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중략)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중략)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잘 생긴 외모와 도시적 낭만성, ‘명동백작’ ‘댄디보이’라고 불리던 박인환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전후 지식인의 통음이 들리듯, 한 구절 한 구절에 절절함이 담겨있다. ‘목마와 숙녀’는 한국 시사에서 감상주의 또는 낭만주의 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감상주의는 슬픔, 동정, 연민 따위의 감상을 지나치게 드러내려는 문예 현상이다.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는 개성이 없는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학 작품이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18세기 말 유럽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 경향이다.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 ‘세월이 가면’은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술을 마시다가 쓴 즉흥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같이 술을 마시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부치고 ‘백치아다다’로 유명한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테너 가수 임만섭과 나애심이 불러 ‘명동의 샹송’으로 유명해지고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로 국민적인 애창곡이 된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한 후 이듬해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고 3일 간 폭음한 탓에 결국 그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자택에서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향년 29세로 요절했다.
예술가 특히 시인이나 작가들은 왜 술을 죽도록 마시고 사랑하는가?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심일까, 아니면 비겁한 용기일까?
술에 취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자신을 감싸는 사회적 방어막이 없는 상태가 된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담이 아니라 본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술에 취했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평소에 잘난 척하고 엄숙하던 작가들이 술이 거나해지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안 마신다. 그래도 문인들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끼고, 술값은 열심히 낸다.
‘술 안 마시고, 담배 못 피우고, 애인도 없으니, 무슨 맛으로 살꼬. 글을 우째 쓰겠노’라고 핀잔을 받으면 ‘그래서 작가가 못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사랑했던 문우 여럿이 가난과 절망, 술독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게 청춘의 꿈이였다. 시를 버려도 세상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문학을 포기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맨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
‘술은 비와 같다. 비가 오면 나쁜 흙은 진창이 되지만 좋은 흙은 꽃을 피운다’는 존 헤이의 말을 새긴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진흙 속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