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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리운 사람들은 별이 된다

은하수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복극성이 그리는 큰곰자리의 일곱 별들은? 눈물 속에서 마지막 보았던 물망초 꽃들은? 금빛 조약돌에 부딪혀 흩어지던 찬란한 청춘의 빛들은? 눈물 모르던 날의 따뜻한 감꽃 목걸이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워하던 시간보다, 보이는 것들 속에 세월이 멈춘 풍경 속으로 돌아간 짧은 시간들이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살아있다. 그 짧은 만남을 위하여 긴 헤어짐의 날들이 필요했던 것일까?   드러내고 흐느낄 수 없었던 폭풍우 치는 저녁과, 잠 못 이루는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별을 가슴 깊이 안을 때까지, 삶은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고와 절망을 딛고 세월의 깊고 먼 강을 도도히 흘러온 얼굴들, 간혹 잊힌듯 흔들리지만, 시간의 허리를 파먹으며 저문 날의 창가를 기웃거린다.   고향이나 조국이 그리운 것은 그 땅이나 하늘과 산이 아니라, 그 곳에서 숨쉬고 사는 정겨운 얼굴들이 있어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익숙한 자음과 모음들이 모닥불 지피며 다가오는 땅, 엄마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푸석푸석한 흙이 있는 곳, 그리운 사람들의 눈망울 속으로 달려간다.   오래된 동창들을 만났다. 허둥대는 삶의 고삐 멈추고, 마른 꽃잎의 책갈피 속 유년의 뜨락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이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해도 남은 시간 따스한 강물되어 서로의 가슴을 데펴주지 않을까?   바람이였을까? 찰나와 영원 사이, 세월의 골목마다 숨어있다가 할퀴고 지나간 것은 눈물이었을까? 가슴 헤집고 모질게 흩어지던 꽃잎들의 흐느낌은 외로움과 상처를 견디지 못한 꽃들의 아우성이었을까?   꽃잎들이 빛 바래져, 인고의 날들로 실강을 만들며, 눈가에 잔 주름으로 퍼질 때, 우리는 나목처럼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한다. 사랑이 이별로 무너져도, 사랑을 다시 하고, 무너진 사랑을 견뎌내야 한다. 청춘은 버릴 것 없는 축복이였다.   ‘소년은 한 옴큼 꽃을 꺾어와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하나도 버리지 말어”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황순원 ‘소나기’ 중에서   꿈이 부서져 낙엽처럼 저문 거리를 나부껴도, 미련 버릴 수 없는 오늘과 포기할 수 없는 내일 있어, 달무리는 달을 껴안고 희미한 빛의 둥근 테를 두른다.   그리운 사람들이여! 어둠 속에서도 촛불을 켜 주세요. 영혼의 어둠을 밝힐 날들 위해, 꺼지지 않는 심장의 등불 켜고 청춘의 촛불을 밝혀 주세요.   보고 싶은 사람이여! 그대 슬픔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나의 아픔 속으로 그대가 들어오지 못한다 해도, 별들이 모여 찬란하게 반짝이듯 당신은 나의 별이 돼 주셔야 합니다.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별로 내 곁에서 반짝여 주세요.   알지 못할 슬픔이 밀려오는 날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이 있었기에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였다고’ 사랑의 독백을 주술처럼 외워주세요.   그대 곁에 늘 별자리로 남아있겠어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대가 내 곁에 있듯이, 북극성 멀리 떠나 있어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   세월이 흘러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별로 내곁을 밝혀 주세요.   그리운 사람들은 별이 된다. 떠나도 그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곁에 있듯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엔 별이 뜬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엄마 젖가슴 가슴 저미 금빛 조약돌

2025.12.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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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게 갈대뿐이랴! 사랑도 바람도 나무도 떠나간 그대 목소리도 흔들린다.   한줌 목숨 지키기 위해 인생은, 마음의 끝자락도 흔들린다. 목숨 붙어있는 것들은 살아남기 의해 몸부림치며 흔들린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뒷마당 연못에 살던 갈대가 땅밑으로 숨어들었다. 가을 햇살에 연못 물이 마르기 시작하자 오리 가족은 숲속으로 거쳐를 옮겨 아기사슴 형제와 동거를 한다.   갈대는 혹한 속에 언 발을 비비며 목숨줄 붙잡고 봄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정원의 꽃들이 기지개 켜기 시작하면 갈대는 연못 가장자리부터 단단한 생명줄을 감아올린다. 갈대는 손잡지 않아도 어울려 사는 법을 안다. 무리지어 어깨 추스리며 따스하게 등을 어루만진다.     초라해 보여도 화려함을 탐하지 않고, 연인처럼 깍지 낀 손 서로 껴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한다. 꽃샘바람이 가지를 비틀며 꽃잎이 낙화돼 허공을 맴돌아도, 한여름 몰아치는 미친 비비람을 모질게 버티며, 갈대는 흔들릴 뿐 부러지지 않는다.     마음이 길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흔들리고 부러진다.   인생 후반부는 후회보다 성찰의 시간이다. 깨우침과 성찰없는 후회는 무의미하다. 성찰(省察)은 마음을 반성하고 깊이 살피는 것을 말한다. 행동거지, 생각, 감정을 되돌아보고 지난 날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찿기다   후회(後悔)는 과거에 잘못한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자기성찰 없는 후회는 무용지물이고 시간 낭비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하고 싶은 일을 미룬 것’과 ‘자신답게 살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라며 미루다 보면 결국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남들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려 삶이 공허해진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추앙 받는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는 78세에 그림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1600여점을 그림을 남겼다.   가난한 농부 집안의 10남매 중 셋째였던 애나 메리(본명)는 교실 한 칸짜리 시골 학교에 잠깐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다. 12살 때부터 밥을 먹여주는 댓가로 농장 일, 집 안팎 청소, 음식 준비, 바느질 등 15년 동안 가정부로 일했다.   27살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모지스와 결혼해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5명이 병으로 죽는다. 그림 속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의 모습과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모지스가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남편이 67세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삶에 가장 고달픈 길로 빠졌을 때 동생의 권유로 78세에 그림 그리기 시작한다. 모지스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5명으로 꼽히고 미국을 움직인 100대 인물로 선정됐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는 때이죠.’ 모지스의 어록이다.   목숨 있는 것들은 흔들린다. 뿌리만 살아있으면, 흔들려도 희망을 놓치 않는다. 후회없는 인생은 없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없다.   한해 동안 부족한 글 아껴 주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담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고 기러기 편에 적어 보냅니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인생 후반부 행동거지 생각 연못 가장자리

2025.12.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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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날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중략)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중에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를 앞두고 생의 마지막에 남긴 아버지의 독백이다. 헌팅턴비치는 이민아 목사가 생전에 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해변이다.   이민아 목사는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2011)에서 예쁜 잠옷 입고 서재로 가서 아버지가 ‘굿 나잇’ 해주길 바랬지만 아버지는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고 한다.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진 아버지 팔에 매달려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면서 날 밀쳐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고통으로 아파하는 딸 위해 흘리는 눈물이,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냐’고 미안해하던 아버지는 딸 10주기 기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며 가장 아픈 손가락이던 딸의 품으로 돌아갔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는 투쟁하며 사는가? 명예와 부, 지식과 행복, 사랑과 배신, 상처와 굴욕을 견디며 생의 한가운데로 던져지는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한줌 목숨 지킬 수 없어 우리는 빈손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용서를 빌며 회한의 눈물로 적은 편지는 부칠 곳이 없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은 파랑새가 되어 허공을 맴돈다.   사랑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은 어른을 흉내 내며 자란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장 가까이 함께 숨결 나누는 사람에게 사랑을 배운다. 아름다운 집과 값 비싼 옷, 멋진 환경보다 따스한 아랫목에 다정하게 두 발 비비며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강남 갔던 제비는 봄이 오면 다시 온다. 생태계 문제로 제비가 돌아오지 않아도 어머니는 대청마루에서 발 뒤꿈치 들고 빈둥지로 돌아올 제비를 기다렸다.   사업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시간을 쪼개는 일이다. 풀타임으로 뛰어도 감당 못할 노릇에 여자가 사업하는 건 생명 건 투쟁이나 다름 없다. 천방지축 잠꾸러기가 새벽 4시 기상, 지금까지 지속하는 건 ‘어머니’란 기적의 단어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투항하는 게 내가 사는 법칙이다.   애들은 날 닮아서 갈팡질팡 일거리를 만들었지만 할머니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정이 많고 착한 편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숨가쁘게 이리 뛰고 저리 달렸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 받고 아름다운 시절이였음에 틀림없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어떤 것이 축복인지 행복인지 알지 못한다. 산다는 것이 허무의 신발 가게에서 짝이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쩔뚝거리며 산다해도, 명절이면 품 속에서 데펴 꽃신 신겨주던 엄마 손은 따스했다.   하늘을 나르는 샤갈의 연인처럼 내 아이들이 행복한 사랑을 꿈꾸고, 피카소처럼 굵고 강렬한 선으로 스스로 인생을 창조하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 때 손주들 만나면 꼭 껴안고 볼에 뜨겁게 키스하리라. 내 침대에서 ‘미미’하고 자겠다며 차례를 다투는 손주들을 품에 껴안고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리라.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행복 사랑 이민아 목사 이어령 유고시집

2025.12.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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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슬픔이 아픔에게

견딜 수 없을 땐 눈물이 흐른다. 닦을 손수건이 없으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별빛마저 사라진 캄캄한 밤, 흐느껴 울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린다. 눈발이 목화밭처럼 대지를 하얗게 덮으면 슬픔은 새가 되어 회색빛 하늘가를 맴돌다가 마지막 얼굴 내미는 마른 잎새에 방울로 반짝인다.    고통은 아픔을 삼키며 슬픔이 땅에 닿을 때까지 심장에 박힌 못을 뽑는다. 세월이 가면 상처에는 새 살이 돋고, 대지에 뿌리내리는 단단한 나무 될 거라고, 부대껴도 흔들리지 말고, 눈처럼 그냥 녹아내리라고 말한다.    목숨만 살아있으면 슬픔도 아픔도 지나가는 바람이다.    절망은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가둔다. 빠져나올 수 없어 웅크리고 견디면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콤한 날이 올 거라 믿었었다.    아픔은 입술 깨물고 상처를 숨길 수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다.    꿈은 꿈을 먹고 자란다. 아지랑이처럼 따습고 포근한 유년의 꿈을 꾸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 ‘백목련’이 당선, 고김춘수 시인의 칭찬 듣고 양키시장에서 헐값에 구입한 바바리코트 입고 시인 흉내내며 동성로를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해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월 대보름 삼만이 아재가 연실을 풀어 날리면 내 연은 곤두박질 쳤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실을 단단히 감아 또 날리면 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햇빛에 대하여 / 바람에 대하여 /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 (중략)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 견딜 수 없었던 /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정호승의 ‘낙과(落果)’ 중에서     미국으로 왔다. 꿈 같은 무지개는 잠시 떴다가 지축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국어선생님 격려(?)로 국문학을 전공한 탓에 영어 실력은 미국 어린이 수준도 안 됐다. 당시에는 한국말을 잊을 정도로 인터넷과 유투브가 발달되지 않았다.   일요일 한국교회에서 한국말로 떠들며 무인도에서 홀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미국사람보다 더 확실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뼈가 삭도록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혀가 플리기 시작했다. ‘살만하면 죽는다’는 맞는 말이다. 사업하고 애들 뒷바라지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가까워지자 흘러간 시간의 파편들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어머니 젖줄 같은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일이다.   시인의 꿈이 사라져도 어머니 젖꼭지 만지작거리던 유년의 기억은 자음과 모음으로 남아 어머니의 젖줄처럼 내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20년이 넘도록 어떻게 매주 칼럼을 쓰느냐고 묻는다. 목숨 부지하기 위해 숨을 쉬듯, 한국인으로 남기 위해 나는 모국어를 껴안고 산다. 시인이 되지 못했어도 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나의 약속을 지키는 당당한 내 길이다.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옷은 바겐세일로 사 입더라도 꿈은 절대로 헐값에 사서는 안 된다. 네 아름다운 꿈을 가로막은 어떤 것들과도 타협해선 안 된다.’ 내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표지에 적힌 문구다.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여린 힘으로 큰 바퀴를 굴려 곡식을 찧는다.   생의 소중함을 알면 고통이 위로가 되고 아픔이 슬픔의 눈물을 닦는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회색빛 하늘가 어머니 젖줄 어머니 젖꼭지

2025.12.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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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이름답던 날들

할머니 침대는 등이 굽었다.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 방 퀸 사이즈 침대에 손녀 손자 둘이 붙어잔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널 뛰기 하듯 춤 추고 설쳐대니 침대 한 가운데가 찌그러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스스로 쪽팔린다는 건 알았는지 일단 할머니 방에서 철수, 제 방에서 자기로 합의했다. 밤이면 베이비담요 껴안고 뱀이 땅바닥 기듯 스르르 계단 내려가 할머니 방으로 숨어든다.   미국 아이들이 애지중지, 낡아 손 때 묻은 Security blanket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할머니는 우리 애들을 지켜주는 영원한 보호막이고 사랑의 피신처다.   어릴 적 옷칠한 반들반들한 장판에 누워 엄마 팔 베게 삼아 말랑말랑한 가슴에 손 얹으면 포근해 이내 잠이 들었다. 넘어지면 아까징끼 대신 침 발라주는 엄마 손은 약손이고 어머니 젖무덤은 공포와 두려움, 귀신까지 쫓아내는 주술방망이였다.   다시 한 해가 떠나간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Thanksgiving Holiday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휴일이다. 메이플시럽, 칠면조, 크랜베리 소스 등으로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한 해의 수확과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기념하며 감사를 전한다.   딸은 미 대륙의 동쪽 끝 뉴저지에, 아들은 서쪽 끝에 살고 있어 견우 직녀 오작교에서 상봉하듯 일정 조절은 팔방마녀인 딸이 잡는다. 올 크리스마스는 샌디에이고 아들 집에서 뭉치기로 하고 추수감사절은 각자도생 본가(?)에서 보내라고 했다. 내 욕심만 채우면 사위와 며느리에게 미운 틀이 박힌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게 사랑이고 선물이다.   올해는 ‘Gift Money Allowance(선물 제한 금액 적용)’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부모들에게 주고, 손주들에겐 나이에 따라 배당 액수를 알려 주었다. 나이 탓에 적게 배당 받은 손주는 ‘모자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Allowance를 주는 거지. ‘한도액 초과 금지’라는 문자를 보낸다. 녀석, 손가락 세며 잔머리 굴리느라 고심할 것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식구보다 다정한 이웃들을 만났다. 친 형제, 자식보다 더 살뜰하게 돌봐준다. 고장난 컴퓨터 손봐주고, 무식한 하이텍 기능공 훈련시키고 쓰레기 수거 날엔 쓰레기통 옮겨 주고, 눈이 오면 드라이브웨이를 치워준다.   이토록 좋은 가족 같은 이웃이 앞집에 살다니! 양아들(Chosen Family)로 맺은 이웃은 내 품을 떠난 리사와 동갑이다. 하늘은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한 사람을 선물로 보내준다. 별이 어둠 속에 다시 빛나듯 태양은 지면 내일 다시 뜬다.   내게 근사한 가족, 형제 같은 ‘바라기’가 생겼다.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인데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을 가르킨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목이 굳어진다면, 달콤한 감홍시 먹을 때처럼 사는 게 달짝지근 하고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 해(Sun & Son)바라기로 맺은 나의 새 가족이 좋아할 요리 창조(?)하느라 머리가 뱅뱅 도니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추수감사절 함께 보낼 식당은 미리 예약했다. 새 식구들과 나누는 행복한 만찬! ‘미미’라 애칭 부르는 손주들에게 줄 성탄절 봉투에 이름을 예쁘게 적는다.   가슴이 따스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차가운 겨울, 눈발 흩날리는 오후에도, 조각이불처럼 따스한 사랑 수놓으며 가슴 속 한 송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할머니 침대 가족 형제 수확과 가족

2025.11.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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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목숨이라도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산다. 쓸 데 없는 것들에 흥분하지 않고,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다가올 내일도 알 수 없고 순간의 궤적도 비껴 나갈 수 없어도. 살아있는 순간에만 충실하면 인생은 견딜만하다. 장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속 빈 강정이거나 빈수레처럼 요란한 방정이라 해도 여린 손 마디 펴고 작은 돌 주워 탑을 세운다.     인생살이에 절대는 없다. 꼭히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되는 것도 없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짐이니(死也一片浮雲滅) / 뜬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浮雲自體本無實) (중략) 담담히 삶에도 죽음에도 매이지 않네(澹然不隨於生死)’-작자 불분명   뜬구름처럼 생과 사는 실체가 없고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존재의 현실일 뿐이다. 집착을 버리고 타인을 차별하지 않으면 삶이 초연해진다.   돌을 던지면 명중하지 않더라도 그 쪽으로 날아간다. 바람부는 날, 사는 것이 부대끼고 힘들어도 연줄을 놓지 않으면 연은 허공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린다.     생의 비극과 희극은 번갈아 가면서 온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화려한 꽃가마 타고 달리지만 언제 파멸의 언덕으로 내동댕이 칠 지 모른다. 자랑은 금기다.     ‘비극의 탄생(Die Geburl der Tragodie)’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고통 및 욕망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비판을 담고 있다. 니체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술과 진리에 대한 철학을 탐구하며 예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살아있는 것만큼 장엄한 현실은 없다. 주인공이 살아있는 한 연극은 지속된다. 물구나무서기 하듯 비극과 희극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일지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어도,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달려있다. 어릴 적 소꿉장난 하며 동무와 시냇물에 발을 담그면 강물은 은빛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뭉게구름으로 떠올랐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영문학사에서 명대사로 꼽힌다. ‘어느 쪽이 더 고상한가,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맞는 것과 밀려드는 역경에 대항하여 맞서 싸워 끝내는 것 중에. 죽는다는건 곧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이 들면 마음의 고통과 몸을 괴롭히는 수천 가지의 걱정거리도 그친다고 하지. (햄릿 3막 1장 중에서)’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심오한 물음표다.   멜로드라마는 오로지 주인공만 정의롭고 정당화되지만 ‘비극은 모두가 정당화되며 누구도 온전히 정의롭지 않다’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어느 한계까지는 모든 사람이 옳지만 맹목적인 열정으로 한계를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권리에 심취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세계는 우리 존재와는 관심 없이 돌아간다. 인생은 극복하는 자와 넘어지는 자로 분류된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목숨이라 해도, 발목에 묶인 사슬 풀면, 부서진 날개 추스리며, 마음의 강 건너, 하늘 높이 비상의 날갯짓으로 떠오른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조각 뜬구름 건너 하늘 비극과 희극

2025.11.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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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장편소설 쓰듯, 무거운 짐 내려 놓고

눈이 온다. 쌓인다. 밤새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다. 낙엽은 마지막 치장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눈은 잎새마다 사뿐히 내려 앉는다.   울긋불긋 흩어지는 잎새에 ‘시월의 마지막 밤’의 추억을 떠나보내기도 전에 계절은 하얀 모포를 쓰고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세월 속으로 떠나간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애들은 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민둥산에 썰매 타러 간다. 산타할아버지가 타는 바퀴 달린 멋진 썰매(Sleigh)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슬래드(Sled)을 매고 신나게 미끄럼을 탄다.   Sleigh는 산타할아버지가 타는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썰매로 눈이나 얼음 위를 달릴 수 있는, 말이나 사슴이 이끄는 지붕 없는 자가용(?)이다.   Sled은 크기가 작고 밑이 납짝해 눈이 쌓인 언덕에서 탈 수 있다. 큰 차이는 가격이다. 롤스로이스와 삼륜 자전거다. 비싼 산타할아버지 썰매보다 슬래드는 몇달러 주고 사서 언덕에서 깔고 엎드려 아래로 내려가면 스릴 만점이다.   아이 셋이 각자 Sled 들고 가면 할머니는 놓칠 새라 대형 쓰레기통 뚜껑에 몸을 싣고 아래도 질주한다. 주름 진 어머니 얼굴은 눈 속에 핀 목련 꽃이다.   내일은 리사가 떠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가슴이 내려 앉아도 울지 않기로 한다. 마지막 편지에서 리사가 부탁한 것처럼 행복해지기로 한다.     이렇듯 이른 계절에 눈이 내리는 건 모든 아픔과 고통을 땅에 묻고 새로 시작하라는 소망일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라고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 두었구나. 손자들이 내게 보낸 카드를 재활용해 카드 앞장에 ‘Kee hee. Thank you! Save my life’라고 적고, 카드 안쪽에는 원하는 문장(You’ve always given me freedom to explore my dreams. every step of the way. Thank you for all you are to me)에 동그라미 쳐서 부엌 서랍 속에 감춰 두었구나. 잠시 떠나있을 뿐이라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 심장수술 받고 기적처럼 살아나 주변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착하고 성실하며 남을 배려하고 거짓을 입에 담지 않고 인내심이 강하며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티나와 크리스는 리사를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우리 애들이 어른을 섬길 줄 알고,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는 것은 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과 리사에 대한 각별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가슴에 담을 수 없어 유해를 뒷마당에 묻었다. 리사방 침실과 연못이 보이고, 코스모스 피는 곳에 ‘Lisa Garden’을 만들었다.   ‘내가 떠나면 누가 엄마를 돌보느냐’고 걱정하던 착한 딸! 수간호사는 ‘엄마 챙겨줄 사람 많으니 걱정 말고 떠나도 된다’라고 리사에게 말하고, 지금 안하면 영원히 못하니까 하고 싶은 말 모두 하라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육체는 인식을 못해도 말은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딸 티나가 리사의 오른쪽을, 내가 왼쪽 가슴을 껴안고 의식이 불투명해질 때까지 수없이 ‘사랑한다. 아무 걱정말고 잘 가라’고 속삭였다. 자식에게 ‘이제 떠나도 된다’고 하는 것처럼 힘든 말이 있을까? 숨을 멈추기 전 리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마지막 신호였다.   계절은 하염없이 바뀌고 언 땅에 꽃은 피고 지고, 장편소설처럼 사는 게 힘들어도, 무거운 짐 내려 놓고, 잊힌 것들 속에 잊히지 않는 것들은 화석으로 남는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장편소설 이기희 산타할아버지 썰매 카드 안쪽 어머니 얼굴

2025.11.1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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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너 안에 내가 없다 해도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사실 나도 믿지 못한다. 마음이 변하면 나도 변한다. 기분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된다. 기분 만땅일 때와 땅 밑으로 가라 앉을 때는 천차만별 차이다. 같은 이슈로 들락 날락, 오락가락 한다.   남의 저울로 자기 몸무게를 잴 수 없다. ‘요즘 많이 예뻐졌네요’라는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거울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실(Fact)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탄식할 필요 없다. 내 맘도 내가 못 다스리는데 타인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추수 끝난 밭에서 이삭 줍기다.   학창 시절 그림과 문학에 몰두, 수학과 과학은 꼴통이였다. 애들은 ‘숫자는 낙제, 돈은 천재’라며 지들 생일 까먹었다며 날 성토한다. 과학은 수학보다 더 복잡해서 이해 능력 불가, 골 때리는 과목이다.     세월이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기도 한다. ‘양자물리학’에서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멘트에 충격 받아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루는 새로운 종류의 역학이며 입자는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자 컴퓨터, LED, GPS, 레이저, 반도체 등은 모두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기술들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달달한 사랑의 표현도, 감정은 심장이 아닌, 뇌에서 생긴다는 과학적 사실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와 미시적인 계의 현상을 다루는 이론으로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 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한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날, 경북대 뒷산에서 수성 못까지, 도시의 끝을 오고 갔던 첫사랑의 소년은 터무니 없는 현상이 아닌, 입자들의 소중한 만남이었을까?   사람은 속이기 힘들어도 뇌는 속일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기능,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뇌에 미치는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면 인생은 훨씬 살만해진다.   내 몸은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비행하는 나의 우주다. 마음먹기 따라 뇌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찿아낸다.   생명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우리의 뇌를 화가가 그리는 수채화에 비유한다. 화가는 사물을 뎃상하고 물감으로 채색한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듯 뇌도 세상의 밑그림을 그린다. 각자의 뇌 속에 주어진 본능과 욕구에 관한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에 어떤 색을 칠할지, 명암을 줄지는 각자의 자유와 의지의 영역이다. 밑그림이 부족해도 멋지게 채색하면 명화를 그릴 수 있다.   인생은 마음먹기 달렸다. 어설픈 조언과 판단, 자책으로 포기하면 안 된다. 나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장애물이 겹겹이 앞을 가로 막아도 발버둥 치지 말고 숙연하게 받아 드리자. 어린 아이는 울 때 사지를 비틀고 운다. 그래도 이쁘다. 나이 들어 한탄하고 되씹고 후회하면 촌스럽다.     인생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담대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나비처럼 사뿐히 소풍가는 기분으로 세월 속을 날아간다.   ‘너 안에 내가 없다’ 해도 내 안에 너는 항상 작은 입자로 남아 있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모두 양자역학 생명과학자 김대수 몰두 수학과

2025.11.0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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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때 그 시절, 그대 곁에 머문다

가을이 온다. 오고 있다. 가을이 왔다. 떠날 때는 따스한 햇살 뭉치가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여 울굿 불긋 실타래처럼 반짝거렸다.   여행 떠나기 전 정원사 아저씨께 깻잎은 한잎씩 따서 봉지에 담고 토마토는 빨갛게 익은 것만 골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돌아온 날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더니 숲 속 나무들이 초록옷을 벗고 활옷을 입기 시작한다. 떠나보낼 겨를도 없이 나무들은 다음 계절로 화폭을 펼친다.     가을은 낙엽의 갈 길을 재촉한다. 미련 없이 서둘러 떠나던 그대 뒷모습처럼 바람에 섞여 안개처럼 흩어진다. 처음 만난 모습보다, 흩날리는 바바리 코트의 기억으로 남은 그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작별의 옷자락을 여민다.   ‘세월이 유수로다 어느덧 또 봄일세. 구포에 신채나고 고목에 명화로다. 아이야 새술 많이 두었으라 새봄놀이 하리라’ 세월유수(歲月流水)는 고종 때 가객 박효관이 ‘가곡원류’에 실린 시조에서 유래한다.   가을이 오면 죽기 살기로 깡술을 퍼마시던 가난한 문우들 생각이 난다.     모두 가난했다. 허름한 주머니에는 구겨진 화선지 한장과 해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직업이 불분명한 시인 지망생이거나 연중행사로 신춘문예에 낙방한 소설가들은 해가 지면 이조주촌이나 대동강 막걸리 집으로 스며들었다.   돈 버는 사람, 돈 가진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술을 마셨는지 아리송하다.     ‘저녁은 사치’라고 주장, 안주 없이 깡술을 한 잔이라도 더 마시는데 합의, 나는 술을 전혀 못 먹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매일 모여서 마셨는데 술값은?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총대 매고 시계를 잡히거나 윗도리를 벗어 계산했다.   ‘적당히 마셔라.’ 혀를 끌끌 차며 대동강 아줌마는 외상장부에 적는둥 마는둥 했다. 아줌마는 여태 살아 계실까? 신세가 비슷하면 가난을 깃발 삼아 끼리끼리 뭉친다.     함께 있으면 행복했다. 내일이 암울해도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젊었고 열정과 패기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문인 지망생 김원도를 주축으로 주변문학 동우회 작품집을 출간했다. 원도는 청춘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고집이다. 굶주림과 절망은 생명의 불꽃마저 어둠으로 덮는다.   시차 극복으로 뒤척이는데,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어둠 속에서 이웃 애들이 공차기로 야단법석이다. 아이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지치지도 않고 공놀이를 한다. ‘헐!’ 하고 놀랐다가 슬며시 혼자 웃는다. 내게도 저런 미친 날들이 있었지.   주린 배 움켜쥐고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던 그 시절!     추억은 중독성이 강하다. 순수하고 새록해서 머무르고 싶은 순간으로 비행한다.   때늦은 멜랑콜리로 흩어지는 낙엽에 시름을 묻는다. 늦은 나이에 샌티멘탈이라니.     ‘그대여, 여기 바다가 보이고 / 많은 사람들은 한 가지씩 좋은 추억에 /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하지만 / 그대여, 다시 돌아온 이 바닷가 / 그대 떠나간 조금은 슬픈 추억 때문에(중략) / 그대 그리워 다시 찾아올수 있겠지 / 나의 슬픈 바다여, /지쳐버린 내 마음 쉬어 갈 수 있는 곳 ‘-조정현 ‘슬픈 바다’ 중에서     잊었다고, 모든 것이 지나갔다고, 스쳐가는 바람의 날개짓이나, 속절없는 세월의 빛바랜 낙엽이라 해도, 그 때 그 시절, 함께 꿈꾸던 약속의 언어들은 허공과 우주를 넘어 영원토록 그대 곁에 머문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동강 아줌마 주변문학 동우회 대동강 막걸리

2025.10.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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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줘서 고마워

지나간 것들에 연연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뒤돌아보면 어제의 아픈 편린들이 못자국처럼 상처로 남아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할 때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경고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절벽을 마주하면 어떻게 할까? 뒤는 한치도 물러날 수 없는 막다른 길이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내인생이 여기서 끝장 날 것인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까마득한 절벽에서 떨어져도 살아남는다.   보통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186미터가 되는 백마강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전설은, 그 숫자가 과장 됐다 해도 백제의 멸망과 슬픈 궁녀들의 이야기로 나라 잃은 자의 슬픔과 비통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삶과 죽음은 인생의 잔인한 반복이다. 건강식 챙겨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 안 받고, 부지런떤다고 오래 살지 않는다. 각자의 시계 추에 맞춰 태어나듯, 죽음은 순서에 관계없이 떠날 시간에 앞을 가로 막는다.   이번 여행 중에 죽었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6년 전에 죽었었고 기억 속에 지워졌다. 더 이상 친구를 떠올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매달리고 떠올리는 것보다 잊고 단념하며 추억의 잔해들을 땅에 묻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떠나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수월할 테니까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그림자마저 지우지 않았다. 벌써 7여년이 지났구나.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있는 널 만나러 갔다. 휠체어에 앉아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많이 나았다’며 나를 위로했다. 죽지 않으면 사는구나 생각했다.     근데 소식이 끊어졌다. 미국으로 돌아와 전화도 하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연락도 해 보았다. 대구 갈 때마다 냉면과 갈치밥 함께 먹던 활선생님께 생사를 묻고 또 물었다. 날 포기시킬 작정으로 ‘마지막 모습 보면 슬퍼할까 봐 친구는 그냥 떠난게 아닐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내 가슴에 너를 묻었다.   너는 유일한 친구고 동반자였다. 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귀로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지표였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은 나의 희망을 너는 꺾지 않았다.   네가 아니였으면 자서전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은 타인의 언어처럼 익숙하지 못해 두려움에 가슴이 떨려왔다.   ‘네가 사는 세상 이야기는 누구도 담을 수 없다. 오직 너 만이 쓸 수 있다. 네가 두려워하는, 높이 뜬 별이 지상으로 침몰할 때 어쩌면 북극성처럼 빛나는 시간이 너에게 올 것이다.’라고 친구는 위로했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자의 가슴에 붉은 꽃 한송이 피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서울 근교에 살아있다는 걸 알아냈다. 단숨에 달려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세라피를 받는 친구는 ‘네 칼럼은 빠지지 않고 읽는다’며 편안해 보인다. ‘왜 연락 안했니?’라고 묻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만나지니까. 패티킴 리사이틀 연습시키던 얘기하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가 명절이라서 늦은 밤중에 택시 못잡아 혼줄이 났다.   세월은 흘러가도 시간은 붙잡고 매달리면 잠시라도 옛날로 되돌릴 수 있다.   살아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만남은 연인처럼 오늘이 1일이다. 세월은 우리편이다. 죽는 날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이상 친구 냉면과 갈치밥 자의 가슴

2025.10.2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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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의 날개짓 같은 그대 이름은    내가 나를 모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생성되고 나와 함께 소멸된다.     두 주간의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칡흙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흩어져 떠 있다. 별은 이제 서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너무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았기 때문일까? 세월은 많은 사람들을 내 곁에서 떠나보냈다. 그리움도 아픔도 사랑과 고통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견딜만한 상처로 세월의 껍질이 단단해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극심한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 속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5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내면 세계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휘청거리는 밤 하늘에서 별은 살아움직이듯 꿈틀거리며 생명은 마지막 표효를 한다.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용돌이 치는 별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극복하려는 생의 처절한 사무침과 갈망이 담겨있다. 교회 첨탑과 서로 어깨를 기댄 작은 집들은 프랑스 생레미 마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낸 네델란드 시골 마을 풍경이다. 둘아갈 수 없다 해도 고향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떠난다.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쯤 강의 상류로 돌아가기 위해 수천 Km를 헤엄쳐 태어난 곳으로 잊지 않고 찿아간다. 연어는 강으로 돌아갈 때 지구의 자기장과 후각능력을 활용한다. 자기장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찿는 나침반 역활을 한다.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는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다음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회기한다. 알을 낳을 때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을 갖고 있다. 생명체는 처음 자란 곳을 좋아한다. 회귀본능(回歸本能) ‘귀소본능(歸巢本能)’이다.     연유를 묻지 않는다 해도, 연어는 더 넒은 세상에서 살다가 물살을 거스르는 위험을 무릎쓰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의 강은 언제 발을 담가도 따스하다.   경북여고 재경 동창회 가을단합대회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서울 귀국 중 친구 배려로 사 오십여 년 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얼굴도 이름도 헷갈리는 만남이였지만, 어머니가 장작불에 데운 물로 놋대야에 발을 씻어주실 때처럼 가슴이 따스하게 저려왔다. 눈물이 났다.   이제, 내 나라인데도, 여전히 허전한 내 집으로 돌아와 동네 할머니가 손수 담근 집된장 넣고 씨래기 된장국을 끓인다. 씨레기는 현대백화점에서 몽땅 구입했다. 이걸 도리구매라고 하나? (모르겠다!) 여독이 풀리고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미국에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이웃 할머니(나를 뺀)들은 여전히 한국에 산다. 눈꼽만큼 도와 드리면 별의별 귀한 채소와 씨앗, 김치를 담가 주신다.   집사 아저씨와 합작으로 이웃 아이들이 ‘Welcome Home! MiMi’라는 배너를 걸어 나의 귀향(?)을 축하했다. 할머니(grandma)라고 부르지말고 ‘미미’라는 애칭으로 부르라고 피자 사주며 사전 협의했다.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다.     덜 외롭게 살려면, 살 비비대고 사는 것처럼 따스한 강물을 없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어두운 나의 창가를 찬란하게 비출 날을 기다린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이웃 할머니 동네 할머니 네델란드 시골

2025.10.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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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철의 운명 인간의 운명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동을 만든다.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격을 만든다, 그리고 인격이 곧 운명이 된다.’ 영화 ‘철의 여인’에 나오는 대사다.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의 삶과 정치적 여정을 그린 영화로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대처의 삶을 통해 여성 지도자의 도전과 성장, 신념과 결단으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한 인간적인 고뇌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운명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운명과 맞장을 뜬다. 존재하는, 생명 있는 것들 중에 오직 인간만이 운명을 극복하는 힘과 능력을 가진다.   해외자문의원 총회를 마친 후 경상북도의 배려로 산업의 쌀인 철을 생산하는 포스코(POSCO)를 방문했다. 세계 철강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란 것밖에 모르는 나의 무식함이 도전과 충격으로 휩싸였다. 용광로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철의 역동적인 변신을 보며 가슴이 뜨겁게 불 타 올랐다. 한계를 넘으면 무한의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열린공간 ‘Park 1538’은 포스코인의 열정을 상징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포스코의 첨단기술과 용암처럼 흘어내리는 철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철이 녹는 온도 1538도와 열린 공간을 뜻하는 ‘PARK1538’는 포스코인들의 땀과 비전을 상징한다. 쇠를 녹이는 거대하고 장엄한 변화와 역동적인 모습을 보며 그동안 안일함과 무기력으로 지쳐있던 일상의 심장을 뛰게 했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난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생각없이 쉽게 살았나?   역사박물관은 포스코의 역사와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이란 팻말 아래 선경지명으로 나라의 미래와 역사를 바꾼 포스코 설립자 박태준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모형이 전시돼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소리를 낸다. 이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는 코스코의 어록은 죽어도 살아있는 철의 운명을 암시한다. 철은 몸을 불태우고 심장을 갈라내며 수백개의 형태로 새롭게 재생산된다.   인간이든 물질이든 운명을 넘어 죽음의 강을 건너면, 작은 칩으로, 혹은 존재의 작은 형태로 남아 소멸되지 않는 모습으로 우주의 일부분이 된다.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정해진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 운명은 벗어날 수 없어도 운명의 물꼬를 바꿀 수는 있다. 불가능을 극복하면 새로운 길을 향해 운명의 방향이 바뀐다.   포스코는 시대의 절망과 가난을 극복하고 희망과 풍요를 꿈꾸는 장엄한 출발이고 미래를 향한 도전이다. 포스코는 도약을 멈추지 않는, 물리적 소멸과 단순한 철의 생산이 아니라 자원의 재활용, 예술적 상징, 그리고 미래 사회의 변화 등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 되어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삶과 처지가 미리 정해놓은 초인간적인 힘, 또는 숙명(宿命)으로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생성과 소멸의 굴레에서 인간이 운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때, 철은 전신을 용광로에 녹여 수천개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철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고, 운명의 한계를 뛰어 넘어라고 말한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운명 이기희 운명 인간 포스코 설립자 미래 사회

2025.10.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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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작심삼일 나의 해방일지

집 떠난지 하루도 안돼 돌아갈 생각을 한다. 멋지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짐 가방 챙기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가슴이 벌렁거렸다. 옷장을 난장판 만들며 이 옷 입을까 저 물건 가져갈까 며칠 동안 생쇼를 벌리며 기분이 달달했다.   생의 군더더기와 떼를 벗고, 무거운 일상의 짐 내려 놓고, 깃털처럼 가볍게 떠돌다 돌아오면, 오래된 정원에 묵은 씨앗 한톨 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족쇠처럼 가두던 낡은 반복과 허울 벗어 던지고 ‘가장 소중한 무엇이 여태 가슴 속에 남아있기나 하는 건지’라는 질문을 극복하리라 다짐했다.   근데 무슨 일! 내 결심은 대체로 반나절도 못가 결판이 난다. 원상복구 시나리오의 벽을 넘지 못해 되돌이표로 환원한다. 여행의 셀렘과 흥분은 하루 아침에 피로와 불편함으로 탈바꿈해 번거롭고 손떼 묻은 집이 그리워진다.   나는 집 토끼다. 세상에서 내 집이 제일 좋다. 떠난지 하루만에 집이 그리워진다.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남의 눈치 안 보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는 내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휘황찬란 화려하지 않아도 구중궁궐에 사는 황제보다 편안한 내 집. 호탤 부페에 줄 세워 산해진미로 차려놓은 요리보다 텃밭에서 갓 뽑은 채소로 정갈하게 차린 소찬이 그리워진다. 개수가 많은 것보다 적지만 편안한 것이 가슴을 파고든다.   집안 곳곳에는 세월의 손떼 묻은 추억들이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오색 찬란한 나비처럼 정겨운 언어들로 날아다닌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나이 들어 철 안들고 죽지도 않으면 여러모로 폐를 끼친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진주처럼 고귀하고, 새벽 달처럼 이지러져도, 살별은 추락해도 새벽별은 찬란하게 다시 떠오른다,   무슨 일이건 준비할 때가 제일 기분 좋고 흥분된다. 무엇인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달콤하고 달짝지근한 기대가 없어지면 인생이 정체된다. 마음이 낙후되면 삶의 활력이 떨어지 살아갈 의미가 없어지고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뒤쳐진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변화가 없어지면 생이 허무하고 사는 것이 지겨워진다.   낙후된 삶에 대한 인식과 자기반성은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틀고 성장의 동기로 새로운 인생을 창조한다.   ‘위버멘쉬(초인)’는 니체가 1878년 출간한 원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Human, All Too Human)’을 기반으로 작업한 책이다,   니체는 ‘질문하는 자만이 자유로와진다’라고 말한다. 가족과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감과 의무로 짊어진 짐들이 생의 족쇄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낮설고 고독한 인생살이에서 오판과 실수로 길을 잃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소중한 기적은 없다.   위버멘쉬는 ‘넘어선(Uber)과 사람(mench)’의 합성어다. ‘(보통사람을) 넘어선 사람’을 말한다, 위버멘쉬는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누구의 시선도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이다.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초인) 사이에 걸쳐진 밧줄 위에 서 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극복하면 초인의 삶을 산다.   인간은 스스로 극복하고 창조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작심삼일로 끝을 맺지만 아늑한 초가삼간이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을 한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작심삼일 이기희 원상복구 시나리오 q7editions 대표 반복과 허울

2025.09.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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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천국의 노래

‘우리 인생길의 한 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단테 신곡 지옥 편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단테는 호메로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와 함께 유럽 문학사 최고의 위치에 있다. 신곡은 이탈리아 문학의 최고작이자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단테가 35세 때 밤에 길을 걷다가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로마 최고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내려와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하고,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소설에는 1000명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묘사가 강렬하고 생생하지만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가지각색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지옥에서의 형벌은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다시 되돌려받는 식으로 전개된다. 바람을 피우면 바람에 날아다니고, 과하게 탐식하면 괴물에게 먹히고, 인색하거나 낭비하면 돈주머니 같은 돌을 굴리는 형벌을 받는다.   지상에서의 저지른 악행과 똑같은 지옥의 형벌이라고 해서 ‘콘트라파소(Contrapasso)’라고 한다.   콘트라파소는 라틴어의 ‘정반대’란 의미의 ‘콘트라(Contra)’와 ‘고통을 당하다’라는 동사 ‘파티오르(Patire)’ 합성어로 ‘지상에서 행한 악한 행동은 지옥에선 자신이 당한다’라는 뜻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勸善懲惡), 뿌린 대로 거둔다와 일맥상통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여태 무엇이 남아있기나 하는지, 스러지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고통과 슬픔에게 묻는다. 사는게 허망해지고 공허감과 권태감이 스멀스멀 해질녘의 외로움으로 밀려온다.   무엇을 얻기 위해, 누구를 위해, 그토록 모진 세월을 견디고 버티며 살아왔을까?   한용운의 오언절구 ‘월욕락(月欲落)은 달이 차고 지는 것처럼 하염없은 인생을 아쉬워한다 ‘松下蒼煙歇 鶴邊淸夢遊 山橫鼓角罷 寒色盡情收’(소나무 아래 푸른 안개 스러져 가고/학이 잠든 언저리에 노닐었던 맑은 꿈이 여라/산이 비끼니 이제는 피리 소리마저 그치고/찬 달빛 서서히 걷히니 이토록 아쉬운 것을’   쇼펜하우어는 지옥 편의 묘사는 머리에 착착 들어오는데, 연옥 편과 천국 편의 묘사는 뭔가 두루뭉술하며 이해가 안 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데 그 이유는 ‘현실이 지옥과 같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장 차이다. 악함과 선함은 변덕과 자기 방어 논리다. 아침에 마음 다스리고 오늘 하루 착하게 잘 살아보세를 다짐했지만 해 질 무렵에는 스스로 만든 족쇄가 발목을 잡는다.   신곡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금만 실수와 악행에도 무지비한 지옥으로 떨어진다.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질 건지 천국으로 갈지 몰라 나는 천국을 믿기로 한다.   천국과 지옥은 스스로 만든다. 살아있는 동안 지옥 대신 천국의 노래 부르며 착하고 마음 따뜻하게 살면, 사람 때문에 울어도 사랑 때문에 웃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천국 편의 지옥 편의 동안 지옥

2025.09.2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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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차별의 강을 건너

차별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차별을 극복하는 길은 차별한 사람보다 더 나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세상 어느 곳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내가 아는 동양 사람들 중에서 네가 제일 똑똑해’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한국 사람을 까는 말이다. 동양인을 얕보고 깔보는 뜻이다. 동양 사람은 무식하고 예의 없고 거렁뱅이란 뜻이다.     거렁뱅이(Begger)는 남에게 빌어먹는 사람이다. 영어 속담 명언 사전에 ‘거렁뱅이는 거렁뱅이와 어울리게 하라(Let beggers match with beggars)’는 말이 나온다. ‘끼리끼리 놀아라’는 말이다.   ‘칭챙총’은 서양권에서 동양인, 특히 중국인을 조롱할 때 사용하는 비하 표현이다.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라는 의미로 문화적인 모욕이 담긴 말이다.   19세기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철도 건설, 광산, 세탁업에 종사했는데 중국인들의 언어를 희화화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 이후로 아시아인 전체를 향한 조롱 섞인 차별적 영어 슬랭으로 굳어졌다.   ‘니거’는 라틴어 ‘niger(검은색)’에서 파생된 단어로 17-19세기 미국 노예제도 시대에 흑인 노예를 부르는 명칭이다. 니거(Nigger)는 가장 금기시되는 인종차별 슬랭이다. 미국 역사 속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여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된다.   봉시아저씨(이제는 할배)는 40년이 넘도록 우리집 대소사를 챙겨 주고 화랑일을 맡아 집사 역할을 한다. 레스트랑을 여러 곳에 운영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우서방 대신 집 안팍 일 도와주고 애들 운동 경기 응원하러 간다.   라오스에서 경찰 신분이였는데 공산 세력을 피해 정글을 헤매며 목숨을 건졌다. 과일 열매나 별의 별 것 다 잡아먹으며 정글에 숨어 한달 만에 타일랜드에 도착해 가족 상봉을 한다. 우여곡절, 난민 자격으로 온 식구가 미국에 정착해서 8명의 자녀가 결혼해 17명의 손주를 두었으니 성공한 이민자로 꼽힌다.   어떠한 상황에도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를 나는 믿는 편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키 작고 왜소한 봉시 아저씨가 서투른 영어로 말을 해도 아무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일이다. 화랑 손님들은 오히려 주인보다 봉시 아저씨를 더 찿는다. 인품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봉시는 한결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누구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느린자의 미학을 실천한다.   ‘FOB(Fresh Off the Boat)’는 원래 멋쩍고 어색한 상황이나 상태를 말한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어색하고 적응을 못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영어가 서툴고 서양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아시아 이민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Oriental(동양인)’은 이국적이고 낯선 차별적 뉘앙스로 사용되어 ‘Asian’이라고 지칭해야 한다. ‘GooK’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동양인을 명칭할 때 썼던 단어인데, 지금도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사용된다.   강물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모두 껴안고 큰 바다로 흐른다. 편견과 차별을 넘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면 다함께 차별의 강을 건널 수 있다.   잘난 체 있는 체 하지 않고, 공공 장소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지 말고, 누구에게나 정중하게 대하고, 언행을 가다듬고, 낮은 자세로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 목화 꽃으로 명주실을 잣아올리듯 아름다운 조각 이불을 함께 수 놓을 수 있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차별적 영어 차별적 뉘앙스 봉시 아저씨

2025.09.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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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꼴찌의 행복

여러명이 경주하면 항상 꼴찌다. 근데 홀로 뛰면 나는 늘 일등이다 운동 신경 발달 부족과 주의력 결핍으로 잘 넘어져 꼴찌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생활의 달인 우리 엄니 김해연 여사 개똥철학에 의하면 ‘머리만 잘 돌아가면’ 사는데 별 문제 없다는 실사 구제의 원론이다.   우리 집은 스스로 명성을 자랑하는 요리왕이거나, 요리왕에게 빌붙어 아부하며 먹거리 챙기는 두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된다.   홍콩에서 쇼부라더스 영화 필름 제작자로 일할 때 이소룡(?)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우서방은 미식가에 식도락가의 명성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회사 명의로 십 수 년을 특급 호텔 샹그릴라 등에 거주하며 미슐랭 스타 레스트랑에서 즐기던 음식 자랑에 애들은 선망의 눈초리로 존경을 표한다. 돈 안들이고 혼자 즐기는데 초를 칠 일 없어 내게는 소 귀에 경 읽기다.   나는 양은 냄비에 라면 끓여 찬밥 말아먹어도 꿀맛이라서 감지덕지 먹어 치운다. 어머니는 한식요리 대가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다. 스스로 궁중요리 내지 종가집 전통요리 손맛을 자처해서 찬사를 받는다.   퇴근 시간이면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 정성스럽게 저녁상을 준비하시는 어머니. 명절이면 밤잠을 설치며 강정 약과 유과 수정과 식혜를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교회 마당에서 배포(?) 하신다. 수혜자는 어머니 손잡아 드리며 깍듯이 인사 잘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 앞에서 기 죽은 적은 없지만 먹거리 앞에선 생계가 달린 문제라서 머리 수그리고 숙연해진다.   우리집 식탁의 하이라이트는 딸 크리스티나의 등장이다. 컬리너리스쿨 수석 졸업에 푸드네트워크 인턴을 거쳐 레이쳘 레이쇼 수석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방송에 출연한 딸 앞에선 잘난 체 하던 식구들의 기가 팍 죽는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온갖 요리를 한꺼번에 해치우는지 역시 공부는 열심히 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혀 경쟁의 대상이 안 될 경우, 납작 업드려 꼬리 흔드는 게 상수다.   방학 때나 휴가 때 집에 오기 전에 우서방과 입맞추며 메뉴 정하느라 전화통이 불이 난다. 그동안 굶었나?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마요.’ 간곡하게 부탁한다.   공짜 인생에 길들린 막내 아들은 먹는데는 천재고 도사 빰친다. 고집 세고 자기 것만 챙기는 녀석인데 음식 앞에서 폭삭 찌그려져 온갖 아첨을 떤다. 장 보는 것은 물론이고 부엌에서 보조 요리사로 아부하며 제 먹거리 챙기는데 귀신이다.   ‘벗이 먼 데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說乎)가 아니라 ‘자식이 멀리서 집에 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로 혼자 미소 짓는다.   꼴찌는 행복하다. 시비 거는 사람 없고, 측은지심, 다음 번에 더 잘하라고 격려의 멘트로 위로한다. 한 등수만 올리가도 잘 했다고 칭찬한다.   적어도 우리집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요리 못한다고 태끌 걸지 않는다. 잔소리 안하고, 잘 먹고 감탄사 연발하는 군중이 있어야 요리사가 신나는 법이다.   일등은 외롭고 괴롭다. 고난의 길이 끝없이 펼처진다. 붙잡고 매달려야 자리 보존하고, 추락할까 가슴 졸이고, 앞이 안 보이는 곳을 향해 혼자 달린다.   꼴찌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유배지의 식탁은 쓸쓸하지만 편안하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꼴찌 신세 보조 요리사로 종가집 전통요리

2025.09.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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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고

인생에는 되돌이표가 없다. 물에 섞여 물과 함께 물처럼 흘러간다. 세월은 날강도처럼 눈 깜박할 사이 휘리릭 날아간다. 과거는 나홀로 그린 그림이다.   무대가 바뀌고 등장인물이 달라져도 주인공은 바뀌지 않는다. 공연이 실패하던 성공하던 막이 내릴 때까지 슬픔의 강 따라 인생은 흘러간다.   범선이나 돛단배는 돛을 달아 바람의 힘으로 항해한다. 노를 사용하지 않고 돛을 달아 풍력을 이용해 운행한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은 오래 전부터 강을 건널 때 동력기를 달지 않고 돛을 설치한 돛단배를 타고 낙동강과 마산만을 건너다녔다. 당시 육로가 개설되지 못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돛단배는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다. 낙동강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나루터가 있어서 북면과 대산면 사람들이 돛단배를 많이 이용했다.    ‘마지막 석양 빛을 깃폭에 걸고 /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 아~ 어데로 가는 배냐 /어데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이미자 노래 ‘황포돛대’ 중에서   창원시 귀산동은 마산만과 맞닿아 있어 오랫동안 돛단배를 이용했는데 흰 광목을 누런 황색으로 염색해 질기고 튼튼한 돛을 달았다. ‘황포돛대’는 석양을 등지고 강을 건너는 애절한 서민의 영감을 살린 노래가락으로 손색이 없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크고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떠내려 간다. 노를 저어 길을 찿기도 하고 풍랑에 배가 뒤집혀 지기도 한다.   1959년 개봉한 영화 벤허는 고전 명작으로 불멸의 걸작이다. 작품 중 나오는 9분 분량의 전차 경주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으로 꼽힌다. 벤허는 단순한 고대 시대의 복수극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서사극이다.   ‘삶의 노력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 없다’는 영화 속 메시지처럼 노력은 반드시 상응하는 결실을 맺는다는 진리를 벤허의 삶은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운명은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생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   벤허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수없이 많은 노예들의 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노를 저으며 마케도니아 해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승리하던 패배하던 노예들은 몰살당한다.   유대귀족이였던 벤허는 갤리선의 노예로 전락해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젖는다. 아리우스는 벤허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간파하고 쇠사슬을 풀어준다. 해적과의 전투 직전 교전이 진행되던 중 벤허는 동료 노예들의 결박을 풀어주고 해적과 싸우다가 바다에 빠진 아리우스를 구해낸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리우스는 죽은 친아들 대신 벤허를 입양, 자신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상속할 권리를 주지만 벤허는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고향 유대로 돌아간다.   배가 파산되고 난파선에 매달려도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삶에는 되돌이표가 없다. 되돌아 갈 수 없다 해도 생의 물줄기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물줄기를 바꾸는 것은 선택이고 투쟁이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고, 바람과 물을 다스리는 지혜와 용기가 있으면 원하는 쪽으로 강을 건널 수 있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영화 벤허 오랫동안 돛단배 마케도니아 해적들

2025.09.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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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오래된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

인생에 명품은 없다. 진짜가 있을 뿐이다. 명품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진짜라고 다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짜는 시간이 지나면 들통 나기 마련이지만 진짜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명품 인생은 진주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광택이 난다.   세상살이 남의 인생 흉내 내서 사는 것만큼 피곤 한 건 없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한국식 근대화의 격동 속에 살아온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천명관의 장편소설이다. 어릴 적부터 이소룡을 추종한 삼촌은 중국집 배달원을 하다가 사기 당해 빈털터리 되고 이소룡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충무로에서 ‘으악’ 하고 죽어나가는 단역배우 ‘으악새’가 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다.   모방과 아류, 표절과 이미테이션, 짝퉁 인생에 머물게 되는 한 남자의 기구한 삶이 산업화와 민주화혁명, 자본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삼촌 마음 속 이소룡은 그가 혼신을 다해 갈구하고 꿈꾸던 생의 처절한 희망이다. 비록 그의 삶이 상처 나고 찢어지고 실패했다 해도 누가 감히 짝퉁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개 같은 인생, 개처럼 살다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개처럼 살게 된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흉내내기나 짝퉁과 모방을 반복한다. 지금은 짝퉁 인생을 살지만 언젠가는 진품이 되고 명품이 될지 모른다는 로망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로망은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꿈꾸는 이상이다.   옷장에 숨겨논 보물처럼 닦고 광를 내도 짝퉁은 진품이 안된다. 가짜란 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내가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짝퉁을 진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를 속이기는 힘들다.   “유럽 여행 가서 선물로 명품 가방 하나 사 와라.” 내 친구가 친구에게 말했다. ‘국회의원 뱃지 달고 명품 하나 없는 사람 나 뿐이다. 뭔지는 모르겠고 베토벤 얼굴 비슷하게 로고 찍힌 거’라고 해서 동창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베토벤이 아니고 베르사체(?) 명품 가방 사오란 말이다. 정직힌 발언은 헛소리도 귀하게 들린다.   물건이 짝퉁이면 버리거나 교체할 수 있지만 인생이 짝퉁이면 대체가 불가능하다. 명품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뛰어난 품질과 내구성으로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계승하는 장인의 혼이 담겨 있다.   ‘명품’과 ‘짝퉁’이라는 단어는 제품의 가격이나 진위 여부를 넘어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제품뿐만 아니라 사람 삶의 태도와 성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물건은 가짜가 진품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유행이 지난 옷은 올트레이션을 거쳐 재활용되거나 변신을 꾀할 수 있지만 인간은 하루 아침에 가짜가 명품이 되는 역전의 용사가 되기 힘들다.   20년이 넘도록 매주 하루도 빠짐없이 미주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다. 40여년 전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았지만 모음과 자음을 숙명처럼 붙잡고 살았다. 새로 맞닥뜨리는 세상에서 짝퉁 인간이 아닌 진품으로 살아 남기 위해 모국어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나를 강인하게 했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도 명품은 오래된 정원에서 한 떨기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명품 인생 짝퉁 인생 명품 가방

2025.08.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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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생의 밧줄 움켜 잡고

늘 일등하다가 2등 하면 잔소리 듣는다. 꼴찌는 중간만 해도 칭찬 받는다. 요즘 요리 실력 자랑하는라 때 빼고 광 내고 스스로 침이 마른다. 그동안 사업에 매달려 고군분투, 부엌 살림은 어머니 몫이였다. 한식은 먹기만 잘 하지 요리는 젬병이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어머니는 근동에 사는 한식 요리 맛깔나게 하는 분에게 요리 비법을 전수시키고 굶어 죽지 않게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궁하면 통한다.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남에게 빌 붙어 사는 건 치욕(?)이다. 요즘은 유튜브나 검색란에 요리 이름만 입력하면 가지각색 레시피가 등장한다. 요리 못하는 바보는 ‘바보 중의 왕바보’이거나 게으르고 미련한 인간(?)이다.   배울수록, 할수록 재미 있고 기분 좋은 게 요리다. 먹거리가 넉넉하면 행복하다.   우서방 왈 ‘음식은 즐겨먹기라도 하지만 그림은 먹지도 못한다’며 은근히 애들에게 미식가에 식도락가인 자신을 부추기며 나의 미술적 취향을 성토했다.   요리책 보고 연구하고 연습해서 어르신들 집 배달 가서 스스로 홍보한 덕분에 격려 받는 지경에 도달했다. 왕년에 요리로 한가락 하던 어른 앞에서 문자 깔고 자랑하면 콧방귀도 안 뀐다. 노력은 성공의 아버지, 동정표 받으면 칭찬 받는다.   인생에 역전은 없다. 반전이 있을 뿐이다. 반전(Reverse)의 매력은 전혀 예기치 못한 줄거리로 비틀고(Plot Twist) 복선을 깔아 흥미를 증폭시킨다.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iionaire)’는 빈민가 한 소년의 특별한 여정을 조명하며, 운명, 희망, 인간 정신의 힘에 대한 주제를 탐구한다. 엄청난 찬사를 받아 8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슬럼독(Slumdog)은 빈곤(Slum)이라는 단어와 개(Dog)를 합성한 단어로 빈민가 거지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할렘, 한국에서는 달동네쯤이다.   빈민가 삶의 엄혹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지식과 재치가 더 나은 삶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제말의 여정은 인간 정신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어려움과 역경에 직면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배웠고, 자신의 재능을 개발했으며,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   “끝인 줄 알았는데, 시작이었다.” 퇴사 후 실패를 경험하지만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는 끝이 아니다’라고 토로한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실패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의 반전 스토리는 불행을 극복하는 끈질긴 용기다.   완전히 망하고 나면 바닥에서 다시 배운다. 앞이 캄캄하지만 별 수 없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 길을 잘못 들어 캄캄한 구멍에 빠지면 한바퀴 헤매다 보면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반전의 반전은 인생역전이다. 역전의 용사는 움켜 쥔 생의 밧줄을 놓지 않는다. 초인의 허울 벗고 한계를 극복하며 천길 낭떠러지 다리를 혼자 건넌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반전 스토리 빈민가 거지 슬럼독 밀리어네어

2025.08.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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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망각의 언덕에서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결단과 용기로 생각의 문을 열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인생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과거에서 벗어나야 미래의 희망이 보인다.   생각은 계획을 세우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을 내리는 활동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신 작용이다. 백날 생각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진전과 변화가 없다.   생각이 미래를 창조한다. 무엇을 탐구하고 옳다고 믿는 생각은 부정적인 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프로그램 한다. 생각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일어나면 매일 열심히 거울을 본다. 집안 곳곳에 거울을 달아놓고 내 모습을 정리한다. 이 순간은 단 하루 내게 허락된 선물이고 축복이다. 새로 시작하는 하루와 맞장 뜰 준비를 한다. 상대는 거울 속 내 모습이다. 누구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는 단단한 속껍질로 버티며 살아갈 생각을 한다.   집안 곳곳에는 펜과 메모지를 비치한다. 생각의 파편은 날파리처럼 한 순간에 휘리릭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흔적없이 사라진 얼굴들처럼.   죽음의 신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에는 망자들이 거쳐야 할 다섯 개의 강이 있다. 저승 입구 아케론 강을 건너며 깊은 고통을 씻어낸다. 비탄과 통곡의 코키토스 강에서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 놓는다. 물과 진흙이 끓는 플레게톤 강에서 남은 감정들을 완전히 태운다. 스틱스강은 두려움과 증오를 털어내는 강이다. 레테의 강은 망자가 건너는 마지막 강이다. 내세로 가기 전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망각의 강에서 강물을 마시고 이승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작별을 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상처도 많겠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도 있다. 세월의 바람 속에 상처는 신음으로 흐느낀다.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번개로 창문을 두드린다.   우서방 투병 동안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2년 동안 리사와 굶지는 않았을 텐데 먹은 음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뇌는 필요 없는 기억을 저장하지 않는다. 정신적 충격이 큰 사건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은 의도적으로 잊게 만든다. 선택적 망각(Selective forgetting)이다. 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생존 수단인 셈이다.   뇌는 자신에게 해롭거나 고통스러운 정보는 아예 거부하거나 지워버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외상이나 상처로부터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뇌는 자가 방어 시스템을 가동한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가운데가 비어 있으므로 그릇의 쓸모가 있게 된다.’ 노자 도덕경 11장에 나온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가다듬고 어제처럼 내일을 버티고 오늘을 살아갈 결단을 하면 살아 남게 된다.   어제의 기억에 묻혀 오늘을 살면 슬픈 기억을 떨치고 망각의 강을 건너지 못한다. 레테의 강을 건너면 망각의 언덕에는 작은 깃발 하나 나부낀다.   일생동안 가파른 언덕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다 해도 레테의 강을 건널 때 사랑은 눈물로 방울져 흘러내린다. 망각은 신의 내린 축복이다. 잊히지 않는 것들 속에서 날파리처럼 떠도는 기억은 꽃잎 송별로 밤하늘을 아프게 수놓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선택적 망각 정신적 충격 저승 입구

2025.08.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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