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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마음에도 길이 있다. 마음은 기울어진 쪽으로 발길을 움직인다. 생의 구도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음의 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작품의 성패는 구도에 달려 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골몰해야 ‘어떻게 그릴 것’인지 감이 잡힌다. 졸작이라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극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누구나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 사는 것이 진흙탕이고, 한 번 빠지면 헤쳐 나올 수 없는 늪이라 해도, 푸른 하늘 머리에 이고 자유롭게 날기를 꿈꾼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가 없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새장에 갇힌 것들을 날려보내라. 돌아오면 내 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랑도 인생도 운명까지도 내 것이 아닌 것들은 거리낌 없이 날려보내라. 스스로 새장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사회나 직장, 가정의 틀 속에 갇혀 허무의 신발가게를 오가며 자신의 가치를 잃고 방황한 적이 한 두 번이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루에도 수차례 그 질문을 반복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의 답을 찾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린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초인’을 뜻한다. 자신이 가진 힘의 의지로 자기 극복을 하는 사람이다. 초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려는 인간을 의미한다.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는 자, 주어진 규칙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 고난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절망과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은 초인의 삶을 산다. 위버멘쉬는 극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자는 초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니체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건강이 악화돼 퇴직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극심한 두통과 발작 등 끔찍한 아픔을 겪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위장병과 구토, 발작과 감각마비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생과 사투를 벌이지만 니체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니체는 죽음의 강을 오락가락하며 주옥 같은 글들을 남긴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인간을 살아있게 한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것이다.   이 무렵 시작된 니체의 글쓰기와 사유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킨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진다. 완벽한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는 달라져야 한다.’ 니체가 남긴 사유의 흔적들은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가장 인간적인 생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기억의 창고에서 살아 숨쉰다.   사는 것이 어릿광대의 줄타기라 해도, 인간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어쩌면 극복을 통한 니체의 ‘위버멘쉬’가 초인이 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진정 나의 길을 찾고 싶다면 남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 스스로를 극복하는 용기가 인생을 진실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한다.   천국은 마음 속에 있다. 고통과 실패로 쓰러져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길이 열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프리드리히 니체 하늘 머리 자기 극복

2026.05.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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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물길로 마주하는 대자연의 경이로움

피오르드를 떠올리면 흔히 노르웨이를 먼저 생각하지만, 사실 세계 곳곳의 해안선에는 다양한 피오르드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칠레 파타고니아의 피오르드는 거칠고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장대하게 펼쳐져, 압도적인 규모와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칠레의 영토는 남반구 파타고니아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좁아진다. 한쪽에는 깊게 파고든 피오르드가, 다른 한쪽에는 안데스 산맥이 이어지고, 그 사이 골짜기마다 빙하가 자리한다. 이 모든 풍경이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여정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빙원지대의 차가운 공기와 북쪽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기류가 만나 형성된 온대우림의 짙은 녹색 식생, 그리고 그 위로 솟은 설산과 빙하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는 오직 칠레 파타고니아 피오르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연의 선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칠레 국도 7번" 를 따라   칠레의 국도는 단 두 개뿐이다. 그 중 남반구의 국도 7번(약 1,240km)은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호수 지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접근하기 힘든 남부 빙원지대가에서 끝난다. 이 길은 무려 17개의 국립공원과 자연보호 구역을 품고 있다. 칠레 파타고니아 여행은 이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순수한 대자연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국도 7번 여행은 단순히 낮의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잠드는 순간마저 여행의 일부가 되는,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자연과 이어지는 경험이다. 현장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나요?"  "호텔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그 답은 늘 같다. 바로 그 '어딘가', 자연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허접한 호텔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산속에 숨듯 자리한 로지형 호텔, 특히 달빛 아래에서 더욱 진한 빛을 띠는 청록색 강과 호숫가의 숙소, 피오르드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인터넷도 TV도 없이 자연 온천이 콸콸 흐르는 온대우림 속 호텔까지...“우리는 오늘 호텔에 있겠습니다~ 잘들 다녀오세요~”라며 멈춤을 선호하는 분들이 자주 있을 정도이다.         ▶부로 자연을 구하고 파타고니아를 사랑으로 지킨 수호자   더글러스 톰킨스는 The North Face와 Esprit를 성공으로 이끈 기업가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리고 그는 결단한다. 부와 성공, 익숙한 세계를 내려놓고 '소유하는 삶'이 아닌 '지켜내는 삶'을 선택한다.   그의 발걸음은 남미 최남단,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훼손된 땅을 매입하고, 복원하고, 다시 국가에 기부하는 전례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결과, 수십 년에 걸쳐 칠레와 아르헨티나에는 15개 이상의 국립공원이 새롭게 탄생하거나 확장되었다. 특히 2018년,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토지 기부를 통해 파타고니아는 하나의 거대한 보호 생태계로 다시 태어났다. 접근하기 어려웠기에 더욱 순수하게 남아 있는 풍경, 그리고 그 가치를 지켜낸 한 사람의 선택이, 한 대륙의 지도를 바꾸었다.         ▶한 사람의 선택이 만든 지구 끝의 유산   더글러스 톰킨스는 2015년, 그가 가장 사랑했던 파타고니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후에 칠레 국도 7번은  '국립공원길' 로 공식화 되었고 8개 국립공원에 더글라스 톰킨스의 이름이 기념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뜻은 그의 아내 크리스틴 맥디빗 톰킨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문의: (213) 507-0020   ▶홈페이지: www.ewsntour.com   ▶지도상의 전 지역 10박12일 일정(불의 땅 쿠르즈 제외) 출발은: 26년11월20일, 12월17일, 27년 3월18일     ━       여행 팁:   칠레 파타고니아(국도 7번가)는 커머셜 공항은 단 두 곳뿐, 다니는 버스도 없으며 지나가는 차도 띄엄띄엄하고 또한 절반이 비포장이며 산과 호수, 강, 빙하 등 평평한 땅이 이 매우 적은 곳이다. 그 독특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다양한 이동 수단을 통해서만 여행이 가능하며 이 지역의 전문가야라만 디자인할 수 있는 여행이자 인솔이 가능한 여행지이다. 지도상의 전 지역을 육로(전용차량)와 수로(전용보트), 그리고 하늘길(전세기)을 따라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여행자는 점차 자연의 내면 깊은 결로 스며들며 그 본연의 진가를 체험하게 된다. 피요르드 를 가로지르는 항해,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외딴 숙소. 이어지는 전세기 이동은 곧 하나의 공중 투어가 되어, 안데스 산맥의 장대한 능선과 빙하, 끝없이 펼쳐진 원시의 풍경을 한눈에 펼쳐 보인다.       ━       유니스 조 대표    남미 전문 여행사 동서남북 투어의 유니스 조 대표는 17세부터 남미 전역을 누빈 베테랑 백패커 출신의 전문가다. 그는 40년 넘게 쌓아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상품을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해 왔다. 모든 일정은 현지 인솔까지 책임지며 진행한다.대자연 하늘 칠레 파타고니아 남반구 파타고니아 칠레 국도

2026.05.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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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망각의 강물은 흘러가고

너무 오래 살았나 봐요. 봄의 정원은 천국처럼 아름다운데 왜 눈물이 나는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이 얼얼해집니다. 흐르는 눈물은 가슴 속 때를 훔치고 봄비는 세상살이에 쌓인 먼지를 말끔하게 지웁니다.    코발트색 옷자락을 펼치는 하늘은 목화 꽃처럼 크고 작은 흰구름을 그려 넣습니다.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립니다.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가 떠 올랐어요.     청록의 옷을 입은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만남과 이별, 생과 사의 갈림길도 서두르지 않으면 구름처럼 처연하게 흘러가겠지요.     지난 겨울은 참담했습니다. 폭풍우가 대지를 뒤덮고 무릎까지 눈이 쌓였습니다.    봄은 새 각시의 더딘 걸음으로 왔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흔적은 찾으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손톱만큼 작은 깻잎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연달아 철쭉이 진홍색 잎을 가지 끝에 매달고 목련은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봅니다. 담장을 등에 업은 샛노란 개나리는 질투의 화신처럼 무리 지어 정원의 뒤뜰을 가득 채울 심산입니다.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림으로 여린 손 내밀던 코스모스는 혹한으로 생사가 묘연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을에 씨를 받아 이름표 붙여 창가에 매달아 두었거든요.     뿌리만 살아있으면 죽지 않듯이, 씨앗은 작고 말라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뒷마당에 병풍처럼 줄지어 선 나무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찬란한 초록 빛으로 계절의 풍요로움을 화폭에 담습니다. 연못에는 겨울동안 숲 속에 갇혀 살던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며 장난질합니다. 새들이 지지배배 떠드는 소리에 꽃잎들은 빛나고 아름다운 색깔로 단장하고 세상 어느 오페라 보다 황홀한 인생의 무대를 장식합니다.     그동안 미친듯이 인생을 불태우고 살았습니다. ‘죽지 않으면 산다’ 세 단어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올인했습니다. 사업과 화랑을 병행하며 아이 셋 키우고 한국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고,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뼈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비발디의 사계(절)처럼 바뀝니다. 봄과 여름을 허술하게 보낸 사람은 풍요로운 가을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중요한 시간입니다.     박수갈채와 찬란했던 날들을 망각의 강으로 떠나보냅니다. 작지만 반짝이는 새벽별의 손짓을 담아 새롭고 창의로운 인생을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백지에 그려 주세요.     영욕으로 뽐내며 명함 뿌리던 날들을 지워버리면 사는 것이 정직하고 수월합니다.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인연을 절단하는 게 현명합니다. 불필요한 만남과 인연을 덜어내야 목말라 하던 자유를 누리며 작지만 보석 같은 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망각의 강은 남은 찌꺼기를 바다로 보내고 인생은 늘 푸른 아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주변의 연락 끊고 ‘귀양살이’ 한다며 너스레 떨다가 ‘유배생활’ 중이라고 바꿨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빛나는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스치는 바람과 악수하고, 수시로 떠오르는 언어를 가슴에 품고, 다가올 생의 아름다움에 몰두하면, 사랑과 아픔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듯 사는 게 편하고 따뜻합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힘은 타인의 위로와 간섭이 아니라 스스로 견디는 용기입니다.   지난 겨울은 추워도 따스했습니다. 손바닥에 그려준 사랑의 맹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잎의 향기로 흩날리듯, 망각의 강물 속에 사랑의 날들은 흘러갑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맹세가 계절 코발트색 옷자락 editions 대표

2026.05.0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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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꿈꾸던 시간, 돌아갈 수 없는 날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 용비어천가 2장 첫 구절은 평생토록 나를 지탱해준 가슴에 새긴 서약(Pledge)이다.     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세계 어느 곳이든 지축 깊이 뿌리내리기로 다짐했다. 목숨 걸면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어지지 않으므로, 내가 되어 바다로 흐른다.’ 2장 다음 구절이다. 가뭄으로 마을이 힘들어도 우리집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옥이 언니가 머리를 들이밀고 ‘아’ 소리지르면 메아리가 들려왔다. 우물에 빠질까봐 언니 치마를 붙잡았다.     깊고 맑은 우리집 우물은 부엌안에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서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수박을 매달아 놓으면 냉장고에 넣은 것보다 차갑고 상큼했다.     우물이 부엌 안에 있게 된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 것처럼 파랑새가 슬픈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날아간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6.25 전쟁은 꿈과 희망,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공 들여 지은 새 집은 인민군이 퇴각하며 불태웠다. 우는 아내 등 쓰다듬으며 “새 집을 꼭 지어주마” 약속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난다.     새집 터를 남겨 두고, 아버지가 임시 거처할 곳을 마련하면서 담장 옆에 있던 우물이 부엌 안 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임시로 지은 집에서 살았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까맣게 탄 흔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 소복에 감겨 날아드는 찔레꽃은 불에 그을린 처마에 매달려서 장미쉘바스키아의 그림처럼 기괴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무섭다. 구멍이 없으면 뚫고라도 들어가야 승부를 가린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창작예술센터를 설립해 기희미술학교를 운영했다. 리틀 피카소(유년반), 영 다빈치(중고등학생), 미켈란젤로(성인반), 조각과 동양화 수업을 병행했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키키, 키위” 제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학생들은 공손하게 “미쓰 기희’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언젠가 쓰러져 죽게 된다.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리사를 위해 예술교육학을 공부했다. 리사는 그림 그리기는 것을 좋아해서 화랑 조수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천재다. “우리 애는 유명해질 거 같아요”라고 하면 똑 같은 대답을 한다. “훌륭한 화가가 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유명한 화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평생 미술과 예술 사업에 올인 했지만 어떻게 유명해지는지 모른다. 35년 동안 미 중서부에서 수많은 화가들 전시회를 했지만 역사에 남을 위대한 화가를 찾지 못했다.   색깔은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동양여성이 현대미술화랑을 운영하는데 부정적이다.     “이런 비싼 작품 팔 수 있니.” 딜러가 묻는다. 은근히 깔보는 거다. “안 팔리면 우리집에 걸지.” 작은 돈은 큰 돈에 뭉개진다. 유명 딜러들이 전시 스케쥴 잡으려고 줄을 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물고 늘어지고, 재주 잘 부리는 곰이 돈도 잘 번다.   예술은 목마른 사랑처럼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쟁이나 소문난 환쟁이의 길을 접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예술은 돈과 명예, 목숨까지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남아있는 것들의 깨알 같은 흔적을 적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우물 화가들 전시회 현대미술 화랑

2026.04.2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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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서 떨어진 얼음, 집 천장 뚫었다…LA 황당 사고

LA 카운티 휘티어의 한 주택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지붕을 뚫고 실내로 떨어지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재니스 한 수퍼바이저에 따르면 사고는 2026년 4월 10일 오전 11시 15분경 발생했다. 당시 주민 유더 그라우는 폭발음과 같은 큰 소리를 들은 뒤 거실 천장이 뚫리고 내부에 대형 얼음 덩어리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흙이 묻은 대형 얼음 덩어리가 소파 위에 떨어져 있고, 천장에는 큰 구멍이 생긴 모습이 확인된다. 다행히 당시 거실에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주택 소유주 타니아 망가는 당시 상공을 지나던 항공기가 있었다는 비행 데이터를 확인했으며, 항공기와의 연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재니스 한 수퍼바이저는 연방항공청에 공식 조사를 요청했다. 그는 “조금만 상황이 달랐어도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주택 소유주는 해당 얼음을 보관 중이며, 냄새가 나는 점 등을 이유로 성분과 인체 영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얼음의 정확한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FAA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AI 생성 기사하늘 얼음 현재 얼음 해당 얼음 la 황당

2026.04.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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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흐르는 물처럼, 바위처럼 단단하게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망울 터지는 봄의 향연처럼 들린다. 줄지어 서 있는 나무숲 사이로 하늘은 불타는 빨강과 주황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른 아침 집앞에서 자전거 패달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빼꼼 열고 보니 앞집 아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쾌 속력으로 질주한다. 스티브는 잠이 덜 깬듯 하품을 하며 뒷짐지고 느릿하게 아들 뒤를 따른다. 콜드섹(Cul-De-Sac)에 위치한 우리집은 차가 들락거리지 않아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안성 맞춤이다.     “굿 모닝! 지금 할 수 있을 때 즐겨요(Enjoy while you can).” 내가 새벽 인사를 건네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I am doing my best)”라고 손을 흔든다.     누굴 닮았는지, 우리 애들은 어릴 적엔 별나고 흥분 잘하는 하이퍼(Hyper)들이라서 안정성을 고려해 그 때도 콜드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애들은 와 잠도 안 자고 이리 설치노?” 어머니는 아이들 자전거 꽁무니 따라다니며 땀을 닦았다.     그 때가 좋았다. 참 좋았다. 미친듯 사업하고 밤잠 설치며 애들 셋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받은 날들이다. 그 시절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흘러가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간의 힘을 역설한다.     그리스인들은 두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이다. 제우스의 막내 아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신의 이름이다. ‘크로노스’는 일상을 집어삼키는 시간, 허둥대며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 받는 시간을 말한다.  독일어 재촉하다의 ‘헷첸(hetzen)’은 ‘미워하다’라는 뜻의 ‘하센(hassen’에서 유래했다.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미워하는 행위와 같아서 ‘크로노스’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카이로스’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꼭 알맞은 순간’을 뜻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작고 큰 순간을 포착하고, 각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경험들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카이로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간은 공평하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진다. 순간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순간은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순간은 영원을 잉태한다.     카이로스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풍성해 제때 잡으면 쉽게 붙잡힌다.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잡을 수가 없다.     타임캡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이나 물건을 담아서 후세에 온전히 전할 목적으로 고안한 용기다. 내 타임캡슐은 빈 통이다. 시대를 위한 업적도 역사의 족적으로 남길 기록도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생명의 기적들을 내게 선물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자녀들, 손자와 손녀들은 내가 남기는 소중한 타임캡슐이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카이로스적 시간 시간 개념 카이로스 앞머리

2026.04.1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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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있다는 기쁨-부활을 꿈꾸며

봄이다. 두터운 외투 벗고 빛나는 봄을 맞는다. 지난 겨울은 참담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과 싸우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의 인내심은 견디지 못하고 작은 미풍에도 곤두박질 친다. 참고 조금만 기다리면 봄꽃들은 기지개 켜며 작고 앙정맞은 입술을 벌릴텐데 조급하게 계절을 성토했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은 견뎌낼 줄 안다. 계절이 두툼한 솜이불을 벗어 제치고 꽃샘바람이 뒷마당을 휩쓸자 꽃잎은 찬란한 빛깔로 정원을 물들인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행복은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다. 채색이 잘 안되고 화려하지 못해도 나만의 독창성을 가지면 명화가 된다. 내면의 투명함은 의식의 깊이를 파고 든다. 영혼이 맑아지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인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싹을 틔운다. 사람과 바람, 꽃잎과 풀잎. 하늘과 땅 사이 경계를 허문다.   레프 톨스토이 대표작 ‘부활’은 사회의 모순, 법의 부조리,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각성하고 영적인 부활을 이루어내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대서사시다.     네흘류도프 공작은 상류사회의 방탕과 타성에 젖어 사는 인물이다. 우연히 재판소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된 그는 독살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가 과거 자신이 짓밟고 버린 카튜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 하녀였던 마슬로바를 유혹해 아이를 낳게 하고, 그의 무책임한 행동이 한 여성의 삶을 파멸로 이끈다.     아이를 임신한 카튜샤는 쫓겨나고, 아이는 죽고 끝없는 나락으로 매춘부가 된다.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부투하지만 카튜샤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죄책감을 느낀 네흘류도프는 속죄하고자 카튜샤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당한다. 사면될 거라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카튜사는 시베리아에서 시몬손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다.     네흘류도프는 과거를 속죄 받기 위해 청혼하지만 감옥에서 만난 시몬손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튜샤는 원래 선했던 모습이 된다.     사랑은 정직한 선택이다. 누군가를 위한 희생도, 대가를 지불하는 사면도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 하나가 되고, 흔들리는 바람으로 다가와 심장에 대못을 박는다.     ‘나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질문한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지는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채송화 꽃잎따서 손톱에 물들이듯 조금씩 인생을 채색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창문을 두드리면 팬지는 흙내음새 맡으며 머리 숙여 꽃을 피운다. 팬지 이름은 꽃모양이 사색하는 사람 같아서 프랑스어 명상(pensée)에서 유래됐다.     꽃들은 부활한다. 뿌리만 살아있으면 다시 핀다. 인간도 부활한다. 각자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형태와 색깔로 꽃이 핀다. 살아있는 것만큼 찬란한 행복은 없다.     노아의 홍수 때 민들레는 도망가지 못했다.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가엽게 여긴 하나님이 씨앗을 바람에 날려 꽃이 피게 해준다.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말라. 제일 슬픈 사랑은 ‘잊혀진 사랑’이다. 민들레 꽃씨나 나물 캐는 처녀들 바구니에 담겨 부활을 꿈꾼다.     순간은 영원과 맞닿아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영원은 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톨스토이 대표작 재판소 배심원 시베리아 유형

2026.04.0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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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절망의 길목에서 피는 꽃

시작은 뜨겁다. 희망으로 불타오른다. 결의와 갈망으로 벅차오른다. 실패를 염두에 둔 시작은 없다. 낭패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끈을 잡고 놓치 않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소망을 담은 그림을 채색하며 구겨진 인생의 팔렛트에 희망의 점들을 수없이 새겨넣었다. 달력의 장을 넘길 때마다 강렬했던 목표는 서리 맞은 잎새처럼 오그라들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내일은 남아 있을까?     두려운 것은 시작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는 것이다. 절망은 오래된 간이역에서 기차가 멈췄을 때도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게 만든다.     장편소설 2권 쓰겠다는 장대한(?)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희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이 가능한 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의 주인공은 낡고 찢어진, 혹은 찬란한 망토를 두르고 막이 내리기 전 가장 높은 옥타브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쓰러져도 인생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맞선 대가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 꼭대기에 다다른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반복은 영원히 계속된다.     매일 같은 일, 반복적인 일상을 계속하며 생의 바위를 각자의 등에 업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면 산다.     우리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면, 삶은 계속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매일 같이 일하고, 버티고, 성취하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좀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다. ‘왜 사는가?’는 질문 앞에서 세상은 침묵한다.     카뮈는 이 침묵과 충돌하는 인간의 갈망을 ‘부조리’라 간파한다.     부조리(不條理)는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부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과 세계, 생의 의미와 실제 생활과 불합리한 관계를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알제리 출신으로 짧지만 강렬한 불꽃을 태운 작가다.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삼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는 시상식에서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긴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운명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가난과 질병,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체험한 카뮈는 삶의 불합리함을 체험한다.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참다운 유형을 보여준다. ‘내 안의 태도가 삶을 결정하고, 환경이 힘들어도 내면의 힘은 꺼지지 않으며,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 안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카뮈가 절망을 견디는 인간에게 던지는 통찰의 독백이다.     겨울이 봄을 이길 수 없고 희망은 절망을 이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치 않고, 흔들리며 갈피를 못잡아도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부서진 바위처럼 금이 생겨도 단단해지는 법을 익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내일을 가슴 속에 품는다.     절망의 길목에서,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빛나는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editions 대표

2026.03.3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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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달콤하고 치명적인, 진흙 속 꽃을 피우며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중략)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중략)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잘 생긴 외모와 도시적 낭만성, ‘명동백작’ ‘댄디보이’라고 불리던 박인환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전후 지식인의 통음이 들리듯, 한 구절 한 구절에 절절함이 담겨있다. ‘목마와 숙녀’는 한국 시사에서 감상주의 또는 낭만주의 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감상주의는 슬픔, 동정, 연민 따위의 감상을 지나치게 드러내려는 문예 현상이다.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는 개성이 없는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학 작품이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18세기 말 유럽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 경향이다.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 ‘세월이 가면’은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술을 마시다가 쓴 즉흥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같이 술을 마시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부치고 ‘백치아다다’로 유명한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테너 가수 임만섭과 나애심이 불러 ‘명동의 샹송’으로 유명해지고 가수 박인희의 목소리로 국민적인 애창곡이 된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한 후 이듬해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고 3일 간 폭음한 탓에 결국 그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자택에서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향년 29세로 요절했다.   예술가 특히 시인이나 작가들은 왜 술을 죽도록 마시고 사랑하는가?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심일까, 아니면 비겁한 용기일까?   술에 취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자신을 감싸는 사회적 방어막이 없는 상태가 된다. 취했을 때의 속마음은, 진담이 아니라 본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술에 취했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평소에 잘난 척하고 엄숙하던 작가들이 술이 거나해지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나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안 마신다. 그래도 문인들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끼고, 술값은 열심히 낸다.     ‘술 안 마시고, 담배 못 피우고, 애인도 없으니, 무슨 맛으로 살꼬. 글을 우째 쓰겠노’라고 핀잔을 받으면 ‘그래서 작가가 못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사랑했던 문우 여럿이 가난과 절망, 술독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게 청춘의 꿈이였다. 시를 버려도 세상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문학을 포기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맨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     ‘술은 비와 같다. 비가 오면 나쁜 흙은 진창이 되지만 좋은 흙은 꽃을 피운다’는 존 헤이의 말을 새긴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진흙 속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박인환 시인 무방비 상태 가수 박인희

2026.03.2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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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커튼이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사랑은 자유로운 새 /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 / (새를) 부르는 것이 무의미하지 / 싫으면 절대로 오지 않아 / 협박하고 빌어도 소용 없어 / (중략) 사랑은 보헤미안의 아이 / 법을 알지 못하고 살지 /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야 /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해야 돼’- 카르멘 ‘하바네라(Habanera)’ 중에서.   보헤미안은 프랑스어 보엠(Bohême)에서 유래해 체코 보헤미아 출신 집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에는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랑과 예술적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오페라(Opera)는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에서 유래한다. 음악이 기본적 요소이고 가수들이 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서양 연극의 한 양식으로 무대 장치, 의상, 춤, 발레와 같은 여러 공연 예술을 포함한다.     ‘카르멘’은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로 ‘르뷔 데 되 몽드’라는 잡지에 발표된 짧은 소설이다. 촉망 받는 군인 돈 호세가 집시 카르멘과 사랑에 빠져 인생이 망가지자 카르멘을 살해하고 자신도 파멸을 맞게 된다.     카르멘은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의 극치를 보여준다.     비제의 ‘카르멘’은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더불어 극장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초연 당시 카르멘의 관능적이고 비 도덕적인 캐릭터와 비극적 결말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혹평을 받고 비제는 큰 좌절을 겪는다. 니체가 극찬한 비제의 카르멘은 처참한 실패였다. 초연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초연 3개월 후 비제는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왜 우리는 어렵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세속적이고 관능적이며 비극의 끝판왕인 오페라에 열광하는가? 커튼이 올라갈 때 관중은 박수갈채로 환호한다. 우아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며 불륜을 즐겨보고 비극적인 사랑과 몰락에는 눈물을 흘린다.   니체는 인간은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꿈의 ‘가상’을 만들어내고 삶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가상을 끊임없이 부수고 환상•오류• 변명•핑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설명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원초적 예술의 충동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끊임 없는 투쟁과 조화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성스러운 세계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방종을 억제한다.   이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이 결합함으로써 삶의 가혹함•전율•악함•고통이 음악적 도취와 화려한 무대, 감미로운 아리아로 환상적인 설득력을 갖게 한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면 청중은 시작과 기대,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지막 장의 커튼이 내려오면 관객은 ‘길들이지 않은 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한다. 커튼콜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와 환성으로 박수를 계속 보내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인생에는 앙코르(Encore)도 커튼콜도 없다. 공연은 한 차례뿐이다. 박수치며 재연을 요청하지 않는다. 찬란한 순간들은 한 차례 연습 없이 막을 내린다.   오페라 팜플렛 접어 들고 멋진 스카프를 두르며, 무대를 떠날 시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비제의 카르멘 집시 카르멘 공연 예술

2026.03.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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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이란 사람들

‘페르시아 시장에서’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면 낙타들의 발소리가 다가오는 듯, 공주와 마술사들을 보는 듯 신나고 경쾌하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떠한가? 신드바드의 희한한 모험과 알라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 도둑 등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인도, 페르시아, 아랍 등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18세기 프랑스인 앙투안 갈랑이 모은 설화집이다. 내용은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 왕비 세헤라자드가 살아남기 위해 1000일 동안 왕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먼 나라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를 시작으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로 이어 오다가 1935년에는 국호가 이란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은 어떤가? 경제 제재와 인플레 등 경제 위기로 지난해 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이슬람 시아파 중심의 신정 체제는  반미의 근거지가 되어 왔고, 비밀리에 핵개발까지 추진했다. 이런 이유는 지금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맹폭을 당하고 있다.     10여년 전 ‘테헤란의 지붕’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란에서 성장한 마보드 세라지라는 미국 작가가 쓴 것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1979년 반정부 시위로 무너지기 전인 1973년의 이란이 배경이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와 여성 권리 확대, 그리고 산업화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종교계의 반발과 빈부 격차의 심화를 초래했다. 국민의 반발이 커지자 팔레비 왕조는 권력 유지를 위해 사바크라는 비밀 경찰 조직을 강화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은 감시당하고 죽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희생이 되고 만다.  ‘박사’라고 불린 대학생을 멘토로 여기며 따르던 파샤는 그가 사바크에 끌려가자  그 자리에 장미 나무를 심는다. 민중들의 절망과 희망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보존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귀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약혼녀인 ‘자리’가 국왕(샤)의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있는 날 광장에서 분신한다. 약혼자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밝힌다는 의미였다. 그들의 항거는 동시대에 민주화를 염원하던 한국의 사회 상황과도 비슷했다.     소년들은 밤이 되면 지붕 위에 모여 꿈을 키우고 부모들은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튼튼한 내면세계가 정감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슬람이 전래 되기 전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유구한 역사의 페르시아 땅, 이제는 이란 사람들이 왕조나 신정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권정순 / 전직 교사발언대 페르시아 하늘 페르시아 시장 페르시아 사산 인도 페르시아

2026.03.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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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이 털릴 때 나를 이기는 힘

‘영혼이 털린다’는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피로, 지나친 감정 소모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업무나 고강도 운동,견디기 힘든 충격 등으로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머리가 멍해지거나,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영혼은 육체에 담겨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다.영혼은 문화•학문•종교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인간의 정신적•본질적 성격을가리키는 말이다. 혼(soul)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 의지를 표명하는데 비해영(sprit)은 신과 교통하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간주된다.   괴테는 남편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은 친구가 자살한 것과 약혼자 사라테부프와 못이룬 사랑을 엮어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1774년 출간되자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진 소설은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괴테의 대표작이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었다. 변호사•행정가•경영자•극장장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바이마르 군주의 초청을 받아 군사•외교•사법 행정까지 국정 운영을 도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서른일곱의괴테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구원이란깊이 있는 주제를 다룬 대작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하는 학자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세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는조건으로 영혼을 팔기로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맺지만 더 큰 세계에서정치 예술 전쟁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늙은 파우스트는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전진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다.     길은 잃고 방황하는 자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절망은 희망을 등에 업고뜀박질할 내일을 기다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을인용한다.   영혼이 갈피를 못잡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가만히 멍 때리기를 계속하라.멍 때리기는 더럽고 너덜해진 영혼에 새 살을 돋게 한다.   죽지 않으면 산다. 영혼이 털려도 육신이 살아 있는한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목숨 줄이 끓어지지 않으면 살 것이고, 살아있는 육신은 영혼의 축복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출구를 모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머무르면 된다. 영혼은 복귀 능력이 탁월하다. 참고 기다리면 정상으로 회귀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낳기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설파한다.   별이 빛나는 밤 춤을 추자. 혼돈의 시간에 매듭을 묶고 우주를 향해 팔을 벌리고생명의 기쁨을 담은 왈츠를 추자. 연인이 없으면 어떠리. 운명은 내 편이다.   나를 이기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 혼돈이라해도, 별빛머리에 이고 달빛을 연인 삼아 춤을 추리라. 전쟁과 평화에서 애틋한 눈길 보내며사랑의 화살로 속삭이던 연인들처럼 ‘Natasha’s Waltz’에 맞춰 춤을 추리라.   잠시 영혼이 털린다해도, 흔들리는 것들은 바람을 타고 영원 속에 머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주인공 파우스트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대문호 괴테

2026.03.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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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인생의 꽃밭에서 숨 고르기

뜸만 들이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적당히 살겠다며 모든 일에 뜸만 들이다 보면 적당하게 살다 간다. 인생이 한번 왔다가는 소풍놀이라는 건 빈말이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은 잠을 설치며 손꼽아 기다렸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장터에 내다 팔 달걀 중에 제일 큰 놈 두개를 골라 병아리 꽁지처럼 노란 지단 부쳐 돌돌 말아 김밥을 싸 주셨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 떫은 맛 도는 땡감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슬프게도 봄소풍은 일년에 단 한 차례뿐이였다.   감나무 가지 타고 올라가 나무들의 초록빛 치마에 마음을 빼앗긴 아지랑이 보며 봄을 기다렸다. 소풍가는 날을 학수고대 하는 사람에겐 봄은 꼭 온다.   뜸을 잘 들이는 것은 요리의 기본 학습이다. 옥수수는 뚜껑을 닫고 약 30분 삶아주면 탱글탱글하고 쫀득한 식감을 주는데 너무 오래 삶으면 물컹해진다.   밥을 지은 뒤 뜸을 들이는 것은 밥솥 내부의 잔열이 쌀알 속까지 고르게 침투해 밥알의 찰기를 높이고 맛있는 밥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추가로 열을 가하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맛난 밥을 짓게 한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더 빨라 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간다고, 더 늦는 게 아니라, 숨 고르며 느긋하게 가다 보면,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구수한 삶의 냄새가 넘쳐 난다’ - 정웅구 시 ‘뜸 3’ 전문   달리기와 뜀박질에 익숙한 사람은 속도를 줄이고 달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꺼질 줄 모르는 불꽃으로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고 불태우면 재가 되어 흩어진다.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고, 재물을 쌓고, 빨리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쉽게 무너진다.   인생에도 뜸 들이는 시간, 기다림의 인내, 숙성의 날들이 필요하다.   내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였다. 전국여고생 백일장에서 청상과부로 소복 입은 어머니 모습 담은 ‘백목련’이 당선됐다. 김춘수 시인 칭찬 듣고 내 꿈은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것, 양키시장에서 구입한 바바리 코트 입고 동성로를 배회했다.   소풍이 끝나고 발을 헛디디며 산을 내려올 때처럼, 운명은 꿈꾸던 인생의 달콤한 소풍날을 알려주지 않았다. 시인의 꿈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에서 침몰됐다.   20년이 넘게 매주 빠짐없이 미주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며 자음과 모음을 기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방인으로 사는 사람들의 눈물과 상처를 담은 장편소설 두권을 쓰고 싶었다.     20년간 뜸 드리며 몸살 앓던 숨고르기를 시작한다. 죽을 각오로 자신이 원하는 길 따라 행군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이든 밥이 되든 되돌아 갈 수 없어 지금 시작한다. 나이는 시간을 잡아 삼킨다. 집필을 시작했다. 장편 1권 ‘바람의 연가’, 2권 ‘바람벽에 기대’로 가제를 정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처럼, 시작과 끝은 있을 것이고 불꽃은 마지막까지 타오른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언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높이 뜀박질한다고 하늘에 닿지 않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고 어제가 지워지지 않는다. 물구나무서기 해도 멀리 바라보고, 뜸 들이지 말고 숨고르기 하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것인지 고심한다.   마음의 창을 열고, 남은 시간들을 사랑하고, 올인하는 사람들의 꽃밭에는 청춘이 퍼드덕 봄의 날개를 펼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김춘수 시인 전국여고생 백일장 editions 대표

2026.03.0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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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겨울이 봄을 이기지 못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 바르르 떤다(중략) /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중략) / 3월(三月)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중에서     시인은 관념을 벗어나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감각적인 언어를 시상에 담아 영혼에 불을 지핀다.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이며, 봄의 맑고 순수한 생명력을 환상적인 분위기에 담아 따뜻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봄을 기다리는 사나이의 관자놀이는 희망으로 생명을 잉태한다. 고통과 상처가 깊어도 겨울열매들은 올리브빛 옷을 입고 여인들은 그해의 찬란한 불을 지핀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으면 희망은 작은 풀잎에도 여린 꽃봉우리를 맺는다. 꽃샘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찔레꽃이 바람에 흩날려도 사랑은 맹세를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한평생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인지 모른다.     윤흥길의 중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인간의 존엄성를 상실해가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셋방살이하다 집을 장만한 오씨 집에 세든 권씨는 자신이 대학까지 나온 안동권씨라며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권씨는 아내의 수술비를 오씨에게 빌리려다 거절당하자 (오씨가 수술비를 대준 걸 모르고) 칼을 들고 서툰 강도짓을 하다가 탄로가 나고, 그는 행방불명이 된다. 다음날 오씨는 권씨의 방에 그가 애지중지하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不條理)극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는 ‘기다림’이다. 주 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난 술이 싫다고  동문서답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지만 실은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지 모른다.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두서 없고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힘겨운 에스트라공은 ‘우리 당장 목이나 매자’며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마치 힘겨운 삶을 도피하려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과 같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상처에 베이고 긁히며 세월에 떠밀려 살아왔는가?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무너지는 자존심에 절망해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생’이란 글자에 목숨을 걸며 살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 베케트의 명대사다. 무의미한 생을 의미있는 축제로 끝맺기 위해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겨울이 모질어도 봄을 이기지 못한다. 고도가 영영 오지 않는다 해도 기다림의 끈을 놓치 않는 사람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겨울 열매들 주인공 블라디미르 사무엘 베케트

2026.02.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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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아름답던 날들

모질던 겨울이 소리 소문 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산더미처럼 쌓였던 폭설과 꽁꽁 얼어붙었던 빙판이 지축으로 스며든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씨가 며칠 계속되자 따사로운 햇볕이 하늘 끝에서 내려와 축제를 벌이듯 사방을 어루만진다.   눈사태에 덮혀 형체도 없이 사라졌던 잔디밭과 연못, 숨죽여 엎드린 채소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릎까지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자 거짓말처럼 잔디밭이 푸릇푸릇 얼굴을 드러낸다. 세상에! 그토록 가혹한 추위와 사투를 벌리며 목숨줄 붙잡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생명은 모질다. 죽지만 않으면 사는구나 생각했다.   ‘오늘은 까치 설날’ 어제 동창이 카톡을 보냈다. 고등학교 동창 여섯명이 옹기종기 모인 카톡방은 시시껄렁 해도 정겨운 사연들로 넘쳐난다.   카톡은 지난 여름 한국 가서 배웠는데 재미 있다. 그동안 회의 참석차 한국 방문 했을 때도 비즈니스 때문에 일주일 정도만 체류하고 황급히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여지껏 살면서 놀러다니거나 남의 집에 ‘마실 다닌 기억’이 없다.   미국 달력에 구정 표시가 없어 동그라미 쳐두고 ‘Chinese New Year’를 기다렸다. 나보다 더 열심히 기다리는건 손주들이다. 세배보다 세뱃돈의 위력은 크다.   새뱃돈 수취인의 전폭적인 지지로 ‘양력과 음력’으로 설날을 두 번 치르게 됐다.   우리집 설날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새뱃돈 많이 받으세요’로 둔갑했다. 한복 입히고 한국말 인사 연습까지 시켰는데 세뱃돈에 몰입한 막내가 실수인지 고의인지 절하며 “세뱃돈 많이 주세요”라고 해 설날 인사말이 변경됐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목청 돋우고 삼만이 아재가 치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누렁이 앞세워 마을 한 바퀴 돌면 동네 어른들이 소쿠리에 감이나 군밤, 대추을 담아 주었다.   수 십 년이 넘도록 타향살이를 하셨지만 어머니 미국생활은 동지미 시골 마을에서 훈장(訓長) 어른 노릇하던 그 때 그 모습이다.   설날이나 구정, 추석 명절이 되면 온갖 음식을 장만해 손님을 초대하고 잔치를 벌인다. 한달 전부터 설날 상차림과 고유명절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재물을 소망하는 둥근 엽전 모양 떡과 가래떡을 만들고 동그랑땡, 오색꼬지전, 동태전, 깻잎전, 육전, 빈대떡, 잡채, 모듬전 부치고 소갈비를 재운다.   삼색나물은 뿌리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무친다. 뿌리를 상징하는 도라지는 조상을 뜻하고, 고사리 줄기는 부모를, 시금치 잎은 자손이 하나로 연결돼 대대손손 번영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 뿐이랴! 밤새 찹쌀 삭혀 식혜 만들고 약식 유과 약과 강정을 만들어 개별 포장해 이름표 붙여 일요일 교회에서 분배한다. 특혜를 받는 사람은 평소에 다정하게 손잡아 주거나 건강을 챙겨주는 의사들이다.   배달 책임은 막내 아들! 내 말은 죽기로 안 들어도 할머니 지시는 즉시 복종한다. 인생의 꽃밭에는 수만가지의 꽃들이 자란다. 가슴에 사랑을 품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추억의 꽃밭에는 사시장철 꽃이 핀다.   물 주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가지각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자란다. 천국처럼.   그 곳은 사랑과 기쁨이 항상 넘쳐나서 외롭고 슬플 때는 되돌아보면 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설날 인사말 까치 설날 설날 상차림과

2026.02.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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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과 예술, 심장의 불꽃은 타오른다

빈자리에 누군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천지차이(天地差異)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광기다. 천둥과 비비람이 몰아쳐도 함께 있는 순간은 따스하고 평화롭다.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벽면에 시민들이 남긴 비문과 그림 79건이 새롭게 발견됐다. 벽면에는 검투사 두 명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과 ‘에라토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목적어 없는 고백이지만 사랑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우주를 떠돈다.   사랑은 광야에 몰아치는 모래 바람이다. 형체도 없이 경계를 허물고 세월의 강을 건너 국적을 초월해 사랑없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환희를 새긴다.   제25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대회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아르모니아(Armonia)’. 영어로는 하모니, 즉 조화와 균형을 말한다. 복잡다난하고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21세기, 세계 정세와 세대-계층과 균열이 심각한 사회 분위기를 아우르는 시의적절한 주제다.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잠들지 말라’를 열창할 때는 가슴이 저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부른 ‘Nessun Dorma’는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다.   추억은 왜 하릴없이 시공을 뛰어넘고, 사랑했던 순간들은 축지법을 쓰며 세월의 흔적을 무자비하게 허무는가? 예술이 없었다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었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 가슴 떨리는 선율이 없었다면 높고 낮은 절망의 순간들을 어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청력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제자가 교향곡 제5번 ‘운명’ 1악장 서두의 주제를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해서 제목이 붙여 졌다고 전해진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비켜가는 수밖에 없다. ‘운명’ 교향곡으로 생의 고통과 좌절을 견디며, 모닝 커피를 마시며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듣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여린 풀잎에 입맞추고, 늙어 껍질이 벗겨진 고목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겠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말을 남긴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앞에서 피처럼 붉은 하늘의 아픔을 삼키고, 봄이 오면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뒷마당에서 이웃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겠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목표는 여태 남아있다.   인생의 완벽한 그림은 없다. 구도도 없이 불시착해서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   사는 것이 바람개비의 펄럭임이라 해도 꼭 붙잡고 살기로 한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예술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색깔로 생을 채색한다.   뿌리 없는 나무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심장의 불꽃은 사랑으로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예술 심장 이탈리아 밀라노 올림픽 스타디움

2026.02.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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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풍금이 있던 자리

가난이 수치가 아니던 시절은 행복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서로 돕고 기대며 산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초가집이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마을에 살았다. 스물 남짓한 집들은 담장이 허름해 내 집, 남의 집 경계가 없었다. 어느 집 쌀통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집이 누구인지 안다. 저녁 때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향해 ‘새끼들 데불고 밥 묵으라 오라 캐라’라고 소리쳤다. 굶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은 행복했다. 꼬부라진 논둑길 따라 요리조리 논밭 사이를 달리면 보자기로 싼 양은 도시락은 달그락 소리를 냈다.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처진 교문 앞에 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은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세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는 바위산이 있었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는 전설을 믿고 기다린다.   재력가, 장군, 성공한 정치가를 만났지만 탐욕과 권력 명예욕에 찌든 것에 실망한다. 노년기에 든 어니스트는 마을에서 설교자로 존경 받는 인물이 되고 사람들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 얼굴은 천차만별이다. 인생이란 대본에는 각기 살아온 세월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태어날 때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월이 산천을 다스리듯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이 들면 생김새와 얼굴 모양이 달라진다.   미술이나 문학은 숟가락 얹지만 무식이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음악이다.   시골에선 풍금에 맞춰 종달새처럼 따라 부르면 됐다. 건반이 두개나 고장 나도 목소리 높여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전학해 피아노의 맑고 명쾌한 소리에 주눅 들어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촌티가 탄로날까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풍금 소리는 어머니 젖무덤에 잠들 때처럼 포근하고 따스했다. 소복 입은 어머니 한숨소리 같아서 잊히지 않는 날들에 슬픈 날개를 달아준다. 피아노는 고통과 아픔을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풍금은 슬픔의 강물 따라 생을 떠돈다.   우리집 그랜드 피아노는 장식용이다. 애들에게 어릴 적 피아노 바이올린 풀룻 기타 등 렛슨을 시켰지만 연습을 안해 렛슨비만 날렸다. 전인교육 시킨다고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미술전시회를 주말이면 끌고 다녔다. 그나마 아들이 집에 오면 악보 없이 피아노 치는 걸 보며 ‘잔디밭에도 민들레 꽃은 핀다’로 위로받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가는 것이다.’-앙드레 말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찬란한 수식어와 빛나는 경력 없이도, 힘든 세상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면 진실 하나로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   애들이 그리우면 피아노의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유년의 풍금소리를 듣는다.   세월이 가도 풍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감꽃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풍금소리 들으며 찔레꽃 향기로 마음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건반이 몇 개 없어져도, 생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주눅들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기억은 흔적으로 남아 바람개비로 유년의 강가를 맴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큰바위 얼굴 풍금 소리 가도 풍금

2026.02.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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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의 길을 찾아

자고 나니 풍경이 달라졌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집과 집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길과 길 사이가 모호해지고, 내 것과 네 것이 불투명해졌다.   땅과 하늘이 맞닿아 껴안고 하나가 되었다. 세상은 숨죽이는 고요 속에 백색으로 대지를 덮고 어둔 밤인데도 온 천지가 천사처럼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미국 전역에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강력한 겨울 푹풍으로 한파경계령이 내려지고 인구 절반이 넘는 약 1억850만명이 피해 영향권에 들어 22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두려움으로 잠을 설치며 소파에 누워 일기예보를 지켜본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3-4절) 폭설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다.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높은 작업대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누워서 4년만에 ‘천지창조(Creation of Adam)’를 완성했다.   천재는 스스로 길을 만든다. 미켈란젤로는 허공에서 창조의 길을 만들었다.   사는 동안 수없이 갈 길을 잃었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길을 잃고 헤매여도 찿으면 길은 열린다.   뉴욕 아트엑스포 전시회에 35년 동안 참석해도 여태 화장실을 못찾는다. 눈썰미 없고, 방향 감각 제로에다, 길치에 기계치라서 길 잃는 것이 주 특기다. 운전 면허 땄을 때도 겁쟁이라서 빌빌거리며 운전을 잘 못했다.   옛날 옛적에, 길 잃으면 차를 즉시 세울 것, 곧장 고속도로 순찰 경찰 부를 것, 아는 체 달리다 보면 다른 주로 빠질 위험 있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의 길은 표지판이 없어도 혼자서 잘 찿아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어디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인지 알지 못해도, 마음이 내키는 곳을 향한다.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살아온 길이 아니라고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 없다.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 가는 길이 꿈꿔왔던 길이 아니라 해도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지고 갈 만큼의 무게를 등에 업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던 차분히 걸어갈 뿐이다.   인생 후반부는 후회하고 따질 겨를이 없다. 요란한 생의 깃발을 꽂을 필요 없다. 버티고 살아온 생의 발자취 껴안고 작은 조약돌로 이름 없는 돌탑을 쌓는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중략)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중략)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중략)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마음에도 길이 있다. 억만개의 장미로 불태우던 꽃길이 있고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던 가시밭길도 있었다. 사투를 벌이던 고통 속에서도 생명줄 놓지 않으면 아픔은 바람따라 흩어지고 봄이 오면 꽃들은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부지런한 이웃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든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이니다.     사는 것이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바람벽이라 해도, 무너지면 다시 쌓고, 흩어지면 다시 불러 모으면 된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도, 살을 에는 모진 겨울이 지나면 마음의 길은 마른 나무 가지에 백목련 한송이 꽃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인생 후반부 운전 면허 뉴욕 아트엑스포

2026.01.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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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고독이 머무는 자리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84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혼자 보트에서 지내다가 대어를 만난다. 상어와 사투를 벌리는 노인은 많은 고난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물고기는 단순한 낚시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고난을 상징한다. 헤밍웨이 글은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의미와 감정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빙산이론’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외로운 싸움과 고독을 존재론적 치열한 갈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고독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 색깔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홀로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은 따스하지만 적조하다. 고독은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마지막 잎새들처럼 외롭고 쓸쓸함으로 뒷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실로 오랜만에 비발디의 사계(四季, Le quattro)를 듣는다. 봄이 감미롭고 경쾌한 반면에 여름의 1악장은 천둥번개를 떠오르게 하고 황홀하고 격렬하다. 가을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음율로 둥지의 새를 남쪽나라로 날려 보낸다. 겨울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쇠소리 내며 마지막 잎새처럼 애절하게 나부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왈츠(Natasha's Waltz)를 추던 연인들의 사랑처럼 겨울은 슬픈 작별을 견디며 가슴 아리게 등을 돌린다.     인생의 4계절은 소리소문 없이 왔다가 미처 껴안을 틈도 없이 세월 속으로 흘러갔다. 봄날은 아지랑이 머리에 이고 사랑이 있는 곳이면 무작정 달려갔다.     여름은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수십 마리의 상어 떼를 만나도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왜 그리 살았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목숨 갈아먹는 줄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달렸을까?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문패도 없는 역을 향해 물욕과 탐욕, 욕망과 성공의 지도를 그리며 무작정 질주했다. 세상을 다 가져도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다. 소명(疏明)할 까닭이나 기회 조차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82세 때 가출해서 열흘 만에 시골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객사했다. 16살 연하에게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해 13명의 아이를 낳고 ‘전쟁과 평화’ 원고를 6번이나 필사한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반대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죽음을 보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톨스토이는 돈 명예 명성 지위를 모두 가졌지만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불완전한 영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복한 척하기는 쉽다. 요란한 포장지를 벗기고, 내려놓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행복은 환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에 형체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행복은 평온한 고독으로 생의 순간을 따스하게 데운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지 말라. 죽는 것보다 살아있음에 찬가를 부르라. 용기 있는 자만이 고독이 머무는 자리에 생명의 나무 한그루 심는다.     고독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견디는 성찰이다. 마음의 바다에 돛단배 띄우고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며, 무너지는 날들 위해 튼실한 나무 가지 붙잡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렛대 하나 세우는 일이다.     마음의 바다에 폭풍우 가라 앉히고, 조약돌처럼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사랑이 머무는 곳에 빛과 희망 있음을 믿으면, 고독이 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문호 톨스토이 나무 한그루 나무 가지

2026.01.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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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겨울 하늘

잿빛 구름 아래   겨울 하늘   흰 눈 가득 이고   산 넘어 물 건너   바람 따라 날아오고…       낙엽 떨어진     나무 숲 사이로   겨울 하늘     더 춥고 더 낮은   바람 몰고 달려온다       나뭇가지 내려다보는   겨울 잿빛 하늘   찬바람 휘몰아   성한 가지 죽은 가지   골라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시련(試鍊)의 겨울 하늘   준비(準備)된 사람만이   극복(克服)할 수 있는   혹한(酷寒)의 바람…       몰아오고 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겨울 하늘 겨울 하늘 겨울 잿빛

2026.01.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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