하는 자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절망은 희망을 등에 업고뜀박질할 내일을 기다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을인용한다. 영혼이 갈피를 못잡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가만히 멍 때리기를 계속하라.멍 때리기는 더럽고 너덜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한다. 죽지 않으면 산다. 영혼이 털려도 육신이 살아 있는한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목숨 줄이 끓어지지 않으면 살 것이고, 살아있는 육신은 영혼의 축복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출구를 모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머무르면 된다. 영혼은 복귀 능력이 탁월하다. 참고 기다리면 정상으로 회귀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낳기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설파한다. 별이 빛나는 밤 춤을 추자. 혼돈의 시간에 매듭을 묶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생명의 기쁨을 담은 왈츠를 추자. 연인이 없으면 어떠리. 운명은 내 편이다. 나를 이기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 혼돈이라해도, 별빛머리에 이고 달빛을 연인 삼아 춤을 추리라. 전쟁과 평화에서 애틋한 눈길 보내며사랑의 화살로 속삭이던 연인들처럼 ‘Natasha’s Waltz’에 맞춰 춤을 추리라. 잠시 영혼이 털린다해도, 흔들리는 것들은 바람을 타고 영원 속에 머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주인공 파우스트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대문호 괴테
2026.03.10.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