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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과 예술, 심장의 불꽃은 타오른다

빈자리에 누군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천지차이(天地差異)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광기다. 천둥과 비비람이 몰아쳐도 함께 있는 순간은 따스하고 평화롭다.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벽면에 시민들이 남긴 비문과 그림 79건이 새롭게 발견됐다. 벽면에는 검투사 두 명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과 ‘에라토 사랑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목적어 없는 고백이지만 사랑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우주를 떠돈다.   사랑은 광야에 몰아치는 모래 바람이다. 형체도 없이 경계를 허물고 세월의 강을 건너 국적을 초월해 사랑없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환희를 새긴다.   제25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대회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아르모니아(Armonia)’. 영어로는 하모니, 즉 조화와 균형을 말한다. 복잡다난하고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21세기, 세계 정세와 세대-계층과 균열이 심각한 사회 분위기를 아우르는 시의적절한 주제다.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잠들지 말라’를 열창할 때는 가슴이 저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부른 ‘Nessun Dorma’는 내 생애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다.   추억은 왜 하릴없이 시공을 뛰어넘고, 사랑했던 순간들은 축지법을 쓰며 세월의 흔적을 무자비하게 허무는가? 예술이 없었다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었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서 가슴 떨리는 선율이 없었다면 높고 낮은 절망의 순간들을 어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청력을 잃는 극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굴의 상징으로 칭송받는다. 제자가 교향곡 제5번 ‘운명’ 1악장 서두의 주제를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해서 제목이 붙여 졌다고 전해진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비켜가는 수밖에 없다. ‘운명’ 교향곡으로 생의 고통과 좌절을 견디며, 모닝 커피를 마시며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듣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여린 풀잎에 입맞추고, 늙어 껍질이 벗겨진 고목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겠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말을 남긴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앞에서 피처럼 붉은 하늘의 아픔을 삼키고, 봄이 오면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뒷마당에서 이웃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겠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목표는 여태 남아있다.   인생의 완벽한 그림은 없다. 구도도 없이 불시착해서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   사는 것이 바람개비의 펄럭임이라 해도 꼭 붙잡고 살기로 한다.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예술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색깔로 생을 채색한다.   뿌리 없는 나무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심장의 불꽃은 사랑으로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예술 심장 이탈리아 밀라노 올림픽 스타디움

2026.02.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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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풍금이 있던 자리

가난이 수치가 아니던 시절은 행복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서로 돕고 기대며 산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초가집이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마을에 살았다. 스물 남짓한 집들은 담장이 허름해 내 집, 남의 집 경계가 없었다. 어느 집 쌀통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집이 누구인지 안다. 저녁 때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향해 ‘새끼들 데불고 밥 묵으라 오라 캐라’라고 소리쳤다. 굶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은 행복했다. 꼬부라진 논둑길 따라 요리조리 논밭 사이를 달리면 보자기로 싼 양은 도시락은 달그락 소리를 냈다.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처진 교문 앞에 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은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세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는 바위산이 있었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는 전설을 믿고 기다린다.   재력가, 장군, 성공한 정치가를 만났지만 탐욕과 권력 명예욕에 찌든 것에 실망한다. 노년기에 든 어니스트는 마을에서 설교자로 존경 받는 인물이 되고 사람들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 얼굴은 천차만별이다. 인생이란 대본에는 각기 살아온 세월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태어날 때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월이 산천을 다스리듯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이 들면 생김새와 얼굴 모양이 달라진다.   미술이나 문학은 숟가락 얹지만 무식이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음악이다.   시골에선 풍금에 맞춰 종달새처럼 따라 부르면 됐다. 건반이 두개나 고장 나도 목소리 높여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전학해 피아노의 맑고 명쾌한 소리에 주눅 들어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촌티가 탄로날까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풍금 소리는 어머니 젖무덤에 잠들 때처럼 포근하고 따스했다. 소복 입은 어머니 한숨소리 같아서 잊히지 않는 날들에 슬픈 날개를 달아준다. 피아노는 고통과 아픔을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풍금은 슬픔의 강물 따라 생을 떠돈다.   우리집 그랜드 피아노는 장식용이다. 애들에게 어릴 적 피아노 바이올린 풀룻 기타 등 렛슨을 시켰지만 연습을 안해 렛슨비만 날렸다. 전인교육 시킨다고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미술전시회를 주말이면 끌고 다녔다. 그나마 아들이 집에 오면 악보 없이 피아노 치는 걸 보며 ‘잔디밭에도 민들레 꽃은 핀다’로 위로받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가는 것이다.’-앙드레 말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찬란한 수식어와 빛나는 경력 없이도, 힘든 세상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면 진실 하나로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   애들이 그리우면 피아노의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유년의 풍금소리를 듣는다.   세월이 가도 풍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감꽃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풍금소리 들으며 찔레꽃 향기로 마음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건반이 몇 개 없어져도, 생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주눅들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기억은 흔적으로 남아 바람개비로 유년의 강가를 맴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큰바위 얼굴 풍금 소리 가도 풍금

2026.02.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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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의 길을 찾아

자고 나니 풍경이 달라졌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집과 집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길과 길 사이가 모호해지고, 내 것과 네 것이 불투명해졌다.   땅과 하늘이 맞닿아 껴안고 하나가 되었다. 세상은 숨죽이는 고요 속에 백색으로 대지를 덮고 어둔 밤인데도 온 천지가 천사처럼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미국 전역에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강력한 겨울 푹풍으로 한파경계령이 내려지고 인구 절반이 넘는 약 1억850만명이 피해 영향권에 들어 22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두려움으로 잠을 설치며 소파에 누워 일기예보를 지켜본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3-4절) 폭설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다.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높은 작업대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누워서 4년만에 ‘천지창조(Creation of Adam)’를 완성했다.   천재는 스스로 길을 만든다. 미켈란젤로는 허공에서 창조의 길을 만들었다.   사는 동안 수없이 갈 길을 잃었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길을 잃고 헤매여도 찿으면 길은 열린다.   뉴욕 아트엑스포 전시회에 35년 동안 참석해도 여태 화장실을 못찾는다. 눈썰미 없고, 방향 감각 제로에다, 길치에 기계치라서 길 잃는 것이 주 특기다. 운전 면허 땄을 때도 겁쟁이라서 빌빌거리며 운전을 잘 못했다.   옛날 옛적에, 길 잃으면 차를 즉시 세울 것, 곧장 고속도로 순찰 경찰 부를 것, 아는 체 달리다 보면 다른 주로 빠질 위험 있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의 길은 표지판이 없어도 혼자서 잘 찿아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어디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인지 알지 못해도, 마음이 내키는 곳을 향한다.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살아온 길이 아니라고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 없다.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 가는 길이 꿈꿔왔던 길이 아니라 해도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지고 갈 만큼의 무게를 등에 업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던 차분히 걸어갈 뿐이다.   인생 후반부는 후회하고 따질 겨를이 없다. 요란한 생의 깃발을 꽂을 필요 없다. 버티고 살아온 생의 발자취 껴안고 작은 조약돌로 이름 없는 돌탑을 쌓는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중략)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중략)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중략)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마음에도 길이 있다. 억만개의 장미로 불태우던 꽃길이 있고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던 가시밭길도 있었다. 사투를 벌이던 고통 속에서도 생명줄 놓지 않으면 아픔은 바람따라 흩어지고 봄이 오면 꽃들은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부지런한 이웃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든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이니다.     사는 것이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바람벽이라 해도, 무너지면 다시 쌓고, 흩어지면 다시 불러 모으면 된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도, 살을 에는 모진 겨울이 지나면 마음의 길은 마른 나무 가지에 백목련 한송이 꽃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인생 후반부 운전 면허 뉴욕 아트엑스포

2026.01.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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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고독이 머무는 자리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84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혼자 보트에서 지내다가 대어를 만난다. 상어와 사투를 벌리는 노인은 많은 고난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물고기는 단순한 낚시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고난을 상징한다. 헤밍웨이 글은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의미와 감정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빙산이론’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외로운 싸움과 고독을 존재론적 치열한 갈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고독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무지개 색깔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홀로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은 따스하지만 적조하다. 고독은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마지막 잎새들처럼 외롭고 쓸쓸함으로 뒷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실로 오랜만에 비발디의 사계(四季, Le quattro)를 듣는다. 봄이 감미롭고 경쾌한 반면에 여름의 1악장은 천둥번개를 떠오르게 하고 황홀하고 격렬하다. 가을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음율로 둥지의 새를 남쪽나라로 날려 보낸다. 겨울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쇠소리 내며 마지막 잎새처럼 애절하게 나부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왈츠(Natasha's Waltz)를 추던 연인들의 사랑처럼 겨울은 슬픈 작별을 견디며 가슴 아리게 등을 돌린다.     인생의 4계절은 소리소문 없이 왔다가 미처 껴안을 틈도 없이 세월 속으로 흘러갔다. 봄날은 아지랑이 머리에 이고 사랑이 있는 곳이면 무작정 달려갔다.     여름은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수십 마리의 상어 떼를 만나도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왜 그리 살았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목숨 갈아먹는 줄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달렸을까?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문패도 없는 역을 향해 물욕과 탐욕, 욕망과 성공의 지도를 그리며 무작정 질주했다. 세상을 다 가져도 빈손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다. 소명(疏明)할 까닭이나 기회 조차없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82세 때 가출해서 열흘 만에 시골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객사했다. 16살 연하에게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해 13명의 아이를 낳고 ‘전쟁과 평화’ 원고를 6번이나 필사한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반대로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죽음을 보며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톨스토이는 돈 명예 명성 지위를 모두 가졌지만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불완전한 영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복한 척하기는 쉽다. 요란한 포장지를 벗기고, 내려놓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행복은 환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에 형체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행복은 평온한 고독으로 생의 순간을 따스하게 데운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지 말라. 죽는 것보다 살아있음에 찬가를 부르라. 용기 있는 자만이 고독이 머무는 자리에 생명의 나무 한그루 심는다.     고독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견디는 성찰이다. 마음의 바다에 돛단배 띄우고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며, 무너지는 날들 위해 튼실한 나무 가지 붙잡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렛대 하나 세우는 일이다.     마음의 바다에 폭풍우 가라 앉히고, 조약돌처럼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사랑이 머무는 곳에 빛과 희망 있음을 믿으면, 고독이 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문호 톨스토이 나무 한그루 나무 가지

2026.01.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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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겨울 하늘

잿빛 구름 아래   겨울 하늘   흰 눈 가득 이고   산 넘어 물 건너   바람 따라 날아오고…       낙엽 떨어진     나무 숲 사이로   겨울 하늘     더 춥고 더 낮은   바람 몰고 달려온다       나뭇가지 내려다보는   겨울 잿빛 하늘   찬바람 휘몰아   성한 가지 죽은 가지   골라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시련(試鍊)의 겨울 하늘   준비(準備)된 사람만이   극복(克服)할 수 있는   혹한(酷寒)의 바람…       몰아오고 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겨울 하늘 겨울 하늘 겨울 잿빛

2026.01.15. 18: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해 겨울은 따스했다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이 첫눈 올 때까지 안 빠지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첫눈 오는 날 같이 맞으면 연인이 된다는 낭만적인 속삭임도 아련한 옛추억이다.   쓸쓸해지면 종이학 접어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종이학은 돌아오지 않았다. 삶이 흔들리는 창가에 여린 날개 접고 사뿐히 그대 품에 안겼으리라.   옆집 옥이 언니는 인형놀이 대신 내 얼굴에 숯덩이로 눈썹 그리고 꽃잎 따서 입술과 볼을 연홍색으로 다듬었다. 꽃물 들인다고 봉숭아 찔레꽃 진달래 개나리 철쭉 유채꽃 동백꽃 꺾어 삼만이 아재가 주워 온 돌접시에 갈아 명주실로 꼭꼭 싸매 주었다. 첫눈 오기를 기다리며 손톱 꽃물이 지워질까봐 애를 태웠다.   올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폭풍이 몰아치고 모진 회오리 바람이 벌거벗은 가지를 꺾는다. 눈덩이를 등에 업은 채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껴안는다. 갈대는 죽은 듯 서있지만 생명을 움켜쥐고 사투를 벌인다.   죽지 않으면 산다. 쓰러져도 사랑이 생명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여우와 놀던 시절, 아득한 기억의 파노라마 속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아이처럼 철 없는 여자를 죽도록 사랑했다,   여자는 귀엽지만? 고집이 세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제 할 말만 지껄였다. 달래고 가르치고 응원하는 남자의 깊은 사랑이 여자의 삶 속으로 파고 들었다.   여자는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세살짜리 딸의 손을 잡고 팝콘을 한 바가지 튀겨 승마장 근처 연못에 가서 한 시간을 놀았다.   병아리 날개처럼 노오란 원피스에 수술 달린 노란 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을 낀 리사는 예쁘다는 말 듣는 게 좋아 아빠 손잡고 오리 먹이주려 매일 연못으로 갔다.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지만 귀엽고 둥근 한국인 얼굴을 하고 있어 언뜻 보면 정상아 같았다. 우리 가족 누구도 리사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리사는 우리집에서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보석이었다.   세상에 완전한 행복은 없다. 온전한 사랑도, 영원한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칡흙 같은 어둠이 몰려오듯 태양은 공전을 하며 돌고 있을 뿐이다. 짧았지만 행복했다. 불행은 햇볕을 가리는 어둠일 뿐 심장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의사가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고 했을 때 ‘전쟁터에서, 아무도 내가 오늘 하루 살아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시간은 죽음 앞에 무자비하게 흘렀다. 검정 드레스에 검은 모자를 쓰고, 리사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란 드레스를 입혔다. 성조기를 받자 21발 예포(Canon Salute)가 발사됐다. 리사는 아빠가 왜 안보이는지 모른 채 내 치마 뒤로 숨었다.   별들도 가볍고 무거운 인생을 산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신비로운 천체다. 중력이 강해서 빛조차 못빠져 나온다. 사랑도 빠져나올 수 없다. 산다는 것이 허공에 날리는 휘파람 소리라 해도 그리움의 강에 돛단배 띄우는 사람은 사랑의 묘약을 먹고 산다.     천지가 흰눈으로 덮여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운명을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을 선택할 수 있기 바란다.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슬픔이 빗물처럼 쏱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바람이 모질게 부는 날은 마지막 잎새 붙잡고, 눈밭 헤치고 방황했던 계절의 아픔 접으며, 사랑으로 버티고 사랑으로 살아남은 그해 겨울은 따스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그해 겨울 봉숭아 꽃물 손톱 꽃물

2026.01.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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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떠나는 것들 속에 사랑을

유년의 기억 속에 대청마루 한 가운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칠 때까지 뭐가 적혀 있는지 읽지 못했다. 우리집 대청마루는 엉덩이만 붙이면 누구나 쉬어갔지만 대부분 액자의 글을 읽지 못했다.   출생지가 현풍면 원교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현풍읍을 지나 마산과 창영을 연결하는 삼거리 작은 동네다. 낙동강을 구비 돌아 비슬산을 등지고, 먼지가 눈 앞을 가리는 도로를 달리면 삼천리 버스는 우리집 앞에 선다.   대구에서 탑승해 목마른 손님들에게 차갑고 신선한 우리집 우물물을 배달하는 건 내 몫이다. 갈증을 푼 손님들은 청문 틈으로 찌게발(?)을 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애호박 바가지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고마운 사람에겐 돈을 주는구나 생각했다.   아! 이젠 족보도 연유도 없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청마루에 유령처럼 자리잡고 있던 그 액자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하루에도 몇차례 삼천리버스가 오고가는 탓에 누렁이 황구 털처럼 잘 다져진 갈색 마당은 먼지를 뒤집어쓴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차례 회색 눈처럼 덮히는 대청마루를 쓸고 닦는데 공을 드린다. 한글을 잘 못 읽는데도 어머니는 정성스레 액자의 먼지를 닦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액자의 시를 내가 낭송하고부터 어머니 이마의 굵은 주름살이 펴지고 보름달은 외양간과 돼지우리, 찔레꽃이 만발한 마당을 훤하게 비춰주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리도 / 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옴을 믿으라.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1837초판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저서 출간 번역본 참고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슬픔과 괴로움은 결국 지니갈 것이고 인생의 역경과 불안, 좌절과 슬픔을 견디면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푸쉬킨의 시는 청상과부 어머니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푸시킨은 러시아 사람들한테는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단순한 시인을 넘어 러시아 문어체의 기틀을 세운 작가로 토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푸쉬킨은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 없는 작가로 시대와 맞선 조용한 저항은 푸시킨이 남긴 침묵의 항거였다.     살아갈수록 푸쉬킨의 시가 주는 무게가 가슴에 쌓인다. 어릴 적엔 철 없어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탐욕과 재물에 도취돼 욕망이라는 전차에 매달려 허우적거렸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무엇을 위해 남은 시간을 소모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중한 것들이 한 순간, 눈 깜박 할 사이에 사라져도 그리운 것들을 붙잡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고뇌와 아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새벽별 머리에 이고 아침을 기다린다.     마음은 침묵으로 말한다. 떠들지 않는다. 마음의 창문을 닫지 않으면, 내일은 미래를 머리에 이고, 밝은 걸음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사랑하는 그대여! 마음이 미래에 사는 것처럼, 오늘이 슬퍼도 내일은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한 순간에 인생이 덧없이 지나가도, 떠나는 것들에게 가볍게 손 흔들며, 다가오는 날들 위해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간구합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대청마루 청상과부 어머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2026.01.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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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

지는 것이 태양뿐이랴! 꽃잎도 피고 진다. 사랑도 뭉게구름으로 부풀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달이 차면 보름달도 이지러지고, 동쪽 하늘에서 새벽별로 반짝이던 그대 눈동자도 세월이 가면 목련꽃잎 되어 흩어진다.   새벽별은 계명성, 샛별, 금성을 가리킨다. 리투아니아 신화 속 새벽과 하늘의 여신으로 미모가 뛰어난 아우슈리네는 샛별(베누스)이 되어 하늘을 밝히고 어둠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어릴 적 산만하고 앞을 안 보고 생각(?)에 골몰해서 잘 넘어졌다. 엄마가 호호 불며 빨간색 아까징끼 발라준 무릎은 피카소 추상화처럼 성할 날이 없었다.   인생은 수백번 엎어지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무릎이 깨져도 절뚝거리며 어딘지 모르는 종점을 향해 달린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사는 것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지막 열차라 해도 뛰어내릴 수 없다.   1819년 겨울 아침 사형대 앞에서 생의 마지막 5분을 세며 서 있던 스물여덟살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1분이라도 더 살 수 있기를 빌며 죽음 직전 그가 본 건 교회 첨탑에 반사된 빛이였다.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그는 절규한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작품을 쓰는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는데 페트라솁스키 금요모임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가난과 아버지의 죽음, 사형 선고 후 집행 직전 특사로 풀려나지만 혹독한 시베리아 강제 유배 생활, 광적인 도박 중독, 평생을 달고 산   뇌전증 등으로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가난한 사람들, 악령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집필했다.   1881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토스토예프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장례식에는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토스토예프스키는 한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 맺는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 죄와 구원, 자유와 신앙을 가장 깊이 파고 들어 불멸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잃어버린 인생의 희망과 방향을 제시한다.   지는 해는 슬퍼라! 노을은 찬란하게 불타는 별리의 인사말도 끝내기 전에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다.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 그대가 잠든 순간에도 그리움의 끈을 놓치 않는다.   석양은 마지막 남은 잎새 껴안고 작별의 눈물 감추며 활화산처럼 불타오른다. 성냥개비 하나로 사랑은 우주를 밝힐 불을 지핀다.   오늘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어둠과 고통의 강을 건너 새벽별과 작별하고, 태양은 숨죽이며 찬란한 생명으로 대지를 물들인다.   힘든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꼭 오고야 만다. ‘내일’이란 단어 속에는 ‘희망’이라는 밝은 햇살이 반짝인다. 태양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   검은 망또 걸친 절망을 등 떠밀어 보내면 희망의 태양이 숨죽이며 다가온다.   지는 태양 붙잡고 눈물 떨구지 말라. 내일의 태양은 내일 찬란하게 빛난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새벽과 하늘 동쪽 하늘 건너 새벽별

2025.12.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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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겨울 하늘

잿빛 구름 아래   겨울 하늘   흰 눈 가득 이고   산 넘어 물 건너   바람 따라 날아오고…       낙엽 떨어진     나무 숲 사이로   겨울 하늘     더 춥고 더 낮은   바람 몰고 달려온다       나뭇가지 내려다보는   겨울 잿빛 하늘   찬바람 휘몰아   성한 가지 죽은 가지   골라내고…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시련(試鍊)의 겨울 하늘   준비(準備)된 사람만이   극복(克服)할 수 있는   혹한(酷寒)의 바람…       몰아오고 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겨울 하늘 겨울 하늘 겨울 잿빛

2025.12.25. 17:30

[이아침에] 성탄,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온 순간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다. 올해도 전쟁과 재앙, 지진과 홍수, 온갖 갈등과  아픔으로 지구촌이 온통 어수선한 한해였다. 그런 중에도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탄 만은 어느 누구에게나 평화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4년 12월24일 밤, 전쟁 한복판의 참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이 서로 총을 겨누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눈은 내리고, 밤은 깊었다. 그때 독일 측 어느 참호에서 낮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느 독일군 병사가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순간 양측 참호 전쟁터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이번에는 영국 측 참호에서 영어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캐럴이 트럼펫 소리와 함께 울려 나왔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측 참호에서 병사들이 총을 내려놓고 촛불과 초콜릿 같은 선물을 들고 서로에게 다가가 양측 군인들이 서로 감싸안고 성탄을 축하했다. 적어도 이날 밤만은 그들은 서로 총을 겨눈 적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었다.   비록 그 다음날부터 각기 상부의 지시로 다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게 되었지만,  분명 그날 밤만은 이 세상에 총성을 잠재우고 그 자리에 사랑이 태어난 기적의 성탄이었다.   어떻게 인종과 언어가 다른 전쟁터에서조차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이 되어 오신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마구간의 구유로 낮게 임하신 그분의 극진한 사랑 때문 아닐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2000년 전에 오신 과거의 예수 탄생이 어떻게 매년 성탄절마다 다시 이루어지느냐고 의아해 하며 반문하는 이가 많다. 성탄이 그저 하나의 명절이나 축제라는 소리다. 그런 분들에게 성탄은 단지 과거형일 뿐이다. 그러니 축제이상의 진짜 기쁨을 어떻게 맛볼 수 있겠는가!   성탄은 알고 보면, 하느님이 지금 ‘나’를 사랑하고 계심의 확고한 증거며 깨달음이다. 그렇기에 성탄은 분명한 현재형이다. 우리는 완전하지도 않고, 하느님께 나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존재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우리가 하늘로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죄와 거짓의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죄인인 우리 마음속 구유 안 낮은 곳으로 직접 찾아오셨다. 그런 그분의 다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현재형 인식이며 깨우침이 성탄이다.   주님은 단 한 번 오셨지만, 나에게 오신 그분의 엄청난 이런 사랑을 적어도 매년 성탄 때라도 기억하고, 내가  찾기 전 먼저 나를 찾아오신 그분의 사랑의 실체를 깨달아 내 삶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 삶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불평에서 감사로, 불안에서 평화로, 받는 삶 대신 베푸는 삶으로 바뀌어 진리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이건 분명  내 안에 이미 와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예수 성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절망과 고뇌로 절규할 때, “나는 너의 아픔을 너와 함께 울고 있다”라고 속삭이는 마음속 하느님을 보게 된다. 이를 심령으로 깨달아 흐느끼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안에 하늘나라가 찾아 온 때문이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면, 마구간 구유 속이라 할지라도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기 때문이다. 이를 믿는 사람에게 더는 성탄은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축제가 아닌,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 하느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억제하기 힘든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 깨달음의 기쁨이 생긴다면, 이게 바로 ‘성탄’이 왜 나에게 기쁨인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 아니겠는가.     Merry Christmas!!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아침에 성탄 하늘 성탄 하늘 예수 성탄 마음속 하느님

2025.12.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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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리운 사람들은 별이 된다

은하수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복극성이 그리는 큰곰자리의 일곱 별들은? 눈물 속에서 마지막 보았던 물망초 꽃들은? 금빛 조약돌에 부딪혀 흩어지던 찬란한 청춘의 빛들은? 눈물 모르던 날의 따뜻한 감꽃 목걸이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워하던 시간보다, 보이는 것들 속에 세월이 멈춘 풍경 속으로 돌아간 짧은 시간들이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살아있다. 그 짧은 만남을 위하여 긴 헤어짐의 날들이 필요했던 것일까?   드러내고 흐느낄 수 없었던 폭풍우 치는 저녁과, 잠 못 이루는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별을 가슴 깊이 안을 때까지, 삶은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고와 절망을 딛고 세월의 깊고 먼 강을 도도히 흘러온 얼굴들, 간혹 잊힌듯 흔들리지만, 시간의 허리를 파먹으며 저문 날의 창가를 기웃거린다.   고향이나 조국이 그리운 것은 그 땅이나 하늘과 산이 아니라, 그 곳에서 숨쉬고 사는 정겨운 얼굴들이 있어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익숙한 자음과 모음들이 모닥불 지피며 다가오는 땅, 엄마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푸석푸석한 흙이 있는 곳, 그리운 사람들의 눈망울 속으로 달려간다.   오래된 동창들을 만났다. 허둥대는 삶의 고삐 멈추고, 마른 꽃잎의 책갈피 속 유년의 뜨락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이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해도 남은 시간 따스한 강물되어 서로의 가슴을 데펴주지 않을까?   바람이였을까? 찰나와 영원 사이, 세월의 골목마다 숨어있다가 할퀴고 지나간 것은 눈물이었을까? 가슴 헤집고 모질게 흩어지던 꽃잎들의 흐느낌은 외로움과 상처를 견디지 못한 꽃들의 아우성이었을까?   꽃잎들이 빛 바래져, 인고의 날들로 실강을 만들며, 눈가에 잔 주름으로 퍼질 때, 우리는 나목처럼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한다. 사랑이 이별로 무너져도, 사랑을 다시 하고, 무너진 사랑을 견뎌내야 한다. 청춘은 버릴 것 없는 축복이였다.   ‘소년은 한 옴큼 꽃을 꺾어와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하나도 버리지 말어”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황순원 ‘소나기’ 중에서   꿈이 부서져 낙엽처럼 저문 거리를 나부껴도, 미련 버릴 수 없는 오늘과 포기할 수 없는 내일 있어, 달무리는 달을 껴안고 희미한 빛의 둥근 테를 두른다.   그리운 사람들이여! 어둠 속에서도 촛불을 켜 주세요. 영혼의 어둠을 밝힐 날들 위해, 꺼지지 않는 심장의 등불 켜고 청춘의 촛불을 밝혀 주세요.   보고 싶은 사람이여! 그대 슬픔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나의 아픔 속으로 그대가 들어오지 못한다 해도, 별들이 모여 찬란하게 반짝이듯 당신은 나의 별이 돼 주셔야 합니다.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별로 내 곁에서 반짝여 주세요.   알지 못할 슬픔이 밀려오는 날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이 있었기에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였다고’ 사랑의 독백을 주술처럼 외워주세요.   그대 곁에 늘 별자리로 남아있겠어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대가 내 곁에 있듯이, 북극성 멀리 떠나 있어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   세월이 흘러도,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별로 내곁을 밝혀 주세요.   그리운 사람들은 별이 된다. 떠나도 그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곁에 있듯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엔 별이 뜬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엄마 젖가슴 가슴 저미 금빛 조약돌

2025.12.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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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게 갈대뿐이랴! 사랑도 바람도 나무도 떠나간 그대 목소리도 흔들린다.   한줌 목숨 지키기 위해 인생은, 마음의 끝자락도 흔들린다. 목숨 붙어있는 것들은 살아남기 의해 몸부림치며 흔들린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뒷마당 연못에 살던 갈대가 땅밑으로 숨어들었다. 가을 햇살에 연못 물이 마르기 시작하자 오리 가족은 숲속으로 거쳐를 옮겨 아기사슴 형제와 동거를 한다.   갈대는 혹한 속에 언 발을 비비며 목숨줄 붙잡고 봄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정원의 꽃들이 기지개 켜기 시작하면 갈대는 연못 가장자리부터 단단한 생명줄을 감아올린다. 갈대는 손잡지 않아도 어울려 사는 법을 안다. 무리지어 어깨 추스리며 따스하게 등을 어루만진다.     초라해 보여도 화려함을 탐하지 않고, 연인처럼 깍지 낀 손 서로 껴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한다. 꽃샘바람이 가지를 비틀며 꽃잎이 낙화돼 허공을 맴돌아도, 한여름 몰아치는 미친 비비람을 모질게 버티며, 갈대는 흔들릴 뿐 부러지지 않는다.     마음이 길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흔들리고 부러진다.   인생 후반부는 후회보다 성찰의 시간이다. 깨우침과 성찰없는 후회는 무의미하다. 성찰(省察)은 마음을 반성하고 깊이 살피는 것을 말한다. 행동거지, 생각, 감정을 되돌아보고 지난 날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찿기다   후회(後悔)는 과거에 잘못한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자기성찰 없는 후회는 무용지물이고 시간 낭비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하고 싶은 일을 미룬 것’과 ‘자신답게 살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라며 미루다 보면 결국 ‘그 나중’은 오지 않는다. 남들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려 삶이 공허해진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추앙 받는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는 78세에 그림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1600여점을 그림을 남겼다.   가난한 농부 집안의 10남매 중 셋째였던 애나 메리(본명)는 교실 한 칸짜리 시골 학교에 잠깐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다. 12살 때부터 밥을 먹여주는 댓가로 농장 일, 집 안팎 청소, 음식 준비, 바느질 등 15년 동안 가정부로 일했다.   27살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모지스와 결혼해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5명이 병으로 죽는다. 그림 속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의 모습과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모지스가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남편이 67세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삶에 가장 고달픈 길로 빠졌을 때 동생의 권유로 78세에 그림 그리기 시작한다. 모지스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5명으로 꼽히고 미국을 움직인 100대 인물로 선정됐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는 때이죠.’ 모지스의 어록이다.   목숨 있는 것들은 흔들린다. 뿌리만 살아있으면, 흔들려도 희망을 놓치 않는다. 후회없는 인생은 없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없다.   한해 동안 부족한 글 아껴 주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담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고 기러기 편에 적어 보냅니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인생 후반부 행동거지 생각 연못 가장자리

2025.12.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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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날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중략)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중에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를 앞두고 생의 마지막에 남긴 아버지의 독백이다. 헌팅턴비치는 이민아 목사가 생전에 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해변이다.   이민아 목사는 생전에 쓴 책 ‘땅끝의 아이들’(2011)에서 예쁜 잠옷 입고 서재로 가서 아버지가 ‘굿 나잇’ 해주길 바랬지만 아버지는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고 한다.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진 아버지 팔에 매달려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피곤한 아버지는 ‘밥 좀 먹자’면서 날 밀쳐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고통으로 아파하는 딸 위해 흘리는 눈물이,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냐’고 미안해하던 아버지는 딸 10주기 기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며 가장 아픈 손가락이던 딸의 품으로 돌아갔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는 투쟁하며 사는가? 명예와 부, 지식과 행복, 사랑과 배신, 상처와 굴욕을 견디며 생의 한가운데로 던져지는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한줌 목숨 지킬 수 없어 우리는 빈손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용서를 빌며 회한의 눈물로 적은 편지는 부칠 곳이 없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은 파랑새가 되어 허공을 맴돈다.   사랑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은 어른을 흉내 내며 자란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장 가까이 함께 숨결 나누는 사람에게 사랑을 배운다. 아름다운 집과 값 비싼 옷, 멋진 환경보다 따스한 아랫목에 다정하게 두 발 비비며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강남 갔던 제비는 봄이 오면 다시 온다. 생태계 문제로 제비가 돌아오지 않아도 어머니는 대청마루에서 발 뒤꿈치 들고 빈둥지로 돌아올 제비를 기다렸다.   사업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시간을 쪼개는 일이다. 풀타임으로 뛰어도 감당 못할 노릇에 여자가 사업하는 건 생명 건 투쟁이나 다름 없다. 천방지축 잠꾸러기가 새벽 4시 기상, 지금까지 지속하는 건 ‘어머니’란 기적의 단어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투항하는 게 내가 사는 법칙이다.   애들은 날 닮아서 갈팡질팡 일거리를 만들었지만 할머니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정이 많고 착한 편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숨가쁘게 이리 뛰고 저리 달렸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 받고 아름다운 시절이였음에 틀림없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어떤 것이 축복인지 행복인지 알지 못한다. 산다는 것이 허무의 신발 가게에서 짝이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쩔뚝거리며 산다해도, 명절이면 품 속에서 데펴 꽃신 신겨주던 엄마 손은 따스했다.   하늘을 나르는 샤갈의 연인처럼 내 아이들이 행복한 사랑을 꿈꾸고, 피카소처럼 굵고 강렬한 선으로 스스로 인생을 창조하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 때 손주들 만나면 꼭 껴안고 볼에 뜨겁게 키스하리라. 내 침대에서 ‘미미’하고 자겠다며 차례를 다투는 손주들을 품에 껴안고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리라.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행복 사랑 이민아 목사 이어령 유고시집

2025.12.0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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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슬픔이 아픔에게

견딜 수 없을 땐 눈물이 흐른다. 닦을 손수건이 없으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별빛마저 사라진 캄캄한 밤, 흐느껴 울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린다. 눈발이 목화밭처럼 대지를 하얗게 덮으면 슬픔은 새가 되어 회색빛 하늘가를 맴돌다가 마지막 얼굴 내미는 마른 잎새에 방울로 반짝인다.    고통은 아픔을 삼키며 슬픔이 땅에 닿을 때까지 심장에 박힌 못을 뽑는다. 세월이 가면 상처에는 새 살이 돋고, 대지에 뿌리내리는 단단한 나무 될 거라고, 부대껴도 흔들리지 말고, 눈처럼 그냥 녹아내리라고 말한다.    목숨만 살아있으면 슬픔도 아픔도 지나가는 바람이다.    절망은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가둔다. 빠져나올 수 없어 웅크리고 견디면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콤한 날이 올 거라 믿었었다.    아픔은 입술 깨물고 상처를 숨길 수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없다.    꿈은 꿈을 먹고 자란다. 아지랑이처럼 따습고 포근한 유년의 꿈을 꾸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 ‘백목련’이 당선, 고김춘수 시인의 칭찬 듣고 양키시장에서 헐값에 구입한 바바리코트 입고 시인 흉내내며 동성로를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해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월 대보름 삼만이 아재가 연실을 풀어 날리면 내 연은 곤두박질 쳤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실을 단단히 감아 또 날리면 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햇빛에 대하여 / 바람에 대하여 /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 (중략)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 견딜 수 없었던 /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정호승의 ‘낙과(落果)’ 중에서     미국으로 왔다. 꿈 같은 무지개는 잠시 떴다가 지축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국어선생님 격려(?)로 국문학을 전공한 탓에 영어 실력은 미국 어린이 수준도 안 됐다. 당시에는 한국말을 잊을 정도로 인터넷과 유투브가 발달되지 않았다.   일요일 한국교회에서 한국말로 떠들며 무인도에서 홀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미국사람보다 더 확실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뼈가 삭도록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혀가 플리기 시작했다. ‘살만하면 죽는다’는 맞는 말이다. 사업하고 애들 뒷바라지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가까워지자 흘러간 시간의 파편들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제일 두려운 것은 어머니 젖줄 같은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일이다.   시인의 꿈이 사라져도 어머니 젖꼭지 만지작거리던 유년의 기억은 자음과 모음으로 남아 어머니의 젖줄처럼 내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20년이 넘도록 어떻게 매주 칼럼을 쓰느냐고 묻는다. 목숨 부지하기 위해 숨을 쉬듯, 한국인으로 남기 위해 나는 모국어를 껴안고 산다. 시인이 되지 못했어도 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나의 약속을 지키는 당당한 내 길이다.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옷은 바겐세일로 사 입더라도 꿈은 절대로 헐값에 사서는 안 된다. 네 아름다운 꿈을 가로막은 어떤 것들과도 타협해선 안 된다.’ 내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표지에 적힌 문구다.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여린 힘으로 큰 바퀴를 굴려 곡식을 찧는다.   생의 소중함을 알면 고통이 위로가 되고 아픔이 슬픔의 눈물을 닦는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회색빛 하늘가 어머니 젖줄 어머니 젖꼭지

2025.12.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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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이름답던 날들

할머니 침대는 등이 굽었다.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 방 퀸 사이즈 침대에 손녀 손자 둘이 붙어잔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널 뛰기 하듯 춤 추고 설쳐대니 침대 한 가운데가 찌그러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스스로 쪽팔린다는 건 알았는지 일단 할머니 방에서 철수, 제 방에서 자기로 합의했다. 밤이면 베이비담요 껴안고 뱀이 땅바닥 기듯 스르르 계단 내려가 할머니 방으로 숨어든다.   미국 아이들이 애지중지, 낡아 손 때 묻은 Security blanket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할머니는 우리 애들을 지켜주는 영원한 보호막이고 사랑의 피신처다.   어릴 적 옷칠한 반들반들한 장판에 누워 엄마 팔 베게 삼아 말랑말랑한 가슴에 손 얹으면 포근해 이내 잠이 들었다. 넘어지면 아까징끼 대신 침 발라주는 엄마 손은 약손이고 어머니 젖무덤은 공포와 두려움, 귀신까지 쫓아내는 주술방망이였다.   다시 한 해가 떠나간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Thanksgiving Holiday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휴일이다. 메이플시럽, 칠면조, 크랜베리 소스 등으로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한 해의 수확과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기념하며 감사를 전한다.   딸은 미 대륙의 동쪽 끝 뉴저지에, 아들은 서쪽 끝에 살고 있어 견우 직녀 오작교에서 상봉하듯 일정 조절은 팔방마녀인 딸이 잡는다. 올 크리스마스는 샌디에이고 아들 집에서 뭉치기로 하고 추수감사절은 각자도생 본가(?)에서 보내라고 했다. 내 욕심만 채우면 사위와 며느리에게 미운 틀이 박힌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게 사랑이고 선물이다.   올해는 ‘Gift Money Allowance(선물 제한 금액 적용)’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부모들에게 주고, 손주들에겐 나이에 따라 배당 액수를 알려 주었다. 나이 탓에 적게 배당 받은 손주는 ‘모자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Allowance를 주는 거지. ‘한도액 초과 금지’라는 문자를 보낸다. 녀석, 손가락 세며 잔머리 굴리느라 고심할 것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식구보다 다정한 이웃들을 만났다. 친 형제, 자식보다 더 살뜰하게 돌봐준다. 고장난 컴퓨터 손봐주고, 무식한 하이텍 기능공 훈련시키고 쓰레기 수거 날엔 쓰레기통 옮겨 주고, 눈이 오면 드라이브웨이를 치워준다.   이토록 좋은 가족 같은 이웃이 앞집에 살다니! 양아들(Chosen Family)로 맺은 이웃은 내 품을 떠난 리사와 동갑이다. 하늘은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한 사람을 선물로 보내준다. 별이 어둠 속에 다시 빛나듯 태양은 지면 내일 다시 뜬다.   내게 근사한 가족, 형제 같은 ‘바라기’가 생겼다.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인데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을 가르킨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목이 굳어진다면, 달콤한 감홍시 먹을 때처럼 사는 게 달짝지근 하고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 해(Sun & Son)바라기로 맺은 나의 새 가족이 좋아할 요리 창조(?)하느라 머리가 뱅뱅 도니 치매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추수감사절 함께 보낼 식당은 미리 예약했다. 새 식구들과 나누는 행복한 만찬! ‘미미’라 애칭 부르는 손주들에게 줄 성탄절 봉투에 이름을 예쁘게 적는다.   가슴이 따스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차가운 겨울, 눈발 흩날리는 오후에도, 조각이불처럼 따스한 사랑 수놓으며 가슴 속 한 송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할머니 침대 가족 형제 수확과 가족

2025.11.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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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목숨이라도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산다. 쓸 데 없는 것들에 흥분하지 않고,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다가올 내일도 알 수 없고 순간의 궤적도 비껴 나갈 수 없어도. 살아있는 순간에만 충실하면 인생은 견딜만하다. 장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속 빈 강정이거나 빈수레처럼 요란한 방정이라 해도 여린 손 마디 펴고 작은 돌 주워 탑을 세운다.     인생살이에 절대는 없다. 꼭히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되는 것도 없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짐이니(死也一片浮雲滅) / 뜬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浮雲自體本無實) (중략) 담담히 삶에도 죽음에도 매이지 않네(澹然不隨於生死)’-작자 불분명   뜬구름처럼 생과 사는 실체가 없고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존재의 현실일 뿐이다. 집착을 버리고 타인을 차별하지 않으면 삶이 초연해진다.   돌을 던지면 명중하지 않더라도 그 쪽으로 날아간다. 바람부는 날, 사는 것이 부대끼고 힘들어도 연줄을 놓지 않으면 연은 허공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린다.     생의 비극과 희극은 번갈아 가면서 온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화려한 꽃가마 타고 달리지만 언제 파멸의 언덕으로 내동댕이 칠 지 모른다. 자랑은 금기다.     ‘비극의 탄생(Die Geburl der Tragodie)’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고통 및 욕망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비판을 담고 있다. 니체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술과 진리에 대한 철학을 탐구하며 예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살아있는 것만큼 장엄한 현실은 없다. 주인공이 살아있는 한 연극은 지속된다. 물구나무서기 하듯 비극과 희극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일지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어도,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달려있다. 어릴 적 소꿉장난 하며 동무와 시냇물에 발을 담그면 강물은 은빛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뭉게구름으로 떠올랐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영문학사에서 명대사로 꼽힌다. ‘어느 쪽이 더 고상한가,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맞는 것과 밀려드는 역경에 대항하여 맞서 싸워 끝내는 것 중에. 죽는다는건 곧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이 들면 마음의 고통과 몸을 괴롭히는 수천 가지의 걱정거리도 그친다고 하지. (햄릿 3막 1장 중에서)’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심오한 물음표다.   멜로드라마는 오로지 주인공만 정의롭고 정당화되지만 ‘비극은 모두가 정당화되며 누구도 온전히 정의롭지 않다’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어느 한계까지는 모든 사람이 옳지만 맹목적인 열정으로 한계를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권리에 심취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세계는 우리 존재와는 관심 없이 돌아간다. 인생은 극복하는 자와 넘어지는 자로 분류된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목숨이라 해도, 발목에 묶인 사슬 풀면, 부서진 날개 추스리며, 마음의 강 건너, 하늘 높이 비상의 날갯짓으로 떠오른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조각 뜬구름 건너 하늘 비극과 희극

2025.11.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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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너 안에 내가 없다 해도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사실 나도 믿지 못한다. 마음이 변하면 나도 변한다. 기분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된다. 기분 만땅일 때와 땅 밑으로 가라 앉을 때는 천차만별 차이다. 같은 이슈로 들락 날락, 오락가락 한다.   남의 저울로 자기 몸무게를 잴 수 없다. ‘요즘 많이 예뻐졌네요’라는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거울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실(Fact)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탄식할 필요 없다. 내 맘도 내가 못 다스리는데 타인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추수 끝난 밭에서 이삭 줍기다.   학창 시절 그림과 문학에 몰두, 수학과 과학은 꼴통이였다. 애들은 ‘숫자는 낙제, 돈은 천재’라며 지들 생일 까먹었다며 날 성토한다. 과학은 수학보다 더 복잡해서 이해 능력 불가, 골 때리는 과목이다.     세월이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기도 한다. ‘양자물리학’에서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멘트에 충격 받아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루는 새로운 종류의 역학이며 입자는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자 컴퓨터, LED, GPS, 레이저, 반도체 등은 모두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기술들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달달한 사랑의 표현도, 감정은 심장이 아닌, 뇌에서 생긴다는 과학적 사실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와 미시적인 계의 현상을 다루는 이론으로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 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한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날, 경북대 뒷산에서 수성 못까지, 도시의 끝을 오고 갔던 첫사랑의 소년은 터무니 없는 현상이 아닌, 입자들의 소중한 만남이었을까?   사람은 속이기 힘들어도 뇌는 속일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기능,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뇌에 미치는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면 인생은 훨씬 살만해진다.   내 몸은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비행하는 나의 우주다. 마음먹기 따라 뇌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찿아낸다.   생명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우리의 뇌를 화가가 그리는 수채화에 비유한다. 화가는 사물을 뎃상하고 물감으로 채색한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듯 뇌도 세상의 밑그림을 그린다. 각자의 뇌 속에 주어진 본능과 욕구에 관한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에 어떤 색을 칠할지, 명암을 줄지는 각자의 자유와 의지의 영역이다. 밑그림이 부족해도 멋지게 채색하면 명화를 그릴 수 있다.   인생은 마음먹기 달렸다. 어설픈 조언과 판단, 자책으로 포기하면 안 된다. 나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장애물이 겹겹이 앞을 가로 막아도 발버둥 치지 말고 숙연하게 받아 드리자. 어린 아이는 울 때 사지를 비틀고 운다. 그래도 이쁘다. 나이 들어 한탄하고 되씹고 후회하면 촌스럽다.     인생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담대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나비처럼 사뿐히 소풍가는 기분으로 세월 속을 날아간다.   ‘너 안에 내가 없다’ 해도 내 안에 너는 항상 작은 입자로 남아 있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모두 양자역학 생명과학자 김대수 몰두 수학과

2025.11.0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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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때 그 시절, 그대 곁에 머문다

가을이 온다. 오고 있다. 가을이 왔다. 떠날 때는 따스한 햇살 뭉치가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여 울굿 불긋 실타래처럼 반짝거렸다.   여행 떠나기 전 정원사 아저씨께 깻잎은 한잎씩 따서 봉지에 담고 토마토는 빨갛게 익은 것만 골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돌아온 날부터 날씨가 싸늘해지더니 숲 속 나무들이 초록옷을 벗고 활옷을 입기 시작한다. 떠나보낼 겨를도 없이 나무들은 다음 계절로 화폭을 펼친다.     가을은 낙엽의 갈 길을 재촉한다. 미련 없이 서둘러 떠나던 그대 뒷모습처럼 바람에 섞여 안개처럼 흩어진다. 처음 만난 모습보다, 흩날리는 바바리 코트의 기억으로 남은 그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작별의 옷자락을 여민다.   ‘세월이 유수로다 어느덧 또 봄일세. 구포에 신채나고 고목에 명화로다. 아이야 새술 많이 두었으라 새봄놀이 하리라’ 세월유수(歲月流水)는 고종 때 가객 박효관이 ‘가곡원류’에 실린 시조에서 유래한다.   가을이 오면 죽기 살기로 깡술을 퍼마시던 가난한 문우들 생각이 난다.     모두 가난했다. 허름한 주머니에는 구겨진 화선지 한장과 해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직업이 불분명한 시인 지망생이거나 연중행사로 신춘문예에 낙방한 소설가들은 해가 지면 이조주촌이나 대동강 막걸리 집으로 스며들었다.   돈 버는 사람, 돈 가진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술을 마셨는지 아리송하다.     ‘저녁은 사치’라고 주장, 안주 없이 깡술을 한 잔이라도 더 마시는데 합의, 나는 술을 전혀 못 먹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매일 모여서 마셨는데 술값은?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총대 매고 시계를 잡히거나 윗도리를 벗어 계산했다.   ‘적당히 마셔라.’ 혀를 끌끌 차며 대동강 아줌마는 외상장부에 적는둥 마는둥 했다. 아줌마는 여태 살아 계실까? 신세가 비슷하면 가난을 깃발 삼아 끼리끼리 뭉친다.     함께 있으면 행복했다. 내일이 암울해도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젊었고 열정과 패기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문인 지망생 김원도를 주축으로 주변문학 동우회 작품집을 출간했다. 원도는 청춘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고집이다. 굶주림과 절망은 생명의 불꽃마저 어둠으로 덮는다.   시차 극복으로 뒤척이는데,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어둠 속에서 이웃 애들이 공차기로 야단법석이다. 아이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지치지도 않고 공놀이를 한다. ‘헐!’ 하고 놀랐다가 슬며시 혼자 웃는다. 내게도 저런 미친 날들이 있었지.   주린 배 움켜쥐고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던 그 시절!     추억은 중독성이 강하다. 순수하고 새록해서 머무르고 싶은 순간으로 비행한다.   때늦은 멜랑콜리로 흩어지는 낙엽에 시름을 묻는다. 늦은 나이에 샌티멘탈이라니.     ‘그대여, 여기 바다가 보이고 / 많은 사람들은 한 가지씩 좋은 추억에 /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하지만 / 그대여, 다시 돌아온 이 바닷가 / 그대 떠나간 조금은 슬픈 추억 때문에(중략) / 그대 그리워 다시 찾아올수 있겠지 / 나의 슬픈 바다여, /지쳐버린 내 마음 쉬어 갈 수 있는 곳 ‘-조정현 ‘슬픈 바다’ 중에서     잊었다고, 모든 것이 지나갔다고, 스쳐가는 바람의 날개짓이나, 속절없는 세월의 빛바랜 낙엽이라 해도, 그 때 그 시절, 함께 꿈꾸던 약속의 언어들은 허공과 우주를 넘어 영원토록 그대 곁에 머문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대동강 아줌마 주변문학 동우회 대동강 막걸리

2025.10.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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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줘서 고마워

지나간 것들에 연연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뒤돌아보면 어제의 아픈 편린들이 못자국처럼 상처로 남아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할 때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경고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절벽을 마주하면 어떻게 할까? 뒤는 한치도 물러날 수 없는 막다른 길이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내인생이 여기서 끝장 날 것인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까마득한 절벽에서 떨어져도 살아남는다.   보통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186미터가 되는 백마강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전설은, 그 숫자가 과장 됐다 해도 백제의 멸망과 슬픈 궁녀들의 이야기로 나라 잃은 자의 슬픔과 비통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삶과 죽음은 인생의 잔인한 반복이다. 건강식 챙겨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 안 받고, 부지런떤다고 오래 살지 않는다. 각자의 시계 추에 맞춰 태어나듯, 죽음은 순서에 관계없이 떠날 시간에 앞을 가로 막는다.   이번 여행 중에 죽었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6년 전에 죽었었고 기억 속에 지워졌다. 더 이상 친구를 떠올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매달리고 떠올리는 것보다 잊고 단념하며 추억의 잔해들을 땅에 묻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떠나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수월할 테니까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그림자마저 지우지 않았다. 벌써 7여년이 지났구나.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있는 널 만나러 갔다. 휠체어에 앉아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많이 나았다’며 나를 위로했다. 죽지 않으면 사는구나 생각했다.     근데 소식이 끊어졌다. 미국으로 돌아와 전화도 하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연락도 해 보았다. 대구 갈 때마다 냉면과 갈치밥 함께 먹던 활선생님께 생사를 묻고 또 물었다. 날 포기시킬 작정으로 ‘마지막 모습 보면 슬퍼할까 봐 친구는 그냥 떠난게 아닐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내 가슴에 너를 묻었다.   너는 유일한 친구고 동반자였다. 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귀로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지표였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은 나의 희망을 너는 꺾지 않았다.   네가 아니였으면 자서전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은 타인의 언어처럼 익숙하지 못해 두려움에 가슴이 떨려왔다.   ‘네가 사는 세상 이야기는 누구도 담을 수 없다. 오직 너 만이 쓸 수 있다. 네가 두려워하는, 높이 뜬 별이 지상으로 침몰할 때 어쩌면 북극성처럼 빛나는 시간이 너에게 올 것이다.’라고 친구는 위로했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자의 가슴에 붉은 꽃 한송이 피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서울 근교에 살아있다는 걸 알아냈다. 단숨에 달려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세라피를 받는 친구는 ‘네 칼럼은 빠지지 않고 읽는다’며 편안해 보인다. ‘왜 연락 안했니?’라고 묻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만나지니까. 패티킴 리사이틀 연습시키던 얘기하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가 명절이라서 늦은 밤중에 택시 못잡아 혼줄이 났다.   세월은 흘러가도 시간은 붙잡고 매달리면 잠시라도 옛날로 되돌릴 수 있다.   살아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만남은 연인처럼 오늘이 1일이다. 세월은 우리편이다. 죽는 날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이상 친구 냉면과 갈치밥 자의 가슴

2025.10.2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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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의 날개짓 같은 그대 이름은    내가 나를 모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생성되고 나와 함께 소멸된다.     두 주간의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칡흙 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흩어져 떠 있다. 별은 이제 서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너무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았기 때문일까? 세월은 많은 사람들을 내 곁에서 떠나보냈다. 그리움도 아픔도 사랑과 고통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견딜만한 상처로 세월의 껍질이 단단해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 생폴 드 모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극심한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 속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5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내면 세계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휘청거리는 밤 하늘에서 별은 살아움직이듯 꿈틀거리며 생명은 마지막 표효를 한다.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용돌이 치는 별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극복하려는 생의 처절한 사무침과 갈망이 담겨있다. 교회 첨탑과 서로 어깨를 기댄 작은 집들은 프랑스 생레미 마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낸 네델란드 시골 마을 풍경이다. 둘아갈 수 없다 해도 고향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떠난다.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쯤 강의 상류로 돌아가기 위해 수천 Km를 헤엄쳐 태어난 곳으로 잊지 않고 찿아간다. 연어는 강으로 돌아갈 때 지구의 자기장과 후각능력을 활용한다. 자기장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찿는 나침반 역활을 한다.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는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다음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회기한다. 알을 낳을 때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을 갖고 있다. 생명체는 처음 자란 곳을 좋아한다. 회귀본능(回歸本能) ‘귀소본능(歸巢本能)’이다.     연유를 묻지 않는다 해도, 연어는 더 넒은 세상에서 살다가 물살을 거스르는 위험을 무릎쓰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의 강은 언제 발을 담가도 따스하다.   경북여고 재경 동창회 가을단합대회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서울 귀국 중 친구 배려로 사 오십여 년 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얼굴도 이름도 헷갈리는 만남이였지만, 어머니가 장작불에 데운 물로 놋대야에 발을 씻어주실 때처럼 가슴이 따스하게 저려왔다. 눈물이 났다.   이제, 내 나라인데도, 여전히 허전한 내 집으로 돌아와 동네 할머니가 손수 담근 집된장 넣고 씨래기 된장국을 끓인다. 씨레기는 현대백화점에서 몽땅 구입했다. 이걸 도리구매라고 하나? (모르겠다!) 여독이 풀리고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미국에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이웃 할머니(나를 뺀)들은 여전히 한국에 산다. 눈꼽만큼 도와 드리면 별의별 귀한 채소와 씨앗, 김치를 담가 주신다.   집사 아저씨와 합작으로 이웃 아이들이 ‘Welcome Home! MiMi’라는 배너를 걸어 나의 귀향(?)을 축하했다. 할머니(grandma)라고 부르지말고 ‘미미’라는 애칭으로 부르라고 피자 사주며 사전 협의했다.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다.     덜 외롭게 살려면, 살 비비대고 사는 것처럼 따스한 강물을 없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어두운 나의 창가를 찬란하게 비출 날을 기다린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이웃 할머니 동네 할머니 네델란드 시골

2025.10.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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